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번호 | 복귀
제 194 편Paper 194
진리의 영 증여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약 1시 경에, 120명의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 그들은 모두 그 방안에서 이상한 현존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이 제자들은 영적 기쁨과 안심 그리고 자신감을 주는 하나의 새롭고도 깊은 느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영적 힘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후 즉시, 예수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났다는 기쁜 소식과 왕국 복음을 나가서 공개적으로 선포하려는 강한 충동을 받았다.ABOUT one o’clock, as the one hundred and twenty believers were engaged in prayer, they all became aware of a strange presence in the room. At the same time these disciples all became conscious of a new and profound sense of spiritual joy, security, and confidence. This new consciousness of spiritual strength was immediately followed by a strong urge to go out and publicly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the good news that Jesus had risen from the dead.
베드로가 일어서서, 이것은 주(主)께서 자기들에게 약속하였던 진리의 영이 도래하였다는 증거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면서, 자기들에게 위임된 그 기쁜 소식을 성전으로 가서 전파하기 시작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베드로가 제안한 대로하였다.Peter stood up and declared that this must be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which the Master had promised them and proposed that they go to the temple and begin the proclamation of the good news committed to their hands. And they did just what Peter suggested.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전도해야 할 복음이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들의 아들관계라는 것을 훈련받고 교육받았었지만, 영적 흥분과 개인적 승리감의 이 순간에 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소식, 가장 엄청난 소식은 주(主)가 부활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위로부터 주어진 힘을 자질로서 부여받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예수를 통한 구원까지도─을 전파하며 나아갔다 그러나 고의는 아니지만 복음에 연관되는 사실들의 몇 개로 복음의 내용 그 자체를 대체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러한 오류에 있어서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앞장섰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를 따라갔고, 기쁜 소식의 새로운 해석으로부터 새 종교를 창시한 바울에 까지 이어졌다.These men had been trained and instructed that the gospel which they should preach was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sonship of man, but at just this moment of spiritual ecstasy and personal triumph, the best tidings, the greatest news, these men could think of was the fact of the risen Master. And so they went forth, endowed with power from on high, preaching glad tidings to the people ─ even salvation through Jesus ─ but they unintentionally stumbled into the error of substituting some of the facts associated with the gospel for the gospel message itself. Peter unwittingly led off in this mistake, and others followed after him on down to Paul, who created a new religion out of the new version of the good news.
왕국 복음은 이것이다: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에 대한 사실, 이와 나란히 짝을 이루는 사람들의 형제신분-아들관계의 결과적 진리이다. 그리스도교는, 그 날부터 발전된 바와 같이, 이것이다: 일어났고 그리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와 갖는 믿는 자-친교관계의 체험과 관련되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아버지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사실이다.The gospel of the kingdom is: the fact of the fatherhood of God, coupled with the resultant truth of the sonship-brotherhood of men. Christianity, as it developed from that day, is: the fact of God as the Father of the Lord Jesus Christ, in association with the experience of believer-fellowship with the risen and glorified Christ.
영이 주입(注入)된 이 사람들이, 그들의 주(主)를 죽이려 하고 그의 가르침의 영향을 없애버리려고 하였던 그 세력에 대해 자신들의 승리의 감정들을 표현할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와 같은 시기에, 예수와 그들의 개인적 관련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주(主)가 여전히 살아 계시고 자신들과의 친구 관계가 끝나지 않았으며 그의 약속대로 영이 정말로 도래하였다는 확신으로 감동되는 것이 보다 쉬운 일이었다.It is not strange that these spirit-infused men should have seized upon this opportunity to express their feelings of triumph over the forces which had sought to destroy their Master and end the influence of his teachings. At such a time as this it was easier to remember their personal association with Jesus and to be thrilled with the assurance that the Master still lived, that their friendship had not ended, and that the spirit had indeed come upon them even as he had promised.
이 신자들은 자기들이 다른 세계, 기쁨과 힘과 영광의 새로운 생활로 갑자기 전환되었음을 느꼈다. 주(主)는 그들에게 왕국이 힘을 가지고 도래할 것이라고 말씀하였으며, 그들 중의 일부는 그가 의미하였던 것 그들이 알아보기 시작하였다고 생각하였다.These believers felt themselves suddenly translated into another world, a new existence of joy, power, and glory. The Master had told them the kingdom would come with power, and some of them thought they were beginning to discern what he meant.
이러한 모든 것들이 고려되고 나면, 어떻게 하여 이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들의 형제신분이라는 내용의 초기 메시지 대신에 예수에 관한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는지를 납득하는 것이 쉬워진다.And when all of this is taken into consideration, it i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how these men came to preach a new gospel about Jesus in the place of their former message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1. 오순절 설교1. The Pentecost Sermon
사도들은 지난 40일 동안 숨어 있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유대인의 오순절 축제일이었으며, 세계 각지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이 축제를 위하여 도착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월절 이후 계속 그 성안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 움츠렸던 사도들은 그들의 몇 주간의 은거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성전에 나타났으며, 그들은 그곳에서 부활한 메시아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모든 제자들이 마찬가지로 통찰력과 힘의 새로운 영적 자질을 받아들였음을 의식하게 되었다.The apostles had been in hiding for forty days. This day happened to be the Jewish festival of Pentecost, and thousands of visitors from all parts of the world were in Jerusalem. Many arrived for this feast, but a majority had tarried in the city since the Passover. Now these frightened apostles emerged from their weeks of seclusion to appear boldly in the temple, where they began to preach the new message of a risen Messiah. And all the disciples were likewise conscious of having received some new spiritual endowment of insight and power.
주(主)가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치셨던 바로 그 자리에 베드로가 서서 열정적으로 호소하여,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얻는 결과를 가져오는 감동적인 호소를 한 것은 2시 경이었다. 주(主)는 떠났지만, 그들은 그에 관한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발견하였다. 그들이 이전에 예수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정당화하며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그를 믿도록 강요하는 더 많은 설교를 하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여섯 명의 사도들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그리고 마태였다. 그들은 1시간 30분 이상 이야기하였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그리고 아람어로 메시지를 전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그들이 쉽게 말할 수 있는 다른 언어로도 몇 마디씩 설교하였다.It was about two o’clock when Peter stood up in that very place where his Master had last taught in this temple, and delivered that impassioned appeal which resulted in the winning of more than two thousand souls. The Master had gone, but they suddenly discovered that this story about him had great power with the people. No wonder they were led on into the further proclamation of that which vindicated their former devotion to Jesus and at the same time so constrained men to believe in him. Six of the apostles participated in this meeting: Peter, Andrew, James, John, Philip, and Matthew. They talked for more than an hour and a half and delivered messages in Greek, Hebrew, and Aramaic, as well as a few words in even other tongues with which they had a speaking acquaintance.
유대인 영도자들은 사도들의 대담함에 몹시 놀랐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믿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들을 방해하지 못하였다.The leaders of the Jews were astounded at the boldness of the apostles, but they feared to molest them because of the large numbers who believed their story.
4시 30분경에 2,000명 이상의 새 신자들이 사도들을 따라 실로암 연못으로 내려갔으며, 그곳에서 베드로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요한주(主)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날이 어두워서야 그들은 이 군중들에게 세례를 다 마칠 수 있었다.By half past four o’clock more than two thousand new believers followed the apostles down to the pool of Siloam, where Peter, Andrew, James, and John baptized them in the Master’s name. And it was dark when they had finished with baptizing this multitude.
