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번호 | 복귀
제 1 부
중앙우주와 초우주들
오르본톤옛적으로 늘 계신이들의 권한에 의해 활동하는
초우주 개인성들의 한 유버사 무리단의 후원을 받았음.
제 1 편
우주 아버지
1:0.1
(21-1)
우주 아버지는 모든 창조의 하느님이시며, 모든 사물과 존재의 첫째근원이며 중심이다. 우선 하느님을 창조자로서, 다음에는 통제자로서, 그리고 맨 나중에는 무한한 유지자로서 생각하라. 예언자가 “하느님, 당신은 홀로 계시며; 당신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하늘을 창조하셨고 또한 하늘들의 하늘을 그곳의 모든 무리들과 함께 창조하셨으며; 이들을 보존하고 통제하십니다. 우주들은 하느님아들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창조자는 빛으로 옷처럼 자신을 두르고 있으며 휘장처럼 하늘들을 펼치십니다.”라고 말했을 때에 우주 아버지에 대한 진리가 인류에게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오직 우주 아버지의 개념─많은 하느님들 대신에 한 하느님─만이 필사자 사람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신성한 창조자와 무한한 통제자로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1:0.2
(21-2)
무수한 행성 체계들은 모두 결국에는 여러 종류의 많은 지능(知能)창조체들, 하느님을 알 수 있고, 신성한 애정을 받아들이고, 보답으로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 거주되도록 만들어졌다. 우주들의 우주는 하느님의 작품이며 그의 다양한 창조체들이 사는 곳이다. “하느님이 하늘들을 창조하셨고 땅을 빚으셨으며; 그가 우주를 세우셨고 이 세상을 헛되이 창조하지 않으셨으며; 거주되도록 그것을 빚으셨다.”
1:0.3
(21-3)
깨우친 세계들 모두는 모든 창조의 영원한 조물주이며 무한한 유지자인 우주 아버지를 인식하고 그리고 경배한다. 우주 위의 우주마다 모든 의지 창조체들은 길고 긴 파라다이스로의 여행, 아버지 하느님께 도달하는 영원한 모험인 황홀한 투쟁을 시작했다. 시간의 자녀들의 초월적 목표는 영원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 신성한 본성을 이해하는 것, 우주 아버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하느님을-아는 창조체들은 오직 한 가지 최극의 열망, 온몸을 불태우는 욕망 하나를 갖고 있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구체들에 있어서도, 그가 그의 개인성의 파라다이스 완전성으로 그리고 그의 의로운 최극위(最極位)의 우주 구체에서 존재하는 그러한 그 같이 되어가는 것이다. 영원에 거하는 우주 아버지로부터 최극의 명령이 내려졌다, “내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들도 완전 하라.” 파라다이스의 메신저들은 사랑과 자비로써 이 간곡하고도 신성한 권유를 여러 세대에 걸쳐 아래쪽으로 그리고 여러 우주를 거쳐 바깥쪽으로, 심지어는 유란시아의 인간 종족들과 같은 하등의 동물-기원 창조체에게까지 전해 왔다.
1:0.4
(22-1)
신성의 완전성을 달성하기 위해 분투하라는 이 장엄하고도 우주적인 명령은 완전성의 하느님의 모든 투쟁하는 창조체 창조의 첫 번째 의무이자 최고의 열망이 되어야 한다. 신성한 완전성을 달성하는 이 가능성은 모든 사람의 영원한 영적 진보의 최종적이고도 확실한 운명이다.
1:0.5
(22-2)
유란시아의 필사자들은 무한적 감각에서 볼 때 완전해지기를 도저히 바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존재들에게는, 이 행성에서 그들이 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무한한 하느님이 필사 사람을 위해 마련한 숭고하고도 신성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이 이 운명을 성취할 때, 자아-실현과 마음 달성에 속하는 모든 면에 있어서, 그들은, 하느님 자신이 그의 무한하고 영원한 구체에서 그러하듯이 신성한 완전성인 그들의 구체에서 그렇게 충만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완전성은, 물질적 감각에서는 보편적도 아니고, 지적인 파악에서 무제한적이거나, 혹은 영적 체험에서 최종적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의지를 가진 신성, 개인성 동기부여의 완전성, 하느님-의식의 모든 유한한 측면에 있어서는 최종적이며 완벽하다.
1:0.6
(22-3)
이것이 ,”내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들도 완전 하라.”라는, 신성한 명령의 진정한 의미로, 이는 필사 사람이 더욱 더 높은 차원의 영적 가치와 진정한 우주 의미들을 달성하도록 하는 길고도 황홀한 투쟁에서 앞으로 나가도록 계속 촉구하고 그리고 그를 안쪽으로 손짓하여 부른다. 우주들의 하느님을 찾기 위한 이 숭고한 탐구는 시간과 공간에 속하는 모든 세계들의 거주자들의 최극의 모험이다.
1. 아버지의 이름
1:1.1
(22-4)
우주들에 두루 알려진 아버지 하느님의 이름들 중, 그를 첫째근원이며 우주 중심이라고 칭하는 이름들이 가장 자주 발견된다. 첫째 아버지는 다른 우주들에서 그리고 같은 우주의 다른 구역들에서 다양한 이름들로 알려져 있다. 창조체가 창조자에게 부여한 이름들은 창조체의 창조자에 대한 개념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첫째근원이며 우주 중심은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으며, 단지 본성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만일 우리가 자신들을 이 창조자의 자녀들이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그를 결국에는 아버지라고 불려야 하는 것이 바로 본성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자신이 선택한 이름이고, 그리고 이것은 첫째근원이며 중심과 우리의 개인적 관계를 인식함으로서 성장한다.
