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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에서 영감을 받은 독자분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짧은 기쁨과 긴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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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너킥 작성일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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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은 순간적으로 사라지지만 고통은 잊히지 않는다.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식의 바닥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가치가 기쁨이 동반되는 것이라면, 기억을 떠올려 재현하지 않으면 거의 실감할 수 없다.

그에 반하여 고통이나 슬픔은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에 상관없이 잊으려고 애써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에 부딪치면 온 몸과 마음을 경직시킬 정도로 즉시 되살아난다는 사실에서 얼마나 실감이 잘 되는 것인지 증명된다.

인생이란 기쁨과 슬픔이 반반 섞여 있어야만 공평한 것인데, 도무지 이런 일방적이고 불균형된 기억의 기능은 많은 사람들에게 운명은 악의적이라는 오해를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팔자가 그러하다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불균형 덕분에 병원이 번창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을 구해 준다는 구실로 자기 기쁨을 맛보고 ​호황을 누리는 사람도 있는 것인지로 모른다. 자기 재능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는 것에 불평하거나 시비 걸 필요는 없다.

사실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럼에도 냉엄한 자연법칙도 인간에게는 존엄이라는 굴레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다. 지능이 조금만 있어도 쾌락과 고통의 기억이 시간적으로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한 것이라면, 이 문제는 생명체를 디자인한 조물주만이 그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실수인지 ​답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심정에서 하늘에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동식물에게 쾌락과 고통이 있는지는 알 수없다. 그런 존재로 살아보지 않고는 모든 생각은 인간의 편견일 따름이다. 생물은 생존 본능에 필요하면 달려들고 해가 되면 도망친다. 그것을 사람의 쾌락과 고통에 견주어 해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란시아 책에는 생명체를 디자인한 조물주가 하느님이 아니라, 생명 운반자라고 계시되어 있다.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 하느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들에게는 천만다행이다. 하늘을 원망하던 사람도 다음부터는 생명운반자를 원망하고 하늘을 믿어야 한다.

생명체를 창조하면서 생명운반자가 하는 과업은 생명을 출현시키는 일이다. 그 생명체 몸이 오랜 진화를 거치면서 수많은 변종이 탄생될 수 있도록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기능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우주 마음 순환 회로에 단계적으로 연결되도록 정교하게 꾸며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영적 기세에 반응할 수 있는 구조체로 만들어야 한다. ​이에 대한 얘기는 36편에 자세히 나온다.

어찌 되었건 인간 생명체의 구조를 보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고 모든 사람이 원하는 기쁨의 기억은 매우 짧고, 반복되지 말아야 할 지긋지긋한 순간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끈질기게 이어지도록 만든 것은 틀림없다.

이것은 생명체를 디자인하다 보니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 생명운반자에 관해서 읽어보면, 고의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이 틀림없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고심했는지 아주 자랑하듯이 설명하고 있다. 몇몇 문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57:8.7]  

900,000,000년 전에, 행성을 조사하도록 예루셈에서 파견되고, 생명-실험 기지를 위해 적당한 상태가 되었는지를 보고하도록 한, 사타니아의 첫 번째 정찰대가 유란시아에 도착하였다.
[58:1.1]
600,000,000년 전에, 생명운반자들 위원회가 예루셈으로부터 파견되어 유란시아에 도착하였으며, 사타니아 체계의 606번의 세상에 생명체를 태동시키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물리적인 조건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58:4.2]
550,000,000년 전에, 생명운반자 무리단은 유란시아로 돌아왔다. 우리는 영적인 힘들과 초(超) 물리적 기세들과 협력하여, 이 세계에 대한 기원적인 생명 원형틀들을 조직하고 창시하였으며 구체의 쾌적한 물속에 그것들을 심었다.


다시 말하면, 9억 년 전에 생명체 행성에 대한 계획서를 만든 후, 3억 년이 지난 후 유란시아 상태를 살펴본 후 네바돈으로 돌아갔고, 그때부터 유란시아 생명 원형질에 대한 디자인이 시작되어, ​5천 만년이 지난 후 유란시아에 심었다.

