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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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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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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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자녀들의 물질적 마음은, 영원 속에 계신 아버지를 마음에 그려보는 것에 도달하기가 충분하다. 우리는 어떤 자녀든지 처음에 자녀-부모 상황의 관계들을 숙지함으로써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 개념을 하나의 전체로써 가족을 포옹하기까지 확대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실체로 가장 잘 연결시킬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 후에 그 자녀의 성숙되는 마음은 가족 관계의 개념을, 공동체, 종족 그리고 세계에 대한 관계성으로, 그 다음에는 우주, 초우주, 그리고 심지어는 우주들의 우주에 대한 것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8:1.11]

어린아이들이 대개 하나씩 태어나고, 여러 명이 태어나는 일은 예외적이며, 가족생활은 모든 유형의 행성들에서 상당히 일정하다. 성(性) 동등성이 진보된 모든 세계들에 보급되어 있으며; 남성과 여성은 마음 자질과 영적 지위에 있어서 동일하다. 우리는 행성을 하나의 성이 다른 성을 압제하기를 추구하는 한, 야만상태로부터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창조체 체험의 이러한 특징은 물질아들과 딸의 도착 이후에 항상 크게 개선된다. [49:4.4]

큰 가족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심각한 그릇된 행위를 저지른 자기 자녀들 중 하나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품행이 옳지 못한 이 자식에게 자비를 확장시키기 위해 행실이 바른 다른 모든 자녀들에 대해서도 일시적으로 어려운 일을 시키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한 결국 생겨나는 것들은 필연적이며; 그러한 모험은 사랑스러운 부모를 갖게 되는 그리고 가족 집단의 어떤 구성원이 되는 실체 상황과 분리될 수 없다. 한 가족의 각 구성원은 다른 모든 구성원의 의로운 행위성에 의해 유익을 얻으며; 마찬가지로 각 구성원은 다른 모든 구성원의 잘못된 행위성으로 인한 직접적 시간-영향들을 겪는다. 가족들, 집단들, 종족들, 세계들, 체계들, 별자리들, 그리고 우주들은 개별성을 소유하는 연합의 관계들이며; 그러므로 크든지 작든지 그러한 모든 집단의 각 구성원은 관계되는 집단의 다른 모든 구성원의 옳은 행위와 그릇된 행위의 영향을 받는다. [54:6.3]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가족의 일원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 가족 교육단련을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3:2.9]

 

이들 뛰어난 세계에서는 자녀를 잉태하는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 한 가족에서 자녀들의 나이 차이가 너무 나는 것은 좋지 않다. 서로 나이가 비슷할 때, 자녀들은 자신들의 서로간의 훈련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세계에서는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의 통달에서 다양한 성취의 진보하는 권역과 분야에서 격렬한 분투의 경쟁체계에 따라 아낌없이 훈련된다. 영화롭게 된 그러한 구체들이 충분한 악, 실제와 그리고 잠재를 내보이는 것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오히려 진리와 실수, 선(善)과 악, 죄와 정의(正義) 사이에서 선택의 동기가 되되는 것들이다. [55:3.10]

 

문명사회 속에서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가치 있는 것들 거의 대부분은 가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가정은 평화로운 집단을 이루는 데 있어서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었는데, 남성과 여성은 자신들의 반목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를 배우면서 동시에 자기 자녀들에게 평화를 추구하도록 가르쳤다. [68:2.8]

 

가족 개념의 성장은 사냥꾼의 방랑과 불안정한 생활과 양립할 수 없다. [52:2.8]

 

진화 안에서, 결혼의 기능은 단순히 개인적 행복의 실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종족 보존을 위한 보험 이었다; 자아-유지와 자아-영속은 가정의 실제적인 목적이었다. 자아-만족은 성(性)적 연합을 보장하는 격려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자연본성은 생존하는 것을 요구하지만, 문명의 기법이 결혼의 즐거움과 가정생활의 만족이 증가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다. [68:2.9]

 

가족의 크기는 생활 기준에 의해서 늘 영향을 받아왔다. 생활 기준이 높아질수록, 가족의 크기는 고정된 상태 또는 점진적으로 소멸될 때까지 점점 줄어든다. [68:6.6]

 

각 가정의 평균 자녀 숫자는 다섯이며, 그들은 충만하게 부모의 조정을 받게 되어 있는데, 부모들 중의 어느 한 쪽 또는 둘 모두가 사망한 경우에는 가정 재판소에 의해서 지정되는 후원자의 조정을 받게 된다. 어떤 가족이든지 부모가 둘 모두 없는 고아의 후원자가 되는 상급(賞給)을 최고의 명예로 간주한다. 경쟁적인 시험이 부모들에게 시행되고, 최고의 부모 자격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명된 사람들의 가정에 고아가 맡겨진다.
 