1:1.2
(22-5)
우주 아버지는 우주들의 지능적 의지창조체에게 독단적 인식, 형식적 경배, 또는 노예 같은 봉사를 어떠한 형태로든 강요한 적이 없다. 시간과 공간 세계들에 있는 진화하는 거주자들은─그들 스스로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와서─그를 인지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자발적으로 경배하여야 한다. 창조자는 그의 물질적 창조체들의 영적 자유 의지의 복종을 강요하거나 강제하기를 거부한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에 대한 인간 의지의 애정 어린 전념은 하느님께 드리는 사람이 최고로 선택할 수 있는 선물이다; 사실상, 창조체 의지의 그러한 성스럽게-바침은 사람이 파라다이스 아버지에게 주는 유일하게 가능한 참된 가치의 선물을 이룰 것이다.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활동하고, 존재한다; 아버지의 뜻에 머물어 깃들기 위한 이러한 선택을 제외하고 하느님에게 사람이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우주들의 지능적 의지 창조체들에 의해 내려진 그러한 결정들은, 창조자 아버지의 사랑에-지배된 본성에게 아주 만족을 가져다주는 그 진정한 경배의 실체를 이룬다.
1:1.3
(22-6)
너희가 장엄한 창조자를 실제로 알아내고, 신성한 통제자의 내주하는 현존의 실현을 체험하기 시작한 후에, 너희가 참으로 하느님-의식적이 되면, 그러면 너희의 깨우침에 따라서 그리고 신성한 아들들이 하느님을 드러내는 방법과 방식에 따라서, 너희는 첫 번째 위대한 근원이며 중심에 대한 너희의 개념이 적절하게 표현되는 우주 아버지에 대한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세계들에서 그리고 다양한 우주들에서, 창조자는 무수한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는데, 관계성의 영적 면에서는 모든 이름이 같은 의미이지만, 그러나 어떤 주어진 영역에서 그의 창조체의 가슴에 자리 잡은 그의 보좌의 정도와 깊이를 말과 상징 안에서 알 수 있다.
1:1.4
(23-1)
우주들의 우주의 중심 가까이에서는, 우주 아버지가 일반적으로 첫째근원의 의미로 여길 수 있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공간의 우주들 안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우주 아버지를 지칭하는 용어는 우주 중심을 의미하는 경우가 더 많다. 별들의 창조 속으로 더 멀리 밖으로 나가면, 너희의 지역우주의 본부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가 첫째 창조자 근원이며 신성한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 가까이에 있는 한 별자리에서 하느님우주들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무한한 유지자로, 그리고 동쪽에서는 신성한 통제자로 불리고 있다. 그는 또한 빛들의 아버지, 생명의 선물, 만능이신 분으로도 명명되어 왔다.
1:1.5
(23-2)
파라다이스 아들이 증여의 삶을 살았던 그러한 세계들에서는, 하느님이 일반적으로, 개인적 관계, 부드러운 애정, 아버지로서의 헌신을 나타내는 어떤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너희의 별자리 본부에서는 하느님우주 아버지로 알려져 있으며, 거주민이 사는 세계들 중에서 너희의 지역체계 안에 있는 다른 행성들에서는 그는 아버지들의 아버지, 파라다이스 아버지, 하보나 아버지, 그리고 영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증여의 계시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게 된 자들은, 창조체-창조자 관계적-연합의 감동적 관계를 나타내는 정서적인 호소에 결국에는 승복하여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른다.
1:1.6
(23-3)
성(性)적 창조체들이 사는 행성에서는, 지능 존재들의 가슴속에 부모 정서에 대한 충동들이 선천적으로 들어 있는 세계에서는, 아버지라는 용어는 영원한 하느님을 매우 잘 표현해 주는 아주 적합한 이름이다. 그는 너희의 행성, 유란시아에서 하느님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보편적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의의(意義)깊은 것은 너희가 그를 알아야 하고 그처럼 되고자 열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의 옛 예언자들은 참으로 그를 “영속(永續)하는 하느님”이라 불렀으며 그를 “영원 속에 거(居)하는 자”로 묘사하였다.
2. 하느님의 실체
1:2.1
(23-4)
하느님은 영 세계의 최초 실체이다; 하느님은 마음 구체들 안에서 진리의 근원이다; 물질적 영역들에 두루 모든 것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모든 창조된 지능존재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하나의 개인성이고, 우주들의 우주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영원한 실체의 첫째근원이며 중심이다. 하느님은 사람 같지도 기계 같지도 않으시다. 첫째 아버지는 우주의 영이고, 영원한 진리이며, 무한한 실체이고, 아버지 개인성이다.
1:2.2
(23-5)
영원한 하느님은 이상화된 실체 또는 우주 개인성구현보다 더욱 무한하다. 하느님은 단순히 사람의 최극의 욕망, 필사자가 추구할 대상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단지 정의(正義)의 힘-잠재적이라는, 어떤 개념도 아니다. 우주 아버지는 자연계에 대한 동의어가 아닐 뿐 아니라, 개인화된 자연 법칙도 아니다. 하느님은 초월적 실체이지, 단순한 최극 가치에서의 사람의 전통적 개념이 아니다. 하느님은 영적 의미에서의 심리적 초점화구현이 아니며, “사람의 가장 고귀한 작품”도 아니다. 하느님은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러한 개념들 중의 일부 혹은 전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이다. 그는 지상에서 영적 평화를 누리고, 죽음에서 개인성의 생존을 체험하기를 갈망하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하는 개인이고 사랑 넘치는 아버지이다.
