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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4 편
동양에서의 멜기세덱 가르침
94:0.1
(1027-2)
신성한 은혜를 얻기 위한 유일한 대가는 한 분뿐이신 하느님에 대한 사람의 신앙과 신뢰라는 마키벤타의 복음을 계속 전도하는 살렘 종교의 초기 선생들이 아프리카유라시아의 가장 먼 부족들에게로 스며들었다. 멜기세덱아브라함과의 서약은 살렘과 다른 중심지들로부터 퍼져나가는 초기의 모든 선전 운동의 원형틀이었다. 유란시아는 동반구(東半球) 전체에서 멜기세덱의 가르침을 전하였던 이 고귀한 남녀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어떤 종교의 선교사들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이 선교사들은 여러 민족들과 인종들로부터 모집되었으며, 주로 자기 나라의 개종자들을 매개로 하여 가르침들을 전파하였다. 그들은 세계의 서로 다른 여러 지역에 훈련 중심지들을 설립하였고 그곳에서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살렘 종교를 가르친 후에 이 제자들이 각자 자기 민족 속에서 선생으로 활동하도록 임명하였다.
1. 베다 인도에서의 살렘의 가르침
94:1.1
(1027-2)
멜기세덱의 시대에, 인도는 최근에 북서쪽으로부터 침입한 아리안-안드-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통치 아래에 들어오게 된 세계주의의 국가였다. 이 당시에 반도(半島)의 북부와 서부만이 아리아 족속들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점령되어 있었다. 이 베다의 새로운 이주자들은 그들의 많은 부족 신(神)들을 가져왔다. 그들의 경배의 종교적 형태들은 아버지가 여전히 사제(司祭) 기능을 담당하고 어머니는 여자 사제의 역할을 하였으며, 가정의 화로(火爐)가 아직도 하나의 제단으로 사용되던 그들의 옛 안드-사람 조상들의 의식적인 실천 관행들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94:1.2
(1027-3)
베다 예배종파는 그 때에 확대되는 경배 예식에 대하여 점점 더 통제를 장악해가고 있던 선생-사제인 브라만 특권계급의 지도 아래에서 성장과 변형의 과정에 있었다. 살렘 선교사들이 인도의 북부 지역에 들어갔을 때, 한 때 33개에 달하였던 아리아족 신(神)들의 합병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94:1.3
(1027-4)
이들 아리아족들의 다신론은 부족 단위로, 각각의 부족이 그들이 숭배하는 하느님을 가지는, 그들의 분리에 의하여 야기된 그들의 초기 유일신 론의 타락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기원에서의 유일신 론의 이러한 퇴화와 메소포타미아 안드-사람의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 이전 두 번째 1,000년기의 초기 세기들에 재합성의 과정에 있었다. 많은 하느님들은 하늘의 주인인 다이우스 피타의 삼원적 지도력 아래에서 만신(萬神)으로 조직되었다; 대기의 광포한 주인인 인드라; 그리고 땅의 주인이며 초기의 삼위일체 개념의 흔적인 머리가 셋 달린 불의 하느님인 애그니가 있었다.
94:1.4
(1027-5)
명확한 단일신교의 발전들은 진화된 일신교(一神敎)를 위해 길을 닦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신(神)인 애그니는 전체 만신의 아버지-우두머리로 종종 승격되곤 하였다. 어떤 때에는 프라야파티로 불리는, 때로는 브라마로 명명되는, 신(神)-아버지 원리가 후에 브라만 사제들이 살렘 선생들과 싸웠던 신학적 전쟁에서 가라앉았다. 브라만베다의 만신 전체를 활성화시키는 에너지-신성 원리로 생각되었다.
94:1.5
(1028-1)
살렘 선교사들은 멜기세덱의 하나의 하느님, 하늘에 계신 지고자를 전도하였다. 이러한 묘사는 모든 신(神)들의 근원으로서 아버지-브라마라의 창발하는 개념과 모두 불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살렘의 교리는 비(非)의식적이었고 그리하여 브라만 사제 제도의 독단론, 전통들 그리고 가르침들에 직접적으로 거슬리는 것이 되었다. 브라만 사제들은 신앙을 통한 구원, 의식적인 행사와 희생 제물의 예식들과는 별도의 하느님의 은혜의, 살렘 가르침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94:1.6
(1028-2)
신앙을 통한 구원과 하느님을 신뢰하는 멜기세덱 복음을 거부한 것은 인도에 중대한 전환점을 이루었다. 살렘 선교사들은 모든 고대 베다의 하느님들에 대한 신앙의 소멸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베다의 가르침의 사제들인 영도자들은, 하나의 하느님과 하나의 단순한 신앙에 대한 멜기세덱의 가르침을 거부하였다.
94:1.7
(1028-3)
브라만들은 살렘 선생들과의 투쟁의 노력으로 자기들 시대의 성스러운 기록들을 발췌하였으며, 이 편집물은 나중에 다시 개정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리그-베다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가장 오래된 성스러운 책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브라만들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경배와 희생의 그들의 의식들을 구체화시키고, 형식화하고, 고정시키려고 애를 씀에 따라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의 베다들이 계속 만들어졌다. 그들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임에 따라, 개념의 아름다움과 통찰력의 진실에서 비슷한 성격의 다른 본문들과 동일하다. 그러나 우월한 이 종교가 남부 인도의 수많은 미신들과 예배종파들과 예식들에 의해 오염되게 되자, 그것은 점차적으로 필사 사람이 개발한 것들 중에서 가장 잡다한 체계로 변환되었다. 베다 경전들을 살펴보면, 전에 알려졌던 신(神)에 대한 개념 중에서 가장 높은 것들과 가장 타락된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브라만교
94:2.1
(1028-4)
살렘 선교사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드라비다데칸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점차 확대되는 특권계급 체계, 두 번째 산긱 종족들의 증가에 직면하여 종족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한 아리아족들의 계획과 부닥치게 되었다. 브라만 사제 특권계급이 이 체계의 가장 근본이었기 때문에, 이 사회 계층이 살렘 선생들의 전진을 크게 방해하였다. 이 특권계급 체계는 아리아 종족을 구원하기에 실패하였지만, 반면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도에서 그들의 종교적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는 브라만들을 영속시키는 것에 성공하였다.
94:2.2
(1028-5)
그리고 이제는, 더 높은 진리를 거부함으로써 베다의 가르침이 약화되면서, 아리아들의 예배종파는 데칸으로부터 점점 더 침식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인종적인 사멸(死滅)과 종교적인 소멸의 조류를 막아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으로, 브라만 특권계급은 다른 모든 것들보다 스스로를 우위에 놓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신(神)에게 희생제물을 제공하는 것이 모두-효과적이라고 가르쳤고, 그것은 그 위력에 있어서 모두-강압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우주에 두 가지의 근본적인 신성한 원칙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는 신(神)인 브라만이었고, 다른 하나는 브라만 사제 계급이었다. 유란시아의 다른 민족들 중에서 사제들이 스스로를 그들의 하느님들보다 더 높은 존재로 드높이려고 하였고, 그들의 하느님들에게 돌아갈 명예를 그들 자신에게로 돌린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뻔뻔스러운 주장들과 함께 너무나 모순되게 멀리 갔기 때문에 전체의 불확실한 체계는 주변의 덜 발전된 문명들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저급의 예배종파들 앞에서 붕괴되었다. 거대한 베다의 사제 계급 자체는, 그들 자신의 이기심과 어리석은 가정이 인도 전체에 초래하였던 타성과 염세주의의 암담한 홍수 밑으로 허우적거리면서 빠져들어 갔다.