오순절은 야훼를 섬기려는 할례의 의무가 없는 이방인들이 서로 교제하는 기간으로 세례의 큰 축제였다. 그러므로 믿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많은 무리가 이 날 세례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유대 신앙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한 동안까지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유대교의 한 분파로 남아 있었다. 사도들을 포함하여 그들 모두는, 유대인의 의식적(儀式的) 체계의 기본 조건들을 여전히 신봉하였다.Pentecost was the great festival of baptism, the time for fellowshipping the proselytes of the gate, those gentiles who desired to serve Yahweh. It was, therefore, the more easy for large numbers of both the Jews and believing gentiles to submit to baptism on this day. In doing this, they were in no way disconnecting themselves from the Jewish faith. Even for some time after this the believers in Jesus were a sect within Judaism. All of them, including the apostles, were still loyal to the essential requirements of the Jewish ceremonial system.
2. 오순절의 의의(意義)2. The Significance of Pentecost
예수는 땅에서 사셨으며, 그리고 사람이 악마의 자손이라는 미신으로부터 사람을 되찾아 회복해서 그를 하느님의 신앙 아들의 존엄으로 들어 올리는 복음을 가르치셨다. 예수의 메시지는, 그의 시대에 그가 그것을 설교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사신 것처럼, 그것이 진술된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영적 어려움을 위한 효과적인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그의 자리에 그의 진리의 영을 보내는데, 이는 사람 안에 살도록, 그리고 각각의 새로운 세대를 위하여, 예수 메시지를 다시 진술하도록, 그로서 이 땅 표면에 새로 나타나는 필사자들의 모든 새로운 집단마다 복음의 새롭고도 가장 최신의 해석본을 가지도록, 바로 그러한 것이 사람의 언제까지나-새롭고도 다양해지는 영적 고난들에 대해 효과있는 해결이 될 것임을 입증하는, 개인적 깨우침과 집단적 안내가 되도록, 고안되어 있다.Jesus lived on earth and taught a gospel which redeemed man from the superstition that he was a child of the devil and elevated him to the dignity of a faith son of God. Jesus’ message, as he preached it and lived it in his day, was an effective solvent for man’s spiritual difficulties in that day of its statement. And now that he has personally left the world, he sends in his place his Spirit of Truth, who is designed to live in man and, for each new generation, to restate the Jesus message so that every new group of mortals to appear upon the face of the earth shall have a new and up-to-date version of the gospel, just such personal enlightenment and group guidance as will prove to be an effective solvent for man’s ever-new and varied spiritual difficulties.
이 영의 첫 번째 임무는, 물론, 진리를 육성하고 그리고 개인성구현하는 것이니, 이는 인간 해방의 최고 형태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진리에 대한 이해심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영의 목적은 신자들이 가지는 고아-신분의 느낌을 파괴하는 것이다. 예수가 사람들 사이에 있었으니, 진리의 영이 사람들 가슴속에 내주하기 위하여 오지 않았더라면, 모든 신자들은 외로움의 감각을 체험하였을 것이다.The first mission of this spirit is, of course, to foster and personalize truth, for it is the comprehension of truth that constitutes the highest form of human liberty. Next, it is the purpose of this spirit to destroy the believer’s feeling of orphanhood. Jesus having been among men, all believers would experience a sense of loneliness had not the Spirit of Truth come to dwell in men’s hearts.
아들의 영의 이 증여는, 그 다음에 모든 인류에 대한 아버지의 영(조절자)의 우주적 증여를 위하여 모든 일반적인 사람들의 마음들을 효과적으로 준비시켰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진리의 영우주 아버지창조자 아들 둘 모두의 영이다.This bestowal of the Son’s spirit effectively prepared all normal men’s minds for the subsequent universal bestowal of the Father’s spirit (the Adjuster) upon all mankind. In a certain sense, this Spirit of Truth is the spirit of both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Creator Son.
부어진 진리의 영을 지적으로 강하게 인식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오류를 범하지 마라. 영은 결코 그 스스로에 대한 의식(意識)을 창조하지 않으며, 오직 아들미가엘의 의식만 창조한다. 처음부터 예수는 영이 자기 스스로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과 너희의 친교의 증거는 이 영에 대한 너희의 의식 속에서 찾을 수 없고, 오히려 너희의 미가엘과 더욱 강화된 친교의 체험 속에서 발견된다.Do not make the mistake of expecting to become strongly intellectually conscious of the outpoured Spirit of Truth. The spirit never creates a consciousness of himself, only a consciousness of Michael, the Son. From the beginning Jesus taught that the spirit would not speak of himself. The proof, therefore, of your fellowship with the Spirit of Truth is not to be found in your consciousness of this spirit but rather in your experience of enhanced fellowship with Michael.
영은 또한 사람이 주(主)의 말씀을 상기하고 납득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왔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의 일생을 조명하고 재-해석하기 위하여 왔다.The spirit also came to help men recall and understand the words of the Master as well as to illuminate and reinterpret his life on earth.
다음으로, 진리의 영예수의 가르침들과 일생에서의 실체, 그가 육신으로 그것을 살았던 것으로 보여준, 그리고 이제 다시 각각 지나가는 세대들의, 영으로-채워진 하느님의 아들들의 개별 신자 안에서, 또 새로운 그리고 또 육신으로 그것을 살고 그에 따라 보여주는, 그 실체들을 신자가 목격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왔다.Next, the Spirit of Truth came to help the believer to witness to the realities of Jesus’ teachings and his life as he lived it in the flesh, and as he now again lives it anew and afresh in the individual believer of each passing generation of the spirit-filled sons of God.
그리하여, 진리의 영은 실제로 모든 신자들을 모든 진리로, 영원하고 상승하는 하느님의 아들관계로 살아있고 성장하는 영적 의식의 체험의 확대되는 지식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보인다.Thus it appears that the Spirit of Truth comes really to lead all believers into all truth, into the expanding knowledge of the experience of the living and growing spiritual consciousness of the reality of eternal and ascending sonship with God.
예수는 어떤 한 사람이 명확하게 따르려고 시도하는 예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 사람을 계시한 그런 일생을 사셨다. 육신으로의 이러한 일생은, 곧 바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과 그 후에 일어난 부활과 더불어, 악한 자의 쇠사슬로부터─화나신 하느님의 유죄판결로부터─ 사람을 다시 사기 위해 그렇게 지불된 속죄의 새로운 복음으로 되어 버렸다. 복음이 크게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에 관한 이러한 새로운 메시지가 그의 초기 왕국 복음의 근본적인 진리들을 많이 함께 전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조만간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들의 형제신분에 대한 감추어진 진리들은 모든 인류의 문명을 효과적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곧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Jesus lived a life which is a revelation of man submitted to the Father’s will, not an example for any man literally to attempt to follow. This life in the flesh, together with his death on the cross and subsequent resurrection, presently became a new gospel of the ransom which had thus been paid in order to purchase man back from the clutch of the evil one ─ from the condemnation of an offended God. Nevertheless, even though the gospel did become greatly distorted, it remains a fact that this new message about Jesus carried along with it many of the fundamental truths and teachings of his earlier gospel of the kingdom. And, sooner or later, these concealed truths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will emerge to effectually transform the civilization of all mankind.
