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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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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7-24

본문

어린이

children.jpg 인간의 한계들, 잠재적 악은 신성한 본성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악과 함께하는 필사 체험과 거기에서의 모든 사람의 관계들은 시간의 자녀들─낙원천국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창조주 아들에 의해 창조되어왔거나 진화되어온 도덕적 책임을 가진 창조체들─안에서의 하느님의 항상-확대하는 자아-실현의 일부분인 것이 아주 확실하다.
[2:2.7]

그 어떤 상승하는 필사자도 물질세계 혹은 뒤이어 지는 최종자 세계 또는 예루셈에서 자녀─자기 자신 또는 다른 이의 자녀─들을 기르는 체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버지들은, 어머니들과 똑같이 확실하게, 이 필수 체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녀 양육은 주로 어머니의 일이라고 여기는 것은 유란시아 현대인들의 유감스럽고도 잘못된 인식이다. 자녀들에게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필요하며, 아버지도 어머니만큼 이러한 어버이 체험이 필요하다.
[47:1.6]

이 천사들은 모두 시간의 사실들과 영원의 진리들에 대한 가장 낮은 보호관리자로부터 가장 높은 보호관리자에 이르기까지 확장된 기록자들의 고리에 속해 있다. 언젠가 그들은 너희로 하여금 진리뿐만 아니라 사실을 찾도록 가르치고, 혼은 물론 너희 마음을 확대하도록 가르칠 것이다. 지금도 너희는 너희 가슴의 정원에 물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지식의 메마른 모래들을 찾아내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교훈을 배우게 되면 형식은 가치가 없게 된다. 어떤 병아리도 껍질 없이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껍질도 병아리가 부화한 후에는 아무 가치가 없다. 그렇지만 때로는 실수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계시로서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그것에 대한 체험적 정복에 필수가 되는 저들 서서히 창발하는 진리들에 치명적일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이상들을 가질 때, 그것들을 제거하지 말라; 그들로 하여금 키우도록 내버려 두라. 그리고 너희가 성인들로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동안, 너희도 역시 어린아이들처럼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48:6.21]
생각조절자를 소유하기에 너무 어렸을 때 죽은 아이들은 어느 한 부모가 맨션세계들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지역체계들의 최종자 세계에서 재(再)개인성구현 된다. 아이는 필사자로 탄생하면서 물리적 실존개체를 얻지만, 생존의 사실에서 본다면, 조절자가 없는 모든 아이들은 여전히 그들의 부모들에게 부속된 것으로 간주된다.
[49:6.12]
자녀들을 낳고 키운 부모들은 창조주-아버지인 미가엘이 자기 자신의 아들들을 책망하고 파괴시키는 일을 왜 주저하는지를 더 잘 납득할 것이다. 방탕한 아들에 대한 예수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잘못한 자녀의 회개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54:4.2]
4. 그릇된 행동이 한 가정에게 항상 해로운 반면, 지혜와 사랑은 죄인이 자신의 방법의 실수를 보고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애정 어린 아버지에 의해 시간이 수여되는 동안 정직한 자녀들이 실수를 범하는 형제를 참아내도록 훈계한다.
[54:5.5]
큰 가족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심각한 그릇된 행위를 저지른 자기 자녀들 중 하나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품행이 옳지 못한 이 자식에게 자비를 확장시키기 위해 행실이 바른 다른 모든 자녀들에 대해서도 일시적으로 어려운 일을 시키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한 결국 생겨나는 것들은 필연적이며; 그러한 모험은 사랑스러운 부모를 갖게 되는 그리고 가족 집단의 어떤 구성원이 되는 실체 상황과 분리될 수 없다. 한 가족의 각 구성원은 다른 모든 구성원의 의로운 행위성에 의해 유익을 얻으며; 마찬가지로 각 구성원은 다른 모든 구성원의 잘못된 행위성으로 인한 직접적 시간-영향들을 겪는다. 가족들, 집단들, 종족들, 세계들, 체계들, 별자리들, 그리고 우주들은 개별성을 소유하는 연합의 관계들이며; 그러므로 크든지 작든지 그러한 모든 집단의 각 구성원은 관계되는 집단의 다른 모든 구성원의 옳은 행위와 그릇된 행위의 영향을 받는다.
[54:6.3]
이들 뛰어난 세계에서는 자녀를 잉태하는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 한 가족에서 자녀들의 나이 차이가 너무 나는 것은 좋지 않다. 서로 나이가 비슷할 때, 자녀들은 자신들의 서로간의 훈련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세계에서는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의 통달에서 다양한 성취의 진보하는 권역과 분야에서 격렬한 분투의 경쟁체계에 따라 아낌없이 훈련된다. 영화롭게 된 그러한 구체들이 충분한 악, 실제와 그리고 잠재를 내보이는 것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오히려 진리와 실수, 선(善)과 악, 죄와 정의(正義) 사이에서 선택의 동기가 되되는 것들이다.
