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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9 편
예수의 성년 일생 후기
129:0.1
(1419-2)
예수나사렛 가족의 집안 관련사들을 돌보는 것과 가족 개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지도하던 것으로부터 충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는 세례의 사건 직전까지 가족의 재정에 도움을 계속 주었고, 또한 자신의 형제와 자매들 각자의 영적 행복에 세심한 관심을 쏟았다. 또한 그는 홀로된 어머니의 평안과 행복을 위하여 가능한 한 모든 인간적 배려를 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었다.
129:0.2
(1419-2)
이제 사람의 아들은 그 자신이 나사렛 고향집으로부터 영구히 떠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으며; 이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수는 본성적으로 자기 민족을 사랑하였고, 자기 가족들을 사랑하였으며, 본성적인 이 애정은 그들에게 대한 자신의 비범한 헌신으로 인해서 엄청나게 증강되어 있었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을 증여하면 할수록 그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더 커지게 되는데; 예수도 자기 가족들에게 그처럼 충만하게 주었기 때문에, 더욱 숭고하고 강렬한 애정으로 그들을 사랑하였던 것이다.
129:0.3
(1419-3)
가족들 모두는 예수가 자신들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현되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예상된 이별의 슬픔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계획된 떠남을 알릴 때를 대비하여 그들을 미리 준비시키는 점진적인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거의 4년 넘게 예수가 이 결국 생겨나는 이별을 위해 준비를 해왔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1. 27살 되던 해 (서기 21년)
129:1.1
(1419-4)
서기 21년, 그 해 1월 비가 내리는 일요일 아침에, 예수는 형식을 차리지 않고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자신은 티베리아스로 갈 것이며 그 후 갈릴리바다 주변의 다른 도시들을 방문하겠다는 설명만을 덧붙였다. 그렇게 하여 예수는 그들을 떠났고, 다시는 그 가정의 정식 구성원이 되지 않았다.
129:1.2
(1419-5)
그는 일주일 동안 티베리아스에서 보냈고, 그곳은 세포리를 대신하여 곧 갈릴리의 수도가 되기로 예정된 신도시(新都市)였으며; 그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 거의 발견되지 않자, 그는 잇달아서 막달라벳세다를 거쳐 가버나움에 이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아버지의 친구인 세베대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머물렀다. 세베대의 아들들은 어부들이었다; 세베대 자신은 배를 건조하는 사람이었다. 나사렛 예수는 설계와 건축에 숙련자였고; 나무를 다루는 일에는 이미 장인(匠人)의 경지에 있었다; 세베대도 그 나사렛 기술자를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세베대는 개량된 배를 만들기 위하여 오랜 기간 동안 고심하고 있었으며, 이제 자신의 설계도를 예수 앞에 펼치면서 그 찾아 온 목수에게 자기와 함께 사업을 할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하였고, 예수도 쾌히 승낙하였다.
129:1.3
(1419-6)
예수세베대와 1년이 조금 넘도록 함께 일하였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에 그는 새로운 모양의 배를 만들었고 배 건조에 있어서 전적으로 새로운 방식을 정립시켰다. 우월한 기법과 증기를 쬔 널빤지를 이용하는 대단히 개선된 방법들을 통해서, 예수세베대는 매우 우월한 유형의 배들, 이전에 사용하던 구식 배보다 훨씬 안전하게 호수를 항해할 수 있는 선박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신형(新型) 배들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세베대는 그의 작은 시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인, 훨씬 더 많은 작업을 수년 동안 했으며; 불과 5년이 채 못 되어, 호수 위에 떠있는 모든 배들은 실천적으로 가버나움세베대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갈릴리 해변의 어부들에게 신형 배의 설계자로 유명해졌다.