94:2.3
(1029-1)
자아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사람, 짐승 또는 초목으로의 끝없는 환생으로 자아의 비진화적인 영속의 두려움으로 확실하게 인도하였다. 그리고 새로 나타나는 일신교가 될 수도 있었던 것에 고정될 수 있는 오염된 신념들 전체 중에서, 어떤 것도 드라비다데칸으로부터 온 윤회에 대한 이 신념─혼들이 다시 태어난다는 교리─처럼 그토록 망쳐놓지 못하였다. 지루하고도 단조로운 반복적인 윤회에 대한 이 신념은, 초기 베다의 신념의 한 부분이었던, 죽음 안에서 해방과 영적 전진을 발견한다는 그들이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던 희망을, 투쟁하는 필사자들로부터 빼앗아갔다.
94:2.4
(1029-2)
철학적으로 쇠약하게 만드는 이 가르침은, 모든 창조의 대혼(大魂)인 브라만과 절대적인 연합의 평화와 우주적 안식과 평화 속에 잠김으로써 자아로부터 영원한 탈출 교리의 창안이 뒤따랐다. 필사자 욕망과 인간적 야망은 효과적으로 강탈되고 실질적으로 파괴되었다. 2,000년이 넘도록, 인도의 더 나은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모든 욕망에서 탈피하려고 애썼으며, 그리하여 영적인 절망상태의 고리로 수많은 힌두 민족들의 혼(魂)들을 실질적으로 속박해온 후대의 예배종파들과 가르침들에게 출입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모든 문명들 중에서, 베다아리안살렘 복음을 거부한 것에 대해 가장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였다.
94:2.5
(1029-3)
특권계급 자체만으로는 아리안의 종교-문화적 체계를 영속시킬 수 없었으며, 데칸의 열등한 종교들이 북쪽으로 퍼지면서, 절망과 자포자기의 시대가 발전되었다. 생명을 취하지 않는 예배종파가 일어난 것은 바로 이러한 암흑시대 동안이었으며, 그 후로 계속 유지되어 왔다. 새로운 예배종파들 대부분은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구할 수 있었던 구원은 아무 도움 없이 사람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한 철학의 많은 부분에도 불구하고, 멜기세덱아담의-가르침들의 왜곡된 잔해들을 추적할 수 있다.
94:2.6
(1029-4)
힌두 신앙의 후대 경전들인 브라마나우파니샤드가 편집된 것은 바로 이 시대였다. 유일한 하느님과의 개인적 신앙을 통한 개인적 종교의 가르침들을 거부함으로, 그리고 그들의 사람모습의-신(神) 사상들과 환생에 대한 데칸으로부터의 타락하고 쇠퇴하는 예배종파들의 홍수로 오염되었음으로, 브라만교의 사제들은 이러한 손상되는 믿음들에 대항하는 격렬한 반발을 체험하였다; 참된 실체를 추구하고 찾으려는 명확한 노력이 있었다. 브라만들은 신(神)에 대한 인도사람의 개념을 사람모습 탈피의-신(神)을 세우려고 하였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개념, 파라다이스 아버지에 대한 고상하고 영적인 이상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함하는 절대자의 미미하고 형이상학적인 관념, 개인성화 탈피의 통탄할만한 실수로 빠져들었다.
94:2.7
(1029-5)
브라만들은 자기-보존을 위해 애쓰는 그들의 노력들에서 멜기세덱의 한 분의 하느님을 거부하였으며, 이제 그들은 그 불행한 시대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무력하고 패배적인 인도의 영적 삶을 남겨놓은 미(未)개인적이며 어떤 도움도 없는, 불분명하고 현혹적인 철학적 자아인 브라만의 가설로서의 자아를 발견하였다.
94:2.8
(1029-6)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된 것은 우파니샤드가 작성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것의 천 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후대의 힌두교와는 경쟁할 수 없었다; 보다 높은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초기 하느님에 대한 묘사는 더 적게 그리고 개인적 신(神)들을 대비한 힌두교의 것보다도 잘 정의(定意)되지 못하였다. 불교는 마침내 우주의 최극 하느님으로 알라의 선명한 개념과 함께 전투적인 이슬람의 맹공격 앞에서 북부 인도 지역을 내어주게 되었다.
3. 브라만교의 철학
94:3.1
(1030-1)
브라만교의 가장 높은 위상은 거의 종교라고 할 수 없지만, 필사자 마음이 철학과 형이상학의 영역 속으로 가장 훌륭하게 도달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 최종적인 실체의 발견을 위하여 출발하였음으로, 인도인의 마음은 거의 모든 신학적 위상들을 깊은 사색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지만 필수적인 이원적(二元的) 종교개념은 제외되고 있었다: 모든 우주적 창조체들의 우주 아버지의 실존과 그리고 바로 이 창조체들이, 그가 완전한 것처럼 그들에게도 완전해지기를 명령하신 영원한 아버지에게 도달하려고 애쓰면서 우주에서 상승하는 체험이라는 사실이다.
94:3.2
(1030-2)
브라만의 개념에서 당대의 마음들은 모든 것에-스며있는 어떤 절대자에 대한 관념을 정말로 파악하였다. 왜냐하면 이 가정(假定)이 한 때 그리고 동시에 창조적인 에너지와 조화우주적인 반응으로 정체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브라만은 모든 정의(定義)를 초월하는 것, 모든 유한적인 본질특성들에 대한 연속적인 부정에 의해서만 깨달아질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것은 확실히 절대적인 존재, 심지어 무한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었지만, 이 개념은 대개 개인성 속성들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인 종교인들에 의하여 체험될 수 없었다.
94:3.3
(1030-3)
브라만-나라야나절대자, 무한한 스스로 인 것, 잠재적인 조화우주의 근원적인 창조적 잠재력, 모든 영원 전체에 정적(靜的)으로 그리고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우주 자아로 이해되었다. 그 당시의 철학자들이 신(神) 개념에 대한 다음 단계의 진보를 이룩할 수만 있었다면, 그들은 브라만을 협동적이고 창조적인 것으로, 창조되고 진화하는 존재들이 다가갈 수 있는 개인성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되었다면 그러한 가르침이 유란시아에서 가장 진보된 신(神)에 대한 묘사가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체의 신(神) 기능의 처음 다섯 가지 차원들을 포함할 수 있었고 나머지 두 가지도 통찰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94:3.4
(1030-4)
특정 위상들에서 모든 창조체 실존의 합친 것의 전체를 하나의 우주 대혼(大魂)이라는 개념이 인도 철학자들을 최극존재에 대한 진리에 매우 가까이 인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는 그들에게 무가치한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브라만-나라야나에 대한 그들의 이론적인 일신교적(一神敎的) 목표 달성에 이르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개인적 접근으로 진화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94:3.5
(1030-5)
다시, 인과관계의 연속성의 업(業)의 원칙은, 최극자신(神) 현존에서 모든 시간-공간 활동들의 반향적인 합성의 진리에 매우 근접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개별 종교인에 의한 신(神)의 조화-협동적인 개인적 달성을 준비하지 못하였고, 단지 우주적 대혼(大魂)에 의한 모든 개인성의 궁극적 흡수만을 제공하였다.
