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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종교의 진리와 계시되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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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너킥 작성일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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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과학이 우주 현상을 밝히고 물질과 에너지의 근원을 추적하고 있는 시대에, 무속 신앙에 기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쳐, 초인간적인 힘을 기대하거나 기적을 염원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엄밀하게 본다면 무속신앙은 아니다. 초능력이나 기적을 믿는 그러한 염원은,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초월적 존재와 그러한 세계에 대한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서, 올바른 길로 인도되거나 참된 의지가 있다면 진리를 발견하고 영적 성취를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속이란 초월적 현상들을 온갖 지혜를 발휘하여 인간 나름대로 해석하고, 그에 기대어 현실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서, 동기나, 과정이나, 결과에서나 이기적 욕심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고, 그에 의존하는한 욕망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염원을 구하는 대상이 어떤 명칭이건, 그 행동이 순전히 현실적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초월 세상이나 초인간 존재들을 동원하고 교제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낮은 지능이나 몰상식한 지혜에서 나오는 행동이며, 무속 신앙에 가깝다. 행복을 대가로 형식과 순종을 강요하는 전통 종교에서, 대체로 이러한 무속적 요소가 많다.

 

이성과 영성을 벗어던지고, 육체적 본능이나 감성에 몰입하면서 기적이나 행운을 기대하고 있다면, 현실적 야망에 사로잡힌 피해자가 될 것이다. 욕망이 일시적으로 이루어진다해도, 기대와는 달리 실질적으로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유란시아는 여러 초월적 차원을 새롭게 밝히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 엄청난 운명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진리로서 받아들이기를 기대하며 내려주는 계시이다. 이 계시는 우리의 현실이 모든 찬란하고 영광된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고 있음을 깨우쳐주고 있다. 그러니 이 계시를 현실 행복이나 영광을 달성하는데 이용하고 그런 관점에서 해석하려 한다면, 물질적 욕심에 굴복하여 이성을 잃고 찾아다니는 전형적인 무속이라 볼 수 있다.

 

무속에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최고의 믿음으로 여기는 원시 신앙을 비롯하여, 인간 논리로 하느님과 신의 세계를 해석하며 우리 자신이 초인간 세계의 에너지를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 진리 파괴의 주장까지 있다. 자기가 세상을 구할 엄숙한 사명을 부여받았고 초월 차원에서 그에 필요한 초능력을 부어주었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이 나타나면, 무속은 절정은 이룬다. 이런 주장들에서는 현자들, 하느님의 아들들, 천사들의 실체가 모두 그러한 자신을 설명하고 뒷받침해주는 증거라고 말하는데,당연한 과대망상이자 필요한 궤변이다.

 

진리는 하느님의 뜻과 영광을 확인하고 이를 추구하려는 사람을 그러한 길로 이끄는 유일한 안내자다. 진리를 버리고, 개인의 자기완성을 추구할 때, 그러한 악한 생각을 적극 환영하고 돕는 초인간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 아직도 많다. 루시퍼의 반란에 가담했던 유란시아의 영적 존재들은, 인간에 비한다면, 하느님으로 불릴 정도의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행성에 거주했던 하강하는 초인간들과 전사들을 사람들이 하느님으로 받아들였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만약 진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들 악한 영적 존재와 손을 잡고 협력을 얻는다면, 평범한 인간도 아마도 쉽게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포기한 악한 영들은, 하느님 없이도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쉬지 않고 애쓰고 있다. 그들이 힘을 함께 모을 동조자를 구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진리가 세상에 전파되는 것부터 막으려 할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게 유란시아 계시와 같은 새로운 진리가 꽃을 피우지 못하도록, 정교하고 치밀한 계획과 행동으로 여러모로 방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아주 열성적이고도 유력한 유란시아 신봉자로 행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고, 스스로 그런 방해에 의욕적으로 나서려고 할 것이다.

 

이런 분들은 말, 생각, 행동에서나 삶의 목표에서나, 자신을 드러내거나 진리를 왜곡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순수한 사랑과 자비와 봉사와 친절과 같이, 진리로 여길만한 현실적 태도가 거의 불가능해서, 진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감추려해도, 쉽게 정체가 발각된다. 그럼에도 발각된 사실도 모른 체, 자신의 탁월한 재능에 스스로 최면 걸리게 된다.


