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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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말 작성일1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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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185 :3.5 그러자 빌라도는 반은 조롱으로 그리고 반은 진지함으로 말했다, “진리? 무엇이 진리이냐─누가 그것을 안단 말이냐?”

모든 시대에- 예수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진리에 대한 탐구는 진보되었다. 진리에 대한 탐구 뿐 아니라 진리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도 진보했다. 유란시아서는 이 두가지를 다 충족시켜 준다. 당신이 진리의 탐구자 이든지 아니면 진리가 무엇인지 온전한 이해를 얻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제대로 된 곳에 인도된 것이다. 다음의 인용은 유란시아서에 나오는 진리에 대한 가장 적절한 가르침 중의 몇 가지 단문들이다.


진리에 대해서
 

2:7.2 물리적 사실들은 상당히 일정하지만, 진리는 우주의 철학에 있어서 살아있고 유연한 요소이다. 진화하는 개인성들은 그들의 교통에서 부분적으로 현명하고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다. 그들은 오직 그들의 개인적 체험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확신할 수 있다. 한 장소에서 겉으로 보기에 온통 참된 것으로 보이는 그것이 다른 창조 구역에서는 오직 상대적으로 참된 것일 수 있다.

2:7.3 신성한 진리, 최종 진리는 한결같고 보편적이지만, 영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다양한 구체에서 흩어져 나온 수많은 개별존재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때로는 지식의 완벽성에서의 이 상대성 때문에 세부사항에서 다를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은 체험의 길이와 정도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 체험의 충만함에서 다를 수 있다. 첫째 위대한 근원이며 중심의 법칙과 뜻, 생각과 태도가 영원히, 무한히 그리고 보편적으로 참된 반면; 동시에, 각 우주, 체계, 세계와 창조된 지능존재에 대하여 이것들을 적용하고, 그리고 그들을 조절하는 것은, 무한 영과 다른 모든 연합된 천상의 개인성들의 지역적 계획과 과정에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창조주 아들들이 그들 각자의 우주에서 기능하는 대로 그들의 계획과 기법에 일치한다.
 

2:7.4 물질주의의 잘못된 과학은 필사 사람을 우주 속에 버림을 받은 것으로 판결할 것이다. 그러한 부분적인 지식은 잠재적으로 악이며; 그것은 선과 악 둘로 이루어진 지식이다. 진리는 충만하면서도 균형이 잡혀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사람이 진리를 찾을 때, 그는 신성한 실제를 추구한다.

2:7.5 철학자들은 추상적 관념의 오류, 실체의 한 측면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리고는 그러한 고립된 양상이 진리 전체가 되는 것으로 장담하는 습관으로 그들이 잘못 인도될 때 그들의 가장 중대한 잘못을 범한다. 현명한 철학자는 항상 모든 우주 현상 뒤에 있는 그리고 그것보다 선재(先在)하는 창조적 설계를 찾으려 할 것이다. 창조자의 생각은 항상 창조적 행동보다 앞선다.
 

2:7.6 지적 자아-의식은, 진리의 아름다움, 그것의 영적 본질특성을, 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일관성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항상-현존하는 진리의 영의 어김없는 반응으로 말미암아 더욱 확실하고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은 진리를 인식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이는 진리가 활동으로 옮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망과 슬픔은 실수 위에서 일어나는 데 그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체험 속에서 실체화될 수 없다. 신성한 진리는 그 영적 향기에 의해 가장 잘 알려진다.
 

3 :5.10 진리에 대한 사랑과 그것이 인도하는 곳은 어디든지 가고자 하는 기꺼이 따름이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잘못이 존재하고 허위가 항상 가능한 세계 속에서 자라야만 한다.
 

2:7.11 모든 진리─물질적, 철학적, 또는 영적─는 아름다운 동시에 선하다. 모든 실제적 아름다움─물질적 예술 또는 영적 균형성─은 참된 동시에 선하다. 모든 진정한 선(善)─개인적 도덕성, 사회적 공평성, 또는 신성한 사명활동, 그 어떤 것이든지─ 은 똑같이 참되고 아름답다. 건강과 건전한 마음과 행복은 인간 체험 속에서 혼합되는 것에 따라오는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의 집대성이다. 능률적인 삶의 그러한 차원들은 에너지 체계들과 관념 체계들 그리고 영 체계들의 통합을 통하여 나온다.
 