94:3.6
(1030-6)
또한 브라만교의 철학은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에 대한 깨달음에 거의 접근하였지만, 진리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통하여 곡해되었다. 우주적 존재의 이 내주와 동떨어져서는 어떠한 인간의 개별존재성도 없다는 신념으로 이 개념이 완벽하게 손상되지 않았다면, 브라만의 내주가 혼이라는 가르침은 진보된 종교를 낳을 수 있는 길을 닦을 수도 있었다.
94:3.7
(1030-7)
자아-혼과 대혼(大魂)과의 융합의 교리에서, 인도의 신학자들은 인간적인 어떤 것, 새롭고도 독특한 어떤 것, 사람의 의지와 하느님의 의지의 연합으로 태어난 어떤 것의 생존을 위한 준비에 실패하였다. 혼이 브라만으로 돌아간다는 가르침은 우주 아버지의 품안으로 조절자가 돌아간다는 진리와 매우 유사하지만, 필사자 개인성의 모론시아적 상대자로 생존하는 조절자와 다소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중요한 개념이 브라만의 철학에는 치명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94:3.8
(1031-1)
브라만의 철학은 많은 우주의 사실들에 접근하였고 여러 조화우주 진리에 다가갔지만, 그것은 모두를 절대적, 초월적 그리고 유한한 그러한 실체의 여러 차원들 사이를 차별화하는 데 실패하는 실수에 빠진 희생자로 너무나 자주 만들었다. 절대 차원에서는 유한-착각일 수 있는 것이 유한한 차원에서는 절대적인 실제적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진화적 창조체의 제한된 하느님과의 체험으로부터,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가지는 영원한 아들의 무한한 체험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들마다 개인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우주 아버지의 근본적 개인성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4. 힌두교
94:4.1
(1031-2)
인도에서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멜기세덱 선교사들의 가르침에 의해 변경되었고 후대의 브라만 사제들에 의해 구체화되었던 베다의 고대 예식으로 다소 되돌아갔다. 세계의 종교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세계주의적인 이 종교는 불교와 자이나교에 의해 그리고 후대에 나타난 마호멧교그리스도교의 영향에 의해 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이 도착할 무렵에, 그것들은 이미 너무 서구화 되어 “백인들의 종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힌두인 마음에는 생소하고 이국적인 것으로 되었다.
94:4.2
(1031-3)
현재의 힌두 신학은 신(神)과 신성에 대해 네 개의 하향식 차원들을 묘사하고 있다.
94:4.3
(1031-4)
1. 브라만, 절대자, 무한한 자, 스스로인 것.
94:4.4
(1031-5)
2. 삼신일체(三神一體), 힌두교의 최극 삼위일체. 이 관계적-연합 에서 첫 번째 위(位)인 브라마브라만─무한─에서 자아-창조된 존재로 이해된다. 그것이 범신주의적 무한한 자와 가까운 정체화구현이 아니었다면, 우주 아버지의 개념을 위한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또한 브라마는 숙명과도 정체성이 확인되었다.
94:4.5
(1031-6)
두 번째와 세 번째 위(位)에 해당하는 시바비쉬누에 대한 경배는 그리스도 이후 첫 번째 1,000년에 생겨났다. 시바는 생사의 주인이고, 풍요의 하느님이며, 파괴의 주인이다. 비쉬누는 그가 주기적으로 인간의 형태로 육신화 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매우 대중적이다. 이 방법으로 비쉬누인도인들의 상상들 속에서 실제적이고도 살아있다. 어떤 사람들은 시바비쉬누 각각을 모든 것보다 뛰어난 최극으로 간주한다.
94:4.6
(1031-7)
3. 베다 베다-이후의 신(神). 앙니, 인드라, 소마 등과 같은 아리안의 많은 고대(古代) 하느님삼신일체(三神一體)의 세 구성원의 2차적 존재로 존속하였다. 그 후에 새로 생겨난 여러 하느님들은 베다 인도의 초기 시대부터 계속 형성되었고, 이것들도 힌두 만신(萬神)으로 결합되었다.
94:4.7
(1031-8)
4. 반신반인(半神半人)들: 초인간들, 반신(半神)들, 영웅들, 마귀들, 귀신들, 악한 영들, 요정들, 괴물들, 악귀들, 그리고 후대 예배종파들의 성자(聖子)들.
94:4.8
(1031-9)
힌두교인도 민족에게 생기를 주는 일에 오랫동안 실패해 오고 있는 반면, 동시에 그것은 통상적으로 관용의 종교였다. 그 종교의 위대한 힘은 그것이 유란시아에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적응력이 있고, 정형화되지 않은 종교로 판명된 사실에 있다. 종교는 거의 무제한적인 변화의 능력과, 지적인 브라만의 높고 그리고 거의 일신교적(一神敎的)인 깊은 사색들로부터 무지한 신자들의 타락하고 억압된 등급들의 터무니없는 물신 숭배와 원시적인 예배종파의 실천 관행들에 이르기까지 드문 범주의 유연한 조절을 소유하고 있다.
94:4.9
(1032-1)
힌두교는 그것이 인도의 기본적인 사회구조를 본질적으로 집대성을 이루는 하나의 부분이었기 때문에 유지되어 왔다. 그 종교에는 교란되거나 파괴될 수 있는 큰 계급 제도가 없었다; 민족의 생활형태 속에 짜여 있다. 그것은 변화하는 상황에 대하여 다른 모든 예배종파들을 능가하는 적응력을 갖고 있으며, 다른 여러 종교들을 수용하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며, 고타마 부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리스도 그 자신도 역시 환생한 비쉬누라고 주장한다.
94:4.10
(1032-2)
오늘날 인도에서 매우 필요한 것은 예수 공동체의 복음─하느님아버지신분과, 사랑하는 사명활동과 사회적인 봉사 속에서 개인적으로 실현되는, 모든 사람들의 아들 신분과 그리고 결과적인 형제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다. 인도에는 철학적 틀이 실존하고 있고, 예배종파 체제가 현존하고 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아들의 기원적인 복음 속에 묘사된 역동적인 사랑의 활력을 부어넣는, 미가엘의 증여 삶을 백인들의 종교로 만들려고 해왔던 서방의 독단론들과 신조들의 옷을 벗겨낸, 활력의 불꽃이다.
5. 중국에서의 진리를 위한 투쟁
94:5.1
(1032-3)
살렘 선교사들이 지고자 하느님의 교리와 신앙을 통한 구원을 전파하면서 아시아를 지나갈 때, 그들은 통과하는 여러 지역들의 철학적 종교적 생각들을 많이 흡수하였다. 그러나 멜기세덱에 의해 임명된 선생들과 그의 후계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에서 불이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민족들 속으로 퍼져 들어갔고, 그들이 중국에 도착한 것은 그리스도 이전 1,500년경이었다. 살렘 사람들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 후시에 자기들의 본부를 유지하였으며, 그곳에서 황색 인종의 모든 지역 사람들을 가르친 중국인 선생들을 훈련시켰다.
