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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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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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health.jpg모든 진리─물질적, 철학적, 또는 영적─는 아름다운 동시에 선하다. 모든 실제적 아름다움─물질적 예술 또는 영적 균형성─은 참된 동시에 선하다. 모든 진정한 선(善)─개인적 도덕성, 사회적 공평성, 또는 신성한 사명활동, 그 어떤 것이든지─ 은 똑같이 참되고 아름답다. 건강과 건전한 마음과 행복은 인간 체험 속에서 그것들이 혼합되듯이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의 집대성이다. 능률적인 삶의 그러한 차원들은 에너지 체계들과 관념 체계들 그리고 영 체계들의 통합을 통하여 나온다. [2:7.11]

 

유란시아의 유머는 매우 조잡하고 가장 비예술적인 반면, 하나의 건강 보험으로서 그리고 감정적 압박감에 대한 해방자로서 귀중한 목적을 봉사하며, 그리하여 해로운 신경 긴장 상태와 과도하게 심각한 자아-깊은 사색을 예방한다. 유머와 놀이─휴식─은 앞으로 나가는 노력의 반응이 아니다; 그것들은 항상 뒤를 돌아보는 것의 반향, 과거에 대한 회상이다. 심지어는 현재의 너희가 그러하듯 유란시아에서도, 너희가 더 새롭고 더 높은 지적 수고들의 노력을 잠시 동안 중지하고서 그리고 너희 조상들의 좀 더 단순한 일들로 되돌아갈 때, 너희는 항상 그런 것들이 활력을 되찾게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48:4.19]

 

스펙트럼의 자외선 맨 끝 부분에 있는 태양 방사능 물질의 대부분은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지 못한다. 이러한 짧은 파장들의 대부분은 지구 표면으로부터 약 10마일 상공 전역에 있고 그리고 다시 외부 공간으로 10마일 확장되는 오존층에 의해서 흡수되며, 지구 표면에 영향을 끼치는 오존은 오직 10분의 1인치 두께에 해당되는 층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소량이고 겉보기에 별로 대단치 않은 이러한 오존이 태양광선 속에 있는 위험스럽고 파괴적인 자외선 방사능 물질로부터 유란시아 거주민들을 보호한다. 그러나 이 오존층이 조금만 더 두터워도, 너희들의 건강을 유지시켜 주고 가장 필수적인 비타민들 중 하나의 근원이 되며 현재 지구 표면에 쪼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자외선이 차단될 것이다. [58:2.2]

 

건강과 생명의 수호자들. 이 협의회는 공중위생을 소개하는 일과 원시적인 건강법을 증진시키는 일에 관여하였으며, 룻이 인도하였다. [66:5.17]

 

룻이 인도하는 건강 수호자들의 초기 가르침들 대부분은, 크게 왜곡되고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있는 종족들을 통하여 모세의 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66:5.19]

 

모든 산업에서 첫 번째 관심은 건강에 있으며; 육체적인 행복의 어떤 위상이 산업과 공동체의 최우선 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개별존재와 가족의 건강 문제는 오직 개인적으로 염려해야 될 사항이다. 질병 치료에 있어서는, 순전히 개인적인 다른 모든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간섭을 자제하는 것이 점점 더 정부의 계획으로 굳어지고 있다. [72:7.2]

 

셋 자손 사제들은 세 가지 업무를 맡았는데, 그 업무들은 종교와 건강과 교육이었다. 이 계층의 사제들은 종교 의식을 집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사와 위생 검열자의 역할과 동산의 학교에서 교사로서 봉사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76:3.5]

 

그리고 셋 자손 사제들을 생각할 때, 고상하고 고양된 마음을 지닌 위생과 종교 교사들이었으며 동시에 진정한 교육자들이었던 그들을 후세의 부족이나 인접한 국가들에 존재했던 타락하고 상업적인 사제들과 혼동 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신(神)과 우주에 대한 그들의 종교적인 개념들은 성숙되어 있었고 대체로 정확하였고, 그들의 위생 설비도 그 시대로서는 탁월하였으며, 교육 방식은 그 이후로 그것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었다. [76:3.10]

 

생활 조건에 있어서의 이러한 강제적인 변화로 말미암아, 인간 종족 중 그러한 높은 비율이 잡식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밀과 쌀 그리고 채소를 가축으로부터 나온 고기와 섞어 먹음으로써, 고대의 이 민족들은 건강과 활력에 있어서 큰 진보를 이룩하였다. [81:1.8]

 

초기의 기도는 도저히 경배라 볼 수 없었다; 건강과 재산과 생명을 위하여 거래하고 있는 청원이었다. 그리고 여러 면에서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기도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책에서 읽어버리고, 형식적으로 외워 바치고, 바퀴에 붙이기 위하여 그리고 나무에 매달아 걸기 위하여 써 바치며, 불어오는 바람이 그 스스로 숨을 불어야 하는 수고까지 덜어줄 곳에 써 바치고 있다. [89:8.8]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고대의 종파(宗派)들 속에 있는 설명할 수 없고 불합리한 것들 대부분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그 종파의 예식들은 원시인 자신이 자기가 서 있는 물질세계를 조정해 보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그가 하였던 노력들 대부분은 건강을 보장하고 삶을 연장시키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다. 모든 질병들과 죽음 자체가 근본적으로 영적인 현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무당들이 주술사와 사제의 기능을 하는 동시에 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의 일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90:3.2]