1:2.3
(24-1)
하느님의 실존(實在)의 실재성은 사람의 필사자 마음속에서 살며 그리고 거기서 영원히 생존되는 불멸 혼의 진화를 도와주도록 파라다이스로부터 보내진 영 감시자의 신성한 현존의 내주를 통한 인간의 체험 속에서 실증된다. 인간 마음속에 있는 이 신성한 조절자의 현존은 세 가지 체험적 현상에 의하여 드러낸다:
  • 하느님을 아는 지적 수용능력─하느님-의식.
  • 하느님을 찾으려는 영적 욕구─하느님을-추구하는 것.
  • 하느님처럼 되고자 갈망하는 개인성─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전심을 다한 욕망.
1:2.4
(24-5)
하느님의 실존은 과학적 실험이나 논리적 추론의 순수 이성에 의해서는 결코 증명될 수 없다. 하느님은 오직 인간 체험의 영역 안에서만 실현되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실체에 대한 참된 개념은 논리에 대해서 합당한 것이고, 철학에 대해서 찬동할 만한 것이며, 종교에 대해서 핵심적인 것이고 그리고 개인성 생존의 그 어떤 소망에 대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1:2.5
(24-6)
하느님을 아는 자들은 그의 현존한다는 사실을 체험하였다; 이렇게 하느님을-아는 필사자들은 그들의 개인적 체험 속에 살아있는 하느님의 실존에 대한 긍정적 증거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오직 인간 존재가 다른 이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실존은 인간 마음에서의 하느님-의식과, 우주 아버지로부터 거저주는 선물로서 사람에게 증여되어 있고 필사자 지성 안에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에서의 하느님-현존 간의 접촉을 통해서만 실증이 가능하다.
1:2.6
(24-7)
이론적으로는 너희가 하느님창조자로 생각할 수 있고, 그는 파라다이스와 완전성의 중앙우주를 몸소 창조하신 이다, 시간과 공간의 우주들은 모두 창조자 아들들의 파라다이스 집단에 의하여 창조되고 조직된다. 우주 아버지네바돈이라는 지역우주의 몸소 창조자가 아니며; 너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그의 아들 미가엘의 창조다. 비록 진화하는 우주들을 아버지가 몸소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그들 우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일정한 물질적, 마음적 그리고 영적 에너지들을 통한 현시활동 속에서 그는 그들을 통제한다. 아버지 하느님파라다이스 우주의 개인적 창조자이며, 영원한 아들과 관계적-연합하여, 다른 모든 개인적 우주의 창조자들의 창조자이다.
1:2.7
(24-8)
물질적 우주들의 우주에 있는 물리통제자로서, 첫째근원이며 중심은 영원한 파라다이스 섬의 원형틀들 안에서 기능하며, 그리고 이 절대 중력 중심을 통하여 영원한 하느님은 중앙우주와 그리고 우주들의 우주에 두루 물리적 차원의 조화우주적 전반적-통제를 균등하게 행사한다. 마음으로서, 하느님무한한 영신(神) 안에서 기능하며; 영으로서, 하느님영원한 아들의 개인 안에서 그리고 영원한 아들의 신성한 자녀들의 개인 안에서 현시된다. 이러한 첫째근원이며 중심파라다이스의 조화-협동 개인들과 절대자들과의 상호관계는, 모든 창조에 두루 그리고 그에 대상되는 모든 차원에 걸친 우주 아버지직접적인 개인적 활동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다. 그의 단편화된 영의 현존을 통하여, 창조자 아버지는 그의 창조체 자녀들과의 그리고 그가 창조한 우주들과의 즉각적인 접촉을 유지한다.
3. 하느님은 우주의 영
1:3.1
(25-1)
하느님은 영이다.” 그는 한 우주의 영적 현존이다. 우주 아버지는 한 무한한 영적 실체이다; 그는 “주권자이며, 영원하고, 불멸적인, 불가시적인, 그리고 유일하게 참된 하느님이다. 비록 너희가 “하느님의 자손”이라 하더라도, 너희가 “그의 형상에 따라”창조되었다고─그의 영원한 현존이 머무르는 중심으로부터 보내진 신비의 감시자가 내주된다고─불린다고 해서 형태와 모습에서 아버지가 너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 존재들은 비록 그들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살과 피를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1:3.2
(25-2)
옛 선지자는 “보라, 그가 내 옆에서 걸어가도 나는 그를 보지 못한다; 또한 그가 지나가도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아마도 계속해서 하느님의 일들을 지켜보고, 그의 장엄한 행위에 대한 물질적 증거들에 대하여 고도로 의식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의 신성의 가시적 현시활동을 우리가 거의 보지 못하며, 심지어는 인간 속에 내주하는 파견된 그의 영의 현존을 쳐다볼 수도 없다.
1:3.3
(25-3)
우주 아버지는 물질적 장애들과 제한된 영적 자질들을 가진 저급한 창조체들로부터 떨어져서 자신을 숨기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상황은 오히려 다음과 같다: “너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이는 어떠한 필사자도 나를 보고서는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질적 어떤 사람도 영 하느님을 쳐다보고서는 그의 필사 실존을 보존할 수 없다. 신성한 개인성현존의 영광과 영적 찬란함은, 비교적 낮은 영 존재들의 집단이나 또는 어떤 계층의 물질적 개인성들도 접근할 수 없다. 아버지의 개인적 현존의 영적 광채는 “어떠한 필사 사람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어떤 물질적 창조체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는 빛이다.” 그러나 영성화(靈性化)된 마음의 신앙-시각으로 그를 식별하기 위해 육신 계층의 눈으로 하느님을 보아야 할 필요는 없다.