129:1.4
(1420-1)
세베대는 적당히 재력이 있었다; 그의 조선소는 가버나움의 남쪽 호숫가에 있었고 그의 집은 벳세다의 어업기지 근처에 있는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예수는 그 해 동안 세베대의 집에서 살았지만 가버나움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예수는 아버지를 여의고 오랫동안 세상에서 혼자 일해 왔으므로, 그의 아버지 격인 동반자와 함께 일하는 그 기간 동안을 매우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129:1.5
(1420-2)
세베대의 아내인 살로메는, 한 때 예루살렘의 대제사장(大祭司長)이었다가 8년 전에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여전히 사두개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인 안나스의 친족이었다. 살로메예수를 매우 탄복하게 되었다. 그녀는 예수를 자기의 친아들인 야고보요한이나 다윗처럼 사랑하였고, 그녀의 네 딸들도 예수를 큰오빠로 여겼다. 예수는 종종 야고보요한 그리고 다윗과 함께 고기잡이를 나갔으며, 그들은 예수가 배 만드는 일에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노련한 어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29:1.6
(1420-3)
그 일 년 동안, 예수야고보에게 돈을 매달 보냈다. 그리고 10월에는 마르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사렛을 다녀왔고, 그 후로 2년 동안 예수나사렛을 방문하지 않았는데, 다시 나사렛으로 간 것은 시몬유다의 두 쌍의 결혼식 바로 전이었다.
129:1.7
(1420-4)
이 한 해 동안, 예수는 배를 만들었고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계속 관찰하였다. 그는 카라반들의 집결지인 가버나움을 자주 방문하곤 하였는데, 그 도시는 다마스커스에서 남쪽으로 뻗은 직선 여행로의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가버나움은 견고한 로마군 부대 주둔지로 중요한 장소였고, 부대의 사령관은 이방인이면서 야훼를 믿는 “헌신된 사람”이었는데, 유대인들은 그러한 개종자들을 흔히 그렇게 불렀다. 이 장교는 로마의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고, 스스로 가버나움에 아름다운 회당을 지었으며, 예수세베대와 함께 살기 얼마 전에 유대인들에게 기증하였다. 예수는 그 해에 반(半)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새 회당에서 예배봉사를 수행하였었는데, 우연히 거기에 참석하였던 어떤 카라반들은 그가 나사렛에서 온 목수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129:1.8
(1420-5)
세금을 낼 기한이 되자, 예수는 자신을 “가버나움의 숙련된 기술자”로 등록하였다. 그리하여 이 날 이후부터 그의 지상 일생이 끝나는 날까지 그는 가버나움 주민으로 알려졌다. 비록 그는 자기 거주지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다마스커스, 베다니, 나사렛, 그리고 심지어는 알렉산드리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내버려두었지만, 그 자신은 다른 어떤 법적 거주권도 청구하지 않았다.
129:1.9
(1420-6)
가버나움 회당에 있는 동안, 그는 서고 속에서 많은 새로운 책들을 발견하였고, 적어도 일주일에 닷새 저녁은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이틀 중에서 하루는 나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보냈고 나머지 하루 저녁은 젊은 사람들과 보냈다. 예수의 개인성 속에는, 젊은이들을 늘 끌어당기는 온유하고 영감 어린 어떤 것들이 있었다. 그는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편안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그의 큰 비결은 아마도 다음 두 가지 사실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인데, 그것은 그가 항상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과 그들이 물어오지 않는 한 그들에게 거의 충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29:1.10
(1420-7)
세베대의 가족은 예수를 거의 경배할 정도였으며, 그들은 저녁 식사가 끝나면 예수가 회당으로 공부하러 떠나기 전에 수행하는 질의응답 회의에 절대로 빠지지 않았다. 이웃의 젊은이들 역시 저녁 식사 후의 이 모임에 자주 참석하였다. 적은 숫자의 이 무리들에게 예수는 다양하고 진보적인 것들을 가르쳤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장 진보적인 것을 말하였다. 그는 그들과 매우 자유롭게 이야기하였고, 정치학, 사회학, 과학, 철학 등에 관해서 그의 관념과 이상들을 표현하였지만, 종교─하느님과 사람의 관계─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권위적인 최종을 주장하지 않았다.
129:1.11
(1421-1)
세베대에게는 많은 고용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 작업장 그리고 호숫가의 조력자들 전원과 함께 모임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이들 일꾼들 사이에서 예수는 “주(主)”라고 처음으로 불렸다. 그들 모두는 그를 사랑하였다. 그는 가버나움에서 세베대와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였지만, 나사렛 목공소 옆에서 놀던 꼬마 아이들을 몹시 보고 싶어 하였다.