모든 성교육(性敎育)은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 또는 법적인 수호자들에 의해 실시된다. 도덕 교육은 학교 실습실에서 방과 후 시간 동안에 선생들에 의해서 제공되지만, 종교적인 훈련은 그렇지 않고, 배타적인 부모들의 특권으로 간주되며, 종교는 가정생활에서의 하나의 집대성하는 부분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들의 철학 중에, 종교는 하느님을 알고자하는 분투와 동료에 대한 봉사를 통하여 자기 동료에 대한 사랑을 구현하려는 것이지만, 이것이 이 행성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종교 상태의 전형적인 것은 아니다. 이 들 국민에게는 종교가 전적으로 가족 문제이기 때문에, 종교적 모임을 위하여 특별히 마련된 공공장소는 없다. [72:3.1]
 
조상 숭상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러한 태도가 가족에게 미치는 유용성이다. 중국 문명의 놀랄만한 안정성과 지속성은 최고의 상태로 화합된 가족의 결과인데, 왜냐하면 문명은 가족의 효과적인 활동에 직접적으로 의존되기 때문이며; 중국에 있어서의 가족은 사회적 중요성을 달성하였고, 심지어는 종교적인 의의(意義)를 성취하였는데, 다른 민족들이 이것을 시도한 경우는 거의 없다. [79:8.9]
 
백색 인종들의 기계적인 발전과 종교적인 발전이 하나의 높은 체제를 이룩하고는 있지만, 가족의 충성심이나 집단적 윤리 또는 개인적 도덕성에 있어서는 중국인보다 뛰어난 적이 없었다. [79:8.12]
 
종교적인, 사회적인, 그리고 교육적인 관습들은 모두 문화적 문명의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것들인 반면, 가정은 문명을 일으키는 주인이다. 어린아이는 기본적인 생활의 대부분을 자기 가족과 이웃들로부터 배운다. [82:0.2]

 

family2.jpg 결혼은 여러 번 위험한 고비를 넘겼으며, 결혼에 관한 사회관례가 지속된 것은 주로 재산과 종교 때문이었지만, 결혼과 그 결과에 의한 가족을 언제까지나 유지시키는 실제적인 영향은, 그들이 가장 원시적인 야만인이든지 또는 가장 문명화 된 필사자든지, 남자들과 여자들이 서로 상대방 없이는 결코 살 수가 없다는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생물학적 사실이었다.

결혼으로부터 발생되는 가족 그 자체는 재산 사회관례와 함께 결혼 제도를 안정시킨 요소이다. 결혼을 안정시킨 다른 유력한 요소들은 자존심, 허영심, 기사도(騎士道), 의무, 그리고 종교적인 신념 등이 있다. 그러나 결혼이 높은 곳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도 있고 인정을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가족은 명백하게 인간적인 제도, 진화적인 발전의 결과이다. 결혼은 사회의 제도이며, 교회가 다룰 영역이 아니다. 종교가 그것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점적으로 그것을 규제하고 조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83:0.2]
지나온 모든 시대에서 결혼에 대한 실제적 시험은, 모든 가정생활에서 피해질 수 없는 지속적인 친밀성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고 허영심과 자기를 충분히 만족시키도록 교육받은, 마음대로 행동하고 버릇없는 두 젊은이에게는,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일─자아-양보, 타협, 헌신, 자녀 육성에 이타적으로 전념하는 것─에서 크게 성공하리라는 기대를 거의 가질 수 없다. [83:7.6]
결혼은 언제나 현세적인 이상향에 대한 사람의 최극의 꿈이었으며 현재도 여전히 그렇다. 비록 이러한 꿈이 전반적으로 실현되는 일은 드물지만, 그것은 영광스러운 이상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해 더 큰 분투로 전진하도록 인류를 항상 불러들이는 것으로서 지속된다. 그러나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가정생활의 연합에 따른 고된 요구사항들에 빠지기 전에 결혼의 실체에 관한 어떤 것들을 배워야만 한다; 젊은이다운 이상화는 어느 정도의 혼전(婚前) 환멸감으로 조절되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결혼에 대한 젊은이들의 이상화가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데; 그러한 꿈들은 가정생활의 장래 목표를 그려보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만약에 그것이 결혼과 그 뒤에 이어지는 가정생활이 실제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의 실현에 대하여 둔감하게 되지만 않는다면, 자극을 주는 것인 동시에 유익한 것이다. 
 