하느님의 진리를 포기하면, 어떤 현실도 나르시시즘과 같은 자기연민과 자기중심에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그 때문에,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현실을 판단하는 능력이 낮아진다. 현실이 바뀌거나 끝나면 저절로, 영광과 행복도 같이 끝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현실의 난관이나 절망감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그러한 움츠림을 새로운 도전과 도약의 계기로 삼거나 혹은 포기할 수 없는 미래의 소망을 발견하면서 힘을 쏟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오로지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서 솟아 니오는 신성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안정되고 확실한 전통에 의존하는 것이 편하고 쉽다. 새로운 계시를 읽으면서도, 습관적으로, 진리를 현실적 해석과 물질 세상에서의 기능으로 가두려고 한다. 영원한 운명이 새롭게 펼쳐지고 있음을 읽으면서도, 운명에 대한 의식이나 역할을 거절하고 편하고 무기력한 삶을 정당화하려고 핑곗거리를 찾는다. 영원한 운명의 짐은 너무나 가볍고 부담이 없음에도, 거의 본능적으로 몸과 마음을 움츠린다.

 

유란시아는 영원한 진리와 운명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현실에 대한 거짓된 가르침 중에서, 윤회설이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회설은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만 하는, 자기애적인 절박함에서 나오는 인간의 해석이자 결론이다. 그것이 우주 진리가 될 수없다는 사실은,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문명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헛되고 모순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주적 질서를 접할 수 없었던 원시 시대에는, 가장 완벽하게 현실적 존재를 설명하는 해석이라서, 진리를 모르는 "20세기의 미개인"에게는 여전히 계승될 수밖에 없다.

 

86:4.6
오렌지색 인종은 특별히 윤회와 환생을 믿는 경향이 많았다. 환생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유전적인 현상과 자손들의 특색이 조상을 닮는 현상의 목격으로부터 기원되었다. 조부모(祖父母) 그리고 다른 조상들을 따라서 자녀들의 이름을 짓는 관습은 환생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되었다. 후대의 어떤 종족들은 사람이 세 번 내지 일곱 번 죽는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과(맨션세계들에 관한 아담의 가르침으로부터 잔재된), 계시된 종교의 많은 다른 유물들은, 20세기 미개인들의 다른 면에서의 모순된 교리들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전해진 윤회설은 힌두교와 불교가 근간이지만,  부처님은 불멸의 혼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힌두교의 윤회설을 "단호하게 반대"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여러 불교 종파에서 윤회는 가장 기본적인 교리가 되어 있다.

 

94:2.3
자아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사람, 짐승 또는 초목으로의 끝없는 환생으로 자아의 비진화적인 영속의 두려움으로 확실하게 인도하였다. 그리고 새로 나타나는 일신교가 될 수도 있었던 것에 고정될 수 있는 오염된 신념들 전체 중에서, 어떤 것도 드라비다데칸으로부터 온 윤회에 대한 이 신념─혼들이 다시 태어난다는 교리─처럼 그토록 망쳐놓지 못하였다. 지루하고도 단조로운 반복적인 윤회에 대한 이 신념은, 초기 베다의 신념의 한 부분이었던, 죽음 안에서 해방과 영적 전진을 발견한다는 그들이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던 희망을, 투쟁하는 필사자들로부터 빼앗아갔다.

 

오래된 우리 민속 종교에도 윤회설의 잔재가 있다. 일부 발전된 민족 종교에서는 논리적으로 존립할 수 없는 무속적 해석을 버리고, 새로운 해석으로 영과 혼의 윤회를 만들어내고는 있지만 근거도 출처도 없는 인간 해석이라서, 명칭과 줄거리만 다를 뿐, 허구성이나 하느님의 질서와 사랑을 무시한다는 점에서는 원시 무속의 육도 윤회와 다를 게 거의 없다.

 

하느님의 진리보다, 우선 자기 자신의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숨을 쉴 수 있다면, 어쩔수없이 자기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고, 윤회에서 그 마음을 달래려고 할 것이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윤회에 의존하는 여정은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돌아서지 못할 것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린포체라는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증명되고 있는 사실이 눈 앞에 있으니, 다른 어떤 설명이나 인간의 논리로 그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으니 윤회설은 난공불락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알 수 없는 초월적 현상을 인간의 말과 해석으로 정리하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초월적 현성은 계시로 들려주는 인간 외적인 이야기로 그 이유와 배경을 이해해야만 한다. 수호천사들의 활동은, 린포체에 대한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는 초월적 현상일 것이다.

