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4 편

PAPER 144

길보아와 데카폴리스에서

AT GILBOA AND IN THE DECAPOLIS

144:0.1 9월과 10월은 길보아산 비탈위의 외떨어진 천막에서 물러나 지냈다. 예수는 9월 한 달 동안 이곳에서 자신의 사도들과 함께 홀로 지내면서 그들에게 왕국의 진리들에 관한 가르침과 지시를 주었다. SEPTEMBER and October were spent in retirement at a secluded camp upon the slopes of Mount Gilboa. The month of September Jesus spent here alone with his apostles, teaching and instructing them in the truths of the kingdom.
144:0.2 예수와 사도들이 이 때 사마리아데카폴리스의 경계인 이 지역으로 물러나 지낸 데는 몇 가지의 이유들이 있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반목이 매우 커졌으며; 헤롯 안티파스 요한예수가 어떤 면에서든지 서로 관계가 있다는 의심을 하며 여전히 요한을 감옥에 잡아둔 채, 그를 석방하는 것과 처형하는 것 두 가지 모두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유대 또는 갈릴리 지방 어느 곳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 외에도 세 번째 이유는: 요한의 제자들의 지도자들과 예수의 사도들 간에 싹튼 긴장감이 점차 더 심해지고 있었는데, 신도의 수가 늘어갈 수록 그 감정이 점점 더 격화되었다. There were a number of reasons why Jesus and his apostles were in retirement at this time on the borders of Samaria and the Decapolis. The Jerusalem religious rulers were very antagonistic; Herod Antipas still held John in prison, fearing either to release or execute him, while he continued to entertain suspicions that John and Jesus were in some way associated. These conditions made it unwise to plan for aggressive work in either Judea or Galilee. There was a third reason: the slowly augmenting tension between the leaders of John's disciples and the apostles of Jesus, which grew worse with the increasing number of believers.
144:0.3 예수는, 가르침과 설교에 있어서는 이제 예비적인 일들이 거의 끝났다는 사실, 다음 단계는 그의 지상(地上) 일생에서의 충만하고 그리고 마지막 수고를 시작하는 것에 관계된다는 것을 인식하였으며, 그는 이 일의 시작이 어떤 면에서도 세례요한에게 시험이 되거나 곤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는 한동안 은거하여 지내면서 요한이 처형되거나 혹은 석방되어 공동으로 그들의 사명에 함께 참여할 수 있을 때까지는 사도들을 재훈련시키며 데카폴리스의 도시들에서 조용히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Jesus knew that the days of the preliminary work of teaching and preaching were about over, that the next move involved the beginning of the full and final effort of his life on earth, and he did not wish the launching of this undertaking to be in any manner either trying or embarrassing to John the Baptist. Jesus had therefore decided to spend some time in retirement rehearsing his apostles and then to do some quiet work in the cities of the Decapolis until John should be either executed or released to join them in a united effort.

1. 길보아에서의 야영생활  


1. THE GILBOA ENCAMPMENT

144:1.1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12 사도들은 예수께 더욱 헌신하게 되었으며, 왕국의 업무에 점점 더 열중하였다. 그들의 헌신은 대부분이 개인적 충성심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다양한 가르침을 파악하고 있지 못했으며; 예수의 본성이나 혹은 그가 이 세상에 증여된 의의(意義)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As time passed, the twelve became more devoted to Jesus and increasingly committed to the work of the kingdom. Their devotion was in large part a matter of personal loyalty. They did not grasp his many-sided teaching; they did not fully comprehend the nature of Jesus or the significance of his bestowal on earth.
144:1.2 예수는 자신들이 은거하고 있는 세 가지 이유들을 사도들에게 분명하게 알려 주었다: Jesus made it plain to his apostles that they were in retirement for three reasons:
 

 1. 

왕국 복음에 대한 그들의 납득과 신앙을 다시 확인하기 위하여.

 2.

유대갈릴리 지방에서 자신들의 일에 대한 반대가 잠잠해 지기를 기다리기 위하여.

 3.

세례요한의 숙명을 기다리기 위하여.

1.

To confirm their understanding of, and faith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2.

To allow opposition to their work in both Judea and Galilee to quiet down.

3.

To await the fate of John the Baptist.

144:1.3 길보아에서 기다리는 동안, 예수는 12사도들에게 자신의 초기 일생과 헤르몬 산에서의 체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였으며; 또한 자신의 세례 직후에 있었던, 언덕에서의 40일 기간 동안의 체험도 어느 정도 밝히셨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이 체험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직접 당부하였다. While tarrying on Gilboa, Jesus told the twelve much about his early life and his experiences on Mount Hermon; he also revealed something of what happened in the hills during the forty days immediately after his baptism. And he directly charged them that they should tell no man about these experiences until after he had returned to the Father.
144:1.4 이 9월의 주간들 동안, 그들은 휴식과 방문을 하며 지냈는데, 예수가 처음에 자기들을 부르셔서 봉사하게 한 이래로 자기들이 갖게 된 체험들에 대해 회상해 보았고, 그 때까지 주(主)가 자신들에게 가르치셨던 것들을 합동시키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 모두는 이것이 오랫동안 휴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임을 어느 정도 눈치 채었다. 그들은 유대 또는 갈릴리 지방에서 곧 있을 자신들의 대중을 위한 수고가, 다가오는 왕국에 대한 최후선포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왕국이 왔을 때, 그것이 과연 어떤 것이 될 것인가에 관한 확실한 관념을 거의 또는 전혀 갖고 있지 못하였다. 요한안드레는 왕국이 이미 임했다고 생각하였고; 베드로야고보는 아직은 임하지 않았다고 믿었으며; 나다니엘도마는 솔직히 그들이 어리둥절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마태, 빌립, 시몬 젤로떼는 확신이 서지 않은 채 혼동되어 있었으며; 쌍둥이 형제는 모든 논쟁에 무관심하였고, 배반자 유다는 아무런 입장도 취하지 않은 채 침묵을 고수하였다. During these September weeks they rested, visited, recounted their experiences since Jesus first called them to service, and engaged in an earnest effort to co-ordinate what the Master had so far taught them. In a measure they all sensed that this would be their last opportunity for prolonged rest. They realized that their next public effort in either Judea or Galilee would mark the beginning of the final proclamation of the coming kingdom, but they had little or no settled idea as to what the kingdom would be when it came. John and Andrew thought the kingdom had already come; Peter and James believed that it was yet to come; Nathaniel and Thomas frankly confessed they were puzzled; Matthew, Philip, and Simon Zelotes were uncertain and confused; the twins were blissfully ignorant of the controversy; and Judas Iscariot was silent, noncommittal.
144:1.5 예수는 이 기간의 대부분의 시간을 야영지 가까이에 있는 산에서 혼자 보내셨다. 이따금씩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가셨으나, 기도나 교제하기 위해 혼자 계시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예수의 세례 직후에 페레아 언덕에서 지냈던 40일에 뒤이어 일어난, 이 시기를 그의 아버지와의 기도로서 교제를 가진 것이라 말하기도 어렵고, 또 예수가 경배를 드린 것으로 말하는 것도 모순되지만, 오히려 이 시기를 그의 아버지와의 사적(私的) 교제로서 언급하는 것이 전적으로 정확하겠다. Much of this time Jesus was alone on the mountain near the camp. Occasionally he took with him Peter, James, or John, but more often he went off to pray or commune alone. Subsequent to the baptism of Jesus and the forty days in the Perean hills, it is hardly proper to speak of these seasons of communion with his Father as prayer, nor is it consistent to speak of Jesus as worshiping, but it is altogether correct to allude to these seasons as personal communion with his Father.
144:1.6 9월 한 달 동안의 토의들의 중심 주제는 기도와 경배였다. 그들이 경배에 대한 토의를 여러 날 한 뒤에 예수가 끝으로 기도에 관한 기억에 남을만한 교훈을 주었는데, 그것은 도마가 “주(主)여, 우리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간청한 것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었다. The central theme of the discussions throughout the entire month of September was prayer and worship. After they had discussed worship for some days, Jesus finally delivered his memorable discourse on prayer in answer to Thomas's request: "Master, teach us how to pray."
144:1.7 요한은 다가오는 왕국에서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쳤었다. 예수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요한의 기도 형식을 금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매우 일찍부터 자신들의 주(主)가 그러한 고정된 틀에 박힌 기도를 전적으로 승인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이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끊임없이 간청했다. 12사도들은 예수가 인정하는 기도의 형식이 어떤 것이지를 알기 원하였다. 그리하여 예수가 이때에 도마의 간청에 대한 응답으로 그들에게 지침이 되는 기도 형식을 하나 가르칠 것을 허락한 것은, 주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간단한 기도문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예수의 이 교훈은 그들이 길보아 산에서 체류하던 셋째 주간의 어느 날 오후에 실시되었다. John had taught his disciples a prayer, a prayer for salvation in the coming kingdom. Although Jesus never forbade his followers to use John's form of prayer, the apostles very early perceived that their Master did not fully approve of the practice of uttering set and formal prayers. Nevertheless, believers constantly requested to be taught how to pray. The twelve longed to know what form of petition Jesus would approve. And it was chiefly because of this need for some simple petition for the common people that Jesus at this time consented, in answer to Thomas's request, to teach them a suggestive form of prayer. Jesus gave this lesson one afternoon in the third week of their sojourn on Mount Gilboa.

