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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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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손 작성일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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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존재하는 현상은 아마도 영원히 계속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종말론자들은 모든 것이 끝나는 날이 있으리라고 말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현상이 정지되는 날이 온다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시작된 원인도 모르면서 그 결과를 말하는 것은 거짓된 인간의 망상이겠지요. 그런데도 모든 존재가 끝이 있기 때문에, 존재의 현상도 끝이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간혹 짐작합니다.

강물이 높은데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현상은 강물이 사라져도 언제나 그러합니다. 시간과 공간과 그 안에서 존재하는 현상 자체는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키면서 영원합니다.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언제 시작된 것인지 모르고, 그것이 사라진 적이 없으며, 그것이 사라질 어떤 기미도 찾을 수 없고 또한 그 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작과 끝을 모르면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런 영원한 실체 자체가 불가에서는 법이고, 도가에서는 길고 부르고, 종교에서는 진리겠지요.

영원 안에서 세상 만물이 왜 끝없이 변하는 것인지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법과 진리는 끊임없는 변화에서, 그 기둥을 이루는 것이라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은 일시적이지만, 완전이라는 줄기는 역동적인 기둥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변화하고 있는 시공간에서 완전과의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하면, 삶의 어떤 것도 불멸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지요.

학문이나 종교나 저마다의 영역에서 깨닫는 법, 질서, 운명을 과학적 종교적 진리나 때로는 섭리나 순리로 말하지만, 시공간의 모든 실체 자체는 영원에 비하면, 덧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덧없는 과거가 무의미하지 않듯이, 덧없음을 무의미로 말하는 것은 무지하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모든 것이 덧없다고 해도, 그 안에서 깨달음과 진리가 밝혀지기 때문에,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나, 결국은 덧없음을 마주하는 마음가짐이 삶의 올바른 자세의 여부라고 봐야겠지요.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항상 덧없지만, 사람이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존재하는지 밝히고 찾고 결실을 만드는 것이 법과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인간에게 주어진 오직 하나의 하느님의 명령이 '내가 완전하듯 너희도 완전하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명령을 인간의 운명이라고 해석한다면, 아마도 모든 종교가 영원하고 완전한 곳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 명령을 공통된 진리로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이 진리를 운명이 아니라, 삶의 실천이라고 해석한다면 종교의 의미는 아주 달라집니다. 그리고 매일의 현실 삶을 통하여 완전을 이룩하며 나아가는 여정이 되기 때문에, 삶의 실천적 모습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어떻게 완전을 성취하면서 조금씩 완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겠지요.

완전은 스스로 그러하다고 주장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건, 기쁨이건, 직업이건, 무엇이 어떻게 완전한지 설명하고 증명해주는 대상이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현실에서 마주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체험하는 모든 것과 모슨 관계들이 그 대상이 되겠지요. 그러나 마주치는 모든 사물과 관계에서 완전을 이루는 것은, 모든 것은 쉬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그 나타나는 물질적 의미나 가치로는 자신의 완전을 가늠할 수도 설명할 수도 체험 헐 수도 없습니다.

매일 마주치는 사물과 관계에서, 그것들을 물질적 상대로 완전을 평가하고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현실이지만, 물질을 넘어서는 영적인 상대로 그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고 체험할 수 있다면, 늘 변화하는 덧없는 현실은 끝없이 완전을 이루는 필수 요소가 될 것입니다.

 

107:0.3
 

자신이 완전함과 같이 사람에게 완전해질 것을 명하시는 하느님은, 그렇게 정해진 하늘의 운명을 달성하는 사람의 체험적 상대자가 되기 위하여 조절자로 내려왔다. 사람의 마음에 내주하는 하느님의 단편은, 사람을 찾고 그리고 사람이 비록 육신의 때에 있어도 그 아들관계를 찾으려고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온, 이 신성한 조절자와 관계적-연합으로 사람은 우주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절대적이고 분별불가한 보증이다.

덧없는 매 순간마다 완전을 이루는 새로운 조각으로 계속 변화되도록 하는 것이 하느님의 단편입니다. 이 신성한 단편이 우리의 마음 안에 있으면서, 일상의 지루하고, 덧없는 일들, 일시적 고통이나 즐거움으로 지나가는 일들을 완전을 이루는 신성한 체험의 일부로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의지적 선택과 매일매일의 사물과 관계를 신성의 영향으로 생각하고 체험하려는 실천이 있어야만 하겠지요. 신성의 영향은 정의롭고 양심적이고 이타적인 마음 가짐으로, 현실에서 참되고 아름답고 선한 사랑을 체험하려고 마음을 정하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로터스님의 댓글

로터스 작성일

유란시아 책에서 말하는 완전은 물질세계에서의 완전이 아니라, 파라다이스를 향하여 상승하는 삶을 선택하라는 명령이라고 이해됩니다. 중앙우주를 완전한 우주라고 말하는 이유도 유란시아에서는 완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실적으로 상대적 만족은 가능하지만 완전이란 것은 어찌되었건 어려운 일 같습니다.

물질 세계에서도 상대적 완전을 이루는 것은 완전의 기준에 따라서 가능하겠지만, 하느님이 말하신 완전을 이루라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겠지요. 완전을 향하여 끊임없이 추구하는 삶이 우리를 생존할 수 있듯이, 완전한 삶보다는 오히려 완전을 추구하는 삶이 더 활기넘치는 삶이 되리라고 봅니다.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물질계에서는 완전은 가능하지 않아요. 삶의 결과는 완전의 여부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향한 열정과 노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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