 

물은 강력한 주물이었기 때문에 많은 질병의 치료제로 이용되었다. 영에 의해 발생된 병은 고문하는 방법으로 낫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계속 유지되었다. 증기를 쬐는 목욕 방법이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천연적인 온천이 곧 원시적인 건강 수단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열에 의해서 통증이 경감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햇빛, 싱싱한 동물 내장, 뜨겁게 달군 진흙, 그리고 뜨거운 돌멩이들이 이용되었고, 이러한 방법들 중에서 많은 것들이 아직도 활용되고 있다. 영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율동이 실행되었으며; 단조로운 북소리는 전 인류에게 공통적인 것이었다. [90:4.6]

 

기도는, 실제적이고 유기체적인 질병들을 고치는 기법은 아니지만, 풍족한 건강을 누리도록 하는 일에 지대한 공헌을 하며, 정신적인 질병과 감정적인 질병 그리고 신경증적인 질병들을 치유하는 일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되는 실제적인 질환의 경우에도 기도가 다른 치료 절차들의 효험을 증대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다. 기도는 흥분을 잘하고 불평하는 수많은 환자들을 변화시켜서 모범적인 환자가 되게 하고 고통을 받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격려를 주도록 만든다. [91:6.2]

 

신비주의와 황홀경 그리고 영감(靈感)의 이러한 이상한 종교적 체험들에 대한 실용적 진단은 이들 현상이 한 개별존재를 어떻게 만드는 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91:7.5]

 

크세노파네스는 한분 하느님을 가르쳤지만, 그의 신(神) 개념은 너무 범신적이어서 필사 사람에게 어떤 개인적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아낙사고라스는 최초의 마음인 첫째원인을 이해한 것을 제외한다면 하나의 기계론자에 불과하였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후계자들인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덕목이 지식이고; 선함이 건강한 혼이라고 가르쳤으며; 불법에 대해 가책을 느끼기보다는 그것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가르쳤고, 하느님들은 현명하고 선하다고 가르쳤다. 그들이 주장하는 기본적인 덕행은: 지혜, 용기, 절제, 그리고 공의였다. [98:2.6]

 

종교적인 체험은 육체적인 건강과 타고난 기질 그리고 사회 환경에 의해 현저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현세적 조건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바쳐진 혼에 의해 이루어지는 내부의 영적인 진보를 막지 않는다. 정상적인 모든 필사자들 속에는 만일 그들이 특별히 억압하지만 않으면 기능을 발휘하는 성장과 자아-실현에 대한 어떤 타고난 본능적 욕구들이 존재한다. 영적인 성장의 잠재를 갖는 이 구조적 자질을 육성하는 확실한 기법은 최극 가치들에 대해 전심으로 헌신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100:1.6]

 

그러나 개인성이 가진 혼의 힘을 사랑, 건강, 정신적 효과 그리고 행복에서의 통치에 따라 통합해보려는 과업에 있는 그 종교적 삶에서의 가장 큰 과제는, 물리적 체계, 마음 체계 그리고 영의 체계의 통합이라는 것에서 생겨난다. 사람은 몸의 건강과 정신의 온전함은 많이 납득하지만, 그러나 행복에 대해 진정으로 깨닫는 것은 거의 없다. 최고의 행복은 분리가 불가능하도록 영적 진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영적 성장은 영속적인 즐거움, 모든 납득을 거치는 평화를 낳는다. [100:4.3]

 

영적인 명상의 보다 더 건전한 태도는 사려 깊은 경배와 감사기도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육체 속에 있었던 예수의 일생 중에서 후기에 발생하였던 것과 같은, 자기 생각조절자와의 직접적인 교제는 소위 신비적 체험이라고 불리는 것들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신비적인 교제의 개시에 기여하는 요소들은 그러한 심리 상태들의 위험성을 암시한다. 신비상태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 의해 촉진된다: 그것은 육체적 피로, 금식, 심리적 분열, 깊은 심미적 체험, 강렬한 성적 충동, 두려움, 불안, 분노, 격렬한 춤이다. 그러한 예비행사의 결과로서 일어나는 물질적 것의 대부분은 잠재의식 마음에서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 [100:5.10]

 

비록 그 신성한 내주자 들이 결코-끝남이 없는 실재의 다음 단계를 위한 너희의 영적 준비에 주로 관련되어 있지만, 그들은 또한 너희의 현세적 번영과 이 땅에서의 너희의 실제적 성취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너희의 건강, 행복 그리고 참된 번영에 기여하기를 기뻐한다. 그들은 영원한 진보의 너희의 미래 삶에 해롭지 않은, 행성에서의 진보의 모든 문제에서 너희의 성공에 무관심하지 않다. [110:1.3]

 

