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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책의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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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너킥 작성일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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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는 계시이다. 2천 년 만에 내려온 계시이다. 이 책은 인류가 지닌 질문에 완벽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는 물론, 앞으로 천 년 동안 인류가 던질 수 있는 질문과 혼란을 예측하여, 그에 대한 해답 또한 제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진리에 관한한 더 이상 발견할 수 없는 최종적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엄청난 책에서 완벽한 결론은 고사하고, 어떤 실마리도 단서도 흔적도 감지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일이다. 그러나 책을 처음 접해서, 처음 몇 페이지를 읽은 사람이 계시가 보여주는 결론을 즉시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은 최소한 삼분의 일은 읽어야 이 책에 엄청난 결론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던 평범한 사람이라면, 대체로 삼분의 이는 읽어야만 진리와 삶에서의 결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쁜 일상의 삶 속에서도, 끈질기게 진리를 찾아 영적 순례의 길을 걸었던 많은 진리의 순례자들에게는, 이 책이 주는 엄청난 에너지를 쉽게 느낀다. 그런 분들은 빠르게는 두 달, 길게는 반년 안에 계시가 주는 해답으로 거의 모든 질문과 혼란을 해결한다.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던 자신과 우주와 하느님과의 관계와 현실 삶의 조화를 최종적인 결론과 확신을 주는 참된 진리를 속속들이 받아들인다. 비어있던 몸과 마음에, 하느님의 살아있는 진리가 가득 부어지는 영적 체험을 맛본다.

 

해답을 얻은 사람들은, 결실을 거두기면 된다. 더 이상 혼란과 고통과 절망의 엄청난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아주 가벼운 손길 하나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우주에서 가장 가볍고 작은 진리의 멍에를 지는 것이다. 진리와 사랑이라는 이것은 사실 멍에도 아니다. 그러나 작은 멍에이지면, 무궁무진한 우주의 들판을 가꾸면서, 영광스럽고 찬란한 결실을 거두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지구에서 결실을 얻고, 모론시아와 영 세계를 거쳐 파라다이스 영원의 세계에서 무한하고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이 되겠다는 도전은 하느님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는 선천적인 동물적 본능이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경쟁 사회는 동물의 세계이다. 그런 세계에서 조차, 완전에 대한 소망이나 도전이나 힘이 없으면, 약자임이 발각되어 희생되고, 삶의 아무런 실질적 의미도 성취도 이루지 못하는 패배자로 살다 죽는다. 완전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앉아서 기다리거나, 누군가 이루어주기를 기다리는 자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고, 존재할 수도 없다.

 

이처럼 본능적으로 완전해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우연히 완전하라 말하는 진리의 책을 만날 수가 있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진리는 동물적 본능으로는 보이지 않는 영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계시는 온통 진리로 채워져 있으며, 계시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종교적 의식은 진리 그 자체이다. 신성한 계시는 정신을 깨우고 혼을 새롭게 하여 모든 것을 진보시키는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능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감지할 수 없거나, 그러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면, 계시는 알아들을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92:4.3
진화 종교는 논리적이지 않고 정서적이다. 그것은 가상적인 귀신-영 세계─인간 믿음-반영,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두려움에 의해 자극됨─를 믿는 믿음에 대한 사람의 반응이다. 계시 종교는 실제적인 영적 세계에 의해서 제시된다; 우주적인 신(神)들을 믿고 의존하기에 굶주린 필사자들에 대한 초(超)지능적인 조화우주의 응답이다. 진화 종교는 진리를 찾아서 간접적으로 집단화하는 인간성을 묘사한다; 계시 종교는 바로 그 진리 자체이다.

 

유란시아 계시는 자유롭게 읽는 책이지만, 모두가 그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삶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열매를 맺는 사람은 극소수가 될 것이다. 미래의 빛과 생명의 시대로 문명이 진보할수록, 계시의 영적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겠지만, 적어도 책이 선보인 초기 100년 동안에는, 영의 결실을 얻을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이 책에 영향을 받고, 진리에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는 대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2:7.10
이 시대의 종교적 도전은, 조화우주적 진리와 우주적 아름다움, 그리고 신성한 선(善)의 확대되고 절묘하게 집대성된 현대적 개념들에서 나오는, 새롭고도 매력적인 살아있는 삶의 철학을 과감하게 구축하게 될, 그러한 영적 통찰력을 가진 선견지명이 있고 진취적으로-내다보는 남녀들을 향한 것이다. 그러한 도덕의 새롭고도 정의로운 시각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선한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그리고 인간의 혼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이 되는 그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진리(眞)와 아름다움(美)과 선(善)함은 신성한 실체들이며, 사람이 영적 삶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영원자의 이 최극 본질특성들은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서 점점 더 조화-협동되고 통합될 것이다.

