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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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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트바 작성일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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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일정 속도의 흐름이 아니라 점점 빨라지는 가속도로 흐릅니다. 기술의 발달이나 의식의 변화를 보면 시간의 흐름은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지요. 사람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물질계에서는 미래로 나아가는 변화의 물결은 점점 빨라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계절상품이 아닌 최신 제품도 곧바로 재고품으로 밀려나지요. 물질계의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인 것이지요.

그러나 의식의 변화는 가속은 고사하고 오히려 각자가 정한 시간대에서 정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흔히 고집이나 아집이라고 불리는 잘못된 의식 체계에서는 거의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물질계의 변화와 상관없이 의식을 고정시키고 그것을 자신감이나 성공이라고 스스로 정의하지요. 과거에 집착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아주 드물게는 쓸모없는 과거의 영향력으로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의식이란 것이 눈에 보이거나 변화의 정도가 매 순간 확인되는 것이 아니고, 맘먹은 대로 능력껏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무언가 변화시킬 뚜렷한 방법이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를 붙잡아도 된다는 변명이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 되었건 어린아이의 의식, 정신세계가 반드시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듯이, 적어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의식은 완성되었다고 선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해탈이나 열반을 의식의 완성인 듯 생각하지 말아야겠지요. 초인간이라도 끊임없이 성장하는 의식 세계에서의 시간의 변화는 막을 수도 없고 간섭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물질계를 다스리는 신이라 하더라도, 간섭할 수 있는 정신세계는 물질과 연관된 극히 한정된 영역일 수밖에 없겠지요.

한마디로 사람의 의식은 어찌 되었건 성장해야만 하는 것이고 변화가 없는 성장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움직이지도 않고 이미 확정되어 변화될 수 없는 과거에 기대어 의식을 변화하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한 의식의 변화는 진짜가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가짜 변화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성공을 거두고 현재의 행복을 지키려고 변화가 달갑지 않을 때, 그러한 가짜 변화를 의식의 성장이라고 믿으려고 하지요. 성장과 결실과 분해와 재탄생의 물질계의 자연법칙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물질화된 의식일지도 모릅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서 의식의 변화와 성장을 기피하는 모습은, 오랜 시간 동안 어쩔 수없이 습관화된 삶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나이 젊은 현대인들은 날카로운 지성과 냉철한 논리를 가지고 변화하는 세계에 능동적으로 돌진하면서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변화될 수 없는 과거의 현상에 마음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미신을 믿거나 예언에 귀를 기울이거나 이상한 징조에 특별한 의미를 상상해 보는 것은. 비록 장난 삼아 그런다고 하더라도 의식을 깨우고 성장하는 데에는 틀림없이 방해가 됩니다.

다만 팽팽한 의식의 긴장을 해소시켜 새롭게 탄력을 회복시키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신년에 토정비결을 보거나 일일 운세를 의미 있게 찾아보거나 무슨 특별한 사건에 점을 보는 잠간의 일탈이 습관화된다면, 단순한 감정적 문제로 가볍게 지나가지 않고 이성적 지적 영역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첨단 문명은 가속화되는 변화를 수용하고 또 이끌어 나가는 우수한 지성과 예리한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여 의식이 깨어나, 다시 새롭게 이성과 지성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면서, 시공간 성장의 순환 고리를 이루는 것이지요.

물질계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초물질계인 의식의 변화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은 실패한다고 말하지요. 그 이유는 삶의 체험에서 자신도 모르게 권위에 복종하고 행복에 집착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만족하는 인간의 본성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알 수 없는 힘이나 막연한 대상에 복종하거나 의존하는 것이 미신입니다.

101:7.4
삶에 대한 종교적 철학과 비종교적 철학 사이의 큰 차이는 인지된 가치들의 자연본성과 차원 안에 그리고 충성심의 대상 안에 존재한다. 종교적 철학의 진화에는 네 개의 위상이 있다; 그러한 체험은 단지 순응하는, 전통과 권위에 대한 복종에 통치되는 것이 될 수 있다. 또는 그것이 일상적인 삶을 안정시키기에 단지 충분한, 하찮은 달성으로 만족될 수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어떤 우연한 것에 기대하는 차원에 일찍부터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한 필사자들은 각자 홀로에게 좋은 것을 충분히 누리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세 번째 집단은 논리적 지성작용의 차원으로 진보하지만 그곳에서 문화적 노예상태에서의 결과로 침체에 빠진다. 거대한 지성들이 문화적 속박의 무자비한 손아귀 안에 그토록 견고하게 붙들려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로 애석한 일이다. 자신들의 문화적 속박을, 과학이라고 거짓되게 부르는, 물질주의자들의 사슬과 거래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도 똑같이 애처로운 일이다. 철학의 네 번째 차원은 모든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장애로부터 자유를 달성하고, 정직하게, 충성되게, 두려움 없이, 그리고 서슴치않고 진실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간다.


의식 체계를 철학이라고 생각할 때, 전통과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나, 하찮은 성취에 만족하고 머물려고 하는 것이나, 문화적 속박과 과학적 성취에 노예가 되어 논리적 해답을 즐기는 것이나, 모두 의식의 변화와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지요.

마지막 차원인 진정한 자유만이 의식의 변화와 끝없는 성장을 가져다줍니다. 그것은 과거의 전통이나 습관에서 벗어나고, 정직하게 충성되게 두려움 없이 서슴없이 진실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삶의 의미이자 모습이지요.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첨단 기술시대에도 미신을 믿는 사람은 여전합니다. 오히려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 미신을 더욱 정교하게 활용하기도 하지요. 아무래도 영성은 과학 기술을 이끄는 지성이나 이성과 거의 무관한 특별한 영역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이성으로 판단하는 참과 거짓도 진리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물리적 세계에 한정된 것이라서 초물질적 영역에 존재하는 진리를 맏아들이기 위해서는 논리적 진리를 넘어서는 실체를 발견할 수 있는 감각이 열려야만 가능하겠지요. 그런데 물질적 풍요과 기쁨이 점점 더 새롭게 발전되고 있으니 미처 물질을 넘어서는 실체를 발견할 틈이 점점 더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영적 깨우침에 접근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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