2. 기도에 관한 강연  


2. THE DISCOURSE ON PRAYER

144:2.1 “요한은 진실로 너희에게 간단한 기도 형식을 가르쳤다: ‘오, 아버지시여, 우리를 죄로부터 사하여 주시고,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며, 당신의 영으로 하여금 우리의 가슴을 언제까지나 정화해 주옵소서. 아멘!' 그는 너희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있도록 이 기도문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가 기도할 때에 너희 자신의 혼에 대한 표현으로 그렇게 일련의 그리고 틀에 박힌 기도를 해야 된다는 의도가 아니었다. "John indeed taught you a simple form of prayer: `O Father, cleanse us from sin, show us your glory, reveal your love, and let your spirit sanctify our hearts forevermore, Amen!' He taught this prayer that you might have something to teach the multitude. He did not intend that you should use such a set and formal petition as the expression of your own souls in prayer.
144:2.2 “기도는 영(靈)을 향한 혼(魂)의 태도에서의 전적으로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표현이다; 기도는 아들관계의 교제이며 동료관계의 표현이어야 한다. 기도가, 영에 의해 쓰였을 때는. 협동을 이루는 영적 진보로 이끌어 준다. 이상적인 기도는 지능적 경배로 이끌어주는 영적 교제의 한 형태이다. 진정으로 기도함은 너희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늘방향으로 다가가는 진지한 태도이다. "Prayer is entirely a personal and spontaneous expression of the attitude of the soul toward the spirit; prayer should be the communion of sonship and the expression of fellowship. Prayer, when indited by the spirit, leads to co-operative spiritual progress. The ideal prayer is a form of spiritual communion which leads to intelligent worship. True praying is the sincere attitude of reaching heavenward for the attainment of your ideals.
144:2.3 “기도는 혼의 호흡이며, 아버지의 뜻을 확실하게 하려는 너희의 시도에서 끈질기게 계속 너희를 이끌어야만 한다. 만약에 너희 중에 누가 이웃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친구여, 나의 어떤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으니 빵 세 덩어리를 내게 빌려 달라.'고 했는데; 그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내가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어나 네게 빵을 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면, 너희는 끈질기게 계속 너희 친구가 배가 고프다는 것과 네가 그에게 제공할 아무 음식도 없다는 것을 설명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는데, 비록 그가 너희 친구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너희에게 빵을 주지는 않을지라도 끈질지게 조르는 것 때문에 일어나 필요한대로 너희에게 빵을 줄 것이다. 만약에 그처럼 너희의 끈질긴 계속이 필사 사람으로부터도 특혜를 얻을 수가 있다면, 영 안에서 행하는 너희의 끈질긴 계속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기꺼이 내미는 손들로부터 너희를 위한 생명의 빵을 얼마나 더 많이 얻을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다시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요; 찾아나서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이처럼 구하는 자는 모두 받는다; 찾아나서는 그는 발견한다; 그리고 구원의 문을 두드리는 그에게는 문이 열릴 것이다. "Prayer is the breath of the soul and should lead you to be persistent in your attempt to ascertain the Father's will. If any one of you has a neighbor, and you go to him at midnight and say: `Friend, lend me three loaves, for a friend of mine on a journey has come to see me, and I have nothing to set before him'; and if your neighbor answers, `Trouble me not, for the door is now shut and the children and I are in bed; therefore I cannot rise and give you bread,' you will persist, explaining that your friend hungers, and that you have no food to offer him. I say to you, though your neighbor will not rise and give you bread because he is your friend, yet because of your importunity he will get up and give you as many loaves as you need. If, then, persistence will win favors even from mortal man, how much more will your persistence in the spirit win the bread of life for you from the willing hands of the Father in heaven. Again I say to you: Ask and it shall be given you; seek and you shall find; knock and it shall be opened to you. For every one who asks receives; he who seeks finds; and to him who knocks the door of salvation will be opened.
144:2.4 “너희들 중에서 아버지가 된 사람이, 만일 자기 자식이 어리석게 간청하고 있다면, 자식의 그릇된 청원의 관점에서보다는 오히려 그 대신 어버이의 지혜에 따라서 주는 것을 주저하겠느냐? 만약에 자녀에게 빵이 필요한데, 그가 현명하지 못하게 돌덩이를 원한다고 해서 너희가 아이에게 돌덩이를 주겠느냐? 아이에게 생선이 필요한데, 그물에 생선과 함께 물뱀이 우연히 걸려들었고 아이가 바보스럽게도 그 뱀을 청한다고 해서 너희가 그에게 뱀을 주겠느냐? 만약에 그렇다면 너희 인간도 소원하는 것을 어떻게 들어주는지를 알고, 너희 자식들에게 좋고 알맞은 선물을 어떻게 주는 줄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영과 다른 많은 축복들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사람들은 항상 기도하고 그리고 낙망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Which of you who is a father, if his son asks unwisely, would hesitate to give in accordance with parental wisdom rather than in the terms of the son's faulty petition? If the child needs a loaf, will you give him a stone just because he unwisely asks for it? If your son needs a fish, will you give him a watersnake just because it may chance to come up in the net with the fish and the child foolishly asks for the serpent? If you, then, being mortal and finite, know how to answer prayer and give good and appropriate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shall your heavenly Father give the spirit and many additional blessings to those who ask him? Men ought always to pray and not become discouraged.
144:2.5 “어느 사악한 도시에 살았던 한 재판관 이야기를 해주겠다. 이 재판관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였다. 이제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는데 이 불공평한 재판관에게 계속 가서 ‘내 원수로부터 나를 보호하소서'라고 부탁하였다.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곧 속으로, ‘내가 하느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지만,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는 것을 그만둘 것 같지 않으니 내가 그녀를 옹호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이 이야기를 너희에게 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라고 용기를 주기 위한 것이며, 너희의 간청이 공정하고 정의로우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희의 집요함은, 비록 하느님의 은혜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너희의 땅에서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며, 영적 수용력을 위한 너희 혼의 용량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Let me tell you the story of a certain judge who lived in a wicked city. This judge feared not God nor had respect for man. Now there was a needy widow in that city who came repeatedly to this unjust judge, saying, `Protect me from my adversary.' For some time he would not give ear to her, but presently he said to himself: `Though I fear not God nor have regard for man, yet because this widow ceases not to trouble me, I will vindicate her lest she wear me out by her continual coming.' These stories I tell you to encourage you to persist in praying and not to intimate that your petitions will change the just and righteous Father above. Your persistence, however, is not to win favor with God but to change your earth attitude and to enlarge your soul's capacity for spirit receptivity.
144:2.6 “그러나 너희는 기도할 때, 너희 신앙을 거의 발휘하지 못한다. 참된 신앙은, 혼의 확대와 영적 향상의 길에 가로놓인 물질적 어려움이라는 산들도 옮기게 될 것이다.” "But when you pray, you exercise so little faith. Genuine faith will remove mountains of material difficulty which may chance to lie in the path of soul expansion and spiritual progress."