그러나 이들 지능에서의 오류들은 신자의 영적 성장의 커다란 진보를 어떤 방법으로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 사도들은 진리의 영이 증여된 후 한 달도 못되어서, 거의 4년에 걸친 주(主)와의 개인적이고 사랑하는 관계에서 얻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개별적인 영적 진보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관계에서의 구원하는 복음 진리 대신에 예수의 부활에 대한 사실을 대치시킨 것도, 그들의 가르침이 신속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도 방해하지 못하였다; 그의 인물과 부활에 관한 새로운 가르침으로 인하여 예수의 메시지에 드리워진 이 그늘은 오히려 새로운 소식의 전파를 크게 촉진시키는 것처럼 보였다.But these mistakes of the intellect in no way interfered with the believer’s great progress in growth in spirit. In less than a month after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the apostles made more individual spiritual progress than during their almost four years of personal and loving association with the Master. Neither did this substitution of the fact of the resurrection of Jesus for the saving gospel truth of sonship with God in any way interfere with the rapid spread of their teachings; on the contrary, this overshadowing of Jesus’ message by the new teachings about his person and resurrection seemed greatly to facilitate the preaching of the good news.
이 당시에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하게 된 “영의 세례(洗禮)”라는 용어는, 단지 진리의 영이라는 이 선물의 의식적인 받아들임과, 새로운 이 영적 힘이 하느님을-아는 혼들이 전에 체험하였던 모든 영적 영향들이 증강된 것임을 개인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했다.The term “baptism of the spirit,” which came into such general use about this time, merely signified the conscious reception of this gift of the Spirit of Truth and the personal acknowledgment of this new spiritual power as an augmentation of all spiritual influences previously experienced by God-knowing souls.
진리의 영이 증여된 이후로, 사람은 아버지의 영, 생각 조절자; 아들의 영, 진리의 영; 의 영, 성령과 같이 자신에게 부여된 삼중적 영 자질의 인도와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Since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man is subject to the teaching and guidance of a threefold spirit endowment: the spirit of the Father, the Thought Adjuster; the spirit of the Son, the Spirit of Truth; the spirit of the Spirit, the Holy Spirit.
얼마간, 인류는 우주 영의 영향들의 일곱 가지 힘의 중복된 작용을 필요로 한다. 필사자들의 초기 진화 종족들은 지역우주의 어머니 영의 일곱 가지 보조 마음-영들의 진보적 접촉이 필요하다. 사람이 지능과 영적 지각의 눈금에서 상향 진보하면, 결국에는 일곱 가지의 더 높은 영(靈)의 영향들이 그에게 날아와서 그의 안에 내주 하게 된다. 그리고 진보하는 세계들의 이 일곱 가지 영들은 다음과 같다:In a way, mankind is subject to the double influence of the sevenfold appeal of the universe spirit influences. The early evolutionary races of mortals are subject to the progressive contact of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As man progresses upward in the scale of intelligence and spiritual perception, there eventually come to hover over him and dwell within him the seven higher spirit influences. And these seven spirits of the advancing worlds are:
1. 우주 아버지의 증여된 영(靈)─생각 조절자들.1. The bestowed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 the Thought Adjusters.
2. 영원한 아들의 영 현존─우주들의 우주의 영 중력 그리고 모든 영 교제의 확실한 경로.2. The spirit presence of the Eternal Son ─ the spirit gravity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and the certain channel of all spirit communion.
3. 무한한 영(靈)의 영 현존─모든 창조의 우주 영-마음, 진보하는 모든 지능들의 지적 친족관계의 영적 근원.3. The spirit presence of the Infinite Spirit ─ the universal spirit-mind of all creation, the spiritual source of the intellectual kinship of all progressive intelligences.
4. 우주 아버지창조자 아들의 영─일반적으로 우주 아들의 영으로 간주되는 진리의 영.4. The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Creator Son ─ the Spirit of Truth, generally regarded as the spirit of the Universe Son.
5. 무한한 영(靈)의 영과 우주 어머니 영의 영─일반적으로 우주 영의 영으로 간주되는 성령.5. The spirit of the Infinite Spirit and the Universe Mother Spirit ─ the Holy Spirit, generally regarded as the spirit of the Universe Spirit.
6. 우주 어머니 영의 마음-영─지역우주의 일곱 보조 마음-영들.6. The mind-spirit of the Universe Mother Spirit ─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7. 아버지, 아들들 그리고 들의 영─영으로 태어난 필사자의 혼과 파라다이스 생각 조절자의 융합 이후 그리고 그에 따라 나중에 파라다이스 최종의 무리단의 지위에서의 신성과 영광을 받은 이후에, 영역들에서 상승하는 필사자가 가지는 새로운-이름의 영.7. The spirit of the Father, Sons, and Spirits ─ the new-name spirit of the ascending mortals of the realms after the fusion of the mortal spirit-born soul with the Paradise Thought Adjuster and after the subsequent attainment of the divinity and glorification of the status of the Paradise Corps of the Finality.
그리하여 그렇게 진리의 영의 증여는 하느님을 찾아 상승하는 것을 도와주도록 계획된 영 자질의 마지막을 세상과 그곳의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And so did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bring to the world and its peoples the last of the spirit endowment designed to aid in the ascending search for God.
3. 오순절에 일어난 일3. What Happened at Pentecost
쓸모없고 이상한 많은 가르침들이 오순절 날의 초기 이야기들과 결합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시대들 속에서, 인류에 내주하기 위하여 새로운 선생님으로 진리의 영이 왔던 이날의 사건들은 사납게 휩쓸린 감정주의의 어리석은 봉기들과 혼동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아들로부터 유출된 이 영의 주된 사명활동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자비에 대한 진리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다른 모든 성격의 신성한 특색들 보다 더욱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신성의 진리들이다. 진리의 영은 무엇보다도 먼저 아버지의 영에 대한 본성과 아들의 도덕적인 성격을 계시하는데 관계가 있다 창조자 아들은 육신으로 하느님을 사람에게 계시하였다; 진리의 영은 가슴으로 창조자 아들을 사람들에게 계시한다. 사람이 그의 일생 속에서 “영의 열매들”을 맺었을 때, 그는 단순히 주(主)께서 이 세상에서 그자신의 일생 속에 현시되하셨던 그 특색들을 밖으로 나타내는 것뿐이다. 예수가 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는 하나의 개인성─나사렛 예수─로서 그의 일생을 영위하였다. 오순절 이후, 주(主)는 “새로운 선생”의 내주 하는 영으로서, 진리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신자의 체험 속에서 그의 새로운 일생을 사실 수 있게 되었다.Many queer and strange teachings became associated with the early narratives of the day of Pentecost. In subsequent times the events of this day, on which the Spirit of Truth, the new teacher, came to dwell with mankind, have become confused with the foolish outbreaks of rampant emotionalism. The chief mission of this outpoured spirit of the Father and the Son is to teach men about the truths of the Father’s love and the Son’s mercy. These are the truths of divinity which men can comprehend more fully than all the other divine traits of character. The Spirit of Truth is concerned primarily with the revelation of the Father’s spirit nature and the Son’s moral character. The Creator Son, in the flesh, revealed God to men; the Spirit of Truth, in the heart, reveals the Creator Son to men. When man yields the “fruits of the spirit” in his life, he is simply showing forth the traits which the Master manifested in his own earthly life. When Jesus was on earth, he lived his life as one personality ─ Jesus of Nazareth. As the indwelling spirit of the “new teacher,” the Master has, since Pentecost, been able to live his life anew in the experience of every truth-taught believer.
