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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0 편
세 번째 전도 여행
150:0.1
(1678-2)
기원후 29년 1월 16일 일요일 저녁에, 아브너요한의 사도들과 함께 벳세다에 도착하였고, 다음날에 안드레예수의 사도들과 함께 합동 회의에 들어갔다. 아브너와 그의 연관-동료들은 그들의 본부를 헤브론에 두었고 이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벳세다로 올라오는 것이 습관이었다.
150:0.2
(1678-2)
이 합동 회의에서 고려되었던 많은 문제들 중 하나는, 치유를 위한 기도와 함께 연결되어 병자에게 행하는 특정 형태의 기름붓기 실천 관행에 관한 것이었다. 다시 한번 예수는 그들의 토론에 참여하거나, 그들이 내린 결론에 관하여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요한의 사도들은 병자나 괴로워하는 자들을 보살피는 데에서 항상 기름붓기를 사용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양쪽 집단 모두를 위한 통일-형식으로 확립하려고 애썼지만, 그러나 예수의 사도들은 그러한 규정에 자신들을 묶는 것을 거절하였다.
150:0.3
(1678-3)
1월 18일 화요일에, 스물네 명의 사도들이 벳세다에 있는 세베대의 집에서 갈릴리 지역의 세 번째 전도 여행에 보내지기를 준비하고 있던, 시험을 통과한 약 75명의 전도자들과 합류하였다. 이 세 번째 사명은 7주라는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
150:0.4
(1678-4)
전도자들은 다섯 명씩 집단을 이루어 보내졌으며, 한편 예수와 열두 사도들은 그 시간의 대부분을 함께 여행하였는데, 사도들은 상황이 요구되는 대로 두 명씩 짝지어 나가서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거의 3주 동안 아브너와 그의 연관-동료들은 전도자 집단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에게 조언을 해주었고, 또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들은 막달라, 티베리아스, 나사렛 그리고 중부와 남부 갈릴리의 주요 도시들과 마을들 곧 이전에 방문했었던 모든 곳들과 또한 많은 다른 곳들을 방문하였다. 이것은 북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갈릴리에 보내진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1. 여인들의 전도자 무리단
150:1.1
(1678-5)
땅에서의 예수의 생애와 관련해서, 그가 하였던 대담한 모든 일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1월 16일 저녁에 있었던 그의 갑작스러운 다음의 발표였다: “내일 우리는 왕국의 사명활동하는 일을 위하여, 별도로 열 명의 여인들을 세울 것이다.”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휴가를 얻어 벳세다를 떠나 자리를 비우는 2주간의 휴가 기간이 시작되었을 때, 예수다윗에게 그의 부모를 집으로 돌아오도록 할 것과 또한 메신저를 파견하여 이전에 야영지와 천막 병원의 관리-행정에 봉사했었던 10명의 헌신을 바친 여인들을 벳세다로 불러들이도록 시켰다. 이들 여인들은 젊은 전도자들에게 주어졌던 지침들을 모두 들었었지만, 그러나 예수가 감히 여인들에게 왕국의 복음을 가르치고 또한 병자에 대한 사명활동을 하는 임무를 맡기리라고는 그들 자신들이나 선생들이나 결코 생각에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예수에 의해 선택되고 임명된 이들 열 명의 여인들은, 전에 나사렛 회당의 카잔의 딸 수잔나, 헤롯 안티파스의 집사 추자의 아내 요안나, 티베리아스세포리의 부우한 유대인의 딸 엘리자벳, 안드레베드로의 큰누나 마르다, 주(主)의 육신의 형제인 유다의 처제 라헬, 시리아 의사인 엘만의 딸 나산타, 사도 도마의 사촌 밀가, 마태 레위의 맏딸 , 로마 백부장의 딸 켈타, 다마스커스의 과부 아가만이었다. 나중에 예수는 다른 두 여인들─막달라 마리아아리마대 요셉의 딸인 레베카─를 이 집단에 추가하였다.
150:1.2
(1679-1)
예수는 이들 여인들에게 그들 자신의 조직을 스스로 만들라고 위임하였으며, 그리고 유다에게 그들이 사용할 장비와 짐을 싣는 가축을 준비할 기금을 제공하도록 지도하였다. 그 열 명은 수잔나를 그들의 우두머리로, 그리고 요안나를 회계로 선출하였다. 이때부터 그들은 그들 자신의 기금을 스스로 충당하였으며, 결코 다시는 유다에게 지원을 청하지 않았다.
