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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계속 실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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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트바 작성일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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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늘 삶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현실의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애씁니다. 삶의 현실이 완벽한 기쁨과 행복이라고 확신하는 경우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로, 불같은 사랑에 온 정신과 마음이 몰입되어 있을 때입니다. 아쉽지만 그러한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이 문제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시적이고 짧은 행복과 기쁨을 잊지 못하고 끝까지 다시 찾아내고 다시는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삶에 집착합니다. 지극한 기쁨은 온 의식을 송두리째 휘감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까마득한 과거의 희미한 기억이라도, 생생한 동기가 되어 삶을 이어가는 불꽃이 됩니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의식 자체가 행복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이나,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한, 이 마음의 현실은 고통이라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에서 피어나는 지극한 기쁨을 향한 불꽃들은, 의식을 잃을 정도의 쾌락을 동반하는 갈망의 성취-욕애, 어떤 현실에서도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 초월적 행복의 성취-유애, 그리고 시공간을 벗어나 고통에 대한 의식이 존재할 수 없는 완전체를 향하는 열반과 해탈-무유애의 불꽃들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비롯하여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는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주 만물의 생멸 현상을 마지막으로 깨달았을 때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불법을 연기를 벗어난 진리로서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종교적 진리를 설명하고 받아들이는 유일한 길이, 바로 신앙입니다.


101:2.2
이성은 과학의 수단이다; 신앙은 종교의 수단이다; 논리는 철학이 시도하는 기법이다. 계시는 마음의 중재에 의한 물질과 영의 실체와 관계들에 대한 이해에서 합일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기법을 제공함으로써 모론시아 관점의 부재(不在)를 보상한다. 그리고 참된 계시는 결코 과학을 부자연적인 것으로, 종교를 비이성적으로, 또는 철학을 비논리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101:2.8
이성은 과학을 증명하고, 신앙은 종교를 증명하며, 논리는 철학을 증명하지만, 계시는 오직 인간의 체험에 의해서만 정당화된다. 과학은 지식을 낳고; 종교는 행복을 가져오며; 철학은 합일을 이룩하고; 계시는 우주 실체에 대한 이 삼원적 접근이 체험적인 조화임을 확인시킨다.


그렇게 자신이 바라는 완전의 성취, 자아-실현의 완성이 모든 진리의 한결같은 목표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의 길을 따라 점점 성취하는 것이 어럽기 때문에, 사람들은 같은 자리를 맴돌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부어진 신성한 영이라는 진리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진리를 몰라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있어서 고통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방해물을 인식하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여러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의 미망이나 어리석음 때문은 아닙니다.

진리를 애타게 찾는다는 진실은 누구에게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 순수한 갈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거짓된 영적 유혹들이 현실에는 너무나 흘러넘치는 것이 문제이지요. 유혹은 항상 너무나도 달콤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위장된 진리에 속아서 자신을 망치는 일이 빈번한 것입니다.

속지 않으려면 깨어있어야 한다지만, 아무리 깨어있어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저마다 이유를 제시하고 있지만, 벗어나기 힘든 함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인간의 불확실성이지요. 그리고 악의 교묘함도 있고, 현실에 대한 조급함이나 버릴 수 없는 이기적 욕망도 있습니다. 또한 현실에 대한 무지와 이해의 부족도 속아 넘어가는 요인들입니다.

열악한 환경이나 유전적 질병 혹은 집단이 만드는 군중 심리와 같이 피할 수 없도록 강요된 힘이 진리의 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겠지요. 아무리 강한 신앙으로 무장되어 있어도,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온통 고립되어 있을 때 거짓된 유혹에 흠뻑 빠지는 것은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서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의 이러한 약점과 한계에서 올바른 길을 찾도록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는 것이 계시입니다.

