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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6 편
혹독한 2 년
126:0.1
(1386-2)
예수가 이 땅에서 가졌던 모든 체험 중에서, 14살과 15살 때 가장 혹독한 시련을 맞이하였다. 자신의 신성과 운명에 대해 이미 자아-의식적으로 되기 시작한 이후, 그리고 내주하는 조절자와는 아직 많은 교통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있었던, 이 두 해 기간은 그의 사건 많은 유란시아에서의 일생 중에서 가장 쓰라린 시절이었다. 이 2년 동안의 기간은 가장 큰 시험, 실제적인 유혹을 받은 기간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면서, 초기의 혼란과 청년기의 문제들에 적응하는데 있어서, 어떤 젊은 청년도 예수만큼 힘겨운 시험을 겪은 사람은 없었다.
126:0.2
(1386-2)
예수가 청년기의 발전을 이룩한 중요한 이 기간은, 예루살렘 방문을 마치고 나사렛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마리아는 처음에는 자기 아들을 다시 찾게 된 것에 대해, 예수가 충성된 아들이 되어─한 번도 그렇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집에 돌아왔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앞으로의 그의 일생에 대해 어머니가 세운 계획에, 그가 지금부터는 더욱 순종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매우 행복해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물질적인 망상과 은근한 가족적 자부심은 오래지 않아서 빛이 바래게 되었다; 얼마 가지 못하여 그녀는 더욱 완벽하게 환상에서 깨어났다. 그 소년은 점점 더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냈고, 자기 문제들을 어머니와 상의하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었으며, 그러는 동안에 그의 부모들은 그가 자기 아버지의 일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깊은 사색하는 일과 이 세상의 관련사들 사이에서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점점 더 이해하기가 어려워졌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부모는 예수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126:0.3
(1386-3)
나이가 들어가면서, 유대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연민의 정과 사랑이 더욱 깊어갔지만, 정치적으로 임명된 제사장들이 아버지의 성전에 현존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개심은 세월이 감에 따라 더 깊어졌다. 예수는 진지한 바리새인들과 정직한 서기관들을 매우 존중하였으나,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이나 정직하지 못한 신학자들은 심히 혐오하였다; 진실하지 못한 모든 종교적 영도자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이스라엘의 영도자관계를 세밀히 관찰한 후에는,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가 될 수도 있다는 쪽으로 그가 유혹을 받은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러한 유혹에 넘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26:0.4
(1386-4)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현자들 사이에서 이룬 그의 공훈에 대한 이야기는 나사렛 사람들을 매우 우쭐하게 했으며, 특히 그를 가르쳤던 회당 학교 선생들에게는 더 할 나위가 없었다. 한동안 모든 사람들 입에서 그의 칭찬이 자자했다. 모든 동네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지혜와 칭찬받을 만한 그의 행위들에 대해 호의를 가졌고, 장차 그가 이스라엘에서 위대한 영도자가 되도록 운명되었다; 드디어 갈릴리에 있는 나사렛에서도 실제로 위대한 선생이 나오게 되었다고 내다보았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예수가 15세가 되어 안식일에 회당에서 정기적으로 성서를 읽을 수 있게 허락되는 그 날을 고대하였다.
