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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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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새 작성일1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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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고 선과 악을 구별하면서 스스로 참된 인간으로 성장하는 핵심이 된다. 신성한 계시를 받아들여 참된 삶을 살려는 것은 하느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그래서 참된 것을 추구하거나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이 뒤따라 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신성을 받아들여 삶에서 실천한다는 것이 곧 진-미-선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을 하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하느님의 진리와 유란시아 계시가 아름다움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성한 차원에서는, 진-미-선이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책의 설명을 자칫 오해하여, 물질 세상에서도 진리와 선을 추구하면 미는 저절로 성취되는 것으로 안심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아름다움을 완성하면, 그 쏟아부은 혼 안에, 진리와 선이 함께 들어 있음을 조금은 실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이 참된 것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실감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리고 아름다움이 자기 기쁨과 만족으로 사용되기 쉽다는 점에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유란시아 책에서는 혹시라도, 진-미-선에 대한 안일한 마음으로, 즐거움에 머무는 자기 만족에 빠지지 않도록, 신성한 차원과 물질 차원의 차이가 어떠한 지를 자세하게 계시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어떻게 발견하는지, 그리고 진리와 마찬가지의 하나의 우주적 실체로서 받아들여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요줌 들어,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같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이 남 달리 심하다. 지나치게 외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지탄받기도 한다. 그러나 비실체적인 내면의 추상적인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물질적 조형미에 무덤덤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리적 아름다움은 자연적인 현상이며, 매우 기초적인 단계이기는 하지만 그 또한 신성한 에너지에 반응하는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

 

외적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행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마도 유란시아 책에서 밝히는 참된 아름다움의 실체일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을 정리한  글이 이곳 사이트의 [빛과 생명]-[성장하는 깨달음]에 잘 정리되어 있는데,이 글을 읽으면서, 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현세적 미학이 어떤 한계가 있는지, 진리와 함께 하는 영적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본다.

 

미학에서는 사람의 이목구비를 따지는 황금비율을 시작으로, 균형과 조화와 형태와 배치와 크기와 같은 완벽한 조형미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미학에서의 아름다움은 그저  눈부시게 예쁘다는 표현으로 만족되는 그러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참된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완벽하르 뿐 아니라, 진리와 마천가지로 살아있어여만 한다고 본다. 예쁜 것은 노력만 하면, 인위적으로 과학적으로 얼마든지 창안하고 만들어 낼 수 있고 나름대로 완벽하게 완성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하나의 살아있는 실체로서 생동감을 전해주며 확대될 수 있으려면, 무언가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2:7.12진리는 응집력이 있고, 아름다움은 끌어당기며, 선(善)은 안정을 이룬다. 실체인 이러한 가치들이 개인성 체험 속에서 합동될 때, 그 결과는 지혜에 의해 조건이 갖추어지고 충성에 의해 자격이 갖추어지는 높은 계층의 사랑이다. 모든 우주 교육의 실체적인 목적은 세계들의 고립된 자녀가 그의 확대되는 체험의 더 큰 실체들과 더 나은 합동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실체는 인간 차원에서는 유한하고, 좀 더 높은 그리고 신성한 차원들에서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예쁜 것의 가장 원초적인 기능이 끌어 당김이다. 이 끌어당김의 기능은 유란시아 책에 따르면 생명체가 자기 생존을 위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자연적 기능이다. 한마디로 생명운반자의 디자인이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생물학적인 원초적 본능이다.  아담과 이브가 내려 오기 이전의 인류는, 예쁘다는 감성에 예민하게 이끌리자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자연번식에 필요한 그런 정도의, 동물적 미적 본능에 머물렸던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적 우성과 열성이 목표가 되어야만 했던 아담의 혈통 덕분에,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게 진화되었다고 한다.

 

예쁜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물학적 동기에서 발전된 것이라면, 신성한 아름다움은 그 근원과 기준이 전혀 다르겠지만, 일단은 예쁜 것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쉬운 예로 이성간의 매력을,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바탕을 두면 그것은 생명체의 생물학적인 본능이라서 선택의 시간이 지나면, 아무 가치도 없이 사라진다. 그것은 물질계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미의 추구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동기가 없으면,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깨어날 수 없고, 그 씨앗이 없다면 참된 아름다움의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 다만 그 물질적 단서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성장할, 씨앗을 발견하지 못하면 물리적 아름다움의 추구는 영적 성장에서 오히려 장애물이 될 것이다. 어찌되었건 물리적 실체 없이는 영적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물질적 아름다움에서 진-미-선의 신성한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방법은 각자가 살아가는 분야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아름다움을 한편으로는 우주적 율동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신성한 에너지에서 본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고, 그것으로 활력을 새롭게 나타나는 그러한 율동이라고 볼 수 있다.

 

44:7.2아름다움, 리듬, 그리고 조화는 지적으로 연합된 것이고 영적으로 동족이다. 진실, 사실, 그리고 관계는 지적으로 분리될 수 없고 아름다움의 철학적 개념과 연합되어 있다. 선함, 정의로움, 그리고 공의(公義)는 철학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살아있는 진리 그리고 신성한 아름다움과 영적으로 함께 묶여 있다.

 

참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만들어내고 표현하고 실체를 이루는 것에는 리듬, 조화 그리고 철학적 개념과도 연합되아야 한다면, 우리가 순간적으로 발견하는 예쁘다는 아름다움에서도 이러한 것들이 연합될 수 있어야만 한다. 아름다움은 결코 이성이나 지성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전적으로 마음과 감각의 작용이다. 그럼에도 감각에만 기대어 아름다움을 즐길수만은 없다. 감각을 즐기되, 불멸의 가치가 발견되는 실체로 체험될 수 있다면, 물질적 아름다움에 이끌려 영적 성장을 포기하는 오류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56:10.3너희는 철학을 파악하고, 경배와 사회적 봉사 그리고 개인적인 영적 체험 안에서 어느 정도 신성을 이해한다, 하지만 너희는 너무나 자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조화우주론─를 사람의 조잡한 예술적 노력에 대한 연구에 국한시킨다. 아름다움, 예술은 주로 대조되는 것들에 대한 통일의 문제이다. 다양성은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 필수적이다. 최극의 아름다움, 순수 예술의 절정은 창조주와 창조체라는 조화우주 양 극단의 광대함에 대한 통일의 드라마이다. 사람이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과 하느님이 사람을 발견하는 것─창조체가 창조주와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되는 것─은 최극적으로 아름다운 것의 지고한 달성, 조화우주 예술의 절정에 대한 달성이다.

 

결국 우리가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그것이 황금비율이나 완벽한 조화와 같은 물질 요소로 표현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실재하는 곧 선재하는 조화로운 실체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한 아름다움을, 자신의 뜻과 열정과 신성한 감각으로 다시 우주적으로 통일할 수 있을 때, 물질적 아름다움도 조화우주 예술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네오님의 댓글

네오 작성일

누구나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아름답기를 원하지만, 물리적인 방법 이외에는 제대로 그 방법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아름다움을 보거나 발견하는 능력도 물질적 감각에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라서, 말씀하신 것처럼 초물질 감각이 깨어나기 전에는 힘들겠지요. 그래서 열심히 유란시아 책을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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