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좌절

페이지 정보

본문

실패와 좌절

 

 


실패

 

a07e516e1b2bc1a995716ddca5e25c00_1574590 무한 영의 달성 이후에는, 아무 시험도 더 시행되지 않는다. 내부 순환계들의 시험은 신(神)들의 뒤덮음 안에 있을 때 순례 후보자들의 공적(功績)이다. 승진은 순전히 개인의 영성에 의해 결정되지만, 하느님들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 소유를 단정하지 못한다. 실패할 경우에는 어떤 이유도 영원히 지정되지 않으며, 후보자들 자신이나 그들의 다양한 교사들 그리고 안내자들도 전혀 꾸지람을 듣거나 비판을 받지 않는다. 낙원에서는, 실망감이 패배로 간주되는 일이 결코 없으며; 연기되는 일은 결코 치욕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시간의 외견상 실패들은 영원의 의미심장한 지연과 결코 혼동되지 않는다. [26:8.3]

 

시간의 의미. 시간은 모든 의지적 창조체들의 한 가지 우주적 자질이며; 그것은 모든 지능 존재들에게 위임된 “하나의 자질”이다. 너희 모두는 너희 생존을 보증할만한 시간을 갖고 있으며; 시간은 그것이 무시됨으로써 묻힐 때에만, 너희 혼의 생존으로 보증하도록 그것을 활용하기에 실패할 때에만 치명적으로 낭비된다. 가능한 한 가장 충만한 정도까지 어떤 존재의 시간을 증진시키기에 실패하는 것이 치명적인 형벌을 요구하지는 않으며; 그것은 단순히 상승하는 그의 여행에 있어서 시간의 순례자들을 지체시킬 뿐이다. 만일 생존이 획득된다면, 다른 모든 손실들은 만회될 수 있다. [28:6.9]

 

영속하는 삶의 길을 시작하였으며, 임무배정을 받아들였고 전진하라는 너희의 절차들을 받았음으로, 인간의 잊어버리는 위험과 필사자의 변덕스러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하리라는 의심이나 비틀거리는 혼란으로 괴로워하지 말며, 너희의 지위와 위치에 의심하지도 머뭇거리지도 말라, 왜냐하면 어두운 매 순간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투쟁의 길목에서, 진리의 영이 항상 “이것이 그 길이다”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34:7.8]

 

조화우주의 진화 실험실에서 마음은 항상 물질을 지배하며, 영은 언제나 마음과 서로 연관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자질들이 동조를 이루고 합동을 이루는데 실패하면, 시간이 연기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만일 개변존재가 정말로 하느님을 알고 그를 발견하여 그와 같이 되기를 갈망한다면, 시간의 장애와 상관없이 생존이 보장된다. 물리적 지위가 마음을 불리하게 만들 수도 있고, 정신적 완고함은 영적 달성을 지체시킬 수도 있겠지만, 이들 방해물 중 그 어떤 것도 온통-혼에서 나오는 의지의 선택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65:8.5]

 

예수께 있어서는 “그가 하느님을 신뢰하셨다”는 것이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가장 탁월하게 신뢰하셨다. 그는 어린아이가 자기 육신의 아버지를 신뢰하듯이 자신의 아버지를 신뢰하셨다. 그의 신앙은 완전하였지만 무례한 적이 결코 없었다. 잔인한 자연본성이 어떻게 나타나든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사람의 복지에 관계가 없을지라도, 예수는 자신의 신앙에서 벗어나신 적이 없었다. 그는 실망을 당할 염려가 없었으며 박해에 영향을 받지 않으셨다. 그는 외견상의 실패에 의해서 흔들리는 법이 없으셨다. [100:7.7]

 

그러나 자기-의지와 자아-이외의-의지 사이의 이러한 초기 갈등들에 대한 사람의 해석은 항상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 정말로 잘 통일된 개인성만이 싹트기 시작한 사회의식과 자기 열망에 대한 여러 형태의 논쟁들을 중재할 수 있다. 자아는 자신의 이웃과 마찬가지의 권리를 갖고 있다. 어느 쪽도 개별존재의 관심과 봉사를 독점적으로 요구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인간 죄의식에서의 가장 초기 유형에 기원을 가져온다. [103:5.4]

 