129:1.12
(1421-2)
세베대의 아들들 중에서 야고보예수를 선생, 철학자로 여기면서 그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요한은 주로 그의 종교적인 가르침과 견해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다윗은 그를 하나의 기술자로는 존중하였지만, 그의 종교적인 견해와 철학적 가르침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129:1.13
(1421-3)
유다는 안식일 날 예수가 회당에서 설교하는 것을 듣기 위해 종종 그곳에 왔고, 그를 만나기 위해 머물러 있으려고 하였다. 유다는 자기 큰형을 자주 대할수록, 그가 진실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더욱 가지게 되었다.
129:1.14
(1421-4)
그 해에 예수는 인간 마음을 우세하게 지배하는 일에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고, 자기 속에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와 의식적인 접촉을 이루는 새롭고도 높은 차원들을 달성하였다.
129:1.15
(1421-5)
그 해는 그의 정착된 일생의 마지막 해였다. 그 후로 그는 한 곳에서 또는 한 가지 일에 한 해 전부를 보낸 적이 전혀 없었다. 그의 이 땅의 순례여행의 날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집중적인 활동 시기가 오기까지 아직도 오래 기다려야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한 반면에 강렬하고 활동적이었던 그의 과거의 일생과, 더욱 긴장되고 격렬한 앞으로의 대중을 위한 사명활동, 수년 동안의 광범위한 여행과 매우 변화가 많은 개인적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 사이에 있는 과도기적인 시기를 맞고 있었다. 그의 유란시아 증여의 신성한 그리고 인간-이후의 위상들에 해당하는 완전케 된 하느님-사람으로서 가르치고 전파하는 그의 생애에 들어가기 이전에, 그 세계의 한 사람으로서의 그의 훈련이 완성되어야만 했었다.
2. 28살 되던 해 (서기 22년)
129:2.1
(1421-6)
서기 22년 3월, 예수세베대와 작별하고 가버나움을 떠났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드는 경비로 사용하기 위한 약간의 돈을 요청하였다. 그는 세베대와 일하는 동안 아주 적은 양의 돈만 꺼내서 그것을 매달 나사렛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한 달은 요셉예수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가버나움으로 내려왔고, 그 다음 달에는 유다가버나움으로 올라와 그것을 받아 나사렛으로 가지고 갔다. 유다가 일하는 어업기지(漁業基地)는 가버나움의 남쪽으로 겨우 몇 마일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129:2.2
(1421-7)
예수세베대의 가족들을 떠나면서, 유월절 기간까지 예루살렘에서 머물러 있기로 동의하였고, 그들 모두가 그 사건 동안 거기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그들은 유월절 저녁만찬을 함께 축하할 것까지도 계획하였다. 그들은 예수가 떠날 때 하나같이 슬퍼하였으며, 특히 세베대의 딸들은 더욱 그러하였다.
129:2.3
(1421-8)
가버나움을 떠나기 전에, 예수는 자신의 새로 발견한 친구이며 친밀한 동행자인 요한 세베대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요한에게 “나의 때가 이를” 때까지 널리 여행을 할 계획임을 말하였고, 자기가 받아야 할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자기를 대신해서 나사렛 가족에게 매달 일정량의 돈을 보내달라고 요한에게 부탁하였다. 그러자 요한은 이렇게 약속하였다: “나의 선생이시여, 당신의 일을 시작하고, 이 세상에서 당신의 과업을 이루십시오; 이 일 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들이라도 제가 당신을 대신하여 처리할 것이며, 제가 친어머니와 친 남동생과 여동생들을 돌보는 것처럼 당신 가족들은 돌볼 것입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당신의 몫은 제가 맡아서, 당신이 지도한 대로 그리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쓰겠으며, 만약 그 돈이 다 사용된 후에 당신의 어머니가 어려운 사정에 놓이게 된다면, 제가 당신에게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이상 없다 해도 제가 번 돈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러니 평온하게 당신의 길을 가십시오. 제가 이 모든 일들에서 당신을 대신하여 행동하겠습니다.”
