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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1 편
바닷가에 머물면서 가르침
151:0.1
(1688-2)
3월 10일이 되기까지, 설교하고 가르치는 모든 집단이 벳세다에 모였다. 목요일 밤과 금요일에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갔으며, 한편 안식일에는 회당에 참석하여, 다마스커스에서 온 한 나이 많은 유대인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영광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들었다. 예수는 안식일에 대부분 시간을 혼자 언덕에서 지내셨다. 토요일 밤에 주(主)가 한 시간 이상이나 “역경의 교훈과 실망의 영적 가치”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것은 매우 기억에 남을 만한 가르침이었으며, 그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가 가르쳤던 이 교훈을 결코 잊지 않았다.
151:0.2
(1688-2)
예수는 최근에 나사렛에서 받았던 배척으로 인한 슬픔에서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도들은 그의 평상시의 유쾌한 모습에 야릇한 슬픔이 깃들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야고보요한이 많은 시간을 그의 곁에서 보냈으며, 베드로는 새 전도자들의 안녕과 지도에 관련된 책임들을 맡아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이 시작하기 전인 기다림의 기간 동안에 여전도자들은 가버나움과 그 곳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와 동네들에서 각 가정을 방문하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돌보았다.
1. 씨 뿌리는 자의 비유
151:1.1
(1688-3)
이 무렵에 예수는 처음으로 그의 주변에 모여드는 군중들을 가르치는 데에서 비유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가 그 전날에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과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에, 이 일요일 아침에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아침 식사를 하러 나왔다. 그래서 예수는 해변으로 가서 그가 항상 쓸 수 있도록 준비된 안드레베드로의 옛날 고기잡이배에 혼자 앉아서 왕국 확장을 위한 다음 단계의 행동에 대한 명상을 하였다. 그러나 주(主)가 혼자 오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곧 가버나움과 근처의 동네에서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으며, 그날 아침 10시가 되자 거의 1,000명의 사람들이 예수의 배 가까이에 있는 해변에 모여 주목을 받으려고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베드로가 이 때 일어나서 배로 나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主)여, 제가 그들에게 말할까요?” 그러나 예수가 “아니다, 베드로야, 내가 그들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예수가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가르쳤던 그러한 많은 비유들 중에서 첫 번째 것이었다. 이 배에는 높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어서, 예수가 거기에 앉아서 (가르칠 때에는 앉아서 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해변을 따라 모여 있던 군중들에게 말씀하였다. 베드로가 몇 마디를 한 후, 예수가 말씀하였다:
151:1.2
(1688-4)
“어느 한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갔고, 그가 씨를 뿌릴 때 어떤 것들은 길가에 떨어졌으므로 발밑에 밟히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 어떤 씨들은 땅이 거의 없는 돌밭에 떨어졌고 흙이 깊지 않으므로, 곧 싹이 나왔지만 해가 나오자마자 물기를 빨아들일 수 있는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버렸다. 어떤 씨들은 가시넝쿨에 떨어졌고, 가시가 자라자 그것이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또 어떤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지니 자라서 무성하게 되어 결실을 맺었고 어떤 것들은 삼십 배, 어떤 것들은 육십 배, 또 어떤 것들은 백 배가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비유를 말하기를 완결하시면서, 군중에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라고 말씀하였다.
151:1.3
(1689-1)
사도들과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었던 자들은, 예수가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것을 들었을 때, 매우 당황하였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날 밤 세베대의 정원에서 마태예수께 물었다: “주(主)여, 군중들에게 가르치셨던 모호한 말들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진리를 구하는 자들에게 당신은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그러자 예수가 대답하였다:
151:1.4
(1689-2)
“인내를 가지고 내가 항상 너희를 가르쳤다. 하늘의 왕국의 신비를 알도록 너희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식별력 없는 군중이나 우리를 파괴시키려고 꾀하는 그들에게는 이제부터는 왕국의 신비들을 비유로 말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면, 실제로 왕국으로 들어오려는 자는 그 가르침의 의미를 파악하여 구원을 얻게 되겠지만, 반면에 단지 우리를 해치기 위하여 들으러 온 자들은 보기는 하되 진정으로 보지 못하며, 듣기는 하되 진정으로 듣지 못하게 되어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영(靈)의 법칙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한 말을 깨닫지 않느냐? 따라서 지금부터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여, 나의 친구들과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구하는 것을 찾게 되고, 반면에 우리의 적들과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하면서 듣게 될 것이다. 이 사람들 중 많은 숫자가 진리의 길을 따르지 않고 있다. 정말로 선지자가 그러한 식별력 없는 자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이 백성의 가슴이 둔하게 굳었고, 그 귀가 막히고, 그리고 그들이 진리를 분별하고 그들 가슴으로 납득할까 두려워 그들의 눈을 그들이 감았도다.’”
