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1 편

PAPER 161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FURTHER DISCUSSIONS WITH RODAN

161:0.1 서기 29년 9월 25일, 일요일,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마가단에 모였다. 그 날 저녁에 동료들과 긴 논의를 한 후에, 다음 날 일찍 열 두 사도들과 함께 천막축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출발하겠다는 예수의 말씀 때문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예수는 전도자들에게 갈릴리에 있는 신자들을 방문하라고 지시하였고, 여자 대원들에게는 얼마 동안 벳세다로 돌아가 있으라고 지시하였다. ON SUNDAY, September 25, A.D. 29, the apostles and the evangelists assembled at Magadan. After a long conference that evening with his associates, Jesus surprised all by announcing that early the next day he and the twelve apostles would start for Jerusalem to attend the feast of tabernacles. He directed that the evangelists visit the believers in Galilee, and that the women's corps return for a while to Bethsaida.
161:0.2 예루살렘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다니엘도마알렉산드리아로단과 아직도 토론을 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며칠 동안 더 마가단에 머물러도 좋다는 주(主)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하여 예수와 열 명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안, 나다니엘도마로단과 진지한 토론을 하였다. 로단이 자신의 철학을 자세히 설명하였던 지난 주 동안에, 도마나다니엘은 교대로 그 그리스 철학자에게 왕국 복음을 제시하였었다. 로단알렉산드리아에서 자기를 가르쳤으며 전에 세례요한의 사도들중의 하나였던 그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예수의 가르침을 잘 배웠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When the hour came to leave for Jerusalem, Nathaniel and Thomas were still in the midst of their discussions with Rodan of Alexandria, and they secured the Master's permission to remain at Magadan for a few days. And so, while Jesus and the ten were on their way to Jerusalem, Nathaniel and Thomas were engaged in earnest debate with Rodan. The week prior, in which Rodan had expounded his philosophy, Thomas and Nathaniel had alternated in present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to the Greek philosopher. Rodan discovered that he had been well instructed in Jesus' teachings by one of the former apostles of John the Baptist who had been his teacher at Alexandria.


1. 하느님의 개인성
 


1. THE PERSONALITY OF GOD

161:1.1 로단과 두 사도들 사이에 다르게 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개인성이었다. 로단하느님의 속성에 관하여 제시된 모든 것들을 선뜻 받아들였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사람이 개인성이라고 착상하는 것과 같은 개인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도들은 하느님이 개인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이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고, 한편 로단하느님이 개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여전히 더욱 힘들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There was one matter on which Rodan and the two apostles did not see alike, and that was the personality of God. Rodan readily accepted all that was presented to him regarding the attributes of God, but he contended that the Father in heaven is not, cannot be, a person as man conceives personality. While the apostles found themselves in difficulty trying to prove that God is a person, Rodan found it still more difficult to prove he is not a person.
161:1.2 로단은, 깊이 공감하여 납득할 능력이 있는 동등성에서의 존재들 사이에서의 충분한 상호간의 교통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안에서, 개인성의 사실이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로단은 말했다; “개인이기 위해서는, 하느님은 자신과 접촉하는 자들이 충분히 납득되기 시작하도록 그 자신을 허용할 수 있는, 영(靈) 교통의 상징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하느님이 무한하고 영원하며, 모든 다른 창조체들의 창조주이니까, 이 말은 동등성의 존재로서는 하느님은 우주에서 혼자이시라는 것이다.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 그와 동등한 자로서 교통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하느님은 정말로 모든 개인성의 근원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자체로서 그는 개인성에 대하여 초월하고 있으며, 이는 창조주가 창조체위에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Rodan contended that the fact of personality consists in the coexistent fact of full and mutual communication between beings of equality, beings who are capable of sympathetic understanding. Said Rodan: "In order to be a person, God must have symbols of spirit communication which would enable him to become fully understood by those who make contact with him. But since God is infinite and eternal, the Creator of all other beings, it follows that, as regards beings of equality, God is alone in the universe. There are none equal to him; there are none with whom he can communicate as an equal. God indeed may be the source of all personality, but as such he is transcendent to personality, even as the Creator is above and beyond the creature."