1. 열네 살 되던 해 (서기 8년)
126:1.1
(1387-1)
그 해에 그는 열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였다. 그는 훌룡한 멍에 만드는 자가 되었었고 그리고 천과 가죽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모두 능숙했다. 또한 전문적인 목수와 가구 만드는 자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 해 여름에, 그는 기도와 명상을 하기 위하여 나사렛 북서쪽에 있는 언덕 꼭대기로 자주 올라갔다. 그는 땅에서의 그의 증여의 본성에서 점진적으로 더욱 자아-의식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126:1.2
(1387-2)
이 언덕은 100년 보다 좀 더 오래 전에는 “바알을 숭배하는 장소”였었고, 지금은 이스라엘의 저명한 성자(聖者)인 시미온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다. 이 시미온의 언덕 꼭대기로부터 예수나사렛과 그 주변 지방을 바라보았다. 그는 메기도를 바라보며 이집트 군대가 아시아에서 첫 번째 승리를 거두었던 이야기와; 그리고 그보다 후대에서는 다른 군대가 유대의 왕 요시아를 참패시켰던 이야기를 회상하곤 하였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는, 드보라바락시세라를 쳐부쉈다는 장소인 타나크를 바라볼 수 있었다. 멀리로는, 요셉의 형제들이 그를 이집트의 노예로 팔아버렸다고 배워온 도탄의 언덕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에발산과 게리짐 산으로 눈을 돌리고 아브라함야곱 그리고 아비멜렉에 대한 전설들을 혼자 회상해 보았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자기 아버지 요셉의 민족들과 관계된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사건들을 마음속에 회상하였다.
126:1.3
(1387-3)
그는 회당 학교 교사들의 지도하에, 고등(高等) 과정들에 해당되는 독해(讀解)를 계속해 나갔으며, 집에서는 자기 남동생들과 여동생들이 알맞은 나이가 되는 대로 그들의 교육을 계속하여 맡아보았다.
126:1.4
(1387-4)
예수가 다음 해 8월에 15세가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서 교육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그가 오랜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요셉은 이 해 초기에 나사렛가버나움의 부동산에서 나오는 수입을 따로 저축해 두기로 하였다.
126:1.5
(1387-5)
이 해 초기에, 요셉마리아는 똑같이 자기들의 맏아들의 운명에 대하여 자주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는 진정으로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그를 납득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그의 속을 헤아리기가 너무 힘들었으며, 게다가 그에게서 어떤 특출하거나 기적적인 사건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어떤 초인간적이거나 기적적인 솜씨를 보여 주기를 오랫동안 숨을 죽이고 기다려왔지만, 그녀의 기대는 늘 비참할 정도의 실망으로 끝나곤 하였다. 이러한 모든 상황에 의해서 용기를 잃게 되었고, 심지어는 낙담하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의 독실한 신자들은, 선지자들과 약속의 사람들은 항상 기적을 베풀고 놀라운 일을 행함으로써 자신들의 소명을 실증하고 자기들의 신성한 권위를 세워야한다는 말을 진정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에게서는 이러한 일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부모들은 그의 장래를 깊이 생각할수록 더욱 심각한 혼란에 빠져 들어갔다.
126:1.6
(1387-6)
나사렛 가정의 개선된 경제적 조건이 가정생활에 여러 모로 반영되었고 특히 목탄으로 그 위에 글씨를 쓸 수 있는, 필기 석판으로 사용되는 흰 색 칠판의 증가된 숫자에 반영되었다. 또한 예수는 그의 음악 교습을 다시 받을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그는 하프를 연주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다.
126:1.7
(1387-7)
그 해 전체 기간은, 예수가 “자라가면서 하느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졌다”고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가족의 전망은 좋은 위치에 있었고 장래는 밝았다.
2. 요셉의 죽음
126:2.1
(1388-1)
숙명적인 날인 9월 25일 화요일이 오기까지는 모든 일들이 순조로웠으며, 그 날 세포리로부터 한 사람이 달려와서, 요셉이 분봉왕의 관사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기중기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쳤다는 비참한 소식을 나사렛 가정에 알려주었다. 세포리에서 온 메신저는 요셉의 집으로 오는 길에 목공소에 들려 예수에게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알렸고, 마리아에게 그 슬픈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두 사람이 함께 집으로 달려갔다. 예수는 그 즉시로 아버지에게 가기를 원하였으나, 마리아는 자신이 남편의 곁으로 가는 것이 급하여 아무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 때 10살이었던 야고보세포리까지 동행하게 하고, 예수에게는 그 동안 집에 남아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어린 동생들을 돌보아 주도록 지도하였으며, 그 때 마리아요셉이 얼마나 심각한 중태에 빠져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요셉마리아가 도착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그를 나사렛으로 옮겼으며, 다음 날 그의 선조들이 있는 곳에 장사 지냈다.