94:5.2
(1032-4)
오늘날 명명된 것과는 매우 다른 종교인 초기 형태의 도교(道敎)가 중국에서 발생된 것은 이러한 가르침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초기 또는 원시 형태의 도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의 합성 이었다:
94:5.3
(1032-5)
1. 하늘하느님상제(上帝)의 개념 속에 남아 있었던,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싱랑톤의 가르침들. 싱랑톤의 시대에는 중국 민족이 실질적으로 유일신(唯一神)론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나중에 하늘의 영, 우주의 통치자로 알려진 한 분 진리자(眞理者)에 그들의 경배를 집중하였다. 그리고 황색 인종은,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많은 하급의 하느님들과 영들의 개념이 그들의 종교 속으로 교활하게 스며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신(神)에 대한 이 초기 개념을 전부 잃어버린 적이 결코 없었다.
94:5.4
(1032-6)
2. 사람의 신앙에 대한 응답으로 인류에게 은혜를 증여하는, 지고자 창조자 신(神)살렘 종교. 멜기세덱 선교사들이 황색 인종의 지역으로 들어갔을 무렵에, 그들의 기원적 메시지가 마키벤타 시대에 살렘의 단순한 교리로부터 상당히 변형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94:5.5
(1032-7)
3. 모든 악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갈망과 연결된, 인도 철학자들의 브라만-절대자 개념. 살렘 종교가 동쪽으로 퍼져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외부적 영향은 아마 브라만절대자─에 대한 그들의 개념을 살렘 사람들의 구원 사상 속으로 주입시켰던 베딕 신앙을 가르치는 인도인 선생들에 의해 발휘되었을 것이다.
94:5.6
(1033-1)
복합적인 이 신념은 황색인종과 갈색인종 지역에 퍼져나가서 종교적-철학적 생각 밑바탕에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원시적-도교가 신교로 알려졌고, 팔레스타인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이름이 인류에 의해서 잊히지 않도록 이 세상에 거주하였던 마키벤타 멜기세덱의 육신화에 대해 배웠다.
94:5.7
(1033-2)
중국에서는, 이러한 모든 신앙들이 후대에 이르러서는, 계속 자라나는 조상숭배의 예배종파와 혼동되고 혼합되었다. 그러나 싱랑톤의 시대 이후로 중국인들이 성직자 제도에 아무 것도 어찌할 수 없이 노예로 추락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황색 인종은 야만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체계 있는 문명으로 발전된 최초의 인종이었다, 왜냐하면 최초로 하느님들에 대한 비굴한 두려움으로부터 처음으로 어느 정도 자유를 성취하고, 다른 종족은 두려워하던 그러한 죽은 자의 영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중국이 패배하게 된 것은 초기에 있었던 사제로부터의 해방을 넘어서서 발전하는 데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거의 마찬가지로 비참한 실수, 조상 숭배에 빠져들었다.
94:5.8
(1033-3)
그러나 살렘 사람들의 활동이 무익한 것은 아니었다. 6세기경에 중국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가르침들을 수립한 것은 그들의 복음의 기초 위에서였다. 노자(老子)와 공자(孔子) 시대의 도덕적 분위기와 영적 정서는 그 이전 시대의 살렘 선교사들의 가르침으로부터 발생되었다.
6. 노자와 공자
94:6.1
(1033-4)
미가엘이 도착하기보다 약 600년 전에, 육신으로부터 떠난 지 오래된 멜기세덱에게는, 유란시아의 옛 신앙들 속으로 전반적으로 흡수됨으로써, 이 세상에서 자기가 가르쳤던 것들의 순수성이 심히 위태롭게 된 것처럼 보였다. 미가엘의 선구자로서 그의 임무가 한동안 위험에 처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자 그리스도 이전 6세기경에, 영적 대리자들의 비상한 조화-협동을 통하여 유란시아에는 다양한 종교적 진리의 가장 비상한 제시가 있었으며, 행성 감독자들도 모든 것들을 다 납득하지 못할 정도였다. 여러 인간 선생들인 대리자를 통하여 살렘의 복음이 다시 규정되고 소생되었으며, 그 당시에 제시된 대부분의 것들은 이 기록이 쓰일 때까지도 계속 존속되었다.
94:6.2
(1033-5)
영적인 진보의 이 독특한 시대는 모든 문명화된 세계에 위대한 종교적, 도덕적, 철학적 선생들에 의하여 특징지어진다. 중국에서의 두 사람의 유명한 선생들은 노자(老子)와 공자(孔子)이었다.
94:6.3
(1033-6)
노자는 모든 창조에 대한 첫째원인 하나도(道)를 천명하였을 때 직접적으로 살렘 전통들의 개념 위에 기초를 두었다. 노자는 위대한 영적 시야의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도(道), 최극 하느님 그리고 우주의 왕과 영영토록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궁극적인 원인성에 대한 그의 이해는 가장 통찰력 있는 것이었으니 이로서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절대적 도(道)에서 합일이 일어나 나오고, 합일로부터 조화우주적 이원성(二元性)이 나타나며, 그러한 이원성으로부터 삼위일체가 실존으로서 솟아 오르고, 삼위일체는 모든 실체의 시원(始原)적 근원이다.” “모든 실체는 조화우주의 잠재자들과 실재자들 사이에서 언제까지나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신성의 영에 의해서 영원토록 조화를 이루고 있다.”
94:6.4
(1033-7)
또한 노자는 악을 선으로 갚는다는 가장 처음 제시된 교리 중의 하나를 발표하였다: “선(善)이 선을 얻게 하지만, 참으로 선한 사람에게는 악도 선을 얻게 한다.”
94:6.5
(1033-8)
그는 창조체가 창조자께로 돌아간다고 가르쳤으며, 생명을 조화우주적인 잠재로부터의 개인성 창발로 묘사한 반면, 죽음은 이 창조체 개인성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참된 신앙에 대한 그의 개념은 무위(無爲)였으며, “어린아이의 태도”에 자주 비유하였다.
94:6.6
(1034-1)
하느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대한 그의 납득은 매우 분명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절대자 신(神)은 분투하지는 않지만, 항상 승리한다; 그는 인류를 강제하지 않지만 그들의 참된 간구에 대해서 응답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다; 하느님의 뜻은 영원토록 인내하는 것이고 그 표현에 있어서 영원토록 필연적이다.” 그리고 참된 종교인에 대하여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큰 축복이라는 진리를 표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선한 사람은 진리를 자기 혼자서만 차지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재산들을 자기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애쓰게 되는데, 이는 그것이 진리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자 하느님의 뜻은 항상 유익을 주고 파괴시키지 않는다; 참된 신자(信者)의 목적은 항상 행동하는 것이지, 결코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94:6.7
(1034-2)
무저항에 대한 노자의 가르침과, 행동강요 사이에 대한 구분이 나중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며 행하며 그리고 생각하고 있다”라는 신념들로 곡해되었다. 그러나 노자는 그 같은 실수를 가르친 적이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저항에 대한 그의 제시는 중국 사람들의 평화를 사랑하는 성향이 더욱 발전되게 하는 요인이 되어 왔다
94:6.8
(1034-3)
그러나 20세기 유란시아의 대중적인 도교는 옛날의 철학자가 그가 깨달은 진리를 가르쳤던 조화우주적 개념과 고상한 정서와 거의 일치하지 않는데, 그것은 절대자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세상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신성한 에너지의 근원이며, 그것에 의해서 사람은 도, 우주들의 영원한 신(神)이자 창조자 절대자와, 영적 연합으로 상승한다.
