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 편

PAPER 79

동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ANDITE EXPANSION IN THE ORIENT

79:0.1 아시아는 인간 종족의 고향이다. 안돈폰타가 태어난 곳은 이 대륙의 남부에 있는 어느 반도(半島)였으며; 현재는 아프가니스탄이 된 고원지대에서, 그들의 후손인 바도난이 원시적인 문화 중심지를 세웠고 50만년 이상 동안 유지되었다. 인간 종족의 이 동부 중심지에서, 안돈 자손 혈통으로부터 산긱 인종들이 갈라져 나왔고, 아시아는 그들의 최초의 고향이자 최초의 사냥터였고 최초의 전쟁터였다. 남서부 아시아달라마시아인, 놋 자손, 아담 자손, 그리고 앤다이트들로 이어진 문명들을 목격하였고, 이 지역으로부터 강력한 근대 문명이 세계로 퍼져 나갔다. ASIA is the homeland of the human race. It was on a southern peninsula of this continent that Andon and Fonta were born; in the highlands of what is now Afghanistan, their descendant Badonan founded a primitive center of culture that persisted for over one-half million years. Here at this eastern focus of the human race the Sangik peoples differentiated from the Andonic stock, and Asia was their first home, their first hunting ground, their first battlefield. Southwestern Asia witnessed the successive civilizations of Dalamatians, Nodites, Adamites, and Andites, and from these regions the potentials of modern civilization spread to the world.


1. 투르케스탄의 앤다이트
 


1. THE ANDITES OF TURKESTAN

79:1.1 거의 기원전 2,000년경에 이르기까지, 25,000년 이상 동안, 유라시아의 중심부에는 점점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앤다이트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투르케스탄의 저지대에서 앤다이트들은 서쪽으로 향하여 내륙 호수들을 돌아 유럽으로 들어갔고, 반면에 이 지역의 고지대에서는 동쪽으로 이동해 갔다. 투르케스탄의 동쪽(신경)은 고대의 통로 역할을 하였고, 그보다 미약하기는 하였지만 티베트 역시 그러한 통로였는데, 그곳들을 통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이 민족들이 많은 산을 넘어서 황색 인종들이 사는 북부 지역으로 들어갔다. 앤다이트인도 침투는 투르케스탄 고지대에서 유래되어 펀잡 지방으로 들어갔고 이란의 목초지역으로부터 바루키스탄을 통과하여 들어갔다. 이러한 비교적 초기의 이주들은 결코 정복이라 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그것들은 앤다이트가 서부 인도중국으로 스며들어간 것이었다. For over twenty-five thousand years, on down to nearly 2000 B.C., the heart of Eurasia was predominantly, though diminishingly, Andite. In the lowlands of Turkestan the Andites made the westward turning around the inland lakes into Europe, while from the highlands of this region they infiltrated eastward. Eastern Turkestan (Sinkiang) and, to a lesser extent, Tibet were the ancient gateways through which these peoples of Mesopotamia penetrated the mountains to the northern lands of the yellow men. The Andite infiltration of India proceeded from the Turkestan highlands into the Punjab and from the Iranian grazing lands through Baluchistan. These earlier migrations were in no sense conquests; they were, rather, the continual drifting of the Andite tribes into western India and China.
79:1.2 거의 15,000년 동안, 혼합된 앤다이트 문명 중심지들이 신경에 있는 다림 강 분지와 티베트의 고원지대 남부에 유지되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앤다이트들과 안돈 자손들이 광범위하게 어울려 살았다. 다림 계곡은 변질되지 않은 앤다이트 문화의 동쪽 끝에 있는 전초기지였다. 이곳에서 그들은 정착지를 형성하였고 동쪽으로는 진보적인 중국인들과 그리고 북쪽으로는 안돈 자손들과 거래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그 당시에, 다림 지역은 비옥한 땅이었으며; 강우량이 풍부하였다. 동쪽으로 고비 지역은 넓게 펼쳐진 목초지였으며 목축업이 점차적으로 농업으로 바뀌고 있었다. 비바람이 남동쪽으로 바뀌게 되자 이 지역의 문명이 쇠퇴되었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메소포타미아 자체와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For almost fifteen thousand years centers of mixed Andite culture persisted in the basin of the Tarim River in Sinkiang and to the south in the highland regions of Tibet, where the Andites and Andonites had extensively mingled. The Tarim valley was the easternmost outpost of the true Andite culture. Here they built their settlements and entered into trade relations with the progressive Chinese to the east and with the Andonites to the north. In those days the Tarim region was a fertile land; the rainfall was plentiful. To the east the Gobi was an open grassland where the herders were gradually turning to agriculture. This civilization perished when the rain winds shifted to the southeast, but in its day it rivaled Mesopotamia itself.
79:1.3 기원전 8,000년경에, 중앙아시아의 고지대가 점점 더 건조해짐으로써 앤다이트들은 강변과 해변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점점 더 심해지는 이러한 건조 현상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나일, 유프라테스, 인더스, 그리고 황하의 계곡들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앤다이트 문명에 새로운 발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새로운 등급인 상인(商人)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많은 숫자를 이루었다. By 8000 B.C. the slowly increasing aridity of the highland regions of central Asia began to drive the Andites to the river bottoms and the seashores. This increasing drought not only drove them to the valleys of the Nile, Euphrates, Indus, and Yellow rivers, but it produced a new development in Andite civilization. A new class of men, the traders, began to appear in large numbers.
79:1.4 이주하는 앤다이트들이 기후 조건 때문에 사냥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 옛날의 종족들이 목축업자가 됨으로써 진화해 갔던 과정을 답습하지 않았다. 상업과 도시 생활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이집트로부터 메소포타미아투르케스탄을 거쳐 중국인도의 강들에 이르는, 더욱 높게 문명화된 부족들이 도시에서 합류하기 시작하였고 생산과 무역에 종사하게 되었다. 안도니아는 중앙아시아의 상업 중심지가 되었는데, 현재의 아쉬카바드라고 하는 도시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돌과 금속 그리고 나무와 도기(陶器)의 교역이 육지와 해상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When climatic conditions made hunting unprofitable for the migrating Andites, they did not follow the evolutionary course of the older races by becoming herders. Commerce and urban life made their appearance. From Egypt through Mesopotamia and Turkestan to the rivers of China and India, the more highly civilized tribes began to assemble in cities devoted to manufacture and trade. Adonia became the central Asian commercial metropolis, being located near the present city of Ashkhabad. Commerce in stone, metal, wood, and pottery was accelerated on both land and water.
79:1.5 그러나 계속 심화되는 건조 현상은 앤다이트로 하여금 그 지역으로부터 카스피 해 남부와 동부로 대이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주의 물결이 북쪽 방향에서 남쪽 방향으로 바뀌었고, 말을 탄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로 몰려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But ever-increasing drought gradually brought about the great Andite exodus from the lands south and east of the Caspian Sea. The tide of migration began to veer from northward to southward, and the Babylonian cavalrymen began to push into Mesopotamia.
79:1.6 중앙아시아의 점점 더 심해지는 건조 상태는 인구를 더욱 감소시키는 작용을 하였고 이 사람들의 호전성을 줄여주었으며; 북쪽 지역의 강우량이 줄어듦으로 말미암아 방랑하던 안돈 자손들이 강제적으로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 수많은 앤다이트들이 투르케스탄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소위 아리아인들이 레반트인도 지역으로 들어간 마지막 이동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진 아담의 혼합된 후손들의 분산이 절정에 달하였으며, 그 동안에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과 태평양에 있는 섬들의 대부분의 민족들이 우수한 이 종족들에 의해서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Increasing aridity in central Asia further operated to reduce population and to render these people less warlike; and when the diminishing rainfall to the north forced the nomadic Andonites southward, there was a tremendous exodus of Andites from Turkestan. This is the terminal movement of the so-called Aryans into the Levant and India. It culminated that long dispersal of the mixed descendants of Adam during which every Asiatic and most of the island peoples of the Pacific were to some extent improved by these superior races.
79:1.7 그리하여, 그들이 동반구(東半球)로 퍼져 나가는 동안, 앤다이트들은 메소포타미아투르케스탄에 있는 그들의 본거지를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앤다이트들의 이와 같은 광대한 남쪽으로의 이동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앤다이트들이 희귀해져서 거의 사라지는 지경에 도달하였기 때문이었다. Thus, while they dispersed over the Eastern Hemisphere, the Andites were dispossessed of their homelands in Mesopotamia and Turkestan, for it was this extensive southward movement of Andonites that diluted the Andites in central Asia nearly to the vanishing point.
79:1.8 그러나 그리스도 이후 20세기까지도, 우랄알타이 어족(語族)의 민족들과 티베트 민족들 속에는 앤다이트 혈통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 지역에서 때때로 발견되는 금발 유형의 사람들에 의해서 증거 된다. 초기 중국 사료들은 황하 유역의 평화로운 정착지 북쪽 지역에서 붉은 색 머리를 가진 유목민들의 현존이 있었다고 기록하였으며, 옛날에 다림 분지에 금발의 앤다이트와 갈색 머리의 몽고족들의 현존이 같이 있었음을 정확하게 기록한 그림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But even in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 there are traces of Andite blood among the Turanian and Tibetan peoples, as is witnessed by the blond types occasionally found in these regions. The early Chinese annals record the presence of the red-haired nomads to the north of the peaceful settlements of the Yellow River, and there still remain paintings which faithfully record the presence of both the blond-Andite and the brunet-Mongolian types in the Tarim basin of long ago.
79:1.9 중앙아시아 앤다이트들의 숨겨진 군사적 재능이 마지막으로 크게 나타난 것은, 서기 1,200년에 징기스칸이 지배하는 몽고아시아 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을 때였다. 그리고 옛날의 앤다이트들과 마찬가지로, 이 전사들은 “하늘에 계신 유일하신 하느님”의 실재를 전파하였다. 그들의 제국이 일찍 무너짐으로써, 동방과 서방 간의 문화 교류가 오랫동안 연기되었으며, 아시아에서의 유일신(唯一神) 개념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게 되었다. The last great manifestation of the submerged military genius of the central Asiatic Andites was in A.D. 1200, when the Mongols under Genghis Khan began the conquest of the greater portion of the Asiatic continent. And like the Andites of old, these warriors proclaimed the existence of "one God in heaven." The early breakup of their empire long delayed cultural intercourse between Occident and Orient and greatly handicapped the growth of the monotheistic concept in Asia.