인간 일생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이해하기 힘들고, 이것이 진리가 우세하고 정의(正義)가 승리하는 그러한 우주라는 관념과 조화시키기가 어렵다. 너무나 자주 중상, 거짓말, 부정직, 그리고 불의─죄─가 득세하는 것이 나타난다. 신앙이, 결국에는, 악과 죄와 사악한 불의를 이기게 될까? 그렇게 된다. 그리고 예수의 일생과 죽음이 선(善)의 진리와, 영으로 인도 받는 창조체의 신앙이 항상 정당화된다는 영원한 증명이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 “하느님이 와서 그를 구원하시는지 보자.”라고 말하며 조롱하였다. 십자가형의 그날은 암울하였지만, 부활의 아침에는 영화롭게 빛났다; 오순절에는 여전히 더욱 빛나고 그리고 더욱 기쁨 넘치는 날이었다. 비관론적인 절망의 종교들은 일생의 무거운 짐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 그들은 끝없는 수면과 휴식 안에서 절멸되기를 갈망한다. 이것들은 원시적인 두려움과 공포의 종교이다. 예수의 종교는 분투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하여 선포되는 신앙의 새 복음이다. 새로운 이 종교는 신앙, 희망 그리고 사랑 위에 세워진다.Many things which happen in the course of a human life are hard to understand, difficult to reconcile with the idea that this is a universe in which truth prevails and in which righteousness triumphs. It so often appears that slander, lies, dishonesty, and unrighteousness ─ sin ─ prevail. Does faith, after all, triumph over evil, sin, and iniquity? It does. And the life and death of Jesus are the eternal proof that the truth of goodness and the faith of the spirit-led creature will always be vindicated. They taunted Jesus on the cross, saying, “Let us see if God will come and deliver him.” It looked dark on that day of the crucifixion, but it was gloriously bright on the resurrection morning; it was still brighter and more joyous on the day of Pentecost. The religions of pessimistic despair seek to obtain release from the burdens of life; they crave extinction in endless slumber and rest. These are the religions of primitive fear and dread. The religion of Jesus is a new gospel of faith to be proclaimed to struggling humanity. This new religion is founded on faith, hope, and love.
필사자 일생은 예수께 가장 힘들고 가장 잔인하며 가장 비통한 일격(一擊)을 가하였다; 이 사람은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신앙과 용기와 확고한 결단력으로 절망의 이 사명활동들에 대처하였다. 예수는 일생의 무시무시한 실체 속에서 생을 맞이하였고 그것을 정복하였다 ─죽음에서까지도. 그는 일생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종교를 이용하지 않았다. 예수의 종교는 다른 실존의 기다리고 있는 행복을 즐기기 위해서 이 일생을 피하려고 추구하지 않았다. 예수의 종교는 사람들이 현재 육신으로 살고 있는 그 일생을 고양하고 고상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영적 실존의 기쁨과 평화를 제공한다.To Jesus, mortal life had dealt its hardest, cruelest, and bitterest blows; and this man met these ministrations of despair with faith, courage, and the unswerving determination to do his Father’s will. Jesus met life in all its terrible reality and mastered it ─ even in death. He did not use religion as a release from life. The religion of Jesus does not seek to escape this life in order to enjoy the waiting bliss of another existence. The religion of Jesus provides the joy and peace of another and spiritual existence to enhance and ennoble the life which men now live in the flesh.
만일 종교가 인간에게 마취제라면, 그것은 예수의 종교가 아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는 감각을 마비시키는 약을 마시기를 거절하였으며, 모든 육체에게 부어진 그의 영은 높은 곳을 향하도록 사람을 이끌고, 계속 향하도록 그를 충동하는 막강한 세계적 영향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영적 충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힘차게 몰아가는 기세이다; 진리를 배우는 신자는 이 세상에서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혼을 가진 자이다.If religion is an opiate to the people, it is not the religion of Jesus. On the cross he refused to drink the deadening drug, and his spirit, poured out upon all flesh, is a mighty world influence which leads man upward and urges him onward. The spiritual forward urge is the most powerful driving force present in this world; the truth-learning believer is the one progressive and aggressive soul on earth.
그 오순절 날에 예수의 종교는 모든 국가적 제약들과 종족간의 족쇄들을 없애버렸다. “주님의 영이 임하는 곳에 해방이 있다.”는 말은 언제까지나 진리이다. 이 날, 진리의 영주(主)로부터 모든 필사자 각자에게 주어지는 개인적 선물이 되었다. 이 영은 왕국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도하도록 신자들에게 자격을 갖추게 하는 목적으로 증여되었지만, 그들은 쏟아 부어지는 영을 받는 체험을,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형성하고 있었던 새로운 복음의 일부분으로 삼는 오류를 범하였다.On the day of Pentecost the religion of Jesus broke all national restrictions and racial fetters. It is forever true,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On this day the Spirit of Truth became the personal gift from the Master to every mortal. This spirit was bestowed for the purpose of qualifying believers more effectively to pr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but they mistook the experience of receiving the outpoured spirit for a part of the new gospel which they were unconsciously formulating.
진리의 영이 모든 진실 된 신자들에게 증여되었다는 사실을 경시하지 말라; 영의 선물은 오직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명의 남자와 여자들은 모두 이 새로운 선생을 받았으며, 온 세상의 정직한 가슴을 가진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새로운 선생은 인류에게 수여되었으며, 진리를 사랑하고 그리고 영적 실체를 파악하고 깨닫는 힘에 따라서 모든 혼은 그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참된 종교는 사제들과 그리고 모든 신성한 계층들의 보호관리에서 해방되고, 사람들의 개별적인 혼 안에서 그 실제 현시활동을 발견한다.Do not overlook the fact that the Spirit of Truth was bestowed upon all sincere believers; this gift of the spirit did not come only to the apostles. The one hundred and twenty men and women assembled in the upper chamber all received the new teacher, as did all the honest of heart throughout the whole world. This new teacher was bestowed upon mankind, and every soul received him in accordance with the love for truth and the capacity to grasp and comprehend spiritual realities. At last, true religion is delivered from the custody of priests and all sacred classes and finds its real manifestation in the individual souls of men.
예수의 종교는 영적 개인성에서의 가장 높은 유형을 창조하고 그 개인의 신성함을 선포하는 가장 높은 유형의 인간 문명을 육성한다.The religion of Jesus fosters the highest type of human civilization in that it creates the highest type of spiritual personality and proclaims the sacredness of that person.
오순절에 진리의 영의 도래는 급진적이지도 않고 보수적이지도 않은 종교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것은 오래된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며; 나이 든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지도 않고 젊은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지도 않는다. 예수의 땅에서의 일생의 사실은 시간의 닻을 위한 고정된 점을 제공하는 반면에, 진리의 영의 수여는 그가 실천하였던 그 종교와 그가 전파하였던 그 복음의 영속하는 확대와 끝없는 성장을 제공한다. 영은 모든 진리로 인도한다; 그는 끝없는 진보와 신성한 전개로 확대되고 항상 성장하는 종교의 선생이다. 이 새로운 선생은 진리를 추구하는 신자에게, 사람의 아들의 개인 안에 그리고 본성 안에 신성하게 감추어져 있는 것을 언제까지나 펼쳐 줄 것이다.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on Pentecost made possible a religion which is neither radical nor conservative; it is neither the old nor the new; it is to be dominated neither by the old nor the young. The fact of Jesus’ earthly life provides a fixed point for the anchor of time, while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provides for the everlasting expansion and endless growth of the religion which he lived and the gospel which he proclaimed. The spirit guides into all truth; he is the teacher of an expanding and always-growing religion of endless progress and divine unfolding. This new teacher will be forever unfolding to the truth-seeking believer that which was so divinely folded up in the person and nature of the Son of Man.