[55:3.10]
문명은 종족마다 획득되는 것이고; 생물학적으로 주어지는 재능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자손들은 문화적 환경 속에 적응해야 하며, 동시에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은 새롭게 그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문명의 우수한 본질특성들은─과학적, 철학적, 종교적─직접적인 상속에 의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 문화적 성취들은 오직 사회적인 유산에 대한 개화된 보존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68:0.2]
가장 원시적인 사회에서는, 떠도는 무리밖에 없었고, 아이들조차도 그것의 공동 재산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진화하는 가정이 떠도는 무리를 대신하였고, 반면에 씨족과 부족이 창발하여 사회 단위를 이루었다.
[70:3.1]
아담계열의 자녀들은 16살이 될 때까지는 형들이 동생들을 가르치는 자체 학교에 다녔다. 어린아이들은 매 30분마다 활동을 바꾸었고, 좀 나이가 든 아이들은 한 시간마다 그렇게 하였다. 전적인 재미를 위한 아담과 이브의 아이들의 열광적인 활동과 놀이는 유란시아에서는 확실히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오늘날 인류들의 놀이와 유머는 많은 부분이 아담계열의 혈통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아담사람들은 모두들 예리한 유머 감각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다.
[74:6.7]
아담의 자녀들은, 4년 동안 서쪽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것을 제외하고는, “에덴의 동쪽”에서 일하며 살았다. 그들은 예루셈 학교들의 방식에 따라 16세가 될 때까지 지적(知的)인 훈련을 받았다. 16세에서 20세까지는 동산의 반대쪽 끝에 있는 유란시아의 학교에서 배웠는데, 그곳에서는 낮은 학년의 학생들에게 선생으로 봉사하기도 하였다.
[74:7.1]
그러나 사회가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한, 사회 계층이 충분한 혼전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 그리고 어리석고 미숙한 젊은이의 이상주의가 결혼을 성사시키는 중재자가 되는 한, 이혼은 계속 유행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 집단이 젊은이들의 결혼을 준비시키지 못하는 한, 이혼은 어느 정도까지는, 진화하는 사회관례가 빠른 속도로 자라 가는 시대 동안에 더욱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막는 사회적 안전장치로 기능해야만 한다.
[83:7.8]
결혼 사회관례의 초기 진화에서는, 결혼은 뜻대로 끝낼 수 있는 느슨한 결합이었고, 자녀들은 언제나 어머니를 따랐다; 어머니와 자녀 사이의 결속은 본능적인 것이었고 사회관례에서의 발달단계에 상관없이 기능해 왔다.
[83:7.1]
에스키모 아이들은 거의 교육단련과 벌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성장하는데 그것은 오직 그들이 천부적으로 유순한 어린 동물들과 같기 때문이며;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의 자녀들도 거의 마찬가지로 유순하다. 그러나 앤다이트 유전자를 가진 인종들의 자녀들은 그렇게 조용한 편이 아니며; 더 많은 교육단련과 억제가 요구되는, 더욱 상상력이 풍부하고 모험심이 강한 아이들이다. 아이를 훈련시키는 데 있어서의 현대적인 문제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에 의해서 점점 더 어려움을 겪게 된다:
[84:7.21]
결혼은, 자녀들과 그에 따르는 가정생활과 함께, 인간 자연본성에서 가장 고상한 잠재를 자극하는 동시에, 필사자 개인성에서의 이들 자극적인 속성들을 표현하는 이상적인 통로를 제공한다. 가족은 인간 종족들의 생물학적 영속을 제공한다. 가정은, 핏줄로 이어진 형제신분의 윤리가, 자라나는 자녀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자연스런 사회 무대이다. 가정은, 모든 사람들 사이의 형제신분을 실현시키는 데 매우 근본적인 요소인 인내와 애타심과 관용과 용서에 대한 수업을 부모들과 자녀들이 배울 수 있는 형제우애관계의 기본 단위이다.
[84:7.28]
말을 사용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운 아이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을 아무도 듣지 아니할지라도 생각을 소리치려는 경향,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창조적인 상상력이 생기면서 그들은 가상의 동행자들과 대화를 나누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새로 나타나는 자기는 이런 식으로 가상의 또 다른 자기와 교제하고자 한다. 그 아이는 이러한 기법을 통하여 자신의 독백을 가상의 대화로 바꾸는 방법을 일찍부터 터득하는데, 그 대화 속에서 이 또 다른 자기는 말로 표현된 자신의 생각과 희망에게 반응한다. 어른의 생각은 거의 정신적으로 대화체 속에서 이루어진다.
[91:3.1]
children2.jpg 어린이들은 오직 자신들의 어른 친척들의 충성심에 의해서만 영구적으로 감명을 받으며; 교훈이나 본보기조차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충실한 사람들은 성장하는 사람들이며; 성장은 감명을 주고 영감을 주는 실체이다. 오늘을 충성으로 살라─성장하라─그리고 내일은 내일대로 저절로 올 것이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매 순간마다 올챙이로서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100:1.4]

