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 편

PAPER 140

열 두 사도를 세움

THE ORDINATION OF THE TWELVE

140:0.1 서기 27년 1월 12일 일요일 정오 직전에, 예수는 왕국의 복음을 전할 대중 전도자들로 임명하기 위해 사도들을 불러 모았다. 사도들은 어느 때든지 부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그날 아침에도 고기를 잡으러 호숫가로부터 멀리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그물 손질과 고기잡이 도구의 수선 작업을 하며 호숫가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JUST before noon on Sunday, January 12, A.D. 27, Jesus called the apostles together for their ordination as public preacher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twelve were expecting to be called almost any day; so this morning they did not go out far from the shore to fish. Several of them were lingering near the shore repairing their nets and tinkering with their fishing paraphernalia.
140:0.2 예수는 호숫가로 내려가면서 사도들을 부르셨는데, 첫 번째로 호숫가 근처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안드레베드로를 불러 들였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인 세베대와 함께 근처에 있는 배에서 그물 손질을 하고 있던 야고보 요한을 부르셨다. 예수는 나머지 사도들도 두 사람씩 불러 열두 명을 다 모아 가버나움 북쪽의 산지로 가서 그들의 공식적인 임명식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As Jesus started down the seashore calling the apostles, he first hailed Andrew and Peter, who were fishing near the shore; next he signaled to James and John, who were in a boat near by, visiting with their father, Zebedee, and mending their nets. Two by two he gathered up the other apostles, and when he had assembled all twelve, he journeyed with them to the highlands north of Capernaum, where he proceeded to instruct them in preparation for their formal ordination.
140:0.3 이번에는 열 두 사도들 모두가 침묵을 지켰으며; 베드로조차 사색에 잠긴 마음가짐으로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때가 드디어 도래한 것 이었다! 그들은 이제 아버지의 왕국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면서 그들의 주(主)를 대신하는 성스러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개인적 헌신과 집단적 봉헌의 엄숙한 의식에 참여하려고 주(主)와 함께 떠나고 있었다. For once all twelve of the apostles were silent; even Peter was in a reflective mood. At last the long-waited-for hour had come! They were going apart with the Master to participate in some sort of solemn ceremony of personal consecration and collective dedication to the sacred work of representing their Master in the proclamation of the coming of his Father's kingdom.


1. 예비적인 명령
 


1. PRELIMINARY INSTRUCTION

140:1.1 정식 임명식에 앞서서, 예수는 사도들을 자신의 주위에 앉히고 말씀하였다: “나의 형제들아, 왕국이 도래하였다. 나는 너희들을 아버지께 왕국의 대사로 바치기 위해 여기에 따로 불렀다. 너희들 중 일부는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 이 왕국에 대한 나의 가르침을 회당에서 이미 들었다. 너희는 나와 함께 갈릴리 바다 근처 도시들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아버지의 왕국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것을 배워 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왕국에 대해 너희에게 좀 더 가르치고자 한다. Before the formal ordination service Jesus spoke to the twelve as they were seated about him: "My brethren, this hour of the kingdom has come. I have brought you apart here with me to present you to the Father as ambassadors of the kingdom. Some of you heard me speak of this kingdom in the synagogue when you first were called. Each of you has learned more about the Father's kingdom since you have been with me working in the cities around about the Sea of Galilee. But just now I have something more to tell you concerning this kingdom.
140:1.2 “내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있는 자기 자녀들의 가슴속에 곧 세우시게 될 새로운 왕국의 영토는 영속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신성한 뜻을 행하려는 이들의 가슴속에서는 그의 주권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나의 아버지유대인의 하느님이 아니시고 이방인의 하느님도 아니시다. 동쪽으로부터 그리고 서쪽으로부터 많은 이들이 아버지의 왕국에 들어와 너희와 자리를 함께 하겠지만, 아브라함의 많은 자녀들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통치하는 아버지의 영의 이러한 새로운 형제신분에 참여하기를 거절할 것이다. "The new kingdom which my Father is about to set up in the hearts of his earth children is to be an everlasting dominion. There shall be no end of this rule of my Father in the hearts of those who desire to do his divine will. I declare to you that my Father is not the God of Jew or gentile. Many shall come from the east and from the west to sit down with us in the Father's kingdom, while many of the children of Abraham will refuse to enter this new brotherhood of the rule of the Father's spirit in the hearts of the children of men.
140:1.3 “왕국의 능력은 집단의 힘에 있지도 않고 부(富)의 힘에 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하늘의 왕국의 거듭난 백성들, 하느님의 자녀들의 마음을 가르치고 가슴을 지배하는 신성한 영의 영광에 있다. 이것은 사랑으로 맺어지는 형제신분인데 그 안에서는 정의(正義)가 지배하며, 다음과 같은 함성소리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평화가 그리고 모든 이들 위에는 선한 뜻이 이루어 질것이다. 너희들이 곧 선포하러 나가게 될 이 왕국은, 모든 선한 이들의 바램이요 온 땅의 소망이며 모든 선지자들의 지혜로운 약속들에 대한 성취이다. "The power of this kingdom shall consist, not in the strength of armies nor in the might of riches, but rather in the glory of the divine spirit that shall come to teach the minds and rule the hearts of the reborn citizens of this heavenly kingdom, the sons of God. This is the brotherhood of love wherein righteousness reigns, and whose battle cry shall be: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to all men. This kingdom, which you are so soon to go forth proclaiming, is the desire of the good men of all ages, the hope of all the earth, and the fulfillment of the wise promises of all the prophets.
140:1.4 “그러나 나의 자녀들아, 너희와 또한 너희를 따라서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려는 모든 이들에게는 엄중한 시험이 앞에 가로 놓여있다. 오직 믿음만이 너희를 그 문으로 통과할 수 있게 해주겠지만, 너희가 신성한 교제를 나누는 진보적인 일생 속에서 계속하여 상승하기를 원한다면, 너희는 내 아버지의 영의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겠는데, ‘주님, 주님'하는 자마다 하늘의 왕국에 다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 "But for you, my children, and for all others who would follow you into this kingdom, there is set a severe test. Faith alone will pass you through its portals, but you must bring forth the fruits of my Father's spirit if you would continue to ascend in the progressive life of the divine fellowship. Verily, verily, I say to you, not every one who says, `Lord, Lord,' sha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rather h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140:1.5 “이 세상에서 너희가 전할 말씀은: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왕국과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것들을 찾는 동안에, 영원한 생존에 필요한 다른 모든 것들이 그것과 함께 너희에게 보장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의 왕국은 힘을 밖으로 나타내거나 또는 꼴사나운 실증을 통하여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왕국을 전파하러 나가게 될 때, ‘왕국이 여기 있다' 또는 ‘왕국이 저기 있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인데, 왜냐하면 너희가 전할 이 왕국은 너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Your message to the world shall be: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in finding these, all other things essential to eternal survival shall be secured therewith. And now would I make it plain to you that this kingdom of my Father will not come with an outward show of power or with unseemly demonstration. You are not to go hence in the proclamation of the kingdom, saying, `it is here' or `it is there,' for this kingdom of which you preach is God within you.
140: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왕국 안에서 크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에게 사명활동자가 되어야만 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자기 형제들의 시중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일단 하늘왕국 시민으로 받아들여지고 나면, 너희는 더 이상 하인이 아니며 아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리하여 이 왕국은,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모든 이가 아버지를 알고 내가 선포하러 온 구원의 진리를 믿게 될 때까지, 이 세상에서 진보를 이룩할 것이다. 이미 왕국이 가까이 이르렀으며, 여기 있는 너희들 중의 일부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주권이 큰 힘으로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Whosoever would become great in my Father's kingdom shall become a minister to all; and whosoever would be first among you, let him become the server of his brethren. But when you are once truly received as citizens in the heavenly kingdom, you are no longer servants but sons, sons of the living God. And so shall this kingdom progress in the world until it shall break down every barrier and bring all men to know my Father and believe in the saving truth which I have come to declare. Even now is the kingdom at hand, and some of you will not die until you have seen the reign of God come in great power.
140:1.7 “그리고 너희 눈으로 지금 보고 있는 이것, 평범한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이 미약한 출발이, 결국에는 온 땅이 아버지를 찬양하는 소리로 가득 찰 때까지 배가되고 불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희가 나와 함께 있음을 알고 왕국의 실체를 알게 되는 것은, 너희가 전하는 말씀 보다는 오히려 너희가 행하는 삶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의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육신으로 살면서 아버지를 나타내는 것과 같이, 내가 떠났을 때 세상에서 나를 나타내는 엄숙한 책임감을 너희 혼속에 갖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예수는 말씀을 마친 후에 일어났다. "And this which your eyes now behold, this small beginning of twelve commonplace men, shall multiply and grow until eventually the whole earth shall be filled with the praise of my Father. And it will not be so much by the words you speak as by the lives you live that men will know you have been with me and have learned of the realities of the kingdom. And while I would lay no grievous burdens upon your minds, I am about to put upon your souls the solemn responsibility of representing me in the world when I shall presently leave you as I now represent my Father in this life which I am living in the flesh." And when he had finished speaking, he stood up.


2. 성직 입명
 


2. THE ORDINATION

140:2.1 예수는 왕국에 관한 가르침을 방금 받은 사도들로 하여금 자기 주위에 원을 그리며 무릎을 꿇게 하였다. 그런 다음 주(主)는 가룟 유다로부터 시작하여 안드레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사도들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는 사도들을 모두 축복한 후에, 손을 내 뻗어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리셨다: Jesus now instructed the twelve mortals who had just listened to his declaration concerning the kingdom to kneel in a circle about him. Then the Master placed his hands upon the head of each apostle, beginning with Judas Iscariot and ending with Andrew. When he had blessed them, he extended his hands and prayed:
140:2.2 “나의 아버지시여, 나의 사자(使者)들인 이들을 이제 당신 앞에 불러 모았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아온 것처럼, 저를 대신하여 내보내기 위해 이 세상의 자녀들 가운데에서 이 열 두 명을 택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항상 저에게 임하시고 사랑하시는 것같이 저들을 사랑하시고 함께 임하시옵소서. 그리고 아버지시여, 다가오는 왕국의 모든 일을 저들의 손에 맡겼사오니, 저들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당신의 뜻이라면, 저는 왕국을 위한 저들의 일을 돕기 위해 이 세상에 좀 더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을 주심을 아버지께 다시 감사드리며, 아버지께서 제게 맡기신 일을 끝내는 동안 저들을 당신의 보호 아래 맡깁니다.” "My Father, I now bring to you these men, my messengers. From among our children on earth I have chosen these twelve to go forth to represent me as I came forth to represent you. Love them and be with them as you have loved and been with me. And now, my Father, give these men wisdom as I place all the affairs of the coming kingdom in their hands. And I would, if it is your will, tarry on earth a time to help them in their labors for the kingdom. And again, my Father, I thank you for these men, and I commit them to your keeping while I go on to finish the work you have given me to do."
140:2.3 예수가 기도를 마쳤을 때 사도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각자의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베드로까지도 한동안 감히 고개를 들어 주(主)를 바라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한 명씩 나아가서 예수를 포옹했을 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천상 존재들의 무리단이 이 엄숙하고 성스러운 광경─한 우주의 창조주께서 사람의 신성한 형제신분의 관련사들을 인간 마음의 지시 아래에 맡기시는─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 그 곳은 깊은 침묵에 싸여 있었다. When Jesus had finished praying, the apostles remained each man bowed in his place. And it was many minutes before even Peter dared lift up his eyes to look upon the Master. One by one they embraced Jesus, but no man said aught. A great silence pervaded the place while a host of celestial beings looked down upon this solemn and sacred scene -- the Creator of a universe placing the affairs of the divine brotherhood of man under the direction of human minds.