161:1.3 이 주장에 도마나다니엘은 아주 곤혹스러워졌으며, 예수께 와서 구조해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주(主)는 그들의 토론에 참여하기를 거절하였다. 예수도마에게 말해 주었다: “너희들이 무한하고 영원한 하느님 본성에 대한 이상을 영적으로 깊이 알고 있는 한, 너희들이 품을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관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This contention greatly troubled Thomas and Nathaniel, and they had asked Jesus to come to their rescue, but the Master refused to enter into their discussions. He did say to Thomas: "It matters little what idea of the Father you may entertain as long as you are spiritually acquainted with the ideal of his infinite and eternal nature."
161:1.4 도마하느님이 사람과 교통을 하고, 따라서 로단의 정의(定意)에 따른다고 해도, 아버지는 개인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인은 이것을 하느님이 자신을 친히 개인성을 계시하지 않는다는 것; 하느님은 여전히 신비라는 것을 근거로 물리쳤다. 그러자 나다니엘하느님과 가진 자신의 개인적 체험에 호소하며 다시 반론하자, 로단도 자신이 최근에 비슷한 체험이 있다고 단언하며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그러나 그는 이들 체험이 기껏해야 하느님실체를 증명한 것이며 그의 개인성을 증명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Thomas contended that God does communicate with man, and therefore that the Father is a person, even within the definition of Rodan. This the Greek rejected on the ground that God does not reveal himself personally; that he is still a mystery. Then Nathaniel appealed to his own personal experience with God, and that Rodan allowed, affirming that he had recently had similar experiences, but these experiences, he contended, proved only the reality of God, not his personality.
161:1.5 월요일 밤이 되자 도마는 포기하였다. 그러나 화요일 밤이 되어서, 나다니엘로단을 이기고 아버지의 개인성을 믿게 하였고, 그리고 다음과 같은 논리단계에 따라서 그리스인의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를 이루어내었다: By Monday night Thomas gave up. But by Tuesday night Nathaniel had won Rodan to believe in the personality of the Father, and he effected this change in the Greek's views by the following steps of reasoning:
161:1.6 1. 낙원천국에 계신 아버지는 적어도 다른 두 존재, 자신과 충분하게 동등하고 그리고 전적으로 자기 자신과 같은─영원 아들무한 영(靈)─두 존재와 교통에서의 동등성을 즐기고 있다. 삼위일체 교리의 관점에서, 그리스인은 우주 아버지의 개인성 가능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토론에 대하여 나중에 가졌던 고려가 열 두 사도들의 마음속에서 삼위일체의 확대된 개념으로 이끌었다. 물론, 예수영원 아들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믿음이었다.) 1. The Father in Paradise does enjoy equality of communication with at least two other beings who are fully equal to himself and wholly like himself -- the Eternal Son and the Infinite Spirit. In view of the doctrine of the Trinity, the Greek was compelled to concede the personality possibility of the Universal Father. (It was the later consideration of these discussions which led to the enlarged conception of the Trinity in the minds of the twelve apostles. Of course, it was the general belief that Jesus was the Eternal Son.)
161:1.7 2. 예수아버지와 동등하니까, 그리고 이 아들이 땅에 있는 그의 자녀들에게 개인성의 현시를 성취했으니까, 그러한 현상은 사실의 증명, 그리고 가능성의 실증, 신격(神格)의 셋 모두에 의한 개인성 소유에 대한 증명을 이루고 있는 것이며, 사람과 교통하는 하느님의 능력과 그리고 사람이 하느님과 교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언제까지나 해결한 것이다. 2. Since Jesus was equal with the Father, and since this Son had achieved the manifestation of personality to his earth children, such a phenomenon constituted proof of the fact, and demonstration of the possibility, of the possession of personality by all three of the Godheads and forever settled the question regarding the ability of God to communicate with man and the possibility of man's communicating with God.