150:1.3
(1679-2)
여인들이 회당의 본청에 오는 것조차도 허락이 되지 않았던 (여인용 회랑에 한정되어 있어야 했던) 그 시절에, 새로운 왕국 복음을 가르치는 권한을 가진 선생으로 그들이 인지되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가장 깜짝 놀란만한 일이었다. 예수가 그들을 복음을 가르치고 사명활동을 위하여 이들 열 명의 여인들을 따로 세우면서 맡겼던 책임은, 모든 여인들을 모든 시간에서 자유롭게 만든 해방 선언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남자가 여자를 자신보다 영적으로 열등한 자로 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열두 사도들에게까지도 결정적인 충격이었다. 여러 차례 주(主)가 “하늘의 왕국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아니고, 자유로운 자도 매인 자도 아니고,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모두가 똑같이 하느님의 아들들과 딸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정식으로 이들 열 명의 여인들을 종교 선생들로 임명하고 그들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하도록 허락할 것을 제안하였을 때, 그들은 글자 그대로 기절할 지경이었다. 이러한 진행으로 말미암아 온 지방이 휘저어졌고, 예수의 적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커다란 자산으로 뽑아내었지만, 그러나 사방에서 복음을 믿는 여자 신자들이 선택된 자신들의 자매들을 굳게 지지하며 뒷받침했고 그리고 종교적인 일에서의 여자의 지위를 이렇게 늦게나마 인정한 것에 대해 너무나 분명한 승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당연한 인지를 가져다준 이 여성 해방은, 후세의 세대에서 그들이 다시 옛 관습으로 빠져들긴 하였지만, 주(主)가 떠난 후에도 즉각적으로 사도들에 의해 실천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를 두루 통하여 여자 교사들과 사명활동자들은 여자 집사로 불렸고 또한 일반적인 인지가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바울이 이론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하였다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 자신의 태도 안으로 실제로 적용할 수 없었고 그리고 그것이 실천-관행으로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발견하였다.
2. 막달라에 들림
150:2.1
(1679-3)
벳세다로부터 사도 일행이 여정을 떠나자, 그 여인들은 뒤에서 따로 여행하였다. 회의 시간 동안에는 그들은 항상 연사의 오른쪽 앞자리에 한 집단을 지어 앉았다. 여인들은 점점 많이 왕국 복음을 믿는 신자들이 되어 갔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나 혹은 사도 중의 한 사람과 개인적 대화를 갖기를 원할 때에, 그 난처함은 끝이 없었고, 그것은 많은 어려움의 근원이 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변했다. 여자 신자들 중 어느 누구든지 주(主)를 만나고 싶거나 사도들과 상의를 하고 싶을 때에는, 그들은 수잔나에게로 갔으며, 그리고 열두 명의 여자 전도자들 중의 한 사람과 동행하여, 즉시 주(主)의 현존 앞으로 또는 그의 사도들 중의 한 사람 앞으로 가곤 하였다.
150:2.2
(1680-1)
여자들의 효용성이 처음으로 실증되고, 그들을 선택한 것이 지혜로웠음을 입증한 것은 막달라에서였다. 안드레는 자신의 연관-동료들에게 여인들, 특히 의심스러운 성격을 가진 여인들과 개인적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엄한 규율을 제정했었다. 그 일행이 막달라에 들어갔을 때, 이들 열 명의 여자 전도자들은 자유롭게 악한 유흥가로 들어가서 그곳의 모든 그들 동무들에게 직접 기쁜 소식을 전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병자를 방문했을 때, 이들 여인들은 그들의 고통받는 자매들을 매우 가깝게 그들의 사명활동 안으로 이끌 수 있었다. 이들 열 명의 여인들(나중에는 열두 명으로 알려진 여인들)의 이곳에서의 사명활동의 결과로, 막달라 마리아가 왕국에 대하여 승리를 얻게 되었다. 연속된 불행을 두루 통하여 그리고 그러한 때의 어떤 판단의 잘못을 범한 여자를 대하는 평판 자자한 사회의 태도 때문에, 이 여인은 막달라의 사악한 유흥가들의 하나에 있는 그녀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마리아에게, 심지어 그녀와 같은 사람에게도 왕국의 문이 열려 있다고 분명하게 설명했던 이는 마르다라헬이었다. 마리아는 그 좋은 소식을 믿었고 그리고는 그 다음 날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다.
150:2.3
(1680-2)
막달라 마리아는 열두 명의 여자 전도자들의 이 집단 중에서 가장 효력적인 복음의 선생이 되었다. 그녀는 전향을 한 이후 약 4주 뒤에, 레베카와 함께 그러한 봉사를 위하여, 요타파타에 따로 세워졌다. 마리아레베카는 이 집단의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의 땅에서 보낸 일생의 나머지 기간을 두루 통하여, 그들의 천대받은 자매들을 깨우치고 들어 올리기 위하여 신실하고도 효과적으로 수고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일생의 드라마에서 마지막이자 비극적인 에피소드가 일어났을 때, 사도들이 하나를 제외하곤 모두 달아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여인들 모두는 그 자리에 있었고, 단 한 사람도 예수를 부인하거나 배반하지 않았다.