151:1.5
(1689-3)
사도들은 주(主)의 말씀의 의의(意義)를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안드레도마예수와 좀 더 이야기하는 동안,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그 정원의 다른 장소로 갔고 거기에서 그들은 열렬한 그리고 오랫동안의 토론에 참여하였다.
2. 비유의 해석
151:2.1
(1689-4)
베드로와 그를 둘러싼 그룹이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는 우화이고 각각의 장면들에는 어떤 숨은 뜻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가서 설명을 요청하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베드로주(主)에게 가서 말하였다: “우리로서는 이 비유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말씀하기를 왕국의 신비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허락되었다고 하니, 당신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가 이 말을 듣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였다. “나의 아들아, 나는 너로부터 아무 것도 숨길 생각이 없다. 그런데 그 비유에 대한 너의 해석은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151:2.2
(1689-5)
잠시 침묵을 지킨 후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主)여, 우리가 이 비유에 대해 많이 토의를 해 보았는데, 내가 결론을 내린 해석은 이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복음 전도자이고; 씨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길거리에 떨어진 씨는 복음의 가르침을 납득하지 못하는 자들을 대표합니다. 딱딱한 땅에 떨어진 씨를 채어 가는 새들은 사탄이나 혹은 악한 자, 알아듣지 못하는 이 사람들의 가슴에 뿌려져 있는 것을 훔쳐 가는 자들을 대표합니다. 돌밭 위에 떨어지고 그리고 그처럼 즉시 싹이 난 것은 그들의 기쁜 소식을 듣고 그 메시지를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진리가 그들의 깊은 납득 안에, 실제적인 뿌리를 내리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헌신이 고난(苦難)이나 박해(迫害) 앞에서는 쉽게 없어지는 허울뿐이고 생각을 하지 않는 자들을 대표합니다. 곤란이 찾아오면 이러한 신도(信徒)들은 비틀거리고; 유혹(誘惑)을 받으면 깊이 빠져듭니다. 가시넝쿨 가운데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기쁘게 들으나, 세상 관심사와 부유함이라는 속임의 힘이 진리의 말씀을 억눌러 막도록 내버려두어 그로인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함을 대표합니다. 이제 좋은 땅에 떨어지고 싹이 돋아나 약 30배, 약 60배, 약 100배의 결실을 맺는 씨는, 그들이 진리를 듣고 ─그들의 서로 다른 지적 자질들로 인하여─다양한 정도의 이해로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대표하며, 그에 따라서 이들 다양한 정도의 종교적(宗敎的) 체험(經驗)을 현시합니다.”
151:2.3
(1690-1)
비유에 대한 베드로의 해석을 듣고 나신 후, 예수가 다른 사도들에게 그들 또한 다른 제안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에 관해 물었다. 이러한 요청을 받고 단지 나다니엘만이 반응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主)여, 저는 시몬 베드로의 비유해석에서 여러 훌륭한 것들을 깨닫습니다만, 그러나 그와 충분하게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이 비유에 대한 제 관념은 이렇습니다: 씨는 왕국 복음을 나타내며, 반면에 씨를 뿌리는 자는 왕국의 메신저들을 나타냅니다. 딱딱한 땅에 있는 길거리에 떨어진 씨는 복음에 무관심하고 그리고 그들의 가슴이 굳어버린 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조금 밖에 듣지 못한 자들을 나타냅니다. 길거리에 떨어진 씨를 채어 간 하늘의 새들은 사람의 생활 습관, 악의 유혹, 육신의 욕망을 나타냅니다. 돌에 떨어진 씨는 새로운 가르침을 빨리 받아들였으나 이 진리대로 살아가면서 어려움이나 실체에 부딪치면 마찬가지로 쉽게 포기하는 감정적(感情的)인 혼을 말한다; 그들은 영적(靈的) 지각력(知覺力)이 부족합니다. 가시넝쿨에 떨어진 씨는 복음의 진리로 이끌린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그 가르침대로 따르려고 마음먹지만, 그들은 삶의 자부심, 질투, 시기심, 그리고 인간 실존에 대한 걱정으로 인하여 방해받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져서 약 30배, 약 60배, 약 100배의 결실을 맺기까지 자라나는 씨는, 진리를 이해하고 그리고 영(靈) 빛남의 각가지 자질을 지니고 있는 남녀들이 그 영적 가르침에 응답하는 그 자연적이고 다양한 힘의 정도를 나타냅니다.