161:1.8 3. 저 분 예수는 사람과 상호 연합의 관계와 완전한 교통의 관계를 맺었으며; 그 예수하느님아들이었다. 아들아버지의 그 관계는, 교통에서의 동등성과, 깊이 공감하는 납득에서의 상호성을 전제로 한다; 저 분 예수아버지는 하나였다. 저 분 예수하느님과의 그리고 사람과의 교통을 동시적으로 납득하였으며, 예수가 교통에 사용한 상징의 의미를 하느님과 사람 모두가 이해하였기 때문에, 상호 교통하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연관되는 필요성을 고려해 볼 때, 하느님과 사람 둘 모두 개인성의 속성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분 예수의 개인성은 하느님의 개인성을 실증하였으며, 동시에 그것은 사람 속에 하느님이 현존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같은 일에 관계되어있는 두 가지 일들은 서로 간에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3. That Jesus was on terms of mutual association and perfect communication with man; that Jesus was the Son of God. That the relation of Son and Father presupposes equality of communication and mutuality of sympathetic understanding; that Jesus and the Father were one. That Jesus maintained at one and the same time understanding communication with both God and man, and that, since both God and man comprehended the meaning of the symbols of Jesus' communication, both God and man possessed the attributes of personality in so far as the requirements of the ability of intercommunication were concerned. That the personality of Jesus demonstrated the personality of God, while it proved conclusively the presence of God in man. That two things which are related to the same thing are related to each other.
161:1.9 4. 저 분 개인성은 인간 실체와 신성한 가치들에 대하여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개념을 대표한다; 저 분 하느님 역시 신성한 실체와 무한한 가치들에 대하여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개념을 대표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 분 하느님은, 개인성에 대한 사람의 개념과 정의(定意)를 무한하게 그리고 영원하게 초월하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하나의 신성하며 무한한 개인성, 실체로서의 개인성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물론 언제나 그리고 우주적인 개인성이 틀림없다. 4. That personality represents man's highest concept of human reality and divine values; that God also represents man's highest concept of divine reality and infinite values; therefore, that God must be a divine and infinite personality, a personality in reality although infinitely and eternally transcending man's concept and definition of personality, but nevertheless always and universally a personality.
161:1.10 5. 저 분 하느님은 모든 개인성의 창조주이시고 모든 개인성의 운명이기 때문에 하나의 개인성이어야만 한다. 로단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의해 막대한 영향을 받았었다. 5. That God must be a personality since he is the Creator of all personality and the destiny of all personality. Rodan had been tremendously influenced by the teaching of Jesus, "Be you therefore perfect, even as your Father in heaven is perfect."
161:1.11 이들 주장을 들었을 때, 로단은 말했다: "나는 이제 확신한다. 그러한 믿음에 대한 내 고백에 여러분들이 초인간적, 초월의, 최극의, 무한한, 영원한, 최종적 그리고 우주적인 것과 같은 확대된 가치들의 집단으로 개인성의 의미에 추가함으로서, 그러한 믿음으로 나의 고백을 분별해 보도록 허락한다면, 나는 하느님은 하나의 개인이라고 고백할 것이다. 나는 이제 하느님이 개인성보다는 무한히 크심이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그는 그 이하의 그 어떤 것일 수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나는 예수아버지의 개인적 계시로서 그리고 논리와 이성 그리고 철학의 만족되지 못한 모든 요소에 대한 만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리고 논쟁을 끝낸다는 것에 만족한다." When Rodan heard these arguments, he said: "I am convinced. I will confess God as a person if you will permit me to qualify my confession of such a belief by attaching to the meaning of personality a group of extended values, such as superhuman, transcendent, supreme, infinite, eternal, final, and universal. I am now convinced that, while God must be infinitely more than a personality, he cannot be anything less. I am satisfied to end the argument and to accept Jesus as the personal revelation of the Father and the satisfaction of all unsatisfied factors in logic, reason, and philosophy."


2. 예수의 신성한 본성
 


2. THE DIVINE NATURE OF JESUS

161:2.1 나다니엘도마는 왕국 복음에 대한 로단의 견해에 충분히 인정하였지만, 더 고려해야 할 것이 꼭 한 가지 남았는데, 아주 최근에 대중에게 선언된 교리인, 예수의 신성한 본성을 다루는 가르침이었다. 나다니엘도마 주(主)의 신성한 본성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공동으로 제시하였고, 다음의 이야기는 그들 가르침이 요약, 재정리, 재구성되어진 제시이다: Since Nathaniel and Thomas had so fully approved Rodan's view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re remained only one more point to consider, the teaching dealing with the divine nature of Jesus, a doctrine only so recently publicly announced. Nathaniel and Thomas jointly presented their views of the divine nature of the Master, and the following narrative is a condensed, rearranged, and restated presentation of their teaching:
161:2.2 1. 예수는 자신의 신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믿는다. 예수의 사명활동과 관련하여, 우리가 그를 하느님아들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어야만 오직 납득할 수 있는 놀랄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1. Jesus has admitted his divinity, and we believe him. Many remarkable things have happened in connection with his ministry which we can understand only by believing that he is the Son of God as well as the Son of Man.