8. 건강의 천사들. 이들은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헌신하는 저들 필사자 대리자들을 돕도록 배정된 성(聖)천사 사명활동자들이다. 현재의 무리는 이 섭리시대 동안에 봉사하는 여섯 번째 집단이다. [114:6.12]

 

예수 시대에, 지중해의 로마제국과 파르티아 왕국 그리고 인접된 지역의 민족들은 모두, 세계 지리와 천체 연구 그리고 신체 상태와 질병 등에 대해 아주 미숙하고 원시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나사렛의 목수인 예수의 새롭고 놀라운 선언을 듣고 그들이 놀란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선한 영과 나쁜 영을 소유한다는 관념은, 단순히 인간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모든 바위와 나무도 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 시대는 마법이 성행하던 때였으며, 모든 사람들은 기적이 보통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121:7.9]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렀던 2년 동안, 예수는 건강하게 정상적으로 자라났다. 몇몇 친구들과 친척들을 빼놓고는, 누구에게도 예수가 “약속의 아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셉의 친척들 중에 한 사람이, 멤피스에 있는 이크나톤의 먼 후예들인 몇몇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누설했으며, 나사렛 가족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그들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작은 집단의 신자들과 함께 요셉의 친척-후원자의 호화로운 집에 모여 나사렛 가족의 평안을 빌었고 아이에게 경배하였다. 이때 모였던 사람들이 히브리 경전의 그리스어 번역판 전(全)권을 예수에게 선물하였다. 그러나 이집트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멤피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친구들의 청을 그와 마리아가 최종적으로 거부하기 전 까지는, 이 유대인의 신성한 문서들의 이 사본은 요셉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신자들은 이 운명의 아이가 팔레스타인의 어떤 이름난 장소에 있는 것보다도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는 것이 이 세계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설득 때문에,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에도 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얼마 동안 떠나지 못하였다. [123:0.3]

 

나사렛으로 돌아올 당시 예수는 3년 2개월쯤 되었다. 그는 이 모든 여행 동안 매우 잘 견디었으며, 건강 상태도 매우 좋았고, 자유스럽게 뛰어다니며 즐길 수 있는 자기 공간을 가지게 된다는 데 대한 흥분으로 아이답게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을 매우 그리워하였다. [123:1.2]

 

비록 그의 어머니는 그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지나치게 불안해하였지만, 차츰 이렇게 집을 떠나 여행하는 것을 용납하게 되었다. 예수의 삼촌들과 숙모들은 모두 그를 매우 좋아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이 해와 그 뒤의 몇 년 동안, 예수가 매 달 자기들 집으로 방문하게 하기 위하여 노골적으로 경쟁하곤 하였다. 삼촌의 농장을 방문한 그의 첫 번째(갓난아이 이후로) 일주일 동안의 여행은 이 해 1월에 있었으며, 갈릴리 바다에서의 일주일간의 첫 번째 고기잡이 체험은 5월에 있었다. [123:6.2]

 

이렇게 육체적으로 강하고 건장한 젊은이는, 또한 인간 지능의 충분한 성장, 인간의 생각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체험이 아니라 그러한 지능 발달을 위한 수용능력의 충만함을 성취하였다. 그는 건강하고 잘 균형 잡힌 육신, 예리하고 분석적인 마음,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은 기질,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졌지만 적극적인 성미를 갖고 있었으며,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서 하나의 강하고 뛰어나고 매력적인 개인성을 구성하고 있었다. [127:1.3]

 

이 해에는 나사렛 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출발하였고, 마르다가 룻을 돌보아야만 하는 특정한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아이들이 정규 학교 과정을 마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128:6.1]

 

“주님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같이 붉을 지라도 흰 양털같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으며;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은 것은 바로 너희가 지는 죄들 때문이다. 하느님은 내 안색을 치유하는 분이시며, 내 혼의 기쁨이시다. 영원한 하느님은 나의 힘이시며; 우리의 처소가 되시고, 그 아래에는 영속하는 팔이 있다. 주님은 슬픔과 절망에 빠진 자에게 가까우시며; 어린아이 같은 영을 가진 모든 자를 구원한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으나, 주님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 너의 길을 주님께 맡기면─그를 신뢰하면- 그가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지고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할 것이다. [131:2.10]

 

두 주일 동안 이 세 사람들은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갑작스럽게도 어린 가니드가 몹시 앓게 되었다. 두 주일 동안 그는 심한 열로 고생을 하였고, 가끔씩 헛소리도 하였으며; 예수와 고노드는 병자를 간호하느라 바빴다. 예수는 능숙하고 부드럽게 그 소년을 돌보았는데, 그 아버지는 고통 받는 소년을 돌보는 모든 일에 있어서 예수의 자상함과 능숙함 모두에 의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있었고, 게다가 그 소년의 병은 너무 심해서 옮길 수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 산 속에서 소년이 회복하도록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 할 뿐이었다. [133:7.3]

 