129:2.4
(1422-1)
그리하여 예수예루살렘으로 떠난 뒤에, 요한예수가 받아야 할 돈에 대해 자기 아버지 세베대와 의논하였으며, 그 액수가 매우 많은 것에 놀랐다. 예수가 이 문제를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맡겼기 때문에, 그들은 이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여 거기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나사렛의 가족들을 돕는 것이 더 좋은 계획이라는 것에 동의하였으며, 세베대는 우선 일부만 받고 팔려고 내 놓은 작은 집이 가버나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돈으로 그 집을 매입해서 요한이 그의 친구를 대신하여 집문서를 맡아보는 신탁인(信託人)이 되도록 지도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아버지의 충고를 그대로 따랐다. 2년 동안의 집의 임대 수입은 나머지 집값을 갚기 위해 저축되었으며, 이 돈에, 예수가 그때 요한에게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데 쓰도록 보내온 상당히 큰 금액의 돈이 증강되어, 집값을 거의 갚을 만한 액수가 되었고; 기한이 되었을 때 세베대가 약간의 차액을 자기 돈으로 보충하였으므로, 요한은 방이 두개인 이 집을 완불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예수가버나움에 있는 한 집의 소유주가 되었지만 자신은 이 사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였다.
129:2.5
(1422-2)
나사렛의 가족들은 예수가버나움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요한이 맡은 재정적 원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으며, 그들은 이제는 예수의 도움을 더 이상 받지 않고 살림을 꾸려나가야 할 때가 왔다고 믿었다. 야고보예수와 맺은 계약을 기억하였으며 그래서 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가족 부양의 책임을 충분히 맡아보았다.
129:2.6
(1422-3)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거의 두 달 동안 그는 성전에서 열리는 토론에 귀를 기울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다양한 학파들에 속한 랍비들을 가끔씩 방문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안식일은 베다니에서 보냈다.
129:2.7
(1422-4)
예수예루살렘으로 올 때, 전에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에게 자신을 “내 친아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편지를 세베대의 아내인 살로메로부터 받아 가지고 왔었다. 안나스는 그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개인적으로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예루살렘의 종교 선생들이 운영하는 많은 학교들을 방문하였다. 예수는 이 학파들을 면밀히 살피고 그 교습(敎習) 방법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동안, 대중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다. 비록 안나스예수를 위대한 사람으로 보았지만, 그에게 어떻게 충고를 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어떤 학교라 할지라도 예수가 학생으로서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제안하는 일은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으며, 또한 그는 예수가 한 번도 이 학교들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식 교사의 지위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129:2.8
(1422-5)
이윽고 유월절이 가까이 이르자, 사람들이 모든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고, 가버나움세베대와 그의 전(全)가족도 그곳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모두 안나스의 넓은 집에 머물렀고, 거기에서 즐거운 한 가족이 되어 유월절을 기념하였다.
129:2.9
(1422-6)
유월절 주간이 끝나기 전에, 겉으로 보기에 우연한 기회에, 예수는 부유한 여행자와 그의 아들을 만났고, 그 아들은 17세 정도 된 청년이었다. 이 두 여행자들은 인도인이었는데, 로마와 지중해의 여러 다른 지역들을 방문하는 도중이었고, 자기들 둘을 위해 통역을 하면서 아들의 가정교사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유월절 기간을 맞아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다. 그 아버지는 자기들과 함께 여행해 주도록 예수에게 끈질기게 부탁하였다. 예수는 자신의 가족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떠나 있는 동안 생활의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르는 가족들과 거의 2년 동안이나 떨어져 있는 것은 힘들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동방에서 온 그 여행자는 필요시에 예수의 가족의 안녕을 돌볼 수 있는 믿을 만한 친구에게 일 년 분 봉급을 미리 주겠다고 예수에게 제안하였다. 그리고 예수는 그 여행에 동참하기로 동의하였다.
129:2.10
(1423-1)
예수는 이 많은 돈을 세베대의 아들 요한에게 전부 맡겼다. 그리고 이미 너희는 요한이 이 돈을 가버나움의 집값을 지불하는데 어떻게 사용했는지 들어서 알고 있다. 예수세베대를 충분히 신뢰하고 지중해 지역의 여행에 대해 말해 주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그의 혈육들에게 까지도 절대 비밀을 지킬 것을 당부하였으며, 세베대예수가 2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어디에 갔는지를 결코 누설하지 않았다. 예수가 이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나사렛의 식구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여기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자기 아들 요한과 함께 여러 번 나사렛을 찾아온 세베대의 확신에 찬 말만이 마리아의 가슴속에 얼마간의 희망을 갖게 해 주었다.