2:7.12 진리는 응집력이 있고, 아름다움은 끌어당기며, 선(善)은 안정을 이룬다. 실제적인 이러한 가치들이 개인성 체험 속에서 합동될 때, 그 결과는 지혜에 의해 조건이 갖추어지고 충성에 의해 자격이 갖추어지는 높은 계층의 사랑이다. 모든 우주 교육의 실제적인 목적은 세계들의 고립된 자녀가 그의 확대되는 체험의 더 큰 실체들과 더 나은 합동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실체는 인간 차원에서는 유한하고, 좀 더 높은 그리고 신성한 차원들에서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54:0.2 하느님들은 악을 창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죄와 반역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잠재적 악(惡)은 완전 의미들과 가치들의 차이 있는 차원들을 포옹하는 우주 안에서의 시간-실재함 이다. 죄(罪)는 불완전한 존재들이 선과 악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모든 영역에 잠재한다. 진리와 허구, 사실과 거짓말의 바로 그 상반되는 현존이 잘못의 잠재성을 이룬다. 악에 대한 고의적인 선택이 죄를 가져오며; 진리에 대한 고의적 거부가 잘못이다; 죄와 잘못에 대한 끈질긴 추구가 사악이다.
 

56:10.10 진리는 과학과 철학의 기본이며, 종교의 지적 근거를 제시한다. 아름다움은 모든 인간 체험의 예술과 음악 그리고 의미 있는 리듬들을 후원한다. 선(善)은 윤리와 도덕 그리고 종교─체험적 완전성-추구자─의 감각을 포옹한다.


타인에게 진리의 전달

30 :3.9 필사자 진보의 상승 계획 전체가 새로운 진리와 체험을 획득하자마자 곧 바로 다른 존재들에게 내어 주는 것을 연습하는 것으로 특징되어진다. 너희는 진보의 눈금 안에서 바로 너희 뒤에 있는 그 학생들에게 선생으로 봉사함으로써 낙원천국 달성의 긴 학교를 통과하는 너희의 길을 간다.
진리는 살아있다
 

34:6.6 아무리 고귀한 종교적 교리라도, 죽은 이론은 인간 성격을 변환시키거나 필사자 습성을 조정할 힘이 없다. 오늘날의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너희 옛 선생들이 외쳤던 “말에 있지 않고 오직 힘과 성령 안에 있다.”는 진리이다: 신성한 영이 진리의 형체들에게 숨을 불어넣고 정의(正義)의 법칙들을 소생시킬 때까지 그리고 그렇게 되기 전에는 이론적인 진리의 씨는 죽어있고, 가장 높은 도덕적 개념은 아무런 효력없이 존재한다.
 

79:8.8 조상 숭상의 중대한 약점은 회고적(回顧的)인 철학을 증진시킨다는 점이다. 과거의 사람들로부터 지혜를 수집하는 것이 아무리 현명하다 할지라도, 과거의 사람들을 유일한 진리의 근원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리석을 것이다. 진리는 상대적이고 확대되는 것이며; 그것은 현재 속에서 항상 살아있어서, 각각의 사람 세대들마다─심지어는 각각의 세대들마다─새로운 표현을 이룩한다.
 

118:3.2 사물은 시간으로 조건을 갖추지만, 진리에는 시간이 없다. 너희가 진리를 많이 알면 알수록, 너희가 더욱 더 진리일수록, 너희가 과거에 대한 것을 더욱 많이 납득 할수록 미래에 대해 더욱 많이 이해하게 된다.
 