161:2.3 2. 예수의 일생과 우리와의 연관 관계는 인간 우정의 이상(理想)을 본보기로 보여준다; 아마도 그 같은 인간 친구는 오직 신성한 존재만이 그럴 수 있다. 예수는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 진실로 가장 이기심이 없는 분이시다. 예수는 죄인들조차도 친구로 삼으시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려고 한다. 그는 우리에게 매우 충성이시다. 우리를 책망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지만, 그가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당신이 그를 알면 알수록,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의 변함없는 헌신에 매혹될 것이다. 우리가 그의 임무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내내, 그는 신실한 친구였다. 비위맞추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를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며; 언제나 부드럽고 연민이 가득하다. 그의 일생뿐만 아니라 그 모든 다른 것들도 우리와 함께 나누었다. 우리는 행복한 공동체이며; 모든 것들을 공동으로 서로 나눈다. 우리는 그렇게 벅찬 상황아래에서 한낱 인간이 그렇게 티 없는 일생을 살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2. His life association with us exemplifies the ideal of human friendship; only a divine being could possibly be such a human friend. He is the most truly unselfish person we have ever known. He is the friend even of sinners; he dares to love his enemies. He is very loyal to us. While he does not hesitate to reprove us, it is plain to all that he truly loves us. The better you know him, the more you will love him. You will be charmed by his unswerving devotion. Through all these years of our failure to comprehend his mission, he has been a faithful friend. While he makes no use of flattery, he does treat us all with equal kindness; he is invariably tender and compassionate. He has shared his life and everything else with us. We are a happy community; we share all things in common. We do not believe that a mere human could live such a blameless life under such trying circumstances.
161:2.4 3. 우리는 예수가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데, 이는 그가 결코 그릇되지 않으시고; 그 어떠한 오류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지혜는 비상하며; 그의 경건함은 더할 나위없다. 그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완전하게 사신다. 그는 아버지의 법을 어긴 적이 없기에, 나쁜 짓에 대한 뉘우침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는 우리를 위해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지만,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한결같이 죄가 없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으로서 일찍이 그러한 일생을 살려고 공언했던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완전한 일생을 산다고 주장하고, 우리는 그가 그렇게 한다고 인정한다. 우리의 경건함은 회개로부터 솟아 나오지만, 그의 경건함은 정의로움으로부터 솟아 나온다. 그는 죄를 용서한다고 공언하며, 병을 고친다. 한낱 인간은 그 누구도 죄를 용서한다고 제 정신으로 공언할 수 없으며; 그것은 신성한 특권이다.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난 때로부터 그는 자신의 정의로움 속에서 그렇게 완전한 듯하였다. 우리는 은혜 속에서 그리고 진리의 지식 속에서 자라지만, 우리 주(主)는 시작 때부터 정의에서의 성숙을 내 보이신다. 모든 사람들, 선한 자나 악한 자나, 예수 안에서 이들 선(善)의 요소들을 인지한다. 그의 경건함은 결코 눈에 거슬리거나 티가 나지 않는다. 그는 온유하면서 두려움이 없다. 그는 자신의 신성을 믿는 우리를 승인하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선언한 바로 그런 분이든지, 아니면 세상에 일찍이 알려진 자 가운데, 최고의 위선자요 사기꾼이다. 우리는 그가 자신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런 분이라고 확신한다. 3. We think Jesus is divine because he never does wrong; he makes no mistakes. His wisdom is extraordinary; his piety superb. He lives day by day in perfect accord with the Father's will. He never repents of misdeeds because he transgresses none of the Father's laws. He prays for us and with us, but he never asks us to pray for him. We believe that he is consistently sinless. We do not think that one who is only human ever professed to live such a life. He claims to live a perfect life, and we acknowledge that he does. Our piety springs from repentance, but his piety springs from righteousness. He even professes to forgive sins and does heal diseases. No mere man would sanely profess to forgive sin; that is a divine prerogative. And he has seemed to be thus perfect in his righteousness from the times of our first contact with him. We grow in grace and in the knowledge of the truth, but our Master exhibits maturity of righteousness to start with. All men, good and evil, recognize these elements of goodness in Jesus. And yet never is his piety obtrusive or ostentatious. He is both meek and fearless. He seems to approve of our belief in his divinity. He is either what he professes to be, or else he is the greatest hypocrite and fraud the world has ever known. We are persuaded that he is just what he claims to be.