3. 성직 임명 설교
 


3. THE ORDINATION SERMON

140:3.1 그런 다음에 예수가 이렇게 말씀하였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 왕국의 대사(大使)들이며,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어진 특별한 사람들이 되었다. 이제 너희는 어두운 세상의 무지한 생명들 가운데에 있지만,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의 왕국의 계몽된 다른 시민들이 된 사람들이다. 너희들이 이 시간 이전처럼 사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이제부터는 좀 더 나은 일생의 영광을 맛본 자로서 그리고 새롭고 더 나은 그 세계의 주권자의 대사로 이 세상에 다시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살아야만 한다. 제자보다는 선생에게 더 많은 것이 기대되며; 하인보다는 주인에게 더 많은 것이 요구된다. 하늘왕국 시민들에게는 이 세상이 규정하는 시민들보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려는 것들 중에 어떤 것은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아버지를 대신하듯이, 너희는 이 세상에서 나를 대신하기 위해 택함을 받았으며; 나의 대변인인 너희들에게는, 공간 세계들의 필사자 삶에 대한 나의 관념이 반영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계시하는 이 세상에서의 나의 일생 속에서 내가 예증하는 그 가르침들과 실행한 것들을 지켜야만 하는 의무가 부과될 것이다. Then Jesus spoke, saying: "Now that you are ambassadors of my Father's kingdom, you have thereby become a class of men separate and distinct from all other men on earth. You are not now as men among men but as the enlightened citizens of another and heavenly country among the ignorant creatures of this dark world. It is not enough that you live as you were before this hour, but henceforth must you live as those who have tasted the glories of a better life and have been sent back to earth as ambassadors of the Sovereign of that new and better world. Of the teacher more is expected than of the pupil; of the master more is exacted than of the servant. Of the citizens of the heavenly kingdom more is required than of the citizens of the earthly rule. Some of the things which I am about to say to you may seem hard, but you have elected to represent me in the world even as I now represent the Father; and as my agents on earth you will be obligated to abide by those teachings and practices which are reflective of my ideals of mortal living on the worlds of space, and which I exemplify in my earth life of revealing the Father who is in heaven.
140:3.2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좇아, 영적으로 포로된 자들에게는 해방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기쁨을, 병든 이들에게는 치료함을 선포하도록, 내가 너희를 보내겠다. 절망 속에 있는 나의 자녀들을 보거든, 너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어라: "I send you forth to proclaim liberty to the spiritual captives, joy to those in the bondage of fear, and to heal the sick in accordance with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When you find my children in distress, speak encouragingly to them, saying:
140:3.3 “영에서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하늘의 왕국의 보물이 저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Happy are the poor in spirit, the humble, for theirs are the treasures of the kingdom of heaven.
140:3.4 “의(義)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풍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Happy are they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140:3.5 “온유한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Happy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140:3.6 “가슴이 청결한 자는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Happy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140:3.7 “또 그 외에도, 영적 위로와 약속을 주는 이와 같은 말들을 내 자녀들에게 말해 주어라: "And even so speak to my children these further words of spiritual comfort and promise:
140:3.8 “애통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슬피 우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저희가 기쁨의 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Happy are they who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Happy are they who weep, for they shall receive the spirit of rejoicing.
140:3.9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Happy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obtain mercy.
140:3.10 “화평케 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Happy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the sons of God.
140:3.1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하늘의 왕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Happy are they who are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ke,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Happy are you when men shall revile you and persecute you and shall say all manner of evil against you falsely. Rejoice and be exceedingly glad, for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140:3.12 “나의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내보낼 때,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맛을 잃지 않은 소금이다. 그러나 만일 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만들겠느냐? 그렇게 된 후로는 아무 쓸데없어 밖에 버려지고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My brethren, as I send you forth,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salt with a saving savor. But if this salt has lost its savor, wherewith shall it be salted? It is henceforth good for nothing but to be cast out and trodden under foot of men.
140:3.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도시가 감추어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촛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촛대 위에 두며; 그리고는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취게 한다. 너희의 빛을 사람 앞에 밝게 비쳐서 저희로 하여금 너희의 선한 일을 볼 수 있게 하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인도해라.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set upon a hill cannot be hid. Neither do men light a candle and put it under a bushel, but on a candlestick; and it gives light to all who are in the house. Let your light so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and be led to glorify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140:3.14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은, 나를 대신하게 하고 내 아버지의 대사로 일하게 하려는 것이며, 너희가 나가서 기쁜 소식을 선포할 때, 너희를 사자(使者)로 보내신 아버지를 신뢰하라. 불의에 대하여는 힘으로 저항하지 말고; 너희 자신의 육신적인 힘에 의존하지 마라. 만일 너희 이웃이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그에게 돌려대라. 너희들 사이에 있는 법에 호소하기보다는 불의로 인한 고통을 기꺼이 받아라. 고통과 빈곤 속에 있는 모든 이들을 자비와 친절함으로 보살펴 주어라. "I am sending you out into the world to represent me and to act as ambassadors of my Father's kingdom, and as you go forth to proclaim the glad tidings, put your trust in the Father whose messengers you are. Do not forcibly resist injustice; put not your trust in the arm of the flesh. If your neighbor smites you on the right cheek, turn to him the other also. Be willing to suffer injustice rather than to go to law among yourselves. In kindness and with mercy minister to all who are in distress and in need.
140:3.15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는데: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을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라. 그리고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할 것이라고 너희들이 믿는 그대로, 너희 또한 그들에게 그렇게 행하라. "I say to you: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bless those who curse you, and pray for those who despitefully use you. And whatsoever you believe that I would do to men, do you also to them.
140:3.16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악한 사람들과 선한 사람들에게 고루 비취도록 해를 만드셨으며; 마찬가지로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 모두에게 비를 내리신다. 너희는 하느님의 아들들이며; 더욱이, 너희는 내 아버지 왕국의 대사(大使)들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한 것같이 너희도 자비를 베풀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한 것과 같이 왕국의 영원한 미래 속에서 너희도 완전해지라. "Your Father in heaven makes the sun to shine on the evil as well as upon the good; likewise he sends rain on the just and the unjust. You are the sons of God; even more, you are now the ambassadors of my Father's kingdom. Be merciful, even as God is merciful, and in the eternal future of the kingdom you shall be perfect, even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140:3.17 “너희는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임명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임명되었다. 이 세상에서의 너희 일생이 끝날 때에는, 너희 모두는 자비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너희의 필사자 생애 동안 육신을 가진 너희의 모든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요구한다. 너희 눈 속에는 들보를 갖고 있으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끌 하나를 뽑고자 하는 오류를 범하지 마라.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버려야, 눈이 밝아져서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뺄 수 있게 된다. "You are commissioned to save men, not to judge them. At the end of your earth life you will all expect mercy; therefore do I require of you during your mortal life that you show mercy to all of your brethren in the flesh. Make not the mistake of trying to pluck a mote out of your brother's eye when there is a beam in your own eye. Having first cast the beam out of your own eye, you can the better see to cast the mote out of your brother's eye.
140:3.18 “진리를 분명하게 분별하고; 두려움 없이 정의로운 일생을 살라; 그렇게 하면 너희가 나의 사도가 될 것이고 내 아버지의 대사가 될 것이다. 너희는 이 말을 들어왔을 것이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모두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만일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왕국으로 인도하고자 한다면, 너희 자신이 살아있는 진리의 빛 속에서 걸어가야만 한다. 하늘의 모든 일에 있어서 너희가 공정한 판단과 명철한 지혜를 보이기를 간곡히 권한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들을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너희 보물들을 발로 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라. "Discern the truth clearly; live the righteous life fearlessly; and so shall you be my apostles and my Father's ambassadors. You have heard it said: `If the blind lead the blind, they both shall fall into the pit.' If you would guide others into the kingdom, you must yourselves walk in the clear light of living truth. In all the business of the kingdom I exhort you to show just judgment and keen wisdom. Present not that which is holy to dogs, neither cast your pearls before swine, lest they trample your gems under foot and turn to rend you.
140:3.19 “거짓 선지자들을 배척하라고 경고하겠는데,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다가오지만 속에는 탐욕스러운 이리들이 들어 있다.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더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선한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선한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마침내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는 입장권을 얻는 데 있어서, 그 평가에 포함되는 것은 그 동기이다. 내 아버지는 사람의 가슴을 들여다보시고, 그들의 내면적인 갈망과 진실된 목적을 심판한다. "I warn you against false prophets who will come to you in sheep's clothing, while on the inside they are as ravening wolves. By their fruits you shall know them. Do men gather grapes from thorns or figs from thistles? Even so, every good tree brings forth good fruit, but the corrupt tree bears evil fruit. A good tree cannot yield evil fruit, neither can a corrupt tree produce good fruit. Every tree that does not bring forth good fruit is presently hewn down and cast into the fire. In gaining an entrance into the kingdom of heaven, it is the motive that counts. My Father looks into the hearts of men and judges by their inner longings and their sincere intentions.
140:3.20 “왕국 심판이 벌어지는 중대한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하였고, 당신의 이름으로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을 행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희들에게,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겠으니; 가짜 선생들인 너희는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명령을 듣고, 내가 아버지를 너희에게 나타내듯이, 사람들 앞에서 나를 나타내라는 임무를 진정으로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의 일에 참여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왕국으로 들어오는 넓은 입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In the great day of the kingdom judgment, many will say to me, `Did we not prophesy in your name and by your name do many wonderful works?' But I will be compelled to say to them, `I never knew you; depart from me you who are false teachers.' But every one who hears this charge and sincerely executes his commission to represent me before men even as I have represented my Father to you, shall find an abundant entrance into my service and into the kingdom of the heavenly Father."
140:3.21 사도들은 예수가 그런 식으로 말씀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이때에는 예수가 그들에게 최극의 권능을 가진 자로서 말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해가 질 무렵에 산에서 내려왔지만, 예수께 질문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Never before had the apostles heard Jesus speak in this way, for he had talked to them as one having supreme authority. They came down from the mountain about sundown, but no man asked Jesus a question.


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4.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140:4.1 소위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 불리는 것은 예수의 복음이 아니다. 많은 유익한 가르침들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예수가 열 두 사도들에게 주신 임명식 훈시였다. 그것은 주(主)께서 감동적이고도 완전하게 자기 아버지를 나타내셨던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나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를 나타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일러준 그의 개인적 명령이었다. The so-called "Sermon on the Mount" is not the gospel of Jesus. It does contain much helpful instruction, but it was Jesus' ordination charge to the twelve apostles. It was the Master's personal commission to those who were to go on preaching the gospel and aspiring to represent him in the world of men even as he was so eloquently and perfectly representative of his Father.
140:4.2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맛을 잃지 않은 소금이다. 그러나 만일 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만들겠느냐? 그렇게 된 후로는 아무 쓸데없어 밖에 버려지고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salt with a saving savor. But if this salt has lost its savor, wherewith shall it be salted? It is henceforth good for nothing but to be cast out and trodden under foot of men."
140:4.3 예수 시대에는 소금이 귀중하였다. 그것은 돈으로까지도 사용되었다. 현대어에서 ‘월급'이라는 말은 소금에서 유래되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낼뿐만 아니라 방부제의 역할도 한다. 소금은 다른 것에 맛을 더해주며,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모시키면서 봉사한다. In Jesus' time salt was precious. It was even used for money. The modern word "salary" is derived from salt. Salt not only flavors food, but it is also a preservative. It makes other things more tasty, and thus it serves by being spent.
140:4.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도시는 감추어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촛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촛대 위에 두며; 그리고는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취게 한다. 너희의 빛을 사람 앞에 밝게 비쳐서 저희로 하여금 너희의 착한 행실들을 볼 수 있게 하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인도해라."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set on a hill cannot be hid. Neither do men light a candle and put it under a bushel, but on a candlestick; and it gives light to all who are in the house. Let your light so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and be led to glorify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140:4.5 빛은 어둠을 몰아내지만 한편, 빛은 또한 그렇게 "눈을 멀게"하여 혼란시키고 좌절시킬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동료들로 하여금 삶의 가치를 높여주는 새롭고도 경건한 길로 나아가도록 우리의 빛을 그렇게 빛내라고 훈계를 받았다. 우리는 빛을 밝게 비치되, 자아에 대한 관심에 빠지도록 그렇게 빛을 밝히면 안된다. 각자의 어떠한 직업 조차도 이 생명의 빛을 전파하기 위한 효력적인 “반영체”로 활용될 수 있다. While light dispels darkness, it can also be so "blinding" as to confuse and frustrate. We are admonished to let our light so shine that our fellows will be guided into new and godly paths of enhanced living. Our light should so shine as not to attract attention to self. Even one's vocation can be utilized as an effective "reflector" for the dissemination of this light of life.
140:4.6 튼튼한 성격은 그릇된 일을 행하지 않는 것에서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제로 올바른 행동을 함에서 유래된다. 사심없다는 것은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상이다. 최고의 자아-실현은 경배와 봉사로서 달성된다. 행복하고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그릇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올바른 행위에 대한 사랑에 의해 동기가 유발된다. Strong characters are not derived from not doing wrong but rather from actually doing right. Unselfishness is the badge of human greatness. The highest levels of self-realization are attained by worship and service. The happy and effective person is motivated, not by fear of wrongdoing, but by love of right doing.
 140:4.7 너희는 그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인성은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다; 변화하는─성장하는─것은 도덕적 성격이다. 현대 종교들이 범하는 주된 실수는 소극주의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베어져서 불 속에 던져진다.” 도덕적 가치는 단순한 억압으로─하지 말라”는 금지령에 복종하여─얻을 수 없다. 종교적 생활에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가치 없는 동기이다. 종교는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을 계시하고 사람의 형제신분을 향상시켜 나아갈 때에만 타당할 뿐이다. "By their fruits you shall know them." Personality is basically changeless; that which changes -- grows -- is the moral character. The major error of modern religions is negativism. The tree which bears no fruit is "hewn down and cast into the fire." Moral worth cannot be derived from mere repression -- obeying the injunction "Thou shalt not." Fear and shame are unworthy motivations for religious living. Religion is valid only when it reveals the fatherhood of God and enhances the brotherhood of men.
140:4.8 성공적인 삶의 철학은, 조화우주 통찰력과,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환경에 대한 각자의 감정반응의 합계가 병합되어 형성된다. 이것을 기억하라: 선천적인 충동욕구는 근본적으로 수정될 수 없는 반면, 그러한 충동욕구에 대한 감정적 반응은 변할 수 있다; 따라서 도덕적 본성은 수정될 수 있고 성격은 향상될 수 있다. 튼튼한 성격 안에서 감정적 반응들이 집대성되고 합동되고, 그렇게 해서 통합된 개인성이 나오게된다. 부족한 통합성이 도덕적 본성을 약화시키고 불행을 야기한다. An effective philosophy of living is formed by a combination of cosmic insight and the total of one's emotional reactions to the social and economic environment. Remember: While inherited urges cannot be fundamentally modified, emotional responses to such urges can be changed; therefore the moral nature can be modified, character can be improved. In the strong character emotional responses are integrated and co-ordinated, and thus is produced a unified personality. Deficient unification weakens the moral nature and engenders unhappiness.
140:4.9 가치 있는 목표가 없다면, 일생은 이렇다 할 주견이 없게 되고 무익하게 되며 더욱 불행하게 된다. 열 두 사도 수임식에서 행한 예수의 설교는 일생에 대하여 주(主)가 되는 철학을 이루고 있다. 예수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체험적 신앙을 행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는 단순한 지적 동의, 쉽게 믿는 것, 그리고 확립된 권한에 의존하지 말라고 사도들에게 훈계하였다. Without a worthy goal, life becomes aimless and unprofitable, and much unhappiness results. Jesus' discourse at the ordination of the twelve constitutes a master philosophy of life. Jesus exhorted his followers to exercise experiential faith. He admonished them not to depend on mere intellectual assent, credulity, and established authority.
140:4.10 교육은 우리의 본성적이고 선천적인 충동욕구를 보다 나은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기법을 배우는(발견하는) 것이어야 하며, 행복은 정서적 만족에 대한 이들 강화된 기법에서의 결과가 만드는 총합이다. 행복은 환경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쾌적한 주변들은 행복에 크게 이바지할 수도 있다. Education should be a technique of learning (discovering) the better methods of gratifying our natural and inherited urges, and happiness is the resulting total of these enhanced techniques of emotional satisfactions. Happiness is little dependent on environment, though pleasing surroundings may greatly contribute thereto.
140:4.11 모든 필사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한 것처럼, 그렇게 완전하게 되는, 완성된 사람이기를 진실로 열망하고 있으며, 그러한 달성은 결국 말하자면 “우주는 참말로 아버지 다운”것 이기에 가능하다. Every mortal really craves to be a complete person, to be perfect even as the Father in heaven is perfect, and such attainment is possible because in the last analysis the "universe is truly fatherly."


