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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에서 영감을 받은 독자분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뜻과 진리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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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손 작성일22-04-29

본문

창조자이신 하느님이 만드신 온 우주 만물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힘에 따라서 저절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자연물과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생각에 따라서 탄생되는 창조물입니다. 그 창조물이 특별히 하나의 주관적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을 때 창조체라고 부릅니다.

에너지의 현시이거나 주관적 실체이거나 창조는 하느님의 뜻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우주 전체는 자연물이나 창조물이나 모두 창조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어서 탄생된 존재적 실체로서의 창조체는 그것이 잠재적이건 일시적이건 영구적이건 항상 하느님의 뜻에서 기원된 독특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진화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 우리는 그것을 생명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자연, 자연물, 자연계와 창조, 창조물 창조계는 구별되는 의미가 있고 그중에서도 생명을 지닌 창조적 실체인 창조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창조체는 하느님의 뜻이 반영된 창조의 마지막이자 완성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하느님이 자신의 세계와 시간과 공간의 우주를 영원히 별개로 격리시키지 않는 한, 완성된 창조체는 필연적으로 진화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은 시공간 창조계를 자신의 영원한 뜻에서 창조하신 것이기에, 그 뜻을 취소하지 않는 한 모든 창조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뜻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창조체의 완성은 창조체를 하느님의 뜻대로 완성하겠다는 의미이기보다는, 하느님의 모든 뜻이 반영된, 그리고 미미하게나마 어떤 형태이든 뜻에 반응하고 뜻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를 탄생하였다는 의미의 완성입니다. 그렇게 뜻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모든 창조체 중에서 유일한 의지 생명체인 인간입니다. 사람의 의지가 처음부터 갑자기 생명체 존재에게 나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하여 펼쳐지고 발현되는 영원한 뜻에 따르기 때문에, 수많은 시간과 공간과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오랜 진화의 과정 끝에 성취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생명체의 마지막 완성인 이 의지 생명체의 탄생을 위하여 유란시아에 5억 년 전에 최조의 생명 원형질이 심어졌고 수많은 생명체의 탄생과 변이를 거쳐 마침내 백만 년 전에 최초의 인간이 탄생되었습니다. 이처럼 창조체의 완성의 의미를 지닌, 인간의 탄생은 5억 년 이상의 진화의 시간을 거친 입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때의 감동을 유란시아 책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62:7.3
 
유란시아에 있는 생명운반자들에게─인사의 말을 전한다! 의지 존엄의 마음이 유란시아에 실존하게 되었다는 신호가 네바돈의 본부에 등록된 것을 축하하면서 구원자별에덴시아 그리고 예루셈에 큰 기쁨이 넘치고 있음을 확실하게 전한다. 그 쌍둥이들이 북쪽으로 도피하고 그들의 열등한 조상들로부터 그들의 자손을 격리시키려는, 목적의식이 있는 결정이 감지되었다. 이것은 유란시아에 있어서 첫 번째의 마음의 결정─인간 유형의 마음─이었으며, 이를 인정하는 이 첫 메시지가 전달되는 통신 순환회로를 자동적으로 설치한다.”

이 글은 인간의 탄생을 위해 5억 년 동안 유란시아에 머물면서 처음부터 모든 생명체의 진화를 보살피고 감독했던 1,200명의 생명 운반자들에게 우주 본부에서 전하는 축하의 메시지입니다. 의지 생명체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의지 존엄의 마음이 우주에서 인지되는 신호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첫 번째 마음의 결정이 바로 의지이고, 그것을 인간 유형의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창조체 완성을 의미하는 실체입니다.

의지는 우리말 뜻의 한자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느님의 의지인 것처럼, 인간의 의지 곧, 인간의 뜻은 "목적의식이 있는 결정"이고 그것을 존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 탄생의 직전인 유인원에 이르기 까지,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든 생명체는 선택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 좋고, 더욱 유리하고, 생명 유지 곧 생존에 필요한 결정 능력은 모든 동물들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택의 동기니 결정은 목적이 아니라 진화하는 생명체의 자연적인 본능입니다.

인간의 뜻은 본능적 결정이 아니기에, 생존의 목적을 뜻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즐거운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생존의 목적이라면 그것은 인간 존엄의 의지로 살아가기보다는, 단지 동물적 삶의 떠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정한 목적이 성취되어 행복을 누리는 삶이라면, 그리고 그 목적이 생존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전혀 별개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참된 인간 의지의 승리일 것입니다.

생존과 연관되는 뜻, 의지는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틀어서 진미선이라 부르고 그 성취의 원천이 되는 에너지를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랑이 하느님으로부터 의지 존엄의 존재인 인간 개개인에게 연결되어 있는 에너지의 근원입니다. 높은 우주 차원에서는 우리는 하느님을 첫째근원이며 중심이라고 부른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지만, 무분별한 것은 아니라고 계시하고 있습니다.