계획은 뭔지 모르지만, 유란시아에 합당한 생명체 디자인에 착수하고 생명 원형질을 완성하여 이식하기까지의 기간이 5천 만년인 것이다. 진즉에 완료한 후 쉬었다가 이식할 수도 있지만, 중간에 들른 기록은 없다.

하늘 존재의 지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인데, 그런 능력으로 5천 만년 동안 연구하고 디자인했다면 그 제품의 성능이 어떠할지 감히 생각조차 못한다. 그런 생명 원형질에서 최종적으로 탄생한 생명체가 인간이다.

5천 만년이라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초인간의 지능으로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는 기능적으로 문제가 많은 것은 틀림없다. 그런 문제점은 인간으로 살아보면 생명운반자도 이해가 갈 것이다.

기쁨의 순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고통은 기억도 끈질기지만 아예 몸에 새겨지기도 한다. 기쁨의 세포는 없지만, 고통의 세포는 누구나 한두 개 지니고 사는 것 같다.

고통으로 병이 생긴 것인지 병이 들어 고통이 생긴 것인지 모르지만, 고통은 육체적 기능을 방해하고 게다가 한시바삐 육체를 무용지물로 만들려고 한다. 온전치 못하면 빨리 없어져야 마땅한 자연도태의 냉엄한 법칙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의 세포로 참된 삶의 동기가 부여되고, 오히려 영원한 생존이 보장되는 관문이 될 수 있다면 생명 운반자의 다자인은 인간 존재를 탄생시키는 것에서, 그 정점을 이룰 것이다.

[62:7.3]  

“유란시아에 있는 생명운반자들에게─인사의 말을 전한다! 의지 존엄의 마음이 유란시아에 실존하게 되었다는 신호가 네바돈의 본부에 등록된 것을 축하하면서 구원자별과 에덴시아 그리고 예루셈에 큰 기쁨이 넘치고 있음을 확실하게 전한다. 그 쌍둥이들이 북쪽으로 도피하고 그들의 열등한 조상들로부터 그들의 자손을 격리시키려는, 목적의식이 있는 결정이 감지되었다. 이것은 유란시아에 있어서 첫 번째의 마음의 결정─인간 유형의 마음─이었으며, 이를 인정하는 이 첫 메시지가 전달되는 통신 순환회로를 자동적으로 설치한다.”  


이 문장은 최초의 인간인 안돈과 폰타가 가족을 버리고 도주하면서 그들의 마음이 경배의 영과 지혜의 영의 순환회로에 연결되는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우주의 섬광이 있은 후 전달된 최초의 우주 메시지이다.  

 

뒤이어 여러 축하 인사가 전달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생명 운반자는 인간의 탄생은 유란시아의 모든 역사들 중에서 가장 웅대하고 황홀한 기록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고통의 긴 체험이 인간의 몸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것은 생명 운반자가 칭송과 영광을 받을만한 고심작의 결정체일 것이다. 그것이 정복되는 곳에 진화의 완성이 있을 것이고 빛과 생명이 새로운 섭리 시대가 열릴 것이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고통이나 시련이 있다는 것이 크나큰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라는 글이 책에 있습니다. 일생의 행복과는 모순되는 말이라서 그 깊은 뜻을 미처 실감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그러한 쓰라린 현실 때문에 모론시아 세상에서 부활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 같습니다. 긴 안목을 볼 시야가 불가능한 현실 세계를 벗어나면 고통의 진정한 필요와 의미를 비로소 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생명체의 신비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밝혀낼 수 없지요.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유기체 합성에 성공했다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자연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인간이 창조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그런 과학적 업적을 자랑할 수 있지만, 아마도 싹이 돋아날 수 있는 씨앗을 만드는 영원히 불가능하겠지요.

더구나 씨앗은 오로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기쁨과 고통과 인내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안다면 도전을 하기도 전에 그 불가능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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