5. 아버지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
 


5. FATHERLY AND BROTHERLY LOVE

140:5.1 산상수훈에서부터 최후의 만찬 설교에 이르기까지, 예수는 따르는 무리들에게 형제의 사랑보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더 나타낼 수 있도록 가르치셨다. 형제의 사랑은, 너희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황금률”을 충분히 이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예수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너희 동료 필사자들을 그렇게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From the Sermon on the Mount to the discourse of the Last Supper, Jesus taught his followers to manifest fatherly love rather than brotherly love. Brotherly love would love your neighbor as you love yourself, and that would be adequate fulfillment of the "golden rule." But fatherly affection would require that you should love your fellow mortals as Jesus loves you.
140:5.2 예수는 인류를 이중적인 애정으로 사랑한다. 그는 땅에서 하나의 두 겹으로 중첩된 개인성─인간 개인성과 신성한 개인성─으로 사셨다. 하느님아들로서의 그는,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한다─그는 사람의 창조주이시며 그의 우주 아버지시다. 또한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는, 하나의 형제로 필사자들을 사랑한다─그는 참으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Jesus loves mankind with a dual affection. He lived on earth as a twofold personality -- human and divine. As the Son of God he loves man with a fatherly love -- he is man's Creator, his universe Father. As the Son of Man, Jesus loves mortals as a brother -- he was truly a man among men.
140:5.3 예수는 나타낼 수 없는 형제의 사랑을 자기 추종자들로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하느님과 같이 되도록─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완전하게 되도록─그들이 심히 분투함으로써, 하느님이 당신의 창조체들을 대하듯이 그들도 그렇게 사람들을 대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들도 사람들을 그렇게─아버지다운 애정을 보여 주기 시작하는─사랑하기 시작하게 되기를 기대하였다. 예수는 열 두 사도들을 향한 이러한 권고의 말들 가운데서 아버지다운 사랑이라는 이 새로운 개념을 심어주려고 노력하였는데, 그러한 개념이 수많은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는데 있어서 어떤 특정된 감정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Jesus did not expect his followers to achieve an impossible manifestation of brotherly love, but he did expect them to so strive to be like God -- to be perfect even as the Father in heaven is perfect -- that they could begin to look upon man as God looks upon his creatures and therefore could begin to love men as God loves them -- to show forth the beginnings of a fatherly affection. In the course of these exhortations to the twelve apostles, Jesus sought to reveal this new concept of fatherly love as it is related to certain emotional attitudes concerned in making numerous environmental social adjustments.
140:5.4 주(主)는 이렇게 중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단순한 형제의 사랑의 한계에 대비(對比)하여,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네 가지의 초월적이고도 최극의 반응들로 이루어진 후반부의 묘사에 대한 전주곡으로 신앙의 네 가지 태도들에 대해 주의를 집중시켰다. The Master introduced this momentous discourse by calling attention to four faith attitudes as the prelude to the subsequent portrayal of his four transcendent and supreme reactions of fatherly love in contrast to the limitations of mere brotherly love.
140:5.5 그는 먼저 영이 가난한 자들, 정의에 굶주린 자들, 온유한 자들, 가슴이 청결한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였다. 영을 인식하는 그러한 필사자들에게는 아버지다운 애정을 놀랍게 실행하는 시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성한 사심 없음의 그러한 차원을 달성하는 것이 기대될 수 있으며; 애통하는 사람들로서도 그들은 자비를 베풀고, 평화를 증진시키고, 박해를 견디며, 모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 가지고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힘을 받을 것이다. 아버지의 애정은, 형제의 애정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초월하는 헌신의 차원들을 달성할 수 있다. He first talked about those who were poor in spirit, hungered after righteousness, endured meekness, and who were pure in heart. Such spirit-discerning mortals could be expected to attain such levels of divine selflessness as to be able to attempt the amazing exercise of fatherly affection; that even as mourners they would be empowered to show mercy, promote peace, and endure persecutions, and throughout all of these trying situations to love even unlovely mankind with a fatherly love. A father's affection can attain levels of devotion that immeasurably transcend a brother's affection.
140:5.6 이들 지극한 축복에서의 신앙과 사랑은 도덕적 성격을 강화시키고 행복을 창조한다. 공포와 분노는 성격을 약화시키고 행복을 파괴한다. 이 중차대한 설교는 행복의 음률에서 시작되며 나왔다. The faith and the love of these beatitudes strengthen moral character and create happiness. Fear and anger weaken character and destroy happiness. This momentous sermon started out upon the note of happiness.
140:5.7 1. “영에서 가난한 자들─겸손한 자들─은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당장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갈망이 충족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행복의 증진이라는 수확을 나중에 거두기 위해 자아-부정이라는 씨를 기꺼이 뿌린다. 예수 당시와 그 이후로, 행복은 재산의 소유라는 관념과 너무 흔히 연관되어 왔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일화에서, 바리새인은 영적 풍요─자기중심적─를 느꼈고, 세리는 “영적으로 가난함”─겸손─을 느꼈다. 전자(前者)는 거만하였고, 후자(後者)는 배우기를 원하고 진리를 추구하였다. 영이 가난한 사람은 영적 풍요에 대한 갈망─하느님에 대한─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 탐구자들은 먼 미래의 보상을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지금 보상을 받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슴속에서 하늘의 왕국을 발견하며, 그러한 행복을 지금 체험한다. 1. "Happy are the poor in spirit -- the humble." To a child, happiness is the satisfaction of immediate pleasure craving. The adult is willing to sow seeds of self-denial in order to reap subsequent harvests of augmented happiness. In Jesus' times and since, happiness has all too often been associated with the idea of the possession of wealth. In the story of the Pharisee and the publican praying in the temple, the one felt rich in spirit -- egotistical; the other felt "poor in spirit" -- humble. One was self-sufficient; the other was teachable and truth-seeking. The poor in spirit seek for goals of spiritual wealth -- for God. And such seekers after truth do not have to wait for rewards in a distant future; they are rewarded now. They find the kingdom of heaven within their own hearts, and they experience such happiness now.
140:5.8 2.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풍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영에서 가난함을 느끼는 자들만이 언제나 정의에 굶주릴 것이다. 오직 겸손한 자들만이 신성한 권능과 영적 힘을 추구한다. 그러나 영적 자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일부러 영적 금식에 참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육체적 금식은 4, 5일이 지나면 위험해지고, 그 사람은 음식에 대한 모든 욕구를 잃기 쉽다.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장기간의 금식은 배고픔 자체를 없애는 경향이 있다. 2. "Happy are they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Only those who feel poor in spirit will ever hunger for righteousness. Only the humble seek for divine strength and crave spiritual power. But it is most dangerous to knowingly engage in spiritual fasting in order to improve one's appetite for spiritual endowments. Physical fasting becomes dangerous after four or five days; one is apt to lose all desire for food. Prolonged fasting, either physical or spiritual, tends to destroy hunger.
140:5.9 체험으로 얻는 의는 기쁨이지, 의무가 아니다. 예수의 정의로움은 역동적인 사랑─아버지의 애정과 형제의 애정─이다. 그것은 부정적이거나 하지 말라는 식의 정의로움이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부정적인 것─“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계속 바랄 수 있겠는가? Experiential righteousness is a pleasure, not a duty. Jesus' righteousness is a dynamic love -- fatherly-brotherly affection. It is not the negative or thou-shalt-not type of righteousness. How could one ever hunger for something negative -- something "not to do"?
140:5.10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에게 이들 무상의 행복에 관한 처음 두 가지를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성숙한 마음은 그 의의(意義)들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It is not so easy to teach a child mind these first two of the beatitudes, but the mature mind should grasp their significance.
140:5.11 3. “온유한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온유함은 두려움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께 협조하려는 사람의 태도─“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이다. 그것은 인내와 참음을 포옹하며 합법적이고 우호적인 우주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앙에 의해서 동기가 부여된다. 그것은 신성한 인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모든 유혹들을 물리친다. 예수유란시아에서 가장 이상적인 온유한 사람이었으며 광대한 하나의 우주를 상속받았다. 3. "Happy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Genuine meekness has no relation to fear. It is rather an attitude of man co-operating with God -- "Your will be done." It embraces patience and forbearance and is motivated by an unshakable faith in a lawful and friendly universe. It masters all temptations to rebel against the divine leading. Jesus was the ideal meek man of Urantia, and he inherited a vast universe.
140:5.12 4. “가슴이 청결한 자는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순결은, 의심과 복수심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부정적인 본질특성의 것이 아니다. 순결을 논함에 있어서, 예수는 인간의 성(性)에 대한 태도를 전적으로 다루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는 사람이 자기의 동료 사람에게 가져야 할 신앙; 아버지가 그 자녀에 대해 가지는 신앙, 그리고 아버지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같이 그들의 이웃들을 사랑하게 하는 신앙을 더 많이 고려하였다. 아버지의 사랑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며 악을 묵과하지 않지만, 경멸과는 항상 거리가 멀다. 아버지의 사랑은 한 가지 목적만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항상 찾는데; 그것이 진정한 부모의 자세이다. 4. "Happy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Spiritual purity is not a negative quality, except that it does lack suspicion and revenge. In discussing purity, Jesus did not intend to deal exclusively with human sex attitudes. He referred more to that faith which man should have in his fellow man; that faith which a parent has in his child, and which enables him to love his fellows even as a father would love them. A father's love need not pamper, and it does not condone evil, but it is always anticynical. Fatherly love has singleness of purpose, and it always looks for the best in man; that is the attitude of a true parent.
140:5.13 하느님을 보는 것─신앙을 통해서─은 참된 영적 통찰력을 얻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영적 통찰력은 조절자의 안내를 강화시키며, 그리하여 마침내는 하느님을-의식하는 것을 증대시킨다. 그리고 너희들이 아버지를 알게 될 때, 너희 자신들이 신성한 아들관계임을 확신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육신의 형제들을 형제로서─형제의 사랑으로─뿐만 아니라 또한 아버지로서─아버지의 애정─그들을 점점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To see God -- by faith -- means to acquire true spiritual insight. And spiritual insight enhances Adjuster guidance, and these in the end augment God-consciousness. And when you know the Father, you are confirmed in the assurance of divine sonship, and you can increasingly love each of your brothers in the flesh, not only as a brother -- with brotherly love -- but also as a father -- with fatherly affection.
140:5.14 이러한 교훈은 어린아이에게도 가르치기 쉽다. 아이들은 본성적으로 쉽게 믿으며, 부모들은 이들의 단순한 신앙을 잃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아이들을 대할 때에는, 모든 속임수를 피하고 의심을 일으키도록 넌지시 비추는 것을 삼가라. 그들이 자신들의 영웅들을 고르고 자신들의 일생의 과업을 선택하도록 현명하게 도와주어라. It is easy to teach this admonition even to a child. Children are naturally trustful, and parents should see to it that they do not lose that simple faith. In dealing with children, avoid all deception and refrain from suggesting suspicion. Wisely help them to choose their heroes and select their lifework.
140:5.15 그러고 나서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인간의 모든 투쟁들의 주된 목적─완전함─신성한 달성까지도─에 대하여 계속해서 가르치셨다. 그는 항상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심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그는 12사도들에게 자신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권고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가치 있는 성취로 이루어졌어야 했으며; 형제의 사랑의 성취를 나타냈어야 했다. 그는 오히려 사도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였던 것처럼─형제의 사랑은 물론이고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그렇게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치셨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의 네 가지 최극의 반응들을 지적함으로써 이것을 설명하였다: And then Jesus went on to instruct his followers in the realization of the chief purpose of all human struggling -- perfection -- even divine attainment. Always he admonished them: "Be you perfect, even as your Father in heaven is perfect." He did not exhort the twelve to love their neighbors as they loved themselves. That would have been a worthy achievement; it would have indicated the achievement of brotherly love. He rather admonished his apostles to love men as he had loved them -- to love with a fatherly as well as a brotherly affection. And he illustrated this by pointing out four supreme reactions of fatherly love:
140:5.16 1. “애통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상식이나 최선의 논리에서는, 행복이 애통함으로 얻어질 수 있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외적이거나 혹은 허식적인 애통함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인정이 많은 감정적 태도를 암시하였다. 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게, 부드러움이나 다른 감정적 느낌이나 육체적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가장 큰 실수다. 연민의 정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가치 있는 속성이 된다. 남자다워지기 위해서 무정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용감한 남자를 창조하는 그릇된 방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들은 애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애통하는 자였던 모세삼손골리앗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었다. 모세는 최고의 지도자였지만 그는 또한 온유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인간 욕구에 민감하고 이에 반응하는 것은, 진정하고 영구한 행복을 창조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온화한 태도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의심의 악영향으로부터 혼을 보호해준다. 1. "Happy are they who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So-called common sense or the best of logic would never suggest that happiness could be derived from mourning. But Jesus did not refer to outward or ostentatious mourning. He alluded to an emotional attitude of tenderheartedness. It is a great error to teach boys and young men that it is unmanly to show tenderness or otherwise to give evidence of emotional feeling or physical suffering. Sympathy is a worthy attribute of the male as well as the female. It is not necessary to be calloused in order to be manly. This is the wrong way to create courageous men. The world's great men have not been afraid to mourn. Moses, the mourner, was a greater man than either Samson or Goliath. Moses was a superb leader, but he was also a man of meekness. Being sensitive and responsive to human need creates genuine and lasting happiness, while such kindly attitudes safeguard the soul from the destructive influences of anger, hate, and suspicion.
140:5.17 2.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자비는, 가장 높고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진실한 우정─자애로움─을 의미한다. 때로는 자비가 수동적일 수 있지만, 여기에서 자비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최극의 아버지다운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를 아무리 여러 번 용서하여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흠이 없는 자녀를 고통으로부터 풀어주고자 하는 충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이들이 현실을 깨달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대개 친절하고 동정심이 있게 된다. 2. "Happy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obtain mercy." Mercy here denotes the height and depth and breadth of the truest friendship -- loving-kindness. Mercy sometimes may be passive, but here it is active and dynamic -- supreme fatherliness. A loving parent experiences little difficulty in forgiving his child, even many times. And in an unspoiled child the urge to relieve suffering is natural. Children are normally kind and sympathetic when old enough to appreciate actual conditions.
140:5.18 3. “화평케 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평화가 아닌 무력으로 해방시켜줄 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가 말씀하는 평화는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재판과 박해에 직면하였을 때 예수는, “나의 평강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너희는 가슴에 파란이 일게 하거나, 두려워하지도 마라."라고 말씀하였다. 이것은 파괴적인 갈등을 미리 방지하는 평화이다. 개인적 평화는 개인성을 집대성한다. 사회적 평화는 두려움과 탐욕과 분노를 막는다. 정치적 평화는 인종적 반목과 민족적 의심 그리고 전쟁을 막는다. 화평케 하는 것이 불신과 의심을 막는 길이다. 3. "Happy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the sons of God." Jesus' hearers were longing for military deliverance, not for peacemakers. But Jesus' peace is not of the pacific and negative kind. In the face of trials and persecutions he said, "My peace I leave with you."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neither let it be afraid." This is the peace that prevents ruinous conflicts. Personal peace integrates personality. Social peace prevents fear, greed, and anger. Political peace prevents race antagonisms, national suspicions, and war. Peacemaking is the cure of distrust and suspicion.
140:5.19 아이들에게는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역할을 쉽게 가르칠 수 있다. 그들은 단체 활동들을 즐거워한다; 그들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한다. 예수가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였다: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려는 자는 생명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잃으려고 하는 자는 생명을 찾게 될 것이다.” Children can easily be taught to function as peacemakers. They enjoy team activities; they like to play together. Said the Master at another time: "Whosoever wi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but whosoever will lose his life shall find it."
140:5.20 4.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하늘의 왕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4. "Happy are they who are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ke,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Happy are you when men shall revile you and persecute you and shall say all manner of evil against you falsely. Rejoice and be exceedingly glad, for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140:5.21 평화 뒤에는 박해가 종종 따라온다. 그러나 젊은이들과 용감한 어른들은 어려움과 위험을 결코 피해 가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은 이러한 모든 일들─형제의 사랑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박해의 최종적 수확물은 언제나 진보였다. So often persecution does follow peace. But young people and brave adults never shun difficulty or danger. "Greater love has no man than to lay down his life for his friends." And a fatherly love can freely do all these things -- things which brotherly love can hardly encompass. And progress has always been the final harvest of persecution.
140:5.22 아이들은 항상 용기 있는 도전에 반응한다. 젊은이는 언제나 기꺼이 “위험을 무릅쓴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은 일찍부터 희생마음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Children always respond to the challenge of courage. Youth is ever willing to "take a dare." And every child should early learn to sacrifice.
140:5.23 그러므로 산상수훈에서의 지복(至福)의 말씀은 법─윤리나 의무─에 기반을 두지 아니하고 신앙과 사랑에 그 기반을 두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And so it is revealed that the beatitudes of the Sermon on the Mount are based on faith and love and not on law -- ethics and duty.
140:5.24 아버지의 사랑은 악에 대하여 선으로 보답하는─불의에 대하여 선으로 갚아주는─ 일을 기뻐한다.