151:2.4
(1690-2)
나다니엘이 말하기를 마쳤을 때, 사도들 그리고 그들의 연관-동료들은 심각한 토의에 들어가서 열렬한 토론을 벌렸는데, 얼마간의 사람들은 베드로의 해석의 정확성을 옹호한 반면, 거의 같은 수의 사람은 비유에 대한 나다니엘의 해석을 두둔하고자 하였다. 그러는 동안 베드로나다니엘은 집으로 가서, 거기에서 서로 상대를 확신시키고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려는 열성적이며 확신을 가진 노력을 하였다.
151:2.5
(1690-3)
주(主)는 이러한 혼란이 극도에 다다를 때까지 그들을 내버려두었다. 그러고 나서 손뼉을 쳐서 그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다시 한 번 그의 주위에 모였을 때, 그가 말하였다. “내가 이 비유에 관하여 말하기 전에, 너희 중의 무슨 얘기든지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한 순간의 침묵 후에 도마가 말하였다: “네, (主)여, 제가 몇 마디하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언젠가 저희에게 바로 이 같은 일을 조심하라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당신께서 가르치시기를, 우리가 설교에서 도해들을 사용할 때, 우리가 설화(說話)가 아닌 실제 이야기를 인용해야만 한다는 것과, 그리고 우리가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바라는 하나의 핵심적이며 가장 중요한 진리의 도해에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를 사용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야기의 말 속에 포함된 모든 사소한 세부에 대하여 영적 적용을 해보려고 시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베드로나다니엘이 둘 모두 비유를 해석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그릇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들의 힘을 높게 평가하지만, 마찬가지로 저는, 자연스런 비유를 모든 그 모습 안에서 영적 유추(類推)가 수확되도록 만들려는 그러한 모든 시도는, 단지 그러한 비유의 진정한 목적에 혼란과 심각한 잘못된 개념으로 귀착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옳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전적으로 증명됩니다. 우리 모두가 한 시간 전에는 한 마음이었는데, 지금 우리는 이 비유에 관한 상이한 의견을 주장하고 그리고 그런 의견을 그토록 진지하게 주장함으로서, 당신께서 이 비유를 군중들에게 말하고는 뒤이어서 우리에게 그것에 대한 평을 하라고 하였을 때, 제 생각으로는, 당신께서 염두에 두었을 위대한 진리를 충분하게 파악할 수 있는 우리의 힘마저도 방해할 정도까지 두 분리된 무리로 나뉘어 있다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151:2.6
(1691-1)
도마가 한 말에 모두 조용해졌다. 그는 그들에게 이전의 경우에서 예수가 그들에게 가르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예수가 다시 말을 시작하기 전에, 안드레가 일어서서 말하였다: “저도 도마의 말에 동감합니다. 그런데 도마는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고 싶군요.” 예수도마에게 말을 하라고 끄덕이자, 그가 말하였다: “나의 형제여, 나는 이 토의를 더 길게 끌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원한다니, 말하겠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한 가지의 위대한 진리를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왕국 복음을 가르치는 데에서, 우리가 얼마나 신실하게 효과적으로 우리의 신성한 임무를 실행하느냐에 상관없이, 우리는 다양한 성공의 정도를 거두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결실에서의 차이는 직접적으로, 우리 사명활동의 환경에 본래 있는 조건들과, 우리가 거의 또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조건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51:2.7
(1691-2)
도마가 말을 끝마치자, 그의 동료 설교자들의 대부분이 그에게 동의하였고, 베드로나다니엘까지도 그와 이야기하려고 다가가고 있을 때, 예수가 일어나서 말씀하였다: “도마야, 잘하였다. 너는 비유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베드로나다니엘 모두, 그들이 내 비유를 뛰어넘어 하나의 우화를 만들어서 약속에 있는 위험을 그렇게 충분히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너희 모두는 똑 같이 잘하였다. 너희 자신의 가슴속에서 너희는 가끔 이론적 상상력의 그러한 비약으로 유익하게 이끌릴 수도 있다. 그러나 너희 대중 가르침의 한 부분으로 너희가 그러한 결론을 제시하려고 구할 때 너희는 실책을 저지르게 된다.”