1:3.4
(25-4)
우주 아버지의 영 본성은 그의 공존하는 자아인 파라다이스영원한 아들과 함께 충분히 공유된다. 아버지아들은 그들의 공동 개인성 조화-협동자인 무한한 영과 우주적이고도 영원한 영을 충만하게 그리고 남김없이 비슷한 방식으로 공유한다. 하느님의 영은, 자체적으로 그리고 저절로, 절대적이다; 아들 안에서 그것은 분별불가하며, 영 안에서 우주적이며, 그들 모두 안에서 그리고 그들 모두에 의하여 무한하다.
1:3.5
(25-5)
하느님은 우주적인 영이다; 하느님은 우주적인 개인이다. 유한 창조의 최극 개인적 실체는 영이다; 개인적 조화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아(亞)절대 영이다. 오로지 무한 차원들만이 절대적이며, 그런 차원들에서만이 물질, 마음, 그리고 영 사이에 하나가 되는 최종이 있다.
1:3.6
(25-6)
우주들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은 잠재적으로 물질, 마음, 영에 대한 전반적-통제자이다. 하느님은 오직 그의 멀리-퍼지는 개인성 순환회로에 의해서만, 의지창조체들로 이루어진 그의 광대한 창조의 개인성들과 직접 관계를 맺지만, 그는 (파라다이스 밖에서는) 오직 그의 단편화된 실존개체들의 현존 안에서, 우주들 안에 널리 퍼진 하느님의 뜻으로만 접촉이 가능하다. 시간 속의 필사자들의 마음속에 깃들고, 그곳에서 살아남는 창조체의 불멸의 혼의 진화를 육성시키는 이 파라다이스 영은 우주 아버지의 본성과 신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진화하는 창조체의 마음은, 지역우주들 안에서 기원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겠다는 창조체의 선택의 필연적 결과인 영적 달성이라는 그 체험적 변환을 성취함으로써 신성한 완전성을 얻어야만 한다.
1:3.7
(26-1)
사람의 내적 체험 속에서, 마음은 물질과 결합되어 있다. 물질적으로-연계된 이러한 마음은 필사자의 죽음에서 생존할 수 없다. 생존의 기법은 인간 의지의 그러한 조절들 안에 그리고 그러한 하느님-의식 지성이 점차적으로 영의 가르침을 받고 결국에는 영의 인도를 받게 되는 필사자 마음 안에서의 그 변환들 속에 포옹되어 있다. 물질 관계적-연합으로부터 영 연합을 향한 인간 마음의 이 진화는 필사 마음의 잠재적인 영 위상을 불멸의 혼인 모론시아 실체들로 변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질에 종속된 필사자 마음은 점점 더 물질적으로 되는 운명에 있고 결국에는 개인성의 소멸을 당한다; 영에 종속되는 마음은 점점 더 영적으로 되는 운명에 있고, 궁극적으로 생존시키고 인도하는 신성한 영과 하나 됨을 성취하며, 이런 식으로 해서 개인성 실존의 생존과 영원을 달성하게 되어 있다.
1:3.8
(26-2)
나는 영원자로부터 왔고, 우주 아버지가 현존하는 곳에 반복하여 되돌아갔었다. 나는 첫째근원이며 중심인 영원하고 우주적인 아버지의 실재성과 개인성에 대해 알고 있다. 나는 위대한 하느님이 절대이고 영원하며 그리고 무한하며 또한 그는 선하며 신성하며 그리고 자비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위대한 선언들의 진리를 알고 있다: “하느님은 영”이고 “하느님은 사랑”이며, 이 두 속성들은 영원한 아들 안에서 우주에 가장 완벽하게 밝혀져 있다.
4. 하느님의 신비
1:4.1
(26-3)
하느님의 완전성의 무한성이 그렇게 그를 영원히 신비롭게 만드는 그러한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불가해한 모든 신비들 중 가장 큰 것은 필사 마음 속에 있는 신성한 내주(內住) 현상이다. 우주 아버지가 시간의 창조체들에게 머무는 방식은 모든 우주 신비들 중 가장 심오한 것이다; 사람마음 속에 있는 신성한 현존은 신비들 중의 신비이다.
1:4.2
(26-4)
필사자들의 물질 육체는 “하느님의 성전”이다. 비록 주권자 창조자 아들들이, 그들의 거주세계 창조체에 가까이 다가가서 “모든 사람들을 그들 자신에게 이끈다” 할지라도; 그들이 의식의 “문에 서서” “그리고 두드리고”그리고는 “ 자신들의 가슴의 문을 여는”모든 이에게 들어가는 것을 기뻐할지라도; 창조자 아들들과 그들의 필사 창조체들 사이에 이 친밀한 개인적 교제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 사람들은 자신들 속에 실재적으로 내주하는,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온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의 몸은 하느님의 성전인 것이다.
1:4.3
(26-5)
너희가 여기 아래에서 끝이 날 때, 땅에서 일시적 형태로 너희의 여정을 다 마쳤을 때, 육신으로서의 시험 여행이 완결되어질 때, 필사자 장막을 이루는 티끌이”원래 유래되었던 땅으로 되돌아 갈” 때; 그때에 내주하는 “영이 그것을 주셨던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밝혀진다. 하느님의 한 단편(斷片), 신성의 한 부분이며 조각이 이 행성의 각각의 도덕적 존재 안에 머무른다. 그것은 소유로는 아직 너희들것이 아니지만, 만일 너희가 필사 실존에서 생존된다면 너희와 하나가 되도록 고안하여 의도되어 있다.