“새로운 선생”의 증여와 연관된 현시활동들과, 예루살렘에 모인 여러 종족들과 나라들이 사도들의 설교를 받아들임은 예수의 종교의 보편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왕국 복음은 그 어떠한 특정한 종족, 문화 또는 언어도 없이 정체성이 확인되어야 한다. 오순절의 이 날이 그것의 고유한 유대교의 속박으로부터 예수의 종교를 해방시키는 영의 커다란 수고를 입증하였다. 모든 육체에 영이 부어진 이 실증이 있은 후에도 역시, 처음에 사도들은 유대주의의 요구조건들을 그들의 개종자들에게 부과하려고 애를 썼다. 심지어는 바울도 그가 이방인들을 이 유대교 실천 관행들에 복종시키려 하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형제들과 다툼이 있었다. 계시된 종교는 그것이 어떤 국가적인 문화가 침투되거나, 또는 확립된 인종적(人種的), 사회적(社會的), 또는 경제적 실천 관행들과 연관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할 때에는 모든 세계로 퍼지지 못한다.The manifestations associated with the bestowal of the “new teacher,” and the reception of the apostles’ preaching by the men of various races and nations gathered together at Jerusalem, indicate the universality of the religion of Jesus. The gospel of the kingdom was to be identified with no particular race, culture, or language. This day of Pentecost witnessed the great effort of the spirit to liberate the religion of Jesus from its inherited Jewish fetters. Even after this demonstration of pouring out the spirit upon all flesh, the apostles at first endeavored to impose the requirements of Judaism upon their converts. Even Paul had trouble with his Jerusalem brethren because he refused to subject the gentiles to these Jewish practices. No revealed religion can spread to all the world when it makes the serious mistake of becoming permeated with some national culture or associated with established racial, social, or economic practices.
진리의 영의 증여는 모든 형식들, 의식(儀式)들, 거룩한 장소들, 그리고 그것의 현시활동을 충만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의 특별한 행위와 무관하였다. 다락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영이 임하였을 때, 그들은 다만 아무 소리 없이 기도를 하면서 그곳에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영은 도시에서 뿐만 아니라 교외 지역에서도 수여되었다. 사도들은 영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뿔뿔이 헤어져 외로운 곳에서 몇 년간의 고독한 묵상이 필요 없었다. 모든 시간에서, 오순절은 특별하게 은혜로운 환경들에 대한 통념으로부터 영적 체험의 관념을 분리하여 연관되지 않도록 한다.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was independent of all forms, ceremonies, sacred places, and special behavior by those who received the fullness of its manifestation. When the spirit came upon those assembled in the upper chamber, they were simply sitting there, having just been engaged in silent prayer. The spirit was bestowed in the country as well as in the city. It was not necessary for the apostles to go apart to a lonely place for years of solitary meditation in order to receive the spirit. For all time, Pentecost disassociates the idea of spiritual experience from the notion of especially favorable environments.
오순절은, 그것의 영적 자질(자질)로, 주(主)의 종교를 모든 물리적인 기세에 의존으로부터 언제까지나 풀어내도록 예정되었다; 이 새로운 종교의 선생들은 이제 영적 무기들을 구비하였다. 그들은 끊임없는 용서, 비할 바 없는 선한 뜻, 그리고 풍부한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하여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선으로 악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미움을 정복하며 진리에 대한 용감하고 살아있는 신앙으로 두려움을 파괴시킬 준비를 갖추었다. 예수는 자신의 종교가 결코 피동적이 아님을 이미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랑의 현시활동과 자비의 사명활동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다. 이 신자들은 야훼를 더 이상 “무리들의 주님”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영원한 신(神)을 “하느님주님 예수 그리스도아버지”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이 또한 모든 개별존재의 영적 아버지라는 진리를 충분하게 파악하는 데 어느 정도 실패하였지만, 적어도 거기까지는 진보를 이루었다.Pentecost, with its spiritual endowment, was designed forever to loose the religion of the Master from all dependence upon physical force; the teachers of this new religion are now equipped with spiritual weapons. They are to go out to conquer the world with unfailing forgiveness, matchless good will, and abounding love. They are equipped to overcome evil with good, to vanquish hate by love, to destroy fear with a courageous and living faith in truth. Jesus had already taught his followers that his religion was never passive; always were his disciples to be active and positive in their ministry of mercy and in their manifestations of love. No longer did these believers look upon Yahweh as “the Lord of Hosts.” They now regarded the eternal Deity as the “God and Father of the Lord Jesus Christ.” They made that progress, at least, even if they did in some measure fail fully to grasp the truth that God is also the spiritual Father of every individual.
오순절은 필사 사람에게 개인적 상처를 받아들여 용서하는 힘과, 가장 심각한 불공정의 상황에서도 상냥할 수 있는 힘과, 무시무시한 위험에 직면하여서도 여전히 태연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사랑과 인내의 두려움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미움과 분노의 악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자질로서 부여하였다. 유란시아는 그 역사 속에서 엄청난 파괴적인 전쟁들에 의한 참혹한 피해들을 겪어 왔다. 이러한 끔찍한 투쟁 속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좌절을 체험하였다. 승리자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이러한 비참한 투쟁들로부터, 드높아진 명성과 함께 떠오른 유일한 사람은─나사렛 예수와, 선으로 악을 정복하는 그의 복음뿐이었다. 보다 나은 문명에 대한 비결은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주(主)의 가르침들, 상호적인 신뢰와 사랑의 선한 뜻 속에 깊이 묻혀 있다.Pentecost endowed mortal man with the power to forgive personal injuries, to keep sweet in the midst of the gravest injustice, to remain unmoved in the face of appalling danger, and to challenge the evils of hate and anger by the fearless acts of love and forbearance. Urantia has passed through the ravages of great and destructive wars in its history. All participants in these terrible struggles met with defeat. There was but one victor; there was only one who came out of these embittered struggles with an enhanced reputation ─ that was Jesus of Nazareth and his gospel of overcoming evil with good. The secret of a better civilization is bound up in the Master’s teachings of the brotherhood of man, the good will of love and mutual trust.
오순절이 있기까지는, 하느님을 추구하는 사람만을 종교가 계시해 왔었으나; 오순절 이후로는, 사람이 여전히 하느님을 찾기는 하지만, 하느님께서도 사람을 찾으시고 그를 발견한 후에는 그의 안에 내주 하도록 그의 영을 보내신다는 장관(壯觀)이 세상을 비친다.Up to Pentecost, religion had revealed only man seeking for God; since Pentecost, man is still searching for God, but there shines out over the world the spectacle of God also seeking for man and sending his spirit to dwell within him when he has found him.
