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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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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너킥 작성일1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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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삶의 해답을 알고 싶어 한다. 어딘가 속박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느끼는 사람이나, 현실의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나,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말이 있다.

"인간은 원래부터 무한히 자유롭다, 다만 인간 스스로 그것을 믿기를 거부할 뿐이다."

 

이런 말을 한 현자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말은 누구나 들어봤거나, 읽어봤거나 생각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 원래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없다. 과거에 그렇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는 기록은 있지만, 막상 그 행적을 보면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

 

어쨌건 스스로 믿기를 거부한다고 하니까, 죽기 살기로 믿기로 마음을 정하고 원래의 자유를 의식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믿음을 지니게 되었다 해도, 진정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나는 없다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존재를 거부하면, 아마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건 자유를 누리는 주인공이 없어지는 것이니, 원래 자유가 있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래 자유롭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사실 그 말은 삶의 해답처럼 보이지만 정 반대이다. 삶에 대한 질문 자체를 교묘하게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은, 당장의 자유가 그리운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걸 이용하여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서 관심을 끄는 미끼가 되기도 한다. 당장의 현실부터 해결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이런 달콤한 말은 효과가 좋다. 인간의 본능이기보다는 동물의 본능이다.

 

그렇다면 자유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일까. 원래의 자유가 없다면, 매 순간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은 왜 있는지를 알아내고  해결하면 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오로지 현재의 문제라면, 그 현재를 자유롭게 만들면 모든 게 해결될 수도 있다. 힘든 것이 생각이면 생각을 잊으면 되고, 몸이면 몸대로 편하게 만들면 된다. 의지를 버린 사람들이 몸과 생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마약도 있다.

 

마약이나 마취제 같은 현재만을 존재의 모두라고 보는 사람은, 과거와 미래가 점점 사라지게 되어, 몸은 살아있으되 선채로 말라죽어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스스로 점점 생기를 빼가면서 저 혼자서 굳어가고 있는 것이다. 의식이 죽어있어도 실제 모습은 멀쩡하게 생생하다.

 

뭐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 설마 있을까 싶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사람이 아주 많다. 위대한 사상가 예술가 학자로 명망을 얻는 사람이 많다. "인간은 원래 자유롭다"라고 외치는 사람도 따지고 보면 그중의 하나일 수 있다.

 

현실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살고자 하는가 따져봐야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리가 없다. 아는 게 현실밖에 없으니 무슨 답이 나오겠는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무조건 행복하고 절대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면, 과거와 미래를 좀 생각해보라는 말이 뭔 말인지 오히려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사는 존재가 너무 행복해서 그런 자기도취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죽으면 끝나는 인간이 그런 착각을 한다면 이성은 물론 사라졌고, 생각마저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지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질주의자나 현실주의자도 미래를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를 모르니까, 그들의 미래는 현재가 저절로 이어지는 미래일 뿐이다. 현재에서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미래만이 존재한다. 현재와 전혀 다른 미래가 있다는 꿈을 꾸지 못한다.

 

만약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와 떼어낼 수 없다면, 그 답은 쉽지가 않다. 그것을 참된 것, 진리라고 말한다.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진리를 앞에 두고 그것을 눈 앞에 펼쳐 보면서도 답을 알려주는 데도, '그래서 어쩌라고요' 되묻는 수준이다. 정상적인 지능이라면 나올 수 없는 말이지만, 어쩌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많다.

 

답을 보여주고 알려주고 손 안에 쥐어 주었는데도, 그걸 가지고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면, 삶의 질문 자체를 이해 못하는 수준이거나,  활력이 고갈되어 행동할, 생각할 기력이 없는 것이다. 냉소로 위장해도 사라진 활기를 감출 수는 없다. 의미없고 내일없는 외침만 있을 뿐이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길만이 생명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활기를 새롭게 채우는 길이다. 

 

댓글목록

우현님의 댓글

우현  작성일

현실을 중시하는 철학자라는 사르트르가 문득 생각나네요. 현실주의는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수 있으니 극도로 조심하라는 물질주의와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은 미처 모르지만 인류를 멸망하도록 돕고 있는 셈이지요. 반대로 하느님 진리를 믿으면서 인류의 발전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빛과 생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고요. 속도가 더딜 수는 있겠지만, 정상적인 사람들이 빛과 생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것은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운명이겠지요.

구름가듯님의 댓글

구름가듯  작성일

때에 따라서 환경이나 상황이 사람의 생각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하지요. 무기력한 걸 좋아해서 스스로 의미를 포기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겁니다. 공의가 있기는 하지만, 인력으로는 어쩔 수없는 상황도 있기 때문에 사랑으로 지연시키는 자비가 있다고 하지요. 법과 공의는 하느님의 본성이라서 변할 수는 없겠지만, 각 사람의 무기력은 자비의 손길 안에서 수호천사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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