151:2.8
(1691-3)
그렇게 해서 이제 긴장감이 와해되었다. 베드로나다니엘은 서로에게 그들의 해석에 대해 축하하였고, 알패오의 쌍둥이를 제외하고, 각각의 사도들은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까지 씨 뿌리는 자의 해석을 과감히 밝혔다. 가룟 유다까지도 그럴듯한 해석을 내렸다. 12사도들은 자신들끼리 자주 주(主)의 비유를 우화로 가정하고 그것에서 무엇인가 끄집어내려는 노력은 해보았지만, 다시는 절대로 그들이 그러한 유추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도들과 다른 연관-동료들에게 매우 큰 도움을 주었던 수업이었으며, 특별히 이때로부터 예수가 점점 더 그의 대중 가르침과 관계하여 비유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랬다.
3. 비유에 대해 좀 더 말하다
151:3.1
(1691-4)
사도들은 비유에-마음이 너무나 사로잡혀 다음 날 저녁 모두를 비유에 대해 좀 더 깊은 토의에 몰입하였다.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로 그날 저녁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항상 가르침을 다르게 함으로서 너희 앞에 나온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에게 하는 진리의 발표가 아주 알맞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다양한 지성과 성격들의 군중들 앞에서 네가 섰을 때는, 너희가 듣는 사람들의 각 수준에 맞추기 위하여 각각의 다른 말들로 가르칠 수 없지만, 가르침을 전달해 주기 위한 하나의 이야기는 해 줄 수 있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듣는 각각의 집단, 각 개별존재까지도 자신의 지능과 영적 자질에 따라 너의 비유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너희의 빛이 비추이게 하되, 지혜와 사려 깊은 분별력을 가지고 하라. 아무도 등불에 불을 붙일 때, 그것을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아래에 두지 않고, 그의 등불을 모든 사람이 쳐다볼 수 있는 등경 위에 둔다. 내가 너희에게 말 하건대 명백하게 현시되지 않을 그 어떤 것도 하늘의 왕국에 감추어져 있지 않고, 또한 궁극적으로 알려지지 않을 그 어떤 비밀도 남아있지 않다. 결국에는, 이러한 모든 일들은 빛에 드러난다. 군중들과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진리를 듣는지 만을 생각하지는 마라; 또한 너희가 어떻게 듣는지 너희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라. 내가 너희에게 여러 번 말했던 이것을 기억하라: 있는 자는 더욱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51:3.2
(1692-1)
비유에 관한 계속된 토의와 그들의 해석에 대한 좀 더 나아간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현대용어로 요약되고 표현될 수 있다:
151:3.3
(1692-2)
1. 예수는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시면서 꾸민 이야기나 우화를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하였다. 그는 비유, 특히 자연에 대한 비유의 자유로운 사용을 권하였다. 그는 진리를 가르치는 하나의 수단으로 자연과 영적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활용하는 것이 가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자연적인 것을 “영적 실체의 비 실질적이고 덧없는 그림자”로 자주 암시하였다.
151:3.4
(1692-3)
2. 예수히브리 성서에서 서너 개의 비유를 들어서 이러한 가르침의 방법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셨다. 그러나 이때로부터 그가 비유를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거의 하나의 새로운 가르침의 방법의 기원이 되었다.
151:3.5
(1692-4)
3. 비유의 가치를 사도들에게 가르치시면서 예수는 다음의 점들에 주의를 주었다:
151:3.6
(1692-5)
비유는 광대하게 다른 차원의 마음과 영들에게 동시적인 호소력을 제공한다. 비유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차별에 도전하고, 비판적인 생각을 선동한다; 그것은 반목을 유발시키지 않으면서 동정심을 도모한다.
151:3.7
(1692-6)
비유는 알려진 것을 통하여 알지 못하는 것을 식별하게 해준다. 비유는 영적이며 초물질적인 것을 소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물질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활용한다.
151:3.8
(1692-7)
비유는 편견 없는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준다. 비유는 많은 선입관을 피하게 하고, 새로운 진리를 우아하게 마음속에 넣어주고, 개인적 분개심에서 오는 자아-방어를 최소한으로 유발하면서 이 모든 것을 이행한다.