3. 믿는 자의 기도  


3. THE BELIEVER'S PRAYER

144:3.1 그러나 사도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으며; 예수가 새로운 제자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범이 될 만한 기도문을 자기들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였다. 기도에 관한 이 교훈을 듣고 난 후, 야고보 세베대가 말하였다: “참으로 좋습니다,(主)여, 그러나 우리는 오로지 우리 자신들을 위한 기도형식을 그렇게 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받아들여지는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자주 간청하는 새로운 신도들 때문입니다.” But the apostles were not yet satisfied; they desired Jesus to give them a model prayer which they could teach the new disciples. After listening to this discourse on prayer, James Zebedee said: "Very good, Master, but we do not desire a form of prayer for ourselves so much as for the newer believers who so frequently beseech us, `Teach us how acceptably to pray to the Father in heaven.'"
144:3.2 야고보가 말을 끝내자 예수가 말씀하였다: “만약 너희가 여전히 그러한 기도를 원한다면, 내가 나사렛에서 내 형제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알려주겠다: When James had finished speaking, Jesus said: "If, then, you still desire such a prayer, I would present the one which I taught my brothers and sisters in Nazareth":
144:3.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하늘의 왕국이 임하옵소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내일을 위한 우리의 빵을 주시고;
우리의 혼을 생명의 물로 새롭게 하옵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모든 빚진 것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시험에서 구원하시고, 악에서 건져주시며,
우리를 당신처럼 점점 더 완전하게 만들어 주옵소서.

Our Father who is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his day our bread for tomorrow;

Refresh our souls with the water of life.

And forgive us every one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Save us in temptation, deliver us from evil,

And increasingly make us perfect like yourself.

144:3.4 사도들이 신도들을 위한 모범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예수께 원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세례요한은 자기 추종자들에게 여러 가지의 기도문들을 가르쳤으며, 모든 다른 위대한 선생들도 자기 제자들을 위한 기도문들을 만들었었다. 유대인들의 종교 교사들은 25 내지 30개의 고정된 기도문들을 만들어서, 그것들을 회당에서나 길거리의 모퉁이에서까지도 낭송했다. 예수는 특히 대중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을 혐오하였다. 12사도들은 이때까지 그가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을 겨우 몇 번 정도만 목격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그가 온 밤을 기도나 경배로 지새우는 것을 보았으며, 그의 기도 방식이나 형식을 무척 알고 싶어 하였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그들이 자기들에게도 그와 같은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예수께 청하였을 때, 그들은 진정으로 대중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방법을 알기 원하였던 것이다. It is not strange that the apostles desired Jesus to teach them a model prayer for believers. John the Baptist had taught his followers several prayers; all great teachers had formulated prayers for their pupils. The religious teachers of the Jews had some twenty-five or thirty set prayers which they recited in the synagogues and even on the street corners. Jesus was particularly averse to praying in public. Up to this time the twelve had heard him pray only a few times. They observed him spending entire nights at prayer or worship, and they were very curious to know the manner or form of his petitions. They were really hard pressed to know what to answer the multitudes when they asked to be taught how to pray as John had taught his disciples.
144:3.5 예수는 언제나 남 몰래 기도할 것을 12사도들에게 가르치셨으며; 그들 자신들끼리만 자연 속으로 가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도록 지시하였다. Jesus taught the twelve always to pray in secret; to go off by themselves amidst the quiet surroundings of nature or to go in their rooms and shut the doors when they engaged in prayer.
144:3.6 예수가 죽으시고 아버지께로 상승한 후에, 많은 신도들은 소위 주기도문이라고 불리던 이 기도문을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로 끝나도록 덧붙였다. 그리고 훨씬 나중에는 복사하는 과정에서 두 줄이 빠지게 되었고, 다음과 같은 구절이 이 기도문에 보태졌다: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당신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After Jesus' death and ascension to the Father it became the practice of many believers to finish this so-called Lord's prayer by the addition of --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Still later on, two lines were lost in copying, and there was added to this prayer an extra clause, reading: "For yours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evermore."
144:3.7 예수나사렛 집에서 기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도들에게 공동체 형식의 기도문을 가르치셨다. 그는 형식을 갖춘 개인적 기도를 절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단지 집단, 가족, 혹은 사회적인 차원에서만 그런 간청들을 하도록 가르치셨다. 그리고 자신은 절대로 그런 기도를 자청해서 하지 않았다. Jesus gave the apostles the prayer in collective form as they had prayed it in the Nazareth home. He never taught a formal personal prayer, only group, family, or social petitions. And he never volunteered to do that.
144:3.8 예수는 효력이 있는 기도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Jesus taught that effective prayer must be:
 

 1. 

사심 없음─홀로 자기 자신을 위함이 아님

 2.

믿음─신앙에 따름.

 3.

성실─가슴에서의 정직함.

 4.

지능적─빛에 따름.

 5.

신뢰성─아버지의 모든-지혜의 뜻에 복종함.

1.

Unselfish -- not alone for oneself.

2.

Believing -- according to faith.

3.

Sincere -- honest of heart.

4.

Intelligent -- according to light.

5.

Trustful -- in submission to the Father's all-wise will.

144:3.9 예수가 산 위에서 기도하며 밤을 지새울 때, 그것은 주로 자신의 제자들을 위한 것이었고, 특히 12사도들을 위해서였다. 주(主)는 자신의 낙원천국 아버지와의 교제를 납득하는 본성의 경배를 많이 드리긴 하였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한 적이 거의 없었다. When Jesus spent whole nights on the mountain in prayer, it was mainly for his disciples, particularly for the twelve. The Master prayed very little for himself, although he engaged in much worship of the nature of understanding communion with his Paradise Father.