조절자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며, 생존할 만한 가치는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의지 창조체 안에서의 의미 있는 모든 가치는 의미-발견이나 또는 평가하는 개인성이 생존하거나 생존하지 못하거나 상관없이, 살아남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필사의 창조체가 생존하기를 거절하기도 하지만, 삶의 체험은 여전히 버려지지 않고, 영원한 조절자가 그렇게 외견상으로 실패한 삶의 가치-있는 모습들을다른 세계로 가져가서 생존의 가능성이 있는 보다 높은 유형의 필사자의 마음속에 이들 살아남은 의미와 가치들을 증여해 준다. 가치-있는 체험은 어떤 것도 헛된 것이 없으며, 참된 의미나 실제적 가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109:6.1]

 

“분노는, 대체로 통합된 지적(知的) 육체적 본성의 통제를 얻으려는 영적 본성의, 실패 정도를 나타내는 물질적 명시이다. 분노는 너그러운 형제다운 사랑에 대한 너의 결핍과 그에 대하여진 너의 자아-존중과 자아-조정에 대한 결핍을 가리킨다. 분노는 건강을 해치고 마음을 저하시키며 사람 혼의 영적 선생에게 장애가 된다. ‘분노가 어리석은 사람을 죽인다.’라는 것과 사람이 ‘분노 안에서 스스로 상처를 낸다.’ 또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나,’ 한편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라는 글을 너희가 성서에서 읽지 않았느냐? 너희 모두는 다음의 말들도 잘 알고 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혀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한다.’ ‘슬기가 노하기를 더디게 한다.’ ‘자기 자신 스스로를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벽이 없는 무방비한 성과 같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 함이 많다.’ ‘정신에서 서두르지 말라. 분노는 바보들의 품에 머문다.’” 예수가 말씀을 마치기 전에 좀 더 계속하였다: “너의 영 안내자가, 신성한 아들관계의 직위와는 모순되는 그러한 동물적인 노함이 격발로 분출시키는 경향으로부터, 너희를 벗어나게 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너희의 가슴이 사랑으로 지배되어 하라.” [149:4.2]

 

“나는 이 영원한 진리를 강조 한다: 만일 너희들이 진리의 합동으로 너희들의 삶에서 이 아름다운 정의(正義)의 온전함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인다면, 너희들의 동료들도 너희들이 갖게 된 그 진리를 얻기 위하여 너희를 쫓을 것이다. 진리의 탐구자들이 너희들을 찾는 정도가 너희들이 소유한 진리 자질, 올바름의 정도를 나타낸다. 사람들에게 전할 너희의 메시지를 가지고 너희가 가야만 하는 그 범위가, 어떤 의미로는, 온전하거나 혹은 의로운 일생, 진리와-합동되는 일생을 너희가 살지 못하는 것의 척도이다.” [155:1.5]

 

너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낙담에 빠지지 말라. 인간의 본성이 악을 향하는 경향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선천적으로 죄 있음은 아니다. 너희들의 유감스러운 체험들을 전혀 잊을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하지 말라. 시간 속에서 너희들이 잊지 못하는 과오들을 영원 속에서는 잊게 될 것이다. 너희 삶의 우주 확대라는, 너희들의 운명에 대한 긴 안목을 빨리 가짐으로써 혼에 지워 진 짐을 가볍게 해라. [156:5.8]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실패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일생은 실재에서의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실패에는 고귀한 혼이 항상 습득하는 어떤 기법이 있다; 너희는 반드시 활기차게 잃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너희는 실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에 주저하지 말라. 속이는 미소와 낙천적인 태도로 애써 실패를 감추려 하지 말라. 성공을 주장하는 소리는 항상 듣기 좋지만, 마지막 결과는 끔찍하다. 그러한 기법은 실체가 아닌 세계를 꾸며내고, 궁극적으로 환멸을 주는 필연적인 파멸로 직접 이끌어 간다. [160:4.7]

 

몇 세기도 못 되어서, 그의 가르침들에 대한 기록들을 연구하던 생도들이 그토록 많은 이교들과 분파들로 나누인 것은 순전히 예수의 복음이 너무 다방면에 걸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이러한 비참한 분열은 주(主)의 비길 데 없이 뛰어난 일생의 신성한 단일성에 대한 주(主)의 여러 가지의 가르침들을 분별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예수를 참되게 믿는 자들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영적으로 분열되지 않은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항상 다양한 지적 이해와 해석, 심지어는 사회화에서의 다양한 등급들을 가질 수 있지만, 영적 형제신분의 결여는 용서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난을 받는다. [170:5.20]

 