161:2.5 4. 그의 성격의 독특함과 자신의 감성 조정의 완전함은 우리에게 그가 인간성과 신성의 병합이라는 확신을 준다. 그는 인간적 필요가 있어야 할 장면에서 어김없이 반응하며; 고통이 그에게 호소되지 않은 적은 결코 없다. 그의 연민은 육체의 고통이나 정신적 고뇌 또는 영적 슬픔을 막론하고 똑같이 움직이신다. 그는, 신앙의 현존이나 동료인간에게 있는 그 어떤 자비도 곧바로 인지하고 그리고 넉넉하게 인정해 주신다. 그는 매우 공정하고 공평하며 동시에 매우 자비롭고 사려 깊다. 사람들의 영적 완고함을 슬퍼하고 그들이 진리의 빛 보기를 따를 때에 매우 기뻐한다. 4. The uniqueness of his character and the perfection of his emotional control convince us that he is a combination of humanity and divinity. He unfailingly responds to the spectacle of human need; suffering never fails to appeal to him. His compassion is moved alike by physical suffering, mental anguish, or spiritual sorrow. He is quick to recognize and generous to acknowledge the presence of faith or any other grace in his fellow men. He is so just and fair and at the same time so merciful and considerate. He grieves over the spiritual obstinacy of the people and rejoices when they consent to see the light of truth.
161:2.6 5. 그는 사람 마음의 생각들을 아시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 가슴의 소망을 납득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는 항상 우리의 고난 받는 영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인간 감성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감정은 장엄하게 영화롭다. 그는 선(善)을 강렬히 사랑하지만 그만큼 죄를 미워한다. 그는 신(神)의 현존에 대한 초인간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는 사람처럼 기도하지만 그리나 하느님처럼 실행한다. 그는 사물을 예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서슴없이 자신의 죽음, 앞날에 그가 영화롭게 되는 것에 대한 어떤 신비스런 사례를 말하고 있다. 그는 친절하지만, 대담하고 용기가 있다. 그는 자신의 의무를 하는 데에서 결코 머뭇거린 적이 없다. 5. He seems to know the thoughts of men's minds and to understand the longings of their hearts. And he is always sympathetic with our troubled spirits. He seems to possess all our human emotions, but they are magnificently glorified. He strongly loves goodness and equally hates sin. He possesses a superhuman consciousness of the presence of Deity. He prays like a man but performs like a God. He seems to foreknow things; he even now dares to speak about his death, some mystic reference to his future glorification. While he is kind, he is also brave and courageous. He never falters in doing his duty.
161:2.7 6. 우리는 그의 초인간적 지식을 나타내는 현상에 끊임없이 감동을 받는다. 주(主)가 자신 앞에 즉시 현존하지 않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음을 드러내는 어떤 일이 거의 매일 일어난다. 또한 그는 자기 동료들의 생각을 아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천상의 개인성들과 영적으로 밀접한 교제를 가지시는 것이 분명하며;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가 머무르는 곳보다 위로 한참 높은 영적 수준에서 살고 있다. 그가 특유하게 납득하고 있는 곳에 모든 것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화에 이끌려 나오게 하려고 질문한다. 6. We are constantly impressed by the phenomenon of his superhuman knowledge. Hardly does a day pass but something transpires to disclose that the Master knows what is going on away from his immediate presence. He also seems to know about the thoughts of his associates. He undoubtedly has communion with celestial personalities; he unquestionably lives on a spiritual plane far above the rest of us. Everything seems to be open to his unique understanding. He asks us questions to draw us out, not to gain information.
161:2.8 7. 주(主)는 최근에 이르러서 자신의 초(超)인간성을 서슴지 않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도로서 임명 받은 날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이 위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왔다는 것을 부인한 적이 없으시다. 그는 신성한 교사의 권한으로 말씀한다. 주(主)는 오늘날의 종교적 가르침들의 잘못을 증명하고 적극적인 권한으로 새로운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단호하고 적극적이시며 권위가 있으시다. 세례요한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가 하느님아들임을 증거 하였다. 그는 자신으로서 너무나도 충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사람들의 의견에 개의치 않으신다. 그는 용감하면서도 자만심과는 거리가 멀다. 7. Recently the Master does not hesitate to assert his superhumanity. From the day of our ordination as apostles right on down to recent times, he has never denied that he came from the Father above. He speaks with the authority of a divine teacher. The Master does not hesitate to refute the religious teachings of today and to declare the new gospel with positive authority. He is assertive, positive, and authoritative. Even John the Baptist, when he heard Jesus speak, declared that he was the Son of God. He seems to be so sufficient within himself. He craves not the support of the multitude; he is indifferent to the opinions of men. He is brave and yet so free from pride.