2. 앤다이트의 인도 정복
 


2. THE ANDITE CONQUEST OF INDIA

79:2.1 인도유란시아의 모든 인종들이 섞인 유일한 지역이며, 앤다이트의 침입은 마지막으로 덧붙여진 혈통을 제공하였다. 인도의 북서쪽 고지대에서 산긱 인종들이 출현하였으며, 초기에 인도 대륙에 들어온 각 종족의 사람들이 예외 없이 섞임으로써, 유란시아에 이제까지 존재하였던 종족들 중에서 가장 잡다한 종족을 남겨두었다. 고대의 인도는 이주하는 인종들을 붙잡아두는 웅덩이 역할을 하였다. 그 반도의 출발 지점은, 이전에는 현재보다 약간 좁았으며, 갠지스인더스의 삼각주는 지난 50,000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India is the only locality where all the Urantia races were blended, the Andite invasion adding the last stock. In the highlands northwest of India the Sangik races came into existence, and without exception members of each penetrated the subcontinent of India in their early days, leaving behind them the most heterogeneous race mixture ever to exist on Urantia. Ancient India acted as a catch basin for the migrating races. The base of the peninsula was formerly somewhat narrower than now, much of the deltas of the Ganges and Indus being the work of the last fifty thousand years.
79:2.2 인도에서 있었던 최초의 인종 혼합은, 이주하는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이 토착민인 안돈 자손들과 섞인 것이었다. 이 집단은 소멸된 동부의 녹색 인종들의 대부분과 많은 숫자의 오렌지색 종족을 흡수함으로써 나중에 약화되었고, 청색 인종과 약간 혼합됨으로써 약하게나마 진보를 이루었지만, 많은 숫자의 남색 종족과 혼합됨으로써 크게 수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소위 인도의 원주민이 이러한 초기 민족을 대표한다고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은 오히려 남부와 동부 지역에 사는 가장 열등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지역은 초기의 앤다이트들이나 또는 후대에 나타난 그들의 아리아 동족들에 의해서 한 번도 충만하게 흡수되지 못한 곳이었다. The earliest race mixtures in India were a blending of the migrating red and yellow races with the aboriginal Andonites. This group was later weakened by absorbing the greater portion of the extinct eastern green peoples as well as large numbers of the orange race, was slightly improved through limited admixture with the blue man, but suffered exceedingly through assimilation of large numbers of the indigo race. But the so-called aborigines of India are hardly representative of these early people; they are rather the most inferior southern and eastern fringe, which was never fully absorbed by either the early Andites or their later appearing Aryan cousins.
79:2.3 기원 전 20,000년경에, 서부 인도의 사람들은 이미 아담계열의 피와 혼혈되기 시작하였으며, 유란시아의 역사상 한 민족이 그토록 많은 다른 종족들의 병합으로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2차 산긱 혈통들이 우위를 차지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고, 오래 전의 이 인종(人種) 용광로로부터 청색 인종과 적색 인종이 너무 많이 사라진 것은 정말로 하나의 재난이었는데; 1차 산긱 혈통들이 더 많았다면 훨씬 훌륭한 문명이 발생되도록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매우 많이 기여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발달하면서, 적색 인종은 아메리카에서 자멸하였고, 청색 인종은 유럽에서 활동하였으며, 아담의 초기 후손들(그리고 후대의 후손들 대부분)은 인도아프리카 그리고 다른 어느 지역에서든지 짙은 색깔의 인종들과는 어울리기를 싫어하였다. By 20,000 B.C. the population of western India had already become tinged with the Adamic blood, and never in the history of Urantia did any one people combine so many different races. But it was unfortunate that the secondary Sangik strains predominated, and it was a real calamity that both the blue and the red man were so largely missing from this racial melting pot of long ago; more of the primary Sangik strains would have contributed very much toward the enhancement of what might have been an even greater civilization. As it developed, the red man was destroying himself in the Americas, the blue man was disporting himself in Europe, and the early descendants of Adam (and most of the later ones) exhibited little desire to admix with the darker colored peoples, whether in India, Africa, or elsewhere.
79:2.4 기원 전 약 15,000년경에, 늘어나는 인구에 의한 압력이 투르케스탄 전역으로 확장되었고 이란으로부터 정말로 최초의 앤다이트 이동이 인도 쪽으로 일어났다. 15세기가 넘는 동안, 우수한 이 민족들이 바루키스탄 고지대를 통하여 쏟아져 들어왔고, 인더스갠지스 계곡으로 퍼져나갔으며 서서히 남쪽으로 이동하여 데칸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북서쪽으로부터 들어오는 앤다이트 압력은, 남부와 동부에 있던 열등한 사람들을 쫓아내 버마와 남부 중국으로 들어가게 했지만, 침입자들은 종족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About 15,000 B.C. increasing population pressure throughout Turkestan and Iran occasioned the first really extensive Andite movement toward India. For over fifteen centuries these superior peoples poured in through the highlands of Baluchistan, spreading out over the valleys of the Indus and Ganges and slowly moving southward into the Deccan. This Andite pressure from the northwest drove many of the southern and eastern inferiors into Burma and southern China but not sufficiently to save the invaders from racial obliteration.
79:2.5 인도유라시아의 패권을 잡지 못한 것은 주로 지형적인 문제 때문이었는데, 북쪽에만 붐비고 있던 인구 압력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데칸 지역으로 들어가 영토는 더욱 줄어들었고,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만일 그 부근에 이주해 들어갈 만한 땅이 있었다면, 열등한 민족은 사방으로 흩어졌을 것이고, 우수한 혈통을 가진 그 사람들이 훨씬 발전된 문명을 성취하였을 것이다. The failure of India to achieve the hegemony of Eurasia was largely a matter of topography; population pressure from the north only crowded the majority of the people southward into the decreasing territory of the Deccan, surrounded on all sides by the sea. Had there been adjacent lands for emigration, then would the inferiors have been crowded out in all directions, and the superior stocks would have achieved a higher civilization.
79:2.6 사실 그대로, 초기의 이 앤다이트 정복자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리고 종족간의 결혼을 엄격하게 금지시키는 규율을 제정함으로써 종족 흡수의 물결을 제거하기 위하여 필사적인 시도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다이트들은 기원 전 10,000년경에 사라졌지만, 전체의 민족은 이들이 흡수됨으로써 괄목할만한 증진을 이룩하였다. As it was, these earlier Andite conquerors made a desperate attempt to preserve their identity and stem the tide of racial engulfment by the establishment of rigid restrictions regarding intermarriage. Nonetheless, the Andites had become submerged by 10,000 B.C., but the whole mass of the people had been markedly improved by this absorption.
79:2.7 종족 혼합은, 문화에 다양성을 제공하고 진보적인 문명을 이룩한다는 점에서 항상 유리한 것이지만, 만약에 열등한 요소를 가진 종족이 우세할 경우에는, 그러한 성취가 오래가지 못한다.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는, 우수한 혈통이 열등한 사람들과 안전하게 격리된 상태에서 자손을 퍼뜨릴 때에만 유일하게 유지될 수 있다. 열등한 사람들의 자손이 제한 없이 늘어나고, 우수한 사람들의 자손이 줄어들면, 문화적인 문명은 반드시 자멸하게 된다. Race mixture is always advantageous in that it favors versatility of culture and makes for a progressive civilization, but if the inferior elements of racial stocks predominate, such achievements will be short-lived. A polyglot culture can be preserved only if the superior stocks reproduce themselves in a safe margin over the inferior. Unrestrained multiplication of inferiors, with decreasing reproduction of superiors, is unfailingly suicidal of cultural civilization.
79:2.8 앤다이트 정복자들이 그 당시 그들의 숫자보다 3배가 되었다면, 또는 그들이 혼합된 오렌지색-녹색-남색 주민들 중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3분의 1을 쫓아내었거나 파멸시켰더라면, 인도는 문화적 문명의 세계적인 중심지들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며, 투르케스탄으로 흘러 들어가서 그곳으로부터 유럽으로 건너간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후반기 무리들을 더 많이 끌어들였을 것이다. Had the Andite conquerors been in numbers three times what they were, or had they driven out or destroyed the least desirable third of the mixed orange-green-indigo inhabitants, then would India have become one of the world's leading centers of cultural civilization and undoubtedly would have attracted more of the later waves of Mesopotamians that flowed into Turkestan and thence northward to Europe.