결혼에 대한 이상(理想)들은 최근에 들어서 크게 진보하였다; 일부 민족들 중에는 여자가 그 배우자와 실제적으로 동등한 권한을 누리고 있다. 가정은, 최소한 개념적으로는, 성적(性的)인 성실성과 함께, 후손들을 기르기 위한 충실한 협력체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다 새로운 형태의 결혼이라 해도, 모든 개인성과 개별존재성에서의 쌍방 간의 독점권을 부여할 만큼 극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결혼은 개별존재적인 이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진화하는 사회적 협동체이며, 현재의 사회관례 아래에서 존재하고 기능하며, 금기사항들에 의해 규제되고, 사회의 법과 규칙에 의해서 시행된다. [83:8.6] 
 
짝을 짓는 일은 변화하는 자아-만족의 정도에 따른 순수한 자아-영속의 행동이며; 가정을 이룩하는 결혼은 주로 자아-유지의 문제이며, 그것은 사회의 진화를 내포한다. 사회 자체는 가족 단위들이 집합된 기구이다. 개별존재들은 행성에서의 요소들로서 매우 일시적이다─오직 가족들만이 사회 진화에 있어서 계속 존재하는 대리자이다. 가정은 문화와 지식의 강이 한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흘러가는 통로이다. [84:0.2] 
 
모계-가정은 유목민 집단 속에서의 집단적 결혼 단계로부터 일부다처제와 일부일처제의 부계(父系)-가정들에 해당하는 후대의 개선된 가정생활의 단계로 옮아가는 데 있어서 유일하게 가능하였던 과도기적 형태였다. 모계-가정은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이었으며; 부계-가정은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정치적이었다. 북아메리카 적색 인종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던 모계-가정은 이로쿼이족이 참된 국가 형태를 이루지 못하게 만든 주요 이유들 중의 하나였다.

 

모계-가정으로부터 부계-가정으로의 엄청난 변화는, 인간 종족에 의해서 이제까지 수행되었던 가장 급진적인 그리고 완벽하게 180도 방향이 전환되는 조절들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변화는 즉시 더 많은 사교적인 표현과 증진된 가정적 모험을 유도해 내었다. [84:2.2]

 

결혼은 모든 인간적 제도들의 모체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가정의 설립과 유지를 직접적으로 이룩하기 때문이며, 가정은 사회의 구조적인 기초이기 때문이다. 가정은 자아-유지 기능구조에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문명의 사회관례 아래에서 종족을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동시에, 아주 만족스러운 어떤 형태의 자아-만족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공한다. 가정은 사람이 이룩한 가장 순수한 인간적 업적인데,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관계의 진화를 일으키며, 그것을 남편과 아내라는 사회적 관계와 병합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 짝을 이루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고, 자녀들은 자연적인 결과이며, 그리하여 가정은 자동적으로 실재하게 된다. 종족 또는 국가의 가정들이 있는 것처럼, 그것의 사회도 존재한다. 유대 민족들과 중국 민족들의 뿌리 깊은 문화적 안정성은 그들의 가정 집단들의 위력으로부터 나온다.

 

자녀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여자의 본능은 결혼과 원시적인 가정생활을 증진시키는 일에 여자로 하여금 흥미를 갖는 집단이 되도록 협력하였다. 남자는 후대의 사회관례들과 사회적 풍습들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가정을 이루게 되었을 뿐이며; 결혼과 가정을 설립하는 일에 흥미를 갖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그것은 성(性) 행동이 그에게 생물학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84:6.8]

 

결혼은, 자녀들과 그에 따르는 가정생활과 함께, 인간 자연본성에서 가장 고상한 잠재를 자극하는 동시에, 필사자 개인성에서의 이들 자극적인 속성들을 표현하는 이상적인 통로를 제공한다. 가족은 인간 종족들의 생물학적 영속을 제공한다. 가정은, 핏줄로 이어진 형제신분의 윤리가, 자라나는 자녀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자연스런 사회 무대이다. 가정은, 모든 사람들 사이의 형제신분을 실현시키는 데 매우 근본적인 요소인 인내와 애타심과 관용과 용서에 대한 수업을 부모들과 자녀들이 배울 수 있는 형제우애관계의 기본 단위이다.