118:3.3 진리는 충격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모든 일시의 과도기적 파란으로부터 언제까지나 면제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다시는 죽거나 형식을 갖추는 것이 아니며 항상 활기에 넘치고 잘 맞으며 순응하는 것이다.─눈부신 빛을 비취도록 살아있다. 그러나 진리가 사실과 연결될 때에는, 시간과 공간이 그 의미와 그리고 서로 관련된 그 가치들을 조건 짓게 한다. 사실과 결합된 진리의 그러한 실체들은 개념이 되며 그리고는 그에 따라 상대적 조화우주 실체들의 권역에 귀속된다.
 

130:4.15 모든 정적인, 죽어있는 개념들은 잠재적으로 악이다. 상대적이고 그리고 살아있는 진리의 유한한 그림자는 계속 움직인다. 정적인 개념들은 변함없이 과학, 정치, 사회, 종교 등의 발전을 지체시킨다. 정적인 개념들은 어떤 지식을 표방하기는 하지만, 지혜가 부족하고 진리가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상대성의 개념이 너희들을 지나치게 잘못 인도하여 너희가, 조화우주 마음의 지도 아래에 있는 우주의 합동, 그리고 최극자의 영과 에너지로 말미암아 안정되는 통제를 인식하는 것에, 실패하도록 허용하지는 말라.

진리의 예술적 승리

48:6.22 법이란 삶 그 자체이며 그것의 행위성에 대한 규칙들이 아니다. 악이란, 삶, 그것이 법이니, 그 삶에 따라붙는 행위성의 규칙들을 어긴 것이 아니고, 그 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거짓말은 서술의 기법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왜곡과 같은 고의적인 어떤 것이다. 옛 사실들로부터 새로운 그림들의 창조, 자손들의 생활 안에서 부모로서의 삶의 재현─이것들은 진리의 예술적 승리이다. 털끝만한 변화의 기색, 허위 목적을 위한 궁리, 원칙인 그것의 작은 뒤틀림이나 왜곡─이것들이 거짓을 이룬다. 그러나 사실화된 진리에 대한 무속적 숭배물, 화석화된 진리, 소위 변하지 않는 진리의 쇠고랑들은 사람을 차가운 사실의 순환계 안에 눈먼 채로 머물게 한다. 사람은 사실에 관한한 기술적으로 옳을 수 있고 진리 안에서 영속적으로 그릇될 수 있다.

물신으로써의 진리

88:2.7 옛날에는 권한을 가진 주물 낱말이 두려움을-일으키는 교리였는데, 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모든 폭군들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교리적인 주물은 필사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배반하여 편협한 신앙, 광신, 미신, 불관용, 그리고 가장 지독한 야만적인 학대의 족쇄를 채우게 하였다. 지혜와 진리에 대한 현대의 존중은, 주물을-만드는 경향으로부터 보다 높은 사고(思考)와 이성(理性)의 차원으로 올라가는 최근에 탈출하였을 뿐이다. 여러 종교가들이 성스러운 책으로 여겼던, 축적된 맹목적 숭배 기록들에 관해서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진리일 분 아니라, 모든 진리가 그 책 속에 있다고 사람들이 믿었다. 만일 이들 성스러운 책 중에서 하나가 공교롭게도 지구가 평면이라고 말한다면, 오랜 세대 동안, 다른 한편으로는 온전한 남녀들이 행성이 둥글다는 분명한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진리와 생각조절자

101:6.4 지식의 진화적 유형은 기억원형세포 물질의 축적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은 창조체의 의식에서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지혜는 연합과 재결합의 과정에서 원형질의 기억으로부터 공식화된 관념들을 포옹하며, 그러한 현상들이 인간 마음을 단순한 동물적 마음과 구분시킨다. 동물들도 지식을 소유하지만, 오직 사람만이 지혜 수용력을 소유하고 있다. 진리는, 아버지와 아들들의 영, 곧 생각조절자와 진리의 영이 그렇게 마음위에 증여됨으로서 지혜-자질을 부여받은, 개별자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59:4.7 “진리에서의 권위는 그 살아있는 명시 속에 깃들어 있는 바로 그 영이고, 어떤 다른 세대의 다소 희미하면서도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옛 사람 중에 성스러운 사람들이 설혹 영감을 받고 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들의 말들도 똑같이 영적으로 영감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왕국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기록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떠난 후에 내 가르침에 대한 너희들의 다양한 해석의 결과로 인하여 가지각색의 진리 논쟁자 분파로 속히 나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세대에 있어서는 기록을 만드는 것을 피하고 이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지식와 진리