4. 기도에 대하여 또다시 설명  


4. MORE ABOUT PRAYER

144:4.1 기도에 관한 강연이 있은 후 여러 날 동안, 사도들은 주(主)께 가장 중요하고 경건한 이 관습에 관해 질문을 계속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기도와 경배에 관하여 사도들에게 주신 예수의 가르침은 현대 용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되고 다시 서술될 수 있다: For days after the discourse on prayer the apostles continued to ask the Master questions regarding this all-important and worshipful practice. Jesus' instruction to the apostles during these days, regarding prayer and worship, may be summarized and restated in modern phraseology as follows:
144:4.2 어떤 청원이든지 진지하고 갈망에 찬 반복은, 그러한 기도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진지한 표현이고 신앙에서 나왔다면, 얼마나 무분별하던지 또는 직접응답이 불가능하던지 상관없이, 그것은 영적 수용력을 위한 혼의 힘을 확대시키는 일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The earnest and longing repetition of any petition, when such a prayer is the sincere expression of a child of God and is uttered in faith, no matter how ill-advised or impossible of direct answer, never fails to expand the soul's capacity for spiritual receptivity.
144:4.3 기도할 때에는 언제나, 아들관계가 하나의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어떤 자녀도 아들이나 딸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하여 해야 할 것은 없다. 지상의 자녀는 부모의 뜻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느님의 자녀는 은총 안에서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영의 새 생명으로 태어난다. 따라서 하늘의 왕국─신성한 아들관계─은 어린아이가 받아들이듯 그렇게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너희가 정의로움─진보하는 성격 발달─은 획득하지만, 아들관계는 너희가 은총에 의하여 그리고 신앙을 통하여 받는다. In all praying, remember that sonship is a gift. No child has aught to do with earning the status of son or daughter. The earth child comes into being by the will of its parents. Even so, the child of God comes into grace and the new life of the spirit by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Therefore must the kingdom of heaven -- divine sonship -- be received as by a little child. You earn righteousness -- progressive character development -- but you receive sonship by grace and through faith.
144:4.4 기도가 예수를 이끌어서, 그의 혼이 우주들의 우주의 최극 통치자들과의 초(超)교제가 이루어지게 하였다. 기도는 이 세상의 필사자들을 진정한 경배의 교제로 이끌어줄 것이다. 수용능력에 대한 혼의 영적 용량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개인적으로 충당될 수 있고 그리고 의식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하늘축복의 분량을 결정한다. Prayer led Jesus up to the supercommunion of his soul with the Supreme Rulers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Prayer will lead the mortals of earth up to the communion of true worship. The soul's spiritual capacity for receptivity determines the quantity of heavenly blessings which can be personally appropriated and consciously realized as an answer to prayer.
144:4.5 기도와 그것에 관련된 경배는 일생의 매일의 진부한 일과로부터, 물질적 실재의 고되고 단조로운 삶으로부터 해방되는 하나의 기법이다. 그것은 영성화된 자아-실현과 지능적이고 종교적 달성의 개별존재성에 다가가는 통로이다. Prayer and its associated worship is a technique of detachment from the daily routine of life, from the monotonous grind of material existence. It is an avenue of approach to spiritualized self-realization and individuality of intellectual and religious attainment.
144:4.6 기도는 해로운 내적 성찰에 대한 해독제이다. 적어도 주(主)가 가르쳐 준 것과 같은 기도는 혼에 그렇게 매우 유익한 사명활동이다. 예수는 자신의 동료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의 유익한 영향들을 이용하였다. 주(主)는 평소에 단수가 아닌 복수로 기도하였다. 자신의 지상(地上) 일생의 큰 위기 속에서 오로지 한 번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Prayer is an antidote for harmful introspection. At least, prayer as the Master taught it is such a beneficent ministry to the soul. Jesus consistently employed the beneficial influence of praying for one's fellows. The Master usually prayed in the plural, not in the singular. Only in the great crises of his earth life did Jesus ever pray for himself.
144:4.7 기도는 인류종족들의 물질문명 한 가운데에 있는 영(靈) 생명의 숨이다. 경배는 쾌락을-찾아나서는 필사자들의 세대를 위한 구원이다. Prayer is the breath of the spirit life in the midst of the material civilization of the races of mankind. Worship is salvation for the pleasure-seeking generations of mortals.
144:4.8 기도가 혼의 영적 건전지를 재충전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해도 좋은 것 같이, 그처럼 경배는 우주 아버지의 무한한 영의 우주 방송을 잡아채려고 혼 안에서 조율하고 있는 행동에 비교될 수도 있다. As prayer may be likened to recharging the spiritual batteries of the soul, so worship may be compared to the act of tuning in the soul to catch the universe broadcasts of the infinite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144:4.9 기도는 자녀가 자신의 영 아버지를 진지하게 그리고 갈망하면서 쳐다보는 표정이다; 그것은 인간 의지를 신성한 의지와 교환하고 있는 정신적 과정이다. 기도는, 어떤 무엇으로 있는 그것을, 어떤 무엇으로 되어있어야 하는 그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신성한 계획의 한 부분이다. Prayer is the sincere and longing look of the child to its spirit Father; it is a psychologic process of exchanging the human will for the divine will. Prayer is a part of the divine plan for making over that which is into that which ought to be.
144:4.10 예수의 긴 철야(徹夜)기도에 그렇게 자주 동반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그가 기도하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주(主)가 기도를 거의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질적으로 모든 예수의 기도는 영으로 그리고 가슴으로─침묵으로─하였다. One of the reasons why Peter, James, and John, who so often accompanied Jesus on his long night vigils, never heard Jesus pray, was because their Master so rarely uttered his prayers as spoken words. Practically all of Jesus' praying was done in the spirit and in the heart -- silently.
144:4.11 모든 사도들 중에서 베드로야고보가 기도와 경배에 관한 주(主)의 가르침을 가장 가깝게 이해하였다. Of all the apostles, Peter and James came the nearest to comprehending the Master's teaching about prayer and worship.

5. 기도의 다른 형식들  


5. OTHER FORMS OF PRAYER

144:5.1 때때로, 예수의 땅에서 머무르는 나머지 기간 동안, 그는 여러 개의 다른 기도 형식들을 사도들에게 알려주었으나, 그러나 그는 이것을 단지 다른 방법들을 예시하면서 가져온 것이며 그리고 그는 이들 “비유적인 기도들”이 대중들에게 가르쳐져서는 안 된다고 명하였다. 그 기도들 중에서 많은 것들은 사람이 사는 다른 행성들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예수는 이 사실을 12사도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이 기도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From time to time, during the remainder of Jesus' sojourn on earth, he brought to the notice of the apostles several additional forms of prayer, but he did this only in illustration of other matters, and he enjoined that these "parable prayers" should not be taught to the multitudes. Many of them were from other inhabited planets, but this fact Jesus did not reveal to the twelve. Among these prayers were the following:
144:5.2
그 안에 우주의 영역들이 존재해 있는 우리의 아버지시여,
당신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며 당신의 성격이 무한한 영광을 받으소서.
당신의 현존이 우리를 감싸주시고, 당신의 영광이 나타나시며
그것이 위에서 완전하게 보인 것처럼 불완전하게나마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하소서.
우리에게 오늘 날 활기찬 빛의 힘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상상하는 악의 길로 빠져들지 말게 하시며,
영속하는 힘, 영광스러운 내주하심이 당신의 것이오니,
우리에게는 당신의 아들의 무한한 사랑의 영구한 선물을 주시옵소서.
참으로 그러하오니, 그렇게 영속적인 진리가 되소서.

Our Father in whom consist the universe realms,

Uplifted be your name and all-glorious your character.

Your presence encompasses us, and your glory is manifested

Imperfectly through us as it is in perfection shown on high.

Give us this day the vivifying forces of light,

And let us not stray into the evil bypaths of our imagination,

For yours is the glorious indwelling, the everlasting power,

And to us, the eternal gift of the infinite love of your Son.

Even so, and everlastingly true.

***

***

144:5.3
우주의 중심이 되시는 우리의 창조적인 부모시여,
우리에게 당신의 본성을 부여하시고 당신의 성격을 주시옵소서.
자비로 우리를 당신의 아들들과 딸들로 만드시고,
우리의 영원한 성취를 통하여 당신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소서.
당신이 조정하시고 통제하시는 영을 우리 안에 살고 거하시게 하셔서
천사가 빛으로 당신의 명령을 행하듯이 우리로 이 구체에서 당신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오늘날 진리의 길을 따라 향상하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우리를 타성과 악과 모든 악한 범죄로부터 구원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에게 자애로움을 보인 것처럼 우리를 참으소서.
우리 창조체의 가슴속에 당신의 자비의 영을 보내 주시옵소서.
당신이 우리 손을 잡고 불확실한 인생의 미로를 걸어갈 때 한 발자국마다 이끌어 주시고,
우리가 세상을 마칠 때에 신실한 우리의 영들을 당신 자신의 품속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참으로 그러하사오니, 우리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Our creative Parent, who is in the center of the universe,

Bestow upon us your nature and give to us your character.

Make us sons and daughters of yours by grace

And glorify your name through our eternal achievement.

Your adjusting and controlling spirit give to live and dwell within us

That we may do your will on this sphere as angels do your bidding in light.

Sustain us this day in our progress along the path of truth.

Deliver us from inertia, evil, and all sinful transgression.

Be patient with us as we show loving-kindness to our fellows.

Shed abroad the spirit of your mercy in our creature hearts.

Lead us by your own hand, step by step, through the uncertain maze of life,

And when our end shall come, receive into your own bosom our faithful spirits.

Even so, not our desires but your will be done.

***

***

144:5.4
우리의 완전하시고 의로우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오늘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밝히시옵소서.
우리의 발걸음을 정화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합동하소서.
우리를 영원으로 가는 길로 항상 인도하소서.
능력이 가득할 때까지 우리를 지혜로 채워주시며
당신의 무한한 에너지로 생기를 주소서.
성(聖)천사 무리의 현존과 인도에 대한
신성한 의식으로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옵소서.
빛의 길로 우리를 항상 끌어 올려 주시고;
큰 심판의 날에 우리를 온전히 옹호하여 주옵소서.
영원한 영광 안에서 당신 자신처럼 우리를 만드시고
높은 곳에 있는 당신의 끝없는 봉사 안으로 우리를 받아주소서.