자기 자신과 동료 인간들의 건강관리로서의 물질적인 육신의 필요에 대한 음식과 육체적 보살핌과 같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결정을 내리자, 그에게는 아직도 또 다른 하나의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있었다. 개인적 위험에 당면하였을 때,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할까? 그는 자신의 육신의 생애에서 뜻밖의 종말을 맞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인간적인 안전함에 대해 일반적인 주의를 기울여서 거기에 알맞은 조심을 하되, 육신상의 비상사태를 만났을 경우에, 모든 초인간적인 개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가 이러한 결정을 구체화시키고 있을 때, 예수는 바로 그의 앞에는 낭떠러지가 있는 앞으로 좀 튀어나온 바위 위에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계셨다. 그는 튀어나온 그 바위에서 자신이 공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아셨으며, 유란시아에서 자신의 삶의 일을 실행함에 있어서, 만약에 자기가 천상의 지능체들의 중재를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자신의 첫 번째 중대한 결정과 자아 보존의 태도에 대한 자신의 두 번째 결정을 폐지시킨다면, 자기에게는 아무 위험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다. [136:7.1]

 

사도들에게 큰 시험이 되었던 조용히 일한 이들 몇 개월은, 그들이 생존되는 시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 활동이 없던 이 시기는 예수의 가족들에게도 큰 시련이었다. 예수가 그의 대중 활동 착수를 위한 준비를 하였을 때가 되어서는, 그의 전 가족(룻을 제외한)은 실질적으로 예수를 저버렸다. 그 후에 그들은 단지 몇 번만 그와 연락을 취했고, 그리고 그것도 그에게 자기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려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가 미쳤다고 거의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의 철학을 간단하게 헤아릴 수 없었고 그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형제들에게는 그 모든 일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찬 일이었다. [138:9.2]

 

앞마당에서 한 사람이 외쳤다: “주(主)여, 말씀으로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고, 병을 고치시며, 우리의 혼을 구원해 주십시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육신화된 한 우주의 창조주를 항상 함께 동행하던 성(聖)천사, 물리통제자, 생명운반자, 중도자들로 이루어진 광대한 수행원들은 그들의 주권자의 신호가 내려지게 되면 창조적 능력을 행사하려고 자신들을 그렇게 준비하였다. 이것은, 예수의 이 세상 일생 중에서 신성한 지혜와 인간 연민이 사람의 아들의 판단 속에서 너무나 서로 얽혀있어서 아버지의 뜻에 호소하면서 그는 뒤로 물러서려 했던 그러한 순간들 중의 하나였다. [145:3.8]

 

그리고 이러한 말을 들으신 예수는, 자기 사도들과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였다: “내가 이 이방인의 믿음에 감탄하였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겠는데, 이스라엘 사람들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신앙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 집으로부터 나가시며 예수는 “그러면 돌아가도록 하자”라고 말씀하였다. 백부장의 친구들은 집으로 들어가서 망구스에게 예수가 한 말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부터 그 하인은 차도를 보이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정상적인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갔고,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47:1.3]

 

나의 좋은 친구들아, 너희는 안식일을 위하여 열심인 것은 잘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 형제의 건강과 안녕을 지키는 것이 더욱 좋은 것이다. 내가 선언하건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만약 너희가 이곳에 내가 하는 말을 감시하려고 같이 있는 거라면, 나는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에도 주인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할 것이다." [147:6.4]

 

벳세다의 야영지가 해산될 무렵에는 예수의 명성, 특히 병 치유자로서의 명성이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위시하여 시리아와 주변 모든 지방들에 퍼져 나갔다. 그들이 벳세다를 떠난 후 수주일 동안에도 병자들이 계속하여 그곳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주(主)를 만나지 못했을 때, 다윗으로부터 주(主)가 계신 곳을 알아낸 후 그를 찾아가곤 하였다. 이 여행에서 예수는 의도적으로 소위 기적이라고 불리는 치유를 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 받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로 하여금 치료를 간구하도록 한 끈질긴 신앙의 재활의 힘의 결과로 인하여 건강과 행복을 되찾게 되었다. [149:1.1]

 

“분노는, 대체로 통합된 지적(知的) 육체적 본성의 통제를 얻으려는 영적 본성의, 실패 정도를 나타내는 물질적 명시이다. 분노는 너그러운 형제다운 사랑에 대한 너의 결핍과 그에 대하여진 너의 자아-존중과 자아-조정에 대한 결핍을 가리킨다. 분노는 건강을 해치고 마음을 저하시키며 사람 혼의 영적 선생에게 장애가 된다. ‘분노가 어리석은 사람을 죽인다.’라는 것과 사람이 ‘분노 안에서 스스로 상처를 낸다.’ 또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나,’ 한편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라는 글을 너희가 성서에서 읽지 않았느냐? 너희 모두는 다음의 말들도 잘 알고 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혀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한다.’ ‘슬기가 노하기를 더디게 한다.’ ‘자기 자신 스스로를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벽이 없는 무방비한 성과 같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 함이 많다.’ ‘정신에서 서두르지 말라. 분노는 바보들의 품에 머문다.’” 예수가 말씀을 마치기 전에 좀 더 계속하였다: “너의 영 안내자가, 신성한 아들관계의 직위와는 모순되는 그러한 동물적인 노함이 격발로 분출시키는 경향으로부터, 너희를 벗어나게 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너희의 가슴이 사랑으로 지배되어 하라.” [149:4.2]

