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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향하여 나아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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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디오니스 작성일1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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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에는 마음에서 어둠과 악을 몰아내고 욕심을 버리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진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장 오래되었다는 불교의 가르침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131:3.3
 
“불의는 비천한 것이며 죄는 비열한 것이다. 악은, 생각 속에 있든지 밖으로 드러나던지, 타락시키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먼지가 날리는 것처럼, 악의 길에는 고통과 슬픔이 뒤따른다. 물질적 사물의 본체에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처럼, 순수한 생각과 고결한 삶에는 행복과 평화가 따라온다. 악(惡)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 생각의 소산이다. 죄가 없는 곳에서 죄를 보는 것은 악이다; 죄가 있는 곳에서 죄를 보지 못하는 것도 악이다. 악은 거짓된 교리의 길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봄으로써 악을 피하는 자는, 진리를 만남으로써 기쁨을 얻을 것이다. 죄를 혐오함으로써 너희의 불행을 마감하라. 너희가 고귀한 이를 바라볼 때, 전심으로 죄에서 떠나게 된다. 악에 대하여 어떤 핑계도 하지 말라; 죄에 대하여 어떤 변명도 하지 말라. 과거의 죄를 고치려는 노력을 통하여, 너희는 미래에 다가올 죄의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절제는 참회에서 탄생된다. 고귀한 이에게 모든 결함을 남기지 말고 고백하라.

종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철학은 물론 평범한 교양서적에도 올바르게 살도록 이끄는 가르침이 수없이 많습니다. 특별히 공부하지 않아도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글자를 배울 때부터 사람이 지키고 따라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깨우쳐주기 때문에, 이런 원칙에서 본다면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아주 심하게 열악한 환경이라서 글자를 깨우칠 수 없었다고 해도, 어른으로 성장하면 자연적으로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니게 됩니다. 사나운 맹수조차도 허기를 채우면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는 게 자연의 질서인데, 사람은 그 질서마저도 무시한 채 끝없는 공격과 비난과 파괴하려고 합니다. 약탈자를 몰아낸다는 구실로 또 다른 약탈을 저지릅니다.

참된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가는데, 예수님이 모든 사람에게 보내주었다는 진리의 영이 공허한 선언이 아니라면, 사람으로 말미암아 아무 역할을 못하는 것이겠지요.

진리의 영이 활발하게 이끌고 있다면, 진리를 배척하거나 양심을 버리거나 악을 아무 가책도 없이 태연하게 행하는 사람들이 없어야만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진리의 영이 떠나간 사람이 있을 것이고, 탐욕 때문에 진리의 영을 스스로 내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사라지면 인간은 거의 동물입니다. 유란시아는 정상적인 행성의 진화 단계에서 벗어난 세계이기 때문에, 동물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뒤섞여서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진리를 거부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도 어쩔 수 없는 각자의 결정이기 때문에 조언이나 비난이 모두 무의미합니다. 진리를 탐구하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무의미한 일에 허비하는 것이, 진리를 식별하지 않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어리석은 일이라서 피하게 됩니다. 사람과 즐겁게 지내는 시간을 마다하고 애완동물과 즐기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주변 환경이 진리를 가로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리의 빛을 발견했지만, 방해물이 많아서, 고통을 겪거나 주저앉는 사람들은 유혹이나 악으로 불리는 어둠과 거짓된 마음의 장막을 헤쳐나가는 의지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진리의 길을 알려주지만, 신성한 의지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에, 강제로 안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둠은 선악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본능과 감각의 행복을 마치 영원한 것인냥 속이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영원한 기쁨은 우리의 지혜를 풍성하게 하지만, 일시적인 기쁨은 우리의 지혜를 서서히 파괴합니다. 매 순간의 기쁨과 행복이 영원한 진리와 이어지고 있을 때, 우리의 운명이 성취되는 것이지요.

꺼지지 않는 영원한 빛을 우리에게 비추면서 어둠과 혼란 속에서 이끌어주는 하느님의 단편이 우리 마음속에 거주하고 있는 생각 조절자입니다. 어둠 속에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물질이 부딪치고 새로운 에너지로 분출되는 반응이듯이 마음을 밝히는 빛도 그렇게 마음을 태우며 새롭게 탄생되는 반응입니다. 역경 속에서 빛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얻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과 환경과 일상에서 만나는 달콤한 유혹의 장애를 헤쳐가며 전진하는 것이 강력하고 고귀한 성격을 형성합니다.

23 :2.5
 
유란시아의 혼동과 혼란이, 파라다이스 통치자들에게 관련사들이 달라지도록 관리하는 관심이나 능력이 부족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창조자들은 유란시아를 진실 그대로의 파라다이스로 만들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러한 에덴은 필요성이라는 모루와 고통이라는 망치 사이에서 하느님들이 분명하게 너희 세계에 이루려는 그 강력하고 고귀하며 체험된 성격들의 개발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걱정과 슬픔은, 너희의 시련들과 실망들은, 완전한 중앙우주의 세계들에서의 만물의 절묘한 완전성과 그들의 최극 목적에 대한 무한한 적응이 되는 것으로서 그만큼, 너희 구체에 대한 신성한 계획의 일부분이다.

 

걱정과 슬픔, 시련과 실망은 우리의 연약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을 드러내는 우주 계획의 일부분입니다. 장애물을 적당히 피하거나 감추지 않고 강인한 성격으로 빛을 향하여 한 걸음씩 헤쳐 나아가는 것이 빛을 향하여 나아가는 마음입니다. 

댓글목록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어둠 속에서 살면 사물을 식별하다가 끝나요. 성장이 없어요. 빛 속에서 살아야 창조와 성장이 비로소 가능해요.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어쩌면 혼란과 혼동 속에서, 그리고 불의가 있고 죄가 있는 곳에서 살아가면서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그 자체로 영적 성장과 혼의 탄생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세상도 시간과 공간은 여전히 상대적 세계라는 점에서 성취와 결실은 상대적인 완성이지 여전히 더 높은 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고 멈추어 모든 것을 감사하며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곳에 멈춘다면 곤란하겠지요.

천사들이 우리를 보호하면서 하는 일이, 우리를 모루와 망치 사이에서 단련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라고 여러 번 강조하고 있고, 삶의 결실은 성취보다는 방향이라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성취를 위해 시련을 넘어 쉬지 않고 전진해야 하겠지만, 작은 성취에 흠뻑 취하는 것도 조심하라고 강조합니다.

48:7.26
"영원의 운명은 하루하루 삶의 성취에 의해 순간마다 결정된다. 오늘의 행동들은 내일의 운명이다."

오늘의 홈런이 내일의 승리가 아니라는 의미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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