3. 드라비다의 인도
 


3. DRAVIDIAN INDIA

79:3.1 인도를 정복한 앤다이트와 원주민 혈통의 결합은 결국에는 드라비다인이라 불린 혼합된 민족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다 초기의 그리고 보다 순수한 드라비다인들은 문화적 성취를 위한 큰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앤다이트 유전자가 점점 더 희박해짐에 따라 계속 약화(弱化)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거의 12,000년 전에 인도 문명을 싹트게 하였다. 그러나 아담의 피가 이렇게 적은 양만이 주입되었지만, 사회적인 발전에 있어서는 괄목할만한 촉진을 가져왔다. 이렇게 혼합된 혈통은 그 당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문명을 즉각적으로 꽃피웠다. The blending of the Andite conquerors of India with the native stock eventually resulted in that mixed people which has been called Dravidian. The earlier and purer Dravidians possessed a great capacity for cultural achievement, which was continuously weakened as their Andite inheritance became progressively attenuated. And this is what doomed the budding civilization of India almost twelve thousand years ago. But the infusion of even this small amount of the blood of Adam produced a marked acceleration in social development. This composite stock immediately produced the most versatile civilization then on earth.
79:3.2 인도가 정복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드라비다앤다이트들은 메소포타미아와의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접촉이 끊어졌지만, 나중에 개통된 해안 도로와 대상(隊商) 행로가 이 관계를 다시 회복시켰고, 산악지대 때문에 서쪽과의 교통이 훨씬 활발하기는 하였지만, 지난 10,000년 동안 서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와 그리고 동쪽으로는 중국과의 관계가 전반적으로 단절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Not long after conquering India, the Dravidian Andites lost their racial and cultural contact with Mesopotamia, but the later opening up of the sea lanes and the caravan routes re-established these connections; and at no time within the last ten thousand years has India ever been entirely out of touch with Mesopotamia on the west and China to the east, although the mountain barriers greatly favored western intercourse.
79:3.3 인도에 있는 민족들의 우수한 문화적 종교적 성향들은 드라비다인이 지배한 초기 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초기 앤다이트 침입과 후대의 아리아인 침입의 두 차례에 걸쳐, 수많은 족속 사제들이 인도에 들어왔다는 사실에도 부분적으로 기인된다. 인도의 종교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던 유일신 론의 가느다란 빛은 두 번째 동산의 아담 자손들의 가르침으로부터 그렇게 유래되었다. The superior culture and religious leanings of the peoples of India date from the early times of Dravidian domination and are due, in part, to the fact that so many of the Sethite priesthood entered India, both in the earlier Andite and in the later Aryan invasions. The thread of monotheism running through the religious history of India thus stems from the teachings of the Adamites in the second garden.
79:3.4 이미 기원 전 16,000년경에 100명에 이르는 셋 자손 사제 무리가 인도에 들어왔으며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그 민족의 절반에 해당하는 서쪽 지역에 대한 종교적 정복을 거의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는 계속 유지되지 않았다. 5,000년이 지나기 전에, 낙원천국 삼위일체에 관한 그들의 교리들은 화신(火神)에 대한 삼원일체(三元一體)적 상징으로 퇴화되었다. As early as 16,000 B.C. a company of one hundred Sethite priests entered India and very nearly achieved the religious conquest of the western half of that polyglot people. But their religion did not persist. Within five thousand years their doctrines of the Paradise Trinity had degenerated into the triune symbol of the fire god.
79:3.5 앤다이트 이주가 끝나기까지, 7,000년 이상 동안, 인도에 사는 주민들의 종교적 지위는 세계 대부분의 상태보다 훨씬 높았다. 이 기간 동안, 인도는 지도적인 세계의 문화적, 종교적, 철학적, 상업적 문명을 산출할 가능성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남쪽에 있는 민족들에 의한 앤다이트들의 완벽한 침몰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운명은 아마도 실현되었을 것이다. But for more than seven thousand years, down to the end of the Andite migrations, the religious status of the inhabitants of India was far above that of the world at large. During these times India bid fair to produce the leading cultural, religious, philosophic, and commerical civilization of the world. And but for the complete submergence of the Andites by the peoples of the south, this destiny would probably have been realized.
79:3.6 드라비다의 문화적 중심지들은 강이 있는 계곡들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대개 인더스갠지스 지역이었으며, 데칸에서는 3개의 큰 강물이 동부 가트 지역을 흘러서 바다로 들어갔다. 서부 가트의 해변을 따라 형성된 정착지들은 수메르와 해상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었다. The Dravidian centers of culture were located in the river valleys, principally of the Indus and Ganges, and in the Deccan along the three great rivers flowing through the Eastern Ghats to the sea. The settlements along the seacoast of the Western Ghats owed their prominence to maritime relationships with Sumeria.
79:3.7 드라비다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육상과 해상의 광대한 수출입 업무에 종사한 최초의 민족들에 속하였다. 기원 전 7,000년경에는 낙타 행렬이 메소포타미아의 먼 지역까지 정기적으로 여행하였으며; 드라비다의 선박은 해안을 따라 활동하였는데, 아라비아 해를 지나 페르시아 만에 있는 수메르의 도시들까지 이르렀으며, 해상에서 모험을 감행하여 벵갈 만(灣)을 지나 동인도 제도(諸島)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해상 여행자들과 상인들에 의해서, 알파벳과 글 쓰는 기술이 수메르에서 수입되었다. The Dravidians were among the earliest peoples to build cities and to engage in an extensive export and import business, both by land and sea. By 7000 B.C. camel trains were making regular trips to distant Mesopotamia; Dravidian shipping was pushing coastwise across the Arabian Sea to the Sumerian cities of the Persian Gulf and was venturing on the waters of the Bay of Bengal as far as the East Indies. An alphabet, together with the art of writing, was imported from Sumeria by these seafarers and merchants.
79:3.8 이러한 상업적인 관계들은 세계적인 문화를 더욱 다양화 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도시 생활의 많은 진보와 심지어는 사치품들이 일찍부터 출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중에 나타난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자기들의 앤다이트 동족들이 산긱 인종 속으로 스며들었던 것을 드라비다 사람들 속에서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잘 발달된 문명은 발견할 수 있었다. 생물학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드라비다 사람들은 우수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그것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데칸 지역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지되어 왔다. These commercial relationships greatly contributed to the further diversification of a cosmopolitan culture, resulting in the early appearance of many of the refinements and even luxuries of urban life. When the later appearing Aryans entered India, they did not recognize in the Dravidians their Andite cousins submerged in the Sangik races, but they did find a well-advanced civilization. Despite biologic limitations, the Dravidians founded a superior civilization. It was well diffused throughout all India and has survived on down to modern times in the Deccan.