94:6.9
(1034-4)
공자(꿍 후-쯔)는 6세기에 중국에서 노자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보다 젊은 사람이었다. 공자는 그의 신조를 황인종의 오랜 역사에서의 좀더 나은 도덕적 전통에 기초를 두었으며, 또한 남아있는 살렘 선교사들의 전통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그의 주된 일들은 옛 철학자들의 지혜로운 말들을 편찬하는 것에 있었다. 그는 그의 평생 동안 거부 받은 선생이었지만, 그가 기록한 문서들과 가르침들은 그 후로 줄곧 중국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자는 마술이 있던 자리에 도덕을 올려 놓음으로서 무당들에게 새로운 걸음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잘 세웠다; 그는 계층을 그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물로 만들어 내었고, 조상의 행위를 존경하도록 만들었는데 이 글을 쓸 때에도 중국인들에 의해 이것은 아직도 여전히 숭배되고 있다.
94:6.10
(1034-5)
도덕성에 대한 공자의 설교는, 이 세상의 도(道)가 하늘의 도(道)의 왜곡된 그림자라는 것; 현세 문명의 참된 원형틀은 하늘의 영원한 계층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것이라는 이론에 근거를 두었다. 유교(儒敎)에 있는 잠재적 하느님 개념은 하늘의 도(道), 곧 조화우주의 원형틀에 거의 완벽하게 종속되었다.
94:6.11
(1034-6)
노자의 가르침은 동양에서 소수만 남겨놓고 모두에게서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공자의 글들은 그 후로 계속 유란시아인의 거의 3분의 1의 사람들의 문화에서 도덕적 짜임새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러한 공자의 가르침들은 과거의 가장 좋은 것을 영속시키고 있지만, 그토록 숭배받을 업적들을 낳았던 바로 그 중국인의 탐사하는 영에 다소간 해로운 것이었다. 이들 신조들의 영향은 진시황제 황실의 노력과 묵자(墨者)의 가르침에 의해서 도전을 받았으나, 성과없는 싸움이었다. 묵자(墨者)는 윤리적 의무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기초를 둔 형제관계를 부르짓었다. 그는 새로운 진리를 찾던 예전의 탐구에 다시 불을 붙이려고 애썼지만, 그의 가르침은 공자의 제자들의 억센 반대 앞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94:6.12
(1034-7)
수많은 다른 영적 및 도덕적 선생들과 마찬가지로, 공자노자 역시 인도로부터 온 불교 선교사들의 도래와 도교 신앙의 쇠퇴 및 타락 사이에 있었던 중국의 영적 암흑기에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결국에는 신화(神化)되었다. 이러한 영적 퇴폐기 동안 황색 인종의 종교는 악마들, 용들, 그리고 악한 영들, 모두 깨우치지 못한 필사자 마음의 반사적인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들로 가득 찬 비참한 신학 체계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한 때 진보된 종교로 말미암아 인간 사회의 우위를 차지하였던 중국은 그 후에, 개별 필사자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진화하는 행성에서 문화와 사회의 진보를 특징짓는 복잡하고도 복합적인 문명들의 참된 진보에 필수 불가결한 하느님-의식 개발의 참된 경로에서 발전하는 것이 일시적으로 실패하였기 때문에 뒤쳐지게 되었다.
7. 고타마 싯다르타
94:7.1
(1035-1)
중국에서 노자공자가 활동하던 동시대에, 진리의 위대한 다른 선생이 인도에서 나타났다. 고타마 싯다르타그리스도 이전 6세기에 인도 북부 지방의 네팔에서 태어났다. 그의 추종자들은 나중에 그가 엄청나게 부유한 통치자의 아들이었던 것처럼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남부 히말라야의 협소하고도 외진 산악 계곡을 힘들게 다스리는 소규모 족장의 후계자였다.
94:7.2
(1035-2)
고타마는 쓸모없는 요가 실천 연습을 6년 동안 한 후에, 불교 철학으로 발전되는 이론을 정립하였다. 싯다르타는 점점 왕성해지는 특권계급 제도에 대항하여 단호하지만 그러나 효과가 없는 투쟁을 하였다. 이 젊은 예언자 왕자에게는 그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크게 호감을 샀던 고상한 성실성과 독특한 사심-없음이 있었다. 그는 물리적 고통과 개인적 고뇌를 통하여 각자의 구원을 추구하는 실천 연습으로부터 물러났다. 그리고 그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하도록 권고하였다.
94:7.3
(1035-3)
인도에서 혼란되고 극단적인 예배종파 실천 관행들 속에서, 보다 온전하고 절도 있는 고타마의 가르침이 참신한 구원으로 다가왔다. 그는 신(神)들, 사제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고발하였지만, 그도 역시 하나의 우주 존재의 개인성을 깨닫는데 실패하였다. 고타마는 개별적인 인간 혼들의 실존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혼의 윤회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에 반대하여 단호하게 투쟁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움으로부터 구해내고, 거대한 우주에서 그들이 편안하고 안락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고귀한 노력을 하였지만, 상승하는 필사자들의 실제적인 하늘의 집─파라다이스─에 도달하는 길과 영원한 실존의 확대되는 봉사 업무에 이르는 길을 그들에게 보여주지 못하였다.
94:7.4
(1035-4)
고타마는 실제적인 선지자였다, 그리고 만일 그가 은둔자 고다드의 가르침에 주의하였다면, 신앙에 의한 구원의 살렘 복음의 회복의 영감(靈感)에 의해서 인도 전체를 깨우칠 수도 있었다. 고다드멜기세덱 선교사들의 전통을 전혀 잃어버리지 않은 가문을 이은 사람이었다.
94:7.5
(1035-5)
고타마베나레스에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멜기세덱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관하여 살렘 선교사들이 전한 전통들을 바우탄이라는 학생이 자기 스승에게 전해 주었다; 싯다르타우주 아버지에 관하여 매우 분명한 개념을 갖지 못한 반면, 신앙─단순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진보된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자기 입장을 표명하면서 자신의 제자들을 60명의 집단으로 나누어 내보내기 시작함으로써 “자유로운 구원의 기쁜 소식;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이 정의와 공의에 대한 신앙에 의해서 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을 인도 사람들에게 선포하였다.
94:7.6
(1035-6)
고타마의 아내는 자기 남편이 전하는 복음을 믿었으며 여승들 체제의 설립자였다. 그의 아들이 그의 뒤를 이었고, 예배종파를 크게 확장시켰다; 그는 신앙을 통한 구원의 새로운 관념을 깨닫기는 하였지만, 말년에 가서 그는 오직 신앙만으로 신성한 은혜를 받는다는 살렘 복음에 흔들렸고, 늙어서 유언을 남길 때에는 “너 자신만의 구원을 해결하라.”고 말하였다.
94:7.7
(1036-1)
가장 좋았을 때 선포된, 고타마의 보편적 구원의 복음, 곧 희생제물, 고통, 종교예식. 그리고 사제들로부터의 자유로움은 그 당시에 혁명적이고도 놀라운 교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살렘 복음이 회복되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것은 절망하는 수백만의 혼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고, 나중에 여러 세기에 걸친 괴상한 왜곡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백만 인간 존재들의 희망으로 남아있다.
