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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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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디오니스 작성일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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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에 대한 코너킥님의 글을 읽고, 유란시아 책을 모르는 분들에게는 여전히 경배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참된 경배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마지막 결론은 절대입니다. 일반적으로 절대라는 의미는 모든 것을 다 들어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나 실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절대는 결국에는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유란시아 책에서는 절대자를 일곱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절대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대적인 존재가 절대를 확실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서 근본적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유란시아 책에서 절대자라는 말이 나오면 마치 내부로 접근할 수 없는 난공의 요새 같아서, 겉모습만 파악하는 인간의 한계를 실감하게 됩니다. 

 

인간의 이런 한계를 충분히 알고 있는 계시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자라는 호칭으로 소개하면서 우리가 그 각각의 개념을 가지도록 이끄는 데에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들 일곱 절대자는 유란시아 계시의 뒷부분의 삼위일체의 개념 부분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절대자는 유리에게는 실체적 결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지의 세계로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지만, 그 미지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이유와 배경과 운명을 아는 것이 방향을 잃고 헤매면서 점점 시들어가는 우리에게 새 에너지를 얻는 길입니다. 이것이 진리를 찾는 사람을 이끄는 길이고,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절대자를 진리로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절대 차원으로 나아가려고 소망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경배입니다. 그렇다면 경배는 다가가는 실제 행동이 필요합니다. 경배가 실제 행동이고, 그 행동을 밝혀주는 것이 유란시아 책입니다. 그래서 인류를 새로운 영적 성장의 길로 이끄는 유일한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16:6.8

3. 경배─종교적 체험에서의 실체의 영적 권역, 신성한 동료관계의 개인적 실현, 영 가치들에 대한 인식, 영원한 생존에 대한 확신, 하느님의 하인 지위로부터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기쁨과 해방으로의 상승. 이것은 조화우주적 마음의 가장 높은 통찰력, 조화우주적 차별성구현에 대한 존경하는 그리고 경배심이 넘치는 형태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경배는 실제로 나아가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삶의 행동을 중지하고 그 앞에 엎드려 온 마음으로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인 지위에서 존경과 복종을 바치는 것입니다. 아들의 지위로서 기쁨과 해방을 갖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자는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과 마음과 의식이 가능한 실질적 체험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종교의 형식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경배의 본질을 포기하고 경배의 형식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경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런 헛된 형식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그러한 잘못된 경배는 인류가 탄생된 이후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경배입니다. 그런 형식적이고 무조건적인 복종의 경배에서는 실질적인 영적 성장은 찾을 수 없고 오히려 현대인을 과거로 되돌아가는 퇴행을 강요하는 경배가 될 뿐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그러한 자아-의식을 이루는 요소 중에서 마지막이 경배 입니다.

 

16:8.7

인간 개인성의 자아-의식을 특징짓는 상대적 자유의지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 관여된다:

1. 도덕적 결정, 가장 높은 지혜.

2. 영적 선택, 진리 식별.

3. 사심 없는 사랑, 형제신분의 봉사.

4. 목적이 있는 협동, 집단 충성심.

5. 조화우주 통찰력, 우주 의미들의 파악.

6. 개인성 전념,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전심으로 전념함.

7. 경배, 신성한 가치들에 대한 진지한 추구와 신성한 가치-증여자에 대한 전심으로의 사랑.

 

결국 유란시아 책에서 우리를 일깨우는 경배의 의미는 엎드려 하느님 존재 자체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나 감동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 내용과 깊이가 얼마나 높은 지에 관계없이 하느님의 실체에 대한 경배가 아니라, 하느님 이름과 위상에 대한 생각과 감상에 머무르는 것이겠지요. 

 

경배는 개인성이 지닌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하느님의 존재적으로 체험적으로 실체로서 신성한 실체를 체험했음을 증언하고, 더욱 추구하고  그에 대해 지식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초월적인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외적으로 내보이는 경건한 자세나 엄숙한 예식으로 평가하는 그런 경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어울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실제 삶에서 신성한 실체에 대해 생생한 체험을 했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확고한 의식을 새롭게 가지지 않고는 매일매일 새로운 경배에 나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댓글목록

길손님의 댓글

길손 작성일

잘 지적하셨습니다.
지금이라도 종교에서의 경배 행위는 새롭게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경배를 종교적 의식으로,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절대자 앞에 엎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에는 일곱 보조 마음 영에서 경배의 영과 지혜의 영의 관계가 소개됩니다. 진화 단계에서는 최초 인간인 안돈과 폰타에 경배의 영이 나타나고 그다음에 지혜의 영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최초라고 말합니다.

계시에 따르면, 경배의 영은 지혜의 영보다 진화적으로 열등합니다. 인간 이전 상태에서도 유사한 차원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85편 경배의 기원을 보면, 이 시대에 필요한 참된 경배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나, 혹은 마음 다짐으로 어떤 행위를 바치는 것은 참된 경배가 아니라고 밝힙니다. 그런 구태의연한 경배는, 지혜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지혜가 무조건적 공경과 경건한 믿음에 방해되니 버려고 따라오라고 말학고 있지요.

지혜가 바탕에 깔려있지 않으면, 초기의 열등한 경배라고 말합니다. 지혜와 함께 지혜를 초월하여, 하느님의 사실적 체험에서 나오는 경배가 참된 경배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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