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최근 게시물 보기
2017 년 11 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사람은 모두 진리를 깨닫고 있을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코너킥 작성일17-10-15

본문

유란시아 책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으로 모든 사람에게 진리의 영이 부어졌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 진리의 영 덕분으로 하느님의 단편인 생각 조절자가 모든 사람에게 내주 할 수 있고, 이 아버지의 영이 내주 하는 덕분에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신분을 지니게 된다고 전하고 있다.

 

단순히 진리의 영이 부어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물 차원의 존재에서 모론시아 차원을 거쳐 영 차원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아들 신분으로 도약될 수 있는 길이, 직접적으로 주어졌다는 진리는 그 자세한 내용을 알면 알수록 헤어릴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모든 인류에게 새로운 빛으로 다가오고 있다.

 

예수님이 부어주신 진리의 영이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 곧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은 유란시아 책 이전에도 널리 알려진 말이다. 이 말 자체를 변함없는 진리로 여길 것인지는, "진리"에 대한 각자의 체험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 중에는, 예수님이 자유롭게 만든다는 말씀하신 "진리"를 성경이나 교회로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아니면 예수님 자신이나 하느님으로 여기기도 한다.

 

진리는 한마디로 참된 것을 말한다.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참된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성경이나 교회나 예수님이나 하느님이 모두 참되다고 말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진정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자신이 참되다고 여기면 여길수록, 성경 해석에 묶이고, 교회에 얽매이고, 예수님의 이름에 속박되고, 결국에는 하느님의 분노에 아니면 사랑에 꼼짝도 못 하고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자유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의 없다. 자유란 그 어떤 구속이나 부담이나 금지 사항이나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도 진리가 준다는 자유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것은 참된 진리를 모르는 것이다.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는 있을 수 있다. 개인의 관점이나 사회적 환경이나 혹은 시대적 여건에서 참되다는 것이 상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것이 무엇인지 전혀 분별을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다. 참된 것을 깨닫는 차원은 정신적으로는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영역이지만, 물질적 본능에 습관이 되어 주로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지혜의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물질적 세상에만 몰두하는 이런 분들이 진리에 관해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내용일지 상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마음에서의 감동이나, 새로운 사실을 자신의 지식 창고에 추가하면서, 새롭게 결합된  지적 풍성함을 즐기는 정도가 아닐까.

 

자유롭게 한다는 기능 이외에도, 한편 진리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지 지식창고에 그것이 추가될 때는, 변할 수 없는 사실만 추가되는 것이라서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커녕, 정반대로 기능할 것이다. 진리가 추가된 지식이나 지혜는, 스스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자신의 관념을 경화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진리로 자유롭게 되는 것은 착하게 산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아래 문장에서 보듯이, 특별하게 증여 아들의 임무와 본질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영인 생각 조절자가 아들의 영인 진리의 영의 도움이 없이는, 내주 할 수도 없고 소통할 수도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들의 임무를 모르고, 진리의 본질을 모른다고 해도, 하느님을 믿는 신실한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이다. 왜냐하면 우주 어머니의 영인 성령이 그런 초기 믿음을 신성한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지식이나 지혜의 차원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우리가 생각하고 마음먹고 그렇게 되었으면 바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을 신성한 차원과 연결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리고 의지의 헌신만으로도 영 성화될 수 있도록 우리를 돕고 있다.

 

34:5.5
진리의 영이 모든 육신에게 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이 영은 기능과 힘의 면에서 증여 아들의 임무 전체와 본질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사람의 개인적 수용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제한된다. 성령은 인간 태도로부터 부분적으로 독립되며 사람의 의지의 결정과 협동에 의해 부분적으로 제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사명활동은 신성한 인도에 더욱 충분히 복종하는 그 필사자들의 내적(內的) 삶의 성화(聖化)와 영성화에 점점 더 효력을 나타내게 된다.

 

진리를 깨닫는다면,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타인과 비교되는 상대적 자유를 즐기는 일이나, 지식의 확대나 지혜의 습득에 탐닉하지 않는다. 진리로 인하여 자유를 얻는다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는 욕심에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 자체의 능력을 드러내려고 스스로를 헌신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증여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임무와 예수님이 밝히신 우주 창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운해님의 댓글

운해 작성일

진리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이유는 있겠습니다만, 우주 어디에도 개인의 의지를 무효화시킬만한 힘이나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에서 본다면, 어떤 변명도 설명될 수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의지의 신성함과 존엄성을 포기하고, 추하고 천박한 일에 사용하고 있다면 진리를 깨달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령도 진리의 영도 아무 효과가 없는데, 진리를 배쳑하는 의지를 스스로 바꾸지 않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효과가 없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도 스스로 변화하라고 사랑으로 가르치신 것이 전부입니다. 유란시아 책이 예수님 다음의 계시라면, 책 내용에서 스스로 가르침을 듣지 않는 한, 계시자들의 사랑 넘치는 호소를 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책을 읽는 독자도 새롭게 밝혀진 우주적 사실이나, 도덕적 개념을 참된 진리로 착각하는 분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 분들은 진리가 없이도, 흠잡을 데 없이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분이 많고, 하느님을 몰라도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진리와 상관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의 인도에 더욱 따르면서, 한편으로는 점점 더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것입니다.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계시에 대한 질문에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문득 누구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굳이 계시가 내려올 필요가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이 시대는 진리에 관심 없는 분들이 아주 많고, 한편 유란시아 계시를 읽는다 해도, 가슴 깊이 참된 진리로 받아들이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울 정도로 영적으로 암울한 시대겠지요. 자신의 의지로 진리의 영을 거부하는 것은 이런 시대적 상황이라면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만큼 추수할 열매가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증여 아들의 임무와 본질"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신성한 요소, 살아있는 하느님의 사랑과 우주의 법칙을 생생하게 깨단는 것은, 편견을 버리고 유란시아 책을 읽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문장 자체에 담진 진리를 추구하기 보다는, 자신의 지식, 지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해석해보려는 시도는 진리를 탐구하는 의지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진리를 만날 수 없는 것이지요.

 하느님께 의지를 헌신하는 것이, 진미선의 추구인데, 그런 사람이 거의 없어서 계시가 주어진 것이고요. 예수님의 펼치신 진리, "하느님의 자녀신분"을 온전하게 받아들인 제자들이 거의 없다는 것은, 이 책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겠지요.

.


    재단소개 재단목적 문의 | 요청 개인정보취급 (웹관리자) : sysop@urantia.or.kr | All rights reserved. © URKA
상단으로
  모바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