3. 티베리아스에서의 안식일
150:3.1
(1680-3)
예수로부터 받은 지침에 의거하여, 안드레는 사도 일행의 안식일 봉사예배를 여인들의 손에 맡겼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새 회당 안에서 열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 헸다. 여인들은 이런 특별한 행사에 책임을 맡으라고 요안나를 뽑았으며, 그래서 그 모임은 헤롯펠라에 있는 줄리아스의 관저에 거주하면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헤롯의 새 궁전 연회실에서 열렸다. 요안나이스라엘의 종교적 일생 안에서 여인의 일에 관계된 미리암, 드보라, 에스더와 다른 이들을 언급하는 구절을 성서로부터 읽었다.
150:3.2
(1680-4)
그 날 저녁 늦게 예수는 그 연합된 집단에게 “마술과 미신”에 대한 기억에 남는 말을 해주었다. 그 당시에는 밝고 그리고 새로운 것으로 추측되는 별이 출현하는 것은 이 땅에 어떤 위대한 사람의 탄생을 가리키는 하나의 징조라고 여겼다. 그러한 별 하나가 그 당시의 최근에 관찰되었기 때문에, 안드레예수에게 이러한 믿음들이 잘 갖추어진 근거에 있는 것인지 물었다. 안드레의 질문에 긴 대답을 하면서, 주(主)는 인간의 미신에 대한 주제 전체에 관하여 철저한 토론에 들어갔다. 이때에 예수가 했던 언급은 다음과 같이 현대적인 어법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150:3.3
(1680-5)
1. 하늘에 있는 별들의 행로는 땅에서 일어나는 인간 일생의 사건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 천문학은 과학에서의 타당한 추구이지만, 그러나 점성술은 왕국 복음 안에서는 아무런 설 자리가 없는, 미신과 같은 잘못의 덩어리이다.
150:3.4
(1680-6)
2. 방금 죽인 동물의 내부 장기들에 대한 자세한 검증은 날씨, 미래의 사건 또는 인간 관련사에서의 결말에 대하여 아무것도 계시할 수 없다.
150:3.5
(1680-7)
3. 죽은 자의 영들은 자신들의 가족이나 또는 한때 자신들의 친구들과 교통 하기 위하여 삶의 한가운데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150:3.6
(1681-1)
4. 성물이나 유품은 병을 고치거나 재앙을 막거나 악령에 영향을 행사하는 데에 무력하다. 모든 그러한 물질적인 모든 수단들이 영적 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은 단지 터무니없는 미신일 뿐이다.
150:3.7
(1681-2)
5. 제비뽑기에 맡기는 것이 많은 사소한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편리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신성한 뜻을 드러내도록 고안된 방법이 아니다. 그러한 결과는 순수하게 물질적 우연의 문제이다. 영적 세계와 교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아들이 쏟아 부은 영과 그리고 무한한 영의 전재하는 영향과 함께 있는, 인류의 영 자질-부여, 곧 내주 하는 아버지의 영 안에 포옹되어 있다.
150:3.8
(1681-3)
6. 점, 마술, 요술은 무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미신이며, 또한 마법에서의 기만도 마찬가지이다. 마법의 숫자, 좋은 행운의 예지, 불운의 전조를 믿는 믿음은 순수한 그리고 근거 없는 미신이다.
150:3.9
(1681-4)
7. 꿈에 대한 통역은 대부분 무지와 환상적인 추측의 미신적이고 근거가 없는 체계이다. 왕국 복음은 원시 종교의 점쟁이인 사제들과 그 어떤 공통점도 있을 수가 없다.
150:3.10
(1681-5)
8. 선한 영들이거나 악한 영들은 진흙, 나무, 금속으로 만든 물질적 상징 안에 거할 수가 없다. 우상들은 그런 것들이 만들어진 물질일 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150:3.11
(1681-6)
9. 주술사, 요술사, 마법사 그리고 마술사들의 실천 관행들은 이집트인, 아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그리고 고대 가나안-사람의 미신으로부터 유래되었다. 부적이나 온갖 종류의 주문은 선한 영의 보호를 얻거나 악한 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쫓거나, 둘 모두에 쓸모가 없다.
150:3.12
(1681-7)
10. 그는 주문, 시련, 요술, 저주, 표적, 마취약물, 매듭진 끈, 그리고 무지하고 노예로 만드는 미신의 모든 다른 형태를 믿는 그들의 믿음을 폭로했고 그리고 공공연히 비난하였다.
4. 사도들을 둘씩 내보내다
150:4.1
(1681-8)
다음날 저녁에 열두 사도들, 요한의 사도들, 그리고 새로 임명된 여인들의 집단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예수가 말하였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너희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추수의 주님에게, 그가 그의 들판으로 더욱 많은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우리 모두 기도하자. 내가 남아서 새로 임명될 선생들을 위로하고 가르치는 동안, 아직은 형편이 좋고 평화로울 때에 너희들이 왕국 복음을 전도하면서 온 갈릴리 지역을 빨리 통과하도록, 오래된 자들을 둘씩 짝지어서 내보내려 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이 파견하기로 계획했던 대로 사도들 둘씩 다음과 같이 짝을 정해 주었다: 안드레베드로, 야고보 세베대요한 세베대, 빌립나다니엘, 도마마태, 야고보 알패오유다 알패오, 열심당원 시몬가룟 유다로 짝을 이루었다.
