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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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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트만 작성일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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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에는 누가 봐도 궤변처럼 보이는 주장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책들이 가끔 있는데, "자유의지는 없다"는 책도 아마 그중이 하나일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 있는 존엄성이고, 어려서부터 자유의지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고 배웠을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가는 얘기입니다.

 

이 책은 미국의 생리학자 벤저민 리벳의 실험을 근거로 사람에게 실질적인 자유의지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벤저민의 실험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어떤 결정을 내리던지, 그 이전 몇 초 전에 이미 뇌에서 그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뇌파 특정을 이용한 실험을 통하여 증명한 것이었지요. 인간의 의지는 자유 의지가 아니라, 뇌가 사전에 결정한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는 과장일 뿐이라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실험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분야에서 많은 과학자들아 비슷한 실험장치를 동원하여 같은 실험을 하고 나중에는 외부 자극으로 의식을 만들어내는 장치까지 만들기도 했습니다. 같거나 비슷한 실험 결과를 가지고도, 하느님을 믿는 과학자도 많지만 이 책처럼 반신론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마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인간 마음이 사물이나 현실에 반응하고 어떤 생각을 일으키고 의지로써 판단하는 과정을 7 단계의 마음 순환 회로로 설명하는데, 가장 하급 단계인 직관에서부터, 5 단계까지가 동물과 인간이 공통으로 가지는 반응 작용입니다. 그래서 물리적 환경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은 직관이나 용기나 납득이나 지식이나 조언에서 나오는 판단과 반응은 자유의지 작용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요.

 

6번째와 7번째의 마음 순환 회로인 경배와 지혜의 영은 물리적 현상에서 나오는 반응이 아니고, 이것이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지니 있는 의지의 존엄성이 나타나는 영역인데도, 물질적 현상에서의 반응만을 가지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참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일상의 거의 대부분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직관, 용기, 납득, 지식, 조언의 미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경배와 지혜의 기능이 나타나고 나서 도덕적 판단력이 비로소 가능하다고 합니다.

 

학문에 몰입하여 세상 물정을 모르게 되면, 도덕적 판단력은커녕, 경배와 지예의 마음 순화 회로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인공 지능 로봇에게서 경배와 지혜가 나타날 수가 없듯이, 지능이 뛰어난 것으로 인간으로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유란시아 책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과학적 실험이나 주장은, 단지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동물의 차원에서 지식과 조언의 기능에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이야기 들입니다.

 

적어도 정의와 불의 롤 구분할 수 있는 도덕에 반응할 수 있고, 거기다가 진리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인다면 신성한 자유의지는 물론 이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생명체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덕이 동물과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라서, 도덕은 굳이 영적인 실체에 반응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동물이나 사람이나 진화는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렇게 도덕을 깨닫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마음도 진화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진화하는 마음은 점점 더 큰 도덕과 윤리를 깨달으며 확장되어도 진화를 벗어나 새로운 불멸의 존재로 탄생될 수는 없겠지요. 일생을 살면서 마음의 진화만 일어나고, 내주하고 있는 아버지의 신성한 영이 아무런 역할도 힘도 발휘할 수 없었다면, 참된 영적 열매를 하나도 거두지 못하여 사라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경배와 지혜를 넘어, 도덕으로 살아가도 인간은 될지언정 참된 인간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형편인데, 물리적 현실 세계의 실체와 환경과 자극과 생각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행동을 보고,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유란시아 책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196 :3.22
(2096-1)
도덕은 조절자의 내적 현존에 대한 개인적 실현인, 개인적인 하느님-의식에 꼭 필요한 선재하는 토양이다, 그러나 그러한 도덕은 종교적 체험과 결국 생겨나는 영적 통찰력의 근원은 아니다. 도덕의 본성은 초(超)동물적이다 그러나 영에 종속적이다. 도덕은 의무의 인식, 옳고 그른 실존에 대한 깨달음과 동등하다. 모론시아가 개인성 달성의 영적 영역과 물질 영역사이에서 작용하듯이 도덕의 범주는 동물과 인간 유형의 마음 사이에 개입한다.



 

댓글목록

구름가듯님의 댓글

구름가듯 작성일

반갑습니다. 과학적으로 마음이나 의식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초물리적, 초심리적 현상과 상관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통찰력이 초인간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막상 당사자들은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지요. 오히려 초인간적인 것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영적 실체에 빚을 지고 있다고 책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빚은 갚아야 하는데, 본인이 모르고 있으니 갚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초믈리적 사실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선택이고, 자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는 초물리적 추론도 역시, 자유로운 선택의 여러 갈래 중에서 나오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견은 앞뒤가 안 맞는 역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날으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는 말과 비슷한 언어적 유희이겠지요.

토파즈님의 댓글

토파즈 작성일

과학 철학이 인간과 우주를 설명해도 영원한 생명에 접근할 수 없어요. 나갈 문이 없어서 안에서만 맴도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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