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최근 게시글      최근 코멘트
[유란시아 책에서 영감을 받은 독자분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부활절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경곤 작성일24-04-09

본문

오늘은 날자로 본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유란시아 책 4부에 상세한 이야기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유대인이 지내는 절기를 기준으로 부활절을 계산하여 매년 다르게 날자를 정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유대인은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미묘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4월 9일이 부활 기념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유란시아 책이 아니더라도,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은 수천 년 동인 예수를 믿는 교인들에게 전통적인 예식과 함께 가장 중요한 날로 지켜지고 있고, 매년 부활의 의미와 그에 연관된 하느님의 진리는 쉬지 않고 반복되면서 시대를 이어가며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부활이 어떻게 일어났고 그 부활에 담긴 사실적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활에 관한 상반된 사실을 감추고, 모순점을 부인하고 비합리적인 교리를 무조건 믿도록 강요받고 또 강요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진리에 관해 기독교에서 해결될 수 없는 심각한 오해가 여럿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관한 해석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그 다시 살아난 몸은 영생할 수 있는 영광의 몸이고 영적인 몸이라고 주장합니다. 부활이라는 사건으로 인하여 인간 몸이 영생체의 사실성이 선포된 것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이것은 과학 법칙이나 논리와 너무 맞지 않는 비상식적이고 원시적인 주장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전파하신 극히 당연하고 타당한 영원힌 진리와도 모순되는 해석입니다.


도마가 손을 넣어서 창에 찔린 자국을 실제로 확신한 인간의 육신이 어떻게 영적인 몸이 되는 것인지 아무 설명이나 어떤 가능성도 제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육신의 부활을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상식적인 사람들이 교회를 거부하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런 자기 모순에서 벗어나려면, 예수님의 몸은 육신의 몸을 거친 후에, 죽음을 통과한 인간이 인간 삶의 모든 모습을 지닌 채, 새롭게 탄생되는 모론시아 몸이라는 유란시아 책에서 밝히는 진실을 알고 또 이해해야만 합니다.


무덤에서 사라진 뼈와 살이 그대로 있는 원래의 육신이라는 믿음에서는, 시간이 지나서 영생체로 변형되는 새로운 육신이라는 상상을 교리처럼 믿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이성적인 신학으로는 풀리지 않는 모순입니다. 은밀한 수수께끼로 감추고 모른 체 한다면, 부활의 의미는 사실적인 증거가 아닌 무조건적 믿음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관해 아주 엄격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189 :1.6
다음과 같이 기술함으로써 예수의 부활에 대한 개념을 언제까지나 정립해 두기로 하자:


1. 그의 물질적인 혹은 육체적인 몸은 부활된 개인성의 일부분이 아니었다. 예수가 무덤에서 나왔을 때, 그의 유체는 묘실 안에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는 무덤 앞에 있는 돌을 움직이자 않고 그리고 빌라도의 봉인을 훼손하지 않고, 매장된 무덤에서 나왔다.


2. 그는 영(靈)이나 네바돈의 미가엘로서 무덤에서 나오신 것이 아니었다; 유란시아에 필사 육신과 같이 육신화하기 전의 그분이었던 창조자 주권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시지 않았다.


3. 그는, 부활된 모론시아 상승 존재들로서, 사타니아의 이 지역 체계의 첫 번째 맨션세계의 부활실에서 나오는 모론시아 개인성들과 거의 똑같이, 요셉의 무덤에서 나왔다. 그리고 1번 맨션계 부활실들의 넓은 뜰 가운데에 있는 미가엘 기념관의 현존이 우리들에게 유란시아에서의 주(主)의 부활이 맨션세계들 체제의 첫 번째인 이곳에서 어떤 방법으로 촉진되었다는 것을 유츄하도록 이끈다.


모론시아 차원이나 맨션 세계에 대한 진리를 모르면, 예수님의 부활이 죽음을 통과하는 인간의 불멸성을 사실로서 증명한 출현을 단순히 기적적인 사건으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몸 자체로 물질 세상과 모론시아 세상을 사실로서 새롭게 정의하신 것입니다.


모론시아 세계가 단지 추상적인 하늘나라가 아니라, 실제 새로운 몸으로 탄생되고 육신의 삶을 살았던 인간의 삶이 영생의 차원에서 계속 새롭게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준 진리이디도 합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직접 손가락을 넣어서 확인하라는 얘기는 예수님의 얘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 다른 사도들의 말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부활을 의심해 왔던 도마가 고집을 피우면서 했던 말입니다..