150:4.2
(1681-9)
예수나사렛에서 12명의 사도들을 다시 만날 기일을 정해주고, 그들을 떠나보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번의 임무에서는 이방인의 어떤 도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에도 들어가지 말며, 대신 이스라엘 집의 길 잃은 양에게로 가라. 왕국 복음을 전도하고,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라. 제자가 도저히 그의 주(主) 보다 높지 않고, 또한 하인이 그의 주님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라. 제자가 그의 주(主)와 동등하고, 하인이 그의 주님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만일 어떤 국민이 감히 그 집의 주(主)를 바알세블의 연관-동료라고 불렀다면, 그 집안에 있는 그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얼마나 더 심하게 여기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믿으려 하지 않는 이런 적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겠는데, 계시되지 않으려고 감춰진 것이 하나도 없고, 알려지지 않아야 해서 숨겨진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너희에게 사적으로 가르친 그것을 너희는 공개적으로 지혜롭게 전도하라. 내가 방 안에서 너희에게 계시해 왔던 그것을, 너희는 마땅한 계절에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야 한다. 그리고 내가 내 친구들이요 제자들인 너희에게 말하겠는데, 몸은 죽일 수 있지만 혼은 파괴할 수 없는 그런 자를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너희의 몸을 지탱할 수 있고 그리고 혼을 구하는 그에게 너희의 신뢰를 두라.
150:4.3
(1682-1)
“참새 두 마리가 한 페니에 팔리지 않더냐? 그렇다 해도 하느님의 보기에는 그중 하나도 잊히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선언한다. 너희의 머리의 머리털까지 그 수가 다 헤아려졌다는 것을 너희는 알지 않느냐?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들보다 더욱 가치가 있다. 나의 가르침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가서 평화와 선한 뜻을 선포하라. 그러나 속지 마라─평화가 너희의 전도에 언제나 수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땅에 평화를 가져다주려고 왔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나의 선물을 거부하면, 분열과 소동이 일어난다; 가족의 모두가 왕국 복음을 받아들이면 참으로 평화가 그 집 안에 머문다; 그러나 가족의 일부만 왕국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할 때, 그러한 분열은 단지 슬픔과 비애만 낳을 수 있다. 사람의 적이 자기 자신의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가족 전부를 구원하기 위하여 열심히 수고하라. 그러나 내가 선언하는데, 너희가 각 가족의 모두를 위하여 최선을 다했을 때, 이 복음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자는 왕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150:4.4
(1682-2)
열두 사도들이 이 말을 듣고 나서, 그들은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주(主)가 정한 대로 예수와 다른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나사렛에서 그들이 모이는 그때가 올 때까지, 다시 함께 모이지 않았다.
5. 구원받으려면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150:5.1
(1682-3)
요한의 사도들은 헤브론으로 돌아간 뒤, 예수의 사도들은 둘씩 짝을 지어 나간 후, 슈넴에서 어느 저녁시간에, 주(主)야곱의 지도 아래에 있던 열두 명의 젊은 전도자들을 가르치느라 몰두하고 있을 때, 열두 명의 여자들과 함께 있던 라헬예수에게 이러한 질문을 물었다: “주(主)여, 다른 여인들이 우리에게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만 하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예수가 이 질문을 듣고 대답하였다:
150:5.2
(1682-4)
“남자와 여자들이 구원받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너희는 이렇게 대답하라, 신성한 용서를 인정하라; 왕국의 이 복음을 믿으라. 그의 인정이 너희를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는, 내주하는 하느님의 영을 신앙으로 인지하라. 성서에서 ‘주님 안에서 내가 정의로움과 강한 힘을 갖는다.’라는 말을 읽지 않았느냐? 또한 아버지께서 말씀하기를, ‘나의 정의로움은 가까이 있다; 나의 구원이 보내어져 나가 있으니, 나의 팔이 나의 백성을 감쌀 것이다.’ ‘나의 혼이 나의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나를 입히시고 정의로움의 예복으로 나를 덮으셨기 때문이다.’ 너희는 또한 아버지에 대하여 그의 이름이 ‘주님 우리의 정의로움으로 불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읽지 않았느냐? ‘자아-정의로움의 더러운 누더기를 벗어버리고 신성한 올바름과 영원한 구원의 예복으로 나의 아들을 입히라.’ ‘올바른 자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 아버지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무료지만, 그러나 그 안에서 존속하는 데는 진보가─은총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필수이다.