94:7.8
(1036-2)
싯다르타는 그의 이름을 따르고 있는 현대 예배종파들 속에 잔존해 온 것보다 더 많은 진리를 가르쳤다. 그리스도교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이 아닌 것처럼 현대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이 더 이상 아니다.
8. 불교 신앙
94:8.1
(1036-3)
불교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귀의(歸依)의 말을 낭송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부처 안에 귀의합니다; 나는 신조 안에 귀의합니다; 나는 형제신분 안에 귀의합니다.”
94:8.2
(1036-4)
불교는 신화에서 기원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인물에서 기원되었다. 고타마의 추종자들은 그를 사스타라고 불렀는데, 주(主) 또는 선생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또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서 아무런 초인간적 주장을 하지 않은 반면, 그의 제자들은 일찍부터 그를 부처, 깨우친 자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석가모니 부처라고 불렀다.
94:8.3
(1036-5)
고타마의 기원적 복음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고상한 진리들을 기초로 하였다:
  • 고통의 고상한 진리들.
  • 고통의 기원들.
  • 고통의 파괴
  • 고통의 파괴에 이르는 길.
94:8.4
(1036-10)
고난에 대한 교리와 그것으로부터의 도피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팔정도(八正道) 철학이 있었다: 올바른 식견, 사유, 말, 행위, 생활습관, 정진, 마음챙김, 그리고 깊은 사색이다. 고통을 벗어나기 위하여 모든 노력과 갈망과 애정을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고타마의 뜻이 아니었다; 그의 가르침은 오히려 현세적인 목표들과 물질적인 대상들에게만 전적으로 모든 희망과 소망을 거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필사 사람에게 보여주도록 계획된 것이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참된 신자(信者)들로 하여금 물질적인 이 세상의 관계들을 뛰어 넘어서 영원한 미래의 실체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94:8.5
(1036-11)
고타마가 설파한 도덕적 계명들에는 다섯 가지가 있었다:
94:8.6
(1036-12)
1. 살인하지 마라.
94:8.7
(1036-13)
2. 도둑질하지 마라.
94:8.8
(1036-14)
3. 음란하지 마라.
94:8.9
(1036-15)
4. 거짓말하지 마라.
94:8.10
(1036-16)
5. 취하게 하는 음료를 마시지 마라.
94:8.11
(1036-17)
계율의 이행이 신자들의 선택에 달린 몇 가지 부가적인 또는 이차적(二次的)인 계명들도 있었다.
94:8.12
(1036-18)
싯다르타는 인간 개인성의 불멸을 거의 믿지 않았다; 그의 철학은 오직 일종의 기능적 계속성만을 준비하였다. 그는 열반(涅槃) 교리 속에 포함시키려고 하였던 것을 명확하게 정의한 적이 없었다. 필사자가 실존하는 동안에 그것이 이론적으로 체험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완벽한 멸절의 상태로 통찰된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그것은 사람을 물질세계에 붙들어 매고 있는 모든 족쇄들이 파괴된 최극의 깨우침과 숭고한 기쁨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그곳에는 필사자 삶의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이 있었고 계속적으로 다시 육신화를 체험하는 모든 위협으로부터의 구원이 있었다.
94:8.13
(1037-1)
고타마의 기원적 가르침에 의하면, 구원은 신성한 도움과는 별개로 인간의 노력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다; 초인간적인 힘의 존재들에게 하는 기도 또는 구원을 얻는 신앙의 여지가 없다. 고타마인도의 미신들을 최소화하려는 그의 노력으로, 신비한 구원에 대한 노골적인 주장들로부터 사람이 멀어지게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하면서, 그는 자기 후계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게 하고, 달성하려고 애쓰는 인간의 모든 분투가 혐오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선포하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의 추종자들은 최고의 행복이 가치 있는 목표들을 지능적으로 그리고 열렬하게 추구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성취가 조화우주적인 자아-실현 속에서 참된 진보를 이룩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였다.
94:8.14
(1037-2)
싯다르타의 가르침에서 위대한 진리는 절대적 공의(公義)의 우주를 선포한 것이었다. 그는 필사 사람이 일찍이 발명한 신(神)이 없는 철학 중에서 가장 최선인 것을 가르쳤다; 그것은 이상적인 인본주의였으며, 미신과 신비 예식 그리고 귀신들과 마귀들에 대한 두려움의 모든 근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거하였다.
94:8.15
(1037-3)
불교의 기원적 복음의 가장 큰 약점은 그것이 사심-없는 사회봉사의 종교를 창출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오랫동안, 불교의 형제신분은 신자들의 형제우애관계라기 보다는 오히려 학생이자 선생들의 공동체였다. 고타마는 그들에게 돈을 받지 못하도록 금하였고 그렇게 하여 계급적인 경향들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고타마 자신은 매우 사교적이었다; 그의 삶이 그의 설교보다 훨씬 더 위대하였다.
9. 불교의 전파
94:9.1
(1037-4)
불교는 깨우친 자인 부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제시하였기 때문에 번영하였다. 그것은 동부 아시아 전체를 통하여 발견될 수 있는 다른 모든 종교 체계보다 가장 많이 멜기세덱을 대변한다. 그러나 불교는 멜기세덱미가엘 사이에서 이집트이크나톤 다음으로 가장 뛰어난 시민 통치자들 중의 하나였던 하위-특권계급 군주(君主) 아소카에 의해 자아-보호 수단으로 지지될 때까지 종교로 퍼져나가지 못하였다. 아소카는 자신의 불교 선교사들을 퍼뜨림으로써 위대한 인도 제국을 건설하였다. 25년 동안 그는 17,000명 이상의 선교사들을 훈련시켰고, 알려진 모든 세계의 가장 먼 국경들로 보냈다. 한 세대에 그는 불교를 전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는 종교로 만들었다. 그것은 곧 티베트, 카슈미르, 실론, 버마 , 자바, 시암,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에 전파되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것은 그것이 대체한 또는 증진시킨 그것들보다 훨씬 우월한 종교였다.
94:9.2
(1037-5)
불교가 인도의 원산지로부터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것은 진지한 종교인들의 영적인 헌신과 지속적인 선교에 대한 장렬한 이야기들 중의 하나이다. 고타마의 복음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그들 신앙의 메시지를 모든 민족에게로 전파하면서, 육로의 카라반 통로에서 당하는 위험을 담대하게 맞섰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륙을 대상으로 하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중국해(中國海)에서의 위험에도 용감하게 대처하였다. 그러나 이 불교는 고타마의 단순한 교리가 더 이상 아니었다; 그를 하느님으로 만든, 신비화된 복음이었다. 그리고 불교가 원산지인 인도로부터 멀리 퍼지면 퍼질수록, 고타마의 가르침과는 더욱 더 멀어졌고, 그것은 자신이 대신한 종교와 점점 더 닮아갔다
94:9.3
(1038-1)
불교는 후대에 이르게 되자 중국에서는 도교에 의해서, 일본에서는 신교에 의해서, 그리고 티베트에서는 그리스도교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천 년이 지난 후에 인도에서는 불교가 다만 시들고 소멸되었다. 그것은 브라만화 되었으며 나중에는 이슬람교에 비굴하게 굴복하였지만, 반면에 동방의 나머지 지역 대부분에서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전혀 알지 못하였을 제례적(祭禮的)인 것으로 타락하였다.