2:6.8
 
하느님은 죄인은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하신다: 그러한 말은 철학적으로는 참말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초월적 개인성이며, 개인만이 다른 개인들을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다. 죄는 하나의 개인이 아니다. 하느님은 죄인이 개인성 실체(잠재적으로 영원한 실체)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반면, 죄에 대해서는 하느님이 어떤 개인적 태도도 취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죄는 영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오직 하느님의 공의는 단지 그것의 실존에 대해 인식할 뿐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죄인을 구원한다; 하느님의 법이 죄를 파괴한다. 필사 마음이 내주하는 영 조절자와 스스로를 충분하게 정체성을 확인할 수도 있는 것과 똑같이, 만일 죄인이 자기 자신을 온통 죄로 최종적으로 정체성을 확인하면, 신성한 본성의 이 태도는 분명히 바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죄-정체성 확인된 필사자는 본성에서 온통 비(非)영적인 상태가 되며 (따라서 개인성으로 비(非)실제적이며) 결국에는, 존재의 소멸을 체험하게 된다. 비(非)실체는, 심지어는 창조체 본성의 미완성조차도, 점진적으로 실제가 되고 점점 더 영적으로 되는 우주 안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다.

하느님은 인간을 아버지로서 사랑합니다. 악이나 죄는 동물이나 식물이나 자연물이 그러하듯이, 자연법칙에 따라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존재의 하나라고 말하는듯 합니다. 죄인은 사랑할 실체 곧 뜻이 연결될 수 있는 개인성이 아니기 때문에 식별되지 못하여 어떤 관심도 기울일 수 없다는 말로 이해됩니다.

사랑으로 사랑 안에서 진미선을 목적으로 정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의지의 존엄이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영이 늘 우리를 "이것이 그 길이다"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디지털이 발달해서 일상의 일들이 점점 단순화되고 한편으로는 전문화되어서 결정이나 선택에 혼란을 겪거나 고심하는 경우가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를 결정할 때에도 생각의 폭은 좁아지고 깊이만 깊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보가 빠르게 다가오다 보니 바쁘게 살아야 하는 환경 때문에, 뜻을 품거나 의지를 정하는 계기도 쉽지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현재와 미래를 깊이 생각하고 참되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저마다 뜻을 정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뜻이 한 창조체 존재로서의 의미가 가치가 있을 때 그 뜻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것이어서 인간의 생각이나 능력으로 그것을 짐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겠지만, 네 이웃을 형제처럼 사랑하라는 진리와 함께 경전이나 계시에 담긴 초물질적이고 영적인 진리들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을 수는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과 그 크기가 신앙이겠지요.

비커즈님의 댓글

비커즈 작성일

요즘 들어 삼위일체에 대한 글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자연물과 창조물이 모두 첫째 근원에서 기원된다고 할 때, 자연물은 셋째 근원과 그리고 창조물은 둘째 근원과 연결된다고 가정하면 창조자 아들이나 창조 영에 대한 계시가 이해하기가 쉽고 세 분 절대자에 대한 글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네요.

삼위일체는 동서양의 거의 모든 종교에 들어있는 진리이기는 하지만, 단지 그러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제시합니다. 삼위일체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기독교도 성부 성자 성신의 사실만 말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근원과 그 역동성을 말하는 유란시아 책이 특별하고 인류에게 새로운 계시가 되는 것이지요.

유란시아 책에서 아버지 아들 영의 본성과 함께 삼위일체 안에서 모든 현시가 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자연물과 창조물에 있는 이원적인 본성이 존재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실체로 출현되고 나아가는 존재의 현상은 삼원적 질서와 실체인 삼위일체 안에서 솟아날 수 있다고 합니다.

유란시아에 계시된 내용조차도 인간 의식이 개화되는 먼 미래가 되어야 제대로 해석이 될 것이니, 창조체의 제한된 능력으로 삼위일체 진리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다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요.

창조체가 창조자의 마지막 결정체라고 하는 의견에 공감이 됩니다. 인간의 한계를 감안하면 삼위일체의 그 절대적 초점을 이해하려는 최극의 여정에서 진리의 영이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실 때, "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한 것이 성경이나 유란시아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 기도에서의 예수님의 뜻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해석이 다양합니다. 대부분은 인간이 처한 환경에서 그리고 인간의 입장에서 미루어 짐작하면서 이해하고 있어서, 오해가 많고 대부분이 억측과 왜곡된 해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신성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예수님의 신성한 뜻과 예수님이 믿고 있었던 아버지의 뜻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여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인간의 참된 뜻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길이겠지요. 그것이 유란시아 책에서 계시된 진리의 빛입니다.

고착화된 종교적 믿음의 자기 환상적인 진리 의식으로는 새로운 생명력으로 깨어날 활로가 점점 더 막혀 있기 때문에, 계시가 주어진 것입니다. 유란시아 책을 통하여 새로운 활력을 얻지 못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부어주신 진리의 영은 시간이 지나면서 신성한 실체와 단절되어간 인간 세상에서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의 진리로 대체되어 왔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가는 진리에 대한 환상에 빠져, 생생한 예수님의 진리의 영을 사실상 거부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다섯 번이라는 신성한 계시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사실상 자신의 오만함과 무지로 살아있는 진리의 영을 거절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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