126:2.2
(1388-2)
전망이 좋았고 장래가 밝았던 바로 그 때에, 겉으로 보기에 무자비한 손길이 이 나사렛 가정의 가장(家長)을 쳐서 넘어뜨렸고, 이 가정의 관련사들은 중단되었으며, 예수를 위한 모든 계획과 장래의 교육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막 14살이 지난 이 목수 소년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살면서 신성한 본성을 계시하라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위임 명령을 완수해야 할 책임뿐만 아니라, 과부가 된 어머니와 7명의 동생들─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다른 한 동생을 부양해야만 할 책임도, 그의 젊은 인간 본성이 어깨에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실현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유족이 된 가족들에게는, 나사렛의 이 소년만이 유일한 부양자이며 위안이었다. 그리하여, 운명의 이 젊은이에게 유란시아 위에서 사건에서의 자연 질서에 순응하여 일어나게 된, 이러한 발생사건으로 인하여, 어린 나이에 이렇게 무거운 그러나 매우 교육적이고 교육단련적인 책임감을 길러 줄 수 있는 일이 너무 일찍 맡겨지는 듯이 보였으며, 이로써 예수는 한 인간 가족의 가장이 되었고, 자신의 동생들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어머니를 부양하고 보호하면서, 자기 아버지의 집,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았던 동안에 체험하게 되는 유일한 가정생활의 수호자가 되었다.
126:2.3
(1388-3)
예수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그 일을 끝까지 성실하게 잘 수행해냈다. 적어도 그에게는 자기 일생에 있어서 난국이 예상되는 하나의 큰 문제가 비극적으로 해결되었는데─, 그는 이제 랍비들 밑에서 공부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예수가 “어떤 사람의 제자도 아니다”는 말은 언제나 변함없는 사실이었었다. 그는 항상 어린 아이로부터도 배울 자세가 되어있었던 반면에,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인간의 자료로부터 근거를 도입한 적은 결코 없었다.
126:2.4
(1388-4)
그 때까지도 예수는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가브리엘이 자기 어머니를 방문하였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대중을 위한 사명활동을 시작하던, 세례를 받던 날에야 요한으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126:2.5
(1388-5)
해가 지나면서, 나사렛의 이 젊은 목수는 다음과 같은 일정한 평가기준에 의해서 사회의 모든 제도들과 모든 종교적 관습들을 점점 더 깊이 분석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혼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그것은 사람에게 하느님을 알려 주는가? 그것은 하느님에게 사람을 알려 주는가? 이 젊은이는 오락적이며 사교적인 측면을 온통 외면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간과 정열을 점점 더 두 가지 목적에 쏟아 부었는데: 그것들은 가족의 부양하는 일과, 자기 아버지의 천상(天上)의 뜻을 이 세상에서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일이었다.
126:2.6
(1389-1)
이 해의 겨울 동안, 예수가 타는 하프 소리를 즐기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왜냐하면 예수는 굉장한 이야기꾼이었기 때문에), 그가 읽어주는 그리스어 경전을 듣기 위해 매일 밤마다 그의 집에 들르는 것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습관처럼 되었다.
126:2.7
(1389-2)
요셉이 죽었을 당시에는 상당한 돈이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가족의 경제적 관련사들은 꽤 순탄한 편이었다. 예수는 일찍부터 사업적인 판단력이 있었고 재정적인 면에서도 총명성을 실증하였다. 그는 자유주의적이고 검소하였다; 절약하면서도 관대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의 현명하면서도 효과적인 행정-관리자였다.
126:2.8
(1389-3)
그러나 예수나사렛 마을 사람들이 그 가정에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도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셉은 가버렸다. 요셉은 보통 찾아보기 힘든 남편이자 아버지였으며, 그들 모두는 그를 그리워하였다. 더구나 그들은 그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 또는 그의 마지막 축복의 말을 들을 기회도 갖지 못하였다는 생각에 더욱 애처로워하는 듯하였다.