151:3.9
(1692-8)
비유적인 유사성에 포함된 진리를 거절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정직한 판단과 공정한 결정을 직접적으로 경멸하는 의식적 지능행동을 필요로 한다. 비유는 듣는 감각을 통하여 생각을 강화시키도록 이끌어준다.
151:3.10
(1692-9)
가르침에서 비유형식의 사용은 선생에게 새롭고 놀라운 진리까지도 제시할 수 있게 해주며, 동시에 그는 주로 모든 논쟁 그리고 전통이나 확립된 권한과의 외면적 마찰을 피하게 해준다.
151:3.11
(1693-1)
비유는 또한 같은 익숙한 광경을 나중에 마주치게 될 때, 그것에서 배웠던 진리에 대한 기억을 자극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151:3.12
(1693-2)
이런 식으로 예수는, 그의 대중 가르침에서 비유 사용이 점점 늘어가는 그의 실천 관행에 내제되어있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자신의 추종자들이 익히 알도록 애썼다.
151:3.13
(1693-3)
저녁 수업시간이 끝날 무렵에, 예수가 처음으로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에 관해 언급하였다. 그는 그 비유가 두 가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씀하였다: 첫째, 그것은 그 때까지의 그 자신의 사명활동을 다시 돌아보고, 다가올 이 세상에서의 나머지 일생 동안 그의 앞에 놓여 질 것을 예측해 본 것이었다. 둘째, 그것은 또한 사도들과 왕국의 다른 메신저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대대로 그들의 사명활동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암시였다.
151:3.14
(1693-4)
예수는 또한 그의 모든 업적이 악마들과 악마들의 영주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었다고 말하는 예루살렘 종교 영도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대한 최상의 반박으로써 이러한 비유에 의지하였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모든 자연현상을 영적 존재나 초자연적 기세의 직접적인 활동의 산물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에 호소하는 것은 그러한 가르침을 반박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이 한편으로는 그의 적들에게 그를 괴롭히기 위한 트집이나 비난할 거리를 찾을 기회를 잘 제공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더 좋은 길을 알기를 열망하는 저들에게 그가 생명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그는 가르침에 대한 이러한 방법을 결심하였다.
151:3.15
(1693-5)
그 날 밤 사람들을 해산시키기 전에, 예수가 말씀하였다: “이제 내가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의 마지막 부분을 말해 주겠다. 나는 너희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시험하고 싶다: 하늘의 왕국은 땅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그가 밤에는 자고 낮에는 일에 열중하는 사이에 그 씨가 싹트고 자랐고, 그리고 그가 비록 그것이 어찌 그렇게 된 것인지 몰랐으나, 그 나무는 열매를 맺었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서 충실한 곡식이 되었다. 그리고 곡식이 익게 되었으니 그가 낫을 휘둘렀고 그리고는 추수가 완결되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151:3.16
(1693-6)
사도들은 이 말을 마음속에서 여러 차례 생각해 보았지만, 그러나 주(主)는 결코 씨를 뿌리는 자에 대한 비유의 이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4. 해변에서 비유를 좀 더 말씀 하다
151:4.1
(1693-7)
다음날 예수가 다시 배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늘의 왕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은데, 그가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잡초 씨를 뿌리고는 황급히 사라졌다. 그리하여 어린 싹이 돋아나고 나중에 결실할 때에 이르게 되자, 거기에 잡초도 또한 나타났다. 그러자 이 집주인의 하인들이 와서 그에게 말했다; ‘주여, 당신은 당신의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습니까? 그런데 이들 잡초가 어디서 생겼습니까?’ 그러자 그가 자기 하인들에게 대답하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이에 하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 말하되, ‘우리가 가서 이 잡초들을 뽑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하되, ‘아니다, 너희가 그것들을 모아들이는 동안, 너희가 밀까지 뽑을 것이 걱정이 되는구나. 차라리 추수 때까지 둘 모두 함께 자라게 놓아두라, 그 때 내가 거두는 자들에게 말하리니, 잡초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고 할 것이다.”
151:4.2
(1693-8)
사람들이 몇 가지의 질문을 한 후에, 예수가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였다: “하늘의 왕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 지금은 겨자 씨 하나가 씨들 중에 작지만, 그것이 다 자란 후에는 그것이 모든 목초들 중에서 가장 크게 되고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서 쉴 수 있게 된다.”