1:4.4
(26-6)
우리는 계속해서 하느님의 이 신비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무한한 선, 끝없는 자비, 비할 데 없는 지혜, 숭고한 성격의 끝없는 진리의 장관(壯觀)이 더욱 더 펼쳐지고 있음에 당혹하고 있다.
1:4.5
(26-7)
신성한 신비는 유한한 것과 무한힌 것 사이에,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 사이에, 시간-공간 창조체와 우주 창조자 사이에,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사람의 불완전함과 파라다이스 신(神)의 완전함 사이에 존재하는 선천적 차이에 들어 있다. 우주적 사랑의 하느님은 신성한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함의 본질특성들을 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그 창조체의 수용능력의 충만함에 닿은 데까지 그의 모든 각 창조체에게 어김없이 자신을 현시한다
1:4.6
(27-1)
우주 아버지는, 우주들의 우주에 속한 모든 구체와 각각의 세계에 있는 모든 영 존재와 필사 창조체들에게, 그러한 영 존재들에 의해 그리고 그러한 필사 창조체들에 의해 식별되고 이해될 수 있는 자신의 자비롭고 신성한 자아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영적이든 물질적이든, 하느님은 개인들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다. 우주의 어느 자녀가 어느 주어진 시기에 느끼는 신성한 현존은, 초(超)물질 세계의 영 실재성들을 받아들이고 식별할 수 있는 그러한 창조체의 수용능력에 의해서만 제한될 뿐이다.
1:4.7
(27-2)
인간의 영적 체험 안에 있는 실체로서의 하느님은 신비가 아니다. 그러나 영 세계의 실체들을 물질적 계층에 속하는 물리적 마음들에게 쉽게 설명을 시도할 때 신비가 나타나는데: 이 신비는 너무나 미묘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하느님을-아는 필사자의 신앙-파악으로서만 유한으로 무한을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의 물질적 세계들에서 진화하는 필사자들이 영원한 하느님을 식별하는 철학적 기적을 성취할 수 있다.
5. 우주 아버지의 개인성
1:5.1
(27-3)
하느님의 위대하심, 그의 무한성으로, 그의 개인성을 흐리게 하거나 빛을 잃게 하지 말라. “귀를 계획하신 분이, 어찌 듣지 못하실 수 있겠는가? 눈을 지으신 분이, 어찌 보지 못하시겠는가?” 우주 아버지는 신성한 개인성의 극치이다; 모든 창조에 두루 개인성의 근원이자 운명이다. 하느님은 무한하시며 동시에 개인적이다; 그는 무한한 개인성이다. 아버지는, 비록 그의 개인 무한성이 그를 모든 물질적이고 유한한 존재들의 충분한 이해를 넘어서 언제까지나 있게 함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한 개인성이다.
1:5.2
(27-4)
하느님은 인간 마음으로 납득되는 개인성으로서의 어떤 하나의 개인성보다 훨씬 그 이상이다; 그는 초(超)개인성에 대한 어떤 가능한 개념보다도 더더욱 그 이상이다. 아무튼 존재의 실체에 대한 최대 개념이 개인성의 관념과 이상을 구성하고 있는, 그러한 물질적 창조체의 마음들과 더불어, 신성한 개인성의 그러한 불가해한 개념을 논의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헛된 일이다. 우주 창조자에 대하여 물질적 창조체에게 최고 가능한 개념은 신성한 개인성에 대한 드높여진 관념의 영적 이상들 안에 포옹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하느님은 개인성에서의 인간의 개념보다 훨씬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하더라도, 너희는 똑같이 우주 아버지가 영원하고, 무한하며, 참되고, 선하며 그리고 아름다운 개인성 이하의 그 어떤 것도 도저히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1:5.3
(27-5)
하느님은 자신의 어떤 창조체에게도 숨지 않고 있다. 존재들의 그 많은 계층들이 그에게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단지 그가 “물질적 어떤 창조체들도 접근할 수 없는 빛 속에 거(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개인성의 광대함과 장엄함은 진화하는 필사자들의 미(未)완전한 마음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 그는”손바닥으로 바다를 가늠하고, 손 뼘으로 우주를 가늠한다. 지구 순환계 위에 앉아있고, 하늘을 휘장처럼 펼치고 이것을 거할 우주로 확장 시킨다,” “ 네 눈을 높이 들어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으며, 그들의 세계들을 순서에 따라 있게 하고, 저희 모두를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그 분을 바라보라”; 그리고”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것들은, 만들어진 것들로 일부 납득된다.”는 말이 사실이다. 오늘날, 너희의 있는 그대로, 너희는 그의 각가지 그리고 다양한 창조를 통해,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 및 그들의 수많은 종속들의 계시와 직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조물주를 식별하여야 한다.
1:5.4
(28-1)
비록 물질적 필사자들이 하느님의 개인을 볼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은 그가 한 개인임을 확신하면서 기쁨을 향유해야 한다; 우주 아버지가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 속에 있는 하급의 거주자들에게 영원한 영적 진보를 제공하고 있음을 묘사하는 그 진리를; “그의 자녀들 가운데서 기뻐한다.”는 것을 신앙에 의해 받아들여야 한다; 하느님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사랑이시며 무한한 창조자 개인성을 이루는 초인간적이고 신성한 속성들 중 그 어느 것에 있어서도 모자람이 없다.
