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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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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름가듯 작성일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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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유일한 독생자 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낸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시켜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만약 인류의 구원이 목적이었다면, 모든 인류에게 유전된 원죄를 영원히 없애준다는 진리가 예수님의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내신 이, 곧 하느님의 결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리 해석이나 성경한 강연이나 설교를 보면, 하느님의 결정이 아니라 예수님이 스스로 인류를 사랑해서 그렇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성경에서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고, 자신을 보내신 이가 따로 있다고 누누이 설명했는데도,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합니다. 삼위일체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도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겁니다. 대부분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고 말했으니, 예수님이 하느님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지요. 그건 주장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대리자가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변장한 채, 자신을 숨기고 다른 아버지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됩니다.

 

창세기의 창조자 하느님이 예수님과 어떻게 같은지 물어보면, 죄를 없애주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어야하고, 그것이 예수를 통해서 보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닫는 신앙이라고 그냥 믿으라고 강요하듯 합니다. 자신들의 이런 논리를 단단하게 믿으려고, 서로를 설득하고 사랑과 두려움을 주면서 서로를 감시하듯이 신앙을 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진리를 추구한다는 종교인데도, 비논리적이고, 진실도 아닌 억지같은 주장을 하다보니, 성경에서 "내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이성과 지성을 마비시키면서 무조건 믿으려는 심리적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현실감각에서 떨어진 잘못된 진리가 되고 사물을 분간하는 시력도 점점 약화되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생각이 없거나, 모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의식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알 방법이 없으니, 이에 대한 해답이 있을 리 없고, 그러다보니 그런 무조건적인 믿음을 서로 강요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란시아 책이 아니고는, 예수님과 하느님이 어떻게 다른지 장확하게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이 다가갈 영역도 아닙니다.

 

또 다른 기독교의 핵심 신앙이 재림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재림은 구원과 다릅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믿으면, 재림과 관계없이 구원이 그렇게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재림을 믿는다면, 하늘 나라에서 태어나게 하는 하느님의 구원에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에는 사실상 구원은 없다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과 재림을 적당히 섞어서 하나로 설명하는 분도 있지만, 그런 말은 예수님 말씀에도 없음에도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통을 지키려는 종파 내에서는, 상식과 논리와 이성이 무시된 채, 참 진리와도 거리가 먼, 자신들이 해석하고 서로 그렇게 믿기로 하자고 약속하는 왜곡된 믿음이 많습니다. 그렇게 해석에 따라서 구원과 재림에 관한 많은 해석들이 자연적으로 난무할 수밖에 없는데, 자기들끼리 서로 이단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 내막을 자세히 보면, 진리의 오용이나 잘못된 신앙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들의 힘과 믿음이 약화되는 두려움 때문에 이단이라고 분노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유란시아 책은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종교를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일은 물론이고, 우주 아버지와의 관계도 자세히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획과 생각으로 이 땅에 오셨는가를 끝까지 이해해야만 합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의 원래의 신성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이를 알고 있는 계시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를 올바르게 아는 참된 신앙이 필요하고, 신성한 사랑과 진실과 선함에서 구원의 발판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긴 진리이기도 합니다. 유란시아 책에도 나와 있둣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아는 것이 기독교가 인류의 희망이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책에서 예수님의 정체는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설명하는 글 중에서 하나를 살펴봅니다.

 