Our perfect and righteous heavenly Father,

This day guide and direct our journey.

Sanctify our steps and co-ordinate our thoughts.

Ever lead us in the ways of eternal progress.

Fill us with wisdom to the fullness of power

And vitalize us with your infinite energy.

Inspire us with the divine consciousness of

The presence and guidance of the seraphic hosts.

Guide us ever upward in the pathway of light;

Justify us fully in the day of the great judgment.

Make us like yourself in eternal glory

And receive us into your endless service on high.

***

***

144:5.5
신비 속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당신의 거룩한 성격을 나타내소서.
오늘날 지상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길과 빛과 진리를 보여 주소서.
우리에게 영원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시고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의지를 주소서.
당신의 신성한 왕 신분을 우리 안에 세우시고
그것으로써 우리에게 자아의 충분한 통달을 증여해 주소서.
우리로 하여금 어두움과 죽음의 길로 들게 하지 마시고;
생명수 곁으로 영속적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소서.
당신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이러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당신을 더욱 더 닮게 하심을 기뻐하옵소서.
마침내, 신성한 아들을 위하여
영원한 품안으로 우리를 거두어 주옵소서.
참으로 그러하사오니, 우리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Our Father who is in the mystery,

Reveal to us your holy character.

Give your children on earth this day

To see the way, the light, and the truth.

Show us the pathway of eternal progress

And give us the will to walk therein.

Establish within us your divine kingship

And thereby bestow upon us the full mastery of self.

Let us not stray into paths of darkness and death;

Lead us everlastingly beside the waters of life.

Hear these our prayers for your own sake;

Be pleased to make us more and more like yourself.

At the end, for the sake of the divine Son,

Receive us into the eternal arms.

Even so, not our will but yours be done.

***

***

144:5.6
두 분이 하나가 되어 부모가 되시는 영광의 아버지와 어머니시여,
당신의 성스러운 본성에 우리로 하여금 충성하게 하소서.
당신의 신성한 영의 증여와 선물로
당신이 가지신 스스로를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 다시 사시고,
당신이 높은 곳에서 완전하게 그리고 장엄하게 보이듯이
그렇게 이 구체에서 불완전하게 당신을 다시 보이옵소서.
우리에게 형제신분의 즐거운 사명활동을 날마다 허락하시고,
사랑하는 봉사의 길로 매 순간마다 우리를 인도하소서.
우리에게 언제나 끊임없이 참으시며
우리로 당신의 인내를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보이게 하소서.
모든 일을 잘 다스리는 신성한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고,
모든 창조체에게 은혜가 되는 무한한 사랑을 주소서.
우리에게 당신의 인내와 자애로움을 내리시고
우리의 자비로 이 영역의 약한 곳을 끌어안게 하소서.
우리의 인생이 끝마쳐지면, 그것이 당신에게 영광이 되며,
당신의 선한 영에게 기쁨이 되시며, 우리의 혼의 조력자들에게 만족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시여, 우리의 소망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인간 자녀들의 영원한 선을 위하여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참으로 그러하시기를 원하나이다.

Glorious Father and Mother, in one parent combined,

Loyal would we be to your divine nature.

Your own self to live again in and through us

By the gift and bestowal of your divine spirit,

Thus reproducing you imperfectly in this sphere

As you are perfectly and majestically shown on high.

Give us day by day your sweet ministry of brotherhood

And lead us moment by moment in the pathway of loving service.

Be you ever and unfailingly patient with us

Even as we show forth your patience to our children.

Give us the divine wisdom that does all things well

And the infinite love that is gracious to every creature.

Bestow upon us your patience and loving-kindness

That our charity may enfold the weak of the realm.

And when our career is finished, make it an honor to your name,

A pleasure to your good spirit, and a satisfaction to our soul helpers.

Not as we wish, our loving Father, but as you desire the eternal good of your mortal children,

Even so may it be.

***

***

144:5.7
우리의 모든 믿음의 근원이며 모든 능력의 중심이시여,
당신의 온전히 자비로우신 아들의 이름이 경배를 받으시고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당신의 자비심과 축복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그렇게 우리로 당신의 뜻을 행하고 당신의 명령을 행하도록 힘을 주소서.
매 순간 순간마다 우리에게 생명나무의 양분을 주시고;
우리를 매일 그 강의 생명수로 새롭게 하소서.
매 발자국마다 우리를 어둠에서 끌어내시고 신성한 빛으로 인도하소서.
내재하시는 영의 변환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그리고 필사자 마지막이 마침내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를 당신자신에게로 받아주시고 우리를 영원 가운데 나오게 보내주옵소서.
결실의 봉사에 대한 천상의 왕관으로 우리에게 씌우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아들거룩한 권능자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끝이 없이 우주를 통하여, 그렇게 되기를

Our all-faithful Source and all-powerful Center,

Reverent and holy be the name of your all-gracious Son.

Your bounties and your blessings have descended upon us,

Thus empowering us to perform your will and execute your bidding.

Give us moment by moment the sustenance of the tree of life;

Refresh us day by day with the living waters of the river thereof.

Step by step lead us out of darkness and into the divine light.

Renew our minds by the transformations of the indwelling spirit,

And when the mortal end shall finally come upon us,

Receive us to yourself and send us forth in eternity.

Crown us with celestial diadems of fruitful service,

And we shall glorify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Influence.

Even so, throughout a universe without end.

***

***

144:5.8
우주의 신비한 곳에 거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시여,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당신의 자비를 공경하며, 당신의 판단을 존경하나이다.
어스름 안에서 우리의 변덕스러운 걸음을 인도하시기를 우리가 탄원할 때에.
정의로움의 태양이 우리를 비추어 한 낮에 있게 하소서.
당신 자신이 선택한 길로 우리 손을 잡고 인도하시고
길이 평탄치 않고 어두운 시간에서 우리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우리가 자주 당신을 소홀히 하고 잊은 것처럼 우리를 잊지 마시고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기를 갈망하듯이 당신이 자비로우시고 우리를 사랑하옵소서.
우리가 우리를 괴롭히고 다치게 하는 자들을 공의로 용서한 것 같이
우리를 친절함으로 내려다보시고 자비로서 우리를 용서하소서.
장엄한 아들의 사랑과 헌신과 증여가
당신의 끝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유용한 생명을 영속하게 하소서.
우주들의 하느님이 그의 영을 충만할 정도로 우리에게 보내시며;
이 영의 인도를 따라 열매를 맺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헌신하는 성(聖)천사 무리들의 사랑 많은 사명활동으로
세대 끝까지 아들이 우리를 이끌고 인도하게 하소서.
우리가 언제나 점점 더 당신자신과 닮게 하시고
우리의 인생이 끝날 때 우리를 영원한 낙원천국의 품안으로 받아 주소서.
참으로 그러하사오니, 증여되는 아들의 이름으로
그리고 최극자 아버지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하소서.

Our Father who dwells in the secret places of the universe,

Honored be your name, reverenced your mercy, and respected your judgment.

Let the sun of righteousness shine upon us at noontime,

While we beseech you to guide our wayward steps in the twilight.

Lead us by the hand in the ways of your own choosing

And forsake us not when the path is hard and the hours are dark.

Forget us not as we so often neglect and forget you.

But be you merciful and love us as we desire to love you.

Look down upon us in kindness and forgive us in mercy

As we in justice forgive those who distress and injure us.

May the love, devotion, and bestowal of the majestic Son

Make available life everlasting with your endless mercy and love.

May the God of universes bestow upon us the full measure of his spirit;

Give us grace to yield to the leading of this spirit.

By the loving ministry of devoted seraphic hosts

May the Son guide and lead us to the end of the age.

Make us ever and increasingly like yourself

And at our end receive us into the eternal Paradise embrace.

