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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진리는 모두 참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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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너킥 작성일1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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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우주의 실체들은 그것이 물질이건 비물질이건 우주 안에서 탄생되고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다. 원자에서 우주 행성까지, 무생물에서 생물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것들이 탄생되고 변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변함없는 진리 안에서 시작되고 진리 안으로 귀속한다.

 

진리란 참된 이치이자 보편적 사실을 말한다. 우주 안에서 알게 모르게 매 순간마다 부딪치는 참된 이치이자 보편적 사실은 헤아릴 수가 없다.


수학적 계산이나 과학적 사실이나 만물의 법칙이나 생물학적 반응이나 마음의 움직임이나 지적 깨달음이 모두, 진리라는 바탕에서 일어나고 움직인다.

 

만유인력이라는 진리가 없다면, 물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빛이 반사된다는 진리가 없다면 이 세상은 암흑에 갇혀서 아무것도 식별되지 않을 것이고 변함없는 진리로 작용하는 전기와 화학적 반응이 없다면 생명체의 성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처럼 우주 만물이 변화하는 가운데에서 변화하지 않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말이 진리이다. 진리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 만물은 순간적으로 붕괴되고 사라져야만 한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고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까지 진리의 바닷속에서 탄생되는 것이다. 참된 이치와 보편적 사실에서 벗어나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따르고 있고, 또 따라야 할 진리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우리는 단순한 물리적 실체인지, 동물 생명체인지 아니면 인간인지 구분된다.

 

다른 말로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고 반응하고 있는 그리고 알고 있어야만 하는 진리에 따라서 동물적 인간인지 하느님 자녀가 될 인간인지 구분된다. 이렇게 구분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우주 만물에 적용되었고, 현재 움직이고 또 영원이 나아가고 있는 우주의 진리이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물리적, 생물학적, 지적, 심리적 법칙이 있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이러한 사실적 진리 안에서 깨어나고 성장하고 있다. 현실의 모든 문제는 역사를 통하여 참된 이치이자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실이라고 확인된 법칙 아래에서 움직인다. 그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연적으로 소멸되던지, 인위적으로 도태시켜야만 현실이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무생물을 포함하여 식물과 동물도 어떤 어려운 역경을 당해도 진리에 반응하고 진리를 선택하고 진리에 순응하며 존재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진리의 영을 부어주시기 전에도, 인간이나 동물이나 한결같이 참된 이치나 보편적 사실에 따르면서 살았다. 이처럼 진리에는 동물도 순간적으로 인식하고 선택하는 진리가 있다.

 

이러한 부류의 진리들은 따르지 않았을 때는 불이익이나 고통이나 불편함이 닥치기 때문에 물리적, 생물학적, 심리적으로 즉시 반응할 수 있는 진리들이다. 이러한 진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동물과 식물까지도 반응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진리들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진리라기보다는, 자연과 세상의 이치이자 보편적 법칙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줄여서 말한다면 도리이다.


심하게 말한다면, 인간도 도리에 따라서 살아가지만 동물이라고 해서, 도리에서 벗어나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과거 역사를 통하여 현자들의 체험을 통하여 검증되고 확인된 도리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은 가장 가치 있는 동물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하느님의 자녀로 탄생되어가는 삶은 아니다.

 

16:7.1
지능만으로는 도덕적 본성을 설명할 수 없다. 도덕과 덕목은 인간 개인성에 토착적인 것이다. 도덕적 직관, 의무의 실현은 인간 마음 자질의 한 요소이며 인간 본성의 양도할 수 없는 다른 것들: 과학적 호기심과 영적 통찰력과 연관되어 있다. 사람의 정신은 그의 동물 친족들의 그것을 훨씬 초월하지만, 인간을 동물 세계로부터 특별하게 구별시키는 것은 그의 도덕적 그리고 종교적 본성들이다.
16:7.2
동물의 선택하는 응답은 습성이라는 운동 차원에 제한되어 있다. 비교적 고등 동물들의 통찰력처럼 보이는 것들은 운동 차원에 있는 것이며 통상적으로 시행착오를 겪는 운동에서의 체험 이후에서 단순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은 모든 탐구 또는 실험보다 그 이전에 과학적, 도덕적, 그리고 영적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람이 반응하는 진리는 다르다. 반드시 달라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진리의 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도리가 아닌, 참된 진리에 반응하도록 되어 있는 데, 이것이 바로 진리의 영이 부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진리의 영이 부어졌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 진리의 영을 벗어던지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진리의 영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벗어버릴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진리의 영은, 단순하게 진리를 식별하고 선택하는 진리의 마음이나 진리의 지능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 에너지에 관련되는 진리이다. 영적 에너지는 가치에 대한 실체를 다루는 영역이다. 올바른 도리를 따르는 것은, 진리의 지능이나 마음을 될지언정, 진리의 영과는 상관이 없다. 진리의 영은 물리적 현상이나 실체에 대한 인식과 반응과 다른 영역이다.