161:2.9 8. 그는 하느님에 관하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언제까지나-현존하는 동료로서 변함없이 이야기한다. 그는 자기 속에 하느님께서 계시기라도 한 듯이 부지런히 선을 행한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이 땅에서의 자신의 임무에 대하여 가장 대경실색할 주장을 하는데, 이것들은 그가 만일 신성하지 않았더라면 터무니없는 말이 되어야 할 진술들이다. 그는 언젠가 선언하였다, “아브라함이 있기도 전에, 나 이다.” 그는 신성을 명백하게 주장해 왔다; 하느님과 동반자관계에 있다고 공언한다. 그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친밀한 협동관계에 있다고 주장을 되풀이한다. 그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까지 주장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엄청난 일들을 마치 어린아이가 하는 그런 자연스러움으로 말하고 행한다. 그는 자신과 우리 사이의 연합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아버지와 가지는 자신의 연합을 넌지시 말한다. 그는 하느님에 관하여 너무나 확실해서 그래서 그러한 사실의-문제로서 이들 관계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8. He constantly talks about God as an ever-present associate in all that he does. He goes about doing good, for God seems to be in him. He makes the most astounding assertions about himself and his mission on earth, statements which would be absurd if he were not divine. He once declared, "Before Abraham was, I am." He has definitely claimed divinity; he professes to be in partnership with God. He well-nigh exhausts the possibilities of language in the reiteration of his claims of intimate association with the heavenly Father. He even dares to assert that he and the Father are one. He says that any one who has seen him has seen the Father. And he says and does all these tremendous things with such childlike naturalness. He alludes to his association with the Father in the same manner that he refers to his association with us. He seems to be so sure about God and speaks of these relations in such a matter-of-fact way.
161:2.10 9. 그는 자신의 기도 생활 속에서 그의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교통을 나누시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의 기도를 아주 조금밖에 듣지 못하였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마치 얼굴을 대면한 것처럼 하느님과 말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도 알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그가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가 아니라면, 이 모든 내용들이 그에게 해당되지 않으며, 이 모든 신비한 일들을 행치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그가 인간이심을 잘 알며, 그것을 확신하는 만큼, 그가 또한 신성이심을 확신한다. 우리는 그가 신성임을 믿는다. 우리는 그가 사람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아들이신 것을 확신한다. 9. In his prayer life he appears to communicate directly with his Father. We have heard few of his prayers, but these few would indicate that he talks with God, as it were, face to face. He seems to know the future as well as the past. He simply could not be all of this and do all of these extraordinary things unless he were something more than human. We know he is human, we are sure of that, but we are almost equally sure that he is also divine. We believe that he is divine. We are convinced that he is the Son of Man and the Son of God.
161:2.11 나다니엘도마로단과의 토론을 끝내고 나서, 다른 사도들과 합세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급히 출발하였으며, 그 주간의 금요일에 도착하였다. 이 토론은 이 세 신자들 모두의 삶 속에서 큰 체험이 되었으며, 다른 사도들은 이 체험들에 대한 나다니엘도마의 자세한 설명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When Nathaniel and Thomas had concluded their conferences with Rodan, they hurried on toward Jerusalem to join their fellow apostles, arriving on Friday of that week. This had been a great experience in the lives of all three of these believers, and the other apostles learned much from the recounting of these experiences by Nathaniel and Thomas.
161:2.12 로단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갔고, 그곳에 있는 메간타의 학교에서 본인의 철학을 오랫동안 가르쳤다. 그는 후대의 하늘의 왕국에서의 관련사들에서 위대한 인물이 되었으며;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끝까지 신실한 신자였고, 박해가 극에 달하였을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에서 죽었다. Rodan made his way back to Alexandria, where he long taught his philosophy in the school of Meganta. He became a mighty man in the later affairs of the kingdom of heaven; he was a faithful believer to the end of his earth days, yielding up his life in Greece with others when the persecutions were at their height.