150:5.3
(1682-5)
“구원은 아버지의 선물이며, 그의 아들들에 의해서 계시된다. 너희 쪽에서 신앙으로 인정하는 것은 너희를 신성한 본성의 한쪽을-지니는 자,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 만든다. 신앙으로 너희는 정당화되며, 신앙으로 너희는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바로 이 신앙으로 너희는 진보적이고 신성한 완전성의 이 길에서 영원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신앙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고, 멜기세덱의 가르침을 받아 구원을 알아차렸다. 모든 세대들을 통하여 바로 이 신앙이 사람들의 아들들을 구원하였으나, 그러나 지금은 아들이 이 구원을 좀 더 실제적이고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하려고 아버지께로부터 왔다.”
150:5.4
(1683-1)
예수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거기에는 이들 은혜의 말을 들었던 모든 자들 사이에 커다란 기쁨이 향유되었으며, 그들 모두는 뒤이어진 나날들 동안 새로운 힘과 다시 새로워진 에너지와 열정으로 왕국 복음을 선포하면서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여자들은 이 세상에 왕국을 세우는 계획에서 자신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더욱더 기쁨을 누렸다.
150:5.5
(1683-2)
자신의 마지막 발언을 종합하면서, 예수가 이렇게 말씀하였다: “너희는 구원을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정의를 벌어들일 수 없다.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정의는 왕국 안에서 아들관계의 영으로-태어난 생명이 맺는 자연스러운 열매이다. 너희가 정의로운 일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구원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희가 이미 구원되어왔고, 아들 관계를 하느님 선물로 인지해왔고, 그리고 땅에서의 일생의 최극 기쁨으로 왕국의 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너희가 정의로운 일생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선함을 계시하는 이 복음을 믿을 때, 그들은 죄로 알려진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회개하도록 인도될 것이다. 아들관계의 실현은 죄에 대한 욕망과 양립할 수 없다. 왕국을 믿는 신자들은 정의에 굶주려 있고 신성한 완전에 목말라 있다.”
6. 저녁 수업
150:6.1
(1683-3)
저녁 토론 시간에 예수는 많은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이 여행에서의 남아 있는 동안에―그들 모두가 나사렛에서 다시 재연합 되기 전까지―그가 토론했던 것들은 “하느님의 사랑,” “꿈과 환상,” “악의,” “겸손과 온유,” “용기와 충성,” “음악과 경배,” “봉사와 순종,” “자만과 주제넘음,” “회개와 관계되는 용서,” “평화와 완전,” “악담과 질투,” “악과 죄와 유혹,” “의심과 불신,” “지혜와 경배”에 대한 것이었다. 오래된 사도들이 멀리 가고 없었기 때문에, 이 젊은 남녀들의 집단은 와 함께 더욱 자유롭게 이들 토론에 들어갔다.
150:6.2
(1683-4)
12명의 전도자들로 이루어진 한 집단과 2-3일을 지내신 후에, 예수는 다른 집단과 함께 지내려고 옮기곤 하였으며, 다윗의 메신저들을 통하여 이런 모든 일꾼들에 관한 근황과 행적들에 대한 소식을 항상 듣고 계셨다. 여전도자들은 이것이 그들의 첫 번째 여행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시간을 예수와 함께 남아 있었다. 각 집단은 메신저 봉사를 통하여 그 여행의 진행 상황을 들어 알고 있었고, 다른 집단들로부터 오는 소식은 흩어져서 따로 떨어져 있던 이들 일꾼들에게 항상 용기를 북돋아주는 근원이 되었다.
150:6.3
(1683-5)
그들이 나뉘기 이전에, 열두 사도들은 그 전도자들 그리고 여자들의 집단과 함께, 3월 4일 금요일에 주(主)와 만나기 위하여 나사렛에 모이기로 조치가 되어있었다. 따라서 이 무렵에는, 중부와 남부 갈릴리의 전 지역으로부터, 사도들과 전도자들의 이들 다양한 집단들이 나사렛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오후 중반이 되자, 안드레베드로는, 가장 나중에 도착하여, 미리 도착한 사람들에 의해 준비된, 그 도시의 북쪽 고원 지역에 자리를 잡은 야영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대중 사명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예수나사렛을 방문한 첫 번째였다.
7. 나사렛에서의 체류
150:7.1
(1683-6)
금요일 오후에 예수는 전혀 눈에 띄지 않은 채 그리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나사렛 주위를 걸어 다녔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집과 목공소를 지나갔으며, 소년 시절에 그렇게 많이 즐겼던 언덕에서 반시간 정도 보냈다. 요단강에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래로, 사람의 아들이 그의 혼 속에서 이때처럼 인간 감정의 홍수로 격동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 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동안, 그는 나사렛에서 자라던 소년 시절에 그렇게 아주 많이 듣고 또 들었던 것과 똑같이, 해 질 무렵을 알리는 귀에 익은 나팔소리를 들었다. 야영지로 돌아오기 전에, 그는 공부하러 다녔던 그 회당 옆으로 걸어서 내려갔으며, 그의 마음은 그의 소년 시절의 많은 추억거리들을 회상하는 데에 빠져들었다. 그날 일찍 예수는 회당의 통치자를 만나 안식일 아침 봉사예배에 자기가 설교할 수 있도록 준비해보라고 도마를 보냈었다.