3. 열다섯 살 되던 해 (서기 9년)
126:3.1
(1389-4)
15살이 되는 이 해 중순경에─우리는 유대인의 달력이 아니라 20세기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달력에 의해서 계산하고 있다─, 예수는 가정을 운영하는 일을 확고하게 장악했다. 그 해가 다 가기도 전에, 저축했던 돈은 모두 바닥이 났고, 그리하여 그들은 그의 이웃인 야곱요셉이 공동으로 소유하였던 나사렛에 있는 집들 중에서 하나를 처분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126:3.2
(1389-5)
서기 9년 4월 17일 수요일 밤에, 그 가정의 마지막 아기인 이 태어났으며, 예수는 이렇게 힘들고 특별히 슬퍼하는 호된 시련의 기간 중에 처해있는 어머니를 위안하고 섬기는데 있어서 최선을 다하여 자기 아버지를 대신하려고 온갖 힘을 다 기울였다. 거의 20여 년 동안을 (그가 자신의 대중을 위한 사명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예수을 기르는 데 있어서 세상의 어느 아버지보다도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양육하였다. 그는 또한 자기 가족의 일원들인 다른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좋은 아버지 노릇을 하였다.
126:3.3
(1389-6)
이 해 동안에, 예수는 처음으로 기도를 구체화시켰는데, 그는 나중에 자신의 사도들에게도 이 기도를 가르쳤으며, 이 기도는 나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기도”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가정 경배로부터 발전되어 형성된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많은 형태의 찬미들과 여러 개의 공식적인 기도문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예수는 나이가 든 동생들에게,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그들이 개별적으로 표현하는─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매우 즐겼던 것과 마찬가지의─ 방법을 가르쳤지만, 그들은 그의 의도를 깨달을 수가 없었으며 자기들이 암기하고 있던 기도의 형식으로 늘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이 제시한 구절들을, 나이가 든 남동생들과 여동생들이 따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나중에는 자기가 없어도 그들이 각자 기도할 수 있도록 고무시키려고 노력했었는데, 그 결과로, 예수가 그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들에게 제시했던 이 구절들로 대부분 만들어 진 하나의 형식화된 기도를 모두가 사용하게 되었다.
126:3.4
(1389-7)
마침내 예수는, 가족들 각자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하였던 자신의 관념을 포기하게 되었으며, 10월 어느 날 저녁에, 돌로 만든 낮은 탁자 앞에 앉아서, 약 18 인치 정사각형의 매끄러운 나무판위에 목탄으로 그 기도문을 썼는데, 이 후부터는 이것이 가족들이 하는 기도의 표준이 되었다.
126:3.5
(1389-8)
그 해에 예수는 혼란스런 생각들로 매우 뒤숭숭한 시간을 보냈다.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을 방문 하였을 때 “그가 자기 아버지의 일을 시작할 때가 이르렀다”고 자기에게 가르쳐준 것에 대하여 즉시 실행에 옮기려던 모든 계획은 이미 거의 효과적으로 없애 버렸다. 예수는 육신적인 아버지의 가족을 돌보는 것이 모든 다른 의무들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의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자신의 첫 번째 의무라고, 정확하게 판단하였다.
126:3.6
(1390-1)
그 해를 지내면서, 예수에녹서라고 불리는 것으로부터 한 구절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자신의 유란시아에서의 증여 임무를 표현하는 하나의 호칭으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그 구절에서 따오도록 영향을 주었다. 그는 유대인메시아에 대한 관념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았으며, 그런 후에 그는 자기가 결코 그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굳게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민족을 도움을 주는 것은 애타게 갈망하였지만, 유대 군대를 이끌고 가서,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려는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왕좌에 절대로 앉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명이 단지 유대인들만의 영적 해방자나 도덕적 선생으로 국한 되어 있다고도 믿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사명은 어떤 면에서도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히브리 경전에 나타난 예정되어진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실행하는 데 있지 않았다; 적어도 유대인들이 예언자들의 예언들을 납득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사람은 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다니엘에서 묘사하는 그러한 사람의 아들로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였다.