1:5.5
(28-2)
지역 창조계에 있어서 (초우주들의 성원들을 제외하고) 하느님은 지역우주들의 주권자들인 동시에 거주하는 자들의 세계의 아버지들인 파라다이스 창조자 아들들 이외에는 개인적 또는 거주의 형태로서 현시활동하지 않는다. 만일 창조체의 신앙이 완전하다면, 그는 창조자 아들을 보았을 때 그가 이미 우주 아버지를 본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아버지를 추구함에 있어서, 그는 아들 이외의 어떤 다른 것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필사 사람은 완벽한 영 변환과 그리고 실재적 파라다이스 달성을 성취할 때까지는 결코 하느님을 볼 수 없다.
1:5.6
(28-3)
파라다이스 창조자 아들들의 본성들 속에는,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무한 본성을 갖는 우주 절대의 분별불가한 잠재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주 아버지창조자 아들들 속에 모든 면에서 신성하게 현존하고 있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이다. 미가엘 계층의 파라다이스 아들들은 완전한 개인성들이고, 빛나는 새벽별에서부터 아래로는 진행되고 있는 동물 진화의 가장 낮은 인간 창조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역우주 개인성의 원형틀이기도 하다.
1:5.7
(28-4)
하느님이 없이는 그리고 그의 위대하고 중심적인 개인이 없었더라면, 이 광대한 우주들 중의 우주에 두루, 어떠한 개인성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은 개인성이다.
1:5.8
(28-5)
하느님이 영원한 힘, 장엄한 현존, 초월적 이상, 영광스러운 영(靈)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모든 것들인 동시에 무한하게 그 이상(以上)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으로 그리고 영속적으로 완전한 창조자 개인성, “알 수 있고 알려질 수 있는” 개인,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분; 그리고 우리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분이다; 다른 인간들이 알려져 온 것처럼, 하느님의 친구로서 너희는 알려질 수 있다. 그는 실제 영이며 영적 실체이다.
1:5.9
(28-6)
우리가 우주에 두루 드러난 우주 아버지를 볼 때; 우리가 그의 수많은 창조체들 속에 내주하는 그를 식별할 때; 우리가 그의 주권자 아들들의 개인들 속에서 그를 바라볼 때; 우리가 가까이서 멀리서, 여기저기에서 그의 신성한 현존을 계속 감지할 때, 그의 개인성의 시원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의문을 갖지 말라. 멀리-퍼지는 이 모든 분배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한 참 개인으로 남아 있으며, 우주들의 우주에 두루 흩어져 있는 헤아릴 수 없는 그의 창조체들의 무리들과 개인적 관계를 영속적으로 유지해 나간다.
1:5.10
(28-7)
우주 아버지의 개인성에 대한 관념은 주로 계시를 통해 인류가 알게 된 하느님에 대한 확대되고 더욱 참된 개념이다. 이성, 지혜, 종교적 체험 등이 모두 하느님의 개인성을 암시하고 포함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모두 합하여 이것을 타당하게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내주하고 있는 조절자도 전(前)개인적이다. 어떤 종교든지 그 진리와 성숙도는 하느님의 무한한 개인성에 대한 그 개념과 신(神)의 절대 합일체에 대한 그 파악에 직접 비례한다. 따라서 개인적 신(神)에 대한 관념은, 종교가 하느님의 합일체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확립한 이후 종교적 성숙의 척도가 된다.
1:5.11
(29-1)
원시종교는 많은 개인적 하느님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주로 사람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계시(啓示)는, 첫째 원인의 과학적 설정 안에서 단지 가능하고, 그리고 우주 합일체의 철학적 관념 안에서는 오직 일시적으로만 제시되어지는, 하느님에 대한 개인성 개념이 타당함을 확인시켜 준다. 어떤 개인이라 해도 오직 개인성 접근에 의해서만 하느님의 합일체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개인성을 부인하면 결국 물질주의냐 범신주의냐 라는 두 철학적 딜레마에서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1:5.12
(29-2)
신(神)을 깊이 사색할 때, 개인성 개념은 유형론(有形論)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물질적 신체는 사람이나 하느님의 개인성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 아니다. 이 유형론의 잘못은 인간 철학의 양극단에서 나타나 있다. 물질주의에서는, 사람이 죽음에 따라 육체를 잃어버려, 그는 하나의 개인성으로의 존재하기가 끝나며; 범신주의에서는 하느님은 육체가 없으므로, 따라서 그는 개인이 아니다. 진보하는 개인성의 초인간적 전형은 마음과 영의 연합 안에서 기능한다.
1:5.13
(29-3)
개인성이란 단순히 하느님의 속성 중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조화-협동된 무한한 본성과, 그리고 완전한 표현의 영원성과 우주적 보편성 안에서 전시되는 통합된 신성한 의지의 그 전체성을 의미한다. 최극의 의미에서 개인성이란 우주들의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이다.
1:5.14
(29-4)
하느님은, 영원하고 보편적이며 절대적이고 무한하기 때문에, 지식이 자라거나 지혜가 늘어나지 않는다. 하느님은 유한한 사람이 추측하거나 이해하는 것처럼 체험을 획득하지도 않지만, 그는 자신의 영원한 개인성의 영역 안에서 부단히 자아-실현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을 즐기는데, 이것은 계속 진화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유한한 창조체들이 새로운 체험을 쌓아 가는 것과 유사하며 또 어떤 면에서 그렇게 비교될 수도 있다.
