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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인간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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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디오니스 작성일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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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신성한 존엄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존엄성을 파괴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탐욕으로 인하여 시작되고 폭력으로 행사하는 것이지요. 이웃의 처지를 이해하고 탐욕을 스스로 절제하고, 정의와 원칙으로 ​폭력이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어서 살아가는 것이 문명화된 이상적인 세계입니다.

전쟁과 혼란으로 문명이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경우가 유란시아 책에 소개되어 있지만,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도 인류는 결국에는 점점 문명이 꽃피우는 시대로 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우주의 질서입니다. 우주는 더욱 높은 차원으로 진화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지요.

문명의 진보에 동참하고 힘을 보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높은 문명을 이루려고 나아가는 것은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명의 혜택을 나날이 즐기고 기쁨과 편리함 속에서 삶을 더욱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일에 적극 동참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모른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문명의 발전에 방해하거나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문명의 발전은 이타적 배려와 정의와 풍요라고 한다면, 문명의 파괴는 탐욕과 폭력과 투쟁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모두 알고 있고, 사랑과 정의도 모두 알고 실천할 수 있는데, 왜 문명의 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왜 모두가 행복한 이상 세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만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은 우리가 실패를 거듭하고 항상 추락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우리가 동물에서 태어난 동물적 존재이고, 영적으로 깨어나야 극복이 되는, 그러한 한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물적이고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태어난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에게는 열악한 동물적 삶에서 새롭게 탄생되는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우주에서 동물적 삶을 살아가는 필사자가 누리는 특권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여 동물적인 삶에서 벗어나야만 축복이 성취되는 것이겠지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에서 벗어나 존엄한 인간으로 살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동물적 본성을 절제하면서 제대로 성공을 이루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책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2:5.10
 
비(非)영적 동물들은 오직 과거를 알며 그리고 현재에서 산다. 영-내주 사람은 선견(통찰력)의 힘들을 가진다;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오직 앞을 내다보고 진보적인 태도들만이 개인적으로 실제적이다. 정적인 윤리와 전통적인 도덕성은 단지 약간 초(超)동물적이다. 금욕주의도 자아-실현의 높은 계층은 아니다. 윤리와 도덕은 그것들이 역동적이고 진보적일 때 참으로 인간적인 것이 되며 우주 실체와 함께 살아있게 된다.

우리가 동물로 살아가는 것은,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가 체험하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모든 과거를 사실과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현재를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동물적 본성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영적 힘을 사용하는 것인데, 그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동물적인 사람은 잠재되어 있는 통찰력을 힘을 사용하기를 거부합니다. 단지 편안한 기분에서 벗어나기가 싫고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이 귀찮고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편안하고 기뻐하는 행복한 자신의 기분에 젓으려는 동물적 본능에서 벗어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지요.

게으르고 편안을 추구하는 ​자신의 동물적 마음을 이겨내려고, 금욕의 고통으로 들어가 애쓰거나, 혹은 이기적 탐욕과 파괴의 본능을 억제하려고 윤리와 도덕을 회복시키면서 자신을 다스린다 해도, 단지 동물을 벗어나는 초동물이라고 말합니다. 초동물은 인간이 아닙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인간은 단지 초동물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참다운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윤리와 도덕이 진보적이고 우주적으로 통용되는 실체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운리와 도덕을 자기 잣대로 왜곡하고 정의마저 부인하면서 그것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동물로 살겠다고 우주적으로 선포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것이 우주의 진화를 가로막고 오히려 파괴하는 것이니, 그러한 마음이나 생각은 그 즉시 우주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포기하고 스스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늘 현재에서만 살겠다는 결심이겠지요.

마음이 그렇게 일단 어둠 속에 갇히면,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도 같이 사라지게 됩니다. 동물적 본성이 나타나면 그 순간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게 합니다. 동물적 마음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진리를 구분하는 능력을 결코 회복할 수 없습니다. 동물에서 벗어나려는 초동물적 노력도 부족합니다. 자신의 탐욕을 버리고 우주적으로 참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 깨달음 안에서 역동적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댓글목록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인간이 태어나기 끼지의 설명을 읽어보면 인간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물적 인간도 있고, 참된 인간은 초동물적 인간과 다르다는 표현은 진리입니다. 모습으로는 인간이 동물과 전혀 다르지만, 유전자로 보면 전혀 다르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앞으로 의학이 발달하면 동물을 이용하여 건강한 몸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동물적 본능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동물 본능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조정할 힘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스스로 동물적 존재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이지요. 당장 눈 앞에 기쁨과 쾌락이 보이면, 며칠 후에 불행이 닥친다고 설득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어리석음은 동물적 인간의 특징이지요.

현재에만 집착하고 미래를 보지도 믿지도 못하는 것은, 오로지 현세적 행복이 살아야 할 최고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다면, 참된 인간이 될 길은 없습니다. 진리가 없이는, 받아들이지 않고는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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