Fatherly love delights in returning good for evil -- doing good in retaliation for injustice.


6. 성직 임명이 있던 날 저녁
 


6. THE EVENING OF THE ORDINATION

140:6.1 일요일 저녁, 가버나움 북쪽의 산지로부터 세베대의 집에 도착한 예수와 12사도들은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그 후에 예수가 해변을 따라 산책하는 동안, 사도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회의를 마친 후에 쌍둥이 형제가 작은 모닥불을 피우는 동안 안드레예수를 찾아 나섰으며, 예수를 만나게 되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주(主)여, 내 형제들이 왕국에 대한 당신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조금 더 가르침을 주실 때까지는 이 임무를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원에 있는 우리들에게 오셔서 당신의 말씀의 뜻을 우리가 좀 더 납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하는 청을 드리러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안드레와 함께 나머지 사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셨다. Sunday evening, on reaching the home of Zebedee from the highlands north of Capernaum, Jesus and the twelve partook of a simple meal. Afterward, while Jesus went for a walk along the beach, the twelve talked among themselves. After a brief conference, while the twins built a small fire to give them warmth and more light, Andrew went out to find Jesus, and when he had overtaken him, he said: "Master, my brethren are unable to comprehend what you have said about the kingdom. We do not feel able to begin this work until you have given us further instruction. I have come to ask you to join us in the garden and help us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your words." And Jesus went with Andrew to meet with the apostles.
140:6.2 정원으로 들어가신 후에 그는 사도들을 주위에 모이게 하고 그들에게 다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너희는 옛날 방식으로 새로운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너희가 알아야 하지만, 내가 분명히 말하겠는데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 너희는 어린아이와 같이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 기꺼운 마음으로 나의 가르침을 믿고 또한 하느님을 믿어야만 한다. 왕국의 새 복음은 현재 있는 것에 맞도록 만들어질 수 없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과 이 세상에서의 그의 사명에 대해 그릇된 관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율법과 선지자들을 갈라 놓으려고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이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취시키려고, 발전시키고 명백하게 밝히려고 왔다. 나는 율법을 어기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들 가슴의 돌판 위에 새 계명을 새겨 주려고 왔다. When he had entered the garden, he gathered the apostles around him and taught them further, saying: "You find it difficult to receive my message because you would build the new teaching directly upon the old, but I declare that you must be reborn. You must start out afresh as little children and be willing to trust my teaching and believe in God. The new gospel of the kingdom cannot be made to conform to that which is. You have wrong ideas of the Son of Man and his mission on earth. But do not make the mistake of thinking that I have come to set aside the law and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destroy but to fulfill, to enlarge and illuminate. I come not to transgress the law but rather to write these new commandments on the tablets of your hearts.
140:6.3 “나는 너희에게 구제(救濟)와 기도와 금식으로 아버지의 은혜를 구하려고 하는 이들의 정의로움을 앞지를 수 있는 어떤 정의로움을 요구한다. 만일 너희가 왕국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사랑과 자비와 진리로 이루어진 정의로움─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따르려는 신실한 갈망─을 가져야만 한다.” "I demand of you a righteousness that shall exceed the righteousness of those who seek to obtain the Father's favor by almsgiving, prayer, and fasting. If you would enter the kingdom, you must have a righteousness that consists in love, mercy, and truth -- the sincere desire to do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140:6.4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주(主)여, 새 계명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그 새 길을 보여 주십시오.” 예수베드로에게 대답하였다: “너희는 이미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왔다: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그러나 나는 행위의 뒤에 감추어진 동기를 본다.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누구든지 유죄 판결을 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자기 마음에 증오를 품고 복수를 계획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너희는 동료들을 그들의 행위에 의해서 심판할 수밖에 없겠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 의도에 의해서 심판한다. Then said Simon Peter: "Master, if you have a new commandment, we would hear it. Reveal the new way to us." Jesus answered Peter: "You have heard it said by those who teach the law: `You shall not kill; that whosoever kills shall be subject to judgment.' But I look beyond the act to uncover the motive. I declare to you that every one who is angry with his brother is in danger of condemnation. He who nurses hatred in his heart and plans vengeance in his mind stands in danger of judgment. You must judge your fellows by their deeds; the Father in heaven judges by the intent.
140:6.5 “너희는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학자들의 말을 이미 들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누구든지 이미 자기 가슴속에서 그녀를 간음하였다. 너희는 사람을 오직 그 행위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내 아버지는 자기 자녀의 가슴을 살펴보며 그리고 자비 안에서 그들의 의도와 실제 갈망에 따라 그들을 판결한다.” "You have heard the teachers of the law say,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But I say to you that every man who looks upon a woman with intent to lust after her has already committed adultery with her in his heart. You can only judge men by their acts, but my Father looks into the hearts of his children and in mercy adjudges them in accordance with their intents and real desires."
140:6.6 예수가 다른 계명에 대해 계속 논의할 마음을 가졌지만, 야고보 세베대가 중간에 끼어들어 물었다: “주(主)여, 저희는 사람들에게 이혼(離婚)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모세가 가르친 대로 한 남자가 자기 아내와 이혼을 해도 좋다고 허락해야 합니까?” 예수가 이 물음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였다: “나는 법(法)을 제정하러 온 것이 아니라 계몽시키러 왔다. 나는 이 세상왕국을 개혁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하늘의 왕국을 설립하러 왔다. 오늘날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다른 세대에는 맞지 않을 정부의 규율이나 무역 또는 사회적 태도를 가르치려는 유혹에 응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나는 단지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영을 해방시키며 혼을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이혼의 문제에 관한 이 질문에 대답한다면, 모세는 이러한 일을 허락했으나 아담의 시대에 그 동산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다.” Jesus was minded to go on discussing the other commandments when James Zebedee interrupted him, asking: "Master, what shall we teach the people regarding divorcement? Shall we allow a man to divorce his wife as Moses has directed?" And when Jesus heard this question, he said: "I have not come to legislate but to enlighten. I have come not to reform the kingdoms of this world but rather to establish the kingdom of heaven. It is not the will of the Father that I should yield to the temptation to teach you rules of government, trade, or social behavior, which, while they might be good for today, would be far from suitable for the society of another age. I am on earth solely to comfort the minds, liberate the spirits, and save the souls of men. But I will say , concerning this question of divorcement, that, while Moses looked with favor upon such things, it was not so in the days of Adam and in the Garden."
140:6.7 잠깐 동안 사도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게 한 후, 예수는 말을 계속하였다: “너희는 모든 필사자의 행위에는 두 가지 관점들─인간적인 것과 신성한 것; 육신적인 방법과 영적인 방법; 시간적인 평가와 영원에서의 관점─이 있음을 항상 인식해야만 한다.” 사도들이 비록 예수가 가르친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가르침을 통해 정말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After the apostles had talked among themselves for a short time, Jesus went on to say: "Always must you recognize the two viewpoints of all mortal conduct -- the human and the divine; the ways of the flesh and the way of the spirit; the estimate of time and the viewpoint of eternity." And though the twelve could not comprehend all that he taught them, they were truly helped by this instruction.
140:6.8 그러고 나서 예수가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내 말을 항상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 가르침으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려고 한다; 내 가르침의 영을 빨리 식별하지 못한다. 다시 상기시키는데 너희는 나의 사자(使者)들임을 명심하고; 내가 영적으로 나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너희의 삶도 그렇게 살도록 은혜를 입었다. 너희는 나의 개인적 대표자들이지만; 모든 이들이 모든 면에서 너희가 행하는 것처럼 살리라고 기대하는 실수를 범하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내가 너희 외에도 다른 무리의 양떼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또한 그들에게 내가 매인바 되어 끝까지 필사자의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도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모범을 보여야 함을 기억해야만 한다.” And then said Jesus: "But you will stumble over my teaching because you are wont to interpret my message literally; you are slow to discern the spirit of my teaching. Again must you remember that you are my messengers; you are beholden to live your lives as I have in spirit lived mine. You are my personal representatives; but do not err in expecting all men to live as you do in every particular. Also must you remember that I have sheep not of this flock, and that I am beholden to them also, to the end that I must provide for them the pattern of doing the will of God while living the life of the mortal nature."
140:6.9 그러자 나다니엘이 물었다: “주(主)여, 우리가 공의를 위해 양보를 하지 말아야 합니까? 모세의 율법은 말하기를, ‘눈에는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했는데,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예수가 대답했다; “너희는 악을 선으로 갚아라. 나의 사자들은 사람들과 분투하여서는 안 되며 모든 이에게 온유하게 대해라. 당한 것을 그대로 갚는 것은 너희의 법칙이 아니다. 사람의 규율에는 그러한 법이 있지만, 하늘의 왕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항상 자비가 너희의 심판을 결정해야 하며 사랑이 너희의 행위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 말이 너희에게 벅차다면, 지금이라도 되돌아 갈 수 있다. 만약 사도가 되기 위한 요구사항이 너희에게 너무 벅차다면, 너희는 덜 엄격한 제자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Then asked Nathaniel: "Master, shall we give no place to justice? The law of Moses says,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What shall we say?" And Jesus answered: "You shall return good for evil. My messengers must not strive with men, but be gentle toward all. Measure for measure shall not be your rule. The rulers of men may have such laws, but not so in the kingdom; mercy always shall determine your judgments and love your conduct. And if these are hard sayings, you can even now turn back. If you find the requirements of apostleship too hard, you may return to the less rigorous pathway of discipleship."
140:6.10 이러한 충격적인 말씀들을 듣고 사도들은 잠시 동안 자기들끼리 따로 모임을 가졌으나, 그들은 곧 다시 돌아왔으며,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다: “주(主)여, 우리는 당신과 함께 가겠으며; 우리 중 어느 하나도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별도의 대가(代價)를 치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잔을 마시겠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제자가 아닌 사도가 되겠습니다.” On hearing these startling words, the apostles drew apart by themselves for a while, but they soon returned, and Peter said: "Master, we would go on with you; not one of us would turn back. We are fully prepared to pay the extra price; we will drink the cup. We would be apostles, not merely disciples."
140:6.11 예수가 이 말을 듣고 말씀하였다: “그러면 너희는 기꺼이 책임감을 갖고 나를 따라라. 너희의 선행을 은밀히 행하되; 너희가 선행을 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그리고 기도할 때에 홀로 따로 가서 하며, 헛된 반복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아버지께서 이미 알고 계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라. 그리고 금식할 때에 다른 이에게 보이도록 슬픈 기색을 내지 마라. 나의 선택된 사도로서 이제 왕국의 봉사를 하러 따로 나갈 때에 너희를 위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사심 없는 봉사를 통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 왜냐하면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가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When Jesus heard this, he said: "Be willing, then, to take up your responsibilities and follow me. Do your good deeds in secret; when you give alms, let not the left hand know what the right hand does. And when you pray, go apart by yourselves and use not vain repetitions and meaningless phrases. Always remember that the Father knows what you need even before you ask him. And be not given to fasting with a sad countenance to be seen by men. As my chosen apostles, now set apart for the service of the kingdom, lay not up for yourselves treasures on earth, but by your unselfish service lay up for yourselves treasures in heaven, for where your treasures are, there will your hearts be also.
140:6.12 “눈은 몸의 등불이다; 따라서 만약 네 눈이 관대하면 너의 온 몸이 빛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만약 눈이 이기적이면 온 몸이 어두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있는 빛이 어둠으로 변한다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 "The lamp of the body is the eye; if, therefore, your eye is generous, your whole body will be full of light. But if your eye is selfish, the whole body will be filled with darkness. If the very light which is in you is turned to darkness, how great is that darkness!"
140:6.13 그러자 도마예수께 자기들이 “계속하여 모든 것을 나누어가져야 하는지”를 물었다. 예수가 대답하였다: “그렇다, 나의 형제들아, 우리가 하나의 납득하는 가족으로 살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 너희는 위대한 사명을 부여받았으니, 나는 너희가 전심을 다 바쳐 봉사하기 바란다. 너희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말을 알고 있다. 너희는 하느님께 진지하게 경배를 드리면서 동시에 재물을 전심으로 섬기지 못한다. 하늘의 왕국의 일에 기탄없는 협력을 하려고 애쓴다면, 너희 자신의 삶을 걱정하지 말며;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자진해서 일하는 손과 진실한 가슴은 굶주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너희의 모든 힘을 왕국의 일에 바치고자 준비했으므로, 아버지는 너희의 필요함을 못본체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라. 먼저 하느님의 왕국을 구하라, 그리고 너희가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 한 날의 수고는 그 날로 족하다.” And then Thomas asked Jesus if they should "continue having everything in common." Said the Master: "Yes, my brethren, I would that we should live together as one understanding family. You are intrusted with a great work, and I crave your undivided service. You know that it has been well said: `No man can serve two masters.' You cannot sincerely worship God and at the same time wholeheartedly serve mammon. Having now enlisted unreservedly in the work of the kingdom, be not anxious for your lives; much less be concerned with what you shall eat or what you shall drink; nor yet for your bodies, what clothing you shall wear. Already have you learned that willing hands and earnest hearts shall not go hungry. And now, when you prepare to devote all of your energies to the work of the kingdom, be assured that the Father will not be unmindful of your needs.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when you have found entrance thereto, all things needful shall be added to you. Be not, therefore, unduly anxious for the morrow. Sufficient for the day is the trouble thereof."
140:6.14 예수는 그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나의 형제들아, 너희는 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이니; 내일의 일을 위해 숙소로 가서 쉬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눈에서는 잠이 떠났다. 베드로는 용기를 내어 주(主)께 간청하였다: “저는 잠깐 사적으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내가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불안한 영 때문이며, 어쩌면 주(主)로부터 꾸짖음을 당할 지도 모르지만, 주(主)와 단 둘이서 라면 달갑게 받겠습니다.” 예수는 “베드로야, 나를 따라 와라.”라고 말씀하며 집안으로 그를 데리고 가셨다. 주(主)를 만나고 돌아온 베드로가 기분이 한결 고조된 것에 힘을 얻어 야고보예수와 말씀을 나누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이른 아침시간까지 다른 사도들도 계속해서 주(主)와 개인적 면담을 가졌다. 잠을 자고 있던 쌍둥이 형제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와의 면담을 끝내자, 안드레예수께 가서 물었다: “주(主)여, 쌍둥이 형제는 뜰에 있는 불 옆에서 자고 있는데 저들도 선생님과 면담을 하겠는지 물어보러 깨울까요?” 그러자 예수는 미소를 지으며 안드레에게 말씀하였다: “그들은 잘하고 있으니─방해하지 마라.” 이제 밤이 지나고 다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When Jesus saw they were disposed to stay up all night to ask questions, he said to them: "My brethren, you are earthen vessels; it is best for you to go to your rest so as to be ready for the morrow's work." But sleep had departed from their eyes. Peter ventured to request of his Master that "I have just a little private talk with you. Not that I would have secrets from my brethren, but I have a troubled spirit, and if, perchance, I should deserve a rebuke from my Master, I could the better endure it alone with you." And Jesus said, "Come with me, Peter" -- leading the way into the house. When Peter returned from the presence of his Master much cheered and greatly encouraged, James decided to go in to talk with Jesus. And so on through the early hours of the morning, the other apostles went in one by one to talk with the Master. When they had all held personal conferences with him save the twins, who had fallen asleep, Andrew went in to Jesus and said: "Master, the twins have fallen asleep in the garden by the fire; shall I arouse them to inquire if they would also talk with you?" And Jesus smilingly said to Andrew, "They do well -- trouble them not." And now the night was passing; the light of another day was dawning.