1:5.15
(29-5)
넓은 우주 안에서 신성한 도움에 의해 영적으로 완전한 높은 세계로 오르려고 모색하는 불완전한 모든 혼의 개인성 투쟁에 우주 아버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무한한 하느님의 절대적 완전성은 그로 하여금 완전함의 분별불가한 최종이라는 극심한 한계에 부딪쳐 고통을 받게 만들 것이다. 우주들의 우주에 두루 모든 영적 존재와 모든 필사 창조체의 이러한 점진적 체험은, 끝없는 자아-실현의 끝없는 신성한 순환에서의 아버지의 계속-확대하는 신-의식의 일부이다.
1:5.16
(29-6)
“너희의 모든 고통 속에서 그가 고통을 받고 있고,” “너희가 승리하는 모든 경우에 그도 너희 속에서 그리고 너희와 함께 승리한다.”라는 말들은 문자 그대로 참이다. 그의 전(前)개인적인 신성한 영은 너희의 실제적인 일부분이다. 파라다이스 섬은 우주들의 우주의 모든 물질적 형태변형에 응답한다; 영원한 아들은 모든 창조의 모든 영 충동들을 포함하고 있다; 공동 행위자는 팽창하는 조화우주에 대한 마음 표현 모두를 함유하고 있다. 우주 아버지는 시간과 공간에 속하는 전체 진화 창조의 모든 실존개체, 존재, 개인성의 상승하는 영들 그리고 확대하는 마음들의 점진적 투쟁이라는 개별적 체험 전체를 신성한 의식의 충만 속에서 깨달아 실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우리 모두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참이다.
6. 우주의 개인성
1:6.1
(29-7)
인간의 개인성은 신성한 창조자 개인성에 의해 투영된 시간-공간 형상-그림자이다. 그리고 어떤 실재성도 그것의 그림자를 탐색하는 것으로는 충분하게 이해될 수 없다. 그림자는 참된 실체에 의해 해석되어야만 한다.
1:6.2
(30-1)
하느님은 과학에 있어서는 원인, 철학에 있어서는 관념, 종교에 있어서는 개인, 나아가 사랑 넘치는 하늘아버지이다. 하느님은 과학자에게는 시원적 기세, 철학자에게는 합일체의 가설, 종교인에게는 살아있는 영적 체험이다. 우주 아버지의 개인성에 대한 사람의 부적절한 개념은 우주에서 사람의 영적 진보를 통해서만 향상될 수 있으며 시간과 공간의 순례자들이 드디어 파라다이스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신성한 포옹에 도달하였을 때에만 참으로 적절하게 될 것이다.
1:6.3
(30-2)
하느님과 사람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이 개인성에 대한 정반대 관점들을 결코 놓치지 마라. 사람은 유한에서 무한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개인성을 이해하며; 하느님은 무한에서 유한을 바라보신다. 사람은 가장 낮은 유형의 개인성을 갖고 있다; 하느님은 최고자, 더 나아가 최극이며, 궁극이며 절대인 개인성을 소유하신다. 그러므로 신성한 개인성에 대한 더 나은 개념들은, 인간의 개인성에 대한 향상된 관념, 특히 창조자 아들미가엘유란시아 증여 삶 속에서의 인간 및 신성한 개인성의 증진된 계시, 그 출현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했다.
1:6.4
(30-3)
필사 마음 속에 내주하는 전(前)개인적인 신성한 영은, 바로 그 현존 속에서, 그것의 실재적 실존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지만, 그러나 신성한 개인성에 대한 개념은 다만 진정한 개인적 종교 체험의 영적 통찰력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 모든 개인은, 인간적이든 신성하든, 그 개인의 외부적 반응 또는 물질적 현존과 매우 다르게 이해되고 알려질 수 있다.
1:6.5
(30-4)
어느 정도의 도덕적 유사성과 영적 조화는 두 개인들 사이의 친구 관계에 필수이다; 사랑 넘치는 개인성은 사랑이 없는 개인에게 결코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신성한 개인성을 아는 것에 다가가는 것조차, 모든 사람의 개인성 자질들이 온통 그 노력에 바쳐져야만 한다; 건성으로 하는, 어중간한 헌신은 소용없는 것이다.
1:6.6
(30-5)
사람이 자신을 더 완벽하게 납득하면 할수록 그리고 자기 동료들의 개인성 가치를 인정하면 할수록, 그는 기원 개인성에 대해 더욱 더 알고 싶어질 것이고, 하느님을-아는 그러한 인간은 더욱 더 진지하게 기원 개인성처럼 되려고 분투할 것이다. 하느님에 관한 의견들에 대하여 너희가 논쟁을 벌일 수도 있지만, 그와 함께 그리고 그의 속에서의 체험은 모든 인간적 논란과 단순한 지적 논리를 넘어서 그 위에 존재한다. 하느님을-아는 사람은, 믿지 않는 자들을 납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교화(敎化)와 상호 만족을 위하여 자신의 영적 체험을 묘사한다.
1:6.7
(30-6)
우주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이해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우주가 마음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리고 개인성으로 관리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들이 인간적이든 초인간적이든, 다른 마음 현상들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사람의 개인성이 우주를 체험할 수 있다면,그 우주 어딘가에는 신성한 마음과 실재적 개인성이 숨겨져 있다.
1:6.8
(30-7)
하느님은 영─영 개인성─이다; 사람도 역시 영─잠재적인 영 개인성─이다. 나사렛 예수는 인간 체험 속에서 영 개인성의 이 잠재적인 것의 충만한 실현을 달성하였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는 그의 삶은 하느님의 개인성에 대한 사람의 가장 실제적이고 이상적인 계시가 되고 있다. 비록 우주 아버지의 개인성이 오직 실재적인 종교체험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하지만, 예수의 이 땅의 삶을 통해, 참으로 한 인간 체험 속에서 하느님의 개인성에 대한 그러한 하나의 실현과 계시의 완전한 실증에서 우리는 영감을 얻는다.