94:9.4
(1038-2)
남부 지역에서는 싯다르타의 전형적인 가르침을 따르는 근본주의자들이 실론과 버마 그리고 인도-차이나 반도에 계속 존재하였다. 이것이 초기 또는 반(反)사회적 교리를 따르는 불교의 하이나야나 분파이다.
94:9.5
(1038-3)
그러나 인도에서 붕괴되기 전에도, 하이나야나 또는 “소승(小乘)”을 지지하는 남부의 순수파들과는 대조적으로, 고타마를 따르는 중국인들과 북부 인도인들의 집단들이 구원에 있어서 “대승(大乘)”을 따르는 마하야나 가르침을 발전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하야나를 지지하는 이 사람들은 불교 교리에 전해 내려오는 사회적 제한성을 벗어났으며, 불교의 이 북부 분파는 그 후로 줄곧 중국일본에서 진화되었다.
94:9.6
(1038-4)
불교는 오늘날에도 살아있고 자라나는 종교인데, 왜냐하면 그것에 부착되어 있는 가장 높은 도덕적 가치들을 성공적으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평온과 자아-통제를 증진시키고, 침착함과 행복을 증강시키며, 많은 슬픔과 비탄을 막아준다. 이 철학을 믿는 그들은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
10. 티베트에서의 종교
94:10.1
(1038-5)
티베트에서는 멜기세덱의 가르침들이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도교와 그리스도교와 합쳐진 가장 이상한 형태가 발견될 수 있다. 불교 선교사들이 티베트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유럽의 북부에 있는 부족들 사이에서 발견하였던 것과 매우 흡사한 원시적인 야만적 상태에 부딪히게 되었다.
94:10.2
(1038-6)
순진한 이 티베트 사람들은 자기들의 옛 마술과 부적들을 전적으로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현재 티베트에서 행해지는 제례들 중에서 종교적인 예식을 조사해 보면, 방울, 영창, 향, 행렬, 묵주, 형상, 장식물, 그림, 성수, 화려한 의복, 정교한 성가대를 포함하고 있는 정교하게 예식을 실천하는, 머리를 깎은 사제들로 구성된 과도하게 발달된 성직자 단체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엄격한 독단론들을 갖고 있으며 신조들과 신비로운 예식들 그리고 특별한 금식 행위들을 정형화 시켰다. 그들의 계급 조직은 승려, 여자 승려, 주지, 달라이 라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천사들과 성인(聖人)들 그리고 성모와 하느님들에게 기도한다. 그들은 고해성사를 하며 연옥(煉獄)을 믿는다. 그들의 사원은 규모가 크고 장대한 경배실을 두고 있다. 그들은 신성한 종교예식을 끝없이 계속 반복하고, 그러한 예식들이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그들은 기도가 어떤 바퀴에 고정되어서, 그것이 돌아갈 때 탄원하였던 것이 응답된다고 믿는다. 현대에 존재하는 어떤 민족으로부터도 그들처럼 그토록 많은 종교들로부터 그렇게 많은 예식들을 흡수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으며; 그러한 누적된 경배예식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방해가 되고 과도하게 부담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94:10.3
(1038-7)
티베트 사람들은 예수 공동체 복음의 단순한 가르침 : 하느님의 아들관계, 사람들의 형제신분, 그리고 영원한 우주에서 계속 상승하는 시민의 자격에 대한 가르침을 제외한 세계의 뛰어난 모든 종교들의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11. 불교도의 철학
94:11.1
(1038-8)
불교는 그리스도 후 첫 번째 1,000년에 중국으로 전파되었으며, 황색 인종의 종교적 관습에 잘 조화되었다. 조상 숭배에서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죽은 자들에게 기도해 왔다; 이제 그들은 그들을 위해서도 역시 기도할 수 있다. 불교는 집대성-해체활동의 도교(道敎)로부터 잔존한 예배 실천 관행과 곧 혼합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종합적인 종교는 경배를 드리는 신전(神殿)과 일정한 종교적 예식과 함께 중국한국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예배종파로 곧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94:11.2
(1039-1)
한편으로는 어떤 면에서 불행한 일이기도 하지만, 고타마의 추종자들이 예배종파의 전통들과 가르침들을 왜곡시켜서 그를 신성한 존재로 만들기전까지는, 불교가 세상에 널리 퍼지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간 삶에 대한 이 신화는 그것이 수많은 기적이 동반되었던 것처럼 미화되면서, 불교의 북부 복음 곧 마하야나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매우 호소력이 있었음이 판명되었다.
94:11.3
(1039-2)
그의 후대 추종자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처의 영이 살아있는 부처가 되어 정기적으로 이 세상에 돌아온다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부처 형상과 사원, 예배의식, 그리고 거짓된 “살아있는 부처”의 막연한 영속을 위한 길을 열었다. 그리하여 위대한 인도인의 개혁종교는 자기가 그토록 맹렬하게 반대하여 투쟁하였던 그리고 그토록 용맹스럽게 비난하였던 바로 그러한 예식적인 실천 관행과 의례적 주문에 그 스스로가 속박되었음을 결국에는 발견하게 되었다.
94:11.4
(1039-3)
불교 철학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진보는 모든 진리의 상대성에 대한 깨달음에 있었다. 이러한 가정(假定) 체제를 통하여 불교도들은 자기 자신의 종교적 경전들 안에 있는 다른 견해들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것과 다른 많은 것들 사이의 차이들을 조화시키고 관련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나약한 마음들에게는 작은 진리가, 위대한 마음들에게는 큰 진리가 주어진다고 가르쳤다.
94:11.5
(1039-4)
또한 이 철학은 부처의 (신성한) 본성이 모든 사람 속에 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사람은 그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 이러한 내적 신성(神性)의 실현을 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은, 내주하는 조절자들에 대한 진리를 제시함에 있어서, 유란시아의 종교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 중에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 것들 중의 하나이다.
94:11.6
(1039-5)
그러나 싯다르타의 기원적 복음에 있어서 커다란 한계는,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이해되었던 바와 마찬가지로, 대상 실체들로부터 자아(自我)를 고립시키는 기법에 의해 필사자 본성의 모든 한계들로부터 인간 자아의 완벽한 해방을 시도한 것이었다. 진정한 조화우주적 자아-실현은, 공간에 의해 속박을 받고 시간에 의해 제한되는 에너지와 마음과 영의 유한한 조화우주와 조화우주 실체와의 정체화구현에서 이룩된다.