7. 성직 수여식 다음 주간
 

7. THE WEEK FOLLOWING THE ORDINATION

140:7.1 몇 시간 눈을 붙인 뒤, 사도들이 예수와 함께 늦은 아침 식사를 들기 위해 모였을 때, 예수가 말씀하였다: “너희는 이제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믿는 자들을 가르칠 너희의 임무를 시작해야 한다. 예루살렘으로 떠날 준비를 해라.” 예수가 이렇게 말하자 도마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주(主)여, 지금쯤은 우리가 그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우리가 이 위대한 사업을 성취할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우리가 왕국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며칠만 더 여기에 머물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는 다른 사도들 모두도 도마와 같은 생각인 것을 보시고 말씀하였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하자; 우리는 안식일까지 여기 머물기로 하겠다.” After a few hours' sleep, when the twelve were assembled for a late breakfast with Jesus, he said: "Now must you begin your work of preaching the glad tidings and instructing believers. Make ready to go to Jerusalem." After Jesus had spoken, Thomas mustered up courage to say: "I know, Master, that we should now be ready to enter upon the work, but I fear we are not yet able to accomplish this great undertaking. Would you consent for us to stay hereabouts for just a few days more before we begin the work of the kingdom?" And when Jesus saw that all of his apostles were possessed by this same fear, he said: "It shall be as you have requested; we will remain here over the Sabbath day."
140:7.2 여러 주간들 동안 호기심 있는 구경꾼들을 포함하여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의 작은 집단들이 예수를 만나러 벳세다로 왔다. 이미 예수에 관한 소식은 널리 지방에까지 퍼졌으며; 호기심에 찬 집단들이 티레, 시돈, 다마스커스, 케자리아, 그리고 예루살렘 같은 먼 곳의 도시로부터 왔다. 그 때까지는 예수가 그들을 맞아들여 왕국에 대해 직접 가르치셨으나, 이제는 이 일을 사도들에게 맡겼다. 안드레는 사도들 중에서 한 명씩을 택하여 방문자들을 맡아보게 했으며 가끔은 사도들 모두가 함께 이 일을 맡아보았다. For weeks and weeks small groups of earnest truth seekers, together with curious spectators, had been coming to Bethsaida to see Jesus. Already word about him had spread over the countryside; inquiring groups had come from cities as far away as Tyre, Sidon, Damascus, Caesarea, and Jerusalem. Heretofore, Jesus had greeted these people and taught them concerning the kingdom, but the Master now turned this work over to the twelve. Andrew would select one of the apostles and assign him to a group of visitors, and sometimes all twelve of them were so engaged.
140:7.3 그들은 이틀 동안 일을 했는데, 낮에는 가르치고 밤에는 늦게까지 사적 모임을 가졌다. 삼 일째 되는 날, 예수는 사도들에게 “고기를 잡거나 기분전환을 하거나 혹은 가족을 방문하고 오라”고 말씀하며 그들을 보내시고, 자신은 세베대살로메를 방문하였다. 그들은 나머지 3일 동안의 가르침을 위해 목요일에 돌아왔다. For two days they worked, teaching by day and holding private conferences late into the night. On the third day Jesus visited with Zebedee and Salome while he sent his apostles off to "go fishing, seek carefree change, or perchance visit your families." On Thursday they returned for three more days of teaching.
140:7.4 이 연습기간 동안, 예수는 세례이후의 자신의 지상 사명의 두 가지 큰 동기들에 대해 여러 번 반복하여 말씀하였다: During this week of rehearsing, Jesus many times repeated to his apostles the two great motives of his postbaptismal mission on earth:
 

 1.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현시하는 일.

 2.

사람들로 하여금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그들이 지고자의 자녀들임을 신앙으로 깨닫는 일.

1.

To reveal the Father to man.

2.

To lead men to become son-conscious -- to faith-realize that they are the children of the Most High.

140:7.5 이러한 한 주간 동안의 여러 가지 체험이 사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몇몇 사도들은 자신감이 너무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 안식일이 지난 날 밤인 마지막 저녁 모임에서 베드로야고보예수께 나아와 말했다: “우리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왕국을 취하러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 말에 예수가 대답하기를, “너희 지혜가 너희의 열정에 필적하고, 너희 용기가 너희 무지를 대신해 주기를 바란다.” One week of this varied experience did much for the twelve; some even became over self-confident. At the last conference, the night after the Sabbath, Peter and James came to Jesus, saying, "We are ready -- let us now go forth to take the kingdom." To which Jesus replied, "May your wisdom equal your zeal and your courage atone for your ignorance."
140:7.6 사도들은 예수의 가르침의 많은 부분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예수가 그들과 함께 지냈던 즐겁고 아름다운 일생의 의의(意義)는 이해하였다. Though the apostles failed to comprehend much of his teaching, they did not fail to grasp the significance of the charmingly beautiful life he lived with them.