4. 아리아족의 인도 침입
 


4. THE ARYAN INVASION OF INDIA

79:4.1 앤다이트의 두 번째 인도 침투는, 그리스도 이전(以前) 2,500년 부근의 거의 500년 기간 동안에 일어난 아리아인 침입이었다. 이 이주(移住)는 앤다이트들의 고향인 투르케스탄으로부터 마지막 탈출을 이룩하였다. The second Andite penetration of India was the Aryan invasion during a period of almost five hundred years in the middle of the third millennium before Christ. This migration marked the terminal exodus of the Andites from their homelands in Turkestan.
79:4.2 초기의 아리아인 중심지들은 인도의 북쪽 지역 절반 부분에 산재해 있었는데, 특별히 북서부에 많았다. 이 침입자들은 그 나라를 완벽하게 정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나중에 히말라야 지방을 제외한 전체의 반도를 휩쓸게 되었던 남부의 드라비다 사람들에 의해서 흡수될 정도로 그들의 숫자가 미약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러한 무관심속에서 파멸을 맞이하게 되었다. The early Aryan centers were scattered over the northern half of India, notably in the northwest. These invaders never completed the conquest of the country and subsequently met their undoing in this neglect since their lesser numbers made them vulnerable to absorption by the Dravidians of the south, who subsequently overran the entire peninsula except the Himalayan provinces.
79:4.3 아리아인들은 북쪽 지방을 제외하고는 인도에서 인종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였다. 데칸에서의 그들의 영향은 인종적인 것보다는 문화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이었다. 북부 인도의 소위 아리아인 혈통이라 불리는 아주 강한 인내심은, 이 지역에서 그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던 현존에 기인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후대의 정복자들과 상인들 그리고 선교사들에 의해서 보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이전 100년경에 이르기까지, 아리아인 혈통의 계속적인 침투가 펀잡 지방으로 들어갔는데, 마지막 유입은 헬라 민족들의 출정에 부수적으로 따라왔다. The Aryans made very little racial impression on India except in the northern provinces. In the Deccan their influence was cultural and religious more than racial. The greater persistence of the so-called Aryan blood in northern India is not only due to their presence in these regions in greater numbers but also because they were reinforced by later conquerors, traders, and missionaries. Right on down to the first century before Christ there was a continuous infiltration of Aryan blood into the Punjab, the last influx being attendant upon the campaigns of the Hellenistic peoples.
79:4.4 갠지스 평원에서 아리아인과 드라비다인이 결국에는 혼합되어서 하나의 높은 문화를 창출하였으며, 이 중심지는 나중에 중국으로부터 온 북동쪽으로부터의 기여에 의해서 보강되었다. On the Gangetic plain Aryan and Dravidian eventually mingled to produce a high culture, and this center was later reinforced by contributions from the northeast, coming from China.
79:4.5 인도에서는, 아리아인들의 반(半)민주주의 체제로부터 전제적이고 군주적인 정부 형태에 이르는, 여러 유형의 사회 조직들이 때때로 번성하였다. 그러나 가장 독특한 사회적 특징은, 종족의 정체성을 영존시키고자하는 노력으로 아리아인들에 의해 설립된 위대한 사회적 특권계급을 끈질기게 고수한 것이었다. 이러한 정교한 특권계급 체계는 현재까지 지속되어 왔다. In India many types of social organizations flourished from time to time, from the semidemocratic systems of the Aryans to despotic and monarchial forms of government. But the most characteristic feature of society was the persistence of the great social castes that were instituted by the Aryans in an effort to perpetuate racial identity. This elaborate caste system has been preserved on down to the present time.
79:4.6 네 개의 위대한 특권계급들 중에서, 첫 번째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는 아리아인 정복자들이 자신들보다 열등한 백성들과 인종적으로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한 하찮은 노력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그러나 첫 번째 특권계급인 선생-사제 계급은 셋 자손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며;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의 브라만 계급은, 비록 그들의 가르침이 그들의 저명한 조상들의 것과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두 번째 동산의 사제들의 문화적 직계 후손들이다. Of the four great castes, all but the first were established in the futile effort to prevent racial amalgamation of the Aryan conquerors with their inferior subjects. But the premier caste, the teacher-priests, stems from the Sethites; the Brahmans of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 are the lineal cultural descendants of the priests of the second garden, albeit their teachings differ greatly from those of their illustrious predecessors.
79:4.7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두 번째 동산에 있었던 종교의 남아있는 전통들을 보존해 왔던 그대로 신(神)에 대한 자기들의 개념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브라만 사제들은, 아리아인들의 멸종 이후에 데칸의 열등한 종교와 갑작스럽게 접촉함으로써 세워진 다신교적(多神敎的) 타성을 전혀 이겨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등한 종교들의 노예화시키는 미신들의 굴레에 속박되고 말았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인도는 초기 시대에 징조를 보여 왔던 고차원의 문명을 창출하는 데 실패하였다. When the Aryans entered India, they brought with them their concepts of Deity as they had been preserved in the lingering traditions of the religion of the second garden. But the Brahman priests were never able to withstand the pagan momentum built up by the sudden contact with the inferior religions of the Deccan after the racial obliteration of the Aryans. Thus the vast majority of the population fell into the bondage of the enslaving superstitions of inferior religions; and so it was that India failed to produce the high civilization which had been foreshadowed in earlier times.
79:4.8 그리스도 이전 6세기의 영적 각성이 인도에서는 유지되지 못하였으며, 이슬람교 침투 전에 이미 소멸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더 위대한 고타마가 나타나 모든 인도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느님을 찾도록 인도할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온 세상 사람들은 보수적인 영적 통찰력의 무감각한 영향력 밑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있었던 다재다능한 한 민족의 문화적 잠재성에 대한 결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The spiritual awakening of the sixth century before Christ did not persist in India, having died out even before the Mohammedan invasion. But someday a greater Gautama may arise to lead all India in the search for the living God, and then the world will observe the fruition of the cultural potentialities of a versatile people so long comatose under the benumbing influence of an unprogressing spiritual vision.
79:4.9 문화는 생물학적인 기초 위에서 존재하지만, 특권계급만으로는 아리아인 문화를 영속시킬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종교, 참된 종교는 인간 형제신분에 기초를 둔 우수한 문명을 설립하도록 사람들을 내모는 높은 에너지의 필요 불가결한 근원이기 때문이다. Culture does rest on a biologic foundation, but caste alone could not perpetuate the Aryan culture, for religion, true religion, is the indispensable source of that higher energy which drives men to establish a superior civilization based on human brotherhood.