Even so, in the name of the bestowal Son

And for the honor and glory of the Supreme Father.

144:5.9 사도들은 이러한 기도들을 공개적인 가르침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이 모든 계시들이 사도들의 개인적 종교 체험에 많은 혜택을 주었다. 예수는 이것들 그리고 다른 모형의 기도들을 12사도들의 사사로운 가르침에 관련하면서 예제로 사용하였는데, 이 기록에서 이들 7개의 표본 기도들이 옮겨 쓸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되었다. Though the apostles were not at liberty to present these prayer lessons in their public teachings, they profited much from all of these revelations in their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s. Jesus utilized these and other prayer models as illustrations in connection with the intimate instruction of the twelve, and specific permission has been granted for transcribing these seven specimen prayers into this record.

6. 요한의 사도들과의 회의  


6. CONFERENCE WITH JOHN'S APOSTLES

144:6.1 10월 1일경 빌립과 몇 명의 동료 사도들이 가까운 마을에서 음식물을 사고 있는 중에 세례요한의 제자들 중 몇 명을 만나게 되었다. 시장(市場)에서의 이런 우연한 만남의 결과로 예수의 사도들과 요한의 사도들이 길보아 야영지에서 삼 주일 동안의 회합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요한이 최근에 예수를 본받아 12명의 지도자들을 사도들로 임명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요한이 자신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 중 우두머리인 아브너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예수는 이 공동 회합의 첫 주일 동안 내내 길보아 야영지에 있었지만, 마지막 두 주일 동안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Around the first of October, Philip and some of his fellow apostles were in a near-by village buying food when they met some of the apostles of John the Baptist. As a result of this chance meeting in the market place there came about a three weeks' conference at the Gilboa camp between the apostles of Jesus and the apostles of John, for John had recently appointed twelve of his leaders to be apostles, following the precedent of Jesus. John had done this in response to the urging of Abner, the chief of his loyal supporters. Jesus was present at the Gilboa camp throughout the first week of this joint conference but absented himself the last two weeks.
144:6.2 이 달의 두 번째 주 초순경에, 아브너길보아 야영지에 있던 자신의 모든 동료들을 소집하였고, 예수의 사도들과의 회합에 참석할 준비를 마쳤다. 이들 24명은 삼 주일 동안 하루에 3번씩, 일주일에 엿새 동안 회합을 가졌다. 첫 번째 주에는 예수가 그들과 함께 오전, 오후, 밤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들은 주(主)가 자기들과 함께 계시면서 공동 토의를 주관해 주시기를 원하였지만, 그는 한사코 그들의 토의에 참여하기를 거절하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 번에 걸쳐 강연을 허락하였다. 예수가 24명의 사람들에게 하였던 강연들은 동정심, 협조, 관용에 관한 것이었다. By the beginning of the second week of this month, Abner had assembled all of his associates at the Gilboa camp and was prepared to go into council with the apostles of Jesus. For three weeks these twenty-four men were in session three times a day and for six days each week. The first week Jesus mingled with them between their forenoon, afternoon, and evening sessions. They wanted the Master to meet with them and preside over their joint deliberations, but he steadfastly refused to participate in their discussions, though he did consent to speak to them on three occasions. These talks by Jesus to the twenty-four were on sympathy, co-operation, and tolerance.
144:6.3 안드레아브너는 두 사도 집단들의 공동 회의에서 사회를 번갈아 맡았다. 이 사람들에게는 토의해야 할 많은 어려움들과 풀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거듭하여 그들이 예수께 자신들의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갔으나, 단지 다음의 대답만을 들을 수 있을 뿐 이었다: “나는 오직 너희의 개인적 문제와 순수하게 종교적인 문제들에만 관심이 있다. 나는 개별존재에 대한 아버지의 대리인이며, 집단에 대한 대리인은 아니다. 너희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개인적 어려움이 있으면 나에게 가지고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의 말을 들어주고, 너희의 문제에 대한 조언을 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종교적인 문제들에서 다양한 인간 해석들에 대한 합동이라든지 종교의 사회화에 대한 문제들에 관해서는 너희 자신들의 판단으로 그것들을 풀어나가야 하는 운명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동정심을 갖고 있고 항상 관심을 갖고 있으며, 비(非)영적 의미의 문제들을 다루면서 너희들이 결론에 도달하고 모두가 그것에 동의를 한 경우에는, 내가 나의 충분한 동의와 진정한 협조를 할 것을 미리 약속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제 너희의 자유로움에 제약이 되지 않도록 나는 2주 동안 떠나겠다. 내가 너희에게 돌아 올 것이니, 나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내 아버지의 일을 돌보고자 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곳 이외의 다른 영역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Andrew and Abner alternated in presiding over these joint meetings of the two apostolic groups. These men had many difficulties to discuss and numerous problems to solve. Again and again would they take their troubles to Jesus, only to hear him say: "I am concerned only with your personal and purely religious problems. I am the representative of the Father to the individual, not to the group. If you are in personal difficulty in your relations with God, come to me, and I will hear you and counsel you in the solution of your problem. But when you enter upon the co-ordination of divergent human interpretations of religious questions and upon the socialization of religion, you are destined to solve all such problems by your own decisions. Albeit, I am ever sympathetic and always interested, and when you arrive at your conclusions touching these matters of nonspiritual import, provided you are all agreed, then I pledge in advance my full approval and hearty co-operation. And now, in order to leave you unhampered in your deliberations, I am leaving you for two weeks. Be not anxious about me, for I will return to you. I will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for we have other realms besides this one."
144:6.4 그런 말씀을 하고 예수가 산을 내려 가셨는데, 그 후 그들은 2주 동안 그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간 동안 그가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였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 24명의 사람들은, 주(主)가 떠난 영향으로 매우 좌절되었으므로, 다시 자신들의 문제들 가운데로 돌아가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하였다. 어쨌든, 한 주일이 지나기 전에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핵심적인 토론으로 돌아갔으며, 예수의 도움을 구할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After thus speaking, Jesus went down the mountainside, and they saw him no more for two full weeks. And they never knew where he went or what he did during these days. It was some time before the twenty-four could settle down to the serious consideration of their problems, they were so disconcerted by the absence of the Master. However, within a week they were again in the heart of their discussions, and they could not go to Jesus for help.
144:6.5 그 집단들이 첫 번째로 동의하였던 항목은 예수가 최근에 그들에게 가르쳤던 기도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이 기도를 신도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정하는 일에 양쪽 사도들은 투표에 의해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The first item the group agreed upon was the adoption of the prayer which Jesus had so recently taught them. It was unanimously voted to accept this prayer as the one to be taught believers by both groups of apostles.
144:6.6 그 다음으로 그들이 결정한 것은, 요한이 살아있는 한, 그가 감옥에 있던지 석방되든지에 관계없이 두 12사도 집단들은 현재의 자신들의 일을 계속할 것과 그때마다 쌍방의 동의를 얻은 장소에서 일 주일 동안의 연합 회의를 매 3달마다 갖는 것이었다. They next decided that, as long as John lived, whether in prison or out, both groups of twelve apostles would go on with their work, and that joint meetings for one week would be held every three months at places to be agreed upon from time to time.
144:6.7 그러나 그들의 모든 문제들 중에서 가장 심각했던 부분은 세례에 관한 것이었다. 그 문제는 그것에 대하여 예수가 어떤 발언도 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다. 그들은 마침내 다음과 같이 동의하였다: 요한이 살아 있는 한, 혹은 그들이 공동으로 이 결정을 수정하기까지는, 단지 요한의 사도들만이 신도들에게 세례를 줄 것이며 예수의 사도들만이 최종적으로 새로운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때부터 요한이 죽을 때까지 두 명의 요한의 사도가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와 그의 사도들과 동행하였는데, 그것은 세례가 왕국의 행사로는 밖으로 내보이는 결연(結緣)으로서. 첫 단계가 된다는 것을 공동 협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But the most serious of all their problems was the question of baptism. Their difficulties were all the more aggravated because Jesus had refused to make any pronouncement upon the subject. They finally agreed: As long as John lived, or until they might jointly modify this decision, only the apostles of John would baptize believers, and only the apostles of Jesus would finally instruct the new disciples. Accordingly, from that time until after the death of John, two of the apostles of John accompanied Jesus and his apostles to baptize believers, for the joint council had unanimously voted that baptism was to become the initial step in the outward alliance with the affairs of the kingdom.
144:6.8 그 다음으로 동의된 것은, 요한이 죽을 경우에 요한의 사도들이 예수께 자청하여 나와 그의 지도를 따를 것이며, 예수나 그의 사도들의 허락 없이는 더 이상 세례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It was next agreed, in case of the death of John, that the apostles of John would present themselves to Jesus and become subject to his direction, and that they would baptize no more unless authorized by Jesus or his apostles.
144:6.9 그 다음에는, 요한이 죽을 경우에 예수의 사도들이 신성한 영 세례에 대한 상징으로 물세례를 주기 시작할 것을 가결했다. 세례에 대한 연설에서 그들이 회개를 포함해야 할지 아닌지는 선택의 여지로 남겨두었으며; 그 집단을 제한할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다. 요한의 사도들은 설교하기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다. 예수의 사도들은 “믿고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하였다. And then was it voted that, in case of John's death, the apostles of Jesus would begin to baptize with water as the emblem of the baptism of the divine Spirit. As to whether or not repentance should be attached to the preaching of baptism was left optional; no decision was made binding upon the group. John's apostles preached, "Repent and be baptized." Jesus' apostles proclaimed, "Believe and be baptized."
144:6.10 그리고 이것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다양한 노력들을 합동시키고, 의견의 차이들을 조정하고, 집단적인 일들을 조직하고, 외부적인 일들에 관한 법을 결정하고, 개인적인 종교적 관행을 사회화시키려는 첫 번째 시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And this is the story of the first attempt of Jesus' followers to co-ordinate divergent efforts, compose differences of opinion, organize group undertakings, legislate on outward observances, and socialize personal religious practices.
144:6.11 많은 다른 사소한 일들이 거론되었고 그것들의 해결책들이 만장일치로 동의되었다. 이들 24명의 사람들은 예수도 없이, 그들이 문제점들과 마주하고 어려움들을 풀어나가야만 했던 이러한 두 주일 동안에 진정으로 훌륭한 체험을 하였다. 그들은 서로 의견을 달리 하는 것, 토론하는 것, 논쟁하는 것, 기도하는 것, 협상하는 것을 배웠고, 그 기간 내내 다른 사람의 견해에 동정적이었고,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상대방의 정직한 의견들에 대해 관용도 베풀었다. Many other minor matters were considered and their solutions unanimously agreed upon. These twenty-four men had a truly remarkable experience these two weeks when they were compelled to face problems and compose difficulties without Jesus. They learned to differ, to debate, to contend, to pray, and to compromise, and throughout it all to remain sympathetic with the other person's viewpoint and to maintain at least some degree of tolerance for his honest opinions.
144:6.12 경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마지막 토의를 하던 어느 날 오후에 예수가 돌아왔다. 그가 그들의 토론들에 관한 이야기와 그들이 내린 결정들에 대해 주의 깊게 들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였다: “이것들이 이제는 너희의 결론들이다. 그러면 나는 너희 각자에게 너희의 결합결정이라는 정신이 끝까지 이행되도록 기꺼이 도울 것이다.” On the afternoon of their final discussion of financial questions, Jesus returned, heard of their deliberations, listened to their decisions, and said: "These, then, are your conclusions, and I shall help you each to carry out the spirit of your united decisions."
144:6.13 이때로부터 두 달 반 후에, 요한이 처형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내내 요한의 사도들은 예수와 12사도들과 함께 남아 있었다. 그들 모두는 데카폴리스의 도시들에서 이 수고의 계절 동안 함께 있으면서 일을 하였고,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길보아 야영지는 서기 27년 11월 2일에 해체되었다. Two months and a half from this time John was executed, and throughout this period the apostles of John remained with Jesus and the twelve. They all worked together and baptized believers during this season of labor in the cities of the Decapolis. The Gilboa camp was broken up on November 2, A.D. 27.

