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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유란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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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낙수 작성일1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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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얘기를 듣고 유란시아 책 4부를 읽었는데, 유란시아는 기독교와 적대적 관계인가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유란시아는 좀 다른데, 성경이 거짓된 말씀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요.

 

교인의 입장에서는, 비록 유란시아가 자세하고 내용에서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성경이 틀렸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과 유란시아는 내용이 다르거나 반대되는 경우도 많고, 특히 예수님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절대 신성이신 독생자의 권능과 신성을 인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앞뒤 안가리는 종교적 맹신 같아서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혹시 유란시아를 믿는 분 중에서 교회 다니신 교인이 계시면, 기독교와 유란시아가 어떤 차이가 있고, 서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최경곤님의 댓글

최경곤 작성일

유란시아 책을 읽으면서, 계속 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만 신앙적으로 혼란된 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성경이나 유란시아 책이 더욱 명료하게 이해되어서 믿음이 날로 성장하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경의 어떤 설명을 들어도 불편하지도 않고 오히려 해방감을 느낍니다. 성경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이 아니라, 성경의 참 진리를 새로 발견하는 그러한 해방입니다.

교회만 다닐 때는, 첫째 계명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지금도 이 말은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의미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나고, 실천도 전혀 다릅니다. 교회에서는 사랑하라는 말이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라고 설명하지만, 그러한 것은 단지 섬김일 뿐입니다. 사랑의 참뜻을 깨달으면, 섬김은 아무 의미가 없는 형식적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모든 형식적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고, 실제적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참 사랑의 힘은, 사람을 점점 자유롭고 활기찬 신앙으로 변모시킵니다.

4부를 읽어 보셨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했는지 읽으셨을 겁니다. 예수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했던 계명의 시대에도, 계명과 율법에 아무 속박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교회가 성경의 진리를 널리 펼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독생자 예수님의 보혈과 부활을 진리로 밝혔지만, 단지 믿음을 강조한 것이고, 하늘을 감동시킬 신앙만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주 다른 얘기입니다. 믿음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믿음은 사랑이 아니며, 오히려 사랑하라는 첫 번째 계명을 시작도 하기 전에 가로막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목숨을, 뜻을 다하지 않더라도, 아주 작은 시작으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만 하는데, 교회에서의 성경 해석과 진리의 실천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실제로 실천했고 우리에게 전하려고 애썼던, 그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전할 수 있었던 사도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공경과 감동과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만 있을 뿐,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진실로 무엇을 말하는지, 그러한 계기가 성경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세월을 거치면서 성장하고 성숙된 믿음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하고 신성한 신앙입니다. 그 신앙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첫째 계명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단 한 번이라도, 실천하고자 한다면, 유란시아를 모르고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왔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우주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계시자들이 설명하는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모르고는 아무도 살아있는 실체로서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을 위해서는 성경과 교회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위해서는 유란시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참고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shtmdaks3826님의 댓글

shtmdaks3826 작성일

좋은 내용의 글 감사합니다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마음에 공감이 가는 좋은 말씀입니다

디오니스님의 댓글

디오니스 작성일

오래전에 교회를 다니다가 포기한 이후, 동서양의 여러 경전을 어깨너머로 읽었으나 이해가 짧아서인지, 신앙으로 삼을 진리를 찾지 못하다가, 유란시아 책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모든 종교적 진리에 대한 완벽한 해답입니다.

성경에 관한 최경곤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교인으로서 구원을 얻으려고 교회를 나간다는 것은 하느님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유란시아 책도 마찬가지 겠지요.

구원을 받기 위해 이웃을 사랑하고, 자선을 베풀고, 착하게 사는 것은 마치 유산을 받기 위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유산에 대한 기대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그것은 부모님에 대한 참된 사랑도 존경도 아닙니다.

구원은 하느님이 판단할 일이고, 우리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고, 부모님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전념으로 받들고, 하늘이 무너져도 변치 않을 굳센 신념으로 충성하면, 하느님이 알아주실 것이라고 믿지만,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유산이나 얻으려는 그런 이기적 신앙은 알아차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느님은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그 동기를 보십니다. 그 동기가 구원이라면 천사들 마저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아들로서 물려받은 능력으로 사는 것이 필연적인 조건입니다. 굳게 믿으려는 신앙은, 아들로서 물려받은 능력을 단 한조각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동물도 충성합니다. 단지 아들이 되겠다는 믿음은, 오히려 아들로 살아가는 자신의 잠재능력을 포기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교회에서 하느님께 복종하는 믿음을 신앙으로 가르치고 있다면, 구원의 결실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계시가 전해주는 참된 진실입니다.

인간 해석이나 말에 바탕을 두고, 전통적인 믿음을 나날이 강화시킬 것인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과 동행하며 그 아들이 되는 영광의 삶을 선택할 것인지는, 사랑의 진리를 볼 것인지 위로의 말에 귀 기울일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이 필요한 것인지 위로가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사랑의 길로 과감하게 방향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낙수님의 댓글

낙수 작성일

사랑이 있으니까 믿음이 있고 충성할 수 있는건데, 교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말씀이 이해가질 안네요. 암튼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코너킥님의 댓글

코너킥댓글의 댓글 작성일

좋은 질문이시네요. 제 기억으로는 유란시아 책에서 계시자들이 기독교를 일단, 인류를 구할 종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신앙적인 해석에서 큰 갭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특히 유란시아 책을 읽다보면 그러한 차이는 좁혀지거나 아예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꼭 유란시아 책을 1부 부터 차근차근 읽어보세요.

불새님의 댓글

불새 작성일

신앙에 대한 문제는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기독교에서 생각하는 신앙과 유란시아 책에서 계시되는 신앙은 개념에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인류가 지금까지 지녀왔던 신앙이 무엇인지 먼저 설명한 다음에,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이끄는 진리를 "예수님의 신앙"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종교이며, 이것이 오직 인류를 빛과 생명의 시대로 이끌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지만, 부언하여 책에 나오는 "신앙과 믿음"의 일부를 독자 게시판에 소개하였으니, 같이 참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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