129:2.11
(1423-2)
이 기간 동안 나사렛의 가족들은 매우 잘 지냈으며; 유다는 자기 몫을 상당히 증가시켰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가외(加外)의 몫까지 감당하였다. 그들에게는 도움이 거의 필요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요한 세베대예수가 지시한대로 매달 마리아에게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실천 관행이었다.
3. 29살 되던 해 (서기 23년)
129:3.1
(1423-3)
예수의 29번째 해 전부는 지중해 지역 여행을 마무리 짓는 데 사용되었다. 이 체험들을 드러내도록 우리에게 허락된 한도 내에서, 주요 사건들이 다음 장(障)에 서술되는 내용들의 주제를 이룰 것이다.
129:3.2
(1423-4)
로마 권역 세계에 대한 이 여행 동안,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다마스커스의 서기관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고린도와 돌아오는 행로의 다른 경유지들에서는 유대인 교사로 알려졌다.
129:3.3
(1423-5)
이 기간은 예수의 일생 중에서 사건 많은 기간이었다. 이 여행 도중에 그는 많은 동무들을 사귀는 기회를 가졌지만, 이 체험은 그의 가족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전혀 알려진 적이 없었고 사도들도 알지 못하였던 그 자신만의 일생의 한 위상이었다. 예수는 계속 육신 속에서 살고 있었고, 자기가 광범위한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벳세다세베대를 제외하고는) 그 세계를 떠났었다. 그의 친구들 중 몇몇은 그가 다마스커스로 돌아갔다고 생각하였고 또 다른 이는 인도로 갔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것은 그가 한 때 카잔(선생)의 보좌관 자격으로 그곳에 오도록 초청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29:3.4
(1423-6)
예수팔레스타인으로 되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알렉산드리아로 떠났었다고 생각하였고; 그는 자신이 팔레스타인에 없는 동안 문화와 지식의 도시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가족들이 믿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벳세다에서 배를 만드는 세베대만이 유일하게 이 사실들을 알았지만, 세베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129:3.5
(1423-7)
유란시아에서 예수의 일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해독하기 위해 너희가 모든 노력을 기울일 때, 너희는 미가엘 증여의 동기에 대해서 유념해야 한다. 만약 너희가 겉으로 보기에 신비한 듯한 그의 수많은 행위들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가 너희의 세계에 체류한 목적을 알아야만 한다. 그는 과도한 매력을 느끼게 하거나 주의를 쏟게 하는 개인적 생애를 이루지 않으려고 항상 조심하였다. 그는 동료들에게 비범성이나 과대한 힘을 나타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자기 동료 필사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드러내는 일에 전념하였고, 동시에 바로 그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의지에 항상 복종하며 자신의 이 땅에서의 일생을 필사자로서 살아가는 숭고한 과업에 전념하였다.
129:3.6
(1424-1)
이 신성한 증여를 배우는 모든 필사자 수련생들이, 그가 유란시아에서 이 육신화의 일생을 살았지만 자신의 전체 우주를 위해서 살았다는 것을 안다면, 이 세상에서의 예수의 일생을 납득하는 데 항상 도움이 될 것이다. 네바돈 전체 우주에 있는 모든 개개의 거주 구체에 대하여, 필사자 자연 본성의 육신으로 살았던 그의 일생과 연관하여, 특별하고 영감을 주는 그 어떤 것이 있었다. 유란시아에 머물렀던 그의 사건 많은 기간 이후로, 거주할 만 하게 된 모든 세계들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 지역우주의 모든 미래 역사 속에서, 의지를 가진 창조체들이 거주하게 될 모든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진리가 될 것이다.
129:3.7
(1424-2)
이 기간 동안, 그리고 로마 지역을 여행한 체험을 통해, 사람의 아들은 그와 동시대에 살던 여러 종류의 민족들과의 교육적인 접촉-훈련을 실천적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그가 나사렛으로 돌아오기까지, 훈련을 위한 이 여행을 통해서, 그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며, 유란시아에서 자신의 실존을 어떻게 성취해야 할지를 배워나가기 시작하였다.