7. 데카폴리스에 있는 도시들에서  

7. IN THE DECAPOLIS CITIES

144:7.1 11월과 12월 내내, 예수와 24명은 데카폴리스에 있는 그리스 도시들에서 조용하게 일하였는데, 주로 스키토폴리스, 게라사, 아빌라, 가다라 등지에서 일하였다. 이것은 진정으로 요한의 일과 조직을 넘겨받는 예비 과정의 마지막 기간이었다. 새로운 계시를 주는 사회적인 종교는, 구원을 모색하는 기존(旣存) 종교의 확립되어 있는 형식들 그리고 관례들과 타협하는 값을 치러야만 한다. 세례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세례요한의 추종자들, 사회화(社會化)한 종교적 집단으로서의 그들과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 치러야했던 값이었다. 요한의 추종자들은, 예수의 추종자들과 합치는데 있어서, 물세례를 빼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Throughout the months of November and December, Jesus and the twenty-four worked quietly in the Greek cities of the Decapolis, chiefly in Scythopolis, Gerasa, Abila, and Gadara. This was really the end of that preliminary period of taking over John's work and organization. Always does the socialized religion of a new revelation pay the price of compromise with the established forms and usages of the preceding religion which it seeks to salvage. Baptism was the price which the followers of Jesus paid in order to carry with them, as a socialized religious group, the followers of John the Baptist. John's followers, in joining Jesus' followers, gave up just about everything except water baptism.
144:7.2 예수데카폴리스의 도시에서는 거의 대중 가르침을 하지 않았다. 그는 24명을 가르치는 일에 많은 시간들을 사용하였으며, 요한의 12사도들과는 여러 차례의 특별 수업들을 가졌다.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은 왜 예수가 감옥에 있는 요한을 방문하러 가지 않았으며, 왜 그가 그의 석방을 보장하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좀 더 납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왜 예수가 결코 아무 기적도 행하지 않는지, 그리고 왜 자신의 신성한 권한에 대한 외형적인 표적을 일으키기를 거절하는지를 납득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길보아 야영지로 오기 전에는 주로 요한의 증거로 인하여 예수를 믿었으나, 그 뒤에는 곧 직접적인 주(主)와의 접촉과 그의 가르침의 결과로 인해 믿기 시작하였다. Jesus did little public teaching on this mission to the cities of the Decapolis. He spent considerable time teaching the twenty-four and had many special sessions with John's twelve apostles. In time they became more understanding as to why Jesus did not go to visit John in prison, and why he made no effort to secure his release. But they never could understand why Jesus did no marvelous works, why he refused to produce outward signs of his divine authority. Before coming to the Gilboa camp, they had believed in Jesus mostly because of John's testimony, but soon they were beginning to believe as a result of their own contact with the Master and his teachings.
144:7.3 이러한 두 달 기간 동안, 그 집단은 대부분 짝을 지어 일하였는데, 예수의 사도 한 사람과 요한의 사도 한 사람이 함께 일하였다. 요한의 사도가 세례를 주었고, 예수의 사도는 가르침을 주었으며, 한편으로는 그들 모두가 자기들이 납득하는 왕국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이방인들과 유대교를 버린 이들 중에서 많은 혼들을 구원시켰다. For these two months the group worked most of the time in pairs, one of Jesus' apostles going out with one of John's. The apostle of John baptized, the apostle of Jesus instructed, while they both preached the gospel of the kingdom as they understood it. And they won many souls among these gentiles and apostate Jews.
144:7.4 요한의 사도들의 우두머리인 아브너예수를 충심으로 믿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주(主)가 그 복음을 가르치도록 임무를 맡긴 70명 선생들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Abner, the chief of John's apostles, became a devout believer in Jesus and was later on made the head of a group of seventy teachers whom the Master commissioned to preach the gospel.