191 :5.4
그렇게 말씀을 마친 주(主)는 도마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리고 나를 보고 내 손에 있는 못 자국 속에 네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 너, 도마야, 이제는 네가 나를 보았고 내 말을 들었다; 너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너희들에게도 임할 그 형체로 내가 살아났기 때문에, 내 손에서 네가 못 자국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네 형제들에게 이제는 무엇이라고 말하려고 하느냐? 네가 그토록 완강하게 믿지 않을 때에도 이미 네 가슴 속으로는 네가 믿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네가 진리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도마야, 네 의심들은 무너지려는 그 순간에, 항상 아주 완강하게 버티려고 합니다. 도마야, 나는 너에게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권합니다.─그리고 나는 네가 전심으로 믿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도마는 모론시아 주(主) 앞에 무릎을 꿇고 “제가 믿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주(主)시여!”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예수는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도마야 너는 나를 실제로 보고 들었기 때문에 믿게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들 속에서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필사자의 귀로 듣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믿게 되는 자들이 복되다.”
 

부활의 몸은, 우선 인간이 육신의 몸을 벗고 모론시아 몸을 가진다는 것을 사실적 진리고 알려주신 것이고, 또한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한 자신의 몸을 직접 보지 않아도 그 과정과 사실을 믿을 것이라는 복음을 남기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의 이러한 계시의 과정을 모른 채, 뼈와 살이 있는 육신의 몸으로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그러한 부활을 믿고 있다면, 과학의 발전과 질병을 정복하면서 불멸의 의식을 각성하고 있는 새로운 유사 종교와 사이비 진리 앞에, 부활의 모순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현재의 애매한 해석은 시간이 지나면서 빛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는 엄청난 진리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모론시아 몸의 출현은 계시된 진리에 비하면 지극히 당연한 우주의 물리적 질서와 현상일 따름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아들의 신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확증하는 수많은 의미와 실증들이 부활의 사건에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주가 태어났고 그 운명으로 사랑의 완성이 체험된다는 우주 아버지의 진리를 계시한 것이 예수님 자신의 삶이었습니다. 삶으로 진리를 드러내신 예수님이 스스로 택한 부활의 모습은, 예수님의 진리가 마무리되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dc02f6112925ec8698ea7a76fa19e195_1712664



댓글목록

우현님의 댓글

우현 작성일

요즘 신앙심이 돈독하고 열정으로 불타는 목사님들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한탄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보지 않고도 나를 믿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고 했는데, 요즘에는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무조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복을 받을만한 사람들이 없다고 합니다. 종교적 은혜를 기대하기 전에 충성부터 해야 하는데, 목사의 입장에서는 그런 충실한 신자들이 없는 현실이 답답할 것입니다.

무조건 얼마나 굳게 믿을 수 있는가를 신앙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사제처럼 종교를 무기로 삼는 이기주의인 셈입니다. 유대 바리새인들이 입술에서 경전을 외우며 살듯이, 예수님의 이름을 매일 외면서 살아가는 것을 신앙의 척도로 삼겠지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처럼, 지금도 종교를 삶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이비들이 많습니다. 진리를 알고자 하는 순수한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기 영광을 높이는 악덕한 사제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기독교가 만든 이러한 종교 암흑시대는, 성경의 권위가 사라지는 시기가 되어야 멈출 수가 있는데, 그런 용기 있는 목사나 지도자가 과연 탄생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러한 일은 아마도 유란시아 계시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진리 전파에 사심 없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기반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유란시아 책이 기원된 미국에서 그런 변화가 가장 먼저 시작되고 있겠지요.

창파님의 댓글

창파 작성일

기독교 교리 중에서 잘 이해가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예수님의 부활을 최고의 진리로 강조하는 교리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했기 때문에 사람이 영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죽은 다음에 영생할 수 있다는 진리는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영생의 증거로 믿는 것은 가장 허약한 믿음입니다.

기독교 이전에 있었던 토착 신앙을 비롯한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에서나 신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사람은 죽어서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을 우주 섭리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은 기본적으로 영생하는 삶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승에 있다가 윤회한다는 교리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에서, 결국 죽음 이후는 불멸이라는 주장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죽음 이후의 불멸의 삶을 나름대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는데, 유독 기독교만 사람은 죽음 이후에 영생이 있음을 전혀 모른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무지를 다른 사람의 무지로 스스로 심판합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무신론자가 대부분인 중국도 11%의 인구가 내세를 믿고, 토착 신앙이 대부분인 짐바브웨나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들이 기독교 국가보다 더 굳게 믿고 있습니다.

부활의 의미를 영생에서 다른 진리로 빨리 전환하지 않으면 조롱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강력한 증거라고 하지만, 증거 없이 확신하는 믿음이 더 값질 수 있습니다.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죽어야 부활하는데, 죽지 않으려고 육적인 부활의 진리를 믿으니, 부활의 영적 진리를 찾지 못해 헤매는 거예요.


 


유란시아한국 소개 문의 | 요청  (웹관리자) : sysop@urantia.or.kr © URKA 상단으로
  모바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