 

예수의 가족은 가버나움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거의 일주일을 이야기와 논쟁과 기도를 하며 지냈다. 그들은 혼란과 놀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목요일 오후에 룻이 세베대의 집을 방문하여 다윗으로부터 그녀의 아버지-오빠가 안전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페니키아 해안 쪽으로 그의 길을 가고 있다는 소식을 그들에게 전해주기 전까지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였다. [154:7.5]

 

성숙을 향한 노력에는 일을 필요로 하며 그리고 일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물질적인 것들이 당연히 생각되겠지만, 주(主)께서 바로 말씀하였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수 없다.” 정상적인 육체와 상당히 좋은 건강을 받았더라도, 우리는 또한 사람의 잠자는 영적 기세를 깨우도록 자극할 그 애착들을 찾아야 한다. 예수는 하느님께서 사람 속에 살아 계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사람을 설득하여 이러한 신성과 무한의 혼에-묶여진 힘을 풀어줄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사람들을 하느님, 그가 솟아올라 우리자신의 혼을 일깨워 새롭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밖을 향해 이동하며 그리고는 수 없이 많은 다른 혼들을 깨우치고, 향상시키고, 축복하려는 목적으로 봉사할지도 모를, 그러한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도록 설득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의 혼속에 동면하고 있는 이 잠재 힘들을 내가 어떻게 깨우면 최선책이 되겠는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감정적인 흥분은 이상적인 영적 자극이 아니라는 것이다. 흥분은 에너지를 증대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과 육체 모두의 힘을 소모시킨다. 그렇다면 이 큰 일들을 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너희들의 주(主)를 바라보자. 우리들이 여기에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언덕에 오르셔서 힘을 취하고 계시다. 이 모든 문제의 비밀은 영적 교제, 경배 속에 감추어져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연합된 명상과 휴식이다. 명상은 마음과 영이 접촉하도록 한다; 휴식은 영적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능력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약한 것을 강한 힘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자아의 마음을 하느님의 뜻으로 교체하는 이것이 경배를 이룬다. 적어도 이것이 철학자가 그것을 보는 길이다. [160:3.1]

 

내가 보는 견지에서 현세적인 일생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1. 육신적으로 강건함 2. 분명하고 깨끗한 생각 3. 힘과 기술 4. 부─일생에서의 필요한 물품들 5. 좌절을 견디는 힘 6. 문화─교육과 지혜 [160:4.2]

 

“질병과 건강의 문제에 있어서, 육체적인 상태는 물질적 원인에 기인한다는 것을 너희가 알아야만 한다; 건강이 하늘에서 오는 행운이 아니듯이, 질병도 하느님의 진노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166:4.10]

 

예수가 말씀하고 행동한 것들 중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지나가시면서” 우연히 된 것처럼 보인다. 주(主)의 이 땅에서의 사명활동에는 직업적이거나 잘 계획된 것이거나 또는 미리 계획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는 일생을 영위하면서 자연적으로 그리고 은혜롭게 건강을 나누어주고 행복을 뿌려 주었다. “그는 부지런히 선을 행하였다.”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171:7.9]

 

오순절에 진리의 영의 도래는 급진적이지도 않고 보수적이지도 않은 종교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것은 오래된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며; 나이 든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지도 않고 젊은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지도 않는다. 예수의 땅에서의 일생의 사실은 시간의 닻을 위한 고정된 점을 제공하는 반면에, 진리의 영의 수여는 그가 실천하였던 그 종교와 그가 전파하였던 그 복음의 영속하는 확대와 끝없는 성장을 제공한다. 영은 모든 진리로 인도한다; 그는 끝없는 진보와 신성한 전개로 확대되고 항상 성장하는 종교의 선생이다. 이 새로운 선생은 진리를 추구하는 신자에게, 개인 속에 신성하게 감추어져있는 것과 그리고 사람의 아들의 본성을 언제까지나 펼쳐 줄 것이다. [194:3.8]
마음의 자연적인 상태이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과도한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들의 먼 조상들의 자연적인 생활 상태로 간단하게 되돌아가며; 불안이 실제적으로 고통스러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활동을 억제하며 반드시 진화적인 변화와 생물학적인 적응을 시작하게 한다. 고통과 투쟁은 진보적인 진화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86:2.1]

 

심리학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인 20세기 동안에, 경제적 격변들과 도덕적 역류들 그리고 과학 시대의 격렬한 변화에 따른 거센 사회적 물결들 속에서, 수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인간적 혼란에 빠져들었으며; 그들은 초조, 불안, 두려움, 불확실성, 그리고 불안정성 속에 있으며; 이 세상의 역사상 처음으로 그들은 확실한 종교가 주는 위로와 안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전례 없는 과학적 성취와 기계적 발달에 직면하여 영적인 침체와 사상적인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99:4.6]

 

