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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에서 영감을 받은 독자분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회개의 진정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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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창파 작성일23-06-20

본문

진리를 받아들이고 참된 삶을 살려는 소망은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선천적인 본성입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이것을 모든 인간에게 부어준 진리의 영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삶을 원한다는 생각이 모든 것의 동기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진리의 영은 우주 아버지의 영인 신성과 함께, 인간에게 잠재된 신성한 에너지를 삶에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회개의 진정한 의미
 

신성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진미선입니다. 성취의 찬란함이나 행복은 진미선의 결과에서 얻어지는 인간의 감성입니다. 그러한 감성과 체험이 삶의 핵심이 되고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중종 목표로 삼기도 하지만, 유란시아 책에서 말하는 우주적 사건이나 사실로 본다면, 인간 삶의 체험보다는 그러한 진미선의 사실적 실체가 더욱 중요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물질적 감각 기관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성한 실체인 진미선을 사실로 감지하고 인식할 수는 없습니다. 굳이 다가갈 수 있다면, 아마도 신앙을 바탕으로 깨어나는 초월적 의식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무튼 진리의 영은 아버지의 영과 더불어 참된 삶을 실제로 성취하는 기쁨의 원천입니다.

194:3.1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쏟아부어진 이 영의 주된 사명과 임무는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자비에 대한 진리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성격에서의 다른 모든 신성한 특질들보다 더욱 충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신성에 대한 진리들이다. 진리의 영은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아버지의 영 본성과 아들의 도덕적 성격을 계시하는 데에 연관되어 있다. 창조자 아들은 육신 안에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계시했다; 진리의 영은 가슴 안에서 사람들에게 창조자 아들을 계시한다. 사람이 그의 일생 안에서 “영의 열매”들을 맺을 때, 그는 단순하게 주(主)가 그 자신이 땅에서의 일생 안에서 현시하였던 바로 그 특질들을 내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진리의 영, 성령, 아버지의 영이 모두 깃들어 있다는 진리는 기독교만의 선포는 아닙니다. 진리의 영에 대한 계시는 예수님의 증여의 삶 이전에 이미 인류에게 전해졌음을 유란시아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종교의 씨앗이 멜기세덱 선교사들의 계시 전파로 이루어졌음을 감안한다면, 성경 구약에도 있듯이, 진리의 영이 모든 인류에게 증여되리라는 계시는, 굳이 조사하지 않더라고, 이미 모든 종교 안에 여러 형태로 녹아있다고 봐야 합니다.

진리의 영은 말 그대로 아버지의 신성이 모든 사람에게 부어지고 있다는 것과 그 신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기까지 자비로서 모든 것을 감싸면서 우리를 돌보고 있다는 진리입니다. 달리 말하면 신성을 거부했다고 무조건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신성이 결국에는 승리할 수 있도록 자비가 있음을 선포하는 진리입니다. 아버지의 신성이 깃들 수 있도록 준비하고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 진리의 영입니다. 생각 조절자는 진리의 영이 그 길을 열어주어야만 내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회개를 진리와 신성한 영을 받아들이는 관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은 진리와 연관되는 영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회개는 진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회개의 의미를 오해하기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인간의 나약한 감성을 이용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의 욕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회개의 본질은 잘못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뉘우침으로 시작되는 것이지만, 반드시 올바름에 대한 결심이나 행동이 있어야만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닙니다. 잘못에서 벗어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면, 모든 잘못이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잘못과 옳음은 아주 다른 것인데도 올바름에 대한 생각을 잘하지 않습니다.

회개에 대한 진리는 세례자 요한이 전한 진리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인간의 한계 안에서 신성한 실체가 있음을 받아들였기에, 그가 외치는 회개의 한계는 하느님의 왕국이 확실하게 있다는 것에 머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회개 자체를 진리의 시작이라고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136:0.2
요한이 다가오는 왕국을 설교했을 때, 그의 메시지의 취지는 이러했다: 회개하라! 그리고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 예수가 설교를 시작했을 때, 회개에 대한 간곡한 권유가 남아 있었지만, 그러한 메시지 뒤에는 새로운 왕국의 기쁨과 해방의 좋은 소식, 복음이 항상 뒤따랐다.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의 선언을 소중하게 여겼지만, 진정한 사랑을 몰랐음을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오랫동안 빛이 없는 깊은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했음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그것은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세상에 새롭게 발을 디딜 수 있음을 선언하는 행동입니다. 어둠 속에 있었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마땅히 찾아오겠지만, 그것이 진리의 본질이 아닙니다.

회개는 몰랐음을, 과거의 어둠을 인정하는 것으로도 족합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에 여전히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회상은 되겠지만, 회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과거를 붙잡고 감상이나 자기 연민을 느낀다면, 현재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진리의 영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을 거부하는 것은 신성한 아버지의 영을 사양하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애에 빠지는 유아기의 성장에서 한치도 성장하지 않고 머무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예수님이 회개하라는 요한의 외침을 존중하였다는 의미는 정확히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서는 복종과 믿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고 있지요. 진리가 아닌, 이러한 옛 종교적 관습이 언제 사라질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하는 분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예수님이 우주의 죄를 대신 갚았으니 회개하면 천국 간다는 내용입니다. 유란시아 책에서 이런 이야기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긴 진리가 전혀 아니고, 사도들이 왜곡한 인간의 교리임을 설명하는데,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있으니 종교 지도자들의 의식은 당시 예수님을 배척하였던 유대교 지도자들과 근본적으로는 같습니다.

이 왜곡된 진리는 더 이상 방치될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어 있고, 예수님의 진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진정한 종교 지도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계시가 전해진 것이겠지요. 복잡한 현대 문명 속에서도 예수님의 진리가 꽃을 피워야만 하는데, 원시 유대 종교의 메시아 개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빈나리님의 댓글

빈나리 작성일

과학이 점점 더 옛 미신을 몰아내면서 사람들의 의식도 높아지고 진리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오랜 전통을 지닌 종교들도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으로 점점 꺠어나고 있습니다. 진리의 실천에서도 예전과는 많이 다르고요. 유란시아서에서는 그런 이유루 종교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요.

아래의 글은 예수님이 로마에서 견유학파 지도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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