5.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
 


5. RED MAN AND YELLOW MAN

79:5.1 인도에 관한 이야기가 앤다이트의 정복에 관한 것과 결국에는 보다 오래된 진화적 민족들 속으로 스며들어간 것에 관계되는 반면, 동부 아시아에 관한 이야기는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첫 번째 산긱 인종들 특히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과 관계된다. 이 두 종족들은 청색 인종이 유럽에서 크게 발달이 뒤떨어진 저질(低質)의 네안데르탈 혈통과의 혼합을 대부분 겪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첫 번째 산긱 유형의 우수한 잠재를 간직하고 있었다. While the story of India is that of Andite conquest and eventual submergence in the older evolutionary peoples, the narrative of eastern Asia is more properly that of the primary Sangiks, particularly the red man and the yellow man. These two races largely escaped that admixture with the debased Neanderthal strain which so greatly retarded the blue man in Europe, thus preserving the superior potential of the primary Sangik type.
79:5.2 초기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유라시아 전체에 퍼진 반면, 동쪽 부분은 저질의 동물적 혈통들에 의해 더 많이 오염되었다. 이러한 유인원 유형의 사람들은 다섯 번째 빙하기에 남쪽으로 밀려 내려갔는데, 바로 그 빙하 때문에 산긱 인종이 동부 아시아로 이주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적색 인종이 인도의 고원지대를 돌아 북동쪽으로 이동하였을 때, 그들은 북동쪽 아시아에 유인원 유형의 사람들이 없음을 발견하였다. 백색 인종들의 부족 체제는 다른 모든 민족들보다 먼저 형성되었으며, 산긱 인종들의 중앙아시아 중심지로부터 이주한 최초의 인종이었다. 열등한 네안데르탈 혈통들은, 나중에 이주하는 황색 인종에 의해서 파멸되거나 아니면 본토로부터 쫓겨났다. 그러나 적색 인종은, 황색 인종의 부족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거의 100,000년 동안 동부 아시아를 차지하고 있었다. While the early Neanderthalers were spread out over the entire breadth of Eurasia, the eastern wing was the more contaminated with debased animal strains. These subhuman types were pushed south by the fifth glacier, the same ice sheet which so long blocked Sangik migration into eastern Asia. And when the red man moved northeast around the highlands of India, he found northeastern Asia free from these subhuman types. The tribal organization of the red races was formed earlier than that of any other peoples, and they were the first to migrate from the central Asian focus of the Sangiks. The inferior Neanderthal strains were destroyed or driven off the mainland by the later migrating yellow tribes. But the red man had reigned supreme in eastern Asia for almost one hundred thousand years before the yellow tribes arrived.
79:5.3 300,000년 전에 황색 인종의 본대가 남쪽으로부터 해안을 따라 이주하여 중국으로 들어갔다. 매 1,000년마다 그들은 점점 더 깊숙이 내륙으로 들어갔지만, 티베트로 이주한 동족들과는 비교적 최근에 이르기까지 마주치지 않았다. More than three hundred thousand years ago the main body of the yellow race entered China from the south as coastwise migrants. Each millennium they penetrated farther and farther inland, but they did not make contact with their migrating Tibetan brethren until comparatively recent times.
79:5.4 인구 압력이 증가됨으로서 황색인종을 북쪽-방향으로 움직이게 하였고 적색 인종의 사냥터로 밀려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침해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종족간의 반목과 함께 호전성을 증가시켜 절정에 이르게 하였고, 그리하여 아시아의 더 먼 곳에 있는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한 혹독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Growing population pressure caused the northward-moving yellow race to begin to push into the hunting grounds of the red man. This encroachment, coupled with natural racial antagonism, culminated in increasing hostilities, and thus began the crucial struggle for the fertile lands of farther Asia.
79:5.5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 사이에 있었던 오랜 세월 동안의 이 이야기는 유란시아 역사에서 하나의 서사시와도 같다. 20만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들 두 우수한 인종들은 더욱 격심하고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 초기의 투쟁에서는 대체적으로 적색 인종이 우세하여, 습격을 담당하는 그들의 무리들은 황색 인종의 정착지를 황폐화시키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황색 인종은 전쟁의 기술을 배우는 데 있어서 매우 기민하였으며, 동포들과 평화롭게 사는 상당한 능력을 일찍부터 갖고 있었는데, 결합하는 것에 힘이 있음을 처음으로 배운 것은 중국인들이었다. 적색 부족들은 내부적인 투쟁을 계속하였으며, 이윽고 그들은 북쪽을 향한 자신들의 진군을 가차 없이 계속한 냉혹한 중국인들의 적극적인 손길에서 반복되는 패배로 고통을 맛보기 시작했다. The story of this agelong contest between the red and yellow races is an epic of Urantia history. For over two hundred thousand years these two superior races waged bitter and unremitting warfare. In the earlier struggles the red men were generally successful, their raiding parties spreading havoc among the yellow settlements. But the yellow man was an apt pupil in the art of warfare, and he early manifested a marked ability to live peaceably with his compatriots; the Chinese were the first to learn that in union there is strength. The red tribes continued their internecine conflicts, and presently they began to suffer repeated defeats at the aggressive hands of the relentless Chinese, who continued their inexorable march northward.
79:5.6 10만 년 전에, 격감된 적색 인종은, 뒤로는 마지막 빙하기의 퇴각하는 얼음 덩어리와 싸워야 했으며, 베링 해협을 지나 육로를 통하여 동쪽으로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이 부족들은 야박스러운 아시아 대륙 해안을 서슴없이 떠나게 되었다. 순수한 적색 인종이 마지막으로 아시아를 떠난 지 85,000년이 지났지만, 오랜 기간의 투쟁은 승리를 거둔 황색 인종에게 유전적인 흔적을 남겨 두었다. 안돈 자손시베리아인 들과 함께, 북부 지역의 중국 민족들은 적색 종족을 많이 닮았으며 그것에 의해서 상당한 정도의 유익을 얻었다. One hundred thousand years ago the decimated tribes of the red race were fighting with their backs to the retreating ice of the last glacier, and when the land passage to the west, over the Bering isthmus, became passable, these tribes were not slow in forsaking the inhospitable shores of the Asiatic continent. It is eighty-five thousand years since the last of the pure red men departed from Asia, but the long struggle left its genetic imprint upon the victorious yellow race. The northern Chinese peoples, together with the Andonite Siberians, assimilated much of the red stock and were in considerable measure benefited thereby.
79:5.7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아담 이브앤다이트 후손과도 전혀 접촉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아담의 도래보다 약 50,000년 전에 그들의 고향이었던 아시아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이었다. 앤다이트의 이주 기간 동안, 순수한 적색 혈통의 사람들이 방랑하는 부족, 농사를 약간 짓는 사냥꾼이 되면서 북아메리카 전역에 퍼졌다. 이 종족들과 문화 집단들은, 그리스도교 시대의 첫 1,000년이 끝날 무렵, 유럽의 백색 인종들에 의해 그들이 발견될 때까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래 세계의 다른 민족들과 거의 완벽하게 고립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 때까지, 북쪽에 있는 적색 인종 부족들이 보았던 사람들 중에서 에스키모들이 백색 인종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The North American Indians never came in contact with even the Andite offspring of Adam and Eve, having been dispossessed of their Asiatic homelands some fifty thousand years before the coming of Adam. During the age of Andite migrations the pure red strains were spreading out over North America as nomadic tribes, hunters who practiced agriculture to a small extent. These races and cultural groups remained almost completely isolated from the remainder of the world from their arrival in the Americas down to the end of the first millennium of the Christian era, when they were discovered by the white races of Europe. Up to that time the Eskimos were the nearest to white men the northern tribes of red men had ever seen.
79:5.8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은, 앤다이트들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가장 발달된 문명을 이룩한 유일한 인간 혈통이었다. 최고로 오래된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오나모나론톤이었지만, 이것은 오래 전인 기원 전 35,000년경에 사라졌다. 중앙아메리카멕시코와 남아메리카의 산악지대에서는, 보다 후대의 그리고 보다 오래 지속된 문명들이, 주로 적색 인종이지만 황색과 오렌지색 그리고 청색 인종이 상당히 섞여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The red and the yellow races are the only human stocks that ever achieved a high degree of civilization apart from the influences of the Andites. The oldest Amerindian culture was the Onamonalonton center in California, but this had long since vanished by 35,000 B.C. In Mexico, Central America, and in the mountains of South America the later and more enduring civilizations were founded by a race predominantly red but containing a considerable admixture of the yellow, orange, and blue.
79:5.9 앤다이트 혈통의 흔적이 페루에서도 발견되기는 하지만, 이 문명들은 산긱 인종들의 진화적인 산물이었다. 북아메리카에스키모와 남아메리카에 있는 소수의 폴리네시아 앤다이트들을 제외한다면, 서반구(西半球)의 민족들은 그리스도 이후 첫 1,000년이 끝날 무렵까지 세계의 다른 인종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유란시아 종족들을 개선시키기 위한 멜기세덱의 기원적 계획에서는, 아담의 순수 혈통을 가진 백만 명의 후손들이 아메리카의 적색 인종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도 나아가게 되어 있었다. These civilizations were evolutionary products of the Sangiks, notwithstanding that traces of Andite blood reached Peru. Excepting the Eskimos in North America and a few Polynesian Andites in South America, the peoples of the Western Hemisphere had no contact with the rest of the world until the end of the first millennium after Christ. In the original Melchizedek plan for the improvement of the Urantia races it had been stipulated that one million of the pure-line descendants of Adam should go to upstep the red men of the Americas.