세상의 거주자들의 이전 상태에 관계없이, 신성한 아들의 증여에 이어서 그리고 모든 인간들에게 진리의 영이 수여된 이후에, 조절자들이 모든 정상적인 의지 창조체들의 마음속에 내주하기 위하여 무리를 지어 세상에 왔다. 낙원천국 증여 아들의 임무가 완수됨에 따라서, 이 감시자들은 참으로 “너희 안에 있는 하늘왕국”을 이루었다. 신성한 선물들의 증여를 통하여 아버지는 죄와 악에 가능한 가장 가까이 다가오신 것이다, 왜냐하면 조절자는 인간적인 불의의 바로 그 와중에서도 필사자의 마음에 함께 해야만 한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주하는 조절자들은 특히 순전한 탐욕과 이기심에 때문에 괴로움을 받는다; 그들은 아름답고 신성한 것에 대한 불경함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동물적인 두려움과 어린아이 같은 갈망에 때문에 그들의 활동에서 실질적으로 훼방을 받는다. [108:6.2]

 

필사 사람의 많은 일시적 고난들은 조화우주에 대한 그의 이중 관계에서 발아된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다─그는 자연 속에 존재한다─그럼에도 자연을 초월할 수 있다. 사람은 유한하다, 그러나 그에게 무한의 불꽃이 내주되어 있다. 그러한 이원(二元)적 상황은 악에 대한 가능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많은 불확실성과 적지 않은 불안을 내포하는 많은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 상황을야기한다. [111:6.1]

 

그 천사들은 그들의 인간 동료들을 향한 영구적인 애정을 발전시키며, 만일 너희가 그 성(聖)천사들을 볼 수만 있다면, 너희도 그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갖게 될 것이다. 물질적인 육신을 떠나 영 형태가 주어지게 되면, 너희는 개인성의 많은 속성들 속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그 천사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너희의 감정들 대부분을 공유하며 다른 부가적인 것들도 체험한다. 그들에게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너희에게 작용하는 유일한 감정은, 유란시아에 거주하는 평균적인 사람들의 정신생활 속에서 매우 크게 증가하는 동물적 두려움의 유산이다. 그 천사들은 왜 너희들이 너희의 보다 높은 지적 힘으로 하여금, 그리고 심지어는 너희의 종교적인 신앙마저도, 두려움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그토록 끈질기게 허용하는지, 공포와 불안이라는 경솔한 당황감에 의해 그토록 속속들이 혼란이 되는지 납득하기가 거의 불가능함을 실제적으로 발견한다. [113:2.5]

 

“‘사람이 번민에 짓눌릴 때마다 그는 자기 가슴에 있는 혼의 인도로부터 한 걸음씩 멀어진다.’ 자만심은 하느님을 방해한다. 만약 너희가 하늘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너의 자만심을 버려라; 조금이라도 자만심을 갖게 되면 구원의 빛이 차단되며, 거대한 구름에 의해서 가려지는 것과 같다. 만약 너희가 내면에서 떳떳하지 못하면 외부적인 것을 위해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만약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듣는다면, 그것은 너희가 거짓과 위선을 벗어나 깨끗한 가슴으로 진리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혼으로 내 앞에 왔기 때문이다. 만약 너희가 불멸을 얻고자 한다면, 세상을 버리고 나에게로 오라.’” [131:7.3]

 

“현명한 사람은 항상 진리를 추구하고, 단순한 생계를 위해 삶을 바치지 않는다. 하늘의 완전성을 달성하는 것이 사람의 목표이다. 뛰어난 사람은 순응을 이루고, 염려와 공포에 지배되지 않는다. 하느님은 너희와 함께 계시며; 가슴속에 의심을 품지 마라. 모든 선한 행위는 보상을 받는다. 군자는 하늘을 향해 원망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악의를 갖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모든 벌에서 연민을 느끼고, 어떻게 해서든지 징벌을 축복이 되도록 참아내라. 그것이 위대한 하늘의 방식이다. 모든 창조체가 죽어서 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반면에, 고귀한 자의 영은 높은 데로 들려지며 최고의 밝음을 갖는 영광스러운 빛에 이르기까지 올라간다.” [131:9.4]

 

어느 날 가니드가 예수에게 왜 공적인 교사의 일에 헌신하지 않는지를 물었을 때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의 아들아, 모든 것은 그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네가 세상에 태어났지만, 고민한 분량과 인내심의 실현이 너를 성장하도록 도와주지는 못할 것이다. 너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그 때를 기다려야만 한다. 시간만이, 나무에 달린 풋과일을 저절로 익게 한다. 시간이 흘러가야만, 한 계절이 지나간 뒤에 다음 계절이 오고, 해가 지고 난 후에 해가 뜨는 법이다. 나는 지금 너와 너의 아버지와 함께 로마로 가는 도중이며,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의 내일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손에 온통 달려 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가니드에게 모세와 그의 40년에 걸친 신중한 기다림과 꾸준한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130:5.3]

 