 

이 책을 우연히 또는 계시라는 소문을 듣고 읽는 사람은 앞으로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종교마저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영의 종교를 계시하는 이 책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새로운 흥미거리와 잡담의 주제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이야기를 각색하고, 상상하면서 무의식에 깔린 패배의식을 교묘하게 감추는 도구로 악용 한다. 결국에는 점점 더 자포자기로 빠지게 된다.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면 계시에 담긴 진리는 고사하고, 이 책은 그나마 간직했던 진리마저 파괴하고 혼동을 주는, 흉기가 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책을 멀리하는 것이 안락한 생활에 도움이 된다. 진리에 대한, 그리고 하느님의 실체에 대한 도전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 책은 위험할 수도 있다. 인간의 참되고 신성한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이 책에서 단 하나의 결론도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이 책을 읽고도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을 깨닫지 못한 채, 악하고 어두운 세상을 계속 비난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서 잘 증명되고 있다. 그런 어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이 자신과 항상 동행한다는 가장 근원적인 진리와 결론도 발견할 수 없고, 글자로만 이해하고 되뇔 뿐,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40:5.3
아버지 하느님은 우주들의 우주에 두루 거의 한없는 숫자의 상승하는 창조체들과 그렇게 가까운 개인적 접촉을 이루려 해도 스스로 내려오지 않으며, 올 수도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낮은 창조체들과의 개인적인 접촉에 힘을 잃은 것은 아니다; 너희는 신성한 현존 없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아버지 하느님이 너희와 직접적인 개인성 현시활동으로서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는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 신성한 감시자의 정체성으로 너희 안에 그리고 너희의 것으로 계신다. 그리하여 개인성으로는 그리고 영으로는 너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계시는 아버지가, 개인성 순환회로 속에서 그리고 자신의 필사 아들과 딸들과의 바로 그 혼들과의 내적 교제의 영 접촉 안에서, 너희들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다가와 계신 것이다.

 

모든 질문과 의혹을 해결하고 흔들릴 수없는 결론으로 자신만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하는, 신성을 받아들이고 완전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사람,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탄생되는 겻, 그 살아있는 진리가 이 책에 담겨있는 결론이다. 

댓글목록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결국에는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 분들은 인간이 지닌 자연적 본성과 사회의 질서와 법칙 안에서 균형을 맞추어야만 하기 때문에, 늘 분열된 의식에서 시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참된 것을 깨달을 능력이 없으면, 확고한 삶의 목표를 정할 수가 없고 그때그때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택하게 됩니다.

혼란이 심하면 그 복잡한 혼란을 근원적으로 해결해야만 성취와 도약이라는 삶의 발자취를 남기는 되지요. 그런데도 마음의 괴로움이나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감정적 망각, 도피, 즐거움, 천박한 낙관론, 삶의 부정에 빠지려고 하지요. 아예 세상이 모두 없어지기를 기원하는 종말론자가 되려는 사람도 있고요.

인간은 잠재적으로는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이 있지만, 진리를 이해하는 받아들이는 힘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동물적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그것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판가름이 나는 것이지, 모든 활동이 멈춘 죽음 다음에는 어떤 사실도 새롭게 나타날 수가 없겠지요.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누구나 이 책을 읽고 읽으면 깨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에요. 누구나 공감하면 설득이고 선동이지 계시가 아네요.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내가 모르면 다른 사람도 모를 것이라고 여기는 유아독존적인 사람도 있긴 하지만, 진리를 소화하는 대신, 자아도취의 성벽을 보완하는 돌멩이로 사용하는 분들도 있지요. 시대적 계시라는 말을 듣고, 유란시아라는 이름의 거석을 끌어다가 난공불락의 성을 구축하는 데 사용합니다. 에고와 진리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유란시아 책을 읽으면서도 책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책에서 말하는 진리에 무감각한 죽어있는 사람이라 표현하는 분도 실제로 있습니다.

진실을 가슴으로 알아차리고 실천하면, 진리는 살아있는 생명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자만심에 빠져 자신을 돋보이려는 일념에서 책을 이용하면, 진정성이 사라지고 명성을 높이려고 변명하는 행동들만 나타나게 됩니다.

현실에 지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로와 휴식을 찾아 더 아름답고 견고한 도피성을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진실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인정하기가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들은,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안하기 위하여, 사실을 기꺼이 왜곡하고 진실을 외면 하며. 도피성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성은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그것은 또 다른 감옥입니다. 스스로 들어간 곳에서 스스로 나오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겠지요.

구름가듯님의 댓글

구름가듯 작성일

인터넷에 보면, 유란시아 책에서 소개되는 하보나, 유버사, 네바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 올린 글이 종종 발견됩니다. 내용을 읽어보면, 유란시아에서 새로 소개된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책에서 전하는 계시는 단 한마디도 아는 것이 없으면서,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외계 행성을 등장시키면서 단순한 만화나 신화 수준의 새로운 세상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처럼 허황된 얘기를 장난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유란시아 얘기를 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만, 이성적인 판단도 못하고, 영적 성숙도 거의 안 된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서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겠지요. 그런 분들이 가끔 유란시아 대화방에 들어와서 황당하고 엉뚱한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맞대응할 수준이 아니니, 무시할 수밖에 없겠지요.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이면 거짓된 망상을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겠지요. 예수님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내버려두라"는 명언을 남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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