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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에서 영감을 받은 독자분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변화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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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디오니스 작성일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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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변화의 물결은 더욱 거세게 밀려들고 있습니다. 모험을 즐기는 도전자에게는 거센 물결은 투지가 더욱 불타오르고 스릴 넘치는 매일매일로 다가올 것입니다.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 미지의 미래는 더욱 암울한 세계로 다가올 것입니다.  

거친 세파를 능숙하게 해처 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지의 세계는 모든 사람에게 도전입니다. 어떤 사람도 새롭게 다가오는 미지의 세계에는 일말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다만 난관이나 실패의 고통이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용기가 동시에 있다는 점이 약간 다를 뿐이지요.

두려움과 용기가 균형을 갖추지 못헸을 때, 자신의 용기에 맞추어서 두려움을 줄이는 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의 대상인 미지의 세계를 거절하고 친숙한 현실 세계에 몰두하며 살아갑니다. 점점 변화하는 사회에서, 문명을 이끄는 미래를 외면하고 최소한의 난관과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도전만을 삶의 지표로 삼는다면 행복을 성취하는 지혜로운 현자라고 칭송받을 수 있지만, 그것은 문명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문명 안에서 양육되는 존재일 뿐입니다.

미래에 대한 도전이 없다면, 그리고 미래가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대상이 아니면 진정한 의미의 매일매일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발견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처럼 애완동물을 지극히 사랑해도,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유일한 존재라 해도, 동물은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인류 사회 안에서 현실적 존재로는, 개인성 존재로서의 성취는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이루는 것만으로는,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개인성 존재에게는 새로운 미래의 달성이라는, 도전할 수 없는 신성한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동물 가족과 다른 점입니다.

새로운 미래는 어쩌면 인공 지능이 이끌어 갈 것이라고, 자신의 나약함과 무기력을 변명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욕망 그 자체는, 어떤 식으로든 기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미지의 미래를 귀찮아하면서, 익숙한 현실 세계의 적당한 도전으로 도피했던 사람들에게는, 앞으로의 인공지능의 발달은 참담한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점점 더 존재로서의 초라하고 무의미한 지위를 적시하도록 강요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로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깨우쳐줄 것입니다, 한 개인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가장 보잘것없는 것으로 추락시킬 것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중요한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미래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언제까지나,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이 신성한 욕구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에 따라, 삶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가 결정됩니다.  

 

160:1.2
인간의 일생은 세 가지의 큰 본능적 욕구─충동, 욕망, 매혹─를 담고 있다. 강인한 성격, 당당한 개인성은 일생의 본능적인 충동을 삶의 사회적 예술로 전향시킴으로써, 현재의 욕망을 영속적인 달성이 가능한 더욱 높은 갈망들로 변환시킴으로써만 획득되며, 한편으로 실존에서의 평범한 애착을 자신의 인습적이고 이미 확립된 관념으로부터 미(未)-탐험된 관념과 미(未)-개척된 이상의 더욱 높은 영역으로 옮겨져야만 한다.

 

유란시아의 위 문장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이라는 인간 철학자가 2천 년 전에 했던 말입니다.  


유란시아 책은 섭리 시대적 계시이고, 천상의 존재들이 의도적으로 인류를 위해 마련해 준 글입니다. 섭리시대적이라는 의미는 짧은 시대를 위한 계시가 아니라, 적어도 인간 능력이 임계점에 이르러 천상의 존재들이 다시 길을 열어 주어야야만 할 때까지 사용되어야 할 계시라는 의미입니다.