8. 목요일 오후 호수에서
 

8. THURSDAY AFTERNOON ON THE LAKE

140:8.1 예수는 사도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잘 아셨다. 그래서 그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다른 동료들에게 자신의 관념들을 분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기를 바라시면서, 그들에게 얼마간의 특별한 가르침을 더 주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사도들이 영적 왕국의 관념을 다소 이해하면서도, 새로운 영적 가르침을 땅에서의 일시적 힘으로서의 다윗의 권좌를 되찾고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것으로 하늘의 왕국의 이전의 개념에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확고하게 고집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다. 따라서 예수는 목요일 오후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배를 타고 호수에 나가 왕국의 관련사들에 대해 좀 더 설명하였다. 그것은 수많은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장장 네 시간에 걸친 수업이었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은, 시몬 베드로가 그 날 오후에 배웠던 것에 대해 그 다음날 아침에 자기 형 안드레에게 전했던 내용을 가장 유익하게 재구성하여 요약한 것이다: Jesus well knew that his apostles were not fully assimilating his teachings. He decided to give some special instruction to Peter, James, and John, hoping they would be able to clarify the ideas of their associates. He saw that, while some features of the idea of a spiritual kingdom were being grasped by the twelve, they steadfastly persisted in attaching these new spiritual teachings directly onto their old and entrenched literal concepts of the kingdom of heaven as a restoration of David's throne and the re-establishment of Israel as a temporal power on earth. Accordingly, on Thursday afternoon Jesus went out from the shore in a boat with Peter, James, and John to talk over the affairs of the kingdom. This was a four hours' teaching conference, embracing scores of questions and answers, and may most profitably be put in this record by reorganizing the summary of this momentous afternoon as it was given by Simon Peter to his brother, Andrew, the following morning:
140:8.2 1.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예수는 하늘 아버지의 보호하심을 믿으라고 가르쳤는데, 이는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운명론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날 오후에 오래된 히브리 속담에 동의하면서 인용하였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 그는 자신의 가르침들에 대해 충분한 해석이 되도록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아버지를 신뢰함에 대한 그의 교훈들은 현대나 또는 어떤 다른 시대에 있어서의 사회적 또는 경제적 상황에 의해 판단되어져서는 안 된다. 그의 가르침은 모든 시대와 모든 세상에 있어서 하느님과 가깝게 사는 삶이라는 이상적인 원리를 포옹하고 있다. 1. Doing the Father's will. Jesus' teaching to trust in the overcare of the heavenly Father was not a blind and passive fatalism. He quoted with approval, on this afternoon, an old Hebrew saying: "He who will not work shall not eat." He pointed to his own experience as sufficient commentary on his teachings. His precepts about trusting the Father must not be adjudged by the social or economic conditions of modern times or any other age. His instruction embraces the ideal principles of living near God in all ages and on all worlds.
140:8.3 예수는 그 세 사람들에게 사도의 신분과 일반 제자의 신분으로부터 요구되는 점들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밝혀 주었다. 그리고 그때에도 예수는 12사도들이 분별력과 선견지명을 발휘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그가 금한 것은 미리 생각함이 아니라 걱정함과 근심함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뜻에 능동적이고 민첩하게 순종할 것을 가르치셨다. 검약과 검소에 관한 그들의 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오직 목수였으며 배 제작자였고 어부였던 자신의 일생에 대하여, 그리고 12사도들에 대한 자신의 신중한 구성만을 그들에게 환기시키셨다. 그는 세상이 그들에게 적이 아니고 하느님의 자녀들과 함께 일하면서 신성한 섭리시대를 이루는 환경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고자 하였다. Jesus made clear to the three the difference between the requirements of apostleship and discipleship. And even then he did not forbid the exercise of prudence and foresight by the twelve. What he preached against was not forethought but anxiety, worry. He taught the active and alert submission to God's will. In answer to many of their questions regarding frugality and thriftiness, he simply called attention to his life as carpenter, boatmaker, and fisherman, and to his careful organization of the twelve. He sought to make it clear that the world is not to be regarded as an enemy; that the circumstances of life constitute a divine dispensation working along with the children of God.
140:8.4 예수는 사도들에게 무저항이라는 자신의 개인적 관습을 납득시키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방어를 절대적으로 거부하였으며, 사도들도 그렇게 행해 준다면 그가 기뻐하실 것임이 그들에게 분명하게 전해졌다. 그들에게 악에 저항하거나 불의나 혹은 부상에 대항해 싸우지 말라고 가르치셨지만, 그릇된 일에 수동적으로 참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날 오후에, 악을 행하는 자와 범죄자들의 사회적 처벌을 인정하며 정부가 때때로는 사회질서 유지와 공의의 실행을 위해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Jesus had great difficulty in getting them to understand his personal practice of nonresistance. He absolutely refused to defend himself, and it appeared to the apostles that he would be pleased if they would pursue the same policy. He taught them not to resist evil, not to combat injustice or injury, but he did not teach passive tolerance of wrongdoing. And he made it plain on this afternoon that he approved of the social punishment of evildoers and criminals, and that the civil government must sometimes employ force for the maintenance of social order and in the execution of justice.
140:8.5 그는 사도들에게 보복이라는 악의 실행을 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고하였다; 보복, 원수를 갚겠다는 관념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유감을 품는 것도 개탄하였다.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관념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사적이나 개인적 복수의 모든 개념에 찬성하지 않았고, 이러한 문제들을 한편으로는 정부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판단 아래에 맡겼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개별존재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정부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그 세 사람들에게 분명히 밝히셨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그 때까지의 자신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He never ceased to warn his disciples against the evil practice of retaliation; he made no allowance for revenge, the idea of getting even. He deplored the holding of grudges. He disallowed the idea of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He discountenanced the whole concept of private and personal revenge, assigning these matters to civil government, on the one hand, and to the judgment of God, on the other. He made it clear to the three that his teachings applied to the individual, not the state. He summarized his instructions up to that time regarding these matters, as:
140:8.6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인간이 형제신분이라는 도덕적 주장들을 기억하라. Love your enemies -- remember the moral claims of human brotherhood.
140:8.7 악은 무익하다: 잘못은 보복으로 올바르게 되지 않는다. 악 자체의 무기로 악과 싸우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 The futility of evil: A wrong is not righted by vengeance. Do not make the mistake of fighting evil with its own weapons.
140:8.8 신앙을 가져라─신성한 공의와 영원한 선행이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져라. Have faith -- confidence in the eventual triumph of divine justice and eternal goodness.
140:8.9 2. 정치적 태도. 예수는 사도들에게 그 당시 로마정부와 유대민족 사이에 존재하던 긴장된 관계에 대해 말할 때, 신중해 지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들이 이들 어려움들에 어떤 식으로든지 말려드는 것을 것을 금하였다. 그는 언제나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치라”고 말씀하면서, 그의 적들이 처놓은 정치적 함정에 항상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자신의 관심이 구원의 새로운 길을 확립하는 자신의 사명으로부터 옆길로 전환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그 어떤 다른 것에 관여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의 개인적 일생에서, 항상 모든 법과 규칙을 준수했다; 대중적 가르침에서 시민적, 사회적, 경제적 영역은 무시하였다. 그는 자신이 오직, 사람의 내적세계 그리고 개인적 영적 일생의 원칙들에만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세 사도들에게 말씀하였다.. 2. Political attitude. He cautioned his apostles to be discreet in their remarks concerning the strained relations then existing between the Jewish people and the Roman government; he forbade them to become in any way embroiled in these difficulties. He was always careful to avoid the political snares of his enemies, ever making reply, "Render to Caesar the things which are Caesar's and to God the things which are God's." He refused to have his attention diverted from his mission of establishing a new way of salvation; he would not permit himself to be concerned about anything else. In his personal life he was always duly observant of all civil laws and regulations; in all his public teachings he ignored the civic, social, and economic realms. He told the three apostles that he was concerned only with the principles of man's inner and personal spiritual life.
140:8.10 그러므로 예수는 정치적 개혁가가 아니었다. 그는 세상을 재조직하러 오신 것이 아니었으며; 만약 그가 그랬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시대와 그 세대에만 적용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에게 삶의 최선의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 어떤 세대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문제에, 예수의 일생을 최상으로 적응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수고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을 그 어떤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론이나 사회 또는 산업 체제와 동일시하려는 오류를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된다. Jesus was not, therefore, a political reformer. He did not come to reorganize the world; even if he had done this, it would have been applicable only to that day and generation. Nevertheless, he did show man the best way of living, and no generation is exempt from the labor of discovering how best to adapt Jesus' life to its own problems. But never make the mistake of identifying Jesus' teachings with any political or economic theory, with any social or industrial system.
140:8.11 3. 사회적 태도. 유대의 랍비들은 오랫동안 ‘누가 나의 이웃인가?'에 대해 논쟁해 왔다. 예수는 와서, 적극적이며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친절 관념을 제시하였다. 이웃을 너무도 진실하게 사랑함으로써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도록 이웃을 확대시키고, 그렇게 하여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만드는 사랑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서, 예수는 군중이 아니라 오직 개별존재에게 관심을 주었다. 예수는 사회학자는 아니었지만 모든 형태의 이기적 고립을 없애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순수한 동정심, 연민을 가르치셨다. 네바돈미가엘은 자비에-사로잡힌 아들이었으며; 연민은 바로 그의 본성이었다. 3. Social attitude. The Jewish rabbis had long debated the question: Who is my neighbor? Jesus came presenting the idea of active and spontaneous kindness, a love of one's fellow men so genuine that it expanded the neighborhood to include the whole world, thereby making all men one's neighbors. But with all this, Jesus was interested only in the individual, not the mass. Jesus was not a sociologist, but he did labor to break down all forms of selfish isolation. He taught pure sympathy, compassion. Michael of Nebadon is a mercy-dominated Son; compassion is his very nature.
140:8.12 주(主)는 사람들이 친구들에게 식사 대접하는 것을 절대로 금한 적이 없었지만, 자신의 추종자들에게는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어야한다고 말씀하였다. 예수는 공의에 대한 확고한 감각을 갖고 계셨지만 그것은 항상 자비로 조절되어 있었다. 그는 사도들에게 사회의 식객(食客)들이나 전문적으로 구제를-찾아다니는 자들에게 이용당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사회에 대한 의견 발표라고 하기에 가장 가까웠던 말씀은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The Master did not say that men should never entertain their friends at meat, but he did say that his followers should make feasts for the poor and the unfortunate. Jesus had a firm sense of justice, but it was always tempered with mercy. He did not teach his apostles that they were to be imposed upon by social parasites or professional alms-seekers. The nearest he came to making sociological pronouncements was to say, "Judge not, that you be not judged."
140:8.13 그는 무분별한 친절이 많은 사회적 악에 책임이 있을 수 있음을 분명하게 하였다. 다음날 예수는 사도들의 재산은 예수 자신의 요구나 두 사도의 공동 신청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제금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유다에게 확고하게 지시하였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 예수는 항상 “뱀처럼 지혜롭되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하곤 했다. 모든 사회적 상황 속에서 절제와 인내와 용서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인 듯이 보였다. He made it clear that indiscriminate kindness may be blamed for many social evils. The following day Jesus definitely instructed Judas that no apostolic funds were to be given out as alms except upon his request or upon the joint petition of two of the apostles. In all these matters it was the practice of Jesus always to say, "Be as wise as serpents but as harmless as doves." It seemed to be his purpose in all social situations to teach patience, tolerance, and forgiveness.
140:8.14 예수의 생활철학─여기서뿐만 아니라 나중에도─에서 영구적인 최고의 중심은 가족이었다. 그는 가족을 기반으로 하여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셨으며, 한편으로는 조상들을 과잉 숭배하는 유대인의 전통을 고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가정생활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상의 의무라고 하였지만, 가족 관계가 신앙적 의무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또한 분명하게 밝히셨다. 그는 가족이 현세적인 관습이고, 죽음 이후에는 적용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셨다. 예수는 자신의 가족이 아버지의 뜻과 충돌이 되었을 때, 자신의 가족을 포기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새롭고도 폭넓은 형제신분─하느님의 아들들─을 가르치셨다. 예수 시대의 팔레스타인로마제국 전역에서는 이혼이 성행하고 있었다. 예수는 결혼과 이혼에 대한 법을 규정하기를 거듭 거부하였지만,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은 대부분 이혼에 관한 뚜렷한 의견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요한 마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신약 성서의 저자들이 이혼에 대해 더욱 엄격하고 진보된 이들 관념들을 고수하였다. The family occupied the very center of Jesus' philosophy of life -- here and hereafter. He based his teachings about God on the family, while he sought to correct the Jewish tendency to overhonor ancestors. He exalted family life as the highest human duty but made it plain that family relationships must not interfere with religious obligations. He called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 family is a temporal institution; that it does not survive death. Jesus did not hesitate to give up his family when the family ran counter to the Father's will. He taught the new and larger brotherhood of man -- the sons of God. In Jesus' time divorce practices were lax in Palestine and throughout the Roman Empire. He repeatedly refused to lay down laws regarding marriage and divorce, but many of Jesus' early followers had strong opinions on divorce and did not hesitate to attribute them to him. All of the New Testament writers held to these more stringent and advanced ideas about divorce except John Mark.
140:8.15 4. 경제적 태도. 예수는 세상에서 배운 대로 일하였고 사셨으며 거래하였다. 비록 그가 부(富)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해 자주 주의를 기울이긴 하였지만, 경제 제도의 개혁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러한 불평등한 분배에 대한 어떤 개선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 세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도들로서는 재산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면서 단지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분배에 대해 말씀했을 뿐, 부와 재산에 반대하는 설교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사회 공의와 산업적 공평성의 필요를 인식하였지만, 그것의 달성을 위한 아무런 규율도 제시하지 않았다. 4. Economic attitude. Jesus worked, lived, and traded in the world as he found it. He was not an economic reformer, although he did frequently call attention to the injustice of the unequal distribution of wealth. But he did not offer any suggestions by way of remedy. He made it plain to the three that, while his apostles were not to hold property, he was not preaching against wealth and property, merely its unequal and unfair distribution. He recognized the need for social justice and industrial fairness, but he offered no rules for their attainment.
