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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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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리에도 작성일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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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에는 중도자라는 존재가 있다고 합니다.

어느 중도자 있는데, 만약 나이가 45만 살이 넘었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를 보고 무엇이라고 말할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

인간들이 잘났다, 못났다 서로 싸우고 자기를 자랑하려고 남을 조롱하며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보기가 딱합니다.

 

내 나이가 지금 45만 살이 넘었는데, 인간의 일생은 그 삶이 아무리 위대하거나 보잘것없거나, 내 눈에는 아무런 차이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동안 수천의 수천 배가 되는 인간들의 삶을 다 보았지만, 정말로 물질적인 삶에서는 아무런 차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높이가 4-5 미터가 되는 나무에서 1 밀리가 더 큰지 아닌지 당신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겠습니까? 설사 보인 다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가 보는 인간들의 삶이 바로 그렇습니다. 나이로 본다면 내가 식별하는 사물의 크기로 본다면 나는 높이가 4 미터 정도 되는 나무이고, 인간의 일생은 1 밀리 정도쯤 됩니다. 그러나 무슨 수로 인간의 삶을 크기나 의미로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 눈에는 인간이 영웅이건 위인이건 성인이건 아무 차이도 없습니다. 그냥 똑같은, 색깔만 다른 인간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건 이름 없는 초라한 사람이건 내 눈에는 피장파장입니다.

그렇게 삶에서의 물질적인 위대함이나 업적은 인간의 기억이나 기록이나 제 아무리 영원히 남긴다 해도, 1밀리 시간 속에서는 그 어떤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업적과 달리, 업적을 달성하는 그 의지와 열정과 노력과 헌신은 물질적 결과나 전혀 상관없이 땅에서의 고귀한 결실로 영원토록, 유란시아를 방문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흥미진진한 자랑스러운 이야기로서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식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깨달음도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깨달음 그 자체는 아무리 자랑하고 싶어도 자랑할 것이 정말로 하나도 없는 것들입니다.

진지하게 땀을 흘리는 삶이, 누가 알아주건 말건 스스로 힘을 다하는 의지와 열정만이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살았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업적을 남기려고 애쓰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무언가 성취를 은밀하게 외치고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물질적인 것입니다. 내 눈에는 구별되지도, 기억되지도, 이야깃거리도 될 수 없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

만약 정말로 옛날에 태어난 중도자가 우리에게 말을 할 수가 있다면 이런 말도 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도자는 인간의 일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요.

댓글목록

그러게요님의 댓글

그러게요 작성일

ㅎㅎ 잘 모르지만 영적 존재들이 실제로 우리 옆에 있다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낮아서 개입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말이나 느낌으로 교신할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암튼 중도자도 말을 음성으로 전달할 수단은 없을 겁니다. 유란시아 책이 그렇듯이 글로 전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요.

서너개님의 댓글

서너개 작성일

유란시아 책의 영적 존재들을 읽고 나면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두려움이나 복종심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귀신이나 천사나 형체가 없는 존재에 어떤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선천적인 본능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두려움이, 사람의 의식 안에 선천적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미신에 빠지고 잘못된 신앙에 휩쓸리는 것이지요.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원죄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무신론이 진리를 도피하는 이유가 그런 내면의 두려움을 만나는 것이 기쁨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아예 부인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고요.

유란시아 책을 읽는것 자체가 본능적 한계에 도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결과에 관계없이 그런 의지와 도전이 동물적 인간에서 영적 인간으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종교인이나 진리 탐구자 중에는 하늘 세계를 알겠다는 것 보다는, 단지 두려움을 극복하고 남보다 뛰어나려고 절대자 하느님에 조바심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본능적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지 못한다면, 진리는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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