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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계시와 5번째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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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네오 작성일2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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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그의 일생과 가르침을 전하는 4부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이 필사자 인간의 모습으로 유란시아에 탄생하고 가르치고 올라가심으로 그의 증여의 삶을 완성하셨다는 유란시아 계시는 이 책의 독자들에게는 그 사랑과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직접 땅에 존재하셨다는 신성한 진리를 제외한다면, 4부의 글은 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진리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바로 잡아주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4번째 계시는 기독교가 새롭게 탄생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알아야만 할 내용입니다.

그러나 4부를 지나치게 중요시하면, 180편에 나오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아버지를 발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나를 발견한다."는 말을 자칫 믿음에 있어서는, 하느님과 예수님이 동등하다는 잘못된 해석을 고수하게 만듭니다. 우주 아버지를 믿는 대신 예수님을 믿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사실 유란시아 책의 1, 2, 3부의 내용이 상대적으로 재미가 없고 또 강한 호기심이자 의지가 없으면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떄로는 부담이 되고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편안함과 기쁨을 찾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니까, 불편하고 부담이 되는 일은 피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유란시아 책을 여기면,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4부를 먼저 보게 됩니다.

그리고 4부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읽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하느님을 대신하는 예수님의 위상이 부각되기 때문에, 아버지를 알려는 생각이 더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영적 이상을 추구하는 일에 점점 게을러지면서 4부의 글만 즐겁게 반복하여 읽게 됩니다.

   

103:5.7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하느님과-같음이 되고자 애쓰는 것은─죽음 이전과 이후로 계속 이어지는 노력이다. 죽음 이후의 삶은 근본적인 면에서 볼 때 필사자 실존의 상태와 어떤 차이도 없다. 이 일생 속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한 것들은 미래 일생의 증진에 직접 기여한다. 실제 종교는, 자연적 죽음의 관문을 거쳐 통과한 결과로써 사람에게 증여되는 고귀한 성격에서의 모든 미덕을 가지리라는 헛된 희망을 북돋음으로서 일어나는 도덕적 태만과 영적 게으름을 조장하지 않는다. 참된 종교는 필사자가 일생을 빌려 사는 동안 진보하려고 하는, 사람의 노력들을 얕잡아보지 않는다. 모든 필사자의 소득은 불멸적 생존 체험에서 첫 단계들을 강화하는 데에 직접 기여하는 것이다.

 

 현실적 삶에서의 이상은 물론이고, 그 소망이 영적 이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진리의 핵심입니다.  

   

사실 1,2,3부의 글에서 영적 감동이나 실천적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가슴이 설레임도 없다면 자연스럽게 4부 이외는 전부 하느님에 대한 지식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습니다. 5번째 계시가 주는 역동적이고 실천적 신성한 빛을 발견하지 못하면, 예수님이 들려주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에 매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영적 이상을 위해 의지를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예수님은 그러한 삶을 실제로 보여주신 사랑 넘치는 하느님이자 사람의 아들로 새롭게 가슴에 간직될 수 있지만, 구원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게으름이 남아 있다면, 4번째 계시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4부를 읽고 보고 듣고 깨닫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우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나,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나 천사들의 이야기나 필사자의 탄생과 성장과 운명과 같은, 1,2,3부의 내용이 알면 도움이 되고, 몰라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점점 더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4부의 이야기만이 진리의 핵심이라는 의식에서 그 내용에만 집중하면, 1,2,3부의 글에서 영적 깨달음이나 영적 진리나 영적 감동으로 스스로 의식이 변화되고 삶이 바뀌는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 깨달음이 아닌 지적 깨달음을 위한 글로 유란시아 책을 경시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쉽고 익숙하고 편안한 것만 받아들이고 부담되는 것을 사양하는 분들이 진실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깊은 것인지도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일부는 교회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전통 기독교에 회의를 나타내곤 합니다. 기독교 문화가 바탕에 깔려있는 해외 유란시아 독자 중에는 4부를 중시하는 분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마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서 계시를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4번째 계시인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의 핵심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인데, 아버지의 뜻은 5번째 계시의 4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1,2,3부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제시되었을지 모르지만 4부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 입니다. 예수님의 진리가 지금까지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4번째 계시를 다시 세우고 실천해야 하지만, 네 번째가 다섯 번째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5번째 계시에서 예수의 종교를 사는 것이라고 강조하는데, 예수의 종교를 가지려면, 5번째 계시를 아는 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의 종교를 예수님의 글에서 발견하려는 시도는 그 핵심이 4부에서 설명되거나 들어있지 않아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4번째와 5번째를 잘 구분하고 성공적으로 융합할 수 있을 때, 시대적 계시는 모든 사람을 빛과 생명의 시대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어느 부분을 읽어도 계시의 중요성은 비중을 따질 수가 없을 정도로 유란시아 책의 모든 글이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 빛이 되고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4부 예수님의 일생과 가르침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인지, 책의 핵심은 여전히 예수님의 신앙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계시의 중심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앙을 올바르게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서 앞부분의 글들이 자세하게 미리 계시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의 글에서 영감을 얻고 또 새로운 깨우침으로도 물론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유란시아 계시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데에 4부의 글을 읽지 않아도 틀림없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고 역동적으로 삶을 살고 또한 역경과 고난을 영광과 승리로 바꾸는 실질적의 삶의 모습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의 글이 없으면 실천하기가 사람에 따라서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지 않아도 스스로 예수님과 같이 우주 아버지를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그러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는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늘 일어나는 이기적인 본성을 이겨내려면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서 그 신앙을 자신의 신앙으로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계시의 핵심이라는 표현이 그런 의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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