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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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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새 작성일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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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생명에 절대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외부 자료 게시판에 "사랑과 감사"의 제목으로 소개된 물에 관한 동영상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와 삶의 목적이 저절로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의 역할이나 성분이나 물리적 화학적 작용들도 자세히 밝혀지고 있지만, 그러나 생명 유지에 왜 물이 없으면 안 되는지 그 근원적인 이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기능적인 작용에서는 혈액과 체액의 근원이고 만물을 녹이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니, 실질적인 현상을 가지고 생명 유지에 필수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산소와 수소의 결합이라는 물이 생명에 끼치는 본질적 영향이 무엇인지, 물의 모양이나 특성 자체가 변화되는 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원인과 목적은 알 수 없다.  

 

12:9.4기술적인 분석은 어떤 사람 또는 사물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타낼 수 없다. 예를 들자면: 물은 불을 끄는 데에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물이 불을 끌 것이라는 사실은 일상적 체험의 결과이지만, 물에 대한 어떤 분석도 그러한 특성을 밝히는 데에 이용될 수 없었다. 분석은 그 물이 수소와 산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결정하며; 이 요소들에 대한 더 깊은 연구는 산소가 연소를 실제적으로 도와주고 수소는 스스로 자유롭게 타게 될 것을 알려준다.

   

현미경으로 살펴 본 여러 형태의 물 분자의 모습에서 보듯이, 물의 물리적이나 화학적 성분으로 기능의 우열을 판단할 수 없다면, 유란시아에서 설명하는 지적 생명체의 창조나 진화에서 물이 눈에 안 보이는 어떤 우열을 가르는 결정적 원인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과 운명이, 우선은 혼에 의하여 불멸의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고, 혼이 육체 안에서 마음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고, 마음에 의해 따라 물 분자의 형상이 바뀌고 있다면, 혼의 탄생은 물 분자의 형상, 곧 마음 작용에서 비롯되는 어떤 에너지에 따라서, 진-미-선에 대한 성취와 접근이 사실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동영상을 보면 사랑이나 진미선과 관련된 마음에서 물을 대하면,  물 분자는 아름다운 결정체로 모양이 바뀌고, 같은 물이지만 추하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로 물을 대하면, 그  결정이 파손되거나 분열된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험에서는 아름답게 혹은 추하게 변하는 현상만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 것인지,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주 시공간의 물리적 실체의 원형틀이 낙원천국의 실체의 시공간 그림자'라는 유란시아 계시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현상과 변화가 실체 본질과 관련되는, 어떤 우주적 진리이자 당연한 법칙으로 해석될 수 있다. 

  

2:7.11모든─물질적, 철학적, 또는 영적─진리는 아름다운 동시에 선하다. 모든─물질적 예술 또는 영적 대칭─실체적 아름다움은 참된 동시에 선하다. 모든─개인적 도덕성, 사회적 공평성, 또는 신성한 사명활동, 그 어떤 것이든지─진정한 선(善)은 똑같이 참되고 아름답다. 건강, 건전함 그리고 행복은, 인간 체험 안에서 혼합되는 것으로서의 그러한,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의 집대성이다. 효과를 이루는 삶의 그와 같은 차원들은 에너지 체계들, 관념 체계들, 그리고 영 체계들의 통합을 통하여 두루 나온다.

  

물이 생명 유지에 근원이라는 점에서, 물 분자의 모습이 아름답게 혹은 파괴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물이 신체의 건강은 물론 의식의 성장과 영적 상승을 가능하도록 만들거나 혹은 파괴나 침체에 빠지도록 하는 어떤 에너지 체계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 에너지 장은 마음이나 생각으로 시작되어 나타나고 다시 되돌려 영향을 끼칠 것이다.

 

실험에서 보듯이, 물 분자의 아름다움이나 추한 모습은 전적으로 마음과 의지에서 비롯되고 있다. 개인의 의지와 마음 상태에 따라서, 무생물은 물론이고 상대방이나 주변의 에너지 장을 창조적이고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고. 아니면 파괴적이고 퇴행적으로 만들 수 있다. 눈에 안 보이는 이러한 우주 원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원리를 사실이 아니 단순한 깨달음이나 믿음으로 여기기 때문에 제대로 체험할 수 없는 것이다. 

 

물 분자의 형상이 바뀌는 것처럼, 마음에 따라 물리적 에너지 장이 변화하는 현상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현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설혹 있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삶의 목적은 '내가 완전하듯 너희도 완전하라'는 우주 아버지의 신성한 명령을 기꺼운 마음으로 달성하는 것이다.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신성을 하나씩 하나씩 체험적 실체로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이 개인성에서는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유란시아 계시를 아는 사람이 선택하고 도전해야하는 참된 삶이다. 