3. 예수의 인간 그리고 신성한 마음들
 


3. JESUS' HUMAN AND DIVINE MINDS

161:3.1 신성에서의 의식은 그가 세례받는 계기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마음속에서 점차적으로 자라갔다. 자신의 신성한 본성과 인간-이전의 실재(實在) 그리고 우주적 대권(大權)을 충분히 자아-의식한 후에, 자신의 신성에 대한 인간 의식을 여러 가지로 제한시키는 힘을 소유하게 된 것 같다. 예수가 세례를 받으신 후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오직 인간 마음에만 의지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적이고 신성한 마음들 모두를 사용하실 것인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의 결정에 맡겨졌던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때로는 인간 지성 속에 있는 지식만을 사용한 듯하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의 신성한 의식에서의 초인간적 내용을 이용함으로써만 가능한, 충만한 지혜와 지식으로 행동한 것이 분명하다. Consciousness of divinity was a gradual growth in the mind of Jesus up to the occasion of his baptism. After he became fully self-conscious of his divine nature, prehuman existence, and universe prerogatives, he seems to have possessed the power of variously limiting his human consciousness of his divinity. It appears to us that from his baptism until the crucifixion it was entirely optional with Jesus whether to depend only on the human mind or to utilize the knowledge of both the human and the divine minds. At times he appeared to avail himself of only that information which was resident in the human intellect. On other occasions he appeared to act with such fullness of knowledge and wisdom as could be afforded only by the utilization of the superhuman content of his divine consciousness.
161:3.2 자신의 신성 의식을, 뜻대로, 자아-제한할 수 있다는 가설을 받아들여야만 우리는 그의 독특한 행위들을 납득할 수 있다. 그는 사건들에 대한 자신의 선험지식을 자신의 동료들에게 알리기를 보류하는 일이 빈번했고, 그들이 생각하고 계획하고 있는 것의 본성도 그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하게 인지하고 있다. 우리가 납득하건대, 그가 그들의 생각을 식별할 수 있고 그들의 계획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자신의 추종자들이 너무 잘 아는 것을 그는 바라지 않았다. 그는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의 마음 안에 깃드는 것과 같은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개념을 너무 멀리 초월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We can understand his unique performances only by accepting the theory that he could, at will, self-limit his divinity consciousness. We are fully cognizant that he frequently withheld from his associates his foreknowledge of events, and that he was aware of the nature of their thinking and planning. We understand that he did not wish his followers to know too fully that he was able to discern their thoughts and to penetrate their plans. He did not desire too far to transcend the concept of the human as it was held in the minds of his apostles and disciples.
161:3.3 우리는 예수가 자신의 신성한 의식을 자아-제한하는 습성과, 그의 인간 동료들로부터 그의 예견지식과 생각을 헤아리는 것을 감추고 있는 그의 기법, 이 둘의 차이를 도무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가 이 두 가지의 기법을 모두 사용하는 것으로 확신하지만, 주어진 어떤 사례에서 어느 방법을 적용한 것인지, 우리는 항상 상술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우리는 의식에서의 인간적 내용만을 가지고 그가 행동하는 것을 자주 관찰했다; 그가 우주의 천상의 무리들의 지휘자들과 회의하는 것을 목격하면, 그때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신성한 마음이 기능하고 있음을 헤아리곤 했다. 그리고 나서 거의 수없이 많은 경우에, 인간 마음과 신성한 마음의 완전한 결합이 훤히 나타나는 것으로 활성화되면서, 그에 따라 사람과 하느님의 병합된 개인성이 일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것이 그러한 현상들에 대한 우리 지식의 한계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이 신비에 대한 충분한 진리를 실제로 알지 못한다. We are utterly at a loss to differentiate between his practice of self-limiting his divine consciousness and his technique of concealing his preknowledge and thought discernment from his human associates. We are convinced that he used both of these techniques, but we are not always able, in a given instance, to specify which method he may have employed. We frequently observed him acting with only the human content of consciousness; then would we behold him in conference with the directors of the celestial hosts of the universe and discern the undoubted functioning of the divine mind. And then on almost numberless occasions did we witness the working of this combined personality of man and God as it was activated by the apparent perfect union of the human and the divine minds. This is the limit of our knowledge of such phenomena; we really do not actually know the full truth about this myst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