계시는 인간의 불확실성은 개인성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위대한 진리의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마치 설레는 가슴에 위대한 열정을 지니고 미지의 모험을 원기 왕성하게 떠나는 어린아이의 도전처럼 인간의 일시적 삶을 이야기합니다. 모험이 순탄한 것은 아니지만, 매 걸음마다 우주에서 처음 발견되는 보물로 가득 차 있다고 밝힙니다.

수많은 천상의 존재들도,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루시퍼와 가장 감동적이고 지혜로운 사탄의 모습에서 유혹을 당했음을 이야기하면서, 악의 유혹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력한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진리는 너무나 완전해 보여서,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면, 정지된 세상, 변화가 없는 세상이니 허상임에도, 아름다움에 취하여 미처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갈등과 고통이 만드는 갈증은, 위선자나 사이비 종교가에게는 욕심과 갈망을 성취시키는 절호의 도구가 됩니다. 고통이 크고 다급할수록,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달콤한 진리에 절박하게 몸과 마음을 맡기는 잘못에 빠지기 쉬운지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홀로 견디면서 내면의 힘을 일으키고 함께 헤쳐나가는 일이 얼마나 각자에게 많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깨우쳐 줍니다.

열악한 물리적 환경이나 조건들이 초물질적 진리의 힘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성한 에너지의 생생한 실체들의 모습을 이야기해 줍니다. 달콤한 진리 대신에 참된 진리를 식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되찾아주고 있지요. 새롭게 계시되는 이들 진리를 우주 아버지라는 친숙한 개념으로 하느님을 이야기합니다.

101:2.10
신앙은 혼 안에 하느님을 계시한다. 진화하는 세계에서 모론시아 통찰력 대신으로 사용되는 계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이 그의 혼 안에 나타내는 동일한 하느님을 자연 안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계시는 물질세계와 영적세계 그리고 심지어는 창조체와 창조자,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있는 만(灣)에 성공적으로 다리를 놓는다.


겉보기에는 똑같은 현실에서의 실패처럼 보이지만, 이 신성한 힘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매일매일의 모험은 개인의 마음과 개인 안에 내주하고 있는 신성한 영의 무의식적인 협력으로, 참된 행복과 기쁨의 절정인 자아-실현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지요. 현실의 새롭고도 참된 모습은 개인적 체험으로 하나씩 증명되고, 계시로 하나씩 알려지고, 개인성의 현존으로 우주의 빛이 되어 밝혀지는 것이지요.

참된 신앙은, 현실이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긍정적이고 확신을 가지도록 만들고, 그에 따라 합리적인 분석과 판단, 비판적 사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접근, 체험에서의 초월성을 스스로 확인하며 성장하도록 만듭니다.  

 

최근 숨 가쁘게 소개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막강한 정보력과 지식들에서는 거짓된 진리나 악한 유혹을 걸러주는 기능은 거의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달콤한 유혹을 강화시키고 교묘하게 위장하는 데에 악용될 허황된 공간이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지식의 즐거움이 주는 늪에 스스로 속박되는 것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 뿐입니다.

인간이 쌓아 올린 지식의 금자탑은 물리적 세계가 그 한계입니다. 끝없이 뻗어나갈 수 있는 자유로움의 한계야말로 물리적 세계를 초월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문명이 끝없이 발전할 수 있는 그 원동력은 의식의 자유로움 때문입니다. 악은 인간 의식의 근원적인 자유로움을, 모험을 포기하도록 유혹하고, 달콤한 의식의 틀에 자의적으로 혹은 타의적으로 가두려고 합니다.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들이 모든 실패의 시작입니다.

 

인간은 왜 계속 실패하는가?
 

댓글목록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유란시아 책에서 말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시간이 지니는 신비이자 축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악이 사람을 유혹할 때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인간이 지니는 불확실성이라고 하지요. 불확실성이 동기의 촉발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불안을 앞세워서 동기 자체를 포기하도록 겁박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불확실성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고통은 실패보다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진정한 행복이나 만족을 인정하지 않는 욕심에서 오는 것이 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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