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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에서 영감을 받은 독자분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의 어린이에 관한 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로터스 작성일22-05-05

본문

오늘은 어린이 날입니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이자 인류의 희망이라고 말하지요  

 

유란시아 책에 등장하는 어린이에 관한 문장 중에서 103편 종교적 체험의 실체에 등장하는 몇 문단의 내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인류 사회의 시작이 도덕적 본성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어린이의 도덕적 본성이 자극이 아니라 공의와 공정심과 친절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린이가 하느님의 자녀이자 인류의 미래가 되는 근원인 것이지요.

 

103:2.3
계시된 종교의 씨가 싹트는, 사람 마음 안에 있는 진화의 토양은 매우 일찍부터 사회의식을 기원시킨 도덕적 본성이다. 어린이의 도덕적 본성에 있어서 최초의 자극은 성욕이나 죄의식 또는 개인적인 자부심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의와 공정성 그리고 친절함을 향한 충동─어떤 사람의 이웃들에 대해 도움이 되는 사명활동─과 관련된다. 그리고 그러한 초기의 도덕적 각성이 성숙될 때, 모순과 격변 그리고 위기들로부터 비교적 속박을 받지 않는 종교적 삶의 단계적 발달이 발생한다.

 

 

두 번째로 어린이가 얼마나 순수하고 깨끗하고 커다란 가능성 있는지 그리고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어린이들의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글이 있습니다.  

 

103:2.5
어린이의 심리 상태는 자연본성적으로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이다. 수많은 필사자들이 부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긍정적이라고 말해질 때, 그의 도덕적 충동을 언급하는 것이며 그렇게 마음의 힘이 창발하는 것은 그에게 생각 조절자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세 번째 인용문은 어린이가 만들어가는 세계는 근원적으로 정의로운 세계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03:2.6
잘못된 가르침이 없으면, 정상적인 어린이의 마음은, 종교적인 의식의 창발에 따라, 도덕적인 정의와 사회적인 사명활동을 향하여, 부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죄와 범죄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긍정적으로 움직인다. 종교 체험의 발달 과정에 있어서 갈등은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필연적인 결정과 수고 그리고 인간 의지의 기능은 반드시 따라온다.

 

 

네 번째 인용문은 고착화된 옛 세대와 새롭게 성장하는 발전 본성의 성장 세대 사이에서, 어린이의 원초적 이타적 본성이 투쟁을 겪는 갈등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103:2.9
그러나 어린이가 도덕적인 역량을 넉넉하게 습득하도록 발달되어 이타적인 봉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되기 전에, 그에게는 이미 하나의 강력하고도 잘 통합된 이기주의적 본성이 개발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적 상황이 “높은” 본성과 “낮은” 본성 사이, “죄를 지닌 옛 사람”과 은혜의 “새로운 본성” 사이에 투쟁이 있다는 이론을 일으키게 한다. 정상적인 어린이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욱 복되다”는 것을 삶 안에서 매우 일찍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인용문은 순수한 어린아이의 기본적인 이타적 본성과 초기에 겪는 체험들이 자아-통합에서 실패하여 너무 치우지고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생길 수 있는 불행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103:2.10
사람은 자아-봉사하려는 충동을, 자기─자신으로 정체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는 자신의 의리를, 자기 자신의 밖으로부터의 어떤 영향력─하느님─으로 이타적이 되도록,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기울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은 정말로 사실인데, 왜냐하면 그러한 모든 이타적 욕구들은 내주 하는 생각 조절자의 인도에서 실재적으로 기원되고, 이 조절자는 하느님의 단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 감시자의 충동은 인간의 의식 안에서 이타적이 되려는, 동료-창조체를 염두에 두는, 그러한 충동으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것은 어린이의 마음이 겪는 초기의 근본적인 체험이다. 자라나는 어린이가 개인성 통일을 이루지 못할 때, 이타적인 충동은 자아의 복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만큼 과도하게 발전될 수도 있다. 잘못 인도된 양심은 많은 갈등과 염려와 슬픔 그리고 끝없는 인간적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

 

 

어린아이는 인류의 미래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참되고 아름답게 결실을 맺도록 하는 책임은 부모들이 떠맡아야 합니다.

댓글목록

구름바다님의 댓글

구름바다 작성일

예수님이 그렇게 자주 거론하셨던 어린아이에 관한 글 중에서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의 마태복음을 비롯하여 여러 복음에 빠지지 않고 들어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지요. 유란시아 책에는 예수님이 하신 자세한 말씀과 그 의미가 나와 있습니다.

167:6.1
그날 저녁, 결혼과 어린아이들의 축복-받음과 관련된 예수의 메시지는 온 여리고에 퍼졌고, 그로 인하여 다음 날 아침, 예수와 사도들이 떠날 준비를 하기 훨씬 전에, 심지어 아침 식사 시간이 아직 이르기도 전에, 수십 명의 어머니들이 자기 아이들을 팔에 안거나 혹은 손을 잡아 이끌면서 예수가 숙박하는 곳으로 왔고, 그리고는 그가 그 작은 자들에게 축복해 주기를 갈망했다. 사도들은 어머니들이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함께 이렇게 군집한 것을 보려고 밖에 나왔다가, 그들은 이를 보고 그들을 돌려보내려고 애썼지만, 이 여인들은 주(主)가 그들의 어린아이들에게 직접 그의 손을 얹고 그들을 축복할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사도들이 큰 소리로 이들 어머니들을 꾸짖자, 예수는 떠들썩한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와서, 분개하듯이 그들을 책망하며 말했다; “작은 어린아이들이 내게로 오도록 허용하라; 그들을 막지 마라. 이는 하늘의 왕국이 저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건대, 누구라도 어린아이처럼 왕국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영적 사람신분의 충분히 건장한 모습으로 자랄 때까지 도저히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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