130:4.10 지식은 물질적인 또는 사실-식별하는 마음의 구체다. 진리는 하느님을 아는 것에 대해 인식하는 영적으로 부여된 지성의 권역이다. 지식은 실증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체험되는 것이다. 지식은 마음의 소유물이디; 그러나 진리는 혼, 진보하는 자아의 체험이다. 지식은 비(非)영적 차원의 기능이다; 한편 진리는 우주들의 마음-영 차원의 한 위상이다. 물질적 마음의 눈은 사실적인 지식의 세계를 감지한다; 그러나 영성화된 지성의 눈은 참된 가치들의 세계를 식별한다. 동조되고 그리고 조화되는 이들 두 관점들이 실체의 세계를 드러내며, 바로 그곳에서 지혜는 진보하는 개인적 체험에 의하여 우주의 현상들을 해석한다.
 

132:3.2 진리는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삶에 의해서만 정의(定意)되어질 수 있다. 진리는 항상 지식 이상의 것이다. 지식은 관찰할 수 있는 사물들과 관계되지만, 진리는 그러한 순전히 물질적인 차원을 초월하며, 그 안에서 지혜와 조화 있게 결합되고 측정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인간 체험이 되게 하고, 그리고 심지어는 영적이고 살아있는 실체들로 받아들이게 한다. 지식은 과학에서; 지혜는 진정한 철학에서; 진리는 영적 삶의 종교적 체험에서 비롯된다. 지식은 사실들을; 지혜는 관계들을; 진리는 실체에 대한 가치들을 다룬다.

계시된 진리

132:3.4 계시된 진리, 개인적으로 발견된 진리는, 인간 혼의 최극의 기쁨이다; 그것은 물질적인 마음과 내재하는 영이 공동으로 창조한 것이다. 진리(眞)를 식별하고 아름다움(美)을 사랑하는 이 혼의 영원한 구원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하느님을 찾으며 그를 닮아가려는 단 한 가지의 목적만을 개발하도록 이 필사자를 인도하는 선(善)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에 의하여 확인된다. 진정한 지식과 진리 사이에는 아무 충돌이 없다. 지식과 인간 신념들, 편견으로 채색되고, 두려움에 의해 변형되고, 물질적 발견이나 영적 진보의 새로운 사실들에 대처하는 것을 두려워함으로써 지배를 당하는 신념들 사이에서는 아마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176:3.7 “진리는 살아있는 것이다; 진리의 영은 빛의 자녀들을 새로운 영적 실체와 신성한 봉사의 세계로 언제나 인도한다. 정착되고 안정되며 명예로운 형태들로 굳어진 진리가 너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너희에게 계시되는 진리는 너희의 개인적 체험을 통하여 증진되어야만하고, 그리하여 너희에게 맺힌 영적 열매들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아름다움과 실제적인 영적 성취가 보일 것이며, 그 결과로 그들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인도될 것이다. 진리에 대한 지식 안에서 그렇게 성장하는, 그리고 그렇게 하여 영적 실체들에서의 신성한 깊은 이해에 대한 수용능력을 개발하는 저들 신실한 하인들만이 “주님의 기쁨에 충분하게 동참하는” 희망을 언제나 가질 수 있다. 신성한 진리에 대한 그들의 직무에 관하여, 예수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뒤따르는 세대들이, “주(主)여, 백년 또는 천 년 전에 당신께서 저희에게 맡겼던 진리가 여기 있습니다. 저희들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저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신실하게 보존하였으며; 당신이 저희에게 가르치셨던 것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못하게 하였으며; 당신이 저희에게 주셨던 진리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모른다. 영적 나태함을 나타내는 그런 변명이 진리에 대해 무기력한 그 청지기를 주(主) 앞에서 정당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진리의 주(主)는 너희들의 손에 맡겨진 그 진리에 따라서 계산을 요구하실 것이다.
 