151:4.3
(1694-1)
“하늘의 왕국은 또한 마치 여자가 세 그릇의 가루를 가져와 그 안에 감춰진 누룩과 같으니, 그러니 이렇게 하여 가루의 모두가 부풀어지는 것이다.”
151:4.4
(1694-2)
“하늘의 왕국은 또한 마치 어떤 사람이 발견한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다. 그는 기뻐하며 그 밭을 사려는 돈을 가져보려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러 나갔다.”
151:4.5
(1694-3)
“하늘의 왕국은 또한 마치 값진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매우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게 되자, 그는 그 엄청난 진주를 사 보려고 그가 소유한 그 모든 것을 나가서 팔았다.”
151:4.6
(1694-4)
“다시 말해서, 하늘의 왕국은 마치 바다에 던져져서 온갖 고기를 끌어 모아 올리는 후릿그물과 같다. 이제 그물이 가득 차게 되었으니, 어부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냈고, 그들은 거기에 앉아서 고기들을 분류하였는데,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어버렸다.”
151:4.7
(1694-5)
예수가 다른 많은 비유를 군중들에게 말씀하였다. 사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이 방법에 의하지 않고는 군중들을 거의 가르치시지 않았다. 공개적인 청중들에게 비유로 말씀한 후에, 그는 밤 시간 동안에 그의 가르침을 사도들과 전도자들에게 좀 더 충만하고도 명료하게 설명해 주었다.
5. 게라사를 방문하다
151:5.1
(1694-6)
그 주내내 군중들이 계속하여 늘었다. 안식일에 예수가 서둘러 언덕으로 떠났지만, 일요일 아침이 오자, 그 무리들은 다시 돌아왔다. 예수베드로가 설교한 다음, 이른 오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였는데, 그가 말을 완결하고 나서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내가 군중들 때문에 지쳤으니, 저쪽 편으로 건너가서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하도록 하자.”
151:5.2
(1694-7)
호수를 건너가는 도중에 그들은 격렬하고 갑작스런 폭풍우를 만났는데, 그것은 특히 일 년 이 계절의 갈릴리 바다의 특징이었다. 이 수역(水域)은 해면보다 거의 700피트가 낮고 높은 둑으로 둘러져 있었고, 특별히 서쪽이 더 그러하였다. 거기에는 호수로부터 언덕까지로 이어지는 가파른 협곡이 있었고, 낮에는 가열된 공기가 호수위에 둘러싸인 곳 안으로 올라가고 해가 진 후 에는 협곡의 찬 공기가 호수로 급속히 내려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강풍이 어떤 때는 빠르게 왔다가 한순간에 갑자기 없어지곤 하였다.
151:5.3
(1694-8)
이 일요일 밤에 예수를 태우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는 배가 맞이한 것은 바로 그러한 저녁 강풍이었다. 젊은 전도자들 중 일부를 태운 3척의 배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폭풍우는 매우 강렬하였는데, 어쨌든 그것은 그 호수의 이 지역에만 한정되었고, 서쪽 해변 가에는 폭풍의 어떤 흔적도 없었다. 그 바람은 너무 세서 물결이 배 위를 덮치기 시작하였다. 높은 바람은 사도들이 채 돛을 감아 말기도 전에, 돛을 찢어 버렸고, 그들은 이제 약 1마일 반이 떨어져 있는 해안가를 향해 힘들게 저어가면서, 오직 노에만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151:5.4
(1694-9)
그러는 동안 예수는 작은 지붕 아래의 고물에서 주무시고 있었다. 그들이 벳세다를 떠날 당시 주(主)가 매우 피곤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를 건너편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였었다. 예전에 어부들이었던 이들은 건장한 체험 있는 사공들이었으나, 그 폭풍우는 이제까지 겪었던 것 중에서 가장 심하였다. 바람과 물결이 마치 장난감이나 된다는 듯이 그들의 배를 다루어 높이 치솟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방해받지 않고 깊은 잠을 주무시고 있었다. 베드로는 고물 가까이 오른 쪽에서 노를 젓고 있었다. 배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그는 노를 내려놓고 예수께로 뛰어가서 그를 깨우기 위하여 심하게 흔들었다. 그가 일어나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主)여, 우리가 심한 풍랑 속에 있는 줄을 모르십니까? 주(主)께서 우리를 구해주시지 않으시면, 우리 모두 죽을 것입니다.”