7. 개인성 개념의 영적 가치
1:7.1
(31-1)
예수가 “살아 계시는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는 개인적인 신(神)-하늘에 계신 아버지─을 의미한 것이었다. 신(神)의 개인성에 대한 개념은 동료관계를 촉진시키며; 그것은 지능적 경배를 장려한다; 그것은 참신한 신뢰감을 증진시킨다. 상호작용은 비(非)개인적인 사물들 사이에도 이루어 질 수 있지만, 동료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하느님과 사람과의 관계처럼, 아버지와 아들 간의 동료관계 관계도 양측이 개인들이 아니라면 결코 누릴 수 없다. 비록 이 개인적 교제가 바로 그 생각 조절자와 같은 미(未)개인적 실존개체의 현존에 인해 크게 촉진될 수 있다 하더라도, 오직 개인성들만이 서로 교통할 수 있다.
1:7.2
(31-2)
사람은, 한 방울의 물이 대양과 합일체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하느님과 연합을 성취하지는 못한다. 사람은 점진적 상호보답적인 영적 교제에 의해, 개인적 하느님과의 개인성 상호교감에 의해, 그리고 신성한 뜻과의 충심어리고 지능적인 순응을 통해 점점 더 신성한 본성에 도달함으로써 신성한 연합을 달성한다. 이러한 숭고한 관계는 오로지 개인성들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1:7.3
(31-3)
진리에 관한 개념은 개인성과는 별도로 다루어질 수 있고, 미(美)에 관한 개념은 개인성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신성한 선(善)의 개념은 오직 개인성에 대한 관계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오직 개인만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다. 미와 진리조차도 그것이 사랑 넘치는 아버지, 개인적인 하느님의 속성들이 아니라면 생존 소망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다.
1:7.4
(31-4)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이 가장 시원적이고 변함없으며 만능이시며 완전하면서도, 동시에 계속-변화하고, 분명히 법칙에 제한되는, 상대적 불완전에서 계속 진화하고 있는 우주에 둘러 싸여 있는지를 충분히 납득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개인적 체험 속에서 그러한 진리를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들 그리고 우리의 환경 모두의 계속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개인성의 정체성과 의지의 합일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7.5
(31-5)
궁극의 우주 실체는 수학, 논리, 철학이 아니라, 개인적인 하느님의 신성한 뜻에 점차적으로 순응하는 각자의 체험에 의해서만 파악된다. 과학 또는 철학뿐만 아니라 신학조차도 하느님 개인성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신앙 아들들의 개인적 체험만이 하느님의 개인성의 실재적인 영적 실현을 가져올 수 있다.
1:7.6
(31-6)
우주 개인성의 상급 개념들은: 정체성, 자아-의식, 자아-의지, 그리고 자아-계시에 대한 가능성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은 나아가, 파라다이스 신(神)들의 개인성 관계적-연합 안에서 존재하듯이 그처럼, 다르거나 동등한 개인성들과의 동료관계를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적-연합의 절대적 합일은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신성(神性)은 불가분성, 합일체로 알려진다. “주님 하느님하나이다.” 개인성의 불가분성은 하느님이 필사 사람의 가슴속에서 살도록 그의 영을 증여하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인간 아버지의 개인성 불가분성이 필사 아들들과 딸들을 낳는 행위를 방해하지 않는다.
1:7.7
(31-7)
합일체의 개념과 관련된 이 불가분성 개념은 신(神) 궁극위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모두 초월됨을 포함한다; 따라서 시간이나 공간은 절대적이거나 무한할 수 없다. 첫째근원이며 중심은 모든 마음, 모든 물질, 그리고 모든 영을 분별불가하게 초월하는 그 무한자이다.
1:7.8
(31-8)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에 관한 사실은 결코 신성한 합일체의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파라다이스 신(神)의 세 개인성들은 모든 우주 실체 반응들과 모든 창조체 관계들에 있어서, 하나로 실존한다. 영원한 이 세 개인들도 신(神)의 불가분성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 우주 문제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나는지 필사 마음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적절한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실망할 필요가 없으며; 이 모든 일들은 파라다이스 존재들인 나의 집단에 속한 높은 개인성들에게조차도 전적으로 뚜렷하지는 않다. 파라다이스로 오랜 필사자 오름이 계속되는 신(新)시대를 거치면서 너희의 마음이 점진적으로 영성화 됨에 따라 신(神)과 관련된 이 심오한 진리들이 점점 뚜렷해 질 것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하라.
1:7.9
(32-1)
[네바돈 지역우주의 영역을 넘는 관련사들을 다루어야 하는 이 다가오는 계시의 일부를 감독할 목적으로, 일곱 번째 초우주 본부인 유버사옛적으로 늘 계신이들에 의해 배정된 천상의 개인성 무리단의 한 일원인, 신성한 조언자에 의해 제시되었음. 나는 하느님의 본성과 속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이 글을 후원하도록 위임받았는데, 왜냐하면 거주하는 어떤 세계든지 그러한 목적을 위해 가능한 정보의 최고 근원을 내가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곱 초우주들 모두에서 신성한 조언자로 일해 왔었고, 오랫동안 모든 사물들의 중심인 파라다이스에 거주해 왔다. 나는 우주 아버지의 즉각적인 개인적 현존 안에서 머무는 최극의 기쁨을 여러 번 누려왔다. 나는 도전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아버지의 본성과 속성에 대한 실체와 진리를 묘사한다; 나는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어지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