“너희 동료를 용서하려는 기꺼운 마음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무능력함은 너희의 미숙함을 가늠하고, 그리고 어른다운 동정심, 납득 그리고 사랑을 달성하는 데에 대한 너희의 실패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너희 자녀와 너희 동료들의 참된 소망과 내적 본성을 알지 못하는 너희의 무지함에 정비례하여, 너희는 그만큼 원한을 품고 그리고 앙갚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생명의 신성하고 내적인 충동이 밖으로 나와 일하는 것이다. 그것은 납득함에 기초를 두며, 이기심이 없는 봉사로서 양육되고, 지혜안에서 완전하게 된다.” [174:1.5]

 


좌절

 

failure2.jpg 필사 사람은 영 핵을 갖고 있다. 마음은 신성한 영 핵 둘레에 존재하는 그리고 물질적 환경 안에서 기능하는 개인적-에너지 체계이다. 개인적 마음과 영의 그러한 살아있는 관계는 영원한 개인성의 우주 잠재력을 구성한다. 실제적인 고난, 계속되는 실망, 심각한 패배, 또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자아-개념이 중앙의 영 핵의 지배하는 힘을 충분히 대치하려고 단언한 이후에만 올 수 있는 것이며, 그리하여 개인성 정체성의 조화우주 기획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12:9.6]
이 때 그것은 공간의 신앙-시험을 받은 그리고 많은-여행을 한 순례자들에게 주어지는 1차 또는 기본적 과정이다. 그러나 하보나에 도착하기 오래 전에, 시간의 상승하는 이 자녀들은 불확실성을 즐기고, 실망감으로 살찌우고, 외견상의 패배에 열중하고, 어려움의 현존에서 기운을 차리고, 광대함에 직면하여 불굴의 용기를 나타내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의 도전에 직면하였을 때 꺾이지 않는 신앙을 실천하는 법을 배워 왔다. 오랫동안, 이 순례자들의 투쟁 구호는: “하느님과의 접촉에는 아무 것도 ─ 전혀 아무 것도 ─ 불가능이 없다.”는 것이었다. [26:5.3]
어려움은 평범함에 도전하고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오직 지고자들의 참된 자녀들을 기운 돋게 할 뿐이다. [48:7.7]
조화우주의 진화 실험실에서 마음은 항상 물질을 지배하며, 영은 언제나 마음과 서로 연관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자질들이 동조를 이루고 합동을 이루는데 실패하면, 시간이 연기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만일 개변존재가 정말로 하느님을 알고 그를 발견하여 그와 같이 되기를 갈망한다면, 시간의 장애와 상관없이 생존이 보장된다. 물리적 지위가 마음을 불리하게 만들 수도 있고, 정신적 완고함은 영적 달성을 지체시킬 수도 있겠지만, 이들 방해물 중 그 어떤 것도 온통-혼에서 나오는 의지의 선택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65:8.5]

 

사람의 혼은 종교적 신앙을 통하여 스스로를 계시하며, 필사자 개인성이 어떤 괴로움을 주는 지적인 그리고 시련이 되는 사회적 상황에 반응하도록 유도하는 그러한 특징적인 방법으로서, 그 창발하는 자연본성의 잠재적 신성을 실증한다. 참된 영적 신앙 (참된 도덕적 의식)은 다음 안에서 계시된다: [101:3.4]

 

그 때 젊은이는 예수와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매우 간절해졌으며, 그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개인적 슬픔과 좌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 달라고 예수에게 간청하였다. 예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친구여! 일어나라! 남자답게 일어서라! 너는 작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많은 장애물들에 걸려있는지 모르지만, 이 세상과 우주에서 커다란 것과 진정한 것이 네 편에 있다. 태양은 매일 아침 떠올라 땅에서 가장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과 똑같이, 너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느냐? 보아라,─너는 튼튼한 육체와 강인한 근육을 갖고 있구나.─너의 육체적 자질은 평균을 넘는구나, 물론, 네가 이런 산기슭에 앉아서 현실이거나 공상이거나 간에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 육체는 단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뤄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훌륭한 일들을 네가 서둘러 시작한다면, 너는 그 육체를 사용하여 위대한 일들을 이룰 수 있다. 너는 너의 불행한 자아로부터 달아나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 질 수는 없다. 너와 너의 삶의 문제들은 실재이며; 네가 살아있는 한 너는 그것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네 마음은 명석하여 맑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 보아라. 너의 강인한 육체를 다룰 지능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도록 너의 마음을 작동시키며; 너의 지성이 너를 위해 일하게 하라; 생각 없는 동물처럼 더 이상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해라. 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지금까지 네가 비굴하고 겁 많은-노예와 패배와 좌절에 묶인-하인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오히려, 네 마음은 용감한 연합군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너의 실제적 성취의 잠재력은, 네 안에 살고 있는 영이다, 그래서 만약 네가 두려움의 족쇄에서 너의 몸을 해방하고, 그리고는 너의 영적 본성이 그렇게 살아있는 굳센 믿음에서의 힘의-현존으로 하여금 아무 활동이 없는 악으로부터 너의 해방이 시작하도록 허락한다면, 그 영은 너의 마음을 자극하고 영감을 주어 저절로 너의 몸을 조정하고 활성화 시킬 것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 굳센 믿음은, 네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이 네 가슴 안에 탄생되어있는 의식으로 인하여, 네 혼을 즉시 온통 채워 넘쳐흐르게 할, 새롭고도 모든 것을-지배하는, 너의 동료에 의 사랑의 그 억누를 수 없는 현존으로 인하여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정복할 것이다. [130:6.3]