 

이들 원리에서 본다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나 단체가, 사랑과 자비 그리고 진-미-선을 위한 새로운 도전과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마음과 의지로, 마치 물 분자에 이야기를 하듯 현재의 분위기를 채우고 있다면, 그 안에 머무르는 모든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과 영적 건강이 더욱 새롭고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잠재되어 있던 신성한 의식이 깨어날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어떤 시공간 분위기가, 분노와 비난과 저주와 욕설과 원한이 표현되어 있고, 개인과 집단의 이기적 탐욕에서 나오는 마음과 생각들이 분위기를 채우고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즐겁고 흥겨운 장소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개인과 집단의 육체적 건강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이나 영적 잠재력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순한 가장이 아니라, 실험에서 보듯 증명되는 움직일 수 없는 우주적 진실이다. 

 

사실, 스트레스의 해소와 같이 억압된 감정을 시원하게 분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분노와 비난과 같은, 압력에서의 탈출 행위이다.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면서 상대적인 즐거운 감상을 맛보기도 한다. 동영상 실험에서 보여준 미움이나 욕설이나 비난은 마음속에 잠재된 부정적인 생각을, 억압된 감정으로 일으킨 다음, 그것을 파괴하는 감정 에너지로 분출 행위이다. 파괴 에너지로 기능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러한 파괴적인 마음 행위는, 즉시 전체 에너지 장을 파괴적인 추한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그 파괴적 분위기는 주변 사람을 변화시켜, 다시 증폭된 에너지로 개인의 모든 창조적 신성을  파괴하게 된다. 그에 대한 대가는 짧은 순간 느끼는 상대적인 상쾌함인데, 이것마저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억압된 감정을 일으킨 다음에 맛보게 만드는 일시적인 정신 심리적 교란이자 사기행위이다. 

 

어찌되었건 어떤 창조적 혹은 파괴적 에너지 장에 일단, 조금이라도 생각이나 감정이나 마음으로 공감하거나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에 대한 에너지는 순식간에 증폭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다만 창조적 에너지는 우주적 실체이지만, 파괴적 에너지는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유란시아 책은 말하고 있다. 

 

더욱 새롭고 더욱 아름답고 더욱 참된, 그러한 어떤 실체에 관해 열정적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을 쏟고,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 에너지 장은 감추어진 진-미-선을 새로운 실체로 드려내려는 신성하고도 창조적인 에너지가 나타나는 것이며, 이것이 증폭되어 모든 구성원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을 한 단계 높일 것이다. 

 

반대로 개인이나 집단이, 억압된 자기감정을 폭발시키는 어떤 일시적인 해방감을 즐기기 위해 서로 공감하면서, 비난과 분노와 욕설과 원망을 마구 쏟아내며 즐기고 있다면, 그 증폭된 에너지는 구성원 모두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파괴적 에너지로 몸과 마음과 영적 건강을 해칠 것이다. 그리고 그 증폭된 에너지는 그동안 성취한 진미선의 실체마저도 예리한 지적, 논리적, 감정적 칼날로 조각을 내면서, 우주 공간의 먼지로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참된 진리는 거짓을 물리치고 파괴하면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짓 안에서도 전혀 새롭고 아름다운 참된 실체를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하느님의 신성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느님의 신성을 지닐 능력이 없다. 그래서 거짓이 난무하는 파괴적인 에너지 장에서 실체를 발견하기보다는, 거짓인지 진실인지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는 영역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이나 결심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인 즐거움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고, 창조적 에너지도 필요하다. 

 

용기는 개인의 의지력이지만, 창조적 에너지는 하느님의 손길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내주하는 아버지의 신성'과 '매 길목마다 이끌어주는 진리의 영'과 우리는 '돌보고 있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다. 

 

물의 모습이 변모하듯, 개인을 변모시키고 사회를 변모시키고 세상을 변모시킬 수 있는 마음과 의지와 생각을 쏟아내어야 한다. 그래야 그 증폭된 에너지로 모든 것이 함께, 변모가 이루어질 수 있다.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개인과 세상이 변하는 것은, 단순한 가상이나 믿음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수질이 염려되어 비싼 물을 사 먹는데, 막상 물리적 성분 보다는 정신적 에너지가 건강한 물을 만드네요. 물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동영상을 보면 긍정적인 마음이 분자 구조도 바꾸지만, 실제로 물의 미네랄 성분도 변하고 만드니, 아마 정신 세계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네요.

아무리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해도, 부정적인 에너지가 깔려있는 환경에서 지내다보면 의식 상승은 기대하기가 어렵겠지요. 진리를 깨우치는 의식의 전환없이는 그곳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겠지요.