수호천사들에 대한 가르침은 신화가 아니다; 어떤 무리의 인간들은 실제로 개인 천사들을 소유하고 있다. 예수가, 이것을 아셨기에, 하늘의 왕국의 자녀 이야기에서 말하였다; “이 어린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겠는데, 그들의 천사들이 항상 내 아버지의 영의 현존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113:1.1]

그 당시에 이방 세계에는, 갈릴리의 이러한 유대인 가정보다 아이들을 더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종교적으로 키울 수 있는 가정이 매우 드물었다. 이 유대인들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가르치는데 있어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일곱 단계로 나누었다:
[123:2.5]

그런 다음, 그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예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형제여, 여자가 기꺼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남자에게 권한을 주지 않는 한, 그가 그녀에 대하여 어떤 정당한 권한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 네 아내는 너와 일생을 같이 보내고, 고난을 함께 도와 헤쳐 나가며, 너의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일에 있어서 더욱 힘든 몫을 담당하기로 약속하였으며; 그녀는, 이러한 특별한 봉사에 대한 대가(代價)로, 한 남자가 자기 아이들을 낳아주고 길러주어야만 하는 동반자로서의 그 여인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보호를, 너로부터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한 남자가 자기 아내와 아이들에게 증여하려는 사랑이 넘치는 보호와 배려는, 창조적이고 영적 자아-의식의 높은 차원에 대한 그의 도달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불멸 혼의 잠재성을 스스로 소유하도록 자라나는 존재를 창조하는 데 그들이 협력한다는 사실 안에서, 하느님과 동반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겠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주의 자녀들의 영 어머니를 그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한다. 너의 자녀들의 삶 안에서, 너희 자신을 번식하는 신성한 체험을 너와 함께 그토록 충만하게 공유하는 어머니 동반자와 협력하여, 너의 일생과 거기에 관련되는 것들을 분담하는 것이, 하느님다운 것이다. 하느님이 너를 사랑하듯이, 네가 너의 자녀들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광대한 우주의 모든 영 자녀의 어머니, 무한 영에게 영예를 돌리고 드높이는 것처럼, 너는 너의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133:2.2]
하느님을 보는 것─신앙을 통해서─은 참된 영적 통찰력을 얻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영적 통찰력은 조절자의 안내를 강화시키며, 그리하여 마침내는 하느님을-의식하는 것을 증대시킨다. 그리고 너희들이 아버지를 알게 될 때, 너희 자신들이 신성한 아들관계임을 확신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육신의 형제들을 형제로서─형제의 사랑으로─뿐만 아니라 또한 아버지로서─아버지의 애정─그들을 점점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140:5.13]
2.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자비는, 가장 높고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진실한 우정─자애로움─을 의미한다. 때로는 자비가 수동적일 수 있지만, 여기에서 자비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최극의 아버지다운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를 아무리 여러 번 용서하여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흠이 없는 자녀를 고통으로부터 풀어주고자 하는 충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이들이 현실을 깨달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대개 친절하고 동정심이 있게 된다.
[140:5.17]
아이들에게는 평화를 이루는 자의 역할을 쉽게 가르칠 수 있다. 그들은 단체 활동들을 즐기며; 함께 놀기를 좋아한다. 예수가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였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잃게 될 것이지만, 자기 목숨을 버리려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140:5.19]