150:7.2
(1684-1)
나사렛 사람들은 경건함과 정의로운 삶에 대하여 좋은 평판을 받은 적이 결코 없었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이 동네는 가까이에 있는 세포리의 낮은 도덕 기준으로 인하여 점점 더 오염되었다. 예수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동안 내내, 나사렛에서는 그에 관하여 의견이 갈려 있었었다. 그가 가버나움으로 이사 갔을 때 분개심이 더욱 많았었다. 한편 나사렛의 주민들은 이전에 자기들과 함께 하였던 목수의 많은 업적을 들었지만, 그들은 그의 그 어떤 초기 전도 여행에서도 자신이 태어난 마을을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기분이 상해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예수의 명성을 들었으나, 시민들의 대다수는 그가 자신의 어릴 때 자랐던 도시에서 그의 위대한 일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여러 달 동안 많이 토론했었으나, 그에 대한 그들의 의견은 대체로 호의적이지 못하였다.
150:7.3
(1684-2)
그런 까닭에 주(主)는 자신이 귀향을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명하게 적대감을 가진, 그리고 지나치게 혹평하는 분위기 한가운데에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의 적들은 그가 나사렛에서 이번 안식일을 보낼 것이며, 또한 그가 회당에서 말할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그를 괴롭히고 또 가능한 모든 면에서 문제를 만들려고 상당히 많은 거칠고 천한 사람들을 고용하였다.
150:7.4
(1684-3)
예수를 총애했던 어린 시절의 카잔 스승을 포함한 대부분의 그의 옛 친구들은 죽었거나 혹은 나사렛을 떠나갔고, 보다 젊은 세대들은 강한 질투심을 가지고 그의 명성에 분개하는 경향에 있었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의 아버지의 가족에게 바쳤던 예전의 헌신을 기억하지 못했으며, 그래서 그가 나사렛에 살고 있는 그의 형제들과 결혼한 그의 여동생들을 방문하기를 소홀히 한 것을 신랄하게 비평하였다. 그를 향한 예수의 가족의 태도 역시 시민들의 이 불친절한 감정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유대인들 가운데 정통파는 심지어 예수가 이 안식일 아침에 회당으로 가는 길에서 너무 빨리 걸었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추정하여 비판까지 하였다.
8. 안식일 봉사예배
150:8.1
(1684-4)
이 안식일은 날씨가 좋았으며, 친구들과 적들인 모든 나사렛 사람들은 그들 마을의 예전의 시민이었던 그가 회당에서 강연하는 것을 들으려고 모두 나타났다. 사도 수행원들 가운데 여러 명은 회당 바깥에 남아 있어야만 했었다;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들으러 왔기 때문에 자리가 없었다. 한 젊은 남자로서 예수가 이 경배의 장소 안에서 종종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이 날 아침에 회당의 통치자가 성서 본문을 읽기 위한 성스러운 기록의 두루마리를 그에게 건네주었을 때, 거기에 참석했던 누구도 이것이 바로, 그가 이 회당에 기증했었던 바로 그 필사본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였다.
150:8.2
(1684-5)
이 날 있었던 그 봉사예배는 예수가 소년으로 참석했었을 때와 똑같이 수행되었다. 그는 회당의 통치자와 함께 연단에 올라갔고, 그 봉사예배는 두 개의 기도를 낭송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복되도다, 세상의 왕이신 주님, 당신은 빛을 만드시고, 어둠을 창조하시며, 평화를 만드시고, 만물을 창조하시나이다; 당신은 자비로써 땅과 거기에 거하는 자들에게 빛을 주시며, 선(善) 안에서 매일매일의 모든 날에 창조의 작품들을 새롭게 하시니이다. 그의 솜씨의 영광으로 그리고 그의 찬미를 위해 그가 만드신 빛을-내려주는 그 빛으로 우리의 하느님 주님께서 복되시다. 셀라. 복되시다, 빛을 지으신 주님 우리 하느님이시니이다.”
150:8.3
(1685-1)
잠시 멈춘 뒤 그들은 다시 기도하였다: “주님 우리 하느님은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였고, 우리의 아버지이자 우리의 왕이신 그가, 그를 믿었던 우리의 조상들을 위해 넘쳐흐르는 연민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겼나이다. 그들에게 일생의 규례를 가르친 하느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를 가르치소서. 율법 안에서 우리 눈을 밝히소서, 우리의 가슴이 주의 계명에 고수하도록 하소서,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도록 우리의 가슴을 연합하게 하시고, 그리하면 우리가 끝남이 없는 세상에 부끄럽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구원을 준비하시는 하느님이요, 우리를 모든 민족과 언어들로부터 선택하시고 진리로 우리를 당신의 크신 이름에 가까이 있게 하였사오니─셀라─이로써 우리가 당신의 합일을 사랑으로 찬양케 하였나이다. 복되시다, 사랑으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택한 주님이시니이다.”