오순절에 최고조에 달하였던 예수의 가르침이 있기 이전에는, 여인들은 오래된 종교들의 교의(敎義)에서는 영적 지위가 조금 있거나 또는 없었다. 오순절 이후로, 여자는 왕국의 형제신분 속에서 남자와 동등하게 하느님 앞에 서게 되었다. 영의 이 특별한 방문을 받아들인 120명중에는 여성 제자들이 많이 있었으며, 그들은 이 축복을 남성 신자들과 동등하게 누렸던 것이다. 종교적인 예배봉사의 사명활동을 더 이상 남자들만이 독점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바리새인은 “여자나 문둥병 환자 또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였겠지만,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 중에서 여인들은 성별에 따른 모든 종교적인 차별에서 언제까지나 자유롭게 되었다. 오순절은 인종의 구별, 문화적인 차이들, 사회적인 특권계급, 또는 성별에 따른 편견에 근간을 둔 모든 종교적 차별을 없애버렸다. 이 새로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주(主)의 영이 임하는 곳에 해방이 있다.”라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Before the teachings of Jesus which culminated in Pentecost, women had little or no spiritual standing in the tenets of the older religions. After Pentecost, in the brotherhood of the kingdom woman stood before God on an equality with man. Among the one hundred and twenty who received this special visitation of the spirit were many of the women disciples, and they shared these blessings equally with the men believers. No longer can man presume to monopolize the ministry of religious service. The Pharisee might go on thanking God that he was “not born a woman, a leper, or a gentile,” but among the followers of Jesus woman has been forever set free from all religious discriminations based on sex. Pentecost obliterated all religious discrimination founded on racial distinction, cultural differences, social caste, or sex prejudice. No wonder these believers in the new religion would cry out,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120명의 신자들 속에 있었으며, 그들도 이러한 일반 제자들의 일원으로서 쏟아 부어진 영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들의 친구들이 했던 것보다 좋은 선물을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의 땅에서의 가족이라고 해서 특별한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다. 오순절은 특별한 사제신분과 신성한 가문에 대한 모든 믿음을 종식시켰다.Both the mother and brother of Jesus were present among the one hundred and twenty believers, and as members of this common group of disciples, they also received the outpoured spirit. They received no more of the good gift than did their fellows. No special gift was bestowed upon the members of Jesus’ earthly family. Pentecost marked the end of special priesthoods and all belief in sacred families.
오순절이 있기 전에 사도들은 예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했었다. 그들은 그들의 가정, 가족들, 친구들, 세상의 재물들과 지위를 희생하였다. 오순절에 그들은 자신을 하느님께 드렸으며, 아버지아들은 자신들을 사람에게 주심─사람들 속에 내주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영을 보내심─으로써 그에 응답하였다. 자아를 버리고 영을 발견하는 이 체험은 하나의 감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능적인 자아-복종과 무조건적인 헌신의 행동이었다.Before Pentecost the apostles had given up much for Jesus. They had sacrificed their homes, families, friends, worldly goods, and positions. At Pentecost they gave themselves to God, and the Father and the Son responded by giving themselves to man ─ sending their spirits to live within men. This experience of losing self and finding the spirit was not one of emotion; it was an act of intelligent self-surrender and unreserved consecration.
오순절은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영적 합일이 이루어지는 부름이었다. 영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 제자들에게 임하였을 때, 똑같은 일이 필라델피아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참된 신자들이 거주하는 모든 다른 장소들에서도 일어났다. “믿는 자들의 무리 중에는 오직 한 마음과 혼이 있었다.”는 표현은 글자 그대로 진실이었다. 예수의 종교는 세상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강력히 통합시키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Pentecost was the call to spiritual unity among gospel believers. When the spirit descended on the disciples at Jerusalem, the same thing happened in Philadelphia, Alexandria, and at all other places where true believers dwelt. It was literally true that “there was but one heart and soul among the multitude of the believers.” The religion of Jesus is the most powerful unifying influence the world has ever known.
오순절은 개별존재들과 집단들과 국가들 그리고 인종들의 자아-주장을 줄여주도록 예정되었다. 긴장 속에서 그렇게 증가되어 주기적으로 파괴적인 전쟁들로 파열되어 느슨하게 되는 것은 이 자아-주장의 영이다. 인류는 영적 접근을 통해서만 통합될 수 있으며, 진리의 영은 우주적인 세상의 영향력이다.Pentecost was designed to lessen the self-assertiveness of individuals, groups, nations, and races. It is this spirit of self-assertiveness which so increases in tension that it periodically breaks loose in destructive wars. Mankind can be unified only by the spiritual approach, and the Spirit of Truth is a world influence which is universal.
진리의 영의 도래는 인간의 가슴을 정화시키고, 받아들이는 자들을 인도하여 하느님의 뜻과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단 하나의 어떤 일생의 목적을 형성하도록 만든다. 자아본위의 물질적 영은 자아없음의 이 새로운 영적 증여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오순절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역사 속에서의 예수가 살아있는 체험의 신성한 아들이 되셨음을 가리킨다. 이 넘쳐나는 영의 기쁨은, 그것이 인간 일생 안에서 의식적으로 체험될 때, 건강을 위한 강장제(强壯劑), 마음에 대한 자극, 그리고 혼을 위한 부단한 힘이 된다.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purifies the human heart and leads the recipient to formulate a life purpose single to the will of God and the welfare of men. The material spirit of selfishness has been swallowed up in this new spiritual bestowal of selflessness. Pentecost, then and now, signifies that the Jesus of history has become the divine Son of living experience. The joy of this outpoured spirit, when it is consciously experienced in human life, is a tonic for health, a stimulus for mind, and an unfailing energy for the soul.
기도로 영이 오순절 날에 임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개별적인 신자들을 특징짓는 접수성의 수용능력을 결정하는 데에 많은 일을 하였다. 기도가 증여의 풍성함이 되도록 신성한 가슴을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진지한 기도와 참된 경배를 통하여 자신들의 조물주와 중단 없는 교제를 유지하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들의 가슴과 혼 속에, 그 신성한 증여들이 흐를 수 있게 하는, 보다 확대되고 깊어진 통로를 열어주는 경우가 매우 많이 있다.Prayer did not bring the spirit on the day of Pentecost, but it did have much to do with determining the capacity of receptivity which characterized the individual believers. Prayer does not move the divine heart to liberality of bestowal, but it does so often dig out larger and deeper channels wherein the divine bestowals may flow to the hearts and souls of those who thus remember to maintain unbroken communion with their Maker through sincere prayer and true worship.
4. 그리스도인 교회의 시작4. Beginnings of the Christian Church
예수가 적에게 갑자기 체포되시고 두 강도들 사이에서 그토록 신속하게 십자가형에 처해지셨을 때,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완벽하게 사기가 꺾였었다. 체포되시고, 묶이시고, 채찍에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主)에 대한 기억이 제자들에게는 매우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르침들과 경고들을 잊었다. 정말로 그는 “하느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 말씀과 행위에 있어서 힘 있는 선지자일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하리라고 희망하는 그 메시아가 될 수는 없었다.When Jesus was so suddenly seized by his enemies and so quickly crucified between two thieves, his apostles and disciples were completely demoralized. The thought of the Master, arrested, bound, scourged, and crucified, was too much for even the apostles. They forgot his teachings and his warnings. He might, indeed, have been “a prophet mighty in deed and word before God and all the people,” but he could hardly be the Messiah they had hoped would restore the kingdom of Israel.