151:5.5
(1695-1)
예수가 빗속으로 나왔을 때, 그는 먼저 베드로를 바라보시고, 그리고는 어둠 속을 뚫어 살피면서 노 젓는 사람들을 바라보셨다. 자신의 격한 불안에서, 그의 노로 돌아가지 않고 있던 시몬 베드로를 다시 돌아보신 후, 그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너희 모두가 그렇게 두려움에 차 있느냐? 너희 신앙은 어디 있느냐? 잠잠하라, 진정하라.” 예수가 이렇게 책망의 말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막 끝내고,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그의 불안한 혼을 진정시키면서 잠잠함을 찾으라는 지도를 거의 막 끝내고 있을 그 때가, 휘몰아치던 공기가 균형을 찾아 갔고, 아주 고요하게 가라앉은 때였다. 성난 물결이 거의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한편 짧은 비를 내렸던 검은 구름이 사라졌으며, 하늘 위에는 별들이 빛났다. 우리의 판단으로는, 이 모든 것은 순전히 우연하게 일어난 것이었는데, 사도들, 특히 시몬 베드로는 이 에피소드를 하나의 자연의 기적으로 여기기를 그치지 않았다. 모든 자연은 영적 세력이나 초자연적 존재의 통제 아래에 직접적으로 놓여있는 현상이라고 그들이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러한 자연의 기적을 매우 쉽게 믿었다.
151:5.6
(1695-2)
예수는 분명하게 12사도들에게 그가 그들의 불안한 영들에게 말한 것이고 두려움에 가득 찬 그들의 마음에게 주의를 기울인 것이지, 자연의 요소들에게 복종을 명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였지만, 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主)의 추종자들은 항상 그러한 우연한 발생사건들에 자신들의 해석을 붙이기를 고집하였다. 이 날 이후로 그들은 주(主)가 자연 요소들에 대한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베드로는 어떻게 “바람과 물결까지도 그에게 순종한다.”를 반복하여 말하기에 결코 지치지 않았다.
151:5.7
(1695-3)
예수와 그의 연관-동료들이 해변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그날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밤이었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그들 모두가 해변 가로 올라가지 않고 배에서 지냈다. 약 40명이 되는 그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예수가 말씀하였다: “저 쪽 언덕으로 가서 며칠 지내면서 아버지의 왕국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6. 게라사의 미치광이
151:6.1
(1695-4)
호수의 동쪽해변 인근의 대부분은 뒤쪽 고원지대와 완만한 경사로 이어졌지만, 이 특정한 지점은 가파른 언덕이었고, 어떤 곳의 해변은 호수 안으로 깎아질러 내려갔다. 인근의 언덕을 가리키면서 예수가 말씀하였다: “이 언덕으로 가서 아침을 먹고, 어디 아늑한 곳에서 쉬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151:6.2
(1695-5)
이 언덕바지 전체는 바위가 오랫동안 패어져 만들어진 동굴들로 덮여 있었다. 이러한 패인 곳들의 대부분은 옛날의 무덤들이었다. 언덕배기의 반 정도 올라 간 곳의 작고 비교적 평평한 지점에 작은 마을 게라사의 공동묘지가 있었다. 예수와 그의 연관-동료들이 이 매장지 가까이를 지나가자, 이 언덕배기 동굴에서 살고 있던 한 미치광이가 그들 앞으로 달려왔다. 이 미친 사람은 이 지역에서 잘 알려져 있었는데, 그는 한 때 고랑과 쇠사슬에 매여 석굴에 갇혀있었다. 오래 전에 그는 고랑을 부셔서 이제는 제 뜻대로 무덤들과 버려진 돌무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151:6.3
(1696-1)
아모스라는 이름의 이 사람은 주기적인 정신이상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발작 중에 그가 옷을 제대로 입고 그의 동료들 속에서 제법 잘 처신하는 때도 상당히 있었다. 이러한 제 정신이 든 기간에 그가 한번 벳세다로 갔는데, 거기에서 예수와 사도들의 설교를 들었으며, 그 때 왕국 복음을 반신반의하는 신자가 되었었다. 그러나 곧 그의 병이 사나운 위상으로 발작했고, 그는 무덤으로 재빨리 피하여, 그곳에서 그는 신음하면서 크게 울부짖었고, 그리하여 그 자신은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는 사람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는 처지가 되었다.