150:8.4
(1685-2)
그러고 나서 회중은 유대인 신앙의 교리인 쉐마를 암송하였다. 율법에서 발췌한 상당한 숫자의 구절들을 반복하는 이 예식은 경배자들이 자신이 하늘의 왕국의 멍에를 짊어졌음을, 마찬가지로 밤낮으로 적용되는 계명의 멍에도 또한 짊어졌음을 가리킨 것이었다.
150:8.5
(1685-3)
그다음에는 세 번째 기도가 이어졌다: “참으로 당신은 야훼, 우리의 하느님이시며 우리 조상의 하느님이시며,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 조상의 왕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요 우리 조상의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우리 구원의 반석이시고, 우리의 도움, 우리의 구원자니이다. 당신의 이름은 영속으로부터 계시고, 당신 이외에는 다른 하느님이 없나이다. 구원받은 그들이 바닷가에서 새 노래를 당신의 이름에 바쳤으니, 그들이 다 함께 당신을 왕으로 모시고 찬양하기를, 야훼가 세상을 영원토록 통치하시리라 하였도다. 복되도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주님이시니이다.”
150:8.6
(1685-4)
그러고 나서 회당 통치자는 언약궤, 성스런 기록이 들어 있는 상자 앞에 있는 자기 자리에 앉아 19개의 찬양 기도문인 축도문을 낭송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귀빈이 그의 강연 시간을 더 많이 가지도록 하기 위해 봉사예배를 짧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였다; 따라서 축도의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만 낭송되었다. 처음 것은 이러하였다: “주님 우리 하느님은 복되시다, 그는 우리 조상의 하느님, 아브라함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하느님, 크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신 하느님, 자비와 인애를 베푸시며, 만물을 창조하시며, 조상들에게 한 은혜로운 약속을 기억하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의 자손의 자손들에게 사랑으로 구원자를 보내도다. 오, 왕이시여, 조력자이시여, 구원자시여, 방패시여! 복되시다, 오, 야훼, 아브라함의 방패시니이다.”
150:8.7
(1685-5)
다음에는 마지막 축도가 이어졌다: “오,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큰 평화를 언제까지나 베푸소서. 당신은 모든 평화의 왕과 주님이 되심이나이다. 당신은 어느 때 어디시든지 이스라엘에게 평화의 복을 주시기를 즐겨하시나이다. 복되시다 야훼여, 당신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평화로 복되게 하시니이다.” 회중은 축도를 낭송할 때 회당 통치자를 바라보지 않았다. 축도에 이어서 그는 그 날의 경우에 적합한 형식에서 자유로운 기도를 드렸고, 그것이 끝나자 온 회중은 모두 같이 아멘을 말하였다.
150:8.8
(1685-6)
그러고 나서 카잔은 언약궤로 가서 두루마리를 꺼내다가 예수에게 건네주고 그로 하여금 성서의 교훈을 읽게 하였다. 관례에 따르면 일곱 사람이 적어도 율법을 세 구절씩 읽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날은 방문객이 자기가 선택한 교훈을 읽을 수 있도록 이 실천관행은 적용되지 않았다. 두루마리를 받아 든 예수는 일어서서 신명기에서 읽기 시작하였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계명은 너로부터 감추어지지 않았고, 또한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것은 너희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계명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 것인가?'라고 말할 만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요. 또 너희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계명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 것인가?' 말할 만큼 바다 너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다. 생명의 말씀은 너희가 그것을 알고 복종할 수 있는, 너희에게 심히 가까운 곳에 있다, 심지어 너희의 현존 안에, 그리고 너희의 가슴 안에도 있다.”
150:8.9
(1686-1)
그가 율법으로부터 읽기를 마치고, 이사야의 글을 열어서 읽기 시작하였다: “주님의 영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내게 기름을 부으셨음이라. 나를 보내사, 잡혀있는 자들에게 풀려남을 선포하고, 눈먼 자에게 시력이 회복됨을 선포하며, 상처 입은 자를 해방시키고, 받아들일만한 주님의 때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다.”
150:8.10
(1686-2)
예수가 책을 닫고 그것을 회당 통치자에게 돌려주신 후, 앉아서 사람들에게 강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음의 말로 시작하였다: “이 성서의 말씀들이 오늘 이루어진다.” 그러고 나서 예수가 거의 15분 동안 “하느님아들들과 들”에 관해 강연하였다. 일반 사람들 중 많은 이가 그 강론을 듣고 기뻐하였으며, 그들은 그의 품위와 지혜에 경탄하였다.