126:3.7
(1390-2)
그러나 자신이 세상의 선생으로 나아갈 때가 오면, 자기를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인가?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어떤 주장을 해야만 할 것인가?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어떤 명칭으로 부르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126:3.8
(1390-3)
이와 같은 모든 문제들을 마음속에서 숙고하는 가운데, 그는 나사렛 회당 도서관에서 그가 공부하고 있었던 묵시적인 책들 중 “에녹서”라고 불리는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그 옛날의 에녹이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의 흥미를 매우 끌었고, 그래서 그는 그것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그 중에서도 “사람의 아들”라는 용어가 나타나 있는 구절이 특히 그의 관심을 끌었다. 소위 에녹서라고 불리는 이 책의 저자는 그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 지에 대하여 그리고 이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하고 있었으며, 이 사람의 아들은 자신이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으로 내려오기 전에, 모두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느님과 함께 하늘의 영광스러운 정원을 함께 거닐었다; 그리고 불쌍한 필사자들에게 구원을 선언할 목적으로 이 세상으로 내려오기 위해 이러한 모든 권세와 영광을 버렸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예수가 이 구절들을 읽곤 하였을 때, (이들 가르침이 섞여 들어가게 된, 동방의 신비주의 가운데 많은 것이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잘 납득하고 있으면서) 그의 가슴 속에서 응답이 있었고 그리고 그는 히브리 경전들 속에 있는 메시아를 예언하는 모든 부분들과 유대인의 해방자에 대한 모든 이론들 중에서, 유일하게 부분적으로 인정을 받은 이 에녹서 안에 감추어져 있는 이 이야기만큼 진리에 가까운 것은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서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 때 그 책으로부터, 자신의 취임에 대한 명칭으로 “사람의 아들”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나중에 대중을 위한 일들을 시작하였을 때 이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예수는 어떠한 출처에서 그것이 발견되었는지에 상관없이, 진리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힘을 갖고 있었으며, 그 진리를 채택하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126:3.9
(1390-4)
이 무렵에, 그는 앞으로 세상을 위하여 할 많은 일들을 거의 완벽하게 결정을 내려놓았지만, 아직도 자기 아들이 유대인메시아가 될 것이라는 관념을 굳게 가지고 있던 어머니에게는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26:3.10
(1390-5)
이제 예수의 젊은 시절 동안의 큰 혼란기가 시작되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일을 시작하게 되는”─자기 아버지의 사랑 넘치는 본질을 모든 인류에게 나타내 보이는─ 자신의 땅에서의 사명에 대한 본질을 어느 정도 결정하면서, 그는 민족적인 해방자, 유대인의 선생 혹은 왕의 출현에 관하여 기록한 성서들 중에서 많은 구절들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하였다. 이 예언들은 어떤 사건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가? 그는 비 유대인인가? 아니면 유대인인가? 그는 다윗 가문의 사람인가 아니면 그와 상관이 없는 사람인가? 어머니는 그렇다고 단언하였고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그 자신도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결정을 하였다. 그러면 예언자들이 메시아의 본성과 사명을 혼동했었던 것일까?
126:3.11
(1391-1)
결국, 그의 어머니의 말이 맞을 가능성도 있었을까? 과거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결국 어머니가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었다. 만약에 그가 하나의 새로운 선생이고 메시아가 아니라면, 그가 땅에서 자신의 사명을 행하는 동안에 혹시 그러한 유대인메시아예루살렘에서 나타나게 된다면 어떻게 그를 알아볼 수가 있을까?; 그리고 나아가서, 이 유대인 메시아와 자신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가 사명을 착수한 후에는 가족들과, 유대 국가 그리고 종교와, 로마제국과, 이방인들 그리고 그들의 종교와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 자신과 어머니와 그리고 다른 8명의 배고픈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면서, 목공소에서 계속 작업하는 동안, 이 젊은 갈릴리 사람은 이러한 중대한 문제들 하나하나를 마음속에서 떠올리면서 진지하게 심사숙고하였다.
