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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성과 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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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트바 작성일1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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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가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는 영원불멸의 세계와 나 자신과의 관계를 깨닫고 '나는 누구인가, 만물은 무엇인가'의 해답을 궁극적으로 달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종교에 따라 하나를 말하기도 하고, 전부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나와 우리와 만물과 세상과 우주와 상관되는 영원불멸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의미에서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가장 쉬운 말입니다.

 

이 쉬운 말을 유란시아 책에서는 근원과 중심, 절대와 상대, 시간과 영원, 유한과 무한이라는 세밀한 개념으로 낱낱이 밝히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의 설명은 그동안 성취해 왔던 과학과 철학과 종교에 담겨있던 모든 원리와 현상과 정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그 어떤 진리 경전도 도전할 수 없다고 봅니다.

 

경전도 도전할 수 없는 유란시아 책의 개념을 한 개인의 생각이나 사상으로 꿰뚫어 보겠다는 용기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악일 수도 있고 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악을 멀리하는 바탕에서 그러한 용기를 내어 본다면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종결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상대계의 진아와 개인성이 절대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우리가 성취해야 할 깨달음과 수행과 실천과 달성의 목표입니다.

 

나라는 존재, 곧 자아는 정말로 참되게 존재하는 것이며, 영원불멸의 세계와 상관있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철학과 종교의 핵심입니다. 수많은 해석과 정의가 있지만, 우주 공간에 뿌려진 별들이 저마다 빛을 내고 은하계가 저마다 하늘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어도, 우주는 여전히 침묵하며 돌고 있습니다.

 

영원과 무한 안에서 결코 움직임이 없는 유일한 우주의 핵을, 유란시아 책에서는 파라다이스로 정의하고 그곳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절대자가 머무르는 곳입니다. 사실 파라다이스 실체를 개념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는 존재하지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곳"이라는 인간의 언어가 사용될 수도 없습니다.

 

"파라다이스는 그냥 파라다이스일 뿐이다"라고 간략하게 말하는 것 이상으로, 더 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더 자세하게 알려줄 방법이 없어서 계시자들은 슬프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자기 생각이나 자신이 이해하는 개념을, 남과 견주어서 감히 옳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이 책의 특징입니다.

 

나라는 존재의 실체와 의미와 이유와 운명을 알고자 삶을 바치면서 투쟁했던 결과가 경전과 지혜의 책에 남아있습니다. 그 투쟁의 역사를 모두 이해하고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시작을 위한 몸풀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지식의 창고를 여는 것이, 진리의 모든 것을 파악한 것이. 자신의 목표를 이룬 것으로 착각하고 만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진아가 당체라는 지혜를 깨달아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실천에 결연히 나서는 것이 때로는 은밀한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당체의 실체성이 세간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면, 주체인 나는 실존이 아닐 수가 있는데 실존을 찾는다는 생각이 근거를 잃게 됩니다.

 

실존하고 있는 나와의 관계를 파라다이스와 상관하려면 세간에서의 자아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어야만 가능합니다. 한편에서는 나라는 아집이 사라져야 적멸이라는 영원한 행복을 이룬다고 합니다만, 아집은 사라지기 이전에 그 실체성이 확실해야만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아가 공허하다는 결론을 전제하고 실체성이 없다고 깨닫고자 애쓴다면, 공중누각을 지었다 부셨다 끊임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진리에 미혹한 범부 중생이 수행이 모자라서 진아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파라다이스와 상관되는 본성이 자아에게 있다면, 먼저 그것이 세간에서 드러나는 흔적을 하나도 빠짐없이 분별하여야만 합니다. 그다음에 그것을 총합하여 이 세상에서의 자아를 정의하고 그 세간의 실체성을 초월하는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초월은 뛰어넘는 것을 말하는 데, 이것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파라다이스로 향하는 길은 차단되고 다시 세간으로 되돌아오는 방향으로 바뀝니다.

 

처음의 세간의 분별지에 이어서 그다음의 무분별지를 "분별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면 생각이 멈추기 시작합니다. 그 무분별지를 "분별이라는 것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출세간"이라는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유란시아 책의 혼과 모론시아의 개념을 알아야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진아를 스스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내면의 자아를 실체로서 파악하려 한다면,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본성 때문에 실체성이 분별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간의 진아는 존재하고 있는 실체를 분별하는 것, 곧 세간에서 실체성을 느끼는 그것이 자아가 됩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진아의 개념을, 개인성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세간 출세간 출출세간의 진아가 파라다이스와 상관하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제일 먼저 자아를 깨닫는 자아의식이 인간 누구나 본래부터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지혜로서 삶을 통하여 기쁨이 자극이 되어 깨어나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2:7.6]

지적 자아-의식은, 진리의 아름다움, 그것의 영적 본질특성을, 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일관성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언제까지나-계시는 진리의 영의 어김없는 반응으로 말미암아 더욱 확실하고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은 진리를 인식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이는 진리가 활동으로 옮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망과 슬픔은 잘못 위에서 일어나는 데 그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체험 속에서 실현될 수 없다. 신성한 진리는 그 영적 향기에 의해 가장 잘 알려진다.

