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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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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손 작성일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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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인터넷이 없이는 살기 힘듭니다. 생명체의 생명 유지는 결코 바뀔 수는 없지만, 삶의 방식은 이미 디지털로 바뀌고 있습니다. 최빈국이나 최강국이나 다지털이 일상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가난과 빈곤은 자원 문제이고, 강자와 약자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정보나 지식은 인터넷을 통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다가가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이 분야의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점점 의미도 없고 그 차이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재산, 신분, 혹은 환경 때문에 배울 기회가 없었던 불운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 모든 장애를 허물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불운의 원인은 자기 자신의 게으름이나 거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유전적 요인, 가정이나 사회, 국가가 더 이상 블운의 이유가 될 수 없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자유와 기회가 어느 때보다도 무조건적으로 개방된 지금 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별은 사라지고 상대적인 불행도 사라지는 것이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의식주 자체로 인한 불행과 불운은 자원이 빈곤하거나 폐쇄된 사회가 아니라면, 그리고 천재지변이 아니라면, 누구라도해결할 수 길이 훤하게 열려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요즘의 불행과 고통은 생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인 박탈감, 불안, 좌절과 절망일 것입니다.  


불행에서 벗어나고 영영 닥치지 않는 세상은 단지 불행이 없는 세상일 뿐, 행복한 세상은 아닙니다. 세상을 휩쓰는 불행은 불행을 몰아내려고 투쟁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행입니다. 사람들은 불행에 빠지지 않으려고 늘 긴장하고, 한편으로는 어쩌다 다가오는 불행의 요소가 자신의 것을 빼앗지 않도록 지키고 싸우기도 합니다.  

미워하지 않는다고 사랑이 되지 않는 것처럼, 불행을 몰아내고 불행과 멀리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상식이라서 모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보다는 불행의 요소인 미움, 절망, 좌절, 분노, 슬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방법과 비법을 찾고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에는 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지식과 지혜가 이러한 요소의 원인과 본질을 밝히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새로운 시대의 모든 불행을 완벽하게 정복하는 수단과 방법과 기법도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그러한 정보와 지식과 지혜로는 불행을 언제까지나 정복할 수 없습니다. 이는 불행을 정복하려는 삶 자체가 이미 불행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또한 마찬가지로, 불행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영영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불행과 싸우는 그러한 삶에서는, 사랑과 친절과 희망과 기쁨과 용서와 정의마저도 불행에서 벗어나는 한낱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불행에서 벗어난 사람들 조차도 행복한 것을 발견하여 그 안에 머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착각합니다. 그것은 불행을 거부하고 불행과 단절하려고 의도하고 노력하고 지키면서 확보한 행복입니다.  


이처럼 불행에서 벗어난 삶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예수님이 말한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부유한 젊은이 마타돌무스에게 부자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의 힘으로 불행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의식 자체가, 진정으로 살아있고 자유로운 행복으로 다가가는 길과 정반대의 길로 모든 생각을 몰아가기 때문에 경고한 것입니다. 부의 힘을 믿는 의식이  모든 참된 진리를 행복을 지키는 한낱 도구로 여기도록 이끕니다. 그것을 경고한 것이지요. 

 

163:2.4
예수는 성직을 임명받는 필수조건들에 관하여 마타돌무스에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 젊은이가 그 문제에 관하여 좀 더 충분하게 생각한 이후에 결정을 내리도록 그때까지 미루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가 산책하고 있을 때, 이 젊은이가 다가와 인사하며 말했다; “주(主)여, 저는 당신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확신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모든 계명들을 지켜왔다고 알고 있는데,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여 예수가 말했다; “만일 네가 모든 계명들─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이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를 지키고 있다면 너는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신앙의 보상이지 단순하게 일의 보상이 아니다. 너는 이 왕국의 복음을 믿느냐?” 마타돌무스가 대답했다. “예, 주(主)여, 당신과 당신의 사도들이 나에게 가르친 모든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너는 정말로 나의 제자이며 왕국의 자녀이다.”

계명을 잘 지키고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지만, 구원은 그 이유와 근원을 믿을 수 있는 신앙으로 인한 것이지, 삶의 실천 내용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사도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삶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의식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는 아닙니다. 

 

163:2.5
그러자 그 젊은이는 말했다; “그렇지만 주(主)여,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의 새로운 메신저들의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예수는 이 말을 듣고, 그를 큰 사랑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만일 네가 한 가지 값을 기꺼이 치르겠다면, 만일 네가 너에게 부족한 한 가지 일을 채운다면, 나는 너를 나의 메신저들 중의 하나가 되도록 할 것이다.” 마타돌무스가 대답했다. “주(主)여, 당신을 따르도록 허락받을 수만 있다면 제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예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젊은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만일 네가 나의 메신저가 되려고 한다면, 가서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고, 거기에서 나오는 것을 가난한 자나 또는 네 형제들에게 증여하고 난 후에, 돌아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면 너는 하늘의 왕국 안에 있는 보화를 갖게 될 것이다.”

지금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물질주의적 이상론은 악과 불행을 몰아내고 모든 악을 파괴하는 것을 참 행복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세계는 지금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인간성이 파괴되고 정신세계가 무너지는 역사적 퇴행을 겪고 있는가 자문할 시점입니다. 온갖 종교적 진리와 철학적 깨우침들이, 단지 불행에서 벗어나서 참된 세상을 만드는 한낱 도구로 전락되면 안 됩니다.  


어쩌면 유란시아 책의 새롭고도 신성한 계시 마저도, 물질세계와 이어지는 영원한 진리로 나아가는 관문으로 다루지 못하고, 단지 물질 세상의 참된 행복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에서의 지고한 만족을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릅니다. 물질 세상의 완전은 신성한 우주 의식의 완전과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완전히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으로는 신성한 완전과 그 어떤 연관성도 만들 수 없습니다. 유일한 가능성이 바로 신앙일 것입니다. 

 


댓글목록

아마제님의 댓글

아마제 작성일

과학의 발달과 물질의 풍요로움이 인류를 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물질 만능시대라는 함정으로 인류를 몰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신성한 진리는 고사하고 선과 악과 같이 순전히 인간의 도덕적 기준만으로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는 법과 질서마저도 각자의 탐욕으로 파괴되고 있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윤리마저도 가차 없이 내던진 동물적 만행이 팬데믹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무기력하게 그런 탐욕과 만행을 받아들이는 현상도 마찬가지로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불행이 닥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세상의 모든 불행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에 속박되어 노예처럼 살아가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빌라도 총독처럼 '진리가 무엇이란 말인가' 말하면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스스로 진리의 영을 배척합니다.
진리의 영이 떠나면 희망을 품을 수 없고 꿈도 사라집니다. 꿈이 없으면 불행을 막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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