126:3.12
(1391-2)
그 해가 다 지나가기 전에, 마리아는 가족을 위해 마련된 돈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비둘기 파는 일을 야고보에게 넘겼다. 그들은 이윽고 두 번째 소를 구입하게 되었고, 미리암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사렛의 이웃들에게 우유 판매를 시작하였다.
126:3.13
(1391-3)
예수의 긴 시간 동안의 명상과, 기도하기 위해 언덕 꼭대기로 자주 가는 것, 그리고 때때로 그가 제시하는 이상스러운 많은 관념들로 인하여, 그의 어머니는 몹시 불안해하였다. 그녀는 간혹 자기 아들이 제 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 아이가 약속의 아이이므로 다른 젊은이들과는 어떤 면으로든지 다를 것임을 기억해냄으로써 결국 안정을 되찾곤 하였다.
126:3.14
(1391-4)
그러나 예수는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어머니에게 까지도, 자기 생각들 전부를 말하지 않고 자기 관념들 전부를 제시하지 않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 해부터 계속하여, 예수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말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없다거나 그것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과 다르거나 특별난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제들을 납득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고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볼 때에는 모든 면에서 평범하였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믿을 수 있고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친구를 매우 갈망하고 있었지만, 그의 문제는 연관-동료 인간들이 납득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것이었다. 이렇게 유별난 상황의 독특성이 그로 하여금 그의 짐을 홀로 지도록 강요하였다.
4. 회당에서의 첫 번째 설교
126:4.1
(1391-5)
15번째 생일을 맞으면서, 예수는 이제 안식일에 공식적으로 회당의 설교단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도 예수는, 연사가 없을 경우에 성서를 읽어달라는 청을 여러 번 받았었지만, 이제는 법에 따라서, 그가 직접 예배봉사를 수행할 수 있는 날이 이르렀다. 따라서 15번째 생일이 지난 후 첫 번째 안식일에, 카잔은 회당의 아침 예배봉사를 예수가 수행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래서 나사렛에 있는 모든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이 젊은이는 다음과 같은 성서 구절을 선택하여 일어서서 읽기 시작하였다:
126:4.2
(1391-6)
주님 하느님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시기 위함이다; 그가 나를 보내신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가슴이 상한 자들을 고치며, 포로 된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영적으로 갇힌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이다; 하느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전파하기 위함이다; 모든 슬픈 자들을 위로하되, 재 대신 아름다움을, 슬픔 대신 희락의 기쁨을, 근심의 영 대신 찬송의 노래를 그들에게 주어, 께서 영화롭게 될 곳에, 주님이 심으신, 정의(正義)의 나무들이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126:4.3
(1392-1)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 만군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라. 주님 하느님께서 아마도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126:4.4
(1392-2)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억압받는 자들을 풀어주라. 아비 없는 자들을 보호하고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다.”
126:4.5
(1392-3)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며 세상 만물의 주님 앞에 경배할까? 내가 일 년 된 송아지를 번제물로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주님께서 수천 마리의 숫양이나 수만 마리의 양, 아니면 강 같이 흐르는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아니라, 주님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그리고 주님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자비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느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126:4.6
(1392-4)
“그런즉 너희가 지구의 순환계 위에 앉으신 하느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느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는지 볼 것이며, 누가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셨는지를 보라. 자기의 크신 권세로 이 모든 일을 행하셨고, 그의 힘이 강하므로 하나도 이루지 못한 것이 없느니라. 약한 자에게는 힘을 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말라; 나는 네 하느님이니,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할 것이고 너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참으로 나의 정의로움의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 것이니, 이는 내가 주님 너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말하고 있으니, 두려워 말라, 이는 내가 너를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126:4.7
(1392-5)
주님이 말씀하기를,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내가 나의 하인으로 너희를 택하였으니, 이는 너희 모두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영원자인 줄을 깨닫게 하려 함이다. 나는 주님이요,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126:4.8
(1392-6)
그렇게 읽고 난 다음, 그가 자리에 앉았으며, 그런 후에 사람들은 예수가 그토록 우아하게 자기들에게 읽어주었던 문구들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성읍사람들은 그에게서 그렇게 엄숙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토록 열성적이고 진지한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토록 어른스럽고 단호하고 권위 있는 모습을 전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126:4.9
(1392-7)
이 안식일 오후에 예수야고보를 데리고 나사렛 언덕으로 올라갔으며, 그들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 두 장의 매끈한 나무판들 위에 목탄을 사용하여 그리스어로 십계명을 썼다. 나중에 마르다는 이 판들에 색을 칠하고 장식을 하였는데 이것들은 오랫동안 야고보의 작은 작업장 벽에 걸려 있었다.