그때에, 그것의 절망으로부터 해방과 주(主)의 신성에 대한 그들의 신앙의 회복과 함께 부활이 있었다. 그들은 여러 번 그를 보았고 그와 같이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는 그들을 올리브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그곳에서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고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였다. 그는 그들이 힘을 자질로서 부여받을 때까지─진리의 영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였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이 새로운 선생이 도래하였으며, 그들은 즉시 나아가서 새로운 힘으로 그들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들은 죽었으며 패배 당한 영도자가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을 대담하고 용감하게 따르는 자들이었다. 주(主)는 이러한 복음 전파자들의 가슴 속에 살아 계신다; 하느님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교리가 아니다; 그들의 혼 속에서 살아있는 현존이 되었다.Then comes the resurrection, with its deliverance from despair and the return of their faith in the Master’s divinity. Again and again they see him and talk with him, and he takes them out on Olivet, where he bids them farewell and tells them he is going back to the Father. He has told them to tarry in Jerusalem until they are endowed with power ─ until the Spirit of Truth shall come. And on the day of Pentecost this new teacher comes, and they go out at once to preach their gospel with new power. They are the bold and courageous followers of a living Lord, not a dead and defeated leader. The Master lives in the hearts of these evangelists; God is not a doctrine in their minds; he has become a living presence in their souls.
“그들은 한결같이 날마다 성전에서 함께 모였으며 집에서 빵을 떼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과 은혜를 나누고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한 가슴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그들의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모두 영으로 충만하였으며 대담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군중들은 한 마음과 혼 이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이든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모든 것들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Day by day they continued steadfastly and with one accord in the temple and breaking bread at home. They took their food with gladness and singleness of heart, praising God and having favor with all the people.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spirit, and they spoke the word of God with boldness. And the multitudes of those who believed were of one heart and soul; and not one of them said that aught of the things which he possessed was his own, and they had all things in common.”
예수가 왕국 복음,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형제신분을 전파하면서 나아가라고 임명한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가? 그들은 새로운 복음을 가졌다; 그들은 새로운 체험으로 흥분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영적 에너지로 가득 찼다. 그들의 메시지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쪽으로 급격히 변경되었다: “기적과 이적으로서 사람인 하느님이 증명된. 나사렛 예수; 최종적인 조언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예지로 들어 올려 해방되신 이, 그를, 넘겨받아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살해하였다. 하느님께서 모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미리 나타내신 것들을 그가 이렇게 성취하였다. 이 예수하느님이 소생시키셨다. 하느님은 그를 주님그리스도가 되게 하였다. 하느님의 오른 손으로 드높여지고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영의 약속을 받게 되었음으로, 그가 너희가 보고 있고 듣고 있는 바로 이것을 쏟아부어주셨다. 회개하라, 그것으로 너희 죄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것으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하여 지명해왔던 분, 곧 그리스도를 보내실 수 있고, 만물의 소생의 시기까지 하늘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분, 예수님 까지도, 보내실 수 있다.”What has happened to these men whom Jesus had ordained to go forth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They have a new gospel; they are on fire with a new experience; they are filled with a new spiritual energy. Their message has suddenly shifted to the proclamation of the risen Christ: “Jesus of Nazareth, a man God approved by mighty works and wonders; him, being delivered up by the determinate counsel and foreknowledge of God, you did crucify and slay. The things which God foreshadowed by the mouth of all the prophets, he thus fulfilled. This Jesus did God raise up. God has made him both Lord and Christ. Being, by the right hand of God, exalted and having received from the Father the promise of the spirit, he has poured forth this which you see and hear. Repent, that your sins may be blotted out; that the Father may send the Christ, who has been appointed for you, even Jesus, whom the heaven must receive until the times of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왕국 복음, 예수의 메시지는 갑자기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갑자기 변경되었다. 그들은 이제 그의 일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사실들을 전파하였으며, 그가 시작했던 일을 완결하기 위하여 그가 이 세상으로 속히 돌아오시리라는 희망을 전파하였다. 그리하여 초기 신자들의 메시지는 그의 초림(初臨)에 대한 사실들을 전파하는 것과 그리고, 그들이 아주 가까운 시간에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는 사건인, 그의 재림(再臨)에 대한 희망을 가르치는 것이었다.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message of Jesus, had been suddenly changed into the gospel of the Lord Jesus Christ. They now proclaimed the facts of his life, death, and resurrection and preached the hope of his speedy return to this world to finish the work he began. Thus the message of the early believers had to do with preaching about the facts of his first coming and with teaching the hope of his second coming, an event which they deemed to be very near at hand.
그리스도는 급속도로 형성된 교회의 교리가 되려고 하고 있었다. 예수는 살아 계시다; 그는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 그는 영을 주었다; 그는 다시 오고 계신다. 예수는 그들의 모든 생각들을 채웠으며 그리고 그들의 하느님과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모든 새로운 개념을 결정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주님 예수아버지시다.”라는 새로운 교리에 너무 열광한 나머지, 모든 개개의 개별존재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다.”라는 오랜 메시지에 관심을 두지 못하였다. 형제로서의 사랑에 대한 놀라운 현시활동과 전례 없는 선한 뜻이 이러한 초기 신자들의 공동체 속에서 솟아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를 믿는 신자들의 동료관계였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족적인 왕국 속에서의 형제들의 동료관계가 아니었다. 그들의 선한 뜻은 예수의 증여 개념에서 발생된 사랑에서 기인된 것이었으며, 필사 사람들의 형제신분에 대한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쁨으로 가득하였으며, 예수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에 모든 사람들이 매혹되는 그러한 새롭고도 독특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왕국 복음에 있는 살아있고 예증이 되는 해설을 바로 그 복음대신에 사용하는 큰 오류를 범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인류에게 알려진 것 중 가장 훌륭한 종교를 나타내었다.Christ was about to become the creed of the rapidly forming church. Jesus lives; he died for men; he gave the spirit; he is coming again. Jesus filled all their thoughts and determined all their new concept of God and everything else. They were too much enthused over the new doctrine that “God is the Father of the Lord Jesus” to be concerned with the old message that “God is the loving Father of all men,” even of every single individual. True, a marvelous manifestation of brotherly love and unexampled good will did spring up in these early communities of believers. But it was a fellowship of believers in Jesus, not a fellowship of brothers in the family kingdom of the Father in heaven. Their good will arose from the love born of the concept of Jesus’ bestowal and not from the recognition of the brotherhood of mortal man. Nevertheless, they were filled with joy, and they lived such new and unique lives that all men were attracted to their teachings about Jesus. They made the great mistake of using the living and illustrative commentary on the gospel of the kingdom for that gospel, but even that represented the greatest religion mankind had ever known.