아이들은 항상 용기 있는 도전에 반응한다. 젊은이는 언제나 기꺼이 “위험을 무릅쓴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은 일찍부터 희생마음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140:5.22]
그러고 나서 예수는 말씀을 계속하였다: “너의 자녀들이 아주 어리고 철이 나지 않았을 때나 그들을 훈련시켜야 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가 화가 나 있다거나 무섭게 화를 내는 사람으로 기억할 수 도 있다. 그들의 미성숙함 때문에, 그들은 그 처벌을 관통하여 그 너머에 있는, 아버지의 멀리 내다보는 그리고 올바르게 해주려는 애정을 식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아이들이 자라서 남녀 어른이 되었는데도, 그들이 여전히 아버지에 대하여 이러한 예전의 잘못된 생각에 붙잡혀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느냐? 어른 남녀로서 그들은 이제 그러한 모든 어렸을 적의 교육단련에서의 그들 아버지의 사랑을 식별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여러 세기(世紀)가 지나면서 이제는 인류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진정한 본성과 사랑이 많으신 성격을 좀 더 잘 납득할 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만약 너희가 모세와 선지자들이 보았던 것처럼 하느님 보기를 고집 한다면, 영적으로 계몽된 이어진 세대에서 네가 무슨 이득을 얻겠느냐? 야곱아, 내가 말하겠는데, 너는 이 순간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이제까지 그 누구도 본적이 없는 아버지를 보아야만 한다. 그렇게 하여 그를 봄으로써 너는 그러한 자비로운 아버지의 통치 아래에 있는 왕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사랑의 의지가 이제부터의 네 일생을 지배하도록 추구하여야만 한다.”
[142:2.4]
1. 실재의 사실. 본성에서의 관계와 필사자 유사성 현상들은 가족 안에서 떼어놓으려 해도 떼어낼 수가 없다: 자녀들은 부모의 어떤 특색을 이어받는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근원을 가진다; 개인성 실재는 부모의 활동에 달려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모든 본성에서 선천적인 것이며 모든 살아있는 실재에 퍼져있다.
[142:7.6]
“지능을 가진 자녀들은 자기 아버지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기 위하여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애정을 통하여 자신의 아들들과 딸들에게 나누어 준 풍부한 선물을 이미 가진,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은 자녀들은 그러한 한량없는 은혜를 인식함과 감사함으로 응답하면서 그들 아버지를 사랑하도록 이끌린다. 하느님의 선함은 회개로, 하느님의 은혜는 봉사로, 하느님의 자비는 구원으로 인도하며, 한편 하느님의 사랑은 지능적이고 걱정 없는 경배로 인도한다.
[149:6.4]
“아이들이 어리고 생각이 없을 때는, 그들은 그들의 부모를 존경하라는 훈계를 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지만; 그러나 그들이 나이가 들어 부모의 사명활동과 보호의 혜택을 좀 더 고마워할 줄 알게 될 때는, 납득에서 나온 존경과 증가하는 애정을 통하여 그들이 실제로 부모의 행한 일로써 보다는 그의 현존으로 인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사랑하는 차원으로 올라간다. 아버지는 본성적으로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자녀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시작하여 경외, 무서움, 의존 그리고 공경을 통하여 고마움에 이르고 그리고 사랑에 대한 애정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의 사랑을 발전시켜야만 한다.
[149:6.6]
children3.jpg 그 날 저녁, 결혼에 관계된 예수의 메시지와 아이들에 대한 축복의 소문이 온 여리고에 퍼져서, 다음 날 아침, 예수와 사도들이 떠날 준비를 하기 훨씬 전, 아침 식사시간도 아직 이르기 전에,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팔에 안거나 혹은 손을 잡아 이끌며 예수 숙소에 찾아와서 그 어린아이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였다. 사도들은 어린이들과 함께 모여든 어머니들을 보려고 밖에 나갔다가, 그들을 돌려보내려고 하였지만, 이 여인들은 주(主)가 아이들에게 직접 손을 얹으시고 그들을 축복할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거절하였다. 사도들이 큰 소리로 이 어머니들을 꾸짖자, 예수는 소란스런 소리를 들으시고 나와서 화를 내듯이 그들을 책망하였으며, 말씀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로 오도록 하고; 하늘의 왕국이 저들의 것이니 그들을 막지 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어린아이처럼 왕국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인데, 그곳에서는 영적으로 성숙한 모습이 되기까지 자라간다.”
[167:6.1]