사람들의 부정적인 생각이 전혀 미치지 않는 깊은 산골의 물이 몸과 마음과 의식을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물 맛이 좋은 것같습니다.

코너킥님의 댓글

코너킥 작성일

과학의 힘으로 새롭게 밝혀지는 자연의 법칙을 보면, 점점 더 광대하고 심오한 우주 모습이 그려집니다. 유명한 과학자가 우아한 우주라는 책을 낸 적이 있었지요. 인간의 힘으로 우주 신비를 정복할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의식이 점점 확장되고 과학적 사실이 마음과 더불어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고 나중에는 생각이나 영 의식과도 그 의미가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빛과 생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과정이겠지요.

사트바님의 댓글

사트바 작성일

하느님이 만드신 우주에 물질, 마음 그리고 영 에너지가 각각 있다고 합니다. 아직은 인간 능력의 한계로 자세하게 그 관계를 이해시키거나 밝힐 수는 없지만, 이들 에너지는 물질이나 마음이나 영이 서로 서로 실질적으로 불가분의 관계 안에서 역동하고 있는 것이지요. 과학적 탐구가 점점 깊어지면서,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이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지요.

전통 기독교는 그 동안 믿음만을 강조해서인지,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이들 에너지들의 연관성을 논리와 이치로 설명하거나 이해할 진리적 근거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란시아 책의 가르침이,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에도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불경에는 에너지 현상을 해석하는 진리의 가르침이 많이 있습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우주 만물을 한꺼번에 정리하려는 무모함으로 보는 분도 있고요.

대표 경전 중에 하나인 금강경에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는 유명한 법문이 있는데, 풀이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형상이 있으니, 이러한 것들은 죄다 잊힐 수 있는 공허한 것이다, 만약에 이런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볼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곹 여래를 보는 것이다."라는 의미 입니다.

불교식 해석과 물 분자의 변화를 생각하면, 물 자체에 정해진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마음에 따라서 환상적이고 창조적인 형상도 나타나고, 혹은 추악하고 파괴적인 형상도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요. 동영상 실험이 불경 진리를 증명한다고 좋아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물리 에너지나 천체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중에는, 불교 철학에 심취하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금강경의 의미를 확대해 본다면, 물 분자는 원래 청정한 모습 그대로 아무 형상이 없기 때문에, 마음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여 형상을 만들고, 그 형상있는 물을 먹고 마시는 까닭에, 청정한 몸은 물에 담긴 마음으로 변화되고, 그 변화된 몸과 마음이 다시 물의 형상을 바꾸면서 계속 반복되지요.

물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건, 본래의 청정함을 항상 활용할 수 있다면, 물이나 몸이나 본래의 바탕 위에 아름다운 형상만을 받아들여, 새롭게 창조하며 전진할 수 있습니다. 청정함에 대한 믿음과 수행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흔들리지 않을 때, 몸과 마음과 의식의 상승은 날개를 펼칠 것입니다.

우현님의 댓글

우현댓글의 댓글 작성일

금강경의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라'는 말씀은 상징적인 말인지, 진짜로 모든 실체를 실제로 없는 것으로 여기라는 말씀인지요. 불교도 경전에만 의존한다면, 마찬가지로 오해가 많을 것 같습니다. 여러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트바님의 댓글

사트바댓글의 댓글 작성일

상징적인 말이 아니고 깨우침을 얻으면 법안이 열리는데 그 법안으로 형상이 아닌 본질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공의 진리와 더불어 불자들이 성취하려는 목표입니다만, 유란시아 책을 통하여 새롭게 눈을 뜰 수 있어야만 하겠지요. 말씀하신대로 지금까지의 경전 해석으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책에서 지적하는데, 이 말을 이해하기까지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쉽지도 않습니다.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물질이지만, 특별히 생명수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이렇게 형태가 바뀌는 물의 특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정수기 물이나 생수를 사 먹고 있지요. 청결하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자신들의 생수는 살아있는 물이라고 선전하기도 하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 수돗물이나 정수기 물은 죽은 물이라는 말인가 하는 은근한 반발심이 들기도 하고요.

예수님이 진리의 말씀과 진리의 영을 생명수라고 말씀하신 적이 많았는데, 죽어있는 물에 대비되는 "살아있는" 물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살아나게 만드는" 물이라는 의미이지요. 예수님이 생명수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징적인 비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깨달아야만 하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실험처럼 물의 형태가 변하고, 그것이 몸에 영향을 끼친다면 육체 기능이 "살아나도록" 도움을 준다고 봐야겠지요. 진리의 영과 연관되는 단어나 이야기로 물의 형태가 변한다면 그것은 육체와 정신 모두를 살아나도록 만드는 어떤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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