 

진화하는 혼의 영적 힘의 척도는 진리 안에 있는 너희들의 신앙과 사람들에 대한 너희들의 사랑이다. 그러나 인간 성격의 강한 힘의 척도는 악한 감정이 지속되는 것을 이겨내는 너의 능력과, 그리고 깊은 슬픔과 만났을 때 그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을 견디어내는 너의 능력이다. 좌절은 너희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정직하게 비춰볼 수 있는 진정한 거울이다 [156:5.17]

 

모든 악에 대항하는 강화된 방어. 개인성 연합과 상호 애정이, 악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대비책이다. 어려움, 슬픔, 실망, 패배를 혼자서 견딜 때에는 더욱 고통스럽고 낙담이 된다. 연합 자체가 악을 정의로 바꾸지는 못하지만, 괴로움을 크게 줄이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너희들의 주(主)는 “슬퍼하는 자는 행복하다”고 말씀 한다.─위로할 친구가 옆에 있다면. 너희들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살고, 그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너희의 행복과 발전을 위하여 산다는 것을 알게 되면 확실히 힘을 얻을 것이다. 사람은 고독으로 시들어버린다. 인간은 시간의 일시적 활동행위만을 바라볼 때, 반드시 낙담하게 되어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감정만 끊게 하는 하찮은 일로 된다. 영원의 순환계를 어렴풋이 감지하기만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최선을 다하도록 영감을 받을 것이며 그의 안에 있는 최선의 것에 그 최대한의 것을 발휘하는 도전을 일으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이 그의 최선을 다하게 될 때, 다른 사람, 시간과 영원 속의 자신의 동료 거주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가장 사심 없이 사는 것이다. [160:2.9]

 

나의 철학은, 정의(正義)에 대한 나의 개념을 방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내가 싸워야만 할 때가 있다고 말하지만, 반면에 주(主)는 개인성에서의 보다 성숙된 유형으로써, 재치와 관용의 탁월하고 매력 있는 기법으로 쉽고도 은혜롭게 똑같은 승리를 얻으실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정의(正義)를 위하여 싸울 때, 너무나 많은 경우에, 승리자와 패배자 둘 모두 좌절을 체험한다. 나는 주(主)가 바로 어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을 들었다: “잠긴 문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을 때, 현명한 자는 그 문을 부수기보다는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으려 할 것이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단지 자기 자신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가 확신하려고 싸움에 빠지곤 한다. [160:3.4]

 

유다는 이 세상에서의 갈등과 투쟁함에 있어서, 개인적 경향들과 성격적 연약성 때문에 패배하였다: [193:4.4]

 

예수의 가르침들은, 비록 크게 변경되기는 하였지만, 그들 탄생시절의 신비 종파들, 암흑기의 무지와 미신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20세기의 물질주의, 기계론, 그리고 세속주의에 대하여 서서히 승리하고 있다. 그리고 큰 시험과 패배의 위협을 받는 그러한 시기는 항상 위대한 계시가 내리는 시기이다. [195:9.3]

 

진화하는 마음은 법과 도덕과 윤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증여된 영, 내주 하는 조절자는 진화하는 인간 마음에게 입법자, 진실 되고,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의 아버지-근원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러한 계몽된 사람은 종교를 가진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길고도 모험적인 추구를 시작하도록 영적으로 장비가 갖추어져 있다. [196:3.26]

재단소개 재단목적 문의 | 요청 개인정보취급 (웹관리자) : sysop@urantia.or.kr © URKA 상단으로
  모바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