그의 메시지의 요지는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사실과 그의 자비라는 진리와 함께, 사람은 이 동일한 사랑의 하느님의 신앙-아들이라는 기쁜 소식이었다. 사회적 접촉에 있어서의 예수의 통상적 방식은, 그들에게 질문을 함으로써 사람들 이끌어 내어 자기와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대화는 흔히 예수가 그들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그들이 예수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끝이 나곤 하였다. 그는 질문을 하거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함으로써 가르치는 일에 모두 뛰어난 재능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그가 가장 많이 가르쳤던 사람들에게, 그는 가장 적게 말하였다. 그의 개인적 사명활동으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진 자들과 걱정이 많고 낙심한 필사자들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는 동정심이 많고 납득해 주는 이 사람에게 자신들의 혼의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많은 위안을 받을 수 있었으며, 또한 그는 이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 인간 존재들이 예수에게 자신들의 고민들을 털어놓았을 때, 예수는 그들의 실제 어려움들을 앞으로 풀어 나가는데 있어서의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도움이 되는 제안들을 항상 해 줄 수 있었지만, 현재의 평안과 당장의 위안이 되는 말을 해 주는 것도 간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고난을 받는 필사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그들이 사랑이 많으시고 하늘에 계시는 이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소식을 다양한 모든 방법으로 전하곤 하였다. [132:4.2]

 

그들이 예수가 계신 곳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그가 이미 주무시고 있었지만, 그를 깨우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과 그토록 오래 살았던 우리가 산에서 당신을 찾고 있는 동안, 어찌하여 당신은 우리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부르시고 안드레와 시몬을 새로운 왕국의 첫 번째 동료로 선택하셨습니까?” 예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가슴을 진정시키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누가 너희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시작하려고 하거든, 그를 찾아 나서라고 하더냐?’” 그들이 언덕들에서 오랫동안 그를 찾아 다녔던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드리자, 예수는 그들에게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였다: “너희들은 새로운 왕국에 대한 비밀을 언덕 위에서 찾지 말고 너희들 자신의 가슴속에서 찾아야 한다. 너희들이 찾던 것은 너희들의 혼(魂)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너희들은 진정 나의 형제들─나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필요조차 없는─이고, 이미 왕국에 들어와 있으니, 기분을 풀고 너희도 우리와 함께 갈릴리로 들어갈 준비를 하도록 해라.” 그러자 요한은, “그러면 주(主)여, 야고보와 저도 안드레와 시몬처럼 당신의 새로운 왕국의 동료가 되는 것입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예수는 그들 각각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씀하였다: “내 형제들아, 다른 사람들이 받아 달라 요청하기도 전에, 너희들은 이미 나와 함께 왕국의 영적(靈的) 세계 속에 들어와 있다. 나의 형제들인 너희들은 왕국에 들어오기 위해 요청할 필요가 없는 것은; 너희들이 처음부터 나와 함께 그 왕국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너희들보다 우선권을 가질 수 있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너희들이 내게 청할 생각을 하기도 전에 왕국 협의회에 너희들도 이미 포함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길을 잃지도 않은 사람을 찾아 나서려는, 좋은-의도이지만 그러나 스스로-임명하는 과업으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었더라면, 너희들은 사람들 앞에서도 첫 번째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도래할 왕국에서는, 걱정을 사서하기보다는, 오히려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에 신경을 더 많이 쓰기 바란다.” [137:1.6]

 

이러한 초기의 가르침들에 있어서, 예수는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에 대한 그릇된 개념이 내포되어 있지 않는 한, 될 수 있는 대로 사도들과 논쟁하는 것을 피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이 제기될 때에는 언제나 주저하지 않고 즉시 실수를 저지르는 믿음들을 바로잡았다. 유란시아에서의 예수의 세례 받으신 이후의 일생에는 단지 한가지의 목적밖에는 없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낙원천국 아버지를 좀 더 잘 그리고 좀 더 진실 되게 계시하는 일이었으며; 그는 하느님께로 가는 새롭고도 보다 나은 길, 신앙과 사랑의 길 그 자체였다. 사도들에게 한 그의 교훈은 언제나 동일하였는데: “가서 죄인들을 찾고; 낙심한 자들을 찾을 것이며 근심하는 자들을 위로해 주어라.” [138:6.4]

 

1.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예수는 하늘 아버지의 보호하심을 믿으라고 가르쳤는데, 이는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운명론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날 오후에 오래된 히브리 속담에 동의하면서 인용하였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 그는 자신의 가르침들에 대해 충분한 해석이 되도록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아버지를 신뢰함에 대한 그의 교훈들은 현대나 또는 어떤 다른 시대에 있어서의 사회적 또는 경제적 상황에 의해 판단되어져서는 안 된다. 그의 가르침은 모든 시대와 모든 세상에 있어서 하느님과 가깝게 사는 삶이라는 이상적인 원리를 포옹하고 있다. [140:8.2]

 