140:8.16 그는 열 두 사도들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에게는 한 번도 세상의 재물을 버리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다. 의사였던 누가는, 사회적 평등에 강한 신념을 가진 자였으며, 예수의 많은 가르침들을 자신의 개인적 믿음과 일치시켜 해석하였다. 예수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공동생활 방식을 따르라고 개인적으로 지시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그러한 문제에 관한 어떤 종류의 말도 하지 않았다. He never taught his followers to avoid earthly possessions, only his twelve apostles. Luke, the physician, was a strong believer in social equality, and he did much to interpret Jesus' sayings in harmony with his personal beliefs. Jesus never personally directed his followers to adopt a communal mode of life; he made no pronouncement of any sort regarding such matters.
140:8.17 예수는 사람들에게 탐욕에 대해 자주 경고하면서, “사람의 행복은 그의 물질적 소유의 풍족에 있지 않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라고 거듭 말씀하였다. 그는 재산의 소유에 대해 정면 공격을 하지 않았지만, 영적 가치가 선행된다는 영원한 기본 원칙을 강조하였다. 그는 자신의 후반기 가르침에서 대중에게 설교할 때에 수많은 비유를 통하여 실수를 일으키는 유란시아의 일생의 관점의 많은 것을 고치려고 애를 쓰셨다. 예수는 절대로 경제이론을 정립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각각의 시대가 자신들의 당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만 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만일 예수가 육신으로 오늘날 이 땅에 살고 계시더라도, 그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분쟁 속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으실 것이므로 대부분의 선남선녀들이 실망할 것이다. 그는 너희들로 하여금 순수하게 인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갖출 수 있도록, 너희들의 내적인 영적 생활을 완전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시면서 홀로 따로 숭고하게 남아 계실 것이다. Jesus frequently warned his listeners against covetousness, declaring that "a man's happiness consists not in the abundance of his material possessions." He constantly reiterated, "What shall it profit a man if he gain the whole world and lose his own soul?" He made no direct attack on the possession of property, but he did insist that it is eternally essential that spiritual values come first. In his later teachings he sought to correct many erroneous Urantia views of life by narrating numerous parables which he presented in the course of his public ministry. Jesus never intended to formulate economic theories; he well knew that each age must evolve its own remedies for existing troubles. And if Jesus were on earth today, living his life in the flesh, he would be a great disappointment to the majority of good men and women for the simple reason that he would not take sides in present-day political, social, or economic disputes. He would remain grandly aloof while teaching you how to perfect your inner spiritual life so as to render you manyfold more competent to attack the solution of your purely human problems.
140:8.18 예수는 모든 이들을 하느님을 닮게 만들고 이 하느님의 자녀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동정심으로 바라보며 기다리실 것이다. 그가 비난한 것은 부가 아니라 그 부가 그것을 신봉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이었다. 이 목요일 오후에 예수는 처음으로 사도들에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라는 말씀을 하였다. Jesus would make all men Godlike and then stand by sympathetically while these sons of God solve their own political, social, and economic problems. It was not wealth that he denounced, but what wealth does to the majority of its devotees. On this Thursday afternoon Jesus first told his associates that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140:8.19 5. 개인적 종교. 그의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도 예수의 일생을 통해 그의 가르침을 더 잘 납득해야만 한다. 그는 유란시아에서 완전한 일생을 사셨고, 그의 고유한 가르침들은 그 일생이 직접적인 체험으로 가시화될 때에만 납득될 수 있다. 아버지의 신성한 특성과 사랑의 개인성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예수의 사도들에 대한 가르침과 대중에 대한 설교가 아니라, 그의 일생이다. 5. Personal religion. You, as did his apostles, should the better understand Jesus' teachings by his life. He lived a perfected life on Urantia, and his unique teachings can only be understood when that life is visualized in its immediate background. It is his life, and not his lessons to the twelve or his sermons to the multitudes, that will assist most in revealing the Father's divine character and loving personality.
140:8.20 예수히브리의 선지자들이나 그리스의 도덕주의자들의 가르침을 공격하지 않았다. 주(主)는 이들 위대한 선생들의 많은 좋은 말들을 인정하였지만, 그는 추가적인 어떤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 땅에 왔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사람 의지의 자발적인 일치”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예수는 단지 종교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고 오직 영적 자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하나의 종교적인 사람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한 번만이라도 그를 바라 볼 수 있었다면, 예수는 이 세상일들에 위대한 체험을 한 진정한 하나의 사람이었음을 단번에 알아 차렸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예수의 가르침들은 그리스도교 시대의 여러 세기들을 거치면서 비뚤어지고 잘못 전해져 왔다; 너희들도 역시 주(主)의 온유함과 겸손함에 대해서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가 자신의 일생 속에서 목표했던 것은 장엄한 자아-존중을 갖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오직 사람들이 스스로 낮아져야만 진정으로 높임을 받는다고 충고하였다; 그가 진정으로 목표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겸손이었다. 그는 성실함─순수한 진심─에 가장 큰 가치를 두셨다. 성실성은 그가 성품을 평가하는 기본 덕목이었으며, 반면에 용기는 그의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두려워 말라”는 말은 그의 표어였고, 인내는 그의 이상적인 성품의 힘을 지탱해 주는 것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종교적 용기, 담력, 영웅적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가 자신의 개인적 대표로서 어째서 소박하고 씩씩하며 대부분 어부 출신인 평범한 사람들을 선택하였는지 하는 이유이다. Jesus did not attack the teachings of the Hebrew prophets or the Greek moralists. The Master recognized the many good things which these great teachers stood for, but he had come down to earth to teach something additional, "the voluntary conformity of man's will to God's will." Jesus did not want simply to produce a religious man, a mortal wholly occupied with religious feelings and actuated only by spiritual impulses. Could you have had but one look at him, you would have known that Jesus was a real man of great experience in the things of this world. The teachings of Jesus in this respect have been grossly perverted and much misrepresented all down through the centuries of the Christian era; you have also held perverted ideas about the Master's meekness and humility. What he aimed at in his life appears to have been a superb self-respect. He only advised man to humble himself that he might become truly exalted; what he really aimed at was true humility toward God. He placed great value upon sincerity -- a pure heart. Fidelity was a cardinal virtue in his estimate of character, while courage was the very heart of his teachings. "Fear not" was his watchword, and patient endurance his ideal of strength of character. The teachings of Jesus constitute a religion of valor, courage, and heroism. And this is just why he chose as his personal representatives twelve commonplace men, the majority of whom were rugged, virile, and manly fishermen.
140:8.21 예수는 당시의 사회적 병폐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으며; 도덕적 비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진정한 덕을 갖춘 적극적인 선생이었다. 그는 가르치실 때에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피하였으며; 악을 선전(宣傳)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는 도덕의 개혁가도 아니셨다. 그는 인간의 감각적 충동이 종교적 비난이나 법적 제재에 의해서 억제되지 않음을 잘 아셨으며 사도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셨다. 그의 몇 가지 경고는 주로 자만심, 잔인함, 억압, 위선에 관한 것이었다. Jesus had little to say about the social vices of his day; seldom did he make reference to moral delinquency. He was a positive teacher of true virtue. He studiously avoided the negative method of imparting instruction; he refused to advertise evil. He was not even a moral reformer. He well knew, and so taught his apostles, that the sensual urges of mankind are not suppressed by either religious rebuke or legal prohibitions. His few denunciations were largely directed against pride, cruelty, oppression, and hypocrisy.
140:8.22 예수 요한처럼 격렬하게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정직한 가슴을 소유하고 있음을 아셨으며; 그들이 종교적 전통에 얽매어 있음을 납득하였다. 예수는 “먼저 좋은 나무를 심는 것”에 대해 많이 강조하였다. 그는 그 세 사도들에게, 자신은 몇 가지의 특정한 선행들에게 가치를 두지 않고 전체의 일생에 가치를 둔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Jesus did not vehemently denounce even the Pharisees, as did John. He knew many of the scribes and Pharisees were honest of heart; he understood their enslaving bondage to religious traditions. Jesus laid great emphasis on "first making the tree good." He impressed the three that he valued the whole life, not just a certain few special virtues.
140:8.23 그 날의 가르침에서 요한이 터득한 한 가지는, 예수의 종교 핵심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따르려는 데서 동기를 가진 개인성과 더불어, 연민이 가득한 성격을 습득하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The one thing which John gained from this day's teaching was that the heart of Jesus' religion consisted in the acquirement of a compassionate character coupled with a personality motivated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140:8.24 베드로는 자신들이 선포할 복음이 진실로 전체 인류에 대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관념을 파악했다. 그는 이 생각을 나중에 바울에게 전했는데, 바울은 그것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두 번째 아담”이라고 칭하는 그리스도교 교리를 형성하였다. Peter grasped the idea that the gospel they were about to proclaim was really a fresh beginning for the whole human race. He conveyed this impression subsequently to Paul, who formulated therefrom his doctrine of Christ as "the second Adam."
140:8.25 야고보예수가 그의 지상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도, 완성된 하늘왕국에서 이미 시민들이 된 것처럼 살게 되기를 원한다는 감격적인 진리를 깨달았다. James grasped the thrilling truth that Jesus wanted his children on earth to live as though they were already citizens of the completed heavenly kingdom.
140:8.26 예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아셨고 사도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셨다. 그는 사도들에게 제자들과 신도들을 일정한 틀에 짜 맞추지 말라고 끊임없이 훈계하였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고 분리된 한 개별존재로서 각각의 혼이 각자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가는 것이 허용되기를 원하였다. 베드로의 많은 질문 중의 하나에 대답하면서 주(主)가 이렇게 말씀하였다: “나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여, 새롭고도 더욱 나은 일생위에서 갓난아이처럼 새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원한다.” 예수는 진정한 선행은 무의식중에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자선을 행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항상 강조하였다. Jesus knew men were different, and he so taught his apostles. He constantly exhorted them to refrain from trying to mold the disciples and believers according to some set pattern. He sought to allow each soul to develop in its own way, a perfecting and separate individual before God. In answer to one of Peter's many questions, the Master said: "I want to set men free so that they can start out afresh as little children upon the new and better life." Jesus always insisted that true goodness must be unconscious, in bestowing charity not allowing the left hand to know what the right hand does.
140:8.27 세 사도들은 이 날 오후, 주(主)의 종교에는 영적 자아-검증에 대해 아무런 규정도 없음을 깨닫고 매우 놀랐다. 예수의 시절 이전과 이후에 있던 모든 종교는, 심지어 그리스도교에서도, 양심적인 자아-검증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종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예수의 일생에서의 철학은 종교적 자기성찰이 없다. 목수의 아들은 성격 형성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하늘의 왕국은 겨자씨와 같다고 선언하면서, 성격 성장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예수는 거만한 자기중심주의를 예방하는 수단인 자아-분석을 금지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The three apostles were shocked this afternoon when they realized that their Master's religion made no provision for spiritual self-examination. All religions before and after the times of Jesus, even Christianity, carefully provide for conscientious self-examination. But not so with the religion of Jesus of Nazareth. Jesus' philosophy of life is without religious introspection. The carpenter's son never taught character building; he taught character growth, declaring tha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mustard seed. But Jesus said nothing which would proscribe self-analysis as a prevention of conceited egotism.
140:8.28 왕국에 들어가는 권리는 신앙, 개인적 신념에 달려 있다. 왕국으로 가는 점진적인 상승에 참여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代價)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서라도 사려는 비싼 진주와 같다. The right to enter the kingdom is conditioned by faith, personal belief. The cost of remaining in the progressive ascent of the kingdom is the pearl of great price, in order to possess which a man sells all that he has.
140:8.29 예수의 가르침은 약한 자나 노예들만을 위한 하나의 종교가 아니며,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교이다. 그의 종교는 결코 신조나 신학적 규칙으로 구체화되지 않았으며(그의 시절 동안에), 그는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일생과 가르침은 온 세상의 모든 세대에게 영적 인도와 도덕적 가르침에 적합한 영감을 주는 이상적인 유산으로 후세에 전해졌다. 그리고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예수의 가르침은 모든 종교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서서, 그들 모두에게 살아있는 희망이 되고 있다. The teaching of Jesus is a religion for everybody, not alone for weaklings and slaves. His religion never became crystallized (during his day) into creeds and theological laws; he left not a line of writing behind him. His life and teachings were bequeathed the universe as an inspirational and idealistic inheritance suitable for the spiritual guidance and moral instruction of all ages on all worlds. And even today, Jesus' teaching stands apart from all religions, as such, albeit it is the living hope of every one of them.
140:8.30 예수는 사도들에게, 종교가 사람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유일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았으며; 그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관념이었다. 그러나 열 두 사도들에게는 종교가 그들의 유일한 일이라고 단언하였다. 예수는 자신의 신도들에게, 그들이 진정한 문화를 추구하는데 방해가 될 그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았으며; 오직 전통에 얽매여 있던 예루살렘의 종교적 학파들로부터만 멀리 떨어졌다. 그는 개방적이며, 가슴이 넓고, 박식했으며, 참을성이 많았다. 자아-의식이 강한 연민은, 정의로운 삶을 사는 그의 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Jesus did not teach his apostles that religion is man's only earthly pursuit; that was the Jewish idea of serving God. But he did insist that religion was the exclusive business of the twelve. Jesus taught nothing to deter his believers from the pursuit of genuine culture; he only detracted from the tradition-bound religious schools of Jerusalem. He was liberal, bighearted, learned, and tolerant. Self-conscious piety had no place in his philosophy of righteous living.
140:8.31 주(主)는 그 자신의 세대나 혹은 뒤이어지는 어느 세대의 비(非)종교적 문제를 위해서, 그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않았다. 예수는 영원한 실체들을 꿰뚫어보는 영적 통찰력을 개발하고 그리고 삶의 근원성 안에서 새로운 계획을 자극하기 원하였다; 그는 인간 종족의 저변에 깔려있는 영구적인 영적 필요에만 순전히 스스로를 깊이 관여시켰다. 그는 하느님과 동등한 선을 계시하였다. 그는 사랑─진리(眞), 아름다움(美), 선(善)─을 신성한 이상과 그리고 영원한 실체로 드높였다. The Master offered no solutions for the nonreligious problems of his own age nor for any subsequent age. Jesus wished to develop spiritual insight into eternal realities and to stimulate initiative in the originality of living; he concerned himself exclusively with the underlying and permanent spiritual needs of the human race. He revealed a goodness equal to God. He exalted love -- truth, beauty, and goodness -- as the divine ideal and the eternal reality.
140:8.32 주(主)는 사람 속에 새로운 영, 새로운 의지─진리를 알고, 온정을 체험하고, 그리고 선을 선택하기 위한 새로운 수용능력을 나누어 주려고─, 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한 것처럼 완전해지려는 영원한 충동과 더불어 하느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려는 의지를 사람 속에 창조하기 위해 왔다. The Master came to create in man a new spirit, a new will -- to impart a new capacity for knowing the truth, experiencing compassion, and choosing goodness -- the will to be in harmony with God's will, coupled with the eternal urge to become perfect, even as the Father in heaven is perfect.