 

만일 문명화된 종족들이 앤다이트들의 가정-협의체 관습을 향하여 더욱 일반적으로 되돌아간다면, 인간 사회는 엄청나게 개선될 것이다. 그들은 가부장적 또는 독재적인 형태의 가족 체제를 유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매우 친밀하였고 협조적이었는데, 가정의 모든 일들에 대한 모든 제안과 규정을 자유롭게 그리고 솔직하게 토의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통치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이상적으로 형제우애관계를 가졌다.

 

family3.jpg 이상적인 가정에 있어서 자식으로서의 애정과 어버이의 애정은 형제우애에서의 헌신에 의해서 둘 모두 확대되었다.

가정생활은 참된 도덕의 선조, 의무에 대한 충성심 인식의 조상이다. 가정생활의 강제적인 연합은 다양한 다른 개인성들에게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제성을 통하여 개인성을 안정시키고 그것이 자라도록 자극을 준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참된 가정─훌륭한 가정─은 창조주의 자기 자녀에 대한 태도를 어버이의 후대 창조자들에게 현시하는 동시에, 그러한 참된 부모들은 모든 우주적 자녀들에 대한 낙원천국 부모의 사랑을 점점 더 높게 보여주는 긴 과정의 첫 단계를 자기 자녀들에게 나타낸다.

가정생활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자아-만족, 쾌락에 대한 현대적인 열광의 물결이 위협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1차적인 유익은 경제적인 것이었고; 성적 이끌림은 2차적인 것이 되곤 하였다. 자아-유지에 기초를 둔 결혼은, 자아-영속을 이룩하였고, 자아-만족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형태들 중의 하나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삶을 위한 큰 동기들 세 가지 모두를 포옹하는 인간 사회의 유일한 제도이다.

기원적으로, 재산은 자아-유지의 기본 제도였던 반면, 결혼은 자아-영속의 독특한 제도로서 가능하였다. 흡족한 음식과 놀이 그리고 유머는, 주기적인 성적 탐닉과 함께 자아-만족의 수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하는 사회관례가 자아-만족에 대한 어떤 뚜렷한 제도를 형성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 제도가 이러한 쾌락 추구로 너무나 완벽하게 물들어 있는 것은, 만족스러운 기쁨을 줄 수 있는 전문화된 기법을 진화시키지 못한 이러한 실패에 기인한다. 재산 축적은 모든 형태의 자아-만족을 증대시키기 위한 도구가 되고 있는 반면, 결혼은 오직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만 간주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종, 널리 퍼진 이러한 즐거움에 대한 열광이 이제는, 가족생활의 사회적 진화 제도인, 가정을 겨냥해 오는 가장 큰 위협을 이루고 있다. [84:7.28]

 

사회적인 지도력은 영적 통찰력에 의해 변환되며; 종교는 모든 집단적 활동들로 하여금 그들의 참된 목표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막아준다. 어린이들과 더불어, 종교는 가정생활의 결합을 이룩하는 위대한 역할을 하는데, 생생하고도 성장하는 신앙이 그렇게 한다. 가정생활은 자녀들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종교 없이 유지될 수는 있지만 그러한 부족함은 긴밀한 이 인간 연합체의 어려움들을 엄청나게 증가시킨다. 20세기의 초기에는 수십 년 동안 가정생활이 개인적 종교 체험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고난을 당하였는데 그 고난은 옛날의 종교적 충성으로부터, 창발하는 새로운 의미들과 가치들로의 전환에 따른 타락으로 인한 것이었다. [99:4.2]

 

예수의 생활철학─여기서뿐만 아니라 나중에도─에서 영구적인 최고의 중심은 가족이었다. 그는 가족을 기반으로 하여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셨으며, 한편으로는 조상들을 과잉 숭배하는 유대인의 전통을 고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가정생활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상의 의무라고 하였지만, 가족 관계가 신앙적 의무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또한 분명하게 밝히셨다. 그는 가족이 현세적인 관습이고, 죽음 이후에는 적용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셨다. 예수는 자신의 가족이 아버지의 뜻과 충돌이 되었을 때, 자신의 가족을 포기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새롭고도 폭넓은 형제신분─하느님의 아들들─을 가르치셨다. 예수 시대의 팔레스타인과 로마제국 전역에서는 이혼이 성행하고 있었다. 예수는 결혼과 이혼에 대한 법을 규정하기를 거듭 거부하였지만,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은 대부분 이혼에 관한 뚜렷한 의견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요한 마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신약 성서의 저자들이 이혼에 대해 더욱 엄격하고 진보된 이들 관념들을 고수하였다. [140:8.14]