 

기쁨 곧 진미선이라는 실체에 비하여, 슬픔과 실망은 이루지 못한 잘못에서 비롯되는 것이라서 실체의 요소로서 생각하지 않아야만 합니다. 그다음에는 지식을 바탕으로 체험을 통하여 지혜와 깨달음으로 자아의 실체성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자아의식이고 출세간을 넘어 출출세간으로 이어질 진아일 것입니다.

 

[16:8.6]

자아-의식은 개인성 실재성에 대한 지적 자각에 있다; 그것은 다른 개인성들의 실체를 인지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그것은, 우주의 개인성 관계들 안에서의 정체성 지위의 달성으로 동등하게 만들어주는, 조화우주 실체들 안에서 그리고 그 실체들과 함께하는 개별존재화된 체험을 위한 수용능력을 가리킨다. 자아-의식은 마음 봉사사명의 실재성에 대한 인지와 그리고 창조적이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의지의 상대적인 독립의 실현을 암시한다.

 

개인성은 출출세간에서도 정의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실재성은 세간에서도 개인이라는 실체를 통하여 인지될 수 있습니다. 개인성 자체는 파악될 수 없지만, 개인성의 실체인 또 다른 개인과의 관계를 통하여 체험 안에서 조금씩 자아의식을 실현하면서 정체성을 이루어갑니다. 진아의 실체성은 개인성의 핵심을 이루는 자유의지와 함께 개인이 외부와 가지는 관계, 인식, 체험을 통하여 세간에서, 출세간에서 그너마 출출세간에서 분별되고 정체성을 갖춥니다. 마지막 실체로 파라다이스와 직접적인 관계 안에서 최종 실현을 이루는데,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합니다.

 

유형에서 무형으로, 무형에서 근원이자 초월의 종착지에 이르면서, 개인성은 세간, 출세간, 출출세간의 개인의 실체성을 하나로 집대성되는 것입니다. 진아, 곧 개인의 실체성은 자성을, 불성을, 영성을 스스로의 내면에서 깨우치고 발견하기 보다는, 오히려 각자의 그리고 만물을 통하여 잠재에서 실재로 나오는 것이며, 그 결과로 완성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잠재적 개인성이 실재성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진아의 모든 체험은 개인과 진리, 개인과 개인, 개인과 세간의 관계입니다. 개인성의 이 실현이 출세간으로 상관되는 것은 오직 개인 안에 있는 하느님의 단편과의 관계에서만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능합니다. 그러한 개인적 관계는  세간에서 성취하는 모든 신성한 관계로서 드러나고 확인되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문외한의 얕은 상식으로는 명상이나 선불교에서 깨달음의 끝이 참나를 찾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참나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동안 들은 얘기는 깨달음은 자기를 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마음에서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질 때 성취된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는 잊어야 하는 자아와 드러내야 하는 유란시아의 개인성은 정반대의 의미라서 관련성을 찾기가 조금 어렵네요. 다만 무분별을 분별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상승의 운명을 선택하는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시의 핵심은 잠재적 개인성이 실재적 개인성이 되는 것인데 개인성 실재가 성공하지 못하면 우주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고 합니다. 16편 글을 보면 개인성 실재는 자아-의식에서 비롯되는 데 이것이 자아를 의식하는 것을 넘어, 다른 개인성이 지니고 있는 실체성을 인지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아-의식이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인지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자기를 버리라는 말과 비슷한 깨우침 같기도 합니다. 좀 어렵네요.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유란시아 책에 나오는 자아-의식은 보통 자주 말하는 자의식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자아-실현, 자아-영속, 자아-실존과 같이 생각하면서 자아-의식을 이해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나아가 자아-만족, 자아-영광 등등의 결과물도 참된 자아-의식에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하는지도 상세히 알려주고 있고요.

책의 설명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 혼자서 지니는 그런 자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쉽게 말하서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자아-의식이 존재할 수 없다고 정의되는 그런 자아-의식이 유란시아 책에서 등장하는 자아-의식입니다.

물론 나 자신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자아-의식이지만, 그러나 자신이라는 실체의 알갱이를 의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관계를 맺고 반응할 수 있는 존재자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존재자와의 반응에서 선택과 결정이라는 의지적 생각과 행동이 나오고 그 결과가 의식으로 남아서 결국은 자아-의식의 토대가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자아-의식은 [2:7.6] 글처럼 개인성 성장이나 성취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근간이기도 하고요.

사트바님의 댓글

사트바댓글의 댓글  작성일

자아-의식은 자아-실현과 직결되고 자아-실현은 세상과 직결된다는 가르침이 유란시아가 깨우쳐준 진리입니다. 어찌보면 아주 간단한 세간의 법인데도, 에고에 묻혀서 진리를 거부하면서 욕망 속에서 욕망을 채울 진리를 찾아나서는 분들이 많은 것이지요. 아직 제대로 의미를 깨우치진 못했지만, '영적 향기'란 말은 듣기만 해도 평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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