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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선은 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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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트바 작성일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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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진리의 3 핵심이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입니다. 이에 비교하면 노자의 대표적인 진리가 무위자연(無爲自然)입니다. 얼핏 보면 무상이나 무위가 비슷한 의미로 서도 통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 하기도 하지만, 사실 노자의 진리는 상선약수(上善若水)로 대표되는 실체라서 없다는 의미의 무(無)와는 사뭇 다릅니다.

노자는 누구나 그 실체성을 인정하고 깨닫고 있는 선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임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높은 선이 마치 물과 같다고 말한 것이라서 유란시아 책에서도 말하듯이, 진정으로 하늘의 흐름을 깨달은 성현입니다. 세상을 벗어나려는 사람에게는 무상, 무아, 개고가 큰 진리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세상을 품에 안으려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상선약수가 큰 진리인 셈입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혹은 도는 흐르는 물과 같다고 말하면서 오감으로 느끼는 부드러운 속성을 상선약수 가르침의 핵심으로 기억하지만 실제 물에 담겨있는 덕목을 7 가지로 부언하고 있음을 기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너나없이 보통은 느낌으로 살다 보니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피하게 되면서 습관이 된 것이지요.

일곱 덕목을 속칭 수유칠덕이라고 말하는 데, 그중에 믿음, 다스림, 힘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는 데,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이 꿋꿋하게 잘난 것을 드러내는 오만과 맞서서 다투지 말고 돌아가라는 단순한 말이 아님을 잘 설명합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자세를 굽히거나, 장애를 피해 부드럽게 돌아가는 것은 겉으로 나타난 결과적 모습일 뿐 물이 지닌 진정한 본질은 참되고 생생한 힘이라는 것을 들려주고 있지요.

한자말에서 의미만 추려서 정리하면 꿋꿋하게 자기만을 고집하는 것이 상선과 반대되는 비(非) 상선이고 그 비(非) 상선의 결말이 소멸이라는 악이라고 정의하고 었어요. 선의 반대는 악이 아니라 비-상선이고 악은 단지 비-상선이 결과로 나타난 체험적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132:2.10
악의 가능성은 도덕적 선택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재성은 아니다. 그림자는 단지 상대적으로 실제이다. 실재적인 악은 하나의 개인적 체험으로서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잠재적인 악은, 영적 발전의 낮은 차원들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 진보의 영역 안에서 결단을 이루는 하나의 자극제로 똑같이 잘 작용한다. 악은 오직 도덕적 마음이 악을 선택했을 때에만, 하나의 개인적 체험의 실체가 된다


굵고 웅장하고 꼿꼿하게 서 있는 나무는 부러지고 사라지지만 가늘고 쉽게 흔들리는 나무는 끝내 살아남는다는 이치를 물에 빗대어 상선과 도를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당당하게 여기고 자랑하는 것은 비(非) 상선처럼 자칫 어느 순간에 망할 수 있고, 자신을 낮추고 복종하는 듯한 겸손한 자세가 결국에는 승리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선약수의 가르침의 본질은 그 핵심이 생생한 생명력이고 그 살아있는 에너지의 가장 실감 나는 것이 바로 물의 모습인 것입니다. 아무리 크고 꼿꼿한 나무라고 해도 그 안에 생명의 흐름인 선이 흐르고 있다면 결코 소멸되지 않고 천년만년 살아가는 것이 하늘의 도이며, 새싹이라고 해도 살아있는 에너지인 생명의 선이 흐르지 않으면 그 결과는 소멸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살아있는 생명 에너지를 고전 문헌에서는 한자말로 생기라고 정의하고 기에 대한 연구와 활용과 발전도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세대를 어어가면서 전해지고 있으며, 모든 도와 기는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어 상선약수와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그 진리의 근원과 모습이 드러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도덕경에서 그 시작을 정의하면서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라고 말하고 있는데, 풀이하면 하늘과 땅이 시작된 것을 지칭하는 말이 무(無)이고 어머니처럼 만물의 탄생하고 있음을 지칭하는 말이 유(有)라고 하지요. 무(無)가 근원이지만, 그 근원은 유(有)의 만물이 표현될 수 있는 힘이 이미 증명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그 개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유(有)가 사라진다고 무(無)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무(無)는 단순한 절대적 가능성이나 절대적 잠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적 실재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이기 때문에 무(無)라고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성이 표현되는 상대적 차원이 시간과 공간의 만물의 유(有)입니다. 진정한 실체인 유가 시간과 공간에 나타나면서, 미처 완성되지 못한 부족함과 모자람의 모습이 열망의 본질이 되고, 미완성의 상태에 머물면서 그것에 집착하는 체험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진미선의 살아있는 우주의 도리와 이치와 에너지를 거부하는 자세에서 필연적으로 체험으로 나타나고 사실처럼 느끼는 것이 악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완전히 새로운 실체로 다시 참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메마른 혼이라고 해도 선은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들어 주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28:6.21  