 

예수는 참된 가족은 다음의 7가지의 사실에 바탕을 준다고 말하였다:

 

  1. ​실재의 사실. 본성에서의 관계와 필사자 유사성 현상들은 가족 안에서 떼어놓으려 해도 떼어낼 수가 없다: 자녀들은 부모의 어떤 특색을 이어받는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근원을 가진다; 개인성 실재는 부모의 활동에 달려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모든 본성에서 선천적인 것이며 모든 살아있는 실재에 퍼져있다. 
  2. 안전과 즐거움. 진정한 아버지는 자녀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에서 큰 즐거움을 누린다. 많은 아버지들은 자녀들의 단순한 필요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것을 또한 즐긴다. 
  3. 교육과 훈련. 현명한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아들딸의 교육과 알맞은 훈련을 위한 계획을 신중하게 세운다. 자녀들이 나중의 일생에서 좀 더 큰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어렸을 때 준비시킨다. 
  4. 교육단련과 억제. 앞을 내다보는 아버지들은 또한 어리고 미숙한 자기 자녀들에게 필요한 단련, 안내, 교정 그리고 때로는 자제를 대비하기도 한다. 
  5. 동행자관계와 충성. 애정이 넘치는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과 친근하고 사랑이 있는 교제를 유지한다. 그의 귀는 그들의 요구 사항에 항상 열려있으며; 그는 언제나 그들의 고난을 함께 나누어 갖고 그들의 어려움들을 도와주려는 준비가 되어있다. 아버지는 자손의 복지 향상에 최극으로 관심을 두고 있다. 
  6. 사랑과 자비. 연민이 가득한 아버지는 기꺼이 용서한다; 아버지들은 그들의 자녀들에 대하여 복수하려는 기억들을 간직하지 않는다. 아버지들은 재판관, 적대자 또는 채권자들과 같은 분들이 아니다. 진정한 가족은 관용, 인내, 용서 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7. 미래를 위한 준비. 현세의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겨주기고 싶어 한다. 가족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이어진다. 죽음은 단지 한 세대가 끝나고 또 다른 세대의 시작됨을 표시하는 것이다. 죽음은 개별존재의 일생을 그치게 하지만, 가족을 부득이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다. [142:7.5]

예수님의 어렸을 때의 가정생활


이 날 요한 마가와 함께 하는 동안, 예수는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의 체험을 서로 비교해 보는 중요한 시간을 보내셨다. 예수의 부모가 소유했던 것보다 요한의 부모가 세상 재물을 더 많이 소유하기는 하였지만, 소년 시절의 체험이 서로 매우 흡사하였다. 예수는 요한이 부모와 다른 가족들을 다 잘 납득하는 데 도움이 될 많은 것들을 말씀하였다. 그 소년이 자기가 “왕국에 대한 막강한 사자”가 될 것을 어떻게 아실 수 있느냐고 주(主)께 질문하자, 예수는 말했다:  

 