102:3.12 지식의 추구는 과학의 구성 요소이며; 지혜 탐구는 철학이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종교이며; 진리에 대한 굶주림이 계시이다. 그러나 실체의 느낌을 조화우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영적 통찰력에 덧붙여 주는 것은 내주하는 생각조절자이다

왕국의 진리

141:2.1 펠라를 떠나기 전날 밤, 예수는 사도들에게 새로운 왕국에 관해 좀 더 가르치셨다. 주(主)가 이렇게 말씀하였다: "너희는 다가오는 하느님의 왕국을 찾으라고 배워왔고, 그리고 이제 나는 오랫동안 찾아오던 이 왕국이 아주 가까이 있으며 이미 이곳에 그리고 우리들 한가운데에 있음을 선언하는 바이다. 모든 왕국에는 왕이 그의 왕좌에 앉아있고 그리고 그 권역의 법을 선포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너희는, 메시아가 다윗의 왕좌에 앉아 그 자리에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온 세계의 법을 제정하고, 유대 백성들을 세상 모든 사람들 위에서 영화롭게 되는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렇게 하늘의 왕국의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나의 자녀들아, 너희는 신앙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 영적인 납득을 가지고 듣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왕국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하느님의 법을 실현하고 인정하는 것임을 내가 선언하노라. 진실로, 이 왕국에는 한 분 왕이 계시며, 그 왕은 나의 아버지이자 너희들의 아버지시다. 우리는 참으로 그분의 충실한 신하들이지만, 그런 사실을 훨씬 초월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아들들이라는 그 변환되어지는 진리이다. 내 일생 안에서 이 진리는 모두에게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아버지는 왕좌에 앉아 계시지만, 그것은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무한자의 왕좌는 하늘들의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영원한 처소이며; 그는 우주들을 넘어 우주들로 모든 것들을 채우시고 자신의 법을 선포한다. 또한 아버지는 필사 사람들의 혼 안에서 살도록 자신이 보내신 영(靈)으로, 땅 위에 있는 그의 자녀들의 가슴 안에서 다스리신다.
 

143:1.4 “나는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의 사랑의 성격을 모든 인류에게 계시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 내 형제들아,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그래서 나는 단지 이 한 가지를 이행할 것이며, 나의 가르침이 이 시대 혹은 다른 세대의 유대인들이나 혹은 이방인들에 의해 오해받는 것에 괘념치 않는다. 그러나 너희는 신성한 사랑에도 혹독한 교육단련이 있다는 사실을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아버지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 없는 자손들의 현명하지 못한 행위를 억제하도록 종종 강요한다. 아버지가 내리는 억제시키는 교육단련의 현명함과 사랑의 동기를 자녀가 항상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낙원천국에 계신 나의 아버지는 그분의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힘으로 우주들의 우주를 지배한다. 모든 영적 실체들 중에서 사랑이 최고이다. 진리는 자유롭게 하는 계시이지만, 사랑은 최극의 관계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세상일들에서 너희와 같은 사람들이 어떤 실책을 하던지 간에, 앞으로 오는 세대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는 복음이 바로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인간 진보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을 경건하게 깨닫는 것과 사람이 형제임을 사랑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159:3.7 육신으로 살았던 일생으로부터 영적으로 사는 보다 높은 일생으로 옮아 간 모든 사람들이 건너야만 하는 부차적인 갈등에 관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리 경고한다. 어느 쪽 세계든지 매우 온전하게 살았던 자에게는 갈등이나 혼돈이 거의 없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차원의 삶으로 옮겨가는 기간 동안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불확실성을 체험하게 되어 있다.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너희들로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의무를 피하도록 할 수는 없으나, 복음의 멍에는 쉽고 진리의 짐은 가볍다는 것을 기억하라.