 

114:7.7
그 예비자들은 기본적인 행성 정보의 보호자들로서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 예비자가 죽음에 임박하였을 경우, 특정한 삶에 관한 자료들이 죽어 가는 그 예비자의 마음으로부터 보다 젊은 후계자에게로 전환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그것은 두 생각 조절자들의 연락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 조절자들은 이 예비 부대들과 관련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다른 방법으로 확실하게 활동한다.

 

린포체를 비롯한 여러 초월적 현상들이 하느님의 우주 질서, 창조와 보살핌과 유지에서 나오는 사랑과 자비의 손길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진리를 모르거나 알면서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찌 되었건 현실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논리적 비약은 기승을 부릴 것이고, 윤회도 포기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이론으로 쓰일 것이다.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현실적 증거와 과학적 사실로 진리를 만들고, 새로 창안하여 자기 만족을 달성하려고 에너지를 쏟는 분들이 많다. 진리의 실천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정의하는데 열성인 분들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과 미래학자들과 종교인들이, 초월적 현상을 빌미로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홀로그램과 다중우주로 설명하며. 윤회설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결과를 가지고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는 진리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수 있다면, 현실 해석의 절박함과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고, 그 자유로움 속에서 계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생각 조절자와의 연결도 가능할 것이다.

 

만약 과거와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려는 의지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있어도, 하느님이 바라는 영원한 운명의 영광스러운 길을 선택하는, 생존자가 될 것이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교회다니는 분들 중에서도 믿음이 약하신 분들은 마음이 답답할 때 점을 보기도하고, 결혼 사주도 본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무속에 빠진 것은 아니고, 의식에 깊이 배어있는 마치 유전자같은 영향이겠지요. 기회가 되어 유란시아 책을 알게 된다면 자연히 없어질 현상이지요.

구름가듯님의 댓글

구름가듯  작성일

유란시아 계시를 믿거나 아니면 기독교나 불교를 믿거나 진리를 알려는 자세만 있다면 윤회설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유란시아에 있는 어떤 종교에서도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하느님의 뜻을 알려는 마음으로 진리를 찾는다면, 어떤 종교에서도 윤회설은 설 땅이 없다는 의미지요.

많은 사람들이 참된 진리,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기 존재성을 드러내려고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어요. 유란시아 책이 전하는 하느님과의 개인적 관계와 절대적 의미가 부여된 개인성의 참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선을 행하고 사랑을 베푼다 해도 결론적으로는 윤회의 망상에 갇혀 자신을 위하고 자기 자신에 만족하는 일생에 헛되이 소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을 오염시키는 신념 중에서 가장 크다고 지적한 것이고요.

윤회사상은 말 그대로 의식의 깊은 저변에 창조와 질서와 개인성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성과 사랑에 의문을 던지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하고 일어나기 보다는 타력에 기대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이라서, 깨달음이나 달성이 신성한 계획에 반대방향이 되는 것이고요. 유란시아 책에서 윤회의 해악이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이 책에서 윤회설의 배경과 진실을  알게 되면 삶은 거짓된 윤회의 길에서 벗어나 진정한 생존의 길로 방향을 바뀌게 되겠지요. 진화 종교에 갇혀있는 분들이 깨우치는 계기가 되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전생을 믿는 분에게 윤회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잘 먹히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힘든 일입니다. 전생은 말 그대로 현생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정체성에 근간이 되는 것인데, 갑자기 정체성을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는 받아들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부모를 모르는 고아가 진정한 정체성이라고 말했을 때. 그런 얘기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체성을 바꾼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필사적인 갈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현님의 댓글

우현  작성일

자유게시판에서 윤회사상과 배타적 하나님 사상을 이유로 지적하면서, 종교 통합을 비관적으로 말하신 분이 계신데 공감이 갑니다. 유란시아를 아직 모르시는 분 같습니다만, 현실을 잘 지적했습니다.

우주 아버지의 이름을 서로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부이겠지만 개신교는 지금까지도 하느님으로 부르는 가톨릭을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거의 이단시하고, 자신들이 정한 명칭으로 불려야 참 진리를 믿는 것으로 말합니다.

윤회사상이나 이름에 무게를 두는 사상이나 정체성에 관한 한 함정에 빠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리를 깨달아 개인성 관계에 비중을 두면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종교 통합도 시작되겠지요.

(독자게시판은 유란시아 본문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곳입니다. 다른 주제들은 자유게시판에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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