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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신 이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디오니스 작성일17-09-26

본문

교인이 아니더라도,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으로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랑의 하느님이 인간의 불행을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 본다면, 이해가 가는 진리인 것이지요. 유란시아 책에서는 예수님이 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라서, 우리에게는 독생자 아들이라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실제로 하느님이 외아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독생자라는 특별한 신분이라면, 과연 전능하신 하느님이 독생자 이외에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수단도 없었는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독생자를 보내는 것이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믿음은,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는 믿음과 맞지 않습니다.

 

신앙이란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라서, 그 믿음과 다른 얘기가 나오면 대부분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낍니다. 신앙이 참된 진리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라, 불변의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믿음을 위태롭게 하는 어떤 사실도 갖가지 이유를 찾아내어 거부하려고 합니다.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사실이고 타당하다면, 귀를 막고 무시하게 되는 것이고요. 무시할 수도 없는 진리라면 받아들이는 대신 오히려 공격하여 파괴하면서 자기 믿음을 지키려 합니다. 종교 분쟁이나 짐단간의 참혹한 테러가 그래서 끊이질 않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전능을 믿는다면,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라도 인간을 구원할 방법과 수단이 무궁무진하게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마지막 하느님의 수단이라는 생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하느님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라면, 그것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판단에 따른 것이지 인간의 형편을 보고 어쩔 수없이 선택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서, 예수님이 오신 것은 아니고, 예수님이 지역 우주의 하느님이자 창조자로서 스스로 선택하신 것이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화는 창조자가 창조체가 되는 여러 증여 일생의 하나이며, 유란시아가 아닌 어떤 행성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마지막 증여입니다. 지구가 예수님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에, 자신의 증여 계획을 실천하는 장소로 유란시아를 선택한 것이지, 엄밀하게 말하면 유란시아를 위하여 자신을 증여하신 것이 아닌 것이지요.

 

76:5.7 

그러나 유독 불운만이 유란시아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행성은 네바돈의 지역우주에서 가장 운 좋은 행성이 되었다. 유란시아인 들은 그들 선조들의 과오와 초기에 왔던 세계 통치자들의 오류 때문에 혼란스러운 절망 상태에 던져졌다. 모든 것이 갈수록 악과 죄에 의해 뒤죽박죽되었고 이러한 어두움은 네바돈 미가엘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에 찬 개인성을 계시하는 경기장으로 이 세계를 선택하셨다. 얽혀있는 관련사들의 질서를 위하여 유란시아창조자 아들을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란시아의 악과 죄는 창조자 아들로 하여금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비길 데 없는 사랑과 자비와 인내를 드러내는데 좀 더 강하게 대조가 되는 배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가 선택할 만한 곳이 되었던 것이다.

 

유란시아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고 예수님의 의지적 결정이었다는 이 설명은, 하느님이 우리를 덜 사랑한다는 의미도 아니고, 전심을 다 하셨던 예수님의 사랑에 의문을 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인간에게 아무 희망이 없었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뿐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일생을 사셨던 삶의 목적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지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할 목적으로 내려오셨다는 믿음은, 하느님의 진지전능을 의심하고 예수님의 순수하고 신성한 사랑을 오히려 훼손하는 것과 같습니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전통 종교가 비록 계시에서 시작되었다해도, 시대를 거치면서 신성한 깨달음이 후세로 온전하게 전해질 수 없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진화 종교로 퇴행을 겪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진화 종교에서는 제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영적 진보가 일어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스스로 속박하고 있는 자신의 믿음에서 풀여나기 전에는, 전혀 새로운 영적 성장은 거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92편 글에 이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92:3.4
"진화 종교는 변화 또는 개정을 준비시키지 않는다; 과학과는 달리, 그것은 그 자체의 진보적인 수정을 제공하지 않는다. 진화된 종교는 존중을 강요하는데 그것은 그 추종자들이 그것을 진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 때 성인(聖人)들에게 전해졌던 그 신앙은” 이론적으로는 최종적이었고 오류가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 예배종파는 발전을 반대하였는데, 왜냐하면 실제 진보는 그 예배종파 자체를 변경시키거나 파괴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수정이 강요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진화 종교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면, 사회 문명의 발전과 변혁으로 그 종교가 변화되지 않으면 안되는 압력을 받아서 강제적으로 독단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신기원적인 계시이거나, 2가지 방법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다음 문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유란시아 책을 진지하게 읽기 전까지는, 진화 종교의 속박에서 한동안 얽매일 수 있겠지요. 그러한 속박이 오히려 안심된다고 여길 수도 있고요. 예수님은 영적으로 게으른 자는 정말로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그런 사람을 확실하게 배척하시려고, 필사자의 삶을 체험하신 것입니다.

사트바님의 댓글

사트바 작성일

우리가 사는 유란시아는 우주에서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 특별한 행성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계층의 천상의 존재들이 유란시아라는 보잘것 없는 작은 행성에 천사장의 본부가 설치되어 있고, 그토록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것을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긴다고 하지요. 나중에 창조주 미가엘이 육화한 행성임을 알고 비로소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유명한 행성답게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꼴라쥬님의 댓글

꼴라쥬 작성일

기독교가 하느님의 진리를 가장 명료하게 간직하고는 있지만, 예수님의 참된 진리는 죄에서 인간을 구원한다는 인간의 교리에 묻혀서 그동안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에서 개탄하는 가장 큰 문제이자, 아마도 유란시아 책이 5번째 계시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다행히도 철학이나 신학에서 죄에서의 구원이 예수님의 참된 진리가 아님을 깨닫고 올바른 신앙으로의 회복을 외치신 분들이 계속 출현했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도 그중의 한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고통과 피 흘리는 모습 대신에 참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요.



그런 분들도, 죄 사함이 예수님의 진리가 아님을 알았지만, 막상 진정한 예수님의 진리를 새롭게 밝힐 수는 없었겠지요. 그에 대한 기록이나 전승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이 시대에 밝혀진 유란시아 계시를 읽지 않고는, 인간의 만든 교리에서 벗어나 참된 예수님의 진리를 깨닫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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