6. 중국 문명의 태동
 


6. DAWN OF CHINESE CIVILIZATION

79:6.1 적색 인종이 북아메리카로 쫓겨난 지 얼마 후에, 확대되는 중국인들은 동부 아시아의 강 유역들로부터 안돈 자손들을 몰아내었는데, 북쪽으로는 시베리아로 그리고 서쪽으로는 투르케스탄으로 밀어내었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곧 앤다이트들의 우수한 문화와 접촉하게 되었다. Sometime after driving the red man across to North America, the expanding Chinese cleared the Andonites from the river valleys of eastern Asia, pushing them north into Siberia and west into Turkestan, where they were soon to come in contact with the superior culture of the Andites.
79:6.2 버마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인도중국의 문화들이 혼합되고 섞여져서 그 지역에 계속적인 문명을 창출하게 하였다. 이곳에서는, 사라진 녹색 인종이 세계의 다른 어떤 장소보다도 더 많은 비율로 남아 있었다. In Burma and the peninsula of Indo-China the cultures of India and China mixed and blended to produce the successive civilizations of those regions. Here the vanished green race has persisted in larger proportion than anywhere else in the world.
79:6.3 많은 다른 종족들이 태평양의 섬들을 점령하였다. 일반적으로, 남쪽의 섬들이 그 다음에는 광범위한 지역의 섬들이, 높은 비율의 녹색과 남색 혈통을 간직한 민족들에 의해서 점령되었다. 북쪽의 섬들은 안돈 자손들에 의해서 지배되었으며, 나중에는 높은 비율의 황색 혈통과 적색 혈통을 포함하는 종족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일본 민족의 조상들은 기원 전 12,000년까지 본토에서 쫓겨나지 않고 있다가, 그 때 그들은 북쪽에 있는 중국 부족들이 남쪽 해안을 따라 강력하게 밀려 내려옴으로써 쫓겨나게 되었다. 그들의 최종적인 탈출은 인구 압력에 기인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신성한 인물로 간주하게 된 족장의 주도권에 기인된 것이었다. Many different races occupied the islands of the Pacific. In general, the southern and then more extensive islands were occupied by peoples carrying a heavy percentage of green and indigo blood. The northern islands were held by Andonites and, later on, by races embracing large proportions of the yellow and red stocks. The ancestors of the Japanese people were not driven off the mainland until 12,000 B.C., when they were dislodged by a powerful southern-coastwise thrust of the northern Chinese tribes. Their final exodus was not so much due to population pressure as to the initiative of a chieftain whom they came to regard as a divine personage.
79:6.4 인도레반트의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황색 인종의 다양한 부족들은 해안선과 강줄기를 따라서 초기의 중심지들을 건설하였다. 연안에 있는 주거지들은 나중에 홍수가 증가하면서 살아가기 힘들게 되었고, 강줄기의 변경은 낮은 지역에 있는 도시들이 지탱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Like the peoples of India and the Levant, victorious tribes of the yellow man established their earliest centers along the coast and up the rivers. The coastal settlements fared poorly in later years as the increasing floods and the shifting courses of the rivers made the lowland cities untenable.
79:6.5 20,000년 전에, 중국인들의 조상들은 12개에 달하는 원시적인 문화와 교육의 강력한 중심지들을 건설하였었는데, 특별히 황하양쯔 강을 따라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때 이 중심지들은 신경티베트에서 꾸준히 밀려들어오는 피가 섞인 우수한 민족들이 도착됨으로 인하여 보강되기 시작하였다. 티베트로부터 양쯔 강 계곡으로의 이주는 북쪽에서 일어난 것처럼 광대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중심지들도 다림 분지의 중심지들만큼 발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두 무리들은 상당한 양의 앤다이트 혈통을 갖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강변에 정착하였다. Twenty thousand years ago the ancestors of the Chinese had built up a dozen strong centers of primitive culture and learning, especially along the Yellow River and the Yangtze. And now these centers began to be reinforced by the arrival of a steady stream of superior blended peoples from Sinkiang and Tibet. The migration from Tibet to the Yangtze valley was not so extensive as in the north, neither were the Tibetan centers so advanced as those of the Tarim basin. But both movements carried a certain amount of Andite blood eastward to the river settlements.
79:6.6 고대 황색 인종의 우수성은 네 가지 큰 요소들로부터 기인되었다: The superiority of the ancient yellow race was due to four great factors:
79:6.7 1. 유전적 요인. 유럽에 있는 그들의 청색 동족들과는 달리,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은 저질(低質)의 인간 혈통들과 혼합되는 것을 대개 피할 수 있었다. 우수한 적색 혈통과 안돈 자손 혈통이 약간 섞인 북부의 중국인들은, 앤다이트 혈통이 상당히 유입됨으로써 곧 유익을 얻게 되었다. 남부의 중국인들은 이러한 면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녹색 인종의 흡수로 인하여 오랫동안 수난을 당하였고, 반면에 나중에는 드라비다-앤다이트 침입으로 말미암아 인도에서 도망 나온 열등한 민족들 무리가 침투함으로써 훨씬 약화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에는 북부 지역의 인종과 남부 지역의 인종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1. Genetic. Unlike their blue cousins in Europe, both the red and yellow races had largely escaped mixture with debased human stocks. The northern Chinese, already strengthened by small amounts of the superior red and Andonic strains, were soon to benefit by a considerable influx of Andite blood. The southern Chinese did not fare so well in this regard, and they had long suffered from absorption of the green race, while later on they were to be further weakened by the infiltration of the swarms of inferior peoples crowded out of India by the Dravidian-Andite invasion. And today in China there is a definite difference between the northern and southern races.
79:6.8 2. 사회적 요인. 황색 인종은 자기들끼리의 평화에 대한 가치를 일찍부터 습득하였다. 그들의 내부적인 평화 유지 능력은 인구 증가에 막대하게 기여하였으며 그들의 문명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퍼지도록 만들었다. 기원 전 25,000년부터 5,000년에 이르기까지, 유란시아에서 가장 높은 집단적 문명은 중국의 중앙과 북부 지역에 있었다. 황색 인종은 종족의 결속을 이룩한 최초의 종족이었다.─큰 규모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문명을 처음으로 달성하였다. 2. Social. The yellow race early learned the value of peace among themselves. Their internal peaceableness so contributed to population increase as to insure the spread of their civilization among many millions. From 25,000 to 5000 B.C. the highest mass civilization on Urantia was in central and northern China. The yellow man was first to achieve a racial solidarity -- the first to attain a large-scale cultural, social, and political civilization.
79:6.9 기원 전 15,000년의 중국인은 공격적인 군국주의자들이었으며; 옛 사람들을 과도하게 숭배함으로써 약화되는 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1,200만 명 미만의 인구를 가진 그들은 간단한 신체적 표현으로 공통 언어를 형성하였다. 이 시기 동안에, 그들은 실제적인 국가를 형성하였는데, 역사 시대에 이룩한 그들의 정치적 결합보다도 훨씬 더 결합되었고 균질성을 갖고 있었다. The Chinese of 15,000 B.C. were aggressive militarists; they had not been weakened by an overreverence for the past, and numbering less than twelve million, they formed a compact body speaking a common language. During this age they built up a real nation, much more united and homogeneous than their political unions of historic times.
79:6.10 3. 영적 요인. 앤다이트가 이주하던 시기 동안, 중국인들은 이 세상에 있는 비교적 더 영적인 민족들 중의 하나였다. 싱랑톤이 전한 하나의 진리에 대한 경배에 오랫동안 집착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종족들보다 가장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진보적이고 발전된 종교에 의한 자극이 때로는 문화적 발전에 중대한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인도가 쇠약해졌을 때, 중국은 진리를 최극 신(神)으로 모시는 한 종교의 활기찬 자극 밑에서 서서히 앞으로 나갔던 것이다. 3. Spiritual. During the age of Andite migrations the Chinese were among the more spiritual peoples of earth. Long adherence to the worship of the One Truth proclaimed by Singlangton kept them ahead of most of the other races. The stimulus of a progressive and advanced religion is often a decisive factor in cultural development; as India languished, so China forged ahead under the invigorating stimulus of a religion in which truth was enshrined as the supreme Deity.
79:6.11 이러한 진리 경배는 자연 법칙과 인류의 잠재에 대한 연구와 대담한 탐구를 유도하였다. 6,000년 전까지도 중국인들은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여전히 예민한 학생들이었고 적극성을 띠고 있었다. This worship of truth was provocative of research and fearless exploration of the laws of nature and the potentials of mankind. The Chinese of even six thousand years ago were still keen students and aggressive in their pursuit of truth.
79:6.12 4. 지형적 요인. 중국은 서쪽으로는 산들에 의해서 그리고 동쪽으로는 태평양에 의해서 보호를 받았다. 오직 북쪽으로만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으며, 적색 인종의 시대부터 후대의 앤다이트 자손들이 도래할 때까지, 북쪽 지역은 어떤 공격적인 종족에 의해서도 점령되지 않았었다. 4. Geographic. China is protected by the mountains to the west and the Pacific to the east. Only in the north is the way open to attack, and from the days of the red man to the coming of the later descendants of the Andites, the north was not occupied by any aggressive race.
79:6.13 또한 산에 의한 장벽이 없었다면, 그리고 영적 문화에 있어서 후대의 퇴보가 없었다면, 황색 인종은 투르케스탄으로부터 이주하는 앤다이트의 대부분을 이끌어 들일 수 있었음이 분명하며, 그렇게 되었다면 틀림없이 세계 문명을 재빨리 지배하였을 것이다. And but for the mountain barriers and the later decline in spiritual culture, the yellow race undoubtedly would have attracted to itself the larger part of the Andite migrations from Turkestan and unquestionably would have quickly dominated world civilization.