 “나는 현재의 네 신앙과 사랑이, 그 본질특성들이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역할을 맡으면서 받아 온 교육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 네가 왕국 복음에 대한 충성을 보이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너는 부모가 서로 진실한 애정을 품는 가정의 영향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네 자신에 대해 위험스러울 만큼 자만하게 하는 과도한 사랑을 받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네 개인성은, 네 자신감과 충성심이, 하나로서 다른 하나를 대조하는, 네 부모에 의한 사랑 없는 조종의 결과로서 왜곡되는 체험을 하지 않았다. 너는 훌륭한 자아-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정상적인 안정감들을 육성시켜 주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너는 네 부모가 사랑뿐만 아니라 지혜도 소유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으며; 너를 이웃 동무들과 함께 회당 학교에 보내고 있는 동안 그들이 돈으로 살 수 있는 많은 사치품들과 각종 탐닉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된 것은 지혜로 인함이었고, 네가 기원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도록 네게 용기를 주었다. 너는 네 어린 친구 아모스와 함께, 우리가 설교하고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를 주던 요단강으로 왔었다. 너희 둘은 모두 우리를 따라가고자 하였다. 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네 부모들은 나를 따르는 일에 동의하였고; 아모스의 부모들은 거절하였으며; 그들은 자기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하였기 때문에 네가 하였던 복된 체험, 나아가서는 네가 오늘 누리고 있는 이 체험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아모스는 집에서 도망침으로써 우리와 함께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했다면 그는 상처받은 사랑과 희생된 충성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현명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체험과 독립 그리고 해방을 위해 치러야 할 엄청난 대가(代價)일 것이다. 네 부모와 같은 그러한 현명한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네 나이가 되기까지 자랐을 때 독립심을 키워주고 건전한 해방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상처받은 사랑과 숨 막힐 듯한 충성심을 갖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한아, 사랑은 모든-현명한 존재들에 의해 증여될 때에는 우주의 최극 실체가 되지만, 필사자 부모들의 체험에서 현시되는 것처럼 위험하기도 하며 그리고 종종 어느 정도 이기적인 특징이 있다. 네가 결혼하게 되어 네 자식을 기르게 되거든, 네가 주는 사랑이 지혜로서 충고가 되고 지능으로서 인도되도록 하여라.

 

“네 어린 친구 아모스는 네가 믿는 만큼 왕국 복음을 믿고 있지만, 나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으며; 그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 그가 어렸을 때의 가정생활은, 충분하게 믿음직스러운 사람으로 키울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아모스는 정상적이고 사랑스러우며 현명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사도중의 하나와 너무도 흡사하다. 네가 정상적이고 잘 정돈된 가정에서 일생의 첫 8년 기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제부터의 네 모든 삶은 더욱 행복하고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네가 사랑이 넘치고 지혜가 지배하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네 성격이 강건하고 원만하다. 그러한 어린 시절의 교육으로 인하여 생성된 충성심의 유형은 나로 하여금 네가 시작한 그 과정을 잘 통과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예수와 요한은 가정생활에 대하여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하였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가정은 인간적이거나 신성한 관계를 처음으로 알게 하는 전부나 다름없기 때문에, 지적, 사회적, 도덕적, 그리고 심지어는 영적인 모든 초기 개념에 대하여, 어린이는 부모와 가정생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주(主)는 요한에게 계속 설명하였다. 어린이는 우주에 대한 첫 인상을 어머니의 보살핌으로부터 얻으며; 하늘의 아버지에 대한 첫 관념은 전적으로 육신적인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발생된다. 이어지는 어린이의 일생은 그의 어린 시절의 정신적 감정적 일생에 따라서, 가정에서의 이들 사회적 그리고 영적 관계로서 조건을 갖추며,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되고, 편안하게 또는 어렵게 된다. 인간 존재의 전체 여생은 실재에서의 처음 몇 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아버지-자녀 관계에 기초를 둔, 예수가 가르친 복음은 현대의 문명화된 민족들의 가정생활이 더 많은 사랑과 더 많은 지혜를 가지게 될 그러한 때에야 비로소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20세기에 살고 있는 부모들이 가정을 개선하고 가정생활을 고귀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지식과 진리를 더 많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록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가정생활이 즉시로 개선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더라도, 갈릴리에 있었던 예수의 가정이나 유대에 있었던 마가의 가정처럼 훌륭한 환경을 이루는 가정은 아직도 매우 드문 것이 여전히 사실이다. 현명한 가정의 사랑이 넘치는 생활과 참 종교에 대한 충실한 헌신은 서로에게 상호적인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가정생활은 종교심을 향상시키고, 참된 종교심은 항상 가정을 영광되게 해준다.

 

옛날에 유대인의 가정들에 있었던, 발육을 방해하는 잘못된 영향들과 속박하는 특성들이, 더 잘 통제된 현대 가정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더 많은 자연발생적인 자유와, 훨씬 더 많은 개인적 해방이 주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해방은 사랑에 의해 억제되는 것이 아니고, 충성심에 의해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며, 지혜의 지능적 교육단련에 의해 지도받지도 않는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아니거나 항상, 아버지라는 낱말이 자라나는 모든 자녀의 마음과 가슴속에서 값지게 간직되도록, 그렇게 가정을 다스리고 그렇게 살아가야 할 엄청난 책임이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주어져 있다. [17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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