“나의 메시지와 나의 제자들의 가르침에 관하여 너희는 그것들의 열매를 가지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너희에게 영에 관한 진리들을 전파한다면, 우리 메시지가 참되다는 것을 영이 너의 가슴 안에서 증거 할 것이다. 하늘의 아버지에 의해 받아들여짐에 대한 너희의 확신과 왕국에 대해서 묻겠는데, 너희들 중의 훌륭하고 인정이 많은 아버지가, 그 아들이 가족 안에서의 자기 지위와 아버지의 가슴속에 있는 애정의 확실성에 대하여 근심과 불안에 있게 하겠느냐? 이 세상의 아버지인 너희는 너희 자녀들을, 네 인간 가슴속 안에 있는 불변의 애정에서의 그들 위치의 불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괴롭히면서 기쁨을 얻겠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왕국에서의 그들의 위치에 관한 의심스런 불확실성 안에 자신의 자녀들을 놓아두지 않으신다. 만약 너희가 하느님을 너희의 아버지로 받아들인다면, 그러면 정말로 그리고 진리 안에서 너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그리고 만약 너희가 자녀들이라면, 그러면 영원하고 신성한 아들관계에 관한 모든 위치와 신분에서 너희는 보장받을 것이다. 만약 너희가 나의 말을 믿으면, 너희는 나를 보내신 그를 믿는 것이 되며, 그렇게 아버지를 믿음으로 인하여 너희는 하늘의 시민 됨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신분을 얻은 것이다. 만약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면, 너희는 신성한 왕국에서 진보의 영원한 일생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142:5.2]

 

예수가 엘만의 환자들을 위하여 한 그의 사명활동과 관련되어 효과를 보았던, 많은 치유들은 진정으로 기적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단지 신앙으로 지배된 개인들의 기대감의 체험 안에서 생길 수 있는, 그러한 마음과 영의 변환이었을 뿐이었다고 통고받았으며, 그들이 강하고 긍정적이며 호의적인 개인성의 즉각적이고 영감어린 영항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사명활동으로 그들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고 걱정을 없애 주었던 것이었다. [148:2.2]

 

마르다는 의무라고 생각한 이 모든 일들로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면서, 마리아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으므로 심사가 불편해졌다. 그리하여 그녀는 예수께 가서 말했다; “주(主)여, 음식 준비하는 이 모든 일을 저 혼자서 하도록 모른 체하는 제 동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십니까? 제 동생에게 저를 도와주라고 명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는 대답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왜 항상 그토록 많은 것들로 염려하고 그 많은 하찮은 일들로 걱정하느냐? 정말 가치 있는 것이라면 오직 한 가지라도 족하며, 마리아는 이 선하고 아름다운 쪽을 선택하였으니, 내가 그것을 빼앗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가 되어야 너희 둘이 나의 가르침대로 살게 되어서; 음식 만드는 일도 같이하고, 화합하여 너희 둘의 혼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하게 되겠느냐?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것─, 일생에 있어서 보다 덜 중요한 것들은 하늘왕국의 중대한 일들 앞에서 양보해야만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하겠느냐? [162:8.3]

 

“좋다, 안드레야, 너희에게 재물과 자아-유지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말해 주겠지만, 너희들은 모든 것을 떠나서 나를 따를 뿐만 아니라, 왕국의 대사들로서 사도임명을 받았기 때문에,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제자들이나 군중들에게 말하였던 것과는 어느 정도 다를 것이다. 너희들이 전파하는 왕국의 아버지는 너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너희들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체험을 하였고, 잘 알고 있다. 너희들은 왕국의 사명활동에 모든 삶을 바쳤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지 또는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지 하는 세속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들 때문에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혼의 행복이 먹고 마시는 것보다 중요하다; 영의 진보가 의복의 필요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너희 양식의 확실성에 의심이 들 때에는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그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창고나 헛간도 없지만, 아버지께서 먹이를 찾아다니는 그들 모든 각각에게 먹이를 주신다. 그런데 하물며 너희들은 이 새들보다 얼마나 더 중요하냐! 또한, 너희들이 염려하고 조바심하며 의심한다고 해서, 너희의 물질적인 필요가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염려함으로써 네 키를 한 뼘이라도 키울 수 있거나, 네 생명을 하루라도 연장시킬 수 있느냐? 그러한 문제들을 너희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데, 너희는 왜 이 문제들 때문에 염려하느냐? [165:5.2]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실을 만들지도 아니하지만; 모든 영광을 누리던 솔로몬이라도 이 꽃처럼 아름답게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살아 있다가 내일에는 잘려서 불에 던져지는 들의 풀도 하느님께서 그토록 옷을 입히시는데, 하늘왕국 대사들인 너희들은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오! 너희 신앙이 적은 자들아! 왕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너희 자신을 전심으로 드리면, 너희가 버린 너 자신이나 가족들을 돌보는 일에 대하여 결코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만일 너희가 너희의 삶을 진심으로 복음에 바친다면, 너희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될 것이다. 만일 너희가 다만 믿는 제자에 불과하다면, 너희들 자신의 양식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함은 물론, 가르치고 전파하며 병을 고치는 모든 사람들의 생계를 위하여 기부를 해야만 한다. 만일 너희가 음식 때문에 염려한다면, 필요한 것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세상의 나라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 너는 네 일에 전념하고, 아버지와 내가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알고 있음을 믿어라. 너희 모두에게 한 번 더 확실하게 말하겠는데, 너희 삶을 왕국의 일에 바치면,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공급될 것이다. 더 큰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그보다 작은 것들은 그 안에서 발견될 것이다. 하늘의 것을 구하면 땅의 것은 그 안에 들어있을 수밖에 없다. 그림자는 반드시 본체를 따르는 것이다. [16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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