7. 중국에 들어온 앤다이트
 

7. THE ANDITES ENTER CHINA

79:7.1 약 15,000년 전에, 상당한 숫자의 앤다이트들이 티 타오 고개를 넘었고 칸수에 있는 중국인 정착지들 중에서 황하 상류 계곡으로 퍼져 나갔다. 이윽고 그들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호난에 이르렀으며, 그곳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착지들이 조성되었다. 이렇게 서쪽으로부터 침투한 사람들은 반(半)은 안돈 자손이고 나머지 반은 앤다이트였다. About fifteen thousand years ago the Andites, in considerable numbers, were traversing the pass of Ti Tao and spreading out over the upper valley of the Yellow River among the Chinese settlements of Kansu. Presently they penetrated eastward to Honan, where the most progressive settlements were situated. This infiltration from the west was about half Andonite and half Andite.
79:7.2 황하 유역을 따라 이루어진 북쪽의 문화 중심지들은, 양쯔 강 유역의 남쪽 정착지들보다 항상 더 진보를 이룩하였다. 소수의 무리이기는 하였지만 우수한 이 필사자들이 도착된 후 수천 년 내에, 황하 유역의 정착지들은 양쯔 강 유역의 마을들보다 앞서 나갔고, 그 후에 유지되었던 모든 남부에 있는 그들의 동족들보다 우위를 차지하였다. The northern centers of culture along the Yellow River had always been more progressive than the southern settlements on the Yangtze. Within a few thousand years after the arrival of even the small numbers of these superior mortals, the settlements along the Yellow River had forged ahead of the Yangtze villages and had achieved an advanced position over their brethren in the south which has ever since been maintained.
79:7.3 그것은 그곳에 훨씬 더 많은 앤다이트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고, 그들의 문화가 훨씬 우수하였기 때문도 아니었으며, 오직 그들과의 혼합으로 더욱 다재다능한 혈통이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 북부의 중국인들은 그들의 선천적인 유능한 마음들을 약간 자극하기에 겨우 충분할 만큼 앤다이트 혈통을 받았지만, 북부에 있는 백색 인종들의 특징처럼 끊임없이 탐구심을 갖는 호기심이 불타오를 정도로 충분하게 받지는 못하였다. 이와 같은 앤다이트 유전자의 더욱 제한적인 주입은 산긱 유형의 타고난 안정성을 별로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It was not that there were so many of the Andites, nor that their culture was so superior, but amalgamation with them produced a more versatile stock. The northern Chinese received just enough of the Andite strain to mildly stimulate their innately able minds but not enough to fire them with the restless, exploratory curiosity so characteristic of the northern white races. This more limited infusion of Andite inheritance was less disturbing to the innate stability of the Sangik type.
79:7.4 후대에 이동한 앤다이트는 향상된 특정한 메소포타미아의 문화를 가져왔으며; 이것은 특별히 서쪽으로부터 이동한 마지막 물결에서 더욱 그러하였다. 그들은 북부 중국인들의 경제적 교육적 관습들을 크게 증진시켰으며; 반면에 황색 인종의 종교적 문화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은 오래 가지 못하였고, 그들의 먼 후손들이 나중에 일어난 영적 각성에 많이 기여하였다. 그러나 에덴달라마시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앤다이트 전승들이 중국의 전승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초기 중국의 전설들은 “하느님들의 땅”이 서쪽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The later waves of Andites brought with them certain of the cultural advances of Mesopotamia; this is especially true of the last waves of migration from the west. They greatly improved the economic and educational practices of the northern Chinese; and while their influence upon the religious culture of the yellow race was short-lived, their later descendants contributed much to a subsequent spiritual awakening. But the Andite traditions of the beauty of Eden and Dalamatia did influence Chinese traditions; early Chinese legends place "the land of the gods" in the west.
79:7.5 중국 민족은 기원 전 10,000년이 지날 때까지, 투르케스탄에 기후 변화가 발생하고 후대의 앤다이트들이 도착한 후까지, 도시를 건설하지 못하였고 제조업에 종사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혈통의 주입은, 황색 인종의 문명에 기여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우수한 중국 혈통의 잠재적인 경향이 더 깊이 그리고 빠르게 발전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호난에서 셴시에 이르기까지, 진보된 문명의 잠재가 결실을 맺게 되었다. 금속 가공과 모든 제조 기술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The Chinese people did not begin to build cities and engage in manufacture until after 10,000 B.C., subsequent to the climatic changes in Turkestan and the arrival of the later Andite immigrants. The infusion of this new blood did not add so much to the civilization of the yellow man as it stimulated the further and rapid development of the latent tendencies of the superior Chinese stocks. From Honan to Shensi the potentials of an advanced civilization were coming to fruit. Metalworking and all the arts of manufacture date from these days.
79:7.6 시간 계산과 천문학 그리고 정부 운영에 대한 중국의 방법과 메소포타미아의 방법 일부가 비슷한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두 중심지들 사이의 상업적 관계로부터 기인되었다. 중국의 상인들은 수메르인 시대에 이미 육로를 통하여 투르케스탄을 거쳐 메소포타미아로 여행하였다. 이러한 교환은 일방적인 것도 아니었다.─유프라테스 계곡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었고, 갠지스 평원의 민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그리스도 이전 3,000년경의 유목민 침입으로 말미암아, 중앙아시아의 대상로(隊商路)를 지나가는 무역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The similarities between certain of the early Chinese and Mesopotamian methods of time reckoning, astronomy, and governmental administration were due to the commercial relationships between these two remotely situated centers. Chinese merchants traveled the overland routes through Turkestan to Mesopotamia even in the days of the Sumerians. Nor was this exchange one-sided -- the valley of the Euphrates benefited considerably thereby, as did the peoples of the Gangetic plain. But the climatic changes and the nomadic invasions of the third millennium before Christ greatly reduced the volume of trade passing over the caravan trails of central Asia.