위대함은 신성과 동의어이다. 하느님은 최극으로 위대하고 선하시다. 위대함과 선함은 간단하게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느님 안에서 언제까지나 하나를 이룬다. 이 진리는 위대함의 비밀과 선(善)의 혼의 반영적 상호의존에 의해 글자 그대로 그리고 현저하게 설명되는데, 어느 한 편도 다른 편없이 기능할 수 없다. 신성의 다른 본질특성들을 반영함에 있어서, 초우주 2품천사들은 홀로 활동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지만, 위대함과 선함의 반영적 측정치들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세계에서든지, 어떤 우주에서든지, 위대함에 대한 그리고 선함에 대한 이 반영자들은 함께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들이 초점화구현하는 각 존재에 대한 2원적(二元的) 그리고 상호 의존적 보고서를 항상 제시한다. 위대함은 선함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는 측정될 수 없는 반면, 선함은 그것의 선천적이고 신성한 위대함을 나타내지 않고는 묘사될 수 없다.


물이 살아있는 실체의 대표적인 상징이듯이, 선은 물의 본질로 표현하고 상징되듯 그 살아있는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메말라가는 나무에 물이 생명이 소생시키는 에너지가 되듯이 선이 새로운 실체로 태어나는 에너지가 됩니다. 험난한 시공간의 세계에서 꼿꼿하게 그리고 위대하게 오로지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힘을 자랑하고 위대함을 과시하는 거목이 메말라갈 때, 참된 생명을 회복하여 세월을 뛰어넘는 진정한 실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에너지는 상선약수의 선(善)입니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선(goodness)은 성경이나 유란시아 책에서나 뚜렷하게 그 의미를 정의하기가 어려운 말 같습니다. 영어에서 경탄이나 탄식을 표현할 때 오 마이 갓 혹은 오 마이 굿니스를 말하고 합니다만, 신성한 의미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세속화된 의미로 말합니다.

이 책의 선은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만 성립된다고 말하고 있어서 엄밀한 의미로는 도덕경의 도나 자연의 이치와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사람을 살리는 에너지라는 말에서 더욱 쉽게 그 의미가 다가옵니다.

사랑으로 연결되는 개인 간의 관계가, 친절이나 인자함이나 정겨움으로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만, 하느님의 선함은 참으로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생명의 에너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생존의 소망이 하느님의 선함에 있음이 새삼 이해가 됩니다.

1:7.3
진리에 관한 개념은 개인성과는 별도로 다루어질 수 있고, 미(美)에 관한 개념은 개인성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신성한 선(善)의 개념은 오직 개인성에 대한 관계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오직 개인만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 미와 진리조차도 그것이 사랑 넘치는 아버지, 개인적인 하느님의 속성들이 아니라면 생존 소망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다.

선을 이루려는 개인으로서의 하느님의 사랑과 그 하느님과 관계를 가지려는 인간 개인의 노력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선이 비로소 실제로 드러나고, 선을 통하여 그 안에서 하느님의 속성들이 연결되어 진리와 아름다움도 비로소 생존할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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