틀림없이, 새로운 친교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성찬례와 기도에서 사도들의 가르침과 친교를 변함없이 계속하였다.” 그들은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호칭하였다; 그들은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하였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보살폈다. 이것은 삶에서와 같이 경배의 친교이었다. 그들은 법에 의한 공동사회가 아니라, 자신들의 재물을 동료 신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열망에 의한 공동체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아버지의 왕국을 세우는 것을 완성하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고 자신 있게 기대하였다. 세상에서의 소유물들을 이렇게 자발적으로 서로 나눈 것은 예수의 가르침의 직접적인 특성이 아니었다; 그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서 자신의 일을 완결하고 그리고 그 왕국을 더할 나위 없이 이루실 것에 대하여 이 남자와 여자들은 너무도 진지하고 자신 있게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제간의 경솔한 사랑에서의 선의적인 실험의 최종 결과는 비참하였고 슬픔을-낳게 하였다. 수천 명의 착실한 신자들은 그들의 부동산을 팔았고 그들의 자본이 되는 모든 재물들과 기타 생산적인 자산 일체를 처분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도교인 들의 자산은 줄어들었고, “동등한 분배”는 끝이 나게 되었지만─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서, 안디옥에 있는 신자들이, 굶주리는 예루살렘의 동료 신자들을 돕기 위하여 모금을 하게 되었다.Unmistakably, a new fellowship was arising in the world. “The multitude who believed continued steadfastly in the apostles’ teaching and fellowship, in the breaking of bread, and in prayers.” They called each other brother and sister; they greeted one another with a holy kiss; they ministered to the poor. It was a fellowship of living as well as of worship. They were not communal by decree but by the desire to share their goods with their fellow believers. They confidently expected that Jesus would return to complete the establishment of the Father’s kingdom during their generation. This spontaneous sharing of earthly possessions was not a direct feature of Jesus’ teaching; it came about because these men and women so sincerely and so confidently believed that he was to return any day to finish his work and to consummate the kingdom. But the final results of this well-meant experiment in thoughtless brotherly love were disastrous and sorrow-breeding. Thousands of earnest believers sold their property and disposed of all their capital goods and other productive assets. With the passing of time, the dwindling resources of Christian “equal-sharing” came to an end ─ but the world did not. Very soon the believers at Antioch were taking up a collection to keep their fellow believers at Jerusalem from starving.
이 무렵, 그들은 주님의 만찬을, 그것이 창설된 방법에 따라서 거행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 모여 훌륭한 교제 속에서 음식을 서로 나누는 것이었고 식사 후에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이었다.In these days they celebrated the Lord’s Supper after the manner of its establishment; that is, they assembled for a social meal of good fellowship and partook of the sacrament at the end of the meal.
그들은 처음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이것은 그들이 “아버지아들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기 시작한지 거의 20년 전이었다. 신자들의 교제에 참여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세례였다. 그들에게는 아직 아무런 조직도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예수의 형제신분이었다.At first they baptized in the name of Jesus; it was almost twenty years before they began to baptize in “the name of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Baptism was all that was required for admission into the fellowship of believers. They had no organization as yet; it was simply the Jesus brotherhood.
예수의 교파는 신속하게 확장되었으며, 사두개인들이 다시 그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인의 법의 계율과 가르침들의 어떤 것도 충돌하는 면이 없음을 알았기에 이러한 상황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예수 교파의 영도자들을 투옥시키기 시작하였고, 지도적인 랍비들 중 하나인 가말리엘의 다음과 같은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설득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였다: “이들의 조언과 활동이 사람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라면 결국 없어지게 될 것이니 이 사람들에게 상관하지 말고 내버려두도록 하라;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면, 너희가 그들을 없애지 못할 것이며, 하느님을 배척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들은 가말리엘의 조언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평화와 안정이 계속되었으며, 그 동안 예수에 관한 새 복음이 신속하게 퍼졌다.This Jesus sect was growing rapidly, and once more the Sadducees took notice of them. The Pharisees were little bothered about the situation, seeing that none of the teachings in any way interfered with the observance of the Jewish laws. But the Sadducees began to put the leaders of the Jesus sect in jail until they were prevailed upon to accept the counsel of one of the leading rabbis, Gamaliel, who advised them: “Refrain from these men and let them alone, for if this counsel or this work is of men, it will be overthrown; but if it is of God, you will not be able to overthrow them, lest haply you be found even to be fighting against God.” They decided to follow Gamaliel’s counsel, and there ensued a time of peace and quiet in Jerusalem, during which the new gospel about Jesus spread rapidly.
그리하여 많은 숫자의 그리스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올 때까지 예루살렘에서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로단의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그리스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그들이 초기에 개종시킨 사람들 중에는 스테반바나바도 있었다. 유능한 이 그리스인들은 유대인의 관점과 많이 달랐으며, 유대식의 경배와 기타 제의적 실천 관행들을 잘 따르지 않았다. 이 그리스인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예수의 형제신분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사두개인들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다. 스테반과 그의 그리스인 연관-동료들은 더욱 더 예수가 가르쳤던 대로 전파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그들은 곧 유대인 통치자들과 충돌하게 되었다. 스테반은 대중 설교 가운데 하나에서. 그의 강연이 도중에 반감을 일으키는 부분에 이르자. 그들은 모든 공식적인 재판절차를 무시하고 현장에서 그를 돌팔매질로 죽게 하였다.And so all went well in Jerusalem until the time of the coming of the Greeks in large numbers from Alexandria. Two of the pupils of Rodan arrived in Jerusalem and made many converts from among the Hellenists. Among their early converts were Stephen and Barnabas. These able Greeks did not so much have the Jewish viewpoint, and they did not so well conform to the Jewish mode of worship and other ceremonial practices. And it was the doings of these Greek believers that terminated the peaceful relations between the Jesus brotherhood and the Pharisees and Sadducees. Stephen and his Greek associate began to preach more as Jesus taught, and this brought them into immediate conflict with the Jewish rulers. In one of Stephen’s public sermons, when he reached the objectionable part of the discourse, they dispensed with all formalities of trial and proceeded to stone him to death on the spot.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인 거류민단의 영도자인 스테반은 새로운 신앙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으며.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공식적인 조직에 특별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위기로 말미암아, 신자들이 더 이상 유대 신앙 속에서 한 교파로 머물러 있지 못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비(非)신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켜야만 하겠다는 데에 모두 의견이 일치되었다; 스테반이 죽은 후 한 달이 못되어서,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의 영도자관계 아래, 그리고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명목상의 우두머리로 교회가 조직되었다.Stephen, the leader of the Greek colony of Jesus’ believers in Jerusalem, thus became the first martyr to the new faith and the specific cause for the formal organization of the early Christian church. This new crisis was met by the recognition that believers could not longer go on as a sect within the Jewish faith. They all agreed that they must separate themselves from unbelievers; and within one month from the death of Stephen the church at Jerusalem had been organized under the leadership of Peter, and James the brother of Jesus had been installed as its titular head.
그러고 나서 유대인들에 의해 새로운 잔인한 박해가 시작되었으므로, 예수에 관한 새로운 종교를 가르치는 의욕적인 선생들은 예수를 전파하면서 그 제국의 변방(邊方)들을 향하여 퍼져 나갔으며, 그 종교는 후에 안디옥에서 그리스도교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메시지를 전함에 있어서, 바울이 등장하기 전에는 그리스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들 최초의 선교사들은, 그 뒤를 이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전에 알렉산더가 행진하였던 길을 따라서, 가자티레로 통하는 길을 따라 안디옥으로 갔으며, 이어서 소아시아를 지나 마케도니아로 갔고, 그 후에는 로마를 지나 그 제국의 변두리 지방들 까지 퍼져 나갔다.And then broke out the new and relentless persecutions by the Jews, so that the active teachers of the new religion about Jesus, which subsequently at Antioch was called Christianity, went forth to the ends of the empire proclaiming Jesus. In carrying this message, before the time of Paul the leadership was in Greek hands; and these first missionaries, as also the later ones, followed the path of Alexander’s march of former days, going by way of Gaza and Tyre to Antioch and then over Asia Minor to Macedonia, then on to Rome and to the uttermost parts of the empire.
이어지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