129:3.8
(1424-3)
지중해 지역을 여행한 그의 실제 목적은 사람을 아는 것이었다. 그는 이 여행에서 수백 명의 사람과 가깝게 사귀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 부자와 가난한 자, 높은 자와 낮은 자, 흑인과 백인, 교육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 교양 있는 자와 교양 없는 자, 동물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 종교적인 사람과 비종교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과 비도덕적인 사람을 만났고 사랑하였다.
129:3.9
(1424-4)
이 지중해 지역 여행 도중에, 예수는 물질적인 필사자의 마음을 정복하는 자신의 인간 과업에서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으며, 그에게 내재하는 조절자는 이 동일한 인간 지성을 상승시키고 그것의 영적 정복에 있어서 굉장한 진전을 이루었다. 이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아들, 우주 아버지창조자 아들이라는 사실을 실질적으로─모든 인간 확실성과 더불어─ 알게 되었다. 그 조절자는, 그가 이 네바돈 지역우주를 조직하고 관리-운영하기 전에 자신의 신성한 아버지와 함께 하는 파라다이스에서의 체험에 대한 자신의 희미한 기억을, 점점 더 사람의 아들의 마음속에 떠오르게 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하여 그 조절자는, 예수가 영원한 과거의 다양한 신(新)시대들 속에 사는 동안, 이전(以前)의 신성한 실존으로 있을 때 가졌던 필요 불가결한 기억들을 예수의 인간 의식 속으로 조금씩 불어넣었다. 그 조절자가 그에게 회상시킨 그의 인간 이전의 체험 중 마지막 에피소드는, 유란시아 육신화의 과정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자신의 의식적 개인성을 양도하기 직전에, 구원자별임마누엘과 송별 회의를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이전(以前) 실존의 이 마지막 장면에 대한 기억은, 요단강에서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는 바로 그 날 예수의 의식 속에 명료해졌다.
4. 인간 예수
129:4.1
(1424-5)
계속 지켜보고 있던 지역우주에 있는 천상(天上)의 지능존재들에게, 예수의 이 지중해 지역 여행은, 적어도 십자가에 못박히고 필사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 이전의, 그의 모든 지상 체험 전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곧 뒤이은 그의 대중을 위한 사명활동의 신(新)시대와는 대조적으로, 이 기간은 그의 개인적 사명활동에 있어서 매혹적인 기간이었다. 이 독특한 에피소드는 그가 여전히 나사렛의 목수였고 가버나움의 선박 목수였으며 다마스커스의 서기관으로 있을 때의 일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에 더욱 열중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아직도 사람의 아들이었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간 마음을 충분히 지배하는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하였고; 조절자는 필사자의 정체성을 충분히 익히지 못하였고 부본화 시키지 못하였다. 예수는 여전히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129:4.2
(1425-1)
사람의 아들의 순수한 인간 종교적 체험─개인적 영적 성장─은 29세가 된 이 해 동안에 거의 정점에 이르는 달성에 도달하였다. 영적 발전에 대한 이러한 체험은, 그의 생각 조절자가 도착한 그 순간부터, 사람의 물질적 마음과 영의 마음-자질─이 두 마음들을 하나로 만드는 현상, 요단강에서 그가 세례 받는 날에, 사람의 아들이, 영역에 육신화된 필사자로서, 완벽과 최종을 달성했던 그 체험─ 사이에서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완성되고 확정되는 그 날까지, 일관적으로 점진적인 성장을 계속하였다.
129:4.3
(1425-2)
이 해들 전체를 통하여, 그는 하늘에 계신 자기 아버지와는 공식적인 교제에 많이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에, 내주 하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영 현존과의 개인적 교통을 이루는 데에는 효력적인 방법들을 점점 더 완전하게 하였다. 그는 실제적인 일생, 충만한 일생, 그리고 진실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평범한 일생을 육신 속에서 살았다. 그는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의 물질세계들 속에서는, 인간 존재들의 일생의 삶의 본질과 그 전체 합계의 실재성이 동등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129:4.4
(1425-3)
사람의 아들은 뛰어난 기쁨에서부터 심오한 슬픔까지, 인간 감정의 넓은 영역을 모두 체험하였다. 그는 명랑한 아이였으며 훌륭한 유머 감각을 지닌 존재였으며, 마찬가지로 “슬픔 위에 비탄이 겹쳐진 사람”이었다. 영적 감각에서 보자면, 그는 필사자 일생을 통해 바닥으로부터 꼭대기까지, 시작으로부터 끝까지를 체험하였다.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인간 실존의 사회적 양극단을 통하면서 삶을 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인류의 전반적인 그리고 완벽한 체험에 대해 지적으로 전적으로 정통하게 되었다.