8. 후대의 중국 문명
 

8. LATER CHINESE CIVILIZATION

79:8.1 적색 인종이 너무 많은 전쟁으로 인하여 시달린 반면, 중국인들 속에서의 국가적인 상태의 발전은 그들이 아시아를 속속들이 정복할 때까지 연기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종족의 결속을 이룩할 수 있는 많은 잠재를 갖고 있었지만, 외적인 공격에 항상 수반되는 위험성에 대응되는 계속적인 강렬한 충동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적절하게 발전되지 못하고 말았다. While the red man suffered from too much warfare, it is not altogether amiss to say that the development of statehood among the Chinese was delayed by the thoroughness of their conquest of Asia. They had a great potential of racial solidarity, but it failed properly to develop because the continuous driving stimulus of the ever-present danger of external aggression was lacking.
79:8.2 동부 아시아 정복의 완료와 함께, 고대의 군사적 체제가 서서히 분열되었다─과거의 전쟁들은 잊혀졌다. 적색 인종과 투쟁하였던 이야기들 중에서, 활 쏘는 민족들과의 오래 전의 투쟁에 대한 희미한 전승만이 남아 있었다.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농업으로 돌아섰고, 그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그들의 성향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동시에 농사를 짓기에 필요한 땅에 대한 인구의 비율이 상당히 낮은 것도 그 나라의 평화로움을 증대시키는 일에 더욱 기여하였다. With the completion of the conquest of eastern Asia the ancient military state gradually disintegrated -- past wars were forgotten. Of the epic struggle with the red race there persisted only the hazy tradition of an ancient contest with the archer peoples. The Chinese early turned to agricultural pursuits, which contributed further to their pacific tendencies, while a population well below the land-man ratio for agriculture still further contributed to the growing peacefulness of the country.
79:8.3 과거의 성취(현재는 어느 정도 쇠퇴한)에 대한 의식과 압도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민족의 보수적 경향 그리고 잘 발달된 가정생활이 조상 숭배을 탄생시켰는데, 조상에 대한 존경이 극에 달한 나머지 경배와 비슷한 상태로까지 이르렀다. 그리스-로마 문명이 붕괴된 후 거의 500년 동안 유럽에 있는 백색 인종들 가운데에서 매우 비슷한 태도가 유행된 적이 있었다. Consciousness of past achievements (somewhat diminished in the present), the conservatism of an overwhelmingly agricultural people, and a well-developed family life equaled the birth of ancestor veneration, culminating in the custom of so honoring the men of the past as to border on worship. A very similar attitude prevailed among the white races in Europe for some five hundred years following the disruption of Graeco-Roman civilization.
79:8.4 싱랑톤이 가르쳤던 “하나의 진리”에 대한 믿음과 경배는 한 번도 전반적으로 사라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롭고도 더 높은 진리를 추구하려는 경향은, 이미 설립된 것을 숭배하려는 경향이 커짐으로써 빛을 잃게 되었다. 황색 인종의 재능 있는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추구하려는 태도로부터 이미 알려진 것을 보존하려는 태도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게 진보하던 문명이 정체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The belief in, and worship of, the "One Truth" as taught by Singlangton never entirely died out; but as time passed, the search for new and higher truth became overshadowed by a growing tendency to venerate that which was already established. Slowly the genius of the yellow race became diverted from the pursuit of the unknown to the preservation of the known. And this is the reason for the stagnation of what had been the world's most rapidly progressing civilization.
79:8.5 기원 전 4,000년으로부터 500년 사이에, 황색 인종의 정치적인 재(再)통일이 이룩되었지만, 양쯔 강과 황하에 있는 중심지들의 문화적 결합은 이미 이룩되어 있었다. 후대의 부족 집단들의 정치적인 재통일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에 대한 사회적 견해는 빈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며; 조상 경배와 늘어나는 숫자의 방언들 그리고 수천 년 동안의 군사적 활동 부재(不在)로 말미암아 이 민족은 과도한 평화를 누려 왔었다. Between 4000 and 500 B.C. the political reunification of the yellow race was consummated, but the cultural union of the Yangtze and Yellow river centers had already been effected. This political reunification of the later tribal groups was not without conflict, but the societal opinion of war remained low; ancestor worship, increasing dialects, and no call for military action for thousands upon thousands of years had rendered this people ultrapeaceful.
79:8.6 발전된 국가 체제로 일찍부터 발전될 가능성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황색 인종은 문명의 기술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특별히 농업과 원예술의 영역에 있어서는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센시호난에서는 농민들이 물을 이용하는 문제에 부딪혔고 그 해결을 위해 집단적인 협동이 요구되었다. 그러한 관개(灌漑)와 토양-보존의 문제들은, 상호의존의 발달에 상당히 기여하였고 나중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집단들 간의 평화 증진을 가져왔다. Despite failure to fulfill the promise of an early development of advanced statehood, the yellow race did progressively move forward in the realization of the arts of civilization, especially in the realms of agriculture and horticulture. The hydraulic problems faced by the agriculturists in Shensi and Honan demanded group co-operation for solution. Such irrigation and soil-conservation difficulties contributed in no small measure to the development of interdependence with the consequent promotion of peace among farming groups.
79:8.7 곧, 기록하는 기술이 발달되고 학교들이 설립됨으로써,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지식이 보급되도록 기여하였다. 그러나 일찍부터 인쇄술이 출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표의문자 체제의 복잡한 특성 때문에 지식인 계층의 숫자가 매우 제한되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사회적인 표준화와 종교-철학적 교리화에 대한 진행이 빠른 속도로 계속 진행되었다. 조상 숭배에 대한 종교적 발전은, 자연 경배를 포함하는 미신의 유입으로 말미암아 더욱 복잡하게 되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실제적 개념의 남겨져 있던 흔적이 상제(上帝)에 대한 황제로서의 경배 속에 간직된 채로 남아 있었다. Soon developments in writing, together with the establishment of schools, contributed to the dissemination of knowledge on a previously unequaled scale. But the cumbersome nature of the ideographic writing system placed a numerical limit upon the learned classes despite the early appearance of printing. And above all else, the process of social standardization and religio-philosophic dogmatization continued apace. The religious development of ancestor veneration became further complicated by a flood of superstitions involving nature worship, but lingering vestiges of a real concept of God remained preserved in the imperial worship of Shang-ti.
79:8.8 조상 숭배의 커다란 약점은 뒤쪽을-바라보는 철학을 조장하는 점이다. 지난날로부터 지혜를 수집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지난날을 진리의 유일한 근원으로 간주하는 것이므로 어리석은 짓이다. 진리는 상대적이고 확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항상 현재 안에 살아있다, 각 세대의 사람들 안에─나아가 각 인간의 일생 안에─새로운 표현을 성취한다. The great weakness of ancestor veneration is that it promotes a backward-looking philosophy. However wise it may be to glean wisdom from the past, it is folly to regard the past as the exclusive source of truth. Truth is relative and expanding; it lives always in the present, achieving new expression in each generation of men -- even in each human life.
79:8.9 조상 숭배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러한 태도가 가족에게 미치는 유용성이다. 중국 문명의 놀랄만한 안정성과 지속성은 최고의 상태로 화합된 가족의 결과인데, 왜냐하면 문명은 가족의 효과적인 활동에 직접적으로 의존되기 때문이며; 중국에 있어서의 가족은 사회적 중요성을 달성하였고, 심지어는 종교적인 의의(意義)를 성취하였는데, 다른 민족들이 이것을 시도한 경우는 거의 없다. The great strength in a veneration of ancestry is the value that such an attitude places upon the family. The amazing stability and persistence of Chinese culture is a consequence of the paramount position accorded the family, for civilization is directly dependent on the effective functioning of the family; and in China the family attained a social importance, even a religious significance, approached by few other peoples.
79:8.10 증대되는 조상 경배의 종파에 의해서 강요되는 자식으로서의 헌신과 가족에 대한 충성은, 뛰어난 가족 관계 형성과 영구적인 가족 집단의 형성을 보장하였으며, 문명을 보존하는 데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촉진시켰다: The filial devotion and family loyalty exacted by the growing cult of ancestor worship insured the building up of superior family relationships and of enduring family groups, all of which facilitated the following factors in the preservation of civilization:
 

 1. 

재산과 부(富)의 보존.

 2.

한 세대 이상의 체험이 쌓이게 함.

 3.

과거의 기술과 과학에 있어서의 자녀들에 대한 효과적인 교육.

 4.

의무에 대한 강한 인식의 발달, 도덕성 증진, 그리고 윤리적 민감성의 증대.

1.

Conservation of property and wealth.

2.

Pooling of the experience of more than one generation.

3.

Efficient education of children in the arts and sciences of the past.

4.

Development of a strong sense of duty, the enhancement of morality, and the augmentation of ethical sensitivity.

79:8.11 앤다이트들의 도래와 함께 시작되었던, 중국 문명의 발달기는 그리스도 이전 6세기의 엄청난 윤리적, 도덕적, 반(半)종교적 각성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중국의 전승은 과거의 진화에 대한 어렴풋한 기록을 보존하였으며; 어머니 중심의 가족으로부터 아버지 중심의 가족으로의 전환, 농업의 확립, 농업의 발달, 산업의 개시─이 모든 것들이 연속적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른 비슷한 설명들보다 훨씬 정확하게, 미개한 차원으로부터 우수한 민족이 훌륭하게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기 동안에 그들은 원시적인 농업사회로부터 보다 높은 사회적 체제로 발전되었는데, 그 체제는 도시들, 제조업, 금속 가공, 상업 교역, 정부, 기록, 수학, 예술, 인쇄 등을 포함한다. The formative period of Chinese civilization, opening with the coming of the Andites, continues on down to the great ethical, moral, and semireligious awakening of the sixth century before Christ. And Chinese tradition preserves the hazy record of the evolutionary past; the transition from mother- to father-family, the establishment of agriculture, the development of architecture, the initiation of industry -- all these are successively narrated. And this story presents, with greater accuracy than any other similar account, the picture of the magnificent ascent of a superior people from the levels of barbarism. During this time they passed from a primitive agricultural society to a higher social organization embracing cities, manufacture, metalworking, commercial exchange, government, writing, mathematics, art, science, and printing.
79:8.12 그리하여 황색 인종의 고대 문명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내려오면서 지속되어 왔다. 최초의 중요한 발전이 중국 문명에서 발생된 이래 거의 40,000년이 지났으며, 여러 차례 퇴보의 과정이 있었지만, 한의 아들들이 세운 문명은 20세기 시대까지 내려오는 계속적인 진보에 대한 온전한 그림을 보여줄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이 전해지고 있다. 백색 인종들의 기계적인 발전과 종교적인 발전이 하나의 높은 체제를 이룩하고는 있지만, 가족의 충성심이나 집단적 윤리 또는 개인적 도덕성에 있어서는 중국인보다 뛰어난 적이 없었다. And so the ancient civilization of the yellow race has persisted down through the centuries. It is almost forty thousand years since the first important advances were made in Chinese culture, and though there have been many retrogressions, the civilization of the sons of Han comes the nearest of all to presenting an unbroken picture of continual progression right on down to the times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mechanical and religious developments of the white races have been of a high order, but they have never excelled the Chinese in family loyalty, group ethics, or personal morality.
79:8.13 이러한 고대의 문화는 인간의 행복에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수많은 인간 존재들이 그 업적에 의해서 혜택을 받으면서 살다가 죽었다. 이 위대한 운명은 수세기 동안 과거에 얻었던 명예로 만족해 왔지만, 인간 존재의 초월적인 목표를 새롭게 계획하기 위하여, 영원한 진보를 향한 끊임없는 투쟁을 다시 한 번 시작하기 위하여 지금도 각성을 하고 있다. This ancient culture has contributed much to human happiness; millions of human beings have lived and died, blessed by its achievements. For centuries this great civilization has rested upon the laurels of the past, but it is even now reawakening to envision anew the transcendent goals of mortal existence, once again to take up the unremitting struggle for never-ending progress.
79:8.14 [네바돈천사장에 의해서 제시되었음] Presented by an Archangel of Neba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