 

102:6.9
진화의 사실들은, 하느님을 아는 필사자가 종교적 삶에서 얻는 영적 체험의 확실성이 지니고 있는 실체의 진리에 반하여 열거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지능적 사람들은 어린아이같이 따지는 것을 멈추어야만 한다, 그리고 사실의 관찰과 함께 나란히, 진리의 개념을 너그럽게 견디어내는 논리, 어른다운 일관된 논리를 적용하려고 시도해야만 한다. 과학적 물질주의는, 되풀이되어 일어나는 각각의 우주 현상에 부딪쳐서, 명백하게 우수한 것이 명백하게 열등한 것 속으로 되돌아감으로서, 그 현재의 결함들을 배상해 주려고 끈질기게 매달려 있을 때, 파탄되어 버린다. 일관성에는 목적을 가진 창조자의 활동을 인지해야 할 것이 요구된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사실이나 현실을 인식하고 반응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자신의 상상력과 예측을 추가하면서 반응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눈 앞에 드러난 사실보다는, 오히려 상상력과 자기 만의 편견으로, 혹은 선전 선동에 휩쓸려서 사실을 다르게 인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판단력도 아니고, 단순히 자신이 집단에서 고립되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되는 무작정 휩쓸리는 생물학적 반응일 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동물적 반응을 인지부조화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인륜과 도리를 서슴없이 저버리는 인간의 동물적 속성을 대표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진리를 식별하는 지능이나 마음이나 판단력은 동물에게도 있다. 우주 현상, 사회 현상, 인간들의 현상을 통달하고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법칙과 이차를 찾아내는 것이 진리의 영이 아니다. 예수님이 부어주신 진리의 영은, 최소한도 하느님의 뜻과 창조자의 활동이 있다는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살아있는 진리의 영은 종교적 신앙에서 비로소 싹트고 활동하기 시작한다.

 

과거나 현실에서 참된 가치, 진리를 찾아내는 것은 깊은 통찰력과 지혜로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가치를 실천하고, 체험으로 성장하려면 모든 우주 공간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적 확신과 심리적 결심과 명철한 지혜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이룰 수가 있지만, 그것으로 하느님의 실체를 확인하는 신앙이 될 수가 없다. 신성한 실체는 살아있는 신앙은, 진리의 영이 없이는 찾을 수도 없고 성취될 수도 없다.

 

시공간의 물리적 사실이나, 우주 법칙을 찾아내어 진리로서 확신할 수도 있다. 때로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자연 본성과 우주 실체의 진면목을 깨달아 그 도리를 진리로서 확신할 수 있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참된 가치는 오로지 하느님의 실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신성한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으로 살아가도록 이끄는 것이 진리의 영이다.

 

그런 진리의 영으로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실천하고 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진리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선과 악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혼란 속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해야만 하고, 그 안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리를 찾아내야만 하고, 찾아낸 진리가 우주의 영광과 권능을 표현하는 하느님의 말씀이었음을 실감해야만 한다.

댓글목록

운해님의 댓글

운해 작성일

글을 읽고나니 우리에게 진리의 영이 현실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과학적 사실도 새로운 학설과 기술로 계속 발전되고 있으니 과거의 진리가 언제까지나 진리가 될 수 없는데, 생각이나 깨달음 같은 영적 영역에 속하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선과 악, 참과 거짓에 대한 것인데 이 마저도 현실적 잣대로만 평가하면, 진리라고 여길 것이 많지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나도 변경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진리과 거짓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잣대로 현실을 보려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 문제 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유란시아 책에서 특히 기억이 나는 가르침은, 참된 것 곧 진리에는 반드시 가치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아마도 참과 거짓을 구분하게 이끄는 진리의 영도 반드시 가치있는 것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거짓에 대비되는 진리가 아니라, 삶을 바치고 열정을 불태울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 나아가 그 자체가 시공을 초월하는 가치로 이루어진 것이, 진리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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