5. 경제적인 분투
126:5.1
(1392-8)
예수와 가족들은 점차적으로 그들의 초기의 검소한 생활로 돌아갔다. 옷과 그리고 음식까지도 간소해졌다. 우유와 버터 그리고 치즈는 풍부하였다. 제 철이 되면, 집에 있는 밭에서 나오는 소산물을 먹을 수 있었지만, 달이 지나갈수록 더욱 더 절약하는 생활의 실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들의 아침 식사는 매우 간단했으며; 가장 좋은 음식은 저녁을 위해 남겨두었다. 그러나 유대인들 세계에서는 이러한 경제적인 빈곤이, 반드시 사회적으로도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126:5.2
(1392-9)
이 젊은이는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가정에서 들판에서 공장에서의 생활들을 잘 납득하고 있었는지는, 나중에 그의 가르침들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그의 가르침들은 인간이 체험하는 모든 현상들에 대하여 그가 얼마나 조예가 깊었는가를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126:5.3
(1392-10)
나사렛의 카잔은 예수가 하나의 위대한 선생이 되어서, 아마도 예루살렘에 있는 저명한 가말리엘의 후계자가 되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계속해서 품고 있었다.
126:5.4
(1393-1)
겉으로 보기에 생애에 대한 예수의 계획들 모두가 어그러진 것 같았다. 지금 진행되어지는 상태로 봐서는 그의 미래도 별로 밝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으며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의 임무를 잘 수행하면서 그리고 자기 생활 속에서 즉각적인 책임들에 대하여 신실하게 이행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예수의 일생은, 낙망에 빠져 있는 모든 이상가들에게 영속되는 위안을 주고 있다.
126:5.5
(1393-2)
날품팔이 목수의 임금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예수는 그 해의 말쯤에는 아침 일찍부터 늦게 까지 일을 해서 하루에 겨우 25 전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을 벌 수 있을 뿐이었다. 다음 해가 되었을 때, 그들에게는 회당 부과금과 반 세겔의 성전 세금은 그만 두고라도 정부 세금을 내는 일 조차 힘에 겨워졌다. 그 해 동안에 세금 징수원은 예수로부터 돈을 더 거두려고 안간 힘을 다 쓰면서, 그의 하프를 빼앗아 가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하였다.
126:5.6
(1393-3)
예수그리스어 경전 사본이 세금 징수원에게 알려져서 압수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15번째 생일에 자신의 성인식을 기념하여 주님께 제공하는 헌납으로 나사렛 회당 도서관에 그것을 기증하였다.