진리를 인식한다

155:6.2 너희들은 안전을 갈구하며 순종을 선호하는 자들, 마음의 종교에 만족하며 머무르기를 선택한 사람들로부터 빠져 나왔다. 너희들은 권위주의적 확실성에 대한 너희의 감정을,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신앙의 영에 대한 확신으로 바꾸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너희들은 제도적 종교의 엄격한 속박에 대담하게 맞서 싸워 왔으며, 현재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겨지는 전통적인 기록의 권위를 과감히 거부해왔다. 우리의 아버지는 진정으로 모세, 엘리야,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를 통해 말씀하였다. 그러나 이 옛 예언자들이 말을 끝낸 후에도, 그분은 계속해서 이 세상에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를 그만 두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는 진리의 말씀을 한 세대에는 주고 다른 세대에는 거두어들임으로써 인류나 세대를 차별하는 분이 아니다. 온통 인간의 것을 신성한 것이라고 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며, 또한 상상의 영감을 일으키는 전통적인 신전을 통해 나오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식별하는데 실패가 없도록 하라.
 

155:6.12 너희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신학적 권위를 가진 옛날 기록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하느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이제부터는 하느님의 말씀이 어떤 출처에서 나왔는지를 막론하고 그 말씀을 알아본다. 그 증여의 경로가 명백하게 인간이라고 해서 신성한 진리가 평가절하 되어져서는 안 된다. 너희 형제들 중의 대부분은 하느님에 대한 이론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편 하느님의 현존을 영적으로 알아보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렇게 자주 너희들에게 진지한 어린아이의 태도를 갖는 것이 하늘의 왕국을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가르쳤던 이유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바라는 것은 어린아이들의 정신적 미숙함이 아니라 오히려 쉽게-믿고 충분히-신뢰하는 어린아이들의 영적 단순성이다. 너희들이 하느님에 대한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은, 너희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힘이 점점 더 자라야만 한다는 것보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159:4.7 “진리에서의 권위는 그 살아있는 명시 속에 깃들어 있는 바로 그 영이고, 어떤 다른 세대의 다소 희미하면서도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옛 사람 중에 성스러운 사람들이 설혹 영감을 받고 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들의 말들도 똑같이 영적으로 영감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왕국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기록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떠난 후에 내 가르침에 대한 너희들의 다양한 해석의 결과로 인하여 가지각색의 진리 논쟁자 분파로 속히 나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세대에 있어서는 기록을 만드는 것을 피하고 이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신성한 진리는 살아 있는 실체

180:5.2 신성한 진리는 영으로-식별되는 것이며 살아있는 실체이다. 진리는 신성의 실현과 그리고 하느님과 교제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그러한 높은 영적 차원에서만 존재한다. 너희는 진리를 알 수 있고, 진리를 실천할 수 있다; 너희는 혼속에서 진리가 자라는 것을 체험할 수도 있고 마음속에서 그 깨우침이 주는 해방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너희는 진리를 인간 행위의 공식, 규범, 교리 또는 지적 원형틀 안에 가두어 둘 수는 없다. 너희가 신성한 진리를 인간적 정형화로 담아내려고 할 때, 그것은 급속히 죽는다. 감금된 진리를 죽은 뒤에 구출하려는 것은, 기껏해야, 지능화작용으로 영화롭게 된 지혜가 특이한 형태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고작 결국 생겨날 뿐이다. 정적인 진리는 죽어있는 진리이다, 그리고 오직 죽은 진리만이 이론으로 유지될 수 있다. 살아있고 살아나게 하는 진리는 역동적이며, 그리고 오직 그것만이 인간 마음속에서 체험적 실재를 향유할 수 있다.
 

180:5.3 지능은 조화우주 마음의 실재에 의해 비추어지는 물질적 실재에서 성장하며 나온다. 지혜는, 의미에서의 새로운 차원으로 높아지고 그리고 지혜 보조자의 우주 자질의 현존에 의해 활성화되는 지식에 대한 의식으로 이루어진다. 진리는 오직 우주 인식의 초(超)물질 차원에서 기능하는 존재, 그리고 진리를 깨달은 후에는, 활성화된 영이 그들의 혼 속에 거하고 군림하도록 허락하는 존재인, 그러한 영이-수여된 존재에게만 체험되는 영적 실제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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