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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과 진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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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경곤 작성일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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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인 8월 21일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아직도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선지자나 뛰어난 스승으로 혹은 단지 선언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회 신자도, 하느님이 직접 물질 세상에서 평범한 인간 아기로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믿기 보다는, 초월적이고 인간이 아닌 존재로 믿고 받들고 복종하는 하느님의 독생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길이자 진리라는 의미를 단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강조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에게는 신앙 세월을 거치면서 그 믿음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종교적인 체험도 있지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삶의 체험을 통하여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도 하나님을 믿는 신자처럼 보이는 어떤 공통적인 모습을 지니게 됩니다.

이처럼 신앙이 깊어지는 삶의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이 분명히 살아계신다는 사실과 증거를 발견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그러한 사실과 증거를 발견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새로운 차원으로 상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대부분 신학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이 체험한 삶의 반응들입니다.

그러나 유란시아를 읽으면서 이러한 증거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체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반으로 넓어지고 심지어는 우주를 이해하는 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는 이 말씀은 무신론자들의 진화 우주론을 배척하는 많은 신앙의 과학자들이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주는 말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에 관련되어 유란시아에서 말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1:5.3
 
하느님은 자신의 어떤 창조체에게도 숨지 않고 있다. 존재들의 그 많은 계층들이 그에게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단지 그가 “물질적 어떤 창조체들도 접근할 수 없는 빛 속에 거(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개인성의 광대함과 장엄함은 진화하는 필사자들의 미(未)완전한 마음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 그는”손바닥으로 바다를 가늠하고, 손 뼘으로 우주를 가늠한다. 지구 순환계 위에 앉아있고, 하늘을 휘장처럼 펼치고 이것을 거할 우주로 확장 시킨다,” “ 네 눈을 높이 들어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으며, 그들의 세계들을 순서에 따라 있게 하고, 저희 모두를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그 분을 바라보라”; 그리고”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것들은, 만들어진 것들로 일부 납득된다.”는 말이 사실이다. 오늘날, 너희의 있는 그대로, 너희는 그의 각가지 그리고 다양한 창조를 통해,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 및 그들의 수많은 종속들의 계시와 직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조물주를 식별하여야 한다.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 때문이 아니고, 우리가 지닌 한계 때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한계를 조금씩 극복하면 그만큼 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일은 오직 우리가 할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조금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현실을 떠난 다른 세상, 하늘나라에서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이라면,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는 말이나 "숨지 않고 있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공허한 말이 되기 때문에, 이 말씀을 진리가 될 수 없겠지요. 결국 우리에게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체가 접근할 수 없는 빛" 속에 거한다면 가능한 방법은 "만들어진 것들로 일부 납득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각가지 그리고 다양한 창조"를 통해 식별되어야만 한다면, 우리가 현실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증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특정한 종교적 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의 삶이자 현실이라는 말로 이해됩니다. 현실의 한계 때문에 종교에 의존하며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발견하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는 점이 확실합니다.

그 길을 예수님이 말씀하셌습니다.

180:3.7
 
도마의 말을 들은 예수는 대답했다; “도마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아버지를 발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나를 발견한다. 만일 너희가 나를 알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나와 함께 살았고 지금 나를 보고 있으니, 그로써 너희는 나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선언과 가르침을 의심하지 말고 믿고 실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분명히 보여 알려왔다"는 그리고 "빛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사실로 체험할 수 있다는 진리를 말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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