126:5.7
(1393-4)
15살이 되던 이 해에, 요셉이 사고로 사망했을 당시에 그에게 지급되었어야 할 돈의 액수에 대하여 항의하기 위해 헤롯에게 제출하였던 문제에 관한 그의 결정을 받아들이려고 예수세포리로 갔었는데, 그때 그는 굉장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세포리의 재정 담당자가 약소한 액수를 제시했었을 당시, 예수마리아는 상당히 큰 액수의 돈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셉의 형제들은 헤롯에게 직접 진정서를 냈었고, 이제 예수는 궁전 안에 서서, 자기 아버지가 죽었을 당시에 그가 받아야만 할 돈이 하나도 없었다는 헤롯의 판결을 듣게 되었다. 그러한 부당한 결정 때문에, 예수는 그 이후 헤롯 안티파스를 결코 신임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언젠가 헤롯을 “그 여우”라고 언급했던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126:5.8
(1393-5)
그 해와 다음 해 동안에, 예수는 목공소 작업대를 떠날 수 없었던 관계로, 카라반 여행자들과 어울리는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가족들이 함께 운영하던 작업장은 이미 그의 삼촌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예수는 집에 있는 작업장에서 다 같이 일하면서 가족과 함께 마리아에게 도움을 주려고 가까이에 있었다. 이 무렵에 그는 낙타 집결 장소에 야고보를 보내서 세상 사건에 관한 정보들을 듣고 오게 함으로써, 그 당시의 소식과 계속 접할 수 있도록 애를 썼다.
126:5.9
(1393-6)
어른으로 자라면서, 그는 그 나이 전후에 있는 보통 젊은이들이 겪을 수 있는 것과 똑같은 곤란과 혼란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을 부양하는 혹독한 체험은, 그로 하여금 무의미한 명상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거나 신비적인 경향으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126:5.10
(1393-7)
예수가 자기 집 바로 북쪽에 상당히 커다란 땅을 세내어 가족의 밭을 일구었던 것도 그해에 있던 일이었으며, 작은 밭을 꾸밀 수 있도록 가족들에게 분할되었다. 나이 든 동생들은 각자 자기 몫의 밭을 갖도록 하였고, 그들은 큰 경쟁을 벌이면서 농사를 지으려고 애썼다. 채소를 기르는 시절에는, 그들의 맏형이 매일 얼마간의 시간을 밭에서 함께 보내 주었다. 예수는 동생들과 밭에서 함께 일하면서, 그들이 시골로 가서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면서 방해받지 않고 살아가는 농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여러 번 원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골에서 자라날 수 있는 기회는 결국 갖지 못하였다; 이상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속속들이 실천적이었던 젊은 예수는 문제들이 일어나는 대로 지혜롭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대처하였으며, 자신과 가족들이 그들의 개별적 그리고 집합적 소원들이 가능한 최고의 만족을 얻도록 그들 상황의 실체들과 그리고 그들의 조건에 조절하는 일에 힘이 미치는 한도 내에서 모든 노력을 다 하였다.
126:5.11
(1393-8)
예수는 한 때, 아버지가 헤롯의 궁전을 지으면서 받아야 할 상당한 돈을 자기들이 받게 되면 조그마한 농장을 살 수 있는 충분한 보증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가졌었다. 그는 실제로 가족을 시골로 이사시키는 계획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해 두었었다. 그러나 헤롯요셉에게 주어야할 돈을 지불하기를 거부하자, 그들은 시골에서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희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있는 그 상태대로, 그들은 이제 비둘기들 이외에도 세 마리의 소들과 네 마리의 양들과 닭 몇 마리와 한 마리의 당나귀 그리고 한 마리의 개를 소유하면서 농장 생활의 체험을 즐겼다. 걸음마 하는 어린아이까지도, 이 나사렛 가족생활의 특징인 잘=규제된 관리 계획을 유지해 나가기 위하여 일정한 의무가 주어져 있었다.
126:5.12
(1394-1)
15년째의 이 해가 끝나면서, 예수는 인간 체험에 있어서 그토록 위험스럽고 어려웠던 기간으로의 선회 시기, 좀 더 안정되었었던 아이 시절과 증가된 책임들과 고상한 성격을 발달시키는데 도움이 될 체험을 얻는 기회들을 가지면서 어른으로 되어 가는 것을 의식하는 시절 사이에서 겪은 과도기를 종결짓게 되었다. 마음과 육체의 성장기가 끝났으며, 이제 이 나사렛의 젊은이의 실제 생애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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