94:11.7
(1039-6)
그러나 불교의 예식들과 외면적인 계율들이 불교가 전파되어 지나가는 지역들의 그것들에 의해 심하게 오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이 사고 및 신념 체계를 받아들이었던 위대한 철학가들의 철학적인 삶 속에서 이러한 타락이 모두 발생된 것은 아니었다. 2,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마음들은 절대적인 진리와 절대자의 진리를 확인하려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94:11.8
(1039-7)
절대자의 고귀한 개념의 진화는 생각의 여러 경로들을 통하여 그리고 이성(理性)의 복잡한 길들로 성취되었다. 무한성에 대한 이 교리의 향상은 히브리 신학에서의 하느님 개념의 진화처럼 분명하게 밝혀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불교도들의 마음들이 우주들의 시원(始原)적 근원을 상상하는 그들의 방법에 도달하고 거기에 머물며, 그것을 통과하는 어떤 폭넓은 차원들이 있었다: :
94:11.9
(1039-8)
1. 고타마 전설. 개념의 밑바닥에는, 인도의 왕자이며 예언자인 싯다르타의 가르침과 삶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 이 전설은 불교가 여러 세기에 걸쳐서 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퍼지는 동안 신화적인 것으로 변해갔으며, 결국에는 고타마를 깨우친 자로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부가적인 속성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94:11.10
(1040-1)
2. 다수(多數)의 부처. 고타마인도 사람들에게 왔었다면 그보다 먼 과거와 그보다 먼 미래에 인류의 종족들은 진리를 가르치는 다른 선생들에게서 축복을 받아야만 하였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 라고 추리되었다. 이것이, 여러 명의 부처들, 무제한적이고 무수히 많은 부처들이 존재한다는 가르침이 생겨나게 하였으며, 심지어는 누구든지 그러한 존재─부처의 신성(神性)을 달성하는─가 되기를 열망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94:11.11
(1040-2)
3. 절대자 부처. 부처의 숫자가 무한성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 시대의 마음들에게는 이러한 거대한 개념을 다시 통합시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모든 부처들은 보다 높은 어떤 본질, 무한하고 분별불가적인 실존의 어떤 영원한 자, 모든 실체의 어떤 절대적인 근원의 현시활동이라고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불교의 신(神) 개념은 가장 높은 형태를 취하면서 고타마 싯다르타의 인간 개인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였으며, 속박되어 있던 사람모습의-신(神) 사상의 한계들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영원자 부처에 대한 이 최종적 개념은 절대자, 때로는, 무한자 스스로 이신 이로 훌륭하게 정체성이 확인될 수 있다.
94:11.12
(1040-3)
절대자 신(神)에 대한 이 관념이 아시아 민족들의 대중적인 호응을 얻은 적은 없었지만, 이 지역의 지성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철학을 통합될 수 있게 하였고 그들의 우주관을 조화롭게 하였다. 절대자 부처에 대한 개념은 때로는 반(半)-개인적이고, 때로는 온통 미(未)개인적, 어떤 경우에는 무한한 창조적 기세이기도 하다. 그러한 개념들은, 철학에 도움이 되지만, 종교적인 발전에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모습의-신(神)으로서의 야훼조차도, 무한히 멀리 있는 불교 또는 브라만교의 절대자보다 더욱 위대한 종교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94:11.13
(1040-4)
때로는 절대자가 무한자 스스로 이신 이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들은 약속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영원한 생존과 신성한 은혜를 보장할 수 있다는 살렘의 단순한 복음을 듣고자 갈망하는 굶주린 대중들을 위로할 수 없었다.
12. 불교의 하느님 개념
94:12.1
(1040-5)
불교의 우주관에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은 2중인데: 인도중국의 많은 미신들에 의해 오염된 것 그리고 고타마를, 처음에는 깨우친 자로 그 다음에는 영원한 부처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잘못된 많은 인간 철학을 흡수함으로써 수난을 당해 온 것과 마찬가지로, 불교 역시 인간적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고타마의 가르침들은 지나간 2,500년 동안 계속 진화해 왔다. 깨우친 불교도에게 있어서 부처에 대한 개념이 더 이상 고타마의 인간 개인성이 아닌 것은, 깨우친 그리스도교인 에게 있어서 여호와의 개념이 호렙 산의 정령(精靈)과 일치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용어의 부족은, 옛날 명칭들에 대한 정서적인 보존과 함께, 흔히 종교 개념에서의 진화에 대한 참된 의의(意義)를 이해하는 데 실패하도록 이끈다.
94:12.2
(1040-6)
절대자와 대조되는 하느님 개념이 불교 안에 점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근원은 소승(小乘)불교와 대승(大乘)불교의 추종자들이 나뉘던 초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느님절대자에 대한 이원적(二元的) 개념이 마침내 성숙된 것은 불교의 후자 분파이다. 하느님 개념은 세기가 지나가면서 한 걸음씩 진화되어 일본에서 료닌호넨 쇼닌 그리고 신란의 가르침으로, 마침내는 그 개념이 아미타 부처에 대한 믿음으로 성숙되게 되었다.
94:12.3
(1041-1)
이것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죽음을 체험한 혼은 실존의 궁극인 열반(涅槃)에 들어가기 전에 파라다이스에 머무는 기쁨을 선택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서방의 파라다이스하느님인, 아미타의 신성한 자비와 사랑하는 보살핌에 대한 신앙으로써 새로운 구원이 달성된다고 선언한다. 그들의 철학에서, 아미타를 믿는 사람들은 모든 유한 필사자 이해 한계를 뛰어넘는 무한한 실체를 굳게 붙잡고 있다; 그들의 종교 속에서는, 온통 자비로운 아미타,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한 신앙과 순수한 심정으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파라다이스의 숭고한 행복 달성에서 실패하는 고통을 주지 않을 그러한 존재에 대한 신앙을 고수한다.
94:12.4
(1041-2)
불교의 위대한 강점은 그 신봉자들이 모든 종교로부터 자유롭게 진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선택의 자유는 유란시아인 신앙으로 특징지어진 것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 교파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 종교 집단의 하나가 되어 왔다; 그것은 고타마 추종자들의 고대(古代) 선교 정신을 회복시켰고 그리고는 다른 민족들에게 선생들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어떤 근원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근원으로부터 진리를 수용하려는 이러한 기꺼운 마음은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의 전반기 동안 종교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난, 정말로 칭찬받을만한 경향이다.
94:12.5
(1041-3)
불교 자체는 20세기 부흥기를 지나가고 있다. 그리스도교와 접촉함으로써 불교의 사회적 측면은 크게 증진되어 왔다. 배우고자하는 열망은 형제신분을 이루는 승려 사제들의 가슴속에 다시 불을 붙여 왔으며, 이 신앙 전반에 이루어진 교육으로 인하여 종교적인 진화에 새로운 진보가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다.
94:12.6
(1041-4)
이 기록이 쓰인 당시에, 아시아의 대부분은 불교에 희망을 걸고 있다. 과거의 암흑기 기간 동안 그토록 영웅적으로 잘 견디어 온 이 고귀한 신앙이, 인도의 위대한 선생의 제자들이 한때 새로운 진리를 선포하는 그에게 귀를 기울였던 것처럼, 확대된 조화우주적 실체의 진리를 다시 받아들일 것인가? 오래 된 이 신앙이, 자기가 그토록 오랫동안 찾으려고 애써온 하느님절대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상쾌한 자극에 다시 한 번 반응을 나타낼 것인가?
94:12.7
(1041-5)
유란시아가, 진화적 기원을 가진 여러 종교와의 접촉으로 19세기 동안 쌓여진 신조와 독단론에 방해받지 않은 메시지, 미가엘의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선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불교, 그리스도교 그리고 힌두교에게, 아니 신앙을 가진 모든 민중에 이르기까지, 예수에 관한 복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체, 예수의 복음의 영적 실체가 제시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94:12.8
(1041-6)
[네바돈멜기세덱에 의해 제시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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