9. 봉헌식이 있던 날
 

9. THE DAY OF CONSECRATION

140:9.1 그 다음 안식일에 예수는 자기 사도들과 함께 헌신의 시간을 가지셨고, 그들에게 성직수임식을 행했던 산지(山地)로 되돌아가셨으며; 그곳에서 길고도 훌륭한 감격적인 사적인 격려 말씀을 한 후에, 열 두 사도들의 봉헌식을 엄숙하게 거행하였다. 이 안식일 오후에, 예수는 산허리에서 사도들을 자기 주위에 모아놓으시고, 자신이 세상에 그들만 남겨두고 떠나야만 할 그 날을 대비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 그들을 맡겼다. 이때에는 더 이상의 새로운 가르침은 없었고, 단지 환담과 교제를 나누었다. The next Sabbath day Jesus devoted to his apostles, journeying back to the highland where he had ordained them; and there, after a long and beautifully touching personal message of encouragement, he engaged in the solemn act of the consecration of the twelve. This Sabbath afternoon Jesus assembled the apostles around him on the hillside and gave them into the hands of his heavenly Father in preparation for the day when he would be compelled to leave them alone in the world. There was no new teaching on this occasion, just visiting and communion.
140:9.2 예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실시되었던 성직수임식 설교의 많은 특성들을 회고하였고, 그런 다음 제자들을 한 사람씩 앞에 불러서 그들이 이제 자신의 대리자로 세상에 나아가도록 임명하였다. 주(主)의 봉헌식의 훈시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 나아가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라. 영적으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억눌린 자를 위로하며, 고통 받는 자를 보살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Jesus reviewed many features of the ordination sermon, delivered on this same spot, and then, calling them before him one by one, he commissioned them to go forth in the world as his representatives. The Master's consecration charge was: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Liberate spiritual captives, comfort the oppressed, and minister to the afflicted. Freely you have received, freely give."
140:9.3 예수는 사도들에게 돈이나 여벌의 옷을 지니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수고한 사람은 자기 품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씀하였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였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진하라. 그러나 주의하라. 왜냐하면 너희 적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리들과 총독들 앞에 불려갈 것인데, 이것은 너희가 이 복음을 믿기 때문이며, 너희 자신이 그들에게 나를 위한 증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너희를 재판관 앞에 끌어다 넘겨줄 때에 너희는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 왜냐하면 내 아버지의 영이 너희 안에 있어서, 그때에 그가 너희를 통해 말할 것이다. 너희들 중 일부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며, 너희가 이 땅에 왕국을 세우기 전에 이 복음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지만;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며 나의 영이 너희보다 먼저 세상 모든 곳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니, 먼저 유대인들에게 가고, 그런 후에 이방인들에게로 가거라.” Jesus advised them to take neither money nor extra clothing, saying, "The laborer is worthy of his hire." And finally he said: "Behold I send you forth as sheep in the midst of wolves; be you therefore as wise as serpents and as harmless as doves. But take heed, for your enemies will bring you up before their councils, while in their synagogues they will castigate you. Before governors and rulers you will be brought because you believe this gospel, and your very testimony shall be a witness for me to them. And when they lead you to judgment, be not anxious about what you shall say, for the spirit of my Father indwells you and will at such a time speak through you. Some of you will be put to death, and before you establish the kingdom on earth, you will be hated by many peoples because of this gospel; but fear not; I will be with you, and my spirit shall go before you into all the world. And my Father's presence will abide with you while you go first to the Jews, then to the gentiles."
140:9.4 그들은 산에서 내려와 함께 세베대의 집으로 돌아갔다. And when they came down from the mountain, they journeyed back to their home in Zebedee's house.


10. 봉헌식 이후의 밤
 

10. THE EVENING AFTER THE CONSECRATION

140:10.1 그 날 밤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므로 예수는 사도들에게 집안에서 가르치셨는데, 그들이 무엇을 행하여야 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할지를 가르치기 위해 장시간 이야기를 하였다. 제자들은 정의로움─구원─을 얻는 방법으로써 어떤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종교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왕국에서는 그 일을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가 의롭게 되어야만 한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였다.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하여,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게 되라.”고 하였다.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자신의 사도들에게 주(主)가 말씀하는 동안 내내 설명하였던 요지는, 자기가 세상에 가지고 온 구원은 오직 믿는다는 것과 단순하고도 진실한 신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였다: “요한은 옛 생활방식을 참회하는 회개의 세례를 설교했다. 그러나 너희는 하느님과 친교를 맺는 세례를 선포하려는 것이다. 그러한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만 회개를 권고하지만, 그러나 이미 왕국으로 들어갈 진실한 입구를 구하는 이들에게는, 문을 활짝 열어 하느님의 자녀들의 즐거운 친교 안으로 그들을 들여보내라.” 그러나 갈릴리 어부 출신인 그들로서는, 왕국에 있어서는, 신앙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세상 일상생활 속에서 정의로움을 행하는 것보다 앞서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That evening while teaching in the house, for it had begun to rain, Jesus talked at great length, trying to show the twelve what they must be, not what they must do. They knew only a religion that imposed the doing of certain things as the means of attaining righteousness -- salvation. But Jesus would reiterate, "In the kingdom you must be righteous in order to do the work." Many times did he repeat, "Be you therefore perfect, even as your Father in heaven is perfect." All the while was the Master explaining to his bewildered apostles that the salvation which he had come to bring to the world was to be had only by believing, by simple and sincere faith. Said Jesus: "John preached a baptism of repentance, sorrow for the old way of living. You are to proclaim the baptism of fellowship with God. Preach repentance to those who stand in need of such teaching, but to those already seeking sincere entrance to the kingdom, open the doors wide and bid them enter into the joyous fellowship of the sons of God." But it was a difficult task to persuade these Galilean fishermen that, in the kingdom, being righteous, by faith, must precede doing righteousness in the daily life of the mortals of earth.
140:10.2 사도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또 다른 하나의 큰 고충은, 그들이 종교적 진리의 높은 이상과 영적 원리를 개인적 행위의 구체적인 규정으로 바꾸려는 경향이었다. 예수는 혼의 태도에 대한 아름다운 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였지만, 그들은 이러한 가르침들을 개인적 행동에 있어서의 규칙들로 해석하려고 계속 고집하였다. 여러 번에 걸쳐서, 그들이 주(主)가 한 말을 기억할 때, 그들은 그가 말로 하지 않은 것들은 거의 틀림없이 잊어버렸다. 그러나 예수 자신이 가르침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들은 점진적으로 그의 가르침에 동화되었다. 그의 언어로 행한 가르침을 통해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을 사도들은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점진적으로 깨달았다. Another great handicap in this work of teaching the twelve was their tendency to take highly idealistic and spiritual principles of religious truth and remake them into concrete rules of personal conduct. Jesus would present to them the beautiful spirit of the soul's attitude, but they insisted on translating such teachings into rules of personal behavior. Many times, when they did make sure to remember what the Master said, they were almost certain to forget what he did not say. But they slowly as similated his teaching because Jesus was all that he taught. What they could not gain from his verbal instruction, they gradually acquired by living with him.
140:10.3 사도들은 자기들의 주(主)가 멀리- 퍼지는 우주의 모든 세상들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영적 영감을 주는 일생의 삶에 전념하고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깨닫지 못하였다. 때때로 예수가 그들에게 말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그가 일은 이 세상에서 하지만 그 일은 그가 창조한 방대한 다른 세상들도 위해서라는 관념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예수가 그의 지상 일생을 유란시아에서 사셨던 것은 이 세상의 남녀들에게만 필사자의 삶의 개인적 모범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세상들의 모든 필사자들에게 고차원의 영적이고 영감적인 이상(理想)을 창조하려는 것이었다. It was not apparent to the apostles that their Master was engaged in living a life of spiritual inspiration for every person of every age on every world of a far-flung universe. Notwithstanding what Jesus told them from time to time, the apostles did not grasp the idea that he was doing a work on this world but for all other worlds in his vast creation. Jesus lived his earth life on Urantia, not to set a personal example of mortal living for the men and women of this world, but rather to create a high spiritual and inspirational ideal for all mortal beings on all worlds.
140:10.4 그 날 저녁에 도마예수께 물었다: “주(主)여, 우리가 아버지의 왕국에 입장을 허락받을 수 있기 전에,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였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거짓 선지자들에 속지도 말며 또한 돼지 앞에 우리들의 진주를 던지는 죄를 범치 말라고도 경고하였습니다. 지금 저는 솔직히 어리둥절합니다.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예수도마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너희를 위해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는 내가 가르친 모든 것을 문자로 만들려는 데에 언제까지나 고집하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했을 때에는, 쉽게 속아 넘어가거나, 믿는 것을 무작정 기꺼워 하라는 것이나, 즐거움을 주는 낯선 이를 재빠르게 신뢰하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예증에서 너희가 얻어야만 한다고 바랐던 것은, 어린아이-아버지 그 관계였다. 너희는 어린아이이다, 그리고 너희가 들어가고자 찾아 나서는 곳은 너희 아버지의 왕국인 것이다. 모든 정상적 어린아이와 그 아버지 사이에는 납득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보장하는 자연본성적인 애정이 현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위하여 거래해 보려고 마음먹는 모든 것을 언제까지나 가로막아주고 있다. 그리고 너희가 나아가며 전도하려는 복음은 구원에 관련되어 있고 그 구원이 바로, 이 영원한 어린아이-아버지 관계의 신앙-실현에서 싹트고 자라나는 것이다.” This same evening Thomas asked Jesus: "Master, you say that we must become as little children before we can gain entrance to the Father's kingdom, and yet you have warned us not to be deceived by false prophets nor to become guilty of casting our pearls before swine. Now, I am honestly puzzled. I cannot understand your teaching." Jesus replied to Thomas: "How long shall I bear with you! Ever you insist on making literal all that I teach. When I asked you to become as little children as the price of entering the kingdom, I referred not to ease of deception, mere willingness to believe, nor to quickness to trust pleasing strangers. What I did desire that you should gather from the illustration was the child-father relationship. You are the child, and it is your Father's kingdom you seek to enter. There is present that natural affection between every normal child and its father which insures an understanding and loving relationship, and which forever precludes all disposition to bargain for the Father's love and mercy. And the gospel you are going forth to preach has to do with a salvation growing out of the faith-realization of this very and eternal child-father relationship."
140:10.5 예수의 가르침의 한 가지 특징은, 하느님께 대한 개별존재의 개인적 관계─바로 이 자녀-아버지 관계─에서 기원되는 그의 철학에서의 바로 그 도덕성이다. 예수는 국가나 민족에게가 아니라, 개별존재에게 중점을 두셨다. 저녁식사 동안에, 예수마태와 이야기하다가 어떤 행동의 도덕성은 개별존재의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예수의 도덕성은 항상 긍정적이었다. 예수가 다시 규정한 황금률은 능동적인 사회적 친교를 요구하였는데; 구식의 부정적인 규율은 고립됨으로써 지켜졌다. 예수는 도덕성의 모든 규칙과 의례를 제거하고 이를 영적 사고와 진실로 의로운 삶이라는 장엄한 차원으로 끌어올리셨다. The one characteristic of Jesus' teaching was that the morality of his philosophy originated in the personal relation of the individual to God -- this very child-father relationship. Jesus placed emphasis on the individual, not on the race or nation. While eating supper, Jesus had the talk with Matthew in which he explained that the morality of any act is determined by the individual's motive. Jesus' morality was always positive. The golden rule as restated by Jesus demands active social contact; the older negative rule could be obeyed in isolation. Jesus stripped morality of all rules and ceremonies and elevated it to majestic levels of spiritual thinking and truly righteous living.
140:10.6 이러한 예수의 새 종교에 실질적인 관계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의 가르침 속에서 발견되는 실질적인 정치적, 사회적, 혹은 경제적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진정한 개인적 종교체험의 자발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영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처럼, 혼의 내적 체험의 자연스러운 결실들이었다. This new religion of Jesus was not without its practical implications, but whatever of practical political, social, or economic value there is to be found in his teaching is the natural outworking of this inner experience of the soul as it manifests the fruits of the spirit in the spontaneous daily ministry of genuin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140:10.7 예수마태와 이야기하는 것을 끝내자 시몬 젤로떼가, “주(主)여,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인가요?”라고 질문하였다. 예수가 이에 대답하였다: “그렇다. 시몬아,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이것이 너희가 선포하려는 그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러한 교리를 파악할 수 없었으며; 이는 새롭고, 이상하고, 놀라운 선언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이 진리를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심어주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자신들의 형제들로 대하라고 가르치셨다. After Jesus and Matthew had finished talking, Simon Zelotes asked, "But, Master, are all men the sons of God?" And Jesus answered: "Yes, Simon, all men are the sons of God, and that is the good news you are going to proclaim." But the apostles could not grasp such a doctrine; it was a new, strange, and startling announcement. And it was because of his desire to impress this truth upon them that Jesus taught his followers to treat all men as their brothers.
140:10.8 안드레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주(主)는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가르침은 자신의 삶에 대한 종교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는 사람의 본성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사람의 관계에서부터 오는 도덕성을 가르쳤다. In response to a question asked by Andrew, the Master made it clear that the morality of his teaching was inseparable from the religion of his living. He taught morality, not from the nature of man, but from the relation of man to God.
140:10.9 요한예수께, “주(主)여, 하늘의 왕국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수가 대답하였다: “하늘의 왕국은 이 세 가지 본질들로 이루어졌는데, 첫째 하느님의 주권성의 사실에 대한 인정이고; 둘째 하느님과의 아들신분에 대한 진리 안에서의 믿음이며; 셋째 하느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하느님을 닮아 가는─최극 인간의 소망에 대한 효력성 안에서의 신앙이다. 이것이 복음의 기쁜 소식인데, 모든 필사자들은 구원의 이 세 가지 본질 모두를 신앙으로 얻게 된다.” John asked Jesus, "Master, what is the kingdom of heaven?" And Jesus answered: "The kingdom of heaven consists in these three essentials: first, recognition of the fact of the sovereignty of God; second, belief in the truth of sonship with God; and third, faith in the effectiveness of the supreme human desire to do the will of God -- to be like God. And this is the good news of the gospel: that by faith every mortal may have all these essentials of salvation."
140:10.10 그리하여 이제 기다림의 주간이 끝나고, 그들은 그 다음날 예루살렘으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And now the week of waiting was over, and they prepared to depart on the morrow for Jerusal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