사람은 자연의 임시오두막 안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경우에는, 하느님과의 영적 교제에 대한 지능적 접근과 관련하여 인간의 감정이 최고로 일어나도록 그렇게, 단순함이 있으면서도 예술적인 장식으로 꾸민 아름답고, 성스러운 장소를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진리(眞), 아름다움(美), 그리고 거룩함은 참된 경배를 힘차게 그리고 효력 있게 돕는다. 그러나 영적 교제가 단순한 거창한 치장으로 그리고 사람의 정교하고 허세부리는 예술로 과도하게 장식한 것에 의해서 촉진되지는 않는다. 아름다움(美)은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러울 때 가장 종교적이다. 아름다운 모습이 빠져있고, 명랑한 기분과 영감을 주는 성스러움이 도무지 비어있는 차갑고 메마른 방에서 어린아이들이 대중경배에 대한 그들의 첫 번째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아이는 바깥의 자연에서 처음으로 경배에 들어가고, 나중에는 그가 매일 살고 있는 집과 같이 최소한 물질적으로 매혹적이고 예술적으로도 아름다운 건물, 종교적 집회가 열리는 공공 건물로 부모를 따라가야 한다.
[167:6.6]
선배들의 죄들,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악행들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전혀 책임을 질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순결한 자녀들이 수난을 당하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불합리한 일인지! 그리고 자기 제자들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친 분의 이름으로 그러한 사악한 행위들이 벌어지다니! 예수의 일생을 이렇게 다시 설명하려할 때, 자기 동료가 되는 어떤 유대인들이 그를 거부하고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안겨주려고 음모를 꾸민 그 태도를 묘사하는 일이 부득이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이 기록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경고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역사적 설명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토록 많은 거짓된 그리스도교인들이 수세기 동안 유대인 개별존재들을 향하여 가졌던 불의한 증오를 정당화시키지 않으며, 불공정한 태도를 용서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왕국을 믿는 자들은 유대인 개별존재를 대할 때 예수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죽인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을 멈추어야만 한다. 아버지와 창조주 아들은 유대인을 사랑하기를 포기한 적이 결코 없으시다. 하느님은 사람들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며, 구원은 이방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175:2.3]
사회의 부속물이 되고 정치와 동맹자가 된 교회는 필연적으로 소위 유럽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지적 그리고 영적 쇠퇴를 함께 나눌 처지에 놓여졌다, 이 기간 동안, 종교는 점점 더 수도원과 같이 은둔적이 되고, 금욕적이고 법제화 되었다. 영적인 면에서, 그리스도교는 동면(冬眠)하고 있었다. 이 기간에 두루, 이러한 무기력하고 세속화된 종교에 발맞추어서, 신비주의의 계속적인 흐름, 비실체성이며 철학적으로는 범신주의와 동족인 것과 거의 접하고 있는, 공상적인 영적 체험이 존재하였다.
[19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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