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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에서 영감을 받은 독자분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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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러스 작성일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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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이다. 행복이 목표이자 삶의 의미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구체적으로 그 목표를 그려내지는 못한다. 단지 막연한 느낌으로 아니면 행복하다는 추상적인 상태를 목표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특별하게 정할만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복잡하고 바쁜 현실 속에서 행복에 대한 구체적 동기나 실체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조심하라는 글이 유란시아에 있다.

목표나 목적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이상이거나 뚜렷한 개념이다. 아쉬움이 없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절박한 소망이나 이상을 가지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예수님이 부자에게 경고와 함께 조언한 말씀도, 참된 행복에 대한 절실한 소망은 역경과 난관에서 그 동기를 찾을 수 있다는 진리의 말씀일 것이다.

미래의 구체적인 이상이나 소망들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물질주의의 함정에서 눈에 어두워지고 행복의 실체가 될 수 있는 참된 목표와 그 실체적 가치를 잊고 있는 것이다. 물질주의의 폐단을 심각하게 경고하는 글이 유란시아 책에 많이 있다.

물질주의는 학자들이 논하는 이론이나 개념이 아니다. 유란시아 책에서 경고하는 물질주의는 매우 심각하고 엄중한 삶의 환경이고 개개인지 지니고 살아가는 의식 체계이다. 물질주의의 생생하고도 대표적인 사례는 사회주의 국가일 것이다. 오래전에 북한에서 '쌀밥에 소고깃국을 먹은 것'을 행복의 기준이라고 여겼는데, 아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 만족과 풍요로움이 행복의 전부라는 생각이 개개인의 의식에 뿌리 깊이 남아있을 수 있다.

물질주의에서 본다면, 일상의 법이나 도덕이나 윤리나 혹은 모든 인간관계는 모두의 행복을 달성해야 한다는 지고의 목적에 위반되는가 아닌가로 판단될 것이다. 그래서 민주는 있지만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이유도 공공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서 자유의 포기가 마땅하고 당연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가 되면,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는 동물이나 동물들의 세계로 퇴행을 겪을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애꿎은 사람마저도 함께 공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동물의 삶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유란시아 책에서 그 어리석음을 엄중하게 경고하는 것이다.

행복해지려고 사랑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랑도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게 되고, 그러다가 행복을 얻을 도구를 찾고 집착하고 점점 중독되는 부작용을 겪고 심하면 벗어날 수 없는 질병에 걸린다. 이성과 감성과 지성을 포기하다가 나중에는 무기력하게 감각만 즐기는 자기 파멸적인 중독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다면, 삶은 힘들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우선 불행하지 않으면 된다. 깊은 생각도 지혜도 요구되지 않는다. 힘들고 괴롭고 싫은 것을 피하거나 배격할 수 있는 분별력만 있으면 아주 충분하다.

 

그다음 행복을 찾는 것도 쉽다. 기쁘고 즐겁고 달콤한 것을 찾아내는 분별력만 있으면 시작될 수 있고 직접  나서는 작은 수고로 자기 것으로 만들면 즉시 행복해진다. 필요한 것은 단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힘이다. 물질주의에서 그 힘이 당연히 황금이다. 황금만능 시대란 말은 공연한 말이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행복의 원칙을 지키고 충분한 돈의 힘만 있다면. 행복을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사람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서로 행복을 가지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툼에서 우여곡절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다툼을 스토리가 있는 삶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그저 서로 빼앗기 위한 영리한 짐승들의 권모술수의 모습일 따름이다. 행복을 목표가 삼으면 그런 삶의 모습이 되기가 쉽다.

사람답게 사는 사람의 행복은 삶의 결과이지, 결코 목표가 아니다. 목표가 있는 삶이 달성되어 지고한 행복을 맛볼 수도 있고, 아니면 달성의 과정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상대적인 행복을 맛볼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행복하거나 안 하거나 목표는 행복의 여부로 바뀌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참된 삶을 위해서는 행복이 목표일지 결과일지 스스로 생각하고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면, 무조건 자신에게 좋은 것만 취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거나 불리하면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은 모든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본성이다. 그런 자연적 본능적 행복을 목표로 한다면, 무신경으로 무판단으로 사는 것이 상팔자라는 행복론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된다.

본능적 행복은 어떤 수단이나 과정이나 상관없이 순간적이다. 행복의 사실이 사라지는 순간 행복도 사라진다. 추억이나 상상도 환상이라는 수단으로 만드는 행복이라서, 실체가 아니고 생각에서 사라지면 행복도 사라지는 헛된 행복이다. 이에 대한 진리는 불교나 도교에서도 널리 말하고 있다.

사람이 보기에 고양이와 쥐 그리고 황소와 모기는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저마다 나름대로 만족하는 동물들이다. 단지 만족과 행복이 삶의 이유가 된다면 특별한 힘을 지니고 사는, 삶의 방식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선천적이고 근본적으로 사람답게 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고 그것이 인간 존재가 만물의 영장으로 존재하는 이유이다.

본능적 순간적 행복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느낌에 상관없이 존재로서 달성하는 참되고 영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존재로서의 행복은 존재의 목표가 있는 한, 사라질 수가 없다. 그리고 존재는 기억이나 생각과 상관없이 언제나 생생한 현재이고, 인간의 힘으로 변경되거나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물질주의적 행복과 존엄한 인간 존재로서의 행복에 대한 유란시아의 경고가 있다.

 

[195:6.7]  

필경 상당한 교육을 받았을 사람들의 기계론적 자연주의와, 거리에 흔히 있는 사람의 생각 없는 세속주의는 둘 모두 오로지 사물에만 관심을 둔다; 그들에게는 모든 실제 가치, 신성한 규약, 그리고 영적 본성에서의 만족이 알맹이를 이루지 못하며, 신앙과 소망 그리고 영원한 확신이 결여되어 있다. 현대생활에서의 커다란 문제들 중의 하나는 사람이 자신이 너무 바빠서 영적 명상과 종교적인 헌신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을 위해서 살 것인지 아니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살 것인지 점점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할 시대이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매년 행복지수를 조사해서 발표하는 갤럽의 자료가 있습니다. 작년도 대부분의 나라는 계속 가족관계와 일의 성취를 최고의 행복이라고 꼽았는데, 오직 한국인들만 물질적 행복을 최고라고 응답했다고 하지요. 물질주의가 심각한 것은 한국의 문제가 아닐지 걱정입니다. 사회적 환경이 물질주의로 변질되었다면 당장 깨어나야만 합니다.

이기적 사고방식이 물질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인데, 그런 사람들이 활보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부터 당장 시작해야만 하겠지요. 이기심이나 악이 눈에 뜨게 드러나는 것이라면 그것을 행하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철저한 이기심이 교묘하게 선으로 위장하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악을 허용하고 동조하고 저지르는 것이지요. 나 자신이 만족되는 행복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행동이 점점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행복을 새롭게 정의하며 계시해 준 글을 방금 읽었는데 물질주의의 위험을 지적해주시네요.

"행복은 진리를 인식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이는 그것이 활동으로 옮겨질 수 있고, 그것은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망과 슬픔은 실수라는 결과에서 일어나는데, 왜냐하면 실수는 실체가 아니어서, 체험 속에서 실체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2:7.6]
Happiness ensues from the recognition of truth because it can be acted out: it can be lived. Disappointment and sorrow attend upon error because, not being a reality, it cannot be realized in experience.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이상론은 물질론과 싸울지언정 파괴하지 못해요. 그러나 물질론은 현실이기에 이상론을 파괴하고 몰아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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