129:4.5
(1425-4)
예수는 생각들과 느낌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세계에서 진화하고 상승하는 필사자들이 갖는 충동들과 자극들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는 육체적, 지적, 영적 자아신분의 시발점부터 유아기,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를 지나 어른에까지─심지어는 죽음에 대한 인간 체험까지─ 이르는 인간 일생을 살아 나갔다. 그는 지적, 영적 진보를 이루는 이러한 평범하고 친숙한 인간 기간들을 통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란시아에서는 지금까지 극소수의 필사자들밖에 성취하지 못한, 인간과 조절자의 화해를 이루는 것과 같은 더욱 높고 진보된 위상도 역시 충만하게 체험하였다. 그리하여 필사 사람의 전 생활을 체험한 그의 일생은, 너희의 세계에서 산 것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가진 모든 다른 진화하는 세계에의 일생에서도 그러하고, 빛과 생명에 정착된 최고의 그리고 가장 진보된 모든 세계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29:4.6
(1425-5)
비록 그가 필사자 육신을 가지고 살았던 이러한 완전한 일생이, 이 땅에서, 여전히, 그와 같은 시대에 사는 기회를 가졌던 그의 동료 필사자들로부터 분별불가하고 보편적인 승인을 받아들이지 못해왔다 할지라도, 유란시아에서 나사렛 예수가 육신으로 살았던 그 일생은, 하나이자 같은 시기에, 그리고 하나이자 같은 개인성-일생 안에서, 필사 사람에 대해 영원한 하느님의 계시에서의 충만함, 그리고 무한한 창조자의 만족에 대해 완전해진 인간 개인성의 현존활동을 구성하여 이루는 것으로서, 우주 아버지에 의한 충만하고도 분별불가한 승인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129:4.7
(1425-6)
그리고 이것이 그의 참되고 최극 목적이었다. 그는 그 당시 또는 모든 다른 시대에 있어서의 어떤 아이나 어른, 남자나 여자에 대한 완전하고도 세부적인 본보기로 유란시아에 살려고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그의 충분하고 풍성하며 아름답고 고상한 일생 속에서 우리 모두가 정확한 모범과 신성한 영감을 주는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가 진실하고 순수한 인간 일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다른 모든 인간 존재들이 모방해야 할 어떤 본보기를 설정하려고 이 세상에서 산 것이 아니었다. 그는 너희들 모두가 땅에서 너희 일생을 사는 것과 똑같은 자비로운 보살핌에 의해서 육체 속의 일생을 살았다; 그리고 그가 자기 시대에 자신의 있는 상태 그대로 필사자 일생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있는 상태 그대로 우리의 일생을 살라는 모범을 그것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설정해 주었던 것이다. 너희는 그의 일생을 살아가기를 열망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가 그의 삶을 산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리고 같은 의도로 너희가 너희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할 수 있다. 예수는 이 지역우주의 전체 영역에서 모든 시대의 필사자들을 위하여 기술적인 본보기와 세세한 부분의 모형이 되고 있지는 않지만, 최초로 상승 과정이 이루어지는 세계들로부터 우주들의 우주를 지나 하보나를 통해 파라다이스로 가는 모든 파라다이스 순례자들에게, 영속적으로 영감과 지침이 되어 주고 있다. 예수는 사람으로부터 하느님께로, 부문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한 것으로, 지상으로부터 하늘로, 시간으로부터 영원으로 이르는, 새롭고 살아있는 길이다.
129:4.8
(1426-1)
스물-아홉 살 되던 해가 저물음에 따라서, 나사렛 예수는 육신 속으로 머무는 자들로서의 필사자들에게 요구되는 일생의 삶을 실질적으로 완결했다. 그는 하느님의 충만함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었다; 이제는 하느님에 대한 현시를 시작하기 위한 기회를 기다리는, 거의 사람에서의 완전함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30세가 되기 전에 이 모든 일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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