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최근 게시글      최근 코멘트

우주적 행복-상승하는 삶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경곤 작성일19-08-26

본문

유란시아 글 16편은 일곱 주(主) 영에 대한 글입니다. 아시다시피 유란시아 책에서 처음 밝히고 있는 창조론, 우주론, 운명론 그리고 영원과 무한의 배경은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 일곱 주 영에 관한 계시는 계시 중에서도 매우 놀라운 진리 중의 하나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시작되는 영원한 과거에 초우주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막연하게 받아들이고 믿고 있었던 절대적이고 유일하신 하느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알리면서, 우리에게 다정한 손길과 사랑을 느끼도록 이끌어줍니다.

우주 아버지는 사랑이라는 진리로 계시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받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우주 아버지의 영적 아들로 결국에는 승리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특권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아버지를 제외한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단 하나의 명령으로 "완전하라"는 명령만 있습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면, 이 명령뿐이지만, 이 마저도 거부할 자유의지를 의무와 동등한 권리로서 주어졌습니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자연계는 명령이나 의지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선천적으로 하느님의 질서에 따라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지 않는 삶은, 스스로 인간의 자격을 포기하여 동물 차원으로 사는 것이고, 선천적으로 의지가 없었다면 모를까, 거기에는 어떤 변명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말은,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우주의 모든 것에는 행복과 기쁨이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자연적인 본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물이나 동물이나 자연계에는 고통이나 불행이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실존의 목적과 이유는 저절로 나름대로 행복과 기쁨을 즐기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완전하라는 의무도 사랑에서 비롯된 명령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따르는 것은 고역과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과 연결됩니다. 물론 따르지 않아도 동물처럼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아갑니다. 기쁨과 행복을 의지적으로 선택한다는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아무 뜻 없이 단순하게 존재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다니고 맛보는 것은 게으른 동물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무언가를 선택을 하고. 시간과 공간 안에서 성취하고, 그 결과로 가쁨과 행복을 체험하면서 새롭고 또 다른 목표를 찾아서 나아가는 것이 완전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승하는 삶으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의지 성취의 결과로 얻어지는 행복과 기쁨을 확인하기 위해, 삶의 목표가 있어야만 합니다. 행복과 기쁨은 우주 곳곳에 스며있는 자연적 본성이자 본질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의지를 가진 인간이 누리고 맛보는 기쁨은 의지 선택의 결과이지 기쁨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삶의 목표에는 물질적인 것, 마음적인 것, 영적인 것이 있습니다. 다 중요합니다. 이들 목표를 발견하는 능력이 통찰력이고, 이 통찰력이 초우주를 창조하신 주 영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16:6.10
 
지역우주 마음 증여에서, 조화우주 마음의 이들 세 가지 통찰력은, 사람으로 하여금 과학과 철학 그리고 종교의 영역에서 이성적이고 그리고 자아-의식적인 개인성으로 기능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어떤 선험적 가정들을 구성한다. 달리 말하자면, 무한자의 이들 세 현시활동의 실체를 인지하는 것은, 자아-계시의 조화우주적 기법에 의해서이다. 물질-에너지는 감각의 수학적 논리에 의해 인지된다; 마음-이성은 그것의 도덕적 의무를 직관적으로 안다; 영-신앙(경배)은 영적 체험의 실체에 대한 종교이다. 반영적 사고(思考) 안에서 이들 세 기본 요소들은 개인성 개발에서 통합되고 조화-협동될 수도 있고, 또는 그들은 균형을 잃게 되어서 그들의 해당 기능에서 실질적으로 무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통합될 때, 그들은 사실적 과학, 도덕적 철학, 그리고 진정한 종교적 체험의 상호관련 안에 이루어지는 강력한 성격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물, 의미, 가치들로 겪는 그리고 그 안에서 겪는 사람의 체험에 객관적인 타당성, 실체성을 주는 것이 바로 이들 세 조화우주 직관들이다.

이제 우리 인간의 삶의 목표는 확실해질 수 있습니다. 나약하고 게으른 자의 환상이나 거짓된 행복과 기쁨에 스스로 취하는 동물적인 포기의 삶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물리적 심리적 기쁨과 행복을 목표로 삼으려는 동물적 본성에서 뛰쳐나와 인간이 지닌 거의 무한한 자질을 마음껏 사용하는 힘찬 삶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계시는 자세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16:6.11
 
인간 마음의 이들 타고난 자질들을 개발하고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그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문명의 목적이다; 그것들을 실현하는 것이 일생 체험의 목적이다; 그것들을 고결하게 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다; 그것들을 통합하는 것이 개인성의 목적이다.

우리가 어디에 목표를 두어야 할지 통찰력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매 순간마다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특성에 맞춤형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거의 완벽하게 각자의 자질을 개발하고 완성하도록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메시지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더구나 아예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유란시아 책을 읽으면서도 실제로는 믿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고 질책하는 계시자들의 경고를 되새겨야만 합니다.

34:7.8
 
영존하는 일생의 길을 이제 출발하였고, 임무배정을 받아들였고 그리고 전진하라는 너희의 계층들을 수여받았으니, 인간의 망각의 위험과 필사자의 변덕스러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할 것 같은 의심이나 당혹하게 하는 혼란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며, 너희의 지위와 처지에 비틀거리지도 말고 의문도 갖지 말라, 이는 어두운 모든 시간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투쟁의 모든 교차로에서, 진리의 영이 항상 “이것이 그 길이다”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과 기쁨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도구로 유란시아 책을 읽고 위로받는 것으로 끝내는 것은 진리를 오용하는 것입니다. 유란시아 계시는 행복의 환상에 이끄는 거짓된 가르침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사용하는 것은 거짓된 진리에 의지를 바치려는 유혹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댓글목록

코너킥님의 댓글

코너킥 작성일

굳이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지만, 조화우주의 마음과 지역우주 마음의 차이점이 인용 문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마 계속 상승 방향으로 이끌면서 나아가는 것이 조화우주 마음이고 완전을 이루는 체험과 고결함과 통합으로 이끄는 것이 지역우주 마음 같습니다.

실체의 세 가지 차원으로 소개되는 원인. 의무. 경배가 삶의 바탕인데, 마음을 가다듬고 의식을 가지고 못하면서 살아갈 때 삶의 결말은 헛된 것으로 사라지는 것이겠지요. 열심히 살다 보면 행복이 오는 것이라서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열심히 사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깨어나지 않으면 내면에서나 겉으로나 구분이 잘 안 되는 것이라서 쉽지는 않습니다.

결국 생각과 행동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도덕과 윤리와 진리와 관계없이 자기 좋은 대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은 올바른 사람의 삶은 아니겠지요. 의식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참된 행복에서 하나의 조건이겠지요.

16:7.5
사람이 그가 필사자로서 분투하고 있는 것의 결말을 분간하지 못할 때, 그는 스스로 자신이 실존에서의 동물적 차원에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개인적 존재로서의 그의 조화 우주-마음 자질의 집대성을 이루는 한 부분인 물질적 총명, 도덕적 분간, 그리고 영적 통찰력이라는 우월한 장점들을 자신이 활용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행복하다고 착각하면 참된 행복은 불가능해요. 행복은 행복하지 않아야 성취할 수 있어요.


 


재단소개 재단목적 문의 | 요청 개인정보취급 (웹관리자) : sysop@urantia.or.kr © URKA 상단으로
  모바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