128:1.10

그렇지만, 그가 육체를 입고 있던 그 모든 나날 동안, 그는 진실로 성스러운 존재였다. 그는 실제적으로 낙원천국 아버지의 한 창조주 아들이었다. 일단 그가 공생애를 시작하였을 때, 뒤이어 일어나는 주권 획득에서의 그의 순전히 필사자로서의 체험이 절차에 따른 완성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하느님아들임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서슴지 않고 이렇게 단호히 선언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나중이며 처음과 끝이다.” 그는 훗날 그에게 붙여졌던 다음과 같은 이름들, 영광의 주님, 우주의 통치자, 모든 창조의 주님 하느님, 이스라엘거룩한 분, 만유의 주님, 우리 주님 우리 하느님, 우리와 함께 하는 하느님, 모든 세계들과 모든 이름들 위에 이름을 가지신 분, 우주 전능자, 이 창조계의 우주 마음,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들을 감추고 계신 분, 만유를 채우시는 그 분의 충만함, 영원한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 만유 이전에 계셨고 만유 속에 계신 , 하늘들과 땅의 창조주, 우주의 유지자, 땅의 모든 것을 심판하는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이, 참 목자, 세상의 해방자,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대장이라는 명칭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표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한다고 해도, 신성을 갖추신 하느님의 아들이나 창조주를 실체적 존재로서 느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신성한 존재가 물질 차원으로 스스로를 낮추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은 신상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순진한 생각입니다. 인간처럼 물질 구조로 이루어진 생명체에서 나오는 생각과 감정으로는, 신성한 존재와 직접 교류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주가 육신으로 현존한 경우에는, 어느정도 창조주를 직접 실체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고, 이것이 필사자 존재가 영원불멸의 창조주를 실체로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합니다. 우주 전체에서 창조주가 필사자로 육신화하는 사건이 이 땅에서만 이루어졌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주의 신성과 절대성은 알 수가 없지만, 그러나 스스로 알파와 오메가임을 자각하셨던 예수님이 인간에게 보여준 신성한 본성의 대부분은, 인간으로서의 실연이였기에 알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가장 대펴적인 것이 그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에게, 이리 저리 쫒기면서 진리를 선포하셨고 조롱과 멸시를 순순히 받아들이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무지와 죄악을 용서하기 위한 죽음이라고 믿는다면, 예수님이 선포하신 진리와 창조주의 절대적 신성은, 우리의 의식과 믿음 안에 한 조각도 남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유란시아애서 인간으로 살아갈 때, 천상의 존재들이 그가 자신들의 창조자이자 주권자임을 알고,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유란시아를 주시하면서 예수님과 동행하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자랑으로 여기거나 막연한 감상에 빠지는 것으로 끝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128:1.13

세례를 받은 뒤에도, 그는 자기를 신실하게 믿는 자들과 기꺼이 자기를 따르려는 자들에게 자신을 경배하도록 허락할만한 그 어떤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가 가난과 씨름하고 그의 가족의 생활의 필수품을 마련하려고 손으로 애써 일하는 동안에도, 자신이 하느님아들이었다는 그의 자각은 커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늘들과 그리고 지금 자신이 인간 실재로서 살아가는 바로 이 땅을 만든 조물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그리고 바라보는 우주에 두루 천상의 존재들로 이루어진 무리들도 마찬가지로, 나사렛의 이 사람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주권자이며 창조주-아버지임을 알고 있었다. 심오한 긴장감이 이들 여러 해 동안 네바돈 우주를 휩쓸고 있었다; 모든 천상의 눈들이 유란시아팔레스타인에 줄곧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성경에도 모든 답은 들어 있습니다. 다만 여기저기 조각으로 분산되어 있고, 충돌되는 말이 너무 많이 중간에 섞여 있어서,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확실하지가 않을 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네가 어찌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분명하게 따로 계시다는 점을 밝힌 것도 그것이고요.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입맛대로 해석하면서 성경이 원래 모습마저 잃어가고는 있었지만,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도록 애쓰는 분도 있어서, 이 분들이 간혹 이단을 가려내곤 하지요. 문제는 성경을 훼손한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 세속적이어서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간혹 영적 편견과 교묘한 자만에서 그런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공허한 외침이 되곤 하지요.

유란시아가 등장하였으니, 이제는 더 이상 기독교에서는 이단 논쟁이 아무 의미도 가치도 근거로 사라진 셈입니다. 이제는 기독교에서도 유란시아에서 밝히는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서서히 많아지다가 언젠가는 폭발적으로 새 계시가 온 세상을 휩쓸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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