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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와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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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트바 작성일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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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라는 말은 불교에서 열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해석이 쉽지는 않습니다. 원어는 한자어 같을 여(如)와 올 래(來)의 합성어입니다. 여는 우리가 여실히 드러나다 여전하다 말하면서 같다는 의미로 자주 쓰는 말이고, 래는 왕래하다 거래하다 처럼 익숙한 말입니다.

같다는 말은, 변함없다는 말입니다. 시공간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교의 근본인 공간적인 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법무아의 진리이고, 시간적인 여전도 존재할 수 없다는 제행무상의 진리입니다.

여전하고 여실한 것이 존재하지 않고, 이것과 저것의 연기의 관계성에서 실체, 의미, 가치가 진, 미, 선으로 드러난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겠지요. 수많은 상념과 깨달음이 가지로 피어나고 열매를 맺어왔지만, 모두 성장을 위한 양식이지 성장 그 자체는 아닙니다.

이처럼 ​유상은 시공간에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존재도 아니고 움직임도 아니지만 분명히 가능한 실체적 대상을 여래라고 말합니다. 무아. 무상에 열반이 더하여 궁극의 진리로 선포되어 있지만, 유란시아 책에서는 절대적 실체자를 착상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한계였다고 지적당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은 실체를 명료하게 파라다이스로 정의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언어로 밝혀줄 수 없으니, 단지 모든 근원이자 마지막 도착지라고 말합니다. 사실 근원과 운명도 설명의 방편일 뿐, 사실은 시작한 적도 없고 공간에 자리도 없는 무아 무상의 근원으로 재정의합니다. 파라다이스만이 유일하게 여(如)하다는 의미겠지요. 파라다이스가 유일하게 여전하고 유일하게 여실합니다.

"0:4.12
파라다이스 섬─별달리 분별화되지 않은 파라다이스─는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물질-중력 통제의 절대자이다. 파라다이스는 움직이지 않는데, 우주들의 우주 안에서 유일하게 고정된 것이다. 파라다이스 섬은 우주 위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공간 속에서 아무런 자리가 없다. 영원한 이 섬은 물리적 우주─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실재적 근원이다. 핵을 이루는 빛의 섬은 신(神)의 파생이지만, 그것은 신(神)이 전혀 아니다; 또한 신(神)의 일부분인, 물질적 창조도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귀결이다. "

여(如)하다는 파라다이스와 온다는 래(來)가 합하면 여래(如來)가 되는데, 시공간의 열 가지 여래상으로 깨달음의 양식이 되고는 있지만, 깨달음, 성장, 상승이 같은 말이라고 할 때, 여래의 근원이자 귀결을 완성하는 것이 최극 목표일 것이고 그것을 성취하며 우주를 합일하고 있는 이가 최극 존재이겠지요. 결국 최극 존재가 여래는 단지 언어적 정의가 아닌, 우주적 실체임을 명료하게 분별하도록 새롭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금강경 끝 부분에,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명여래"라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오고 있어도 오는 바가 없고 가고 있어도 가는 바가 없다.  그래서  늘 오는 자인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세간, 출세간을 오고 가는 여전하고 여실한 그러한 이가 여래이지요. 이 개념은 유란시아 책은 물론이고, 성경에도 상통하는 의미가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애굽을 탈출하게 되는 모세가 '어떤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고 사람들에게 대답하면 될까요?' 반문했을 때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최초로 직접 설명하신 내용이 나오는데, 영어로는 'I AM that I AM"이라고 합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원래의 뜻은 영어 위키피디아에 소개되어 있듯이, '그러한 자'의 의미이고 우주에서 유일하게 언제나 같은, 여래입니다. I AM that I AM 은 성경에서도 의미가  신비해서 해석에 정답이 없는 문장입니다. 금강경도 여래의 의미를 각자의 깨달음에 맡기고 있고요. '언제 어디서나'라고 수식하는 말이 있을 수 없는 여전하고 여실한 자입니다. 

여래를 유란시아 표현으로 풀이하면 파라다이스에서 오신 이가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영원히 시공간으로 오는 이라면, 우주 아버지와 창조자 아들 창조자 딸 그리고 필사자 존재까지도 진언적 의미에서는 다 포함됩니다. 감히 필사자 존재까지 확대한 것은  범부의 불성을 지칭하는 여래의 의미를, 유란시아 책에서는 평범하고 늘 변화하는 개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6:9.5
창조체 마음들이 이 문제를 바라볼 때, 그들은 우주적 스스로 이신 이를 삼위일체와 절대자 둘 모두의 1차적 원인으로 그리고 분별불가한 근원으로 최종적인 가정을 세우도록 인도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절대자에 대한 개인적 개념을 받아들이고자 원할 때, 우리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이상으로 되돌아간다. 우리가 다른 한편으로는 미(未)개인적 이 절대자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키거나 자각을 증강시키고자 할 때, 우리는 우주 아버지가 절대 개인성의 실존적 아버지라는 사실을 회상 한다; 영원한 아들은, 그것이 비록 체험적 의미에서 절대자의 개인성구현은 아니겠지만, 절대 개인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더 나아가 체험적 삼위일체들을 신(神) 절대자의 체험적 개인성구현 안에서의 최고 정점으로 계속 상상하게 되는 반면, 우주 절대자를 최극위와 긍극위 그리고 무한─삼위일체들의 삼위일체─의 통합되고 조화-협동된 신(神) 관계적-연합의 미(未)개인적 활동들의 현존을 현시하는, 우주와 가외(加外)우주 현상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착상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이  무상 무아를 포함하면서 시공간에서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말이 I AM that I AM 이고, 그 너머 여래의 근원인 파라다이스  절대 개인이 절대 개인성과 같지 않다는 계시하고 잇습니다. 개인성과 개인의 절대성이 우주에 투영될 때, 유상과 유아의 일상의 삶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개인의 모습과 행동에서 여래상을 발견해야만 하듯이, 변하지 않을 여여한 실체들을 찾아내는 것이 해탈이자, 상승이자, 깨달음의 과정일 것입니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유란시아 책에서는 성경 출애굽기 3장의 스스로 계신 이가 인간에게 절대자를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느님을 계시하면서 하느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요. 

예수님이 자신의 신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시면서, 아브라함이 있었기 그 이전에 내가 있다고 말을 한 것도, 진실로 자신이 사람의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그러한 존재임을 계시한 진리였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모독한 말로 여기고 돌을 집으려고 했었지요.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예수님과 하느님은 창조성과 영원한 미래가 있지만 여래는 사실성만 있고 영원한 과거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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