150:8.11
(1686-3)
정식 봉사예배를 마친 후에 연사가 남아 있으면서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질문을 받는 것이 회당의 관례였다. 따라서 이 안식일 아침에 예수는 질문을 하려고 앞으로 밀어닥치는 군중 속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이 집단에는 마음이 악행에 빠진 난폭한 개별존재들이 많이 있었고, 한편으로 이 군중의 가장자리 근처에는 예수에게 문제를 일으키기 위하여 고용된 저질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성이고 있었다. 이때 밖에 남아 있던 많은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회당 안으로 밀고 들어갔으며, 그들은 문제가 싹트고 있다는 것을 금방 인지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주(主)가 벗어나도록 이끌려고 애썼지만, 그는 그들과 함께 가려고 하지 않았다.
9.나사렛의 거부
150:9.1
(1686-4)
예수는, 자신이 회당 안에 그의 적들의 커다란 인파로 둘러싸여 있고 그리고 드문드문 자신의 추종자들이 흩어져있음을 발견하였으며, 그들의 무례한 질문과 심술궂은 조롱에 그는 반쯤은 재미있게 대답하였다: “그렇다. 내가 요셉의 아들이다; 나는 목수이고 그리고 너희가 나에게 ‘의사여 너 자신을 치유하라.’는 속담을 생각나게 하는 것과, 내가 가버나움에서 행한 것으로 너희가 들었던 일들을 나사렛에서 해보라고 나에게 도전하는 것에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너희도 마찬가지로 ‘선지자가 자기 나라와 자기 민족들을 제외하고는 명예를 받지 않음이 없다.’라고 성서가 선언하고 있음을 증언하라고 요청한다,
150:9.2
(1686-5)
그러나 그들은 그를 난폭하게 떠밀었고 그리고 비난하는 손가락질 하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당신이 나사렛의 일반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신은 우리에게서 떠나갔지만, 당신의 형제는 평범한 일꾼이며, 당신의 여동생들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알고 있다. 그들이 오늘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당신에 관한 큰 일들을 듣지만, 그러나 당신이 이곳에 돌아와서 아무런 이적도 행하지 않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내가 자라난 도시에 거하고 있는 일반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너희 모두가 하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에 기쁨이 넘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은총으로 인한 변환은 은혜를 받는 자들의 살아 있는 신앙에 반응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150:9.3
(1686-6)
예수는 그 군중을 온화하게 다루고 난폭한 적들까지도 효과적으로 공격 수단을 버리게 하였었을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와중에 군중 속에서는 사도 중의 하나인 열심당원 시몬이, 젊은 전도자 중의 하나인 나호르의 도움을 받아, 한편으로 예수의 친구 집단을 함께 모아서 같이, 호전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주(主)의 적들에게 그 자리에서 떠나라고 주의를 주는, 전략적인 대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항상 사도들에게 부드러운 대답 하나가 진노를 거두어간다는 것을 오랫동안 가르쳤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그처럼 기꺼이 주(主)라 부르는, 깊이-사랑하는 선생이 그러한 무례한 언행과 경멸적인 태도로써 대접받는 것을 본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너무 심한 것이었고, 그래서 자신들도 모르게 격렬하고 강렬한 분개심을 표현하게 되었는데, 이런 모든 것은 이 신앙심 없고 무례한 자들 안에 있는 집단 영을 일으키게 하는 쪽으로만 기울어지게 하였다. 그리하여 돈으로 고용되어 날뛰는 건달들의 지휘 아래, 이 불량배들은 예수를 붙잡아 회당 밖으로 몰아서 근처에 있는 가파른 언덕의 벼랑으로 몰아갔고, 거기에서 그들은 그를 벼랑 끝 너머 아래로 그가 죽도록 떠밀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막 그를 벼랑 끝에서 밀려고 했을 때, 예수는 갑자기 그를 잡고 있는 자에게 돌아서서 그들을 마주 보면서 조용히 자신의 팔짱을 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가 앞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폭도들은 갈라지고 그리고는 아무 건드림이 없이 그가 지나가도록 허락하였을 때, 그의 친구들은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150:9.4
(1687-1)
예수는 앞장선 그의 제자들의 뒤를 따라서 그들의 야영지로 갔고, 거기에서 모든 이것은 자세하게 이야기되었다. 그들은 예수가 이미 지시했었던 대로 다음날 아침 일찍 가버나움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날 저녁에 준비를 마쳤다. 세 번째 대중 전도 여행의 이 난폭한 종결은, 예수의 모든 추종자들이 냉정하고 침착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주(主)의 가르침들 가운데 몇몇의 의미를 비로소 실체로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왕국이 오직 많은 슬픔과 쓰디쓴 실망을 두루 통해서만 올 것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고 있었다.
150:9.5
(1687-2)
그들은 일요일 아침에 나사렛을 떠났으며, 여러 다른 길을 따라 여행했기 때문에 3월 10일 목요일 한낮이 되어서야 그들 모두는 마침내 벳세다에 집합하였다. 그들은 열성적이고 모든 것을-정복하는 승리의 십자군으로서가 아니라, 환상에서 벗어난 진리의 복음 설교자들의 냉정하고-침착한 그리고 진지한 집단으로 함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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