151:6.4
(1696-2)
아모스예수를 알아보고 그 앞에 엎드려 외쳤다: “예수여, 저는 당신을 압니다. 참으로 제가 많은 악마에 사로잡혀 있으니, 저에게 고통을 주지 아니하실 것을 제가 간청 드립니다.” 이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의 주기적인 정신적 고통이, 그 당시에는, 악령이나 더러운 영들이 그에게로 들어와서 그의 마음과 몸을 지배한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의 문제들은 주로 감정의 문제였다. ─그의 뇌는 크게 병들어 있지 않았다.
151:6.5
(1696-3)
예수는 자기 발아래에 짐승처럼 구부리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에게로 몸을 숙여 손으로 잡아 일으키시며 말씀하였다: “아모스야, 너는 귀신에게 사로잡히지 않았다. 너는 이미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내가 너에게 이러한 발작에서 벗어날 것을 명령한다.” 아모스예수의 이런 말을 듣자 그의 지성에서 그 어떤 변환이 발생했으며 그로서 그는 즉시 그의 제정신인 마음을 되찾고 자신의 감정을 정상적으로 통제하게 되었다. 이 무렵에 상당한 군중들이 가까운 동네에서 모여들었고, 고원지대로부터 온 돼지 치는 자들로 증강된, 이 사람들은 그 미치광이가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과 앉아서, 그는 제정신인 마음에서, 그리고 자유롭게 그들과 대화하는 광경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151:6.6
(1696-4)
돼지 치는 자들이 미치광이를 고친 소식을 퍼뜨리기 위하여 마을로 급히 들어갔을 때, 작고 그리고 돌보는 이가 없는 약 30마리의 돼지 떼를 개들이 습격해서 대부분의 돼지들을 절벽 너머 바다로 내몰았다. 이 우연한 발생사건이, 예수의 현존과 미치광이의 기적적인 고침이라고 여겨지는 것으로 관련된, 예수가 귀신 군대들을 그로부터 쫓아내어 아모스를 고친 후, 그 귀신들을 돼지 떼로 들여보내 이들을 쏜살같이 바다 속으로 빠지게 하여 처치해버렸다는 전설이 만들어지는 기원이 되었다. 그날이 지나기 전에 이 에피소드는 돼지 치는 자들에 의해 널리 공표 되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이것을 믿었다. 아모스가 이 이야기를 가장 확실하게 믿었다. 그는 자신의 병든 마음이 진정된 바로 후에, 돼지 떼가 언덕 가장 자리 너머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는 항상 그를 그렇게 오랫동안 괴롭히고 고통을 준 바로 그 악령들을 그 돼지 떼들이 가지고 갔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질환이 영구하게 고쳐지는 것과 크게 상관이 있었다. 예수의 사도들(도마를 제쳐놓고)도 돼지 에피소드가 직접적으로 아모스의 치유와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151:6.7
(1696-5)
예수는 자기가 원했던 휴식을 취하지 못하였다. 그 날 대부분의 시간을 예수아모스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과 귀신이 미치광이로부터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에 끌려 나온 사람들에 의해 시달렸다. 그리고 예수와 그의 친구들은 단지 하루 밤의 휴식을 취한 후인 화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그들로부터 떠나가 달라는 부탁을 하러 온 돼지 기르는 이방인들의 대표자 때문에 잠이 깨었다. 그 대표자가 베드로안드레에게 말하였다: “갈릴리의 어부들이여, 우리로부터 떠나 주시오 그리고 당신들의 선지자를 함께 모시고 가 주시오. 우리는 그가 거룩한 사람임을 알지만, 우리 고장의 하느님들은 그를 알지 못하며, 우리는 많은 돼지들을 잃게 될 지경에 있습니다. 당신들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닥쳐왔으니, 우리는 당신들이 여기서 떠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가 그들의 말을 듣자, 안드레에게 “우리의 곳으로 돌아가자.”라고 말씀하였다.
151:6.8
(1697-1)
그들이 막 떠나려고 했을 때, 아모스가 그들과 함께 가도록 예수께 간청했으나, 주(主)가 허락하지 않았다. 예수아모스에게 말씀하였다: “너는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네가 속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서 하느님이 너를 위하여 해주신 위대한 일들을 그들에게 보여줘라.” 아모스예수가 그의 병든 혼으로부터 귀신군대들을 내쫓았다는 것과 이 악령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서 바로 몰살되었다는 것을 광고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는, 데카폴리스의 모든 도시를 지나갈 때까지, 예수가 그에게 행한 위대한 일들에 대해 선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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