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최근 게시글      최근 코멘트

사람은 인간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코너킥 작성일19-10-14

본문

사람은 인간이다. 인간은 당연히 동물과 구분된다. 지능이나 언어나 상상력이나 행동이나 판단력에서 의식이나 모든 면에서 도저히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는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현자들의 대부분은 인간의 본성이 동물과 비숫하다는 진리를 깨달음의 바탕에 두고 있다. 개에도 불성이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동물과 인간의 삶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존재의 법칙이라고 믿는 사람도 21세기임에도 여전히 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극히 미미한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만, 군자는 그것을 중시 보고 보존한다."라고 말한 맹자의 가르침처럼, 생각이나 살아가는 모습이 동물과 과히 다르지 않다는 진리가 현자들의 중요한 가르침으로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인간과 동물은 전혀 다른 생명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간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생명체를 지구에 탄생시킨 생명 운반자들에게 인간의 탄생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62:6.5
경배의 영이, 쌍둥이 중에서 처음에는 여자의 마음과, 그리고 바로 직후에는 남자의 마음과 접촉을 이루게 된 그 날─쌍둥이의 나이가 열 살 정도였다─우리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상상해 보라. 우리는 인간 마음과 아주 가깝게 동족이 된 어떤 것이 최고점에 도달하였음을 알았고; 약 1년쯤 뒤에, 그들이 최종적인 결심을 하게 되었을 때, 집으로부터 떠나 북쪽으로 가겠다는 심사숙고한 생각과 목적이 분명한 결정을 내린 결과로, 그 때부터 지혜의 영유란시아에서 그리고 이제 인간 마음들을 인지하게 된 이 두 사람 속에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을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다. 그래도 하느님이 있음을 확신한다. 모든 종교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종교가 없어도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일이나 어떤 때나 인간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어떤 근원에 대해 단 한순간이라도 막연한 생각을 해 보았다면, 그 순간 그 사람의 의식에는 하나님이 근원자로서 존재하게 된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런 느낌이 드는 스치는 순간이 하늘을 두려워하는 원시적인 도덕심이 의식의 깨어나는 때이다.

유란시아에서는 이 현상을 인간이 동물세계에서 분리되는 최초의 사건이며 그것을 경배의 영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이것은 마음의 작용이기는 하지만, 작용을 일으키는 대상이 영적인 것이라고 마음-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경배의 영은 인간과 동물이 구분되는 결정적인 마음 작용이다. 유란시아 책에서의 경배는 갖추어진 어떤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경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경배라고 불리는 의식을 떠 올리고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 의식체계를 말한다.

​36:5.11
6. 경배의 영─종교적 자극, 마음 창조체들을 필사자 실존에서의 두개의 기본적인 등급으로 분류하는 최초의 차별적 충동. 경배의 영은 그와 관계적-연합된 창조체를 마음 자질이 있으나 혼이 없는 창조체인 동물로부터 언제까지나 구별한. 경배는 영적-상승 후보자의 자격이 있다는 상징이다..

유란시아 책대로 정의한다면 경배의 영이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실제로 동물로 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인간을 이렇게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기 힘든 모욕적인 표현이라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우리에게 계시하는 책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않는 말이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라고 간단하게 계시하면 되는 데, 자세히 밝히는 것은 마치 동물 같은 인간이 있다고 간접적으로 경고하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스스로 인간은 고귀하다고 자부심을 지닌 사람에게는 참을 수없는 표현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책을 외면할 내용인데,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직설적으로 이렇게 냉혹하게 말하고 있는 데에는 틀림없이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고, 계시의 목적이 진리를 인류를 깨우치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려는 것이라면 인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동물과 거의 같다는 것과 어떤 구분되는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달리 말하면 인간이지만 동물로 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사람 누구나 아는 너무 당연한 진리이고 그 안에서 모두 잘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그런 모욕적인 말이나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간에 의심을 가진다는 것은 도움은커녕 삶에 대한 회의와 절망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하느님은 도움은 줄지언정 인간의 행복과 기쁨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는 것이 절대 원칙이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동물과 인간에 대한 계시는 우리의 행복에 특별히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고, 반대로 인간의 행복을 파괴하고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 각자가 지켜야 할 행복이 있는 것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행복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처 실감하지 못한 행복,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는 삶이 파괴될 수 있다면 그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거나, 해를 끼치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은 동물 같은 인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그런 구분을 굳이 잘 몰라도 결코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여기서 착각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착각으로 행복해 보이는 삶은 껍데기만 그러할 뿐, 삶의 내부는 산산이 파괴되어 가는 중이거나 파괴되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과 동물이 구분되는 것은 짐승 같은 포악함이나, 나쁜 심성이나 흉악하고 탐욕적인 모습이 아니고, 경배의 영이 그 기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배의 영이 기능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기준으로 사람이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만 삶이 파괴되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상의 관계에서 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유란시아 책의 경배는 하느님을 받들어 보시는 그런 원시시대의 노예 같은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있다는 사실 앞에 우상을 만들고 비굴하게 무릎을 꿇는 모습은 21세기 기준으로 본다면 단지 지능이 발달한 동물일 수도 있다. 하느님에 대한 감상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와 미래를 살아갈 인류에게 참된 경배가 무엇인지 이 책에는 낱낱이 계시되어 있다. 그것을 깨닫고 동물과 같은 사람들을 구분해야만 하는 것이 계시가 주는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경배는 하느님을 섬기는 자연적인 본능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마음과 의식이 원시적인 경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계시를 통하여 우리를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지요. 글 85편 "경배의 기원"은 원시 사회에 있었던 경배를 이야기하는데 아마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바탕 의식에 알게 모르게 깔려있는 개념이라고 봐야겠지요.

돌과 언덕을 경배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지혜와 깨달음으로 경배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수십 만년을 거치면서 하느님을 깨달았던 가장 큰 진리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혜의 깨달음도 엄밀하게 말하면 원시적인 경배 의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경배가 심오한 종교적 개념과 예식으로 발전했으니까 원시 경배는 우리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그 경배를 이루는 동기나 그 핵심을 보면 표현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구원하는 메시아, 현실을 초월하여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우러러 받드는 것이라서 원시적인 경배 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직시하도록 계시를 준 것이지요.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고 가르쳤지만, 사후에 하느님의 손길로 새로운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려고 경배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우주의 높은 차원에서 행하는 경배에 관하여 유란시아 책에서 계시하는 글을 보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보답으로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바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의 본질이 감상이 아닌 것처럼 경배의 본질도 감상은 아니어야겠지요.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경배가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듯이, 계시된 진리의 실천으로 물리적 인간과 영적 인간이 구분돼요.


 


재단소개 재단목적 문의 | 요청 개인정보취급 (웹관리자) : sysop@urantia.or.kr © URKA 상단으로
  모바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