8. 펠라 근처에 있는 야영지에서  

8. IN CAMP NEAR PELLA

144:8.1 12월 후반기에, 그들 모두는 펠라에서 가까운 요단강 근처로 갔으며, 그곳에서 다시 가르치고 설교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복음을 들으러 이 야영지로 찾아 왔다. 예수가 어느 날 오후에 군중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요한의 절친한 친구들이 요한으로부터의 마지막 전갈을 주(主)께 전하러 왔다. The latter part of December they all went over near the Jordan, close by Pella, where they again began to teach and preach. Both Jews and gentiles came to this camp to hear the gospel. It was while Jesus was teaching the multitude one afternoon that some of John's special friends brought the Master the last message which he ever had from the Baptist.
144:8.2 요한은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중이었으며, 대부분의 이 기간 동안, 예수는 매우 조용하게 일을 진행하였으므로; 요한이 왕국 일에 대해서 궁금해 하였던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요한의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로 예수의 가르침을 중단시켰다: “세례요한이 우리를 보내 다음과 같이 물으라고 했습니다.─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John had now been in prison a year and a half, and most of this time Jesus had labored very quietly; so it was not strange that John should be led to wonder about the kingdom. John's friends interrupted Jesus' teaching to say to him: "John the Baptist has sent us to ask -- are you truly the Deliverer, or shall we look for another?"
144:8.3 예수 요한의 친구들에게 말씀하기 위해 잠시 멈추셨다: “돌아가서 요한에게 그가 잊힌 것이 아니라고 전해라.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그에게 말하되,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해라.” 그리고 예수 요한의 사자(使者)들에게 말씀을 덧붙이신 후에, 다시 무리를 돌아보며 말씀하였다: “요한이 왕국 복음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는 단지, 내 제자이기도 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하여 물은 것뿐이다. 요한은 약한 자가 아니다. 헤롯이 그를 감옥에 가두기 전에 요한의 설교를 들었던 너희들에게 묻겠다: 요한에게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더냐─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더냐? 감정이 변덕스럽고 부드러운 천의 옷을 입은 사람이더냐? 대체로 화려한 복장을 입은 사람과 우아하게 살고 있는 이들은 왕궁이나 부자의 집안에 있다. 그러나 너희가 요한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알았느냐? 선지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는데, 그는 선지자보다도 더 큰 자이다. 요한에 대해 기록되기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고 하였다.” Jesus paused to say to John's friends: "Go back and tell John that he is not forgotten. Tell him what you have seen and heard, that the poor have good tidings preached to them." And when Jesus had spoken further to the messengers of John, he turned again to the multitude and said: "Do not think that John doubts the gospel of the kingdom. He makes inquiry only to assure his disciples who are also my disciples. John is no weakling. Let me ask you who heard John preach before Herod put him in prison: What did you behold in John -- a reed shaken with the wind? A man of changeable moods and clothed in soft raiment? As a rule they who are gorgeously appareled and who live delicately are in kings' courts and in the mansions of the rich. But what did you see when you beheld John? A prophet? Yes, I say to you, and much more than a prophet. Of John it was written: `Behold, I send my messenger before your face; he shall prepare the way before you.'
144:8.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겠는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난 적이 없다. 앞으로는 하늘의 왕국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큰데, 그것은 그가 영으로 태어났으며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을 알기 때문이다.” "Verily, verily, I say to you, among those born of women there has not arisen a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yet he who is but small in the kingdom of heaven is greater because he has been born of the spirit and knows that he has become a son of God."
144:8.5 그 날 예수의 그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으며, 왕국에 들어간 것을 그렇게 하여 공개적으로 고백하였다. 요한의 사도들은 그 날 이후로 예수와 단단하게 결합되었다. 이 사건이 요한예수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진정한 화합을 시작하게 하였다. Many who heard Jesus that day submitted themselves to John's baptism, thereby publicly professing entrance into the kingdom. And the apostles of John were firmly knit to Jesus from that day forward. This occurrence marked the real union of John's and Jesus' followers.
144:8.6 그 사자(使者)들은 아브너와 이야기를 나눈 후, 요한에게 이 모든 것을 보고하기 위해 마캐루스로 떠났다. 요한은 크게 위안을 받았으며, 그의 신앙은 예수의 말과 아브너로부터의 소식으로 인하여 강화되었다. After the messengers had conversed with Abner, they departed for Machaerus to tell all this to John. He was greatly comforted, and his faith was strengthened by the words of Jesus and the message of Abner.
144:8.7 이 날 오후에 예수는 가르침을 계속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러나 내가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너희 중에 많은 사람들은 요한의 메시지나 나의 가르침 모두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장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같아서 그들이 친구들을 불러 말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통곡을 하여도 너희는 슬퍼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너희 중의 일부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자 저희는 그가 악마에게 사로잡혔다고 하였다.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똑같은 이 사람들은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내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이다'라고 하였다. 정말로, 지혜는 그 때의 어린아이들로 인하여 정당화되는 법이다. On this afternoon Jesus continued to teach, saying: "But to what shall I liken this generation? Many of you will receive neither John's message nor my teaching. You are like the children playing in the market place who call to their fellows and say: `We piped for you and you did not dance; we wailed and you did not mourn.' And so with some of you. John came neither eating nor drinking, and they said he had a devil. The Son of Man comes eating and drinking, and these same people say: `Behold, a gluttonous man and a winebibber, a friend of publicans and sinners!' Truly, wisdom is justified by her children.
144:8.8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이러한 진리들을 지혜롭고 거만한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모든 것들을 잘 주관하며;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우주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 모든 사람들은 내게로 와라, 그러면 너희는 너희 혼들을 위해 휴식을 얻게 될 것이다. 신성한 멍에를 메라, 그러면 너희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하느님의 평안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It would appear that the Father in heaven has hidden some of these truths from the wise and haughty, while he has revealed them to babes. But the Father does all things well; the Father reveals himself to the universe by the methods of his own choosing. Come, therefore, all you who labor and are heavy laden, and you shall find rest for your souls. Take upon you the divine yoke, and you will experience the peace of God, which passes all understanding."

9. 세례요한의 죽음  

9. DEATH OF JOHN THE BAPTIST

144:9.1 세례요한은 서기 28년 1월 10일 밤에 헤롯 안티파스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다. 다음 날 요한의 제자 몇 명이 그의 처형 소식을 듣고 마캐루스로 가서 그의 시체를 찾아 묻었으며, 나중에는 다시 아브너의 고향인 세바스티에 묻었다. 그 다음 날인 1월 12일에, 그들은 펠라 근처에 있던 요한예수의 사도들의 야영지로 가서 요한의 죽음을 예수께 전하였다. 예수는 그들의 보고를 받자 무리들을 해산시키시고 24명을 한 자리에 불러 놓고 말씀하였다: “요한이 죽었다. 헤롯이 그의 목을 베었다. 오늘 밤 공동 협의회를 갖고 그에 따른 너희들의 일들을 준비하여라.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 왕국을 공개적으로 힘차게 선포할 때가 왔다. 우리는 내일 갈릴리로 떠날 것이다.” John the Baptist was executed by order of Herod Antipas on the evening of January 10, A.D. 28. The next day a few of John's disciples who had gone to Machaerus heard of his execution and, going to Herod, made request for his body, which they put in a tomb, later giving it burial at Sebaste, the home of Abner. The following day, January 12, they started north to the camp of John's and Jesus' apostles near Pella, and they told Jesus about the death of John. When Jesus heard their report, he dismissed the multitude and, calling the twenty-four together, said: "John is dead. Herod has beheaded him. Tonight go into joint council and arrange your affairs accordingly. There shall be delay no longer. The hour has come to proclaim the kingdom openly and with power. Tomorrow we go into Galilee."
144:9.2 따라서, 서기 28년 1월 13일 이른 아침에, 예수와 사도들은 25명쯤 되는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을 향해 그들의 길을 떠났으며, 세베대의 집에서 그날 밤 숙박하였다. Accordingly, early on the morning of January 13, A.D. 28, Jesus and the apostles, accompanied by some twenty-five disciples, made their way to Capernaum and lodged that night in Zebedee's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