 

내용은 모두 불멸의 존재들이 전해주는 글입니다. 그중에는 우리가 사는 우주보다 더 나이가 많은 신성한 존재들도 있습니다. 이런 계시 글에 인간 존재인 로단의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지만, 우선 이 내용이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로단은 실존에서의 평범한 애착이 단지 본능적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본능적 욕구는 동물적 욕구와 거의 비슷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혜와 도덕성을 제외하면 동물이 가지는 욕구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와 도덕성이 높은 이상을 향하도록 만들지도 이끌지도 않습니다. 삶의 예술로 그리고 그 예술이 현실의 정착이 아닌 영속적인 성취로 이어질 수 있는 높은 갈망으로 전향시키는 것은 의지 입니다. 의지가 있어야만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날이 갈수록 변화는 극심하고 험한 파도의 물결은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성공과 행복의 기쁨은 미처 미래를 준비하는 에너지로, 용기를 뒷받침하는 힘으로 전향될 틈도 없이, 순간적인 사건으로 추억으로 기억되며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매 순간의 삶을 아름답게, 값지게, 의미 있게 성취하며 나아가는 예술은 점점 더 정교하게 신속하게 변화에 발맞추어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야만 합니다.

 

160:1.3
문명이 더욱 복합적으로 되어갈수록, 삶의 예술은 더욱 어렵게 되어갈 것이다. 사회적인 관례에 있어서 변화가 더욱 빨라질수록 성격을 개발하는 과제는 더욱 복잡하게 되어갈 것이다. 만일 인류의 진보가 계속되어 간다면, 인류는 매 열 세대마다 삶의 예술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만일 사람이 너무 재능이 뛰어나게 되어서 그가 더욱더 빠르게 사회를 복합적으로 만든다면, 삶의 예술은 더욱 짧은 시간 안에, 어쩌면 매 세대마다, 다시-통달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약에 삶의 예술에서의 진화가 실존의 기법과 보조를 맞추는 데에 실패한다면, 인간성은 삶의 단순한 충동―현재적 욕망에서의 만족의 달성―으로 신속하게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성은 미성숙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회는 충분한 성숙에 이르는 성장에서 실패할 것이다.


2천 년 전의 로단은 인공지능의 격변을 곧 마주하게 될 우리에게 희망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변화에 준비하지 않으면 닥쳐올 운명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재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전에 인간 개인성에 대한 진지한 자각과 미래에 대한 갈망과 그 모든 것을 시작하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의지를 유란시아 책에서는 신성한 자유의지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변화와 도전


댓글목록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참된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은 시대를 불문하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글을 읽으면 로단이 지적한 이에 대한 문제점이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당장에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160:1.7]
성공적인 삶이란 평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신뢰할만한 기법들을 통달하는 예술보다 더한 것도 덜한 것도 아니다. 어떤 문제라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는 그 어려움을 찾아내고, 그 문제를 분리하며, 그것의 본성과 비중을 정직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커다란 실수는, 일생의 문제들이 우리의 깊은 두려움을 자극할 때,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의 어려움들을 인정하는 것이 오래동안-애착했던 자부심의 축소, 질투심의 용인, 또는 깊이-자리 잡은 편견을 내던져버리는 것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때에는, 보통 사람들은 무사-평온에 대한 옛 환상과 보호-안전에 대한 오래동안-애착했던 거짓 느낌에 집착하기를 더 좋아한다. 오로지 용감한 개인만이 진지하고도 논리적인 마음이 발견한 것을, 기꺼이 정직하게 인정하고 두려움 없이 마주한다.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로단의 글은 2천년 전의 얘기입니다만, 그가 매 10세대 마다 변화되어야 하고 아주 복잡한 사회가 되면 매 세대마다 다시 통달되어야만 한다는 의미는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인공지능이나 전자 기술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에서는 얼마나 뻐르게 갈망이나 성격을 빠르게 적응시켜야 할지,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도전의 목표를 정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유란시아 책이 영적인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으니 물질적 삶에서 영적 진리를 성취하는 변화를 말하는 것이니 물리적 환경 변화와는 직접 연관되지는 않을 수도 있셌지만, 세대의 개념도 조금 달려질 수도 있겠지요. 원래 한 세대는 부모와 자녀간의 태생적인 의식의 차이점을 기준으로 삼는데, 건강한 부부가 자녀를 낳는 기간이 평균 10년 정도라고 하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이제는 생물학적 의미보다는 의식의 차이가 